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장석주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장석주 시집 {스무 살은 처음입니다}에서
'시(詩)와 詩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0) | 2020.04.01 |
---|---|
천 장도 더 썼겠지 만 장도 더 썼겠지 /정진규 (0) | 2020.04.01 |
不醉不歸 /허수경 (0) | 2020.03.20 |
빵과 포도주 / 프리드리히 휠덜린 (0) | 2020.03.20 |
빵과 장미를!/제임스 오펜하임 (0) | 2020.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