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선생의 고택을 들어서며
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 김승희
무거움을 버리고
무거움을 도망쳐서
이르는 어느 가벼움이 있다 해도
무거움을 버리고
무거움을 도망쳐서 이르는
가벼움에서 어느 날개를 이룰 것인가
무거움을 다하여
손톱이 빠지도록 무거움을 다한 다음
업이 스러질 때
업이 스러진 그 빈자리에
솟아오르는 가벼움의 날갯짓이 있으면
그러므로 바닥이여
바닥에서
바닥에 닿은 다음에야 올라갈 수 있음이니
바닥에 닿았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바닥이여 바닥에서 고통의, 상처의
장대의 높이뛰기를 할 수 있도록
업을 다하여, 업 때문에, 업을 다하도록
누덕누덕 수천 번 꿰맨 날개만이 더 진실하리니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닥이여 바닥에서
무거움의 사슬들이
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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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것은, 연필을 깍는 것과 같다. 가끔 유년시절로 돌아가서 연필을 깎아본다. 사각사각, 심과 나무의 결합을 분해해서 종이에 ㄱ. ㄴ. ㄷ을... 써 본다. 서툴다. 글을 쓰는 것 못지 않게 사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늘 서툴다. 나도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쓰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서툴다. 서툰 것은 자주 부서진다. 부서진 것은 톧증이고 생채기다. 서툰 사람은 생의 통증을 혼자 느끼고 바라보고 보듬고 치유하고 즐겨야 한다. 상처에 내재한 자기갱생 및 자기정화의 힘을 믿어야 한다. 김승희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질주하는 한 영혼의 자멸과 부서짐을 본다. 질주하다 부서진 마음은 스스로 털고 일어나야 한다. 누가 위로해주고 부축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어리광도 엄살도 부서진 자의 몫은 아니다. 언제그랬냐는 듯, 제 스스로 털고 일어나 자기 상처를 대충 치료하고 또 걸어야 한다. 완전히 상처가 날때까지 걷는 것을 유보할 수 없다,. 그러니 걸음걸이는 또 절뚝거린다. 한쪽으로 실깃 기울어져 있다. 자기 상처와 서툼이 유일한 스승이다. 김승희의 시에서는 그런 충돌의 미학이 있다. 한번도 부서지지 않았음이 도피였다고 생을 부추긴다. 생의 트랙에서 당신과 난 늘 장대높이 뛰기 선수다. 바닥에서 몸을 솟구쳐 활처럼 휘어지며 매일 조금씩 빗금이 올라가는 그 경계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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