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문득,/허수경

나뭇잎숨결 2021. 9. 18. 09:59

문득,

 

 

   허수경

 

 

 

 

새싹은 어린 새의 부리처럼 보였다

지난 초봄이었다

그리고 겨울은 왔다

억겁 동안 새들과 여행하면서

씨앗은 새똥을 닮아갔다

새똥도 씨앗을 닮아갔다

붉어져 술이 든 겨울 열매를 쪼면서

아직, 이라는 시간 속에 걸린 잎사귀를 보면서

문득,

새들은 제 깃털을 잎사귀 모양으로 바꾸었다

그 일이 억겁의 어디쯤에서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얼음 눈빛으로 하얗게 뜨겁던

겨울 숲을 걷던 어느 날

그 열매의 이름을

문득,

알고 싶었다

새들이 잎사귀를 아리게 쪼다가

잎사귀 모양을 한 깃털을 떨구고 날아간 문득,

숱이 두터운 눈바람 속, 새이던 당신에게

날개의 탄생을 붉게 알려준

그 나무 열매의 이름이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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