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성복

나뭇잎숨결 2021. 4. 20. 21:09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성복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

- 遊星 / 파블로 네루다

 

 

불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깊은밤 하늘호수에는 물이 없고,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노를 저을수 없는 달은 수심없는 호수를 미끄러져 가고,

불러 세울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

유난히 달 밝은 밤이면 내 딸은 나보고 달보기라 한다.

내 이름이 성복이니까, 별 성 자 별보기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애 보고 메뚜기라 한다.

기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을 걸치면, 영락없이 아파트 12층에 날아든 눈 큰 메뚜기다.

그러면 호호부인은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다.

벼랑의 붉은 꽃 꺾어 달라던 수로부인보다 내 아내 못할 것 없지만, 내게는 고삐 놓아줄 암소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

오를수 없는 벼랑의 붉은 꽃처럼, 절해고도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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