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피캇(Magnificat) 248

가장 위대한 것으로도 위압되지 않으면서도, 가장 작은 것에도 담기는(『휘페리온』)

N-M님께서 보내주신 가장 위대한 것으로도 위압되지 않으면서도, 가장 작은 것에도 담기는(『휘페리온』) 존재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1.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1연에 나오는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시행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의해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당신이 필요해요”를 화자의 고백으로 읽어보자!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하지 않고 “당신이 필요해요!” 라는 고백으로 보아, 화자의 고백이 설 자리가 미땅치않음을 알 수 있다. 상대의 상황을 배려한..

‘오늘’이라는 ‘영원’, 우리 안의 인류, 다섯 사람의 초상

‘오늘’이라는 ‘영원’, 우리 안의 인류, 다섯 사람의 초상 - ‘Eternity’ as in ‘Today,’ the human race in us, the portrait of five people. 1. 나는 왜 너에게서 노발리스의 을 보았나? 시 두 편을 읽어본다. 고두현, 「달의 뒷면을 보다」 송정 솔바람해변 지나 설리 해안/구비 도는데/ 벌써 해가 저물었다//어두운 바다 너울거리는 물결 위로/별이 하나 떨어지고 돌이 홀로 빛나고/ 그 속에서 또 한 별이 떴다 지는 동안/반짝이는 삼단 머리 빗으며/네가 저녁 수평선 위로 돛배를 띄우는구나// 밤의 문을 여는 건 등불만은 아니네/ 별에서 왔다가 별로 돌아간 사람들이/ 그토록 머물고 싶어 했던 곳/ 처음부터 우리 귀 기울이고/ 함께 듣고 싶었던 그 말..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Il n'y a rien en dehors du texte)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Il n'y a rien en dehors du texte)-자크 데리다 1. 문정희, 「율포의 기억」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저 무위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먹이를 건지..

실재는 위협받을 수 없고, 비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는 위협받을 수 없고, 비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헬렌 슈크만) - Reality cannot be threatened, and non-reality does not exist. 1. 천양희, 「생각이 달라졌다」 시를 읽어 본다.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내 音色이 달라졌다//빛이란 이따금/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어둠의 맨 끝이/빛이란 걸 알고 난 뒤 내 독창이 달라졌다//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는 생각/어둠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 나는 골똘해졌네//어둠이 얼마나 첩첩인지 빛이 얼마나 겹겹인지 /웃음이 얼마나 겹겹인지 울음이 얼마나 첩첩인지 /모든 그림자인지//나는 그림자를 좋아한 탓에/이 ..

당신에게 드릴테니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김재인)

당신에게 드릴 테니, 부디 기쁘게만 살아라(김재인)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연 중 제 31주일 (다 해) 2022. 10. 30. Luc.19,1-10] 1. 김용택, 「선운사 동백꽃」 & 복효근, 「왈칵, 붉은」 김용택, 「선운사 동백꽃」을 읽어본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맨발로 건너며/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다시는 울지 말자/다시는 울지 말자/눈물을 감추다가/동백꽃 붉게 터지는/선운사 뒤 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김용택, 「선운사 동백꽃」) 김용택 시인의 「선운사 동백꽃」 은 해석이 필요 없는 시다.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고 다짐하다. 동백..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by 분이가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연 중 제 30 주일 (다 해) 2022. 10. 23. Luc.18,1-8 ] 1. 고정희,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나직히 불러본다 어머니/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창세기32,27)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창세기 32, 27) -내가 원하는 것을 그분이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분이 원하는 것을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연 중 제 29주일 (다 해) 2022. 10. 16. Luc.18,1-8 ] 1. 김현승의 「견고(堅固)한 고독」 & 「절대 고독​」 「견고(堅固)한 고독」을 읽어본다.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 그늘에 빚지지 않고 /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 단 하나의 손발. // 모든 신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 이 마른 떡을 하룻밤 /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 / 그 이슬과..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사랑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릎을 꿇었느냐?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사랑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릎을 꿇었느냐? -Did you fall down on your knees only to be loved, and did you kneel only after becoming love? [연 중 제 28일 (다 해) 2022. 10. 9. Luc. 17,11-19] 1.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정호승) 정호승, 「무릎」과 이육사, 「절정(絶頂)」을 읽어본다,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사랑이 되었느냐/너도 무릎을 꿇어야만/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평생이 걸렸느냐차디찬 바닥에/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무릎을 꿇고/먼 산을 바라볼 때가 길 떠날 때이다/낙타도 먼 길을 가기 위해..

참새에게 독수리가 어떻게 비상하냐고 묻지 마라(헬렌 슈크만)

참새에게 독수리가 어떻게 비상하냐고 묻지 마라(헬렌 슈크만)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 긍정에 이르는 비전(Vision)을 위한 제언 [연 중 제 27주일 (다 해) 2022. 10. 2. Luc. 17, 5-10 ] 1. 박성룡, 「과목(果木)」 시를 읽어 본다. ⑴과목(果木)에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事態)처럼/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⑵뿌리는 박질(薄質) 붉은 황토에 가지는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⑶모든 것이 멸렬(滅裂)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 ⑷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⑸ㅡ 흔히 시(詩)를 잃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 시력(視力)을 회복한다. 박..

존재의 무게, 자족적 실체에 머물러 있는 ‘코나투스적’ 존재인가? ‘부스러기-남은조각’에 의존해 있는 ‘관계론적’ 존재인가?

존재의 무게, 자족적 실체에 머물러 있는 ‘코나투스적’ 존재인가? ‘부스러기-남은조각’에 의존해 있는 ‘관계론적’ 존재인가? - Is it the ‘conatus’ that remains in the weight of being, the self-suffici Is it the ‘relational’ that depends on the ‘crumb-remaining fragment’? [연 중 제 26일 (다 해) 2022. 9. 25. Luc. 16,19-31 ] 1.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복효근) 복효근의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을 읽어본다. 건기가 닥쳐오자/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