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749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엄까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시(詩)와 詩魂 2007.02.25

서풍부(西風賦)/김춘수

서풍부(西風賦) - 김 춘수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왼통 풀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울려놓고 복사꽃을 울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시(詩)와 詩魂 2007.02.19

위험들/자넷 랜드

위험들/자넷 랜드 ​ 웃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는 것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에 휘말리는 위험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꿈을 사람들 앞에서 밝히는 것은 순진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을 보상받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사는 것은 죽는 위험을, 희망을 갖는 것은 절망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시도하는 것은 실패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 그러나 위험은 감수해야만 하는 것 삶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므로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아무것도 되지 ..

시(詩)와 詩魂 2007.02.14

그대에게 가기 위하여 / 김정란

그대에게 가기 위하여 / 김정란 나의 詩는 途上에 있습니다. 나는 아주 서투른 사인밖에 던질 줄 모르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돌이거나 풀이거나 흔들리는 물바가지이거나 떡갈나무에 매인 노란 리본이거나, 그들은 한결같이 게으르고, 한결같이 풀이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허둥댑니다. 작은 나의 마음을 詩行마다 박아두고, 당신이 조금이라도 문을 열면 얼른 그곳에 물결을 일으키리라고 매복하여 기다리며. 오 우리가 함께 길의 '끝'에 대한 예감을 가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던가요. 그때 우리의 정신과 정신을 잡아 뒤흔들던 눈물. 눈물로 하늘을 얻을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으로 우리는 마음으로 가는〔耕〕세상의 밭을 얻습니다. 돌이거나 풀이거나 흔들리는 물바가지이거나 떡..

시(詩)와 詩魂 2007.02.05

행복 / 유치환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시(詩)와 詩魂 2007.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