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4

실존의 배고픔을 넘고, 질투의 심리학을 건너, 빛의 존재론으로

남마리안나 수녀님께서! 감사합니다! 실존의 배고픔을 넘고, 질투의 심리학을 건너, 빛의 존재론으로 - 연중4주“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를 중심으로 1.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보다 아름답고, 보다 완전한, 연역적인 선택의지(Prohairesis)

by 우두망찰님! '보다' 아름답고, '보다' 완전하고, '보다' 훌륭하고, '보다' 복스러운 연역적인 선택의지(Prohairesis) -연중3주, “때가 차서- 버리고- 따르다”를 중심으로 1. 백석, 「나와 나타샤와 휜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눈은..

오후 네 시쯤,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헤테로토피아(Les Heterotopies)

오후 네 시쯤,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헤테로토피아(Les Heterotopies) -연중2주, “무엇을 찾느냐?-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를 중심으로 1. 이성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살아갈수록 내가 작아져서/ 내 눈은 작은 것으로만 꽉 차기 때문이다//먼데서 보면 크높은 산줄기의 일렁거림이/나를 부르는 은근한 손짓으로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봉우리 제 모습을 감춘다// 오르고 또 올라서 정수리에 서는데/아니다 저어기 더 높은 산 하나/ 버티고 있다. //이렇게 오르는 길 몇 번이나 속았는지/ 작은 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가두고 / 그때마다 나는 옥죄어 눈 바로 뜨지 못한다.// 사람도 산속에서는 미물이나 다름없으므로/또 한 번 작은 산이 백화..

청춘의 문장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지고 싶다.(윤동주)

청춘의 문장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지고 싶다.(윤동주) 주님공현대축일-“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를 중심으로 1.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지고 싶다.(윤동주) 윤동주의 『또 태초의 아침』을 읽어본다. 하얗게 눈이 덮혀 있고/전신주가 잉잉 울어/하느님 말씀이 들려온다//무슨 계시일까// 빨리/ 봄이 오면/죄를 짓고/눈이 밝아(지고 싶다)//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나는 이마에 땀을 흘리고 싶다(1941년) 윤동주(11917-1945)의 『또 태초의 아침』(1941)은 스물셋, 윤동주가 쓴 청춘의 문장이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지고 싶다.”는 반어이자 역설이다. 이 시는, 시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