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묵언 고재종 숲은 아무 말 않고 잎사귀를 보여준다. 저 부신 햇살에 속창까지 길러 낸 푸르른 투명함 바람 한 자락에도 온 세상 환하게 반짝이며 일렁이는 잎새 앞에서 내 생 맑게 씻어내고 걸러낼 것은 무엇인가 숲은 아무 말 않고 새소리를 들려준다. 저것이 어치인지 찌르레기인지 소리 떨리는 둥그런 파문 속에서 무명의 귀청을 열고 들어가 그 무슨 득음을 이루었으면 한다 숲은 그러자 이윽고 꽃을 흔들어 준다 어제는 산나리꽃 오늘은 달맞이꽃 깊은 골 백도라지조차 흔들어 주니 내 생 또 얼마나 순해져야 맑은 꽃 한 송이 우주 속 깊이 밀어 올릴 수 있을까 문득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 때마침 오솔길의 다람쥐 눈빛에 취해 면경처럼 환한 마음일 때라야 들려오는 낭랑한 청청한 소리여 이 고요 지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