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749

서설(瑞雪) /이광근

서설(瑞雪) /이광근 몇겁의 허물을 벗고 속살로 피여 힌 옥이 부서저 나리는 순백의 계절 그대 떠난 빈자리 묵비(默秘)의 등걸에 흰 활옷 걸치고 맵고 시린 바람이 칼끝을 물고 춤을 춘다 밤새 털어붓던 초설(初雪) 핏기없는 얼굴로 먼 기억을 허무는 잔인한 폐허였다 밤이 외롭다 창박에 하얀 동심(冬心)은 서곡인듯 고독의 질주였다 못견디게 서러운 밤 적막함이여 아득한 지평에 고운 서설(瑞雪) 아름답게 쌓이여 생명의 시간을 기다리여라

시(詩)와 詩魂 2007.11.23

침묵의 소중함 / 토마스 머튼

침묵의 소중함 / 토마스 머튼 마음이 상했지만 답변하지 않을 때 내 마음 내 명예에 대한 방어를 하느님께 온전히 맡길 때 침묵은 양선함 입니다. 형제들의 탓을 들어내지 않을 때 지난 과거를 들추지 않고 용서 할 때 침묵은 자비 입니다. 불평 없이 고통 당할 때 인간의 위로를 찾지 않을 때 서두르지 않고 씨가 천천이 싻트는 것을 기다릴 때 침묵은 인내 입니다. 형제들이 유명해지도록 입을 다물고 하느님의 능력의 선물이 감춰졌을 때도 내 행동이 나쁘게 평가 되더라도 타인에게 영광이 돌려지도록 내버려 둘 때 침묵은 겸손 입니다. 그분이 행하시도록 침묵 할 때 주님의 현존이 있기 위해 세상 소리와 소음을 피할 때 그분이 아시는 것 만으로 충분하기에 인간의 이해를 찾지 않을 때 침묵은 신앙 입니다. "왜?" 라고 ..

시(詩)와 詩魂 2007.11.20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충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랄프레도 디 수지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말 나는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다.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가 없었기에.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다. 나는 삶의 불 앞에서 두 손을 쬐었다. 이제 그 불길 가라앉으니 나 떠날 준비가 되었다. -- 월터 새비지 랜디

시(詩)와 詩魂 2007.11.15

모든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도종환

모든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도종환 장미꽃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붉고 매끄러운 장미의 살결, 은은하게 적셔 오는 달디단 향기, 겉꽃잎과 속꽃잎이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 내는 매혹적인 자태. 장미는 가장 많이 사랑받는 꽃이면서도 제 스스로 지키는 기품이 있다. 그러나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모든 꽃이 장미처럼 되려고 애를 쓰거나 장미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실망해서도 안된다. 나는 내 빛깔과 향기와 내 모습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나는 장미로 태어나지 않고 코스모스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가녀린 내 꽃대에 어울리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장점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욕심부리지 않는 순한 내 빛깔을 개성으로 삼는 일이 먼저여야 한다. 남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내 모..

시(詩)와 詩魂 2007.11.10

초혼(招魂)/김소월

초혼(招魂) - 金素月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主人)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시(詩)와 詩魂 2007.11.08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물 속에는 물만 있는게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게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게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게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詩)와 詩魂 2007.11.07

낙화/이형기​

낙화/이형기 ​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시(詩)와 詩魂 2007.11.05

최승자,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최승자 1 어디까지갈수있을까 한없이흘러가다보면 나는밝은별이될수있을것같고 별이바라보는지구의불빛이될수있을것같지만 어떻게하면푸른콩으로눈떠다시푸른숨을쉴수있을까 어떻게해야고질적인꿈이자유로운꿈이될수있을까 2 어머니 어두운 뱃속에서 꿈꾸는 먼 나라의 햇빛 투명한 비명 그러나 짓밟기 잘 하는 아버지의 두 발이 들어와 내 몸에 말뚝 뿌리로 박히고 나는 감긴 철사줄 같은 잠에서 깨어나려 꿈틀거렸다 아버지의 두 발바닥은 운명처럼 견고했다 나는 내 피의 튀어오르는 용수철로 싸웠다 잠의 잠 속에서도 싸우고 꿈의 꿈 속에서도 싸웠다 손이 호미가 되고 팔뚝이 낫이 되었다 3 바람 불면 별들이 우루루 지상으로 쏠리고 왜 어떤 사람들은 집을 나와 밤길을 헤매고 왜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잠들었는가..

시(詩)와 詩魂 2007.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