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나뭇잎숨결 2012. 8. 17. 09:02

 

 

스피노자, 에티카, 강영계 옮김, 서광사

 

 

자기 자신과 정서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더 많이 인식할수록 더욱더 신을 사랑한다.(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p.345)

 

스피노자는 그의 저서인 에티카에서 긍정과 기쁨의 힘을 강조한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만들어 낸 폭력과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긍정과 기쁨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기쁨이란 인간이 덜 완벽한 상태에서 더 완벽한 상태로 발전되어 가는 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며, 슬픔은 이와 반대되는 정서이다. 이전보다 조금 나아진 모습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정서가 기쁨이기에 스피노자에게 기쁨은 그 자체가 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희생을 동반하고 고통을 윤리적으로 우수한 감정으로 생각하는 도덕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낯선 것이다. 도덕주의가 개인의 희생과 겸양의 미덕을 강조했다면 스피노자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자신의 활동 능력에 대하여 생각하는 데서 생겨나는 기쁨인 자기만족이 진정한 최고선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선과 악은 사회규범적 가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단순한 도덕적 순종을 넘어서기 보다는 적극적인 개인윤리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은 보편성에 우선권을 두었던 다른 철학과는 달리, 그가 개인의 특수성을 강력하게 옹호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의하여 완전히 정복된 증오는 사랑으로 변한다. 그리고 사랑은 이전에 증오가 없었던 경우보다 한층 더 크다(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p.199)

 

공포에 인도되거나 악을 피하기 위하여 선을 행하는 자는 이성에 의애 인도되지 않는다(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p.305)

 

스피노자 윤리학의 중심에는 개인이라는 구체적 존재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개벽적인 인간은 보편에 종속되어야할 보잘 것 없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신성을 지닌 신의 일부분으로 무한한 실체인 신을 부분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존재이다. 나아가 인간을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성을 보유하므로 어떤 것도 경멸을 받아서는 안 되며,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긍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신에 대하여, p.37)

 

각 속성의 양태는 그것이 양태 되어 있는 속성에서 신을 고찰하는 경우에만 신을 원인으로 소유하며 신이 아닌 다른 어떤 속성에서 고찰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p.87)

 

 

많은 철학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스피노자의 유명한 문구 “우리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 라는 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영원성을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이 문장을 통해 스피노자는 인간이 지는 이기적이고 감각적인 자아를 초월한 절대적 낙관론을 보여준다. 인간이 신에 대한 지성적인 사랑을 통해 전체 속에 용해된다면 인간은 신이라는 전체처럼 파괴될수 없는 것이 되며 영원성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영원성이란 사람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부정이다. 영원은 죽은 후의 천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삶 그 자체이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인간은 신성을 보유한 개체이기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다. 모든 인간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우언한 가치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인류가 지는 최선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최영주, 행복은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신에 대한 사랑은 정신을 가장 많이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p.345)

 

 

 

 

by 나뭇잎숨결

 

 

『에티카』는 데카르트, 라이프니츠와 함께 대륙합리론을 대변하는 근대철학자인 스피노자의 저서들 가운데 그의 합리주의 철학이 가장 체계적으로 나타내며 윤리학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책이다.

스피노자는 이 책을 통해서 윤리학뿐만 아니라, 신(실체), 자연, 정신, 정서 등을 치밀하게 논구하면서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철학 등을 재정립한다. 이는 실체를 신이면서 자연으로 본 스피노자의 철학체계가 실체 문제와 함께 인식과 윤리의 문제를 동시에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티카』는 다음과 같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신에 대하여,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제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를 다루고 있다.

종합적이며 철저한 사색, 이론과 실천의 합일, 그리고 치밀한 방법론을 그 특징으로 하는 스피노자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중세철학과 독일관념론 철학을 연결시켜 주고, 현대철학의 쟁점이 되는 핵심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