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749

빵과 포도주 / 프리드리히 휠덜린

빵과 포도주 / 프리드리히 휠덜린 1 도시 주위는 쉬고 있다. 횃불로 장식한 환한 빛의 골목길은 고요해지고, 마차들은 소리 내며 사라진다. 하루의 기쁨에 포만한 사람들은 휴식하려고 귀가한다. 골몰하는 사람은 집에서 하루의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며 만족하고 있을 테지. 분주하던 시장에는 포도송이와 꽃들이 비워져 있고, 수공 제품들도 어느새 휴면하고 있다. 허나 멀리 정원에서 울려오는 현악의 음,아마도 거기에는 한 쌍의 연인이 연주하거나, 혹은 어느 고독한 남자가 멀리 사는 친구 혹은 청춘 시절을 회상하리라. 향기 퍼지는 정원근처의 분수, 항상 솟아오르며 신선한 소리를 낸다. 어스름한 공중으로 조용히 울려퍼지는 교회 종소리의 여운, 야경꾼은 몇 시인지 생각하며 큰소리로 시각을 알린다. 바람 역시 이제 불어와,..

시(詩)와 詩魂 2020.03.20

빈약한 상상력 속에서/오규원

빈약한 상상력 속에서/ 오규원 1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 마신 뒤에는 취해서 유행가 몇 가닥을 뽑았고,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 그래서 세상이 형편없어 보였고, 또 세상이 형편없었으므로 안심하고 네 다리를 쭉 뻗고 잤다. 어제 나는 다른 때와 다름없는 정오에 출근했고 출근하면서 버스를 타고 옆에 앉은 여자의 얼굴을 한 번 훔쳐 보았고, 이 여자 또한 다른 여자와 마찬가지로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리라는 점을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면 이 여자의 눈에도 별이 뜨리라는 점을 확신했다. 나는 어제 버스가 쉽게 달리는 것을 느꼈고 쉽게 달리는 버스 때문에 이 시대의 우리들이 얼마나 무능 한가를 느꼈고, 쉽게 달리는 버스 속에서 보아도 거리에 선 우리들의 상상력은 빈약해 보였고 그 옆에 선 아이들조차 다시 태어나리라는..

시(詩)와 詩魂 2020.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