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749

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 김승희

퇴계 이황선생의 고택을 들어서며 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 김승희 무거움을 버리고 무거움을 도망쳐서 이르는 어느 가벼움이 있다 해도 무거움을 버리고 무거움을 도망쳐서 이르는 가벼움에서 어느 날개를 이룰 것인가 무거움을 다하여 손톱이 빠지도록 무거움을 다한 다음 업이 스러질 때 업이 스러진 그 빈자리에 솟아오르는 가벼움의 날갯짓이 있으면 그러므로 바닥이여 바닥에서 바닥에 닿은 다음에야 올라갈 수 있음이니 바닥에 닿았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바닥이여 바닥에서 고통의, 상처의 장대의 높이뛰기를 할 수 있도록 업을 다하여, 업 때문에, 업을 다하도록 누덕누덕 수천 번 꿰맨 날개만이 더 진실하리니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닥이여 바닥에서 무거움의 사슬들이 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 ----..

시(詩)와 詩魂 2009.01.04

상처처럼 온 당신, 그리움으로 욱신거린다

상처처럼 온 당신… 그리움으로 욱신거린다 열애 -신달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벤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 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많아 상처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밤 그 통증과 엎치락 뒤치락 뒹굴겠다 연인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나겠다. ▲ 일러스트=클로이 모과 장수가 등장했다. 서늘한 저녁 거리에서 그 열매를 만나면 사야..

시(詩)와 詩魂 2009.01.02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 /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by bluehazyjunem on flick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Ce sont les travaux. . . Ce sont les travaux de l'homme qui sont grands : celui qui met le lait dans les vases de bois, celui qui cueille les épis de blé piquants et droits, celui qui garde les vaches près des aulnes frais, celui qui fait saigner les bouleaux des forêts, celui qui tord, ..

시(詩)와 詩魂 2009.01.01

주라, 공감하라, 오, 권력자여, 자제하라 / 김선우

"주라, 공감하라, 오, 권력자여, 자제하라"----------------- 우파니샤드 권력자여, 자제하라! / 김선우 올해는 유독 청계천을 자주 보았다. 청계천은, 고백하자면, 볼 때마다 두렵고 쓸쓸하다. 괴이한 그 인공의 구조물(혹자는 '누워 있는 분수'라고도 하고 '긴 어항'이라고도 하는!)을 안쓰러워하며 걸어본 날도 있고, '생태하천' 운운하는 슬로건이 휘날릴 때의 미사여구들이 떠올라 씁쓸한 날도 있었다.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도심 속 자연'이란 게 고작 저 정도 수준으로 몰락하고 만 것인지. 저것을 '자연'이라 오해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염려되기도 한다. 조경석과 콘크리트로 싸발라진 저 수준이면 청계천은 이중으로 복개된 셈. 도대체 내(川)는 어디 있지? 땅길, 물길, 바람길이 모세혈관처럼..

시(詩)와 詩魂 2008.12.26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장석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장석주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 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 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 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

시(詩)와 詩魂 2008.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