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아침의 노래 / 밀턴 5월 아침의 노래 / 밀턴 마침 낮의 사자, 눈부신 햇볕이 동쪽에서 춤을 추며 나타나 꽃 같은 5월을 이끌면 그녀는 푸른 무릎에서 노란 구륜초와 여린 빛 앵초를 집어 던진다. 환희와 젊음과 따스한 모정을 북돋우는 풍요한 5월이여, 환호하라 숲과 잔풀은 그대의 옷으로 단장했고 언덕과 골짜기는 그대의 은덕을 자랑했나니 그래서 우리는 아침 노래로 그대를 맞아 환대하며 오래 머물러 주길 기원하노라. 시(詩)와 詩魂 2021.05.21
오월의 노래/괴테 오월의 노래/ 괴 테 오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진는 이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크나큰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그리고 한가로운 땅에 넘친다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동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에 핀 꽃이 향긋한 공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가슴치나니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로 그리고 춤으로 나를 몰고 가나니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시(詩)와 詩魂 2021.05.21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성복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 - 遊星 / 파블로 네루다 불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깊은밤 하늘호수에는 물이 없고,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노를 저을수 없는 달은 수심없는 호수를 미끄러져 가고, 불러 세울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 유난히 달 밝은 밤이면 내 딸은 나보고 달보기라 한다. 내 이름이 성복이니까, 별 성 자 별보기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애 보고 메뚜기라 한다. 기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을 걸치면, 영락없이 아파트 12층에 날아든 눈 큰 메뚜기다. 그러면 호호부인은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다. 벼랑의 붉은 꽃 꺾어 달라던 수로.. 시(詩)와 詩魂 2021.04.20
무한화서/이성복 무한화서 - 이성복 1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에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버리면 그 전제前提를 무시하는 거예요. 3 언어는 때 묻고 상스러운 것이지만,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보고 들을 수 없어요. 언어는 어떤 대상이나 목적에 이르는 수단이 아니에요. 언어 자체가 대상이고 목적이에요. 언어를 수단으로 사용하면 언제나 결핍감을 느껴요. 글쓰기는 언어 자신의 탈주이며 모험이에요. 16 우리는 시를 쓰면서도 언어를 불신해요. 불성실한 하인쯤으로 여기는 거지요. 언어는 우리보다 위대해요. 언어를 믿어야 언어의 인도引導를 받을 수 있어요. 18 우리의 세계는 언어로 된 세계에요. ‘언어 너머’ 또한 언어이고, 지금 이 말조차 언어예요. 시인은 알몸으로 언어와 접촉하는 사람이에요. 20 머리는 의식적이고.. 시(詩)와 詩魂 2021.04.20
노을/이성복 「노을」 ---이성복 당신이 마냥 사랑해주시니 기쁘기만 했습니다 언제 내가 이런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당신 일만 생각했습니다 노을빛에 타오르는 나무처럼 그렇게 있었습니다 해가 져도 나의 사랑은 저물지 않고 나로 하여 언덕은 불붙었습니다 바람에 불리는 풀잎 하나도 괴로움이었습니다 나의 괴로움을 밟고 오소서, 밤이 오면 내 사랑은 한갓 잠자는 나무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詩)와 詩魂 2021.04.20
몸 버리려 몸부림하는/이성복 몸 버리려 몸부림하는 이성복 바닷가 언덕 위 이름 모를 꽃들, 제 뺨을 잎새에 부비며 어두워진다 발 밑에 제 이름 묻고, 그림자를 묻고, 몸 버리려 몸부림하는 꽃들, 눈먼 파도에 시달리다 물거품이 되는 꽃들, 마라, 눈을 떠라, 지금 네가 내 얼굴을 보지 않으면 난 시들고 말 거야 아, 이 저녁엔 간지럼처럼 찾아오는 죽음, 베일 아닌 죽음이 따로 있을까 아, 눈시울에 떠는 한 아름의 꽃들, 폭풍 지나가면 곤소금 뒤집어쓰고 허연 뿌리 드러낼 저것들이 오늘 저녁 네게 던지는 빛은 얼마나 강한가 시(詩)와 詩魂 2021.04.20
그렇게 속삭이다가/이성복 그렇게 속삭이다가 이성복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 빗방울에 젖은 작은 벚꽃 잎이 그렇게 속삭이다가, 시멘트 보도 블록에 엉겨 붙고 말았다 시멘트 보도블록에 연한 생채기가 났다 그렇게 작은 벚꽃 잎 때문에 시멘트 보도블록이 아플 줄 알게 되었다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 비 그치고 햇빛 날 때까지 작은 벚꽃 잎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운 상처를 알게 된 보도블록에서 낮은 신음 소리 새어나올 때까지 시(詩)와 詩魂 2021.04.20
밥에 대하여/이성복 밥에 대하여 이성복 1 어느날 밥이 내게 말하길 [참 아저씨나 나나.... 말꼬리를 흐리며 밥이 말하길 [중요한 것은 사과 껍질 찢어버린 편지 욕설과 하품, 그런 것도 아니고 정말 중요한 것은 빙벽을 오르기 전에 밥 먹어 두는 일. 밥아 , 언제 너도 배고픈 적 있었니? 2 밥으로 떡을 만든다 밥으로 술을 만든다 밥으로 과자를 만든다 밥으로 사랑을 만든다 애인은 못 만든다 밥으로 힘을 쓴다 힘 쓰고 나면 피로하다 밥으로 피로를 만들고 비관주의와 아카데미즘을 만든다 밥으로 빈대와 파렴치와 방범대원과 창녀를 만든다 밥으로 천국과 유곽과 꿈과 화장실을 만든다 피로하다 피로하다 심히 피로하다 밥으로 고통을 만든다 밥으로 시를 만든다 밥으로 철새의 날개를 만든다 밥으로 오르가즘에 오른다 밥으로 양심가책에 젖는다 .. 시(詩)와 詩魂 2021.04.20
고운 심장 /신석정 고운 심장 -신석정 별도 하늘도 밤도 치웁다. 얼어 붙은 심장 밑으로 흐르던 한 줄기 가는 어느 난류(暖流)가 멈추고. 지치도록 고요한 하늘에 별도 얼어 붙어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정지하고 푸른 별이 모조리 떨어질지라도 그대로 서러울리 없다는 너는 오 너는 아직 고운 심장을 지녔거니 밤이 이대로 억만 년이야 갈리라구...... 시(詩)와 詩魂 2021.04.15
꽃잎/ 김수영 꽃잎(一) 김수영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革命(혁명)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꽃잎(二) 꽃을 주세요 우리의 苦惱(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時間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 시(詩)와 詩魂 202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