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 18

7월의 바다/황금찬

7월의 바다 -황금찬   아침 바다엔밤새 물새가 그려 놓고 간발자국이 바다 이슬에 젖어 있다.   나는 그 발자국 소리를 밟으며싸늘한 소라껍질을 주워손바닥 위에 놓아 본다.   소라의 천 년바다의 꿈이호수처럼 고독하다.   돛을 달고, 두세 척만선의 꿈이 떠 있을 바다는뱃머리를 열고 있다.   물을 떠난 배는문득 나비가 되어바다 위를 날고 있다.   푸른 잔디밭을 마구 달려나비를 쫓아간다.어느새 나는 물새가 되어 있었다.

시(詩)와 詩魂 2024.06.30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이해인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이해인   7월은 나에게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하얗게 피었다가질 때는 고요히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아무도 모르게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나는 모든 사람들을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그가 지닌 향기를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어쩌면 마지막으로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우리의 삶 자체가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하얀 치자꽃 한 송이당신께 보내는 오늘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시(詩)와 詩魂 2024.06.30

7월/목필균

7월  -목필균   한 해의 허리가 접힌 채돌아선 반환점에무리 지어 핀 개망초   한 해의 궤도를 순환하는레일에 깔린 절반의 날들시간의 음소까지 조각난 눈물장대비로 내린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폭염 속으로 무성하게피어난 잎새도 기울면중년의 머리카락처럼단풍 들겠지   무성한 잎새로도견딜 수 없는 햇살굵게 접힌 마음 한 자락폭우 속으로 쓸려간다

시(詩)와 詩魂 2024.06.30

7 월 / 허 연

백련지   칠 월 / 허 연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 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시(詩)와 詩魂 2024.06.30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parvenir a soi)과 자신에게 현존하는 것(presence a soi)

사진작가 분이가 태풍이 몰려오기 전, 탱큐!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parvenir a soi)과 자신에게 현존하는 것(presence a soi)- 연중13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를 중심으로   ​ 1. 서정주,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머리에 석남꽃 꽂고 / 네가 죽으면 / 머리에 석남꽃 꽂고 / 나도 죽어서 //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래 깨어나면/ 너 깨는 서슬에 / 나도 깨어나서//한 서른 해만 더 살아볼거나/죽어서도 살아나서/머리에 석남꽃 꽂고 / 서른 해만 더 한번 살아볼꺼나​ 서정주,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는 '수삽석남(首揷石枏)'이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이 신라의 설화는 고려 때 박인량이 지은 설화집 에 수록된 것이다. 신라 최항(崔伉)은 자를 석남(石枏)..

본성과 인격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에서 일엽편주를 타고 바다 건너가기

본성과 인격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에서 일엽편주를 타고 바다 건너가기 연중12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를 중심으로       1. 오규원, 「고요」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창 앞의 장미 한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고요로 지고 있다   오규원 시인의 「고요」는 우리 내면의 고요와 접촉하는 방법을 보여준 사물시에 해당한다. 고요하면 떠오르는 내적평점심이라는 관념을 지우고 오직 잠잠하고 고요한 상태란 무엇인가를 드러낸 시이다. 모든 사물은 고요하다는 명제를 던진 셈이다. 시인..

‘나’라는 절대적 타자여, 사랑하기 위해서만 고개를 숙여라!

‘나’라는 절대적 타자여, 사랑하기 위해서만 고개를 숙여라!Abaisser la tête seulement pour aimer(르네 샤르)- 연중 11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를 중심으로   1. 서정주, 「바다」  귀기우려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우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아- 반딪/반딧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울음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속에 숨기어가지고……너는,/무언의 海深에 홀로 타오르는/한낱 꽃 같은 심장으로 침몰하라.//아- 스스로히 푸르른 정열에 넘처/둥그란 하늘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바다의 깊이 우에/네구멍 뚤린 피리를 불고…… 청년아./애비를 잊어버려/에미를..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2)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2)연중10주일,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를 중심으로        1.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서정주)       이렇게 아름다운 시의 제목은 어떻게 탄생할까?     ①아조 할 수 없이 되면 고향을 생각한다./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옛날의 모습들, 안개와 같이 스러진 것들의 형상을 불러일으킨다. 귓가에 와서 아스라이 속삭이고는, 스쳐가는 소리들, 머언 유명에서처럼 소리는 들려오는 것이나 한 마디도 그 뜻을 알 수는 없다. 다만 느끼는 건 너희들의 숨소리. 소녀여, 어디에서들 안재하는지. 너희들의 호흡의 훈김으로써 다시금 돌아오는 내 청춘을 느낄 따름인 것이다. 소녀여 뭐라고 내게 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