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피캇(Magnificat) 248

보다 아름답고, 보다 완전한, 연역적인 선택의지(Prohairesis)

by 우두망찰님! '보다' 아름답고, '보다' 완전하고, '보다' 훌륭하고, '보다' 복스러운 연역적인 선택의지(Prohairesis) -연중3주, “때가 차서- 버리고- 따르다”를 중심으로 1. 백석, 「나와 나타샤와 휜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눈은..

오후 네 시쯤,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헤테로토피아(Les Heterotopies)

오후 네 시쯤,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헤테로토피아(Les Heterotopies) -연중2주, “무엇을 찾느냐?-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를 중심으로 1. 이성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살아갈수록 내가 작아져서/ 내 눈은 작은 것으로만 꽉 차기 때문이다//먼데서 보면 크높은 산줄기의 일렁거림이/나를 부르는 은근한 손짓으로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봉우리 제 모습을 감춘다// 오르고 또 올라서 정수리에 서는데/아니다 저어기 더 높은 산 하나/ 버티고 있다. //이렇게 오르는 길 몇 번이나 속았는지/ 작은 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가두고 / 그때마다 나는 옥죄어 눈 바로 뜨지 못한다.// 사람도 산속에서는 미물이나 다름없으므로/또 한 번 작은 산이 백화..

청춘의 문장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지고 싶다.(윤동주)

청춘의 문장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지고 싶다.(윤동주) 주님공현대축일-“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를 중심으로 1.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지고 싶다.(윤동주) 윤동주의 『또 태초의 아침』을 읽어본다. 하얗게 눈이 덮혀 있고/전신주가 잉잉 울어/하느님 말씀이 들려온다//무슨 계시일까// 빨리/ 봄이 오면/죄를 짓고/눈이 밝아(지고 싶다)//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나는 이마에 땀을 흘리고 싶다(1941년) 윤동주(11917-1945)의 『또 태초의 아침』(1941)은 스물셋, 윤동주가 쓴 청춘의 문장이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지고 싶다.”는 반어이자 역설이다. 이 시는, 시인이..

즉자적 존재이자 대자적 존재로서 사랑의 현상학

즉자(卽自, gr. kath`hauto, lat. in se, ipse in re, d. an Sichsein, e. in-itself)적 존재이자 대자(對自, d. Fürsichsein, e. for-the-itself)적 존재로서 사랑의 현상학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 “아기는 자라면서 지혜가 충만해졌다”를 중심으로 1. 김승희의 「 장미와 가시」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 투성이였어//가시투성이의 온몸을 만지며/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해도/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눈먼 손으로/삶을 어루만지며/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장미꽃을..

오! 작은 고을 베들레헴아, 너 잠들었느냐?(Lewis H. Render)

오! 작은 고을 베들레헴아, 너 잠들었느냐?(Lewis H. Render) - 인간이 은총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은총과 함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 루카 1,26-38 2. 요한1,1-18(2023년) 3. 요한1,1-18(2022년) 1. 루카 1,26-38 성탄의 기쁨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한다. 우리가 누리는 기쁨이 기뻐야한다는 당위에서 비롯된 기쁨 욕구인가? 아님 실존의 질을 결정하는 실체적인 기쁨인가? 루카복음 사가는 가브리엘천사의 인사를 통해 은총이 가득한 것 때문에 기뻐하라고 전한다. 요한복음 사가는 은총과 진리가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라고 기쁨의 실체를 전한다. 구약의 예언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환호하라!는 실체의 중심에 우리를 구원할 ..

기쁨의 ‘성채’(城砦), ‘모른다’는 해자(垓字)와 ‘안다’라는 커룹(Cherub)

호수, 계곡, 강이라는 세겹의 해자를 갖고 있는,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_https://www.neuschwanstein.de/ 기쁨의 ‘성채’(城砦), ‘모른다’는 해자(垓字)와 ‘안다’라는 커룹(Cherub) -대림3주, 를 중심으로 1. 정지상의 「신설(新雪)」과 고흐의 「아몬드 나무」 정지상의 「신설(新雪)」 昨夜紛紛瑞雪新작야분분서설신:어제 밤에 펄펄 상서로운 눈이 내더니, 曉來鵷鷺賀中宸효래원로하중신:새벽엔 뜨락의 원추 새가 신년하례를 드리네, 輕風不起陰雲捲경풍불기음운권:바람도 일지 않고 구름도 산뜻 걷혀, 白玉花開萬樹春백옥화개만수춘:나무마다 백옥 같은 꽃이 피어 새봄이로세. 고려조 정지상(鄭知常)이 읊은 「신설(新雪)」과 고흐가 그린 「아몬드 나무」..

설렘의 아르케(arche), 사건의 현상 이면에 있는 존재에의 열림

설렘의 아르케(arche), 사건의 현상 이면에 있는 존재에의 열림 - 대림2주,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를 중심으로 1. 로버트 프로스트, 「질문」 하나의 음성이 말하길/지상의 인간들아,/별들 속에서 나를 보며/진심으로 말해보라/모든 영혼과 육체의 상처들은/태어남의 대가로는/ 너무 비싸지 않은지. 로버트 프로스트의 「질문」이라는 시는 정서에 호소하는 시가 아니라, 삶의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는 것에 문득 ‘멈춘’ 시다.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이 시의 화자는 적어도 자신의 상처가 어디에 새겨져 있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처는 그가 세계와 충돌하지 않으면 만들어 지지 않은 생존증명서 같은 것이다. 그가 자신을 세계에 부단히 열려고 하지 않았다면 좀..

몰입의 아름다움, 거울을 보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리셋(reset)하라!

몰입의 아름다움, 거울을 보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리셋(reset)하라! - 대림1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를 중심으로 1. 유치환, 「생명의 서(書)」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여/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灼熱)하고/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死滅)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오직 알라의 신(神)만이/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존재의 거룩한 질량, 고독의 물질성을 너머 타자윤리학으로

존재의 거룩한 질량,고독의 물질성을 너머 타자윤리학으로 -그리스도왕 대축일,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들을 가를 것이다”를 중심으로 1. 프랑시스 잠,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게 살갗을 찌르는 / 밀 이삭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옆에서/ 늙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포도주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2)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2) - 연중33주,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를 중심으로 1. 김승희, 「너에게」 너는 산이 되어라 / 산이 되어 달아나지 마라 / 산이 되어 다가오지 마라 / 너는 / 너는 //산이 되어 / 산이 되어 / 달아나지 마라 / 다가오지 마라 / 산이 되어 그렇게 그렇게(1999년) 김승희 시인의 「너에게」는 “산이 되어 달아나지 마라 / 산이 되어 다가오지 마라”로 수렴된다. 언뜻 견고한 단절을 말하는 듯하지만, 너라는 대상에 대한 지고의 갈망과 동시에, 그런 너가 적어도 이 지구상에 한명쯤은 있으리라 상정하고 싶은 자신에 대한 만만치 않은 자부심을 내장하고 있는 구절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