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749

말을 때리는 사람들/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강성은 말을 탄 적 없는데 말을 본 적도 없는데 ​ 언제부턴가 나는 말을 때리고 있다 이 매질을 멈출 수가 없다 ​ 누가 명령했을까 더 세게 때려야 더 빨리 더 더 먼 곳으로 간다고 ​ 말의 얼굴을 눈을 슬픔을 보지 않으려고 말의 뒤에서 나는 말을 때리는 사람이 되었지 ​ 말을 때리는 소녀는 자라서 말을 때리는 노인이 되고 말을 때리는 이웃이 되고 말을 때리는 밤이 되고 말을 때리라는 목소리가 되고 보이지 않는 말을 만들어내는 믿음이 되고 ​ 말이 얼마나 큰지 말이 얼마나 오래 달리는지 말을 때리는 소녀는 아직 모른다

시(詩)와 詩魂 2022.04.04

배경 뒤에/ 잘랄루딘 루미

배경 뒤에 -잘랄루딘 루미 이 정원을 가꾸는 것은 당신의 얼굴입니까? 이 정원을 취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향기입니까? 이 개울을 포두주의 강으로 만든 것은 당신의 영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정원에서, 배경 위에 숨어 계신 당신을 찾다가, 찾아다니다가 숨져갔습니다 그러나, 연인으로 당신께 온 사람들은 그 고통을 모릅니다 여기서 당신은 아주 찾기 쉽습니다 포도주의 강물에, 그 위로 부는 산들바람에, 당신은 계십니다

시(詩)와 詩魂 2022.03.05

솔로몬이 시바에게/잘랄루딘 루미

솔로몬이 시바에게 -잘랄루딘 루미 솔로몬이 시바가 보낸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를 내 사신으로 여왕에게 돌려 보낸다 가서 여왕의 금을 내가 거절함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값지게 여길 것인지 배울 수 있을 터이니 그것을 받는 것보다 낫다고 아뢰어라 여왕은 옥좌를 사랑하겠지만 그것은 진짜 어전으로 인도하는 문을 들어서지 못하게 가로막을 따름이다 가서 여왕께 전하여라 마음으로 올리는 깊은 절이 수많은 제국들보다 달콤한 바로 그것이 왕국이라고 홀연 모든 것을 두고 떠난 아브라함처럼 어지럼증을 일으키며 방랑의 길에 나서라고 좁은 우물에서 사람들이 그들의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한낱 돌멩이와 쇠붙이일지라도 소꿉놀이 하는 아이들에게는 사금파리가 그러했듯이 무슨 대단한 보물처럼 여겨 지리라 가서 여왕에게 말하여라 바로 그..

시(詩)와 詩魂 2022.03.05

여인숙/잘랄루딘 루미

여인숙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찿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거나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당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들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시(詩)와 詩魂 2022.03.05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루미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잘랄루딘 루미 아직 내리지 않은 큰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아직 세우지 않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아직 마시지 않은 당신 술에 벌써 취하였습니다. 아직 터지지 않은 전쟁에 상처 입고 죽었습니다. 상상과 현실 사이의 다른 점을 나는 더 이상 모릅니다. 그림자처럼,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시(詩)와 詩魂 2022.03.05

백년百年/문태준

백년百年 - 문 태 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 해 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시(詩)와 詩魂 2022.03.05

혼자의 넓이/이문재

혼자의 넓이 이문재 ​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시(詩)와 詩魂 202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