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허수경
문득, 허수경 새싹은 어린 새의 부리처럼 보였다 지난 초봄이었다 그리고 겨울은 왔다 억겁 동안 새들과 여행하면서 씨앗은 새똥을 닮아갔다 새똥도 씨앗을 닮아갔다 붉어져 술이 든 겨울 열매를 쪼면서 아직, 이라는 시간 속에 걸린 잎사귀를 보면서 문득, 새들은 제 깃털을 잎사귀 모양으로 바꾸었다 그 일이 억겁의 어디쯤에서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얼음 눈빛으로 하얗게 뜨겁던 겨울 숲을 걷던 어느 날 그 열매의 이름을 문득, 알고 싶었다 새들이 잎사귀를 아리게 쪼다가 잎사귀 모양을 한 깃털을 떨구고 날아간 문득, 숱이 두터운 눈바람 속, 새이던 당신에게 날개의 탄생을 붉게 알려준 그 나무 열매의 이름이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