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피캇(Magnificat)

푸른 성채(城砦)에서 올리브산으로, 올리브산에서 푸르른 성채(城砦)로

나뭇잎숨결 2021. 6. 10. 16:34

 

사랑, 푸른 성채(城砦)에서 올리브산으로, 올리브산에서 푸르른 성채(城砦)로

-Love, from blue citadel to olive acid, from olive to blue citadel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나해)2021. 6. 6. Marc. 14,12-16, 22-26]

 

 

 



1.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입니다(한용운)
2. 당신에게 드릴테니, 부디 기쁘게만 살아라(『천 개의 고원』 번역자 김재인)
3. 자기 존재의 무게를 감당하라!(마르코 14,12-16.22-26)

 

 

1.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입니다(한용운)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에서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를 키운 건 무엇일까? 더 나아가 인류를 키운 건 무엇일까? 주저없이 ‘이별’이라고 말해본다.

 

엄밀하게 우리가 이별이라고 할 때, 이별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그대라고 부르는 그 상대인가? 결론적으로 실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헤어질 때, 누구와 이별했나? 예수님을 아웃사이더로 만드는 자기 자신들과 이별해야 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과 완벽하게 이별한 후에야 영원히 함께하시는 예수님과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별하면 어머니가 떠오른다. 모든 이별은 어머니와의 이별로 수렴된다. 너무 빨리 어머니와 이별했을 때, 나는 나의 공주병과 이별해야만 했다. 나는 무수리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을 독배를 마시듯 받아들였다. 효도할 기회도 불효할 기회도 주지 않고 떠나신 어머니와 이별하면서 어머니를 만났다.

 

그 이후에도, 이별해야 할 상황 앞에 놓이면 상황과 관계의 반추(反芻)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이별할 것이 아직 더 남았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했다. 그래서, 이별할 때마다 내 ‘존재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별은 시공간의 격절의 거리를 의미하는 물리적이고 정서적 차원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세계를 열어주는 통과제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별은 자기 ‘탈각’ 혹은 ‘환골탈태’의 의미가 내재해 있다. {탈각(하다)시키다(脫却---),탈피하다(脫皮--)}

 

한용운 시인은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에서 이별이 어떻게 관계나 정서의 차원이 아니라 미(美)의 차원인가에 대해 말해준다. 한용운 시에서 이별은 시의 소재나 부재의 현존, 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입니다./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임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 오오, 이별이여.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입니다”

 

아침과 밤,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푸른 꽃에서도 이별은 미(美)의 경지까지 이르지 못한다. 아침과 밤은 인간의 시간이다.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푸른 꽃은 신의 시간이다. 인간의 시간 속에서도 신의 시간 속에서도 이별의 미(美)는 발견되지 못한다.

 

이별은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이별은 그냥 이별이지 미(美)의 차원까지 가지 않는다.

 

대체 이 이별은 무엇인가? 인간의 시간인 ‘죽음’이 신의 시간인 ‘웃음’과 합쳐질 때, 이별은 미(美)의 차원이 된다. 하늘과 땅이 만난 곳에서 이별은 드디어 슬플 애(哀)가 아니라 미(美)가 된다.

 

이 글을 읽을 젊은 그대들에게 물어본다.

 

이별이 사무쳐 '애간장이 녹는다'라는, 그 눈물의 끝까지 걸어가 본 적이 있는가? 눈물의 끝에서 만나는 그 죽음을 보았는가? 타자의 죽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죽음,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신의 죽음을 목격하는 나,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고 지나가는 나, 소설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에서처럼 펜을 쥔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 그것이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현실 속의 나인 상황에 이르러, 이젠 죽어도 좋다, 아니 죽는 게 차라리 낫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돌연 아무것도 아닌 그런 빈지대에서, 사는 게 별거 아니었구나, 목숨도 그냥 놓아버릴 수 있겠는가? 라는 그 상황까지 가 본 적이 있는가? 이건 체념과 질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하나의 이별이 모든 이별과 합쳐질 때 가능한 사건이다. 총체적인 이별의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나’와의 이별이 마지막으로 남았을 그 상황에서.

 

{1995년, 개인적으로 모든 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비유하자면 무수리의 시간이 끝나고 여왕의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gg zz) 그때 주선한 '들뢰즈' 스터디 모임에서 들뢰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에 2000년대 들뢰즈의 저서가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전의 일이었다. 미학이나 철학에 관심이 있던 이들은 이미 불어에 능통한 이들을 초빙해 들뢰즈 원서를 스터디하고 있었다. 그때 전해진 들뢰즈의 자살소식, 암 말기에 자신의 아파트에 투신했다는 이 비보는 단지 들뢰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그의 미학과 철학에 심취에 있던 모든 이에게 ‘지적 자살’이었다. 학문의 길을 접은 이들도 더러 있었다. 스터디 모임도 한 동안 멈췄다. 들뢰즈에 대한 애도의 기간이 끝난 후, 스터디 모임은 역설적으로 더 뜨거워졌다. 그 스터디 모임의 금기어는 들뢰즈는 왜 자살했을까? 였다. 오늘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는 단지 암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암은 하나의 기폭제이고 그는 총체적으로 이 삶과 이별하고 싶었구나, 라고...}

 

한용운의 시에서 말하는 이별은 거기까지 간 이별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있지만, 삶에 대한 미련과 애착 때문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같은 것으로 보아버렸기 때문에 나오는 ‘웃음’,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된 상태를 그는 ‘웃음’이라고 그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때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입니다”라는 시행이 지닌 삶의 무게와 가벼움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인간의 품위가 하늘과 땅을 연결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고귀한 것임을 바라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별이 <미학의 차원>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이별에 대한 오욕칠정에서 비롯된 정서가 아니라, 정서가 다 마를 때까지, 더 이상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때, 드디어 이별에 대한 사유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별은 어떤 사람과 시공간을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그런 물리적인 간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이별없는 세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별이 없는 세대다. 우리는 이별을 체험할 수도 없고, 또 체험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서로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는 행복도 모르고 고향도 잃은, 이별마저도 없는 세대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이별없는 세대』)

 

이별은 만남이 있어야 가능한 상태다. 보르헤르트가 이 시대를 이별없는 세대라고 단언하는 것은 단적으로 진정한 만남이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지반, 뇌의 골수 까지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그런 만남만이 이별이란 헌사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인류학자 프랑코 라 세클라는 『이별의 기술 -인류학자가 바라본 만남과 헤어짐의 열 가지 풍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별할 때, 우리가 장례를 치르는 대상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상실이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남겨 놓은 것들이다. (프랑코 라 세클라, 『이별의 기술 -인류학자가 바라본 만남과 헤어짐의 열 가지 풍경』)

 

상실이 해결하지 못한 채로 남겨 놓은 것들이 무엇일까?

 

이별은 일차적으로 정서로 체험된다. 공식적으로 우리 이별합시다, 라고 말하지 않아도 어떤 관계는 이별각이 나온다. 이혼하지 않아도 이미 이별한 부부들이 수없이 많은 그런 맥락이다. 이별을 지혜롭게 혹은 섬세하게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별이란 말을 보류한 상태의 진행 중인 이별을 일컫는다.

 

차라리 이별하자, 라고 말하는 관계들은 훨씬 인격적이다. 어떤 이별도 일차적으로 촉발되는 부정적인 정서들이 압도한다. 그 정서가 너무나 강력해 진정한 이별을 체험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그 모든 정서가 가라앉은 다음에 이별을 사유할 수 있을 때까지, 존재의 긴 터널이 ‘상실이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남겨놓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1차적으로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혹은 ‘충분히 사랑했다’는 그 느낌의 차원에서, 이 이별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존재적 차원에서 질문하고 바라볼 때, 이별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부재의 현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는 한용운 시인이 바라본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입니다” 그 상태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에 님은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님을 만나게 되는 ‘부재의 현존’일 것이다.

 

 

 

 

 

 

2. 당신에게 드릴테니, 부디 기쁘게만 살아라(『천개의 고원』 번역자)

 

‘사유’에도 이별이 있을까?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은 ‘사유의 이별’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천 개의 고원』의 번역자 김재인 교수는 번역의 서두에 이런 말을 부기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죽음의 바다는 사방에 펼쳐져 있고 우리는 얼마라도 더 살려고 애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실존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도 노력도 긍정도 모두 실천이다. 게다가 자살마저도 무위마저도 실천이다. 무식마저도 실천이다. 무서운 진실! 무식은 아무 것도 낳지 않는 파괴만을 실천한다. 냉혹하게 무식을 직시해 보면 거기에는 검은 구멍이 있다. 거기서 가장 먼 곳에 기쁜 지식이 있다. 천 개의 고원이 있다

 

『천 개의 고원』 1,000페이지에서 주제단락을 한 단락 찾으라 한다면 1장 리좀(Rhizome)적 사유일 것이다. 리좀적 사유가 무엇인가를 이해했다면 『천 개의 고원』은 이해했다고 할 수 있고 사유에 이별해야 하는 사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사유하는 까닭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유는 오히려 진리를 망각하게 만드는 사유라는 이름의 억압구조라는 것을 『천 개의 고원』저자들은 바라 본 것이다.

 

“리좀은 시작도 하지 않고 끝나지도 않는다. 리좀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나무는 혈통관계이지만 리좀은 결연 관계이며 오직 결연관계일 뿐이다. 나무는 “~이다”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그리고....그리고....그리고...” 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그것은 중간에서 떠나고 중간을 통과하고 들어가고 나오되 시작하고 끝내지는 않는 것이다. 중간은 결코 하나의 평균치가 아니다. 반대로 중간은 사물들이 속도를 내는 장소이다. 사물들 사이는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가거나 그 반대로 가는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와 다른 하나를 휩쓸어 가는 수직방향, 황단 운동을 가리킨다. 그것은 출발점도 끝도 없는 시냇물이며, 양쪽둑을 갉아내고 중간에서 속도를 낸다”

 

 

리좀(Rhizome)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천 개의 고원』에 등장하는 은유적 용어 혹은 철학 용어이다. 원래의 리좀은 지하경을 의미한다. 리좀은 가지가 흙에 닿아서 뿌리로 변화하는 지피식물들을 표상한다. 수목형은 뿌리와 가지와 잎이 위계를 가지며 기존의 수립된 계층적 질서를 쉽게 바꿀 수 없는 반면, 리좀은 뿌리가 내려 있지 않은 지역이라도 번져나갈 수 있는 번짐과 엉킴의 형상을 지지한다.

 

이는 기존의 철학 종교 윤리의 사유체계가 수목형 혹은 나무형 사유로 이항 대립적이고 위계적인 현실 관계 구조의 이면을 이루는데 대한 안테 테제로, 자유롭고 유동적인 접속이 가능한 잠재성의 차원으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관계 맺기의 한 유형이다.

 

서평을 재인용한다.

 

『천 개의 고원』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로 세계의 지성사를 뿌리부터 흔든 문제작이다. 이 책은 『반복과 차이』, 『안티-오이디푸스』등과 함께 현대 서구 철학의 이정표를 세운 명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 개의 고원』은 『반복과 차이』와 함께 철학이나 인문학 하면 언뜻 떠올리기 쉬운 방법론(methodology)이나 이데올로기(ideology) 비판 또는 어떤 이론을 구축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우리의 모든 사유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사유하는 방법에 대한 사유(noology)’를 겨냥하고 있다. 즉 방법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대신 그러한 방법론이 어떤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며, 이념의 논리(ideo-logy)를 찾거나 이를 비판하는 대신 그러한 이념이 어떤 근거에서 발생하는 지를 탐사하는 것이다.

 

『천 개의 고원』은 음악, 미술, 국가론, 문학론, 정신분석 비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일관되게 저자들은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여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론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1장의 '리좀'부터 읽기 시작하면 이들의 사유체계가 기존의 사유를 어떤 식으로 뒤흔들고 있는지, 그 전인미답의 사유의 길을 어떻게 열어나가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철학과 미학은 기존의 철학과 미학을 부정하면서 변증법으로 자신의 철학과 미학의 길을 정립했다. 그러나 리좀적 사유는 그 어떤 사유도 최종적 사유가 아니라, 과정의 사유라는 유목적 사유의 길을 권유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비유를 빌리자면 이제까지의 서양의 사유는 일종의 장기 게임과 비슷한 것이었다. 즉 각각의 개체는 특정한 이름이 부여되어 주체가 되지만 이 주체는 실제로는 가는 길과 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노예와 비슷했으며, 게다가 장기의 모든 게임은 국가의 왕을 지키는 것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논리를 나무형 사유라고도 부르는데, 뿌리와 줄기가 가지와 잎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러한 국가형 사유 모델이 지난 2000년 동안 서구의 현실과 사유를 동시에 지배해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학은 항상 감성-오성-이성으로 연결되어 일직선으로 상승되어야 하며, 이것은 정치에서도 그대로 복제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철학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현인 왕(또는 철학자=왕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양의 사유 방식은 항상 기호학을 법칙으로 하는 위계적이고 중심적이며, 천상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유목적 사유, 리좀적 사유란 ‘궁정의 게임인 장기와 달리 동양의 재야 선비들의 게임인 바둑에 비유한다. 바둑은 모든 돌=주체가 평등하며, 따라서 왕도 신하도, 주체도 객체도, 또 이미 정해져 있는 길도 없는 유목적 사유, 과정중인 사유의 전형을 보여준다.

 

최근의 인터넷처럼 모든 돌이 동일한 주체로서 다양한 연결로와 교통망을 통해 평등하게, 또 계속 새로운 사유를 함께 만들 나가며 여기저기서 사유의 즐거움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중심도, 주체도, 위계도 없는 사유의 전형인 셈이다. 그리고 장기가 기호학의 법칙을 추구한다면 바둑은 다양한 연결선들의 봉쇄와 차단과 연결과 접속(저자들은 조금 어렵지만 이것을 영토화, 탈용토화, 재영토화 등의 개념으로 부르고 있다)으로 짜여지는 거대한 네트(net)적 사유의 창조 행의 자체인 것이다.

 

우리는 ‘중심과 질서가 없어져 간다는 비탄조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또 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이러한 상황을 새로운 창조와 변신의 기회로 전환시키고 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질서냐 아니면 무질서냐, 또는 국가냐 아니면 아나키냐 하는 대립축으로 문제가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비질서들의 접속들이 새로운 시대의 모럴이 되어야 한다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말은 1장의 리좀 대 나무부터 시작해 주체와 다양체, 매끈한 것과 홈이 패인 것, 국가의 포획 장치 대 유목민의 전쟁 기계 등의 새로운 대립쌍으로 변주되면서 기존의 모든 인문학과 사회과학, 고고학, 생물학의 성과들을 재검토하고 있다. 다양한 반체계적, 반-시대적 사유들의 접속을 추구하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사유의 무정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과 함께 네티즌의 시대에서 지금 우리에게, 우리가 열어나가야 할 정신적 지도를 너무나 정확하게, 또 흥미진진하게 그려주는 점에서 바로 시대의 철학을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자본주의라는 질서에 대해 저항이 또 다른 질서에 대한 꿈을 낳았으나 또 다른 질서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절망이 무질서로의 급경사로 이어졌으나 저자들의 말대로 자본주의의 성벽은 워낙 강고한 것이어서 비질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 개의 고원』은 네트워크의 시대에 질서도, 그렇다고 또 다른 질서도, 또 무질서도 아닌 무수한 비질서들의 공존과 접속이라는 새로운 사유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도 이들은 ‘비정확한 것’의 제거를 위한 기준과 공리론을 중심으로 하는 다수자 과학, 또는 왕립 과학이 아니라 비정확하지만 엄밀한 과학을 추구하는 유목 과학, 또는 소수자 과학을 추구한다.

 

앞의 과학은 모든 것을 질서지우고, 서열화하지만 후자의 과학은 다양한 근접한 사유들의 공존과 접속을 겨냥한다. 아마 이만큼 우리 시대의 사유의 풍경과 나아갈 길을 흥미있게 제시하고 있는 철학책도 드물 것이다. 비정확하지만 엄밀한 것에 기반한 비질서의 유목적 사유들과 표준, 기준, 공리를 기반으로 한 왕립 과학의 대결이라는 틀.

 

매 시대마다 거론되는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는 이 부박한 시대에 두 사람의 『천 개의 고원』은 ‘인문학적 사유’가 얼마나 아름답게,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에 까지 울려 퍼질 수 있는 멋진 방법들인지,

 

『천 개의 고원』은 ‘유목적 사유를 하라’ 동방박사들처럼 ‘별을 따라 여행하라’ ‘네트워크적 사유를 하라’는 제언을 하고 있다. 그때 우리 각자에게 생명으로 주어진 ‘존재의 무게’를 각자의 방식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 자기 ‘존재의 무게’를 감당하라!(마르코 14,12-16.22-26)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그리스도 신자라면 너무나 많이 묵상한 말씀일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신의 신적 존재에 대한 천명 '나는 사랑이다'라는 인류의 근원 -사랑의 원체험에 관한 천명이다.

 

부연하자면,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이 발화를 발화자인 예수님의 입장으로만 바라보자, 이것은 나는 지금부터 신의 사랑을 보여주겠다. 신이라는 나의 존재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발화이다.

 

과연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존재감조차 감당하지 못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신적 천명에 해당하는 저 말씀의 진의를 어떻게 알고 받아들였을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복음(마르코 14,12-16.22-26) 을 읽어본다.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성서 묵상을 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즉 우리의 영성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자연스럽게 머문 그 부분에서 묵상을 하면 된다.

 

이는 들뢰즈가 간파한 나무형 묵상이 아니라 리좀형 묵상에 해당한다. 복음에 관한 모든 사전지식을 내려놓고, 성서를 처음 만난 것처럼 읽다가 멈춘 그 자리에서 묵상을 시작하면 된다.

 

이 묵상은 오늘 묵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례의 길 위에서 하나의 과정임을 발견하면 될 것이다. 영적인 순례의 퍼즐 한 조각을 맞춘 것이다.

 

마르코 14,12-16.22-26에서 멈춘 곳은 Ⓐ, Ⓑ, Ⓒ, Ⓓ 네 곳이었다. 흔히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혈 대축일] 복음에서 중요한 맥락으로 짚어지는 부분은 아니다. 그런데 그 곳에 멈춘 것이다. 네 부분은 맥락상 흩어져 있는 부분이다.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

큰 이층 방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올리브 산

 

마태오복음 사가는 Ⓐ와 Ⓑ를 하나의 서사로 서술한다. 예루살렘 도성안에서 이루어진 최후의 만찬은 그 주체가 예수님과 제자들이다. 제자들은 사랑받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사랑받는 그들은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인류를 대신해서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는 이 몸과 피를 통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전대미문의 영적이고 역사적 사건이 예루살렘의 ‘큰 이층방’에서, 그것도 사랑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 앞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예수님의 존재의 무게일 것이다. 존재의 무게란 사랑의 크기다. 사랑의 크기가 삶의 무게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존재의 무게란 '신의 사랑'이라는 바로 그 무게다. 신의 사랑은 지금 당장 그 사랑을 이해하는 인류를 위해서 뿐 아니라 그 언젠가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서도 멈출 수 없다. 그것이 신의 사랑이다. 인간의 사랑은 사랑의 ‘혈’이 막히면 사랑도 막힌다.

 

여기서 문득 그 공간이 궁금해진다. 왜 예수님께서 익숙한 공간인 갈릴레아나 베타니아가 아니라 유다인들의 눈을 피해야지만 만찬모임이 가능한 예루살렘 성 안이어야 했을까?

 

또 예수님이 만찬예절이 차질없이 진행되기 위해서 ‘물동이를 메고가는 남자’는 누구인가? ‘큰 이층 방’의 주인도 아니고 12제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또 다른 제자이거나 그는 천사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누구든 그는 신의 메신저로서의 역활이라는 무게를 지고, 자기 역활을 다 한 것이다.

 

아무튼 예수님은 사랑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 알고 최후의 만찬을 진행하신다. 제자들은 알았다가 몰랐다가 사랑의 맥락을 찾았다가 놓쳤다가 한다. 만찬은 그런 상황이다.

 

Ⓑ큰 이층 방과 Ⓓ올리브 산, 이 두 공간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구세사의 결정적인 공간이다.

 

Ⓑ큰 이층 방

 

‘큰 이층 방’은 무엇인가?

 

'큰 이층 방'은 지상의 교회를 떠받치는 근원적인 공간의 상징성이다. 그 공간은 공간의 크기나 외형이 아니다. 교회를 지탱하고 보호하는 힘인 '사랑'이다. '큰 이층 방'은 인류가 사랑의 원체험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거행된 성찬례와 세족례는 세세대대 인류과 함께할 사랑의 '원형'이다. 그래서 ‘큰 이층방’은 모든 유토피아의 근원지이기에 ‘푸른 성채’라 불러야겠다.

 

‘푸른 성채(城砦)에서 올리브산으로, 올리브산에서 푸르른 성채(城砦)로’에서 ‘성채’는 요새다.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곳이다. 우리를 이 세상으로부터, 또  나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근원적인  '사랑'이다. ‘푸른’ 이란 형용사는 성모님의 망토와 푸른 하늘을 상징한다.

 

여기서 적은 외부의 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나로부터 보호한다는 그 의미로서의 요새(성채)다. 사랑 아닌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따라서 내가 이별하는 것은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대라는 이름의 당신이 아니다. 내 미혹과 미망의 자리, 나무형 사유에서의 이별이다.

 

큰 이층방,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공간에서,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 제자들은 그때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공간의 상징성도 제자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찬미가를 부르면서 올라간 올리브산의 의미도 실은 알지 못했을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올리브 산으로,

 

왜 올리브산일까? (http://paxkorea.kr/Home%20cover.jpg)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 구 시가지 동쪽, 키드론 계곡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산이 이렇게 불린 것은 예로부터 이 산에 올리브 나무들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 산에 울리브 나무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그곳이 개발되어 많은 주택들이 들어섰고 근래에 생긴 유대인들의 공동묘지가 산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리브 산과 예루살렘은 대단히 가까운 거리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동쪽을 향해 쳐다보면 금방 잡힐 듯한 거리에 올리브 산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장 12절에서도 “올리브 산은 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을 만큼 예루살렘에서 가까웠다”고 한다. 유대교 규율에 의하면 안식일에 1km 이상 걷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 예루살렘과 올리브 산의 거리는 1km 남짓 된다고 볼 수 있다.

 

올리브 산이 예루살렘보다(해발 750m) 90m 정도 높다고 하니 올리브 산은 해발 840m 정도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산과는 다르다. 큰 언덕이나 동산처럼 보인다.

 

올리브 산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에게는 의미깊은 장소며 중요한 성지이다. 구약성서에서 올리브 산이 명확하게 언급된 곳은 두 곳이다. 다윗 왕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지냈던 곳이고(2사무 15,30-32), 예루살렘 멸망의 날에 야훼 하느님이 나타나실 산이다(즈가 14,4). 에제키엘 예언자도 이와 같은 예언을 했지만(11,22-25) 올리브 산이라 하지 않고 그냥 동쪽 산이라고 한다. 그 이외에 솔로몬 왕이 잡신들의 제단을 세웠다고 하는 예루살렘 동쪽의 산’(1열왕 11,7; 2열왕 23,13)도 바로 올리브 산이다.

 

무엇보다도 올리브 산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가 두루 깊게 남겨져 있는 곳으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성지이다. 예수께서 베다니아에 머무르시는 동안 예루살렘을 오가실 때 올리브 산 고갯길을 오르셨고(마르11,1-27), 예루살렘 시가지를 보시고 한탄하시며 눈물을 흘리신 곳이다(루가 19,37.41-44). 또한 예루살렘 성전을 내려다보시며 세말에 대해 말씀하셨고(마르 13,1-37), 올리브 산의 게쎄마니 동산에서 밤을 세우셨다(루가 21,37). 죽음의 공포에서 고뇌하시며 성부께 기도하신 곳,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신 곳(마르 14,26-50), 그리고 부활 후 승천하신 곳도 바로 올리브 산이다(사도 1,6-12). 초세기부터 이곳을 중요한 성지로 생각했기 때문에 4-6세기 경에는 24개의 크고 작은 성전과 경당들이 이 산을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 승천 후 성령강림을 기점으로 제자들은 그 공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비로소 알게 된다. 4세기 이후 올리브산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리는 크고 작은 성전이 수없이 들어선다.

 

그들이 예수님과 이별한 것은 시공간의 유무에서 그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성령강림 이후라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제자들처럼 그렇게 영적으로 각성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 문제로 귀착된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해서 오롯한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제자들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과 죽음에 맞먹는 이별을 수행해야 하다는 사실 앞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그때, Ⓒ에서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라는 시한부적인 축제의 의미를 간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너희가 너희 자신과 이별하기 전까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이해할 수도 있다.

 

글을 정리해 보자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이별하기 전에는 이것이 내 몸이고 이것이 내 피다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조차 하다. 엄밀히 이것이 내 몸이고 이것이 내 피다는 단순히 인류를 위한 사랑의 발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예수님의 신 정체성의 발언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을 증인삼아 내가 사랑의 신임을 천명하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이별 후,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 이후, 자신들의 존재의 무게를 비로소 알게 된 이후에야 이것이 내 몸이고 이것이 내 피다는 그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 사랑을 계승하기로 기꺼이 그분이 가신 그 길을 가게 되었을 것이다.

 

하여,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마르코 14,12-16.22-26)에서 성체를 영한다는 것은 우리 각자의 생명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체의 최종 축성자는 사제가 아니라 성체를 영하는 우리 자신 ‘나’라고 봄이 마땅하다.

 

그때, 성체 聖體 Eucharistia , Eucharist 성혈 聖血 Sanguis Pretiosissimus Precious Blood 빵과 포도주의 외적인 형상 속에 실제로, 본질적으로 현존(現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말하며, 어원적으로는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감사하다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에 감사함을 의미한다.

 

푸른 성채(城砦)에서 올리브산으로, 올리브산에서 푸르른 성채(城砦)이는 우리 모두 순례의 여정이다. 그 여정 중에 그 은혜에 ‘감사함’을 바라보고 살기위해서, ‘우리 아닌 것(사랑 아닌 것)’과 수없이 이별해야 한다는 숙제를 우리는 안고 있다. 예수님과 이별해야지만 예수님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성체와성혈'로 보여준 사랑의 역설이자, 그분의 이름으로 사랑 아닌 것들과 이별이 이별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고 한 화가 김환기의 예지처럼 저 ‘시간 밖에서’ 의 '하늘 나라'에서라도 재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