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749

봄 / 유안진

봄 / 유안진 저 쉬임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흘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 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 났음이랴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운 보랏빛, 돌각담을 기어오르는 봄 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 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랭이야, 어쩔 셈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런 움집에서 따순 손길이 기다려지니 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첫눈 맞아..

시(詩)와 詩魂 2022.02.22

봄 / 김광섭

봄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 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인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랑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

시(詩)와 詩魂 2022.02.22

봄 / 김기택

봄 / 김기택 바람 속에 아직도 차가운 발톱이 남아있는 3월 양지쪽에 누워있던 고양이가 네 발을 모두 땅에 대고 햇볕에 살짝 녹은 몸을 쭉 늘여 기지개를 한다 힘껏 앞으로 뻗은 앞다리 앞다리를 팽팽하게 잡아 당기는 뒷다리 그 사이에서 활처럼 땅을 향해 가늘게 휘어지는 허리 고양이 부드러운 등을 핥으며 순해지는 바람 새순 돋는 가지를 활짝 벌리고 바람에 가파르게 휘어지는 우두둑 우두둑 늘어나는 나무들

시(詩)와 詩魂 2022.02.22

봄/곽재구

봄/곽재구 다시 그리움이 일어 봄바람이 새 꽃가지를 흔들 것이다 흙바람이 일어 가슴의 큰 슬픔도 꽃잎처럼 바람에 묻힐 것이다 진달래 꽃편지 무더기 써갈긴 산언덕 너머 잊혀진 누군가의 돌무덤가에도 이슬 맺힌 들메꽃 한 송이 피어날 것이다 웃통을 드러낸 아낙들이 강물에 머리를 감고 5월이면 머리에 꽂을 한 송이의 창포꽃을 생각할 것이다 강물 새에 섧게 드러난 징검다리를 밟고 언젠가 돌아온다던 임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보리꽃이 만발하고 마실 가는 가시내들의 젖가슴이 부풀어 이 땅위에 그리움의 단내가 물결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곁을 떠나가주렴 절망이여 징검다리 선들선들 밟고 오는 봄바람 속에 오늘은 잊혀진 봄 슬픔 되살아난다 바지게 가득 떨어진 꽃잎 지고 쉬엄쉬엄 돌무덤을 넘는 봄

시(詩)와 詩魂 2022.02.22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 나는 하나의 공간(空間)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宇宙)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孤獨)의 자리임을,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永源)한 세월(歲月)과 무한(無限)한 공간(空間)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生存)의 의미를 향..

시(詩)와 詩魂 2022.02.22

너무/ 이준규

너무/ 이준규 ……너무 적은 나의 새들 너무 적은 나의 커피 너무 적은 나의 노트 너무 적은 나의 운명 너무 적은 나의 겨울 너무 적은 나의 새들 너무 적은 나의 한숨 너무 적은 너의 웃음 너무 적은 나의 기찻길 너무 적은 나의 묘비명 너무 적은 너의 무릎 너무 적은 너의 부츠 너무 적은 너의 단두대 너무 적은 너의 말 너무 적은 너의 매 너무 적은 나의 숲 너무 적은 나의 손가락 너무 적은 나의 운명 너무 적은 나의 술 너무 적은 나의 시 너무 적은 나의 호흡 너무 적은 나의 산책 너무 적은 나의 축구 너무 적은 나의 커피 너무 적은 나의 운명 너무 적은 나의 나 너무 적은 나의 한옥 너무 적은 나의 언덕 너무 적은 나의 초당 너무 적은 나의 적지 너무 적은 나의 연못 너무 적은 나의 나무 너무 적은 ..

시(詩)와 詩魂 2022.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