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기도하는 사람 / 고재종

나뭇잎숨결 2024. 3. 31. 14:00

 

 

기도하는 사람

고재종

길가의 오락기에서 아무리 두들겨대도

한사코 튀어나오는 두더지 대가리처럼

한사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퇴행성 고독의 습관 같은 게 그를 홀로 세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우느냐고 하지 말아라

울 수라도 있다면 왜 기도하겠느냐고

반문하는 데에도 지쳐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게 없는 생이

나를 참을 수 없게 한다던 랭보여

중대장의 명령 하나에 인분을 먹은 병사들의

굴욕 같은 생도 이미 참았으니

다만 오그라지고 우그러지고

말라비틀어진 과일 도사리 같은 것으로

그를 아무도 눈여기지 않는 곳에 홀로 세우는

저주받은 고독의 습관이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저 풍찬노숙의 나날을 누구에게 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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