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최재봉의 공간
⑩소설가 김태용의 고시원
눅눅한 냄새, 기괴한 꿈, 그리고 포주이야기
그 작가의 공간은 고시원 삼층에 있다. 일층 감자탕집과 이층 당구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삼층과 사층이 고시원이었다. 입구 층계참에서 일행을 맞은 작가는 박카스 병부터 권했다. 어쩐지 고시원이라는 공간에 어울리는 음료다 싶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는 고시원 삼층에는 모두 서른한개의 방이 있었다. 사층에는 서른셋.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는, 보통 크기의 건물 한 층에 무려 서른개가 넘는 방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작가의 방은 삼층 입구 근처, 상담실과 화장실 옆이었다. ‘방문은 살짝 닫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방문을 살짝 열자 좁은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로 1.5m,세로 2m 정도나 될까. 정면으로 책상과 의자가 놓였고, 오른쪽 벽에 옷걸이가 걸렸으며, 문 왼쪽 벽으로는 문학잡지들이 쌓여 있었다. 잡지 위쪽 허공에 공사장 같은 데 걸려 있을 법한 ‘위험, 출입금지’ 페넌트가 매달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 작은 깃발은 마치 ‘문학의 세계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위태로운 결정이므로 금지한다’고 경고하는 듯했다.
그 금지를 위반하고 이 방에-그러니까 문학의 세계에 들어온 이는 누구였을까? 얼마 전 두번째 소설집 <포주 이야기>를 낸 소설가 김태용(38)이 이 작은 방의 주인이다. 그가 고시원을 집필실 삼아 쓰기 시작한 것은 첫아이가 태어나던 2005년 겨울부터였다. 다섯번째 고시원인 이곳 생활은 만 4년에 이른다. 가장 싼 방을 찾던 그에게 주인이 권한 게 보증금 없이 월 16만원인 이 방이었다. 이 고시원에도 더 넓거나 창문이 있는 방은 좀더 비쌌지만, 그에게는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면 충분했다. 고시원 방들에는 침대와 냉장고가 붙박이로 비치되어 있는데, 그는 그 둘을 내보내고 대신 책상과 선풍기를 받았다. 그에게는 고시원이 생활 공간이 아니라 작업의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닫힌 공간’은 어떻게 소설에 작용했나
김태용은 고시원에서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 집에는 동화작가인 아내(서진희)와 두 아이가 있다. 그는 일주일이면 평균 사흘 정도 이곳 고시원에 온다. 대체로 밤 아홉시쯤 왔다가 새벽 서너시쯤 귀가한다. 마감이 있을 때는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 의자에 앉아 꼼짝 않고 열두시간까지 있은 적도 있다고.
그에게 아파트와 고시원 말고 다른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학교에는 버젓한 그의 연구실이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서 기존 교수 연구실의 두 배 크기에 산 쪽으로 창이 나 있어 전망도 훌륭하다. 학생들이 수업 듣느라 오가는 공간과도 떨어져 있어 조용하기까지 하다. 그곳엘 가본 어느 동료 작가는 “이렇게 좋은 델 놔두고 왜 칙칙한 고시원에서 쓰느냐?”고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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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이 이 공간에서 작업한 지는 만 4년. 일주일에 사나흘 밤 아홉시쯤 와서 늦은 새벽에 귀가한다. |
“제가 공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사실 이곳 고시원에 적응하는 데에도 서너달은 걸렸어요. 처음엔 공간이 낯선데다 꽉 막혀 있다 보니까 폐소공포증 같은 것도 오고,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지금은 폐쇄된 고시원이 좋습니다. 딱 글만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싶어요. 제가 좀 게으른 편이라 넓고 편한 공간에 가면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힘들게 적응했으니까 고시원이 없어지지 않는 한 평생 여기서 쓰고 싶습니다.”
그는 고시원이라는 닫힌 공간에 매우 만족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어쩌면 닫히고 고립된 공간을 주된 배경으로 삼는 그의 소설적 특징과 고시원이라는 공간이 어울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의도적으로 닫힌 공간을 소설 배경으로 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반드시 그런 작정이 없이 시작한 소설이라도 쓰다 보면 어느새 공간이 닫혀 있는 걸 깨닫게 되곤 합니다. 아마도 글을 쓰는 공간이 저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의 소설에 고시원이 등장한 작품은 없지만, 고시원을 연상시키는 폐쇄된 공간은 종종 만날 수 있다. “새로 낸 책 <포주 이야기>의 표제작부터가 주된 배경인 창녀촌의 분위기를 그리는 데에 고시원의 눅눅한 냄새가 참고가 되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같은 책에 실린 단편 <머리>의 공간은 고시원의 모습을 더 닮았다. “냉장고가 없”고 “의자가 하나밖에 없”으며 냉기가 가득한 소설 속 방은 그 소설이 쓰인 고시원 방을 닮았다. 물론 이 방에는 소설 속 주인공이 거주하는 방의 “오른쪽 벽면에 붙어 있”는 창문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이 방에는 창이 없다./ 구름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기는 없다.”
<포주 이야기> 말미에 붙은 ‘작가의 말’은 고시원에서 쓰였음이 분명하다. 그가 쓰는 모든 글은 바로 이 고시원에서 쓴 것들이니까. 그는 소설은 물론 짧은 산문 하나도 고시원을 벗어나서는 쓸 수가 없노라고 했다. 집에서는 퇴고나 할 뿐, 초고를 작성하는 일은 결코 없단다. 학교 연구실 역시 잠깐 책을 읽는 공간으로나 쓸 뿐이고, 요즘 작가들이 애용한다는 카페 역시 그의 체질은 아니다. ‘닥치고 고시원!’ 작가 김태용의 모토는 아마도 이런 정도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