마니피캇(Magnificat) 248

사랑이 십자가는 아니지만, 십자가는 사랑이다(2)

분이가 민둥산 갈대밭에서 탱큐! 사랑이 십자가는 아니지만, 십자가는 사랑이다(2) -연중22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를 중심으로 1. 십자가는 사랑이다! 2021년 연중24주일(나해-마르코7,27-35) 묵상에서 [사랑은 십자가가 아니지만, 십자가는 사랑이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그 글에서는 [사랑은 십자가가 아니다]는 명제를 먼저 생각해보았다, 이번 글은 [십자가는 사랑이다]는 명제를 먼저 생각해 보고, 그럼에도 하느님의 사랑은 십자가 사건으로 국한시킬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먼저 창세기 1장부터 시작한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기1,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기1, 27) 십자가는 창조의 ..

사랑에 빠진 자의 원천적인 의지, 역설적 신비, 계시의 아름다움

사랑에 빠진 자의 원천적인 의지, 역설적 신비, 계시의 아름다움 - 연중21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를 중심으로 1. 김춘수, 「능금」 1. 그는 그리움에 산다./그리움은 익어서/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그리움은 마침내/스스로의 무게로/떨어져 온다./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눈부신 축제의/비할 바 없이 그윽한/여운을 새긴다.//2. 이미 가 버린 그날과/아직 오지 않은 그날에 머물은/이 아쉬운 자리에는/시시각각 그의 충실만이/익어간다./보라,/높고 맑은 곳에서/가을이 그에게/한결같은 애무의/눈짓을 보낸다.//3놓칠 듯 놓칠 듯 숨 가쁘게/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며는/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푸르게만 고인/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채색과 윤색을 거쳐, 대화적 현존으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채색과 윤색을 거쳐, 대화적 현존으로 -연중20주,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를 중심으로 1. 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희망에는 희망이 없다/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희망에는 절망이 있다/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당신을 사랑한다 정호승의 「나는 희망을 거절 한다」 는 시는 거짓 희망, 희망고문을..

바람, 지진, 불이 지나간 뒤 들리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는 누구의 음성인가?

바람, 지진, 불이 지나간 뒤 들리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는 누구의 음성인가? - 연중19주,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를 중심으로 1. 이문재의 「어떤 경우」 & 「손의 백서」 이문재 시인의 시 두 편을 읽어본다. 어떤 경우에는 /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어떤 경우에는 /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어떤 경우」) 이문재 시인의 「어떤 경우」를 읽어보면 너무나 지당하고 자명한 결어라 사족을 붙일 말이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손의 백서」를 읽어본다.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으는 까닭은 두 손을 모으지 않고는 나를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손을 모으지 않고는 가슴이 있는 ..

이미지의 정치학에서, 십자가와 함께하는 영성의 아우라(AURA)로

이미지의 정치학에서, 십자가와 함께하는 영성의 아우라(AURA)로 - 주님의 거룩한 변모축일,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를 중심으로 1. 왜 내가 채석 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송수권) 송수권의 「여름 낙조」를 읽어본다. ​ 왜 채석 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나는 지금 만 권의 책을 쌓아 놓고 글을 읽는다./만 권의 책, 파도가 와서 핥고 핥는 절벽의 단애/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나의 전 재산을 다 털어도 사지 못할 만 권의 책/오늘은 내가 쓴 초라한 저서 몇 권을 불지르고/이 한바다에 재를 날린다.//켜켜이 쌓은 책 속에 무일푼 좀처럼/세 들어 산다/왜 채석 강변에 사느냐 묻지 말아라.//고통에 찬 나의 신음 하늘에 닿았다 한들/끼룩끼룩 울며 서해를 나는/저 변산 갈매기만큼이야 하겠느냐..

현행적 지향과 잠재적 지향 사이에서 지향의 순수성에 대하여

현행적 지향과 잠재적 지향 사이에서 지향의 순수성에 대하여 -연중17주,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를 중심으로 1. 황인찬,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①눈을 뜨자 사람으로 가득한 강당이었고 사람들이 내 앞에 모여 있었다 녹음기를 들고 지금 심경이 어떠시냐고 묻고 있었다//사람들은 자꾸 말을 하라고 하고 그러나 나에게는 할 말이 없어요 심경도 없어요 하늘 아래 흔들리고 물을 마시며 자라나는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온 걸요//②눈을 다시 뜨니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뛰어내리셔야 합니다 지금요 더 늦을 순 없어요 자칫하면 모두가 위험해져요//무서워서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나를 밀었고//③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 ④눈을 뜨면 혼자 가는 먼 집, ..

주어 자리를 비워놓은, 자기 자신에로의 완전한 귀환(Reditio completa in se ipsum)

순애데레사가~ 세미원에서, 탱큐 주어 자리를 비워놓은, 자기 자신에로의 완전한 귀환(Reditio completa in se ipsum) -연중16주,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를 중심으로 1. 전동균의 「거룩한 허기」 피네스테레 세상의 끝에 닿은 순례자들은 바닷가 외진 절벽에 서서 그들이 신고 온 신발을 불태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청둥오리 떼 날아가는 미촌 방죽에서 매캐한 연기에 눈을 붉히며 내가 쓴 시를 불태운다 전동균의 「거룩한 허기」는 대부분 시인의 어떤 ‘결기’로 읽곤 한다. 1연에서 순례자들이 산티아고의 순례의 끝에서 자신이 신고 온 신발을 바닷가 외진 절벽에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불태우듯, 2연에서 화자는 청둥오리떼 날아가는 미촌 방죽에서 자신이 평생 ..

근원적 질서에의 갈망에서 들리는 직접적인 육성(ipsissimavox Jesu)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근원적 질서에의 갈망에서 들리는 직접적인 육성(ipsissimavox Jesu) -연중15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를 중심으로 1.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광섭, 「저녁에」) 2. 행복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활동이며 관조다(아리스토텔레스) 3.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1.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광섭,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분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이육사)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이육사) -연중14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를 중심으로 1. 이육사, 「청포도」 2.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장폴 사르트르) 3.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1. 이육사, 「청포도」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 을 함쁙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1904-1944)의 「청포도」에서 ..

복되고 아름다워라! 제 십자가를 지고 J를 따르는 사람들!

복되고 아름다워라! 제 십자가를 지고 J를 따르는 사람들! -연중13주,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을 중심으로 1. 한낱 꽃 같은 심장(心臟)으로 침몰하라(서정주) 2. 십자가는 어떤 사랑을 말하는 것인가? 3. 복되고 아름다워라! 제 십자가를 지고 J를 따르는 사람들! 1. 한낱 꽃 같은 심장(心臟)으로 침몰하라(서정주) 서정주의 「바다」를 읽어본다. 귀 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 우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 데도 없다.//아 ─ 반딧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울음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 속에 숨기어 가지고…… 너는,/무언(無言)의 해심(海心)에 홀로 타오르는/한낱 꽃 같은 심장(心臟)으로 침몰하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