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749

세상의 등뼈/정끝별

세상의 등뼈/정끝별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 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시(詩)와 詩魂 2008.04.04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릴케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릴케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또는 기도처럼 왔는가. 행복이 반짝이며 하늘에서 몰려와 날개를 거두고 꽃피는 나의 가슴에 걸려온 것을...... 하얀 국화가 피어있는 날 그 집의 화사함이 어쩐지 마음에 불안하였다. 그날 밤늦게, 조용히 네가 내 마음에 닿아왔다. 나는 불안하였다. 아주 상냥하게 네가 왔다. 마침 꿈 속에서 너를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오고 은은히, 동화에서처럼 밤이 울려 퍼졌다. 밤은 은으로 빛나는 옷을 입고 한 주먹의 꿈을 뿌린다. 꿈은 속속들이 마음 속 깊이 스며들어 나는 취한다. 어린 아이드링 호도와 불빛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보듯 나는 본다. 네가 밤 속을 걸으며 꽃송이 송이마다 입맞추어 주는 것을.

시(詩)와 詩魂 2008.02.21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이수명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이수명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시(詩)와 詩魂 2008.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