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책임귀속의 조건과 선택의 자유(유호종)

나뭇잎숨결 2017. 3. 29. 14:37

책임귀속의 조건과 선택의 자유


- 유 호 종

(서울대 철학과 )



1. 책임귀속의 조건에 대한 전반적 검토


"인간의 행위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 중의 하나는 행위가 자유로워야 인간에게 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행위의 자유로움'이라는 개념의 의미 자체를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 한 조건이 충족됨'으로 규정한다.

논자는 '자유'의 의미를 '책임의 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위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통해서 사람들은 '인간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 이외에도 또 다른 근본적인 물음들을 제기해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단순히 전개시키는 존재이냐 아니면 창조적 자기형성을 하는 존재이냐'는 물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 논자가 다루고자 하는 자유는 처음에 언급한 '책임의 한 전제조건으로서의 자유'이다. 즉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기 위해 행위자가 갖고 있어야 할 책임의 전제조건으로서의 자유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밝혀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자의 논의는 '자유의지와 결정론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장 속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책임 귀속의 조건으로서의 자유 해명이라는 과제를 더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먼저 '책임'이라는 개념부터 명확히 규정해 보자. '책임'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여러 용법으로 사용된다. '어머니는 아기를 돌볼 책임이 있다'처럼 쓰일 경우 '책임'은 의무를 뜻한다. 이때의 책임은 행위자가 앞으로 해야 할 행위에 대한 것이다. '현장감독이 부실공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의 경우는 현장감독이 부실공사를 한 것에 대해 비난이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비난이나 처벌은 행위자가 과거에 한 행위에 대한 것이다. 이 중 미래의 행위와 관련된 책임에 대한 논의는 도덕적 의무에 대한 논의로 간주할 수 있고, 또 행위의 자유와 관련하여 지금까지의 논의들이 문제시해온 책임이 과거의 행위와 관련된 책임이므로 이 논문에서도 이 후자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책임에 대한 논의에서 또 하나 주의할 것은 '행위자에게 책임이 있다거나 없다고 판단함'과 '행위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결정함'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 두 사건을 동시에 나타내거나 그 중 하나를 나타내되 어느 것을 나타낸다 생각해도 상관이 없을 때는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다.

그런데 행위자에게 그가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귀속시키기 위해서는 왜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 것일까? '행위자 衁이 행위 遁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책임판단은 (1) '행위遁이 그르다'는 판단과 (2) '이 판단이 행위자衁에게도 확장될 수 있다'는 판단과, 그러므로 (3) '행위자衁은 그르다'(도덕적으로 악하다)는 판단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2)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책임귀속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책임귀속의 조건이란 행위가 그르다는 것을 근거로 행위자도 그르다(도덕적으로 악하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인 것이다.

이런 책임귀속의 조건에는 크게 인지적 조건과 자유의 조건이 있다. 인지적 조건이란,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으려면 행위자가 자기 행위와 그것을 둘러싼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사고 날 줄을 모르고 가족에게 그 비행기의 표를 구해 준 사람에게 가족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귀속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의 조건은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으려면 행위자는 행위를 할 때 어떤 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이 요구하는 자유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행위화의 자유와 의지화의 자유이다. 행위화의 자유란 '행위자가 다르게 의지했다면 다르게 행위 했을 것이다'는 의미의 자유이다. 강풍에 휩쓸리어 적진으로 간 행위자에게 적진으로 갔다고 책임을 귀속시킬 수는 없다. 이때 이 행위자는 자기의 직접적 의지대로 행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행위화의 자유를 상실한 것이다. 의지화의 자유는 '행위자가 사고를 통해 다르게 결정했다면 다르게 의지했을 것이다.'는 의미의 자유이다. 도벽환자의 경우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사고를 통해 결정하지만 이러한 결정과 반해서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도둑질을 하려는 직접적 의지를 갖게 되므로 의지화의 자유를 상실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도벽환자에게 우리가 논하고 있는 도덕적인 의미의 책임을 귀속시키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 온 밭을 망친 멧돼지의 경우는 아예 사고를 통한 행위결정의 과정이 없으므로 의지화의 자유를 결한 것이다. 이런 멧돼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책임을 귀속시키지 않는다.

책임 귀속을 위해서 이상의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일치한다. 논란이 되는 것은 과연 선택의 자유 또한 책임귀속을 위한 자유의 조건 속에 포함되는가 하는 점이다. 선택의 자유를 '행위자가 다른 욕구나 동기를 가지고 있다면 다르게 선택할 것이다'로 가정적으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논란이 되는 선택의 자유는 가정적인 형태의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의 대안들 중에서 어느 것이든 그 말의 의미 그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선택의 자유이다. 즉 선택의 자유란 '동일한 조건임에도 행위자가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자유는 때로 '무조건적인 자유' '형이상학적 자유' '반인과적 자유'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 삶에서 사람들이 '선택의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실은 다른 종류의 자유인 경우들이 많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부러져서 불 속의 아이를 구하지 못한 소방관과 같은 경우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 소방관에게는 아이를 구하려고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므로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와 같이 말하고는 하는데, 하지만 엄밀하게 볼 때 그 소방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선택의 자유의 결여가 아니라 행위화의 자유의 결여이다. 아무리 아이를 구하려 해도 다리가 부러져 그러한 의지를 행동화할 수 없기 때문에 즉 행위화의 자유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그 소방관에게는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다.

행위자가 어떤 행위를 하기로 결정할 때, 일반적으로 그 행위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생각 가능한 여러 대안적 행위들을 비교검토하여 그 중 한 행위를 하기로 결정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과정을 선택의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 대안들 중 이 대안을 하기로 결정할 수도 저 대안을 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행위자는 비교검토한 결과해야 할 이유가 가장 강한 행위를 하기로 필연적으로 결정하게 되는 것인지 모르므로 대안적 행위들을 비교 검토해서 결정하는 것이 곧 선택을 포함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논하고자 하는 선택의 자유는 앞에서 규정한 엄밀한 의미의 선택의 자유이다. 이런 의미의 선택의 자유에 대해 대부분의 양립가능론자는 그것이 책임귀속의 조건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엄격한 결정론자나 자유의지론자 같은 양립불가능론자들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책임귀속의 조건으로서의 자유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에서 연구자들 간에 서로 의견이 갈려 일치된 결론이 나지 않은 대표적인 문제가 이 '책임 귀속을 위해 선택의 자유가 필요한가'라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책임의 전제조건으로서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밝혀 보고자 하는 이 논문은 특히 이 엄밀한 의미의 '선택의 자유'가 '책임귀속의 조건으로서의 자유'에 속하는지의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2. 제한적 선택의 자유와 근본적 선택의 자유


이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 엄밀한 의미의 선택 개념에서 우리는 다시 두 종류의 선택개념을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제한적 선택' 개념이고 또 하나는 '근본적 선택' 개념이다. 제한적 선택 개념에 의하면 선택이란 행위자가 어떤 행위를 할 것인가 결정하고자 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적 행위들 중 어떤 둘 이상의 대안적 행위들이 그 행위를 해야 할 똑같은 정도로 강한 이유를 가지고 있을 때 행해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 행위자는 그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별로 크지 않은 대안들 중에서가 아니라, 해야 할 이유가 똑같은 정도로 강한 대안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이유는 가지고 있지만, 그 해야 할 이유가 똑같이 강한 대안들 중에서 어떤 특정한 하나를 해야 할 이유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행위자가 제한적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은, 해야 할 이유가 동등하게 강한 대안들 중 어느 하나를 행위자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근본적 선택 개념에 따르면, 선택이란 그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어느 정도 강한가에 상관없이 생각 가능한 대안적 행위들 중 어느 것이든 그 중 하나를 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생각할 수 있는 대안적 행위들 전부가 선택의 범위안에 들며 따라서 행위자가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은 해야 할 이유가 아주 작거나 없는 행위마저 하기로 결정할 자유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경우 행위자의 선택은 더 이상 어떠한 이유나 근거를 갖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엄밀한 선택의 개념도 다시 제한적 선택과 근본적 선택의 두 종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으므로, '인간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과연 선택의 자유가 필요한가'라는 우리의 본래 물음은 '책임귀속을 위해 선택의 자유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제한적 선택의 자유인가 아니면 근본적 선택의 자유인가?'라는 물음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먼저 이 후자의 물음부터 검토해 보자. P.V. Inwagen에 따르면 책임귀속의 조건이 되는 것은 제한적 선택의 자유이다. 이런 제한적 선택의 자유가 책임귀속의 조건이 되는 이유는, 행위자는 '자기에게 달려있는(up to,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행위자가 선택할 여지없이 선행원인에 의해 결정된 행위는 비록 행위자가 한 행위일 망정 행위자에게 달려 있는 행위라 볼 수 없다. 행위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행위는 행위자가 선택한 행위뿐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가능한 선택은 제한적 선택뿐이다. 이런 생각에서 Inwagen 등 이 입장에 선 사람들은 제한적 선택의 자유를 책임귀속의 조건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선 이 입장은 우리의 도덕적 직관상 용납하기 매우 힘든 경우를 허용하게 된다. 제한적 선택이 가능한 세계에 매우 악한 성품을 가진 놀부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에게는 악한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선한 행위를 해야 할 이유보다 언제나 강하다. 그래서 선행과 악행 중에서 언제나 악행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이 입장에 따를 때, 놀부는 제한적 선택의 여지없이 악행을 행하는 것이므로 그 악행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반면, 확고하게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아 선행과 악행 사이에서 갈등하다 악행을 선택한 사람은 제한적 선택의 자유를 가진 상태에서 악행을 했으므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입장의 이런 귀결은 우리의 직관상 받아들이기 매우 힘든 것이다.

또다른 예를 들어보자. 도둑질에 대해서 아무런 죄의식도 안 느끼고 도둑질이야말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도둑이 도둑질을 하기 위해 빈집에 들어갔는데, 돈 될 만한 것이 비디오밖에 없어서 그것을 훔쳐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그의 행위는 명백한 이유에 근거해서, 제한적 선택의 여지없이 행해진 것이므로 이 입장에 따르면 그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가정을 좀 달리하여 그 빈집에 비슷하게 가격이 나갈 것 같은 비디오와 오디오가 있고 그 도둑은 그 중 하나밖에 가지고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이 경우 그 도둑은 제한적 선택의 상황에 막닥뜨리게 되어, 비디오와 오디오 중 어느 것을 훔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된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이 경우에는 도둑이 제한적 선택을 했으므로 그 도둑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 입장은 우리의 직관상, 도덕적으로 본질적 차이가 없어 보이는 도둑의 두 행위에 대해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게 하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제한적 선택의 자유를 책임귀속의 조건으로 보는 것은 이렇게 우리의 직관에 비추어보았을 때 타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난점을 가지고 있다. 이 입장의 지지자들은 행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행위만이 행위자에게 달려있는 행위여서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제한적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경우에 행위자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 책임은 매우 사소한 것이 될 것이다.

이 점은 제한적 선택의 상황이라는 것이 한 인간에게 어떠한 상황일 수 있는가를 따져 볼 때 명확해진다. 그러한 상황은 행위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 특히 기존의 가치관이 행위자에게 행위 결정에의 대략적인 지침만 줄 수 있을 뿐 구체적인 지침은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기존의 가치관에서 미결정 되는 부분에 행위자의 선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제한적 선택의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란, 기존의 가치관을 그대로 둔 채 이루어지거나 기존의 가치관을 더 구체화하는 정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함축한다.

따라서 제한적 선택의 경우에서 행위자에 달려 있는 부분은 가치관의 이 미결정된 부분이고 행위자가 책임질 것 역시 이 부분에 국한되어야 한다. 위에서 든 예를 다시 생각해 보자. 도둑이 비디오와 오디오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비디오를 훔치기로 선택했을 때, 제한적 선택의 자유를 책임귀속의 조건으로 인정한다면 우리가 그 도둑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 점은 그 도둑이 도둑질을 했다는 점이 아니다. 도둑질을 하는 것 자체는 그 도둑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책임질 부분은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점 즉, 오디오가 아닌 비디오를 훔친 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책임귀속이란 거의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이 되어 버릴 것인데 이러한 귀결은 제한적 선택의 자유를 책임귀속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입장의 사람들이 귀속시키고자 하는 책임은 사소한 책임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함축을 갖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이 입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입장에 선 사람들이 제한적 선택의 자유를 책임귀속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하는 까닭은 선택된 행위만이 행위자에게 달려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한적 선택의 '선택'이라는 요소가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므로 그들의 입장에서도 행위자에게 사소하지 않고 의미 있는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 조건은 근본적 선택의 자유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들이 책임귀속의 조건으로 필요한 선택을 근본적 선택이 아닌 제한적 선택으로 본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세계에서 가능한 선택은 제한적 선택뿐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대안적 행위들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 그 행위를 해야 할 강한 이유를 가질 때는, 정신적 결함을 가진 행위자를 제외한 모든 행위자가 바로 그 행위를 하기로 결정할 것이므로, 행위자는 근본적 선택의 자유는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인간은 제한적 선택의 자유만을 갖는다는 그들의 주장이 참이라 할지라도, '그러므로 제한적 선택의 자유가 책임귀속의 조건이다'는 그들의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대신, '책임귀속의 한 중요한 조건은 근본적 선택의 자유인데 인간은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아닌 제한적 선택의 자유만을 가지므로 인간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정도는 매우 한정 수밖에 없다. 제한적 선택의 자유는 사소한 책임의 귀속조건이 될 뿐이다'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그들이 자기입장에 충실하는 길일 것이다.

이 논문에서 문제삼는 책임은 앞에서 규정했듯이 행위자를 비난하거나 처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철학자들이 이러한 논쟁에서 염두에 두는 '책임'도 이런 의미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선택이라는 요소가 책임의 귀속조건이라면 이때의 선택은 제한적 선택일 수가 없다. 따라서 '책임귀속을 위해서 선택의 자유가 필요한가'라는 우리의 물음에서의 '선택의 자유'도 근본적 선택의 자유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려면 선택의 자유가 필요한가'라는 본래의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이 단계에서 이 물음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우선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인간이 속한 이 세계가 과연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그러한 자유를 용납하는 세계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어떤 특정한 행위가 그런 자유 하에서 행해진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달리 판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 세계가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세계라면 '길동이 그렇게 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자원봉사 활동에 뛰어들었을 때' 우리는 길동이 그러한 행위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행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 반면 이 세계가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라면, 우리는 길동이 그 행위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행한 것이라고, 즉 길동은 그 행위를 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이유에 따라 행위하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길동의 행위를 이 중 어떤 것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선택의 자유가 책임의 필요조건인가 아닌가 하는 것도 달리 판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자유가 책임의 조건인가 아닌가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를 밝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가 행위자에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비록 어떤 종류의 선택도 용납하지 않는 결정론적 세계상이 근대 이후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상이 결정적으로 반박된 것은 아니다. 이 세계를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으로 보는 세계상은 충분히 자체내 정합성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런 세계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 세계가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가 아닌가는 확증되지도 모두에게 동의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도는 두 세계상을 모두 따져서 거기서 어떤 의미 있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3. 인간에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는 세계일 때


인간에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가능하도록 세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하다면 인간은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할 때라도 그 행위를 하지 않거나, 해야 할 이유가 덜 강한 다른 행위를 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즉 "행위자의 행위나 결정이 어떠한 심적 사건들, 심지어 행위자의 성격과도 독립해서 또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무차별하게' 행해질 수 있는"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해야 할 이유가 명백한 행위를 한다. 또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행위를 할 수 있음에도 최선이 아닌 행위를 선택하는 것은 미친 짓으로 간주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선택의 자유가 그 자체로 불합리하거나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결코 쓰지 않을 힘을 가질 수 있으며, 衁을 하는 것이 미친 짓이라는 사실은 衁을 할 능력을 갖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함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명백한 이유가 있는 행위와 그렇기 못한 행위가 있을 때 결국 전자를 하기로 결정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전자 대신 후자를 하기로 결정하려고 한다면 할 수도 있다고 느낀다. 가령 식사를 하는 도중 갑자기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오는 행동은 너무 엉뚱하지만 그렇게 합당한 이유 없는 행위도 하려고만 한다면 할 수도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기의 능력에 대해서 어떠한 불합리성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선택의 자유에 대한 느낌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서는, 인간은 그런 느낌만 가질 뿐 실제로는 결코 식사하다 별 이유 없이 세수를 하러 가기로 결정할 수는 없으며 만약 그렇게 결정한다면 행위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어떤 이유가 있거나 행위자에게 심리학적인 또는 신경생리학적인 어떤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간주할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에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느낌이 사실과 부합한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이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이 결코 그 자체로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대부분의 근본적 선택을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이 논문에서도 그랬지만 흔히 근본적 선택이란 해야 할 이유가 명백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을 하기로 결정할 것인가 하지 않기로 결정할 것인가를 행위자가 선택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리고 '이유가 명백한 행위를 하지 않기로 선택함'이라는 것이 이러한 선택의 자유를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근본적 선택을 이렇게 보지 않고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이유 그 자체를 행위자가 선택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이유란 자연적 사실처럼 객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행위자가 갖고 있는 믿음, 욕구, 가치관 등에 의해 주관적으로 규정된다. 이 중 어떤 믿음이나 욕구를 가질 것인가를 행위자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떤 가치관을 취할 것인가는 행위자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본적 선택을 행위에의 이유 그 자체의 선택으로 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이유를 규정하는 것 중 하나인 가치관을 행위자가 선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말 자기의 가치관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지 없는 지와는 별 문제로, 인간이 자기의 가치관을 선택한다는 생각 그 자체에는 어떠한 불합리한 점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가치관의 선택은 행위 이유의 선택이고, 근본적 선택의 자유란 행위이유를 선택해 그 이유에 따라 행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인간은 근본적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는 생각 그 자체에도 불합리한 점이 없는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인간에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이러한 선택의 자유는 '변화와 새로움'을 선택할 때 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고수할 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본적 선택의 자유는 명백한 이유에 반해서 행위 하기로 결정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행위자가 명백한 이유가 있는 행위를 하기로 결정할 때도, 그것은 '명백한 이유가 그러한 결정을 필연화시키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없게 된다. 명백한 이유에 근거하지 않은 행위가 선택의 대상이 된다면, 명백한 이유에 근거한 행위도 선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한 어떤 행위를 하기로 결정할 때 행위자는 그 행위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하는 것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안함'에 대한 생각 없이 '함'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근본적 선택을 가치관과 이유의 선택으로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행위자가 기존의 가치관과는 다른 가치관을 취함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행위에의 이유를 갖고 그 이유에 따라 행위 하는 것이 근본적 선택이라면, 행위자가 기존의 가치관을 그대로 유지시킴으로써 이전에 행위 하는 방식대로 행위 하는 것도 선택인 것이다.

그런데 행위자가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이러한 선택의 요소는 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과정 중 어디에 놓일까?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자극-믿음, 욕구-사고에 의한 결정 ― 직접적 의지 ― 행위로 간단히 도식화할 수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선택의 자유란 알려진 행위에의 이유에 따라 행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여 결정하는 능력으로, 또는 행위에의 이유를 선택하여 그 이유가 지지하는 행위를 하기로 결정하는 능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과정 중 선택의 자유가 놓이는 단계는 믿음, 욕구-사고에 의한 결정 단계 즉 믿음이나 욕구가 주어졌을 때 행위자가 사고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을 해 나가는 단계일 것이다.

반면 직접적 의지에 의해 행위가 규정되는 직접적 의지-행위의 행위화의 단계에서는 선택의 요소가 들어올 수 없다. 직접적 의지가 단일하면 그에 의한 행위도 단일해야 행위자는 행위화의 자유를 가질 것이다. 사고에 의한 결정이 직접적 의지를 규정하는 사고에 의한 결정-직접적 의지의 의지화의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의지화의 자유는 이 단계에서 선택의 요소가 배제되어야 확보된다. 그렇다고 자극-믿음, 욕구 단계에서, 자극에 의해 믿음, 욕구가 생기거나 촉발될 때 주어진 자극에 대해 어떤 믿음, 욕구를 가질 것인가를 행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특정한 상황 자체 내에서만 볼 때, 자극이 '주어진 것'이듯 이 자극에 의해 행위자가 갖게 되는 믿음, 욕구 등도 '주어진 것'의 성격을 띤다. 그러므로 선택의 요소는 믿음이나 욕구가 주어졌을 때 행위자가 사고를 통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해 나가는 단계에만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는 사고를 통한 행위 결정의 과정에만 놓일 수 있으므로 인간에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이는 인간의 사고활동은 바로 근본적 선택을 행하는 활동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위를 결정해 나가는 우리의 사고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행할 수 있는 여러 가능한 대안들을 떠올리고, 그 각각에 대한 이유들을 밝히거나 결정하여 서로 비교하여서 어떤 행위를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이렇게 사고과정에서 여러 대안들을 떠올리지만 그 중 행하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어느 하나이다. 반면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우리의 사고가 대안들로서 떠올리는 여러 행위들은 그 모두가 실제로 행위자가 하기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다. 즉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을 때 이렇게 대안들을 떠올리고 그 중 어떤 것을 하기로 결정해 나가는 사고의 과정은 곧 선택의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을 때, 이렇게 행위결정을 위한 사고의 과정이 곧 선택의 과정이라면, 이는 선택하지 않으면서 행위결정을 위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인간에게 근본적인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일 경우 이러한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책임귀속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선택의 자유가 가능한 세계에서 선택의 자유가 없이 행위를 결정한다는 것은 사고의 과정 없이 행위를 결정하는 것인데, 사고과정을 통한 행위결정은 책임귀속의 중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책임귀속을 위해서는 행위결정이 꼭 사고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 사고과정이 없다면 어떤 행위를 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구들간의 강약에 따라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러한 의지에 의한 행위는 의지화의 자유를 결한 것이므로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 우리가 아기나 동물들의 행동에 책임을 귀속시키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에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가능한 세계에서, 그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없이 행해진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귀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와같은 결론은, 이러한 세계에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다면 그 책임귀속은 선택의 자유를 요구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이러한 세계에서 실제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다는 것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에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면 선택의 자유가 없이는 책임의 귀속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선택의 자유가 책임귀속의 필수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는 이러한 세계에서 선택의 자유가 책임귀속의 필수조건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계에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이 가능한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은 그 행위자의 행위가 그르다는 판단을,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도덕적 분노 등의 감정을 행위자에게까지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확장을 할 수 있으려면, 그 행위가 행위자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책임의 귀속 조건으로 행위화의 자유, 의지화의 자유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행위자에게 책임이 귀속될 수 있으려면 행위자의 행위가 그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행위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요구된다. 그런데 이런 세계일 경우 행위자의 행위는 행위자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행위를 근거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려면 '다른 행위가 아닌 바로 그 행위를 선택함'이 행위자의 본모습을 드러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 행위를 선택함'이 행위자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으려면 그러한 선택의 근거가 행위자에게 있어야 한다. 즉 '행위자는 어떠 어떠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행위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때의 '선택'이란 이름뿐일 뿐 실제로는 선택이 아니게 된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선택이란 기존의 어떠한 것에도 근거함이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위자가 어떤 행위를 선택했을 때 다른 행위가 아닌 바로 그 행위를 선택했다는 것은 행위자의 본모습을 드러낸다고 보기 힘들다. 행위자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을 선택했는가와는 상관없이 행위자가 선택을 했다는 그 사실 자체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근본적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규정할 때 '근본적 선택을 하는 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규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해보자. 각각의 개인들은 각각 다른 선택을 하는데 이 다른 선택들은 각 개인들의 각각 다른 특성들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들을 인정한다 할 지라도, 각 개인에게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게 하는 그런 특정한 선택들을 할 어떠한 근거도 행위자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행위자에게 있어서 그러한 특성들은 피상적이거나 우연적일 뿐이며, 행위자가 언제라도 종전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것이다. 따라서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는 세계라면 사르트르가 말한 대로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서며 한 인간이 근본적 선택을 한다는 점은 그 사람의 어떤 특성들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선택을 하는 자아가 어떤 질적인 본질적 특성들을 갖기 힘들기 때문에 '이 자아는 누구도 "창조적 자아" 정도 외에는 더 이상의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무엇인지 간취하기 어려운 과거로부터 미래로 나아가는 길에 있는 공백'정도로 표상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근본적 선택을 하는 자'일 때, 행위자가 한 행위에 대해 그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키기 어렵게 된다. 우리가 선택을 하는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킨다고 했을 때, 이때 책임귀속의 근거는 '그가 선택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한 인간이 근본적 선택을 한다는 점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도덕적인 의미의 분노나 감탄을 느끼지 않으며, 또 그러한 점은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적 선택을 한다는 그 자체가 책임귀속의 근거가 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근본적으로 선택함'이라는 사실만을 놓고 볼 때 각 개인들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근본적 선택을 한다는 그 자체가 책임귀속의 조건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언제나 동일한 정도로 책임이 귀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각 개인이 특정한 행위를 선택했다는 점에 근거해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한 행위'를 선택했다는 점은 위에서 본대로 행위자에게 피상적이고 우연적이며 일시적인 특성을 부여할 뿐으로 행위자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일 경우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으므로 이러한 세계일 경우 선택의 자유를 책임귀속의 조건으로 볼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4.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불가능한 세계일 경우


'책임귀속을 위해서 선택의 자유가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인간에게는 근본적 선택이든 제한적 선택이든 어떠한 종류의 선택도 불가능하도록 세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기로 하자. 결정론적 세계관이 세계를 이렇게 바라보는 대표적인 입장일 것인데 이 세계관은 근대 이후 지금까지도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세계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세계라 했을 때 선택의 자유와 책임귀속간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해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과연 이러한 세계에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를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행위자가 선택의 자유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었던 경우들이, 세계를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을 때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행위자가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면 이런 선택의 자유는 행위자가 여러 대안적인 행위들 중에서 어느 것을 하기로 결정해 가는 사고과정에 놓인다는 것을 앞절에서 밝힌 바 있다.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세계일 경우 이제 이러한 사고의 과정은, 말할 것도 없이 더 이상 선택의 과정이 될 수 없다. 먼저 어떤 한 행위를 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는 경우, 행위자가 이 행위를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행위자의 근본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그 명백한 이유에 대한 인식이 가져오는 필연적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명백한 이유가 있음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사람은 이러한 세계에서는 선택의 자유를 발휘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신상의 결함을 가진 것으로 판정될 것이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이유가 동등하게 강한 둘 이상의 대안이 존재하여 제한적 선택론자들이 '제한적 선택'의 상황으로 보았던 경우, 행위자가 그것들 중 어떤 것을 하기로 결정할 것인가는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그 이유의 강도가 대등하게 보여졌던 그 대안들 중 어느 것에 대해서 행위자가 더 강한 무의식적인 욕구나 지향을 가지는가, 또는 행위자가 어떤 신경생리적 기제와 요인을 가지고 있는가에 의해 필연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세계일 경우 이렇게 해석되는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 행위자의 행위결정은 행위의 이유를 규정하는 것들인 그의 성격이나 기질, 가치관 등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결정되는데, 이러한 것들 역시 행위자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유전과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는 점에 주의한다. 그리고 이렇게 성격이나 기질, 가치관 등이 '행위자의 제어 범위를 벗어난, 행위자에게 달려있지 않는 요인들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러한 것들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행위 역시 행위자에게 달려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계일 경우 '우리 삶의 과정들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결정과 행동들의 충분조건이 되는 환경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이렇게 행위자에게 달려있지 않은 행위, 즉 행위자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행위자에게 확장시킬 수 없으므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는 주장 또한 옳을 것이다. 행위자에게 달려있지 않은 행위는 비록 행위자가 그 행위를 했더라도, 그 행위자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꼭두각시가 아주 멋진 춤을 추었더라도, 그런 춤은 꼭두각시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없고, 따라서 그 춤을 추었다는 것을 근거로 '꼭두각시는 흥과 춤기교를 가지고 있는 자'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경우 우리는 꼭두각시의 춤에서 느꼈던 감탄을 꼭두각시에 대한 감탄으로 확장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제하고 있는 이와 같은 인간관에는 납득하기 힘든 바가 있다. 그들은 흔히는 '어떤 사람을 바로 그 사람이게 규정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인 욕구, 가치관, 기질 등이 환경, 유전과 같은 외적인 것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것들은 실제로는 한 사람을 이루는 그 사람의 고유한 것이 될 수 없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인간이 선택의 자유를 가질 수 없는 세계일 때 한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것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세계일 경우 외적으로 결정되지 않는 고유한 자기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해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수는 이러한 해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상식적인 생각들이 그러하듯이 그런 자기가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태도는 이론적 엄밀성을 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주장이 갖는 함축을 분명히 한다면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계라면 진정한 자아란 실제로는 없다. 그런데 세계는 그러한 세계일 수밖에 없으므로 세계에는 진정한 자아도 책임을 귀속시킬 대상이 없다. 둘째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계라면 진정한 자아란 실제로는 없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렇게 진정한 자기를 해명해 주지 못한다는 것은 그러한 세계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를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로 간주해야 한다. 셋째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계라 할지라도 진정한 자아는 있을 수 있다. 그 자아는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고유한 형이상학적 실체로서의 자아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가능한 답변들은 모두 다 형이상학적이고 일반적으로 동의되기 힘든 자아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진정한 자아란 없다는 주장은 자아를 관념의 다발로 보았던 회의적인 흄조차 실천적 영역에서는 견지될 수 없다고 인정할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둘째, 근본적 선택을 하는 진정한 자아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인격이나 행동의 일관성을 설명하기 힘들 뿐 아니라 그들에게 책임도 귀속시킬 수 없게 한다. 셋째, 선택의 자유가 없으면서도 외적으로 결정되지도 않는 자아가 있다는 주장은 인간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게 하지만 그러한 자아가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하는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매우 낯선 것이라는 점에 문제점이 있다.

물론 이 가능한 답변들이 제시하는 인간상은 철학사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어 온 것들로 그것들을 결정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세 입장들 중 어느 하나를 반드시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입장들과는 달리,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계에서 외적인 것에 의해 결정된 성품 가치관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진정한 자아를 형성한다고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부합하면서 책임도 귀속시킬 수 있는 자아를 인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의 모색을 위해서 그들의 논변을 다시 검토해 보자.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계일 경우 행위자의 성격, 기질, 가치관 등은 진정하게 그 행위자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그것들이 유전 환경 등의 외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는 점을 든다. 그러나 이러한 논변은 결과는 그 원인으로 모두 환원된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발생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원인과 결과간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분명해 진다. 어떤 원인들이 어떤 결과를 발생시켰을 때 결과인 것은 그 자체로 한 독립된 존재자(또는 사건)이지 단순히 원인들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화가가 그림을 그렸을 때, 화가와 그림의 재료들이 그 그림이 있게 만든 원인들이지만 그렇다고 그 그림이 하나의 독립된 존재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 그림은 화가나 그림의 재료들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그림 자체에 대해서 감탄이나 좋아함 등의 태도를 취하거나 '뛰어나다' '형편없다'는 등의 태도를 취하고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나 평가는 그 그림의 원인이 되는 화가 등에 대한 태도와 평가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록 한 행위자의 성격이나 가치관 등이 유전, 환경 등의 외적인 원인에 의해 결정된 것일지라도 그것들은 그 원인들과는 구별되는 독립된 것으로 한 독립된 행위자를 이루는 고유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도 우리는 결코 어떤 사람을 그의 성격이나 가치관 등과 분리해 생각하거나 고유한 그 사람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러한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고유한 존재로서의 그인 것이다.

따라서 행위자가 자기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근거해 한 행동은 바로 그 행위자에 달려있는, 그에 의한 행동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행위자가 자신의 성격이나 가치관 등에 입각해 어떤 행위를 하기로 결정하고 그 행위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그런 결정과 행동을 한다는 느낌을 갖지는 않는다는 것에서도 확인이 된다. 행위자가 '어쩔 수 없이' 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행위자는 자신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입각해 행위할 때 그 행위를 자기 자신이 한다고 느끼지 어쩔 수 없이 한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이렇게 성격이나 가치관에 입각해 어떤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어떠한 이질감이나 강제되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것들이 바로 자기자신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계일 경우, 행위자의 성품이나 가치관 등이 외적인 것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 할 지라도 그것들은 행위자와 분리시킬 수 없는 행위자 고유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위자가 자신의 성품 가치관에 의거해 하게 된 행위에 대해서 그러한 행위는 행위자에 의한 행위이므로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계에서도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으므로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세계일 경우 선택의 자유는 책임의 귀속조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앞절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는 세계일 경우 행위자에 대한 책임 귀속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상에서 우리는 실제세계가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이든 허용하지 않는 세계이든 선택의 자유는 책임귀속의 조건으로서의 자유라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책임귀속의 조건으로서의 자유에는 행위화의 자유와 의지화의 자유만이 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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