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태연한 인생, 창비, 2012
“누구나 자신만의 패턴에 빠져 고독하게 살지만, 각자의 고독을 인정해주고 함께 흘러가는 게 인생 아닐까요.”
[헤럴드경제, 이윤미]은희경은 세계를 패턴과 이미지로 가른다. 일정한 형태가 반복되는 패턴의 세계는 생활과 이데올로기를 입은 채 완강하다. 이미지는 순간적이며 그 자체로 완결적이다. 거기에 진위 같은 건 없다. 패턴과 이미지는 류의 어머니, 아버지뿐 아니라 류와 요셉에게도 적용된다.
류는 엄마의 서사의 세계, 고통의 패턴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에게도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다르다면, K의 배신과 요셉과의 황홀한 도주 뒤, 남겨질 지겨운 관계의 패턴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떠난 것이다.
요셉은 다르다. 틀에 박힌 생각들, 일상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며 개인의 고유성에 집착한다.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기만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까치를 멸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도 패턴화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랑의 위대함이란 통속성을 거부해왔지만 그 자신 여전히 류를 발견한 순간, 혼란스러워하고 쩔쩔맨다. 그 역시 욕망하는 인간이며, 그 안에 패턴과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요셉의 선택은 거짓된 세상, 자신이 믿지 않는 것들 속으로 천연덕스럽게 돌아가기다. 이야말로 자신의 정해진 일과이며,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다. 태연을 가장한 인생 뒤에는 이 둘의 격렬한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평론가까지 포함해서 요즘 젊은 필자들은 작가보다는 주인공으로서의 자의식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정상이니 최고봉이니 은밀한 신경전을 벌였던 선배 세대와 달리 개인주의자들끼리의 배타적 친밀이라는 묘한 연대를 형성하여 서로를 사이좋게 견제하면서 공존하는 법도 터득하고 있었다.”
[YES24]그의 소설은 ‘은희경’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독자를 설레게 한다.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지적이고 세련된 문장, 삶의 진실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통찰은 늘 우리를 열광하게 해온 은희경 소설의 위력이었다. 등단 16년, 매 작품마다 다양한 변신을 선보여온 그의 작품세계는 이제 더 깊어지고 여유로움마저 갖추었다. 2년 만에 선보이는 새 장편 『태연한 인생』은 그간 집적된 은희경 소설의 성취들이 고스란히 담긴 은희경 소설의 빛나는 정수를 보여준다. 사랑과 상실과 고독에 대한 빛나는 문장들이 다시 한번 우리를 은희경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길을 잃은 자에게 사랑이 찾아오고 매혹이 끝난 뒤에, 인생은 시작된다
현대사회에서의 개인들의 존재론과 그들이 맺는 관계의 양상을 냉철하게 묘파하는 것이 은희경 소설의 본령이었다면, 『태연한 인생』은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매혹과 상실, 고독과 고통을 깊이 탐구하는 가장 은희경다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저마다의 외로움과 오해 속에서 흘러가고 얽히는 관계들이 있고, 그 속에서 우리 내면의 나약함과 비루함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을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포착해내는 필치는 과연 은희경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태연한 인생』을 이끌어가는 것은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소설가 요셉과 신비로운 여인 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개성적인 인물들이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한다. 소설은 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무책임하고 즉흥적이며 한순간의 매혹에 쉽게 몸을 던지는 아버지와, 반면에 생활과 가족이라는 서사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고독과 고통을 감내하기를 선택했던 어머니. 류의 전사(前史)에는 그렇게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가 있었다. 류는 고백한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류는 그 매혹에 이끌려 한때 요셉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그를 떠났었다.
그들이 가는 세상의 끝은 S시가 아니었다. 열정이 끝나는 소실점이었다. 매혹은 지속되지 않으며 열정에는 일정한 분량이 있다. 그 한시성이 그들을 더욱 열렬하게 만든 것이었다. 류는 그들에게 주어진 매혹과 열정의 시간이 끝나버리는 날 자신이 혼자 비행기에 실려 돌아오리라는 걸 예감했다. (…) 류는 자기기만의 부역보다는 상실을 택했다. 고통보다는 고독을 택한 것이다. (…) 그 여름 S시를 혼자 떠나올 때 류는 울었지만 요셉과의 관계에서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놓고 되돌아와버린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았다.
(/ pp.263~264)
한편 소설가인 요셉은 도저한 냉소와 위악으로 무장한 인물이다. 예술가적 자의식을 고수하며 생활과 이데올로기라는 패턴의 세계를 집요하게 비아냥대고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롭기를 갈망하는 그는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완강한 통속과 패턴의 세계 속에서 작품이라고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는 퇴락한 작가다. 그런 그에게, 예술가들을 다루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과거의 제자 이안이 찾아온다. 그는 영화를 통해 과거 요셉의 추문을 폭로하는 복수를 꾀하고 있다. 요셉은 이안의 순진하면서도 위선적인 면모를 경멸하면서도 그를 통해 류를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영화 출연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 발칙하고 도발적인 여자 도경과 불쑥 요셉에게 다가와 그의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젊은 여성 이채의 존재가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든다.
"사랑하는 자는 없고 사랑만 있다. 사랑은, 누구의 이름이었을까.”
소설은 요셉의 일상과 류의 과거사가 교차되며 두 세계의 겹침과 엇갈림을 그려나간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타락한 세계를 향해 던지는 요셉의 가차없는 독설은 날카로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연민을 자아내고, 감추어진 듯 언뜻언뜻 드러나는 류의 서사는 아련하고 서정적인 색채로 이야기 전체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곳곳에 깔린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이 섬세한 문장으로 겹겹의 층을 이루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매혹과 상실, 고독과 고통, 오해와 연민에 대해 오래 곱씹게 하는 그 빛나는 경구들은 물론 은희경 소설을 읽는 큰 즐거움이자 그 자체로 머릿속에 외우고 다니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이다. 날렵함과 통쾌함을 지나 점차 깊고 묵직하고 어딘가 쓸쓸하기까지 한 느낌을 더하는 그 문장들에서 은희경 소설세계의 또다른 변모를 감지하는 것 또한 설레는 일이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슴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 p.265)
모든 좋은 소설이 그러하듯, 어떤 측면에서 읽어도 흥미로운 깨달음와 감흥을 발견할 수 있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면모는 『태연한 인생』이 지닌 큰 매력이다. 이 소설을 “개인의 고유성을 사수하려는 절망적 시도”와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자의 비감(悲感)”(염무웅)으로 읽을 수도, 류와 그 어머니의 “전사(前史)까지 포함한 적막한 일대기”(김혜리)로 읽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혹은 사랑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혹에 초점을 맞출 수도, 사랑이 끝난 후의 고독과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 읽을 수도 있다. 그럴 때 ‘태연한 인생’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은 더한층 다층적이고 매혹적이다. 어느 쪽이든, 그 ‘태연한’ 세계 속에서 느끼는 매혹과 고독은 한없이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전한다. 작가는 “연재하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 만났던 사람, 눈에 띄는 풍경이 마치 우연이라는 듯 소설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며 이 소설을 “우연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지만, 그런 ‘우연한’ 부분들이 얽히고 짜맞춰지며 만들어내는 겹겹의 치밀한 의미망은 우연을 필연적인 작품으로 길어내는 작가의 솜씨에 다시금 감탄하게 한다.
『태연한 인생』은 그러므로 연애소설이면서 세태소설이자, 빼어난 교양소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 인생과 사랑에 관한 매력적인 성찰과 사색을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녹여낸 수작이자, 은희경 문학의 탁월한 한 성취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은희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반가운 기쁨으로 다가갈 작품이다.
작가는 요셉의 시선을 통해 일상이 기반하고 있는 속물세계의 비루한 욕망과 감상성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와 주인공의 관점은 때로 화합하고 때로 길항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복합성 때문에 소설의 문체는 시종일관 풍자적이고 반어적이다. 그러나 풍자와 반어로 매끈하게 포장된 ‘인생의 태연함’ 안에는 개인의 고유성을 사수하려는 절망적 시도가 있고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자의 쓰라린 비감(悲感)이 들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 염무웅 (문학평론가)
오래전 은희경의 단편 [열쇠]를 읽고 작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 아무도 없는 방의 네 벽을 둘러본 적이 있다. 이후로도 은희경 소설 중 한 여자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듯 쓴 작품들에 유독 끌렸다. ‘류’와 ‘요셉’의 세계를 오가는 [태연한 인생]에서도 나는 류를 편애하고 말았다. 이 소설은 대칭인 듯 비대칭이다. 동일한 전지적 시점으로 쓰였지만, 요셉은 말을 쏟아내고 류는 생각한다. 그녀의 말은 가슴에 담긴 채 문장으로 옮겨진다. 소설 속 요셉의 시간대는 하루이거나 일주일이지만, 류의 그것은 생의 전사(前史)까지 포함한 적막한 일대기다. 망원렌즈의 시야에 아득히 가라앉은 류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종종 그녀들이 가르쳐준 대로 어긋난 뼈를 맞추듯 왼쪽 가슴을 눌러보았다. 그것은 높은 곳에서 지켜보는 누군가가 나의 황망한 인생을 집어들어 태연한 세계 안에 넣어주길 기도하는 주문이기도 했다. - 김혜리 ( [씨네21] 기자)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은희경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새의 선물>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1997년에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은희경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새의 선물>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1997년에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 2000년에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은희경은 등단한 다음 해부터 2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해마다 2000매 이상을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은희경 소설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것과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뒤에는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한 페이소스를 숨기고 있다
은희경 소설의 매력은 소설의 서사 진행 과정중 독자들 옆구리를 치듯 불쑥 생에 대한 단상을 날리는 데 있다. 그녀의 소설을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희경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그녀를 따라 다니는 또 하나의 평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사유(思惟)'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젝, ‘지금, 여기,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0) | 2012.06.28 |
---|---|
김태용의 고시원, ‘닫힌 공간’은 어떻게 소설에 작용했나 (0) | 2012.06.20 |
이미지의 정치학:리오타르의 형상/담론 이분법에 대한 고찰 (0) | 2011.08.31 |
신화의 공백, 또는 허위의 진실 (0) | 2011.04.26 |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윤대녕) (0) | 2011.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