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죄 / 고재종 그리운 죄 고재종 산아래 사는 내가 산 속에 사는 너를 만나러 숫눈 수북이 덮힌 산길을 오르니 산수유 고 열매 빨간 것들이 아직도 옹송옹송 싸리울을 밝히고 서 있는 네 토담집 아궁이엔 장작불 이글거리고 너는 토끼 거두러 가고 없고 곰 같은 네 아내만 지게문을 빼꼼이 열고 들어와 몸 녹이슈! 한다면 내 생의 생생한 뿌리가 불끈 일어선들 그 어찌 뜨거운 죄 아니랴 포르릉 ,어치가 날며 흩어놓은 눈꽃의 길을 또한 나는 안다. 시(詩)와 詩魂 2024.03.31
그 희고 둥근 세계 / 고재종 그 희고 둥근 세계 고재종 나 힐끗 보았네 냇갈에서 목욕하는 여자들을 구름 낀 달밤이었지 구름 터진 사이로 언뜻, 달의 얼굴 내민 순간 물푸레나무 잎새가 얼른, 달의 얼굴 가리는 순간 나 힐끗 보았네 그 희고 둥근 여자들의 그 희고 풍성한 모든 목숨과 神出의 고향을 내 마음의 천둥 번개 쳐서는 세상 일체를 감전시키는 순간 때마침 어디 딴 세상에서인 듯한 풍덩거리는 여자들의 참을 수 없는 키들거림이여 때마침 어디 마을에선 훅, 끼치는 밤꽃 향기가 밀려왔던가 말았던가 시(詩)와 詩魂 2024.03.31
광채 /고재종 광채 고재종 석모도 방죽, 그 아득한 억새 밭에 섰더니 일몰에 젖은 네 눈동자는 되레 무슨 깊고 푸른 수만 리로 일렁거렸다 억새 때문만도 아니게 길 하나 보이지 않고 내 눈은 내 눈동자를 보지 못할 때 네 눈동자에서 터져 나오는 광채는 저 수평선까지를 황홍(黃紅)으로 물들여놓곤 되레 넌 깊고 푸른 네 심연으로 잦아들었다 억새꽃 금발들이 하염없이 반짝거렸다 시(詩)와 詩魂 2024.03.31
고요를 시청하다 / 고재종 고요를 시청하다 고재종 초록으로 쓸어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는 새암가에 뭉실뭉실 수국송이로 부푼다 날아갈 것 같은 감나무를 누르고 앉은 동박새가 딱 한 번 울어서 넓히는 고요의 면적, 감잎들은 유정무정을 죄다 토설하고 있다 작년에 담가둔 송순주 한 잔에 생각나는 건 이런 정오, 멸치국수를 말아 소반에 내놓던 어머니의 소박한 고요를 윤기 나게 닦은 마루에 꼿꼿이 앉아 들던 아버지의 묵묵한 고요, 초록의 군림이 점점 더해지는 마당, 담장의 덩굴장미가 내쏘는 향기는 고요의 심장을 붉은 진동으로 물들인다 사랑은 갔어도 가락은 남아, 그 몇 절을 안주 삼고 삼베올만치나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 고금孤衾의 시골집 마루, 아무것도 새어 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고요가 초록바람에 반짝반짝 누.. 시(詩)와 詩魂 2024.03.31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화엄사 홍매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주님부활대축일,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1. 이상, 「절벽」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발하다. 나는거기묘혈을 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가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 재차거기에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들어가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나는정말눕는다.아아, 꽃이또형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이상의 「절벽」은 꽃으로 상징되는 생과 사랑의 본능과 묘혈로 상징되는 죽음과 파괴의 본능 사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화자를 절벽에 서 있는 사람으로 비유한다. 꽃도 보이지 않고 묘.. 마니피캇(Magnificat) 2024.03.29
[주님 부활 대축일]2024년 3월 31일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1]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거룩한 부활절에 관한 설교] 안식일 다음 날 아침, 햇살이 막 어둠을 뚫고 나올 때,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으로 가려고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다른 복음사가들은 그녀가 그날 아침 무덤에 갈 때, 다른 여인들과 함께 갔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사가는 아마도 뒤이은 사건들에서의 비범한 역할을 인정하여 마리아 막달레나만 언급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제자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주님과 함께 있으려는 것이 자기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해지더라도, 그리고 남은 것이 그분의 시신뿐일지라도 예수님 가까이에 있고 싶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 백서(帛書) 2024.03.23
[파스카 성야 성토요일]2024년 3월 30일 [1]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우리를 악에서 구하시는 선하신 하느님께 알렐루야를 노래합시다 언젠가 저 위 천상에서 평화 속에 노래할 수 있도록 이 아래 지상에서 아직 걱정 가운데 있는 동안 알렐루야를 노래합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걱정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땅 위에서의 인생은 시련에 가득 찬 생이 아닌가.”라는 말씀이 있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하는 말씀도 있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기도가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하고 청하라고 명하는데도 그렇게도 유혹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면 어떻게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매일 용서를 청하고 있.. 백서(帛書) 2024.03.23
[주님 수난 성금요일]2024년 3월 29일 십자가 처형 : 템페라, 85 x 52cm, 1500년경,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디오니시 작품, [1]교황, 주님 수난 예식 거행... 칸탈라메사 추기경 “예수님의 죽음으로 삶은 절정에 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7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님 수난 예식을 거행했다. 이날 예식 강론은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이 담당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하느님의 죽음에 대한 허무주의를 비판하면서 서구 세계에 퍼져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아울러 영적 우주의 진정한 “블랙홀”을 보여주는 그러한 허무주의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정숙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7일 오후 5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님 수난 예식을 거행했다. 예수님께서 십.. 백서(帛書) 2024.03.23
[주님 만찬 성목요일]2024년 3월 28일 [1]“인생은 서로 도울 때 아름답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6일 로마 시내 카살 델 마르모 소년원에서 주님 만찬 미사를 집전하고 이곳에 수용 중인 12명 젊은이의 발을 씻는 전통 세족례를 거행했다. 12명 젊은이들은 14살에서 25살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남성 10명과 여성 2명 그리고 다양한 신앙 전통을 대표하는 크로아티아, 세네갈, 루마니아, 러시아 출신들이다. 교종은 이날 미사에서 주님께서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고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겸손과 봉사의 중요성을 어떻게 우리에게 가르치셨는지를 상기시켜 주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즉위 직후인 2013년 카살 델 마르모 기관을 방문해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전례를 거행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날 교종.. 백서(帛書) 2024.03.23
[주님 수난 성지 주일]2024년 3월 24일 [1] 성주간 전례 Q&A - 가장 거룩한 시기…특별한 예식과 전례로 파스카 신비 드러내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 이형준 기자 mosse6@catimes.kr 성주간(聖週間)은 교회 전례력 중 가장 거룩한 시기다. 신자들은 부활의 기쁨이라는 절정을 위해 회개와 보속으로 사순 시기를 지낸 뒤 성주간을 맞이한다. 성주간은 특별한 예식과 전례가 많아 일반 신자들도 매년 새로울 수 있다. 성주간을 처음 보내는 신자들에게는 더욱 생소할 것이다. 지난해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새 신자 효주 아녜스씨와 본당 전례단장 모세씨의 대화를 통해 성주간의 의미를 짚어본다.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환호와 비난 대비시켜 그리스도 수난과 죽음 선포 Q. 효주 아녜스: 다들 나뭇가지를 들고 무엇을 하는 .. 백서(帛書) 2024.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