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규, 무제(시로여는 세상58) 이준규, 무제 (시로여는세상 58) TEXT 2016.06.08. 15:51 http://blog.naver.com/naninini/220730848867 장소는 시간과 분리되지 않는다. 나는 여럿이다. 장소는 겹쳐 있다. 나는 그것을 ‘겹곳’이라고 부르고 싶다. 장소에는 참도 거짓도 없다. 내가 참일 때, 그 장소는 참이다. 내가 거짓일 때, 그 장소는 거.. 시(詩)와 詩魂 2016.06.09
채호기, 너의 등 너의 등 -채호기 여름날 오후 세시, 침엽수처럼 촘촘한 햇빛을 손그 늘로 가리며 녹색 숲을 빠져나오면 거기 환하게 터진, 기쁨으로 푸르디푸른 너의 등이 있네. 물결처럼 퍼지 는 핏줄 속으로 수많은 고기들이 헤엄치는 그곳. 파란 바다 맥박 같은 해조음의 리듬, 날숨 들숨 교차하는 고.. 시(詩)와 詩魂 2016.06.09
이준규, 나의 시를 말하다 이준규, 나의 시를 말한다 복도 복도는 복도다, 복도는 걸어갈 수 있고, 복도는 서서 끝을 볼 수 있다, 복도는 너를 사랑한다, 복도는 말이 없고, 겨울밤의 복도는 조금 미쳐 있다, 복도에는 달빛이 흐르지 않고, 가로등빛이 흐르지 않고 복도의 불빛이 흐른다, 그것들은 흐르는 것들이다, .. 시(詩)와 詩魂 2016.06.08
복효근, 마늘 촛불 마늘 촛불 -복효근 나도 누구엔가 삼겹살 함께 싸 먹으라고 얇게 저며 내놓은 마늘쪽 가운데에 초록색 심지 같은 것이 뾰족하니 박혀 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마늘 어미의 태 안에 앉아있는 마늘아기와 같은 것인데 내 비유법이 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알을 잔뜩 품은 굴비를 구워 먹을 .. 시(詩)와 詩魂 2016.01.11
채호기, 다른 곳 다른 곳 - 채호기 나는 내 안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내려갔다. 심장 소리가 거세게 고막을 두드렸다. 그곳은 언젠가 와본 것 같은 계곡이었다. 평범하고 흔해서 기시감을 주는 그곳에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공기에 흩어진 채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숨을 들이마실 때 코를 .. 시(詩)와 詩魂 2015.12.04
유형진, 허니밀크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 「허니밀크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 -유형진 그녀는 사랑이 깨지는 순간을 본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순간을 그녀는 자주 목도[目擊]한다 사랑이 어떻게 깨지는지 깨진 사랑이 어떻게 가루가 되는지 가루가 된 사랑이 어떻게 녹는지 녹은 사랑이 어떻게 질척해지는지 그 질척한 사랑이 그리는 마블링을 목도한다 녹아도 녹지 않고 깨져도 깨지지 않는 어떤 알갱이들이 만들어주는 그 오묘한 무늬를 체크무늬 코끼리 그녀는 본다 사랑의 마블링을 볼 줄 아는 그녀는 그래서 슬프고 아름다운데 정작 그녀를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세계의 비극 하지만 이 세계의 비극은 이것 말고도 몇 개는 더 있는데 더 큰 비극은 그 비극을 이야기하기에 시간은 산장에 사는 검은 고양이의 털 만큼 셀 수 없다는 것이다 ---------------.. 시(詩)와 詩魂 2015.12.02
오규원,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 오규원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 비가 와도 젖는 자는 - 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비가.. 시(詩)와 詩魂 2015.11.17
이준규, 마트료시카 마트료시카 이준규 창을 조금 연다. 언젠가, 너는 마트료시카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무어냐고 했다. 너는 러시아 인형이라고 했다. 너는 중국 인형도 좋아했다. 나는 너에게 중국 인형이라는 노래를 들려주고 중국 인형이라는 소설도 얘기해주었다. 너는 모두 마음에 든다고 .. 시(詩)와 詩魂 2015.10.26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황인찬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황인찬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에서 나는 단 하나의 여름을 발견한다 사라지면서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자로 남아 있는 그 마음 여름이 지나가면서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아득하여라. 정서의 파동은 우리를 아름다움 쪽으로 길게 이끌어 간다. 조명도 울림도 없는 방에 있는 단 하나의 백자. 무척이나 비현.. 시(詩)와 詩魂 2015.10.09
강정, 큰 꽃의 말 큰 꽃의 말 - 강정 길 옆 나무들에 색색의 뱀들이 매달려 혀를 내밀고 있다 기나긴 말의 나선 봉인되었던 천국의 즙액들이 누수된다 나는 길 안쪽에서 그것들과 얘기하기도 하고 길 바깥에서 사투리처럼 머뭇거리기도 한다 길 안이든 바깥이든 결국엔 점이 되거나 그 어떤 뱀의 대가리도 .. 시(詩)와 詩魂 201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