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限軌道(무한궤도)
ㅡ五十行詩ㅡ
박화목(朴和穆)
1
사월이 싣고 온 薰風(훈풍)이
겨우내 얼었던 땅을 녹히었다.
산 골짝 그늘에 쌓인,
오오랜 傷痕(상흔)처럼 가시지 않던
흰 눈더미들도 녹아내리고,
녹아내리는 물소리는
悲愴交響曲(비창교향곡) 第一樂章(제일악장) 最終(최종)의 小節(소절),
木管樂器(목관악기)의 餘音(여음)처럼
고요히 참으로 고요히
溪谷(계곡)을 울리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2
端正(단정)한, 그리고
곱게 봄치장을 한 사슴 한 쌍이
밟고 간 자욱 아래,
또 落葉(낙엽)이 깔린 흙덩이를 헤치면서
이름 없는 풀 싹들은 솟아나고,
이 어린 植物(식물)들도
創世時代(창세시대)부터의 向日性(향일성)을 이어받아,
하늘을 향하여 저마다 고개를 치어드는 것이고
또 그 하늘에는 낮에 흰 구름
밤에 총총한 별이 빛나고 어느 밤엔,
초생달이 孤獨(고독)의 그림자를 길게 남기고 떨어지는 것이었다.
3
百五十五(백오십오)마일 鐵條網(철조망) 아래도
이름없는 풀의 새싹은 돋아나고 있었다.
불탄 자국, 그 흉한 터전에
다시는 아무 생물도
깃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더니
無限軌道(무한궤도)가 지나간 자리......
머리만큼한 돌덩이들도 산산히 부서진 그 자리에
미운 지렁이조차 그 棲息(서식)을 拒否(거부)하리라 여겼더니
아 이 어찌된 일인가?
소돔城(성)이 허물어져 묻힌 이 곳에 가냘픈
그리고 곱디고운 한 떨기 민들레꽃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4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나오고
봄은 오고 봄은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봄은 다시 오고......
人間(인간)들이 出入(출입) 못하는 禁域地帶(금역지대).
季節(계절)따라 노랑꽃이 피었다가 시들고,
또 수없는 씨앗들이 바람에 날리어 가고
그러노라면,
夕陽(석양)이 나무등걸에 걸려 까마귀는 우짖고,
마침내
우리들의 긴 不幸(불행)의 그림자도 우리 곁에
서 걷히고 마는 것이었다.
5
無心(무심)한 兵丁(병정) 하나이 한 곳에 서서
한송이 민들레꽃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마음 속에는
또한 몇 萬(만)송이의 민들레꽃이 和暢(화창)하게 피어나는 것이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無限軌道(무한궤도)가 지나간 불탄 자리 그 곳에
다시금 瀝瀝(역력)히 나타나고야마는
神(신)의 攝理(섭리)에 의한 저 우주의 無限軌道(무한궤도),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惡(악)의 불길이 鎔鑛爐(용광로)처럼 일어나서 이 몸을 불사를지라도,
이 몸은 다니엘처럼 그 불꽃속에서 다시금 살아나는 것이었다.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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