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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묵주기도성월]그리스도의 '중개'와 마리아 '중재'의 구별과 개념

나뭇잎숨결 2023. 9. 24. 09:29

 

 

 

그리스도의 '중개'와 마리아 '중재'의 구별과 개념

 

 

 

- 권정대 베드로 신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그리스도의 중개와 마리아 중재의 구별과 개념
 
마리아의 중재에 대한 어원 사용에 있어 의문을 가지고 혼동을 느끼는 경우가 빈번하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를 고찰하면서 회칙 내용의 주된 내용인 마리아의 중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에 앞서 중재의 어원 사용 현황을 제시하고자 한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와 마리아의 ‘중재’라는 용어의 구별과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새 번역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개자’로 표현하고 있으며, 공동번역 『성서』는 그를 ‘중재자’로 표현하고 있다.(1티모 2,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8장에서는 ‘Mediator’라는 용어와 ‘Mediatrix’라는 용어를 모두 ‘중개자’로 번역하고 있다.1) 반면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모두 ‘중재자’로 표현한다.
 
‘중개’와 ‘중재’는 일반적으로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엄연히 의미의 차이가 있다. ‘중개(仲介)’란 “당사자 사이에 서서 일을 주선함”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중재(仲裁)’란 “다툼질의 화해를 붙임” 또는 “국제법상 당사국 간의 분쟁을 그가 선임한 제삼자의 판단에 의해 해결하는 일”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또한 한글학회가 펴낸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중개’란 “제삼자로서 두 당사자 사이에 서서 일을 주선하는 노릇”이다. 그리고 ‘중재’란 일차적으로, “다툼질을 하는 둘 사이에 서서 화해를 붙임”을 뜻하며, 이차적으로 ‘중재자’란 “하느님과 인류 사이를 화해시킨 ‘예수 그리스도’를 달리 일컫는 말”로서 풀이되어 있기도 하다.
 
라틴어인 ‘Mediator’는 고유 명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하며, 「한국 가톨릭 대사전」에서는 ‘Mediator’의 번역인 ‘중개자’를 “하느님과 인류 사이를 화해시켜 주고 인간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간청하고 있는(히브 7,25)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한국 가톨릭 용어 큰 사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모두 ‘중재자’라고 칭한다. 또한 「백과사전 : 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중개’와 ‘중재’로 구별해서 사용한다.
 
성경에 제시된 중재에 관한 내용은 구약에서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에서 볼 때, 중재의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서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종족에게 복을 가져다준(창세 12,1-3)”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앞서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중재해 주는 역할을 한다.(창세 18,16-33)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도록 소명을 받은 모세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계약을 맺을 때 중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레위 지파의 사제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는 중재의 역할을 하였다.(민수 6,22-27)
 
신약에서는 대표적으로 세례자 요한을 들 수 있는데,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라고 선포한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아 중재라는 의미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한정된 의미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인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주님께 간청을 드리는 중재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요한 2,1-11)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완전하고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를 ‘중개자(Mediator, 라틴어 남성형 명사)’로, ‘종속적이고 참여적이며, 특수하고 예외적인 구원임무를 지닌 마리아’를 ‘중재자(Mediatrix, 라틴어 여성형 명사)’로 지칭하고자 한다.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회칙은 「교회 헌장」 8장에 제시된 교리 원칙들을 재고하며 그 원칙들을 문헌 안에 자의적으로 인용함으로써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유일한 중개자(仲介者)이시며, 어떠한 피조물도 육화하신 말씀이시며 구세주이신 분과 비교될 수 없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제시하고 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제때에 드러난 증거입니다.(1티모 2,5-6)”
 
성삼위(聖三位)에 있어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중개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구약의 다른 중개들로 대치될 수 없고 비교될 수 없는 중개이다. 그는 육화를 통해 ‘감추어진 것을 드러냈으며’ 또한 ‘거룩한 신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토록 완전한 중개를 이루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온전한 인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중개는 여러 중개 중의 탁월한 하나가 아니라,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중개이다.
 
“그는 성부와 하나이고 성부께서 동일한 본성으로 그와 하나인 것처럼 우리 모두가 그와 결합되었으며 그가 사람이 되어 우리와 결합하였다. 따라서 중개자이신 그를 통해 우리는 성부께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 그분은 본성상 하느님인 이상 성부와 결합되어 있고 참된 사람이 된 이상 사람들과 결합되어 있다.”2)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의 중개는 이차적인 마리아의 중재를 포함한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중개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을 중개(仲介)하신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격을 얻게 해 주셨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명일 뿐만 아니라 그의 거룩한 아들의 신분 때문이기도 하다. 그분의 인격은 참 하느님이시요, 참사람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천주성으로 성부와 결합되시고, 인성으로 우리 인간과 결합되심으로써 천국과 지상을 연결하는 사다리요 구원의 다리이다.(창세 28,12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중개야말로 가장 완전한 중개이다. 그리스도는 유일하고 완전한 중개자이시다.
 
하느님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중개자로 삼아 만물과 화해를 이루신다. 그리스도의 화해하려는 중개의 역할은 분열이나 불화를 극복한 우주적 일치와 조화를 말한다. 이 화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분을 통해 완전하게 성취됨을 뜻한다. 이 중개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평화와 화해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주적 평화와 구원이 이룩되었으니 그 완전한 중개의 장소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이다.
 
또한 콜로새서 1장 9절 이하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창조의 중개자, 구원의 중개자로 찬양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신성을 언급한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콜로 1,15)”,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콜로 1,19)” 이 충만함은 하느님께로부터 선사된 것이다.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 당신 자신의 충만함으로 머무르며,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함 자체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충만성은 모든 것을 그분의 충만성에로 초대하며 그분의 충만함에 머무르게 한다.
 
이러한 초기의 공의회로부터 결정된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완전한 중개는 위의 성경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스도께서 동일한 아드님이요 동일한 인간이시면서도 참으로 한 분이 아니셨다면, 그분은 하느님과 인간의 중개자가 아니실 것이다.(DS 299)”
 
앞선 가르침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육화를 통해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며, 동시에 신성을 지니고 있었다. 온전한 인간이면서 온전한 하느님이셨기에 완전한 중개를 이루실 수 있었다. 그리고 십자가상의 자기희생, 곧 자기 비움(Kenosis)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였다.
 
 
마리아의 중재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 드러난 모성적 중재에 앞서 공의회에서는 마리아의 중재적 의무를 ‘어머니의 임무’(maternum manus)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다. 곧 마리아의 모성적 임무의 특성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의미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역할은 스스로의 필연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므로 그리스도께 종속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중개성을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마리아는 중개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모성적 중재의 개념과 어원적 고찰
 
마리아의 중재성은 교회 교도권이 교의로 선포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마리아의 중요한 역할로 인정하고 있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마리아의 중재성을 ‘모성적 중재’(母性的 仲裁, Mediatio Materna)로 설명하고 있다. 회칙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사명에 협력하는 마리아가 어머니로서 행하는 독특한 역할을 설명해주는 단어이다.(38-47항)
 
회칙은 구원 역사 안에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지적하기 위해 이 ‘중재’(仲裁, Mediatio)란 개념을 선택하여 그 개념에 ‘모성적’(母性的, Materna)이란 형용사들을 결부시켜 ‘모성적 중재’(母性的 仲裁, Mediatio Materna)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전례 안에서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상대적으로 간과해온 낱말을 일깨우면서 「교회헌장」 8장의 교리의 빛을 따라 그 단어에 새로운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비록 회칙은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을 지적하기 위해 ‘중재(仲裁)’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차적인 의미로는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켜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고,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이차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에 ‘참여(參與, participatio)’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일차적인 의미로 ‘중개’라는 용어를, 이차적인 의미로 ‘중재’라는 용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기로 한다.
 
 
모성과 중재성
 
‘모성(母性)’ 안에는 ‘중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성은 일차적으로 ‘출산’을 통해 하느님 모상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달해야 하는 ‘생명전달(生命傳達)’의 중재 역할을 한다. 이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분의 모상이고, 각인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모성은 부성과 더불어 하느님 창조사업의 협력자로서 중재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생명의 주인은 아니다. 모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가정교서 11항)
 
또한 모성은 ‘교육’을 통해 한 인간을 사회와 연결시켜주는 중재성을 갖는다. 인간 최초의 학교는 어머니의 모태요, 어머니의 무릎이다. 아기는 어머니의 태중에 생겨난 처음 몇 달 동안 이미 그 자체로 교육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특별한 유대를 형성하게 된다.
 
어머니는 출산하기 전부터 아기의 인격 전체를 형성시켜 주며 자녀는 모성으로부터 유전적, 정서적 요소들을 물려받는다. 또한 모성은 양육과 교육을 통해 어린 생명이 사회 한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사회성, 가치관, 덕행을 체득하도록 도와준다. 모성은 자녀 교육의 첫 번째 교육자로서 양육과 교육을 통해 자녀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이끌어주는 중재 역할을 한다.(가정교서 16항)
 
또한 모성은 ‘신앙의 전달’을 통해 한 생명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연결시켜주는 중재의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 생명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그 마지막 목적도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친교를 맺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이 간직한 신앙을 자녀에게 전달할 책임과 특권을 부여받았다. 모성은 자신이 간직한 신앙의 신비를 자녀에게 가르침으로써 자녀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생명의 복음 92-93항)
 
모성은 생명의 부여, 사회성의 전수, 신앙의 전달이라는 중재의 역할을 통해 자녀들의 삶의 동반자가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도 당신 모성의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양육하시는 그분의 동반자가 되셨던 것이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은 그리스도의 구속공로로 말미암아 은총의 질서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 주어지게 되었다.
 
주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산하 ‘용어위원회’는 ‘Mediator’와 ‘Mediatrix’라는 용어를 ‘중개자’로 번역하도록 지침을 주고 있다.
주2) Cyrilus Alex. In Joannem Ⅵ, PG. 73. 1045.
 
* 권정대 베드로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부제.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성모기사, 2017년 11월호, 권정대 베드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
 
 
성령에 의지하고 유지되는 중재


마리아의 전 생애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었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 구원의 신비에 바쳤다. 마리아는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낳았고, 이로써 예수는 성령을 통해 우리 가운데 나셨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 또한 성령께 의지하고 유지된다.(39.41항) 마리아의 모성은 본디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이었다.(루카 1,35) 그러나 성령께 대한 마리아의 개방성은 주님 탄생 예고의 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성령께서는 영원한 계약으로 마리아에게 주어지셨으며, 그리스도 육화의 각 단계에 함께 계신다. 마리아의 모성, 마리아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믿음과 희망과 사랑, 하느님의 뜻을 수락한 순종의 힘,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고통을 참아낸 용기는 모두 성령께로부터 비롯하였다.(13.14.39항)


성령은 주님 탄생 예고에서 마리아를 감쌌던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며,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도 동반하신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자들을 태어나게 하시는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시다. 마리아의 인격은 처음부터 성령의 특별한 영향권 안에 있었다. 주님 탄생 예고와 성령강림의 두 사건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데, 이 두 사건의 주인공은 곧 성령과 마리아이다.


성령의 사업에 참여하게 된 마리아의 모성은 ‘하늘의 올림을 받으신 후에도 뽑힌 이들의 수가 찰 때까지’ 어머니로서의 중재를 계속하시어 당신의 자녀들을 어김없이 예수께로 인도한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성령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유지되고 있다.(교회헌장 59항)


우리가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의 중개를 통해 성령 안에 은총을 받는다면, 의심 없이 그 은총은 마리아가 성령의 감도로 하느님께 드린 ‘순명(Fiat)’ 속에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을 통해 신자들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를 탄생시킬 능력을 얻고자 동정녀께 전구를 구한다.(마리아 공경 27항)




구세사 안에서 특수하고 예외적인 중재


구세사 안에서 마리아의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중재 역할의 근원은 마리아의 신적모성(神的母性)에서 비롯된다. 교회는 구세사 안에서 마리아의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역할의 근원이 마리아의 신적모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신적모성에 대한 완전한 진리를 기초로 해야만 신앙생활 안에서 생활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38항)


그리스도의 유일중개는 하느님 앞에 인간의 친교와 상호 책임을 해소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하느님을 향해 다양한 모양으로 각기 다른 중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중재 역할 또한 구원사업에 피조물적인 협력의 선상 위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세사 안에서 특수하고 예외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마리아의 중재는 성인들과의 친교 안에 있지만, 그녀만의 특수하고 유일한 방식 안에서 움직인다. 마리아 중재의 특수성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육화에 질서 지어진 하나의 모성적인 중재에 있다. 다른 인간적인 피조물을 존중한 마리아의 참여적 중재는 분명하게 그녀의 거룩한 모성으로부터 나온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이다.


성부와 같은 본성인 성자의 어머니요, 구원사업에 너그러운 동반자로서 신적인 선택을 받은 마리아는 은총의 질서 안에 우리를 위한 어머니였다. 이 기능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구원적 신비 안에 그녀의 현존이 매우 중요한 몫으로 차지하고 있다.




마리아의 종속적, 참여적 중재


구세사의 정점이요, 핵심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이다. 구세사의 모든 사건은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 사건에 의해서 그 수준과 가치가 측정된다. 마리아 중재성 역시 그리스도와 맺는 연관성에서 올바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맺는 구세사적 역할과 의미 안에서 마리아의 ‘중재성’을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는 이차적인 중재를 제외하지 않는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인류에게 하느님과 일치하도록 헌신함으로써’ 완전히 이차적인 의미로서의 중재자라고 부르게 된다고 말한다. 곧 가톨릭교회가 마리아를 비롯하여 성인들도 하느님께 인류를 중재하는 데 있어 ‘중재자’라고 부르는 경우를 말한다.


개개인은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함으로써 하느님과의 교류의 길이 열리게 된다. 구원된 모든 이는 구세주의 역사(役事)에 참여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기인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와 성인들의 중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여적 중재이다.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리 원칙에 따라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와 마리아의 모성적, 참여적 중재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회칙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명에 마리아의 협력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마리아의 중재를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된 중재(從屬的 仲裁, Meditatio subordinata)’라 부른다.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중개직(Mediatorship)에서 그 어느 것 하나도 줄어들게 하지 않는다.(38항)


그래서 공의회는 구원 계획 안에서 마리아의 ‘순명(Fiat)’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다. 이렇게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사실보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적 신앙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지극히 복된 당신의 모성적 중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중재의 유일한 원천은 오직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에서 나오는 것이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주도적 은총 안에서 이 엄청난 구세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룩하시는 일이 무엇이든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도록 처신하는 순종적 신앙을 순수하게 구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단순한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자유의지와 함께 하느님의 뜻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전인적인 처신으로서 하느님의 사업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참여적인 중재는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된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리아의 중재는 유일한 원천인 그리스도의 중개에 참여하며 그 임무는 종속적인 임무라고 헌장은 밝힌다.


따라서 교회가 가르치는 마리아의 중재는 종속적이며 참여적이다. 이러한 공의회의 가르침은 교회 일치적인 측면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 결코 교회는 마리아의 중재를 독립적이거나 절대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중개에 참여하는 점은 마리아의 중재가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중재


「교회 헌장」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의 인용문을 통해 ‘Mater Membrorum’(지체들의 어머니)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교회의 연대성에 대해 언급하며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중재에 대한 이해를 연결한다.


“마리아께서는 (…) ‘분명히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이시다. (…) 왜냐하면 머리의 지체인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태어나도록 사랑으로 협력하셨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지체로서 또 믿음과 사랑 안에서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과 모범으로서 존경을 받으시며, 가톨릭교회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자녀다운 효성으로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받든다.”(교회헌장 53항)


위와 같은 가르침에 이어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고 인류의 어머니이시며 특히 신자들의 어머니이신 천주의 성모님’(교회헌장 54항)이라고 고백함을 통해 앞선 가르침을 재확인한다.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서 머리와 지체들의 일치를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공동의 어머니를 통한 신앙인들의 심오한 결합을 나타낸다. 이는 개개인의 신앙인이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이러한 해석은 「교회 헌장」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마리아에 대해 ‘은총의 질서 안에서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다운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므로 이 칭호는 범우주적 차원이지, 개별적인 의미에서의 모성과 중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믿는 이들 개개인과 관련되는 것도 아니요, 전체 인류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이며 ‘인류에 대한 마리아의 어머니로서의 임무’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관련된 것이며,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개개인과 관련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당신의 새 모성으로 마리아께서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개개인과 모든 사람을 껴안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교회의 본보기이시기도 합니다.”(47항)


공의회의 가르침을 통해 ‘교회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중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로서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의 모든 구성원과 긴밀히 결합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합은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 탁월하게 드러나며, 결국 이러한 중재성은 교회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를 벗어난 개개인을 통한 중재는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중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마리아의 중재는 당신의 아들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통해 탄생한 교회와 그 모든 구성원 사이의 일치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드러나는 일치를 고무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원형이시고 또한 그 안에 있다. 공의회의 가르침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공의회 이후 교회의 문헌들을 통해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부르는 근거가 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이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하였다.(마리아 공경 11항) 또 파티마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맞이하여 회칙 「큰 징표」(Signum Magnum)를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영적모성을 강조하고, 지금도 여전히 천상에서 성자 곁에 당신의 백성인 교회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여 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의 특성


교회는 마리아 중재의 근원을 마리아의 모성(母性)에 두고 있다. 마리아의 중재는 그분의 모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모성은 두 가지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우선 마리아의 신적모성(神的 母性, Theotokos)으로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신 예수가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지닌 천주의 제2위격이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이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리아의 영적모성(靈的母性)이다. 마리아는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전 인류의 어머니로 주어졌다. 마리아의 영적모성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협조하신 일을 교회와 세상 역사 안에서 계속하게 한다.(39-41항)


또한 마리아의 모성은 아들의 신비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마리아는 예수를 자신의 뱃속에 잉태하고 낳았으며, 젖을 먹이는 어머니로 나타난다.(루카 1,32 참조) 예수는 마리아의 살과 피에서 나오셨다. 이 모성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신 예수는 참된 사람이 되신 것이다.


성부와 같은 본성인 성자의 어머니요, 구원사업에 너그러운 동반자로서 신적인 선택을 받은 마리아는 은총의 질서 안에 우리를 위한 어머니가 된다. 영적모성은 교회와 그리스도 구원신비 안에서 그녀의 현존에 있어 매우 중요한 몫이 되게 한다. 마리아의 모성은 구세주이신 당신 아드님의 일에 협조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모든 인간에게 정을 쏟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마리아의 모성은 그리스도 사명의 대상이 되는 모든 이에 대한 더욱더 ‘불타는 사랑’으로 가득하게 되었다.(38항)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마리아는 전 인류의 어머니로 주어졌다. 믿음에 의해 태어난 마리아의 새로운 모성은 당신 아들의 구원하시는 사랑에 참여함으로써 십자가 밑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된 ‘새로운 사랑의 열매’다. 마리아의 영적모성은 예수의 구원사업과 관련하여 지상에서 시작하였던 그 일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일치와 결합 속에서 끊임없이 교회 안에서 전구하는 중재를 통해 드러내고 교회와 세상 역사 안에서 계속된다.




모성적 중재의 보편성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보편적인 차원’을 지닌다. 구세사에는 연대성을 지닌 ‘대표’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이 법칙은 각 개인의 행위가 집합적 혹은 집단적 의미를 지님을 뜻한다. 마리아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위한 항구한 전구 속에서 언제나 아들 구세주의 구원 작용에 협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전 인류를 포함하기 때문에 마리아의 모성적 전구는 보편적, 연대적 의미를 지닌다. 마리아의 모성은 온 인류에 퍼져 작용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전 인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협력은 종속된 신분(subordinated character)으로서 유일한 중개자인 구세주 중개의 보편성에 참여한다.


마리아는 당신의 모성적 사명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 곧 마리아의 신비는 그리스도론적이면서 교회론적인 관점을 하나로 연결해주고 있다. 마리아와 교회의 일치는 바로 마리아의 모성과 동정성에서 나온다. 마리아의 모성은 육체적인 관계에서가 아닌 영적인 관계에서의 모성이며, 이 탁월한 모성은 사랑으로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구성하는 신자들이 태어나도록 협력하고 그들을 위해 전구해 주는 보편적 모성이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육체적 어머니인 마리아가 영적으로도 그리스도 지체들의 어머니가 된다. 마리아의 협조는 종속적인 상태로 유일한 중개자이신 구세주의 중개가 지니는 보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모성적 중재의 지속성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회 시작의 순간에 표명되었는데 그 역할은 하늘에서도 영광을 받으시는 주님과 일치하여 역사가 완성될 때까지 확장된다.(40-41항)


마리아는 모든 자녀를 위해 전구하면서 구세주 성자의 구원사업에 협력한다. 실제로 공의회는 은총의 섭리 안에 마리아의 모성이 선택받은 모든 이의 영원한 완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속된다고 가르친다. 마리아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늘 그리스도인들의 길에 실재하고 현존한다.


마리아는 주님의 여종으로서 섬김을 그치지 않고 다양하고 특별하게 성령강림 때부터 전 인류의 영원한 승리의 날까지 자신의 모성적 중재를 완성하고 있으며 구원에 유익한 마리아의 영향은 성령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성모기사, 2018년 1월호, 권정대 베드로(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로마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