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 요한 11:25-26 )
[1] 위령성월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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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령성월 기도문
○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서. ○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 ●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사와 더 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 제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오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제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음이오니 ○ 당신께서는 그 모든 죄악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리이다. † 기도합시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 주님을 섬기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이 바라던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
이 축일은 이 세상에서 믿음 안에 살다가 천국에서 복을 누리는 성인들의 덕을 추모하면서 전구하는 날입니다. 교회는 전례력을 따라 1년 동안 미사를 지내면서 특정한 날에 성인들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모든 성인을 다 기억 할 수 없으며 또 알려지지 않은 성인들도 많은데, 11월 1일은 바로 이 성인들의 축일인 것입니다. 이 축일은 고대 로마의 종교적 관습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 탄생 이전의 로마인들은 여러 신을 숭배하였고, 자신이 정복한 민족들의 신들을 석상을 만들어 '판테온' 신전에 안치하고 숭배하였습니다. 기원 후 313년, 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공식적으로 금지함과 동시에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하였습니다. 이 때 판테온 신전을 성전으로 바꾸고 여러 신들 대신 성인들의 상을 모셨습니다. 835년, 교황 그레고리오 4세는 이 성전을 "모든 성인께", 즉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허다한 성인 성녀들께" 봉헌하였고 그 축일을 11월 1일로 하였으며, 그때부터 이 날이 ‘모든 성인 대축일’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모든 성인 대축일을 기념하는 것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이란 지상과 천국, 그리고 연옥에 있는 모든 이들이 기도와 희생과 선행으로 서로 도울 수 있게 결합되어 있는 현상을 말합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 교회에 주어지는 특은은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우들은 연옥 영혼들에게만 양도(대원,代願) 할 수 있는 전대사를 날마다 한번씩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간 외의 이달의 다른 날에 위와 같이 하는 교우들은 한대사(부분대사)를 받습니다.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은 기억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달입니다. 특히 11월 2일은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이렇게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는 교회의 관습은 998년, 일 년에 한 번씩 '위령의 날'을 지키도록 명한 클뤼니 수도원의 영향으로 보편화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예로부터 '위령의 날'과 연관시켜 11월 한 달을 '위령성월'로 정하고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왔습니다. 이 달에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 친지, 특히 연옥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와 희생을 바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연옥에서 단련받고 있는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천국의 성인들과 함께 기도와 희생과 선행으로 서로 도움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이것을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11월 위령성월(특히 1일부터 8일까지)은 이 세상에서 보속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불쌍한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특별한 은사가 주어지는 만큼, 이 기간 동안 죽은 이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위령성월 동안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 또한 은총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
[3]정금원 스콜라스티카 단상: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발행일2023-10-29 [제3365호, 22면]
11월은 교회 전례력으로 위령 성월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하고,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묵상한다.
요즘은 웰빙(well-being)처럼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가톨릭교회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 세상에서의 순례를 마치고 천상의 영원한 삶으로 옮아가 부활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한다.
몇 년 전 레지오 마리애에서 같이 봉사하시던 자매님이 암으로 돌아가시고, 건강하시던 시아버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나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심하게 싸여 있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고, 거기서 성묘성당을 순례하였다.
순례 마지막 날 이른 새벽 숙소를 출발, 예루살렘 성 다마스쿠스 문을 통과하여 아랍인 시장(바자르) 골목을 지나 성묘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문을 넘어서 골고타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가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현장으로 전해지는 골고타 바위가 보존되어 있다. 그 골고타 바위에서 내려오면 정면 바닥에 길쭉하게 깔려 있는 대리석이 있는데,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눕히고 향유를 바르고 염했다는 성유석이다. 그리고 미리 예약한 미사 시간에 예수님께서 묻히시고 부활하신 곳 ‘에디큘라’(그리스도의 무덤)로 들어가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몇 명씩 들어가 무릎을 꿇고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던 돌판 위에 손을 얹고 잠시 죽음을 묵상했다. 이 성당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이루어진 가톨릭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현장이자 성지이다.
나는 이곳을 순례하고 예수님의 무덤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와서야 비로소 죽음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 죽음과 부활의 과정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 맞이해야 할 죽음이 무서운 형벌이 아니라, 이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는 영원한 생명의 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8월 말에 친정 오빠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원래 지병이 있었지만 건강히 잘 지내셨는데 갑자기 혈액암이 생겨 뇌에 전이가 되면서 쓰러지셨다. 수술을 마치고 그 힘든 항암치료를 이기지 못하고 딱 두 달 만에 돌아가셨다. 임종 바로 전날 ‘베네딕토’로 세례와 병자성사를 받으셨다. 지금 친정 식구들은 말할 수 없는 황망함과 헛헛함으로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오빠가 하느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하느님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매일의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언젠가 그 마지막 때가 오면 후회 없이 하느님께로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집회 48,11)
[4] 위령 성월 특집-가톨릭 장례문화
삶과 죽음을 넘는 영원한 생명… 주님 안에서 부활의 희망 담다
속죄와 참회 위주 장례예식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파스카 의미 담아 예식 개정
1859년 발간된 「천주성교예규」 상장례 풍속을 복음으로 재해석
초대교회는 죽음을 ‘천상탄일’이라 불렀다. 죽음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삶, 새로 태어나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죽은 이를 일으켜 세우셨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상장 예식에서 드러난다. 예식 안에서 이승에서의 삶과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묵상을 통해 우리는 부활과 참된 삶에 대한 동참을 확신한다. 가톨릭교회의 상장례는 죽음의 예식이 아니라 참된 삶을 드러내는 희망의 예식인 것이다.
■ 초대교회의 장례예식
유다교의 관습을 따랐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슬픔을 표시하기 위해 곡을 반복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유다교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부활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예식이 정착됐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장례 예식에서 이교적인 관습을 없애고 부활의 기쁨이 드러나도록 애썼다. “그리스도인들은 장례식에서 슬픔과 서러움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주님께 감사드리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는 교부 아리스티데스의 말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장례를 치를 때 큰 소리로 슬피 울지 않고 찬미가와 시편을 노래하며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이를 떠나보냈다. 5세기에 쓰인 「교계제도」에 따르면 장례식 참석자들은 죽은 이와 입을 맞추고 기름을 바르는 작별 예식을 거행했다. 친교의 표지인 입맞춤은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 기름 바름은 세례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파스카가 장례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8세기 이후 속죄와 참회의 신학이 발달하면서 장례예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클뤼니 수도회의 장례 예식서에는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 무서운 징벌을 피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호소하는 내용이 드러난다. 이 시기에는 죽은 영혼을 위한 속죄의 표시로 위령 미사가 집전되고, 장례도 죽은 영혼의 죄를 씻는 속죄가 중심이 됐다.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 이후 간행된 「로마예식서」(1614)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전 예식서에 수록된 시편과 파스카 성격을 띠는 기도문도 줄이는 대신 구원에 대한 불안을 강조하는 시편과 속죄 기도문을 첨가했다. 또한 흰색이었던 제의와 제구도 검정색으로 바꿀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나고 나서야 파스카 성격을 드러내는 장례 예식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 나온 전례헌장 제81항에는 장례 예식의 개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돼 있다. “장례식은 그리스도인 죽음의 파스카 성격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야 하며 각 지역의 환경과 전통에, 또한 전례 색상에 관한 것에도 더 잘 부응해야 한다.” 이에 주교회의는 1970년 3월 25일 개정된 예식들을 합본한 「가톨릭 예식서」를 간행했다.
■ 한국천주교회 첫 예식서 「천주성교예규」
유교와 불교, 무교(巫敎) 등이 섞여 있는 조선의 상장 관습에서 천주교 신자가 가톨릭교회의 정신과 형식대로 상장례를 거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박해가 계속되면서 천주교 교리에 따른 장례를 치르는 것에 소극적인 분위기도 형성됐다. 이에 선교사들은 예식서 편찬을 서둘렀다.
당시 한국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상장례를 사제가 집전할 수 없기에 신자들만으로 거행할 수 있는 기도문과 예식서가 절실했다. 또한 당시 조선의 사회 환경과 정서를 고려하면서도 교회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 형식과 내용이 분명히 드러나고 모든 신자들이 어렵지 않게 거행할 수 있는 예식서가 필요했다. 그렇게 발간된 것이 「천주성교예규」다.
다블뤼 주교가 한문본을 번역한 천주성교예규는 한국교회의 첫 예식서로, 1859년 발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판본 제1권은 크게 선종을 돕는 공부, 임종을 돕는 규식, 병자를 제성하는 규식, 임종경으로 구분된다. 선종을 돕는 공부에서는 이웃의 교우가 임종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족이 아닐지라도 지체하지 말고 찾아가 교회 가르침대로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도록 권면하고 함께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2권은 크게 상장(喪葬)규구, 상장예절, 유동(幼童) 장사예절, 상례문답으로 구분된다. 이 중 상장규구에서는 상장례를 주관하고 참례하는 신자들의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유가족은 교회 규정대로 상장례를 치러야 하며 염습과 입관이나 하관할 때 택일을 하는 것과 같은 외교인들의 상장례 관습을 따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다만 장례미사, 출관시 예절(십자가 받들고 경을 낭송), 무덤 앞 십자가를 세우는 지침에 대해서는 ‘시세에 따라 진행할 것’을 명시, 무리한 진행보다는 주변의 상황과 분위기를 고려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이는 평신도 중심으로 상장예절을 진행해야 하는 한국교회의 특수성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박해시대 신자들은 죽은 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며 주님 안에서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 현대 한국천주교 장례문화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회의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들이 논의됐다. 여기서는 장례에 대한 기본 시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교회는 상장 예식을 통해 죽은 이를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파스카의 신비와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길러 주며, 자모이신 교회의 사랑과 신앙의 위안을 제공해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며 동시에 참석자들이 삶과 죽음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게 함으로써 진실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준다.”(「사목회의 의안 4 전례」 144항)
이 사목 회의를 통해 건의된 내용들은 2003년 발간된 「상장 예식」에도 적극 반영된다. ‘영원한 생명을 찾아가는 우리의 부활 신앙을 북돋워 주고, 교우들의 헌신적인 상례 봉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복음화에 도움이 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상장 예식」은 보편 교회의 상장례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우리나라 상장례의 미풍양속을 복음 정신으로 재해석해 수용하고 있다. 보편교회의 상장례에 없는 우제(虞祭), 면례(緬禮), 제례(祭禮) 등의 예식을 수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육신의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면 화장을 허용, 화장과 관련된 제반 예식과 기도들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세례받은 어린이 장례미사와 받지 않은 어린이 장례까지 수록해 어린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의 전통을 따랐다.
교회 안에서 장례와 관련해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연령회다. 신앙의 자유를 찾게 된 1886년 한불조약 이후 설립된 연령회는 산업화 이후로 규모가 확산되면서 본당 신자가 선종했을 때 수행해야 할 갖가지 업무를 맡았다. 위령 기도, 예식 준비와 참여, 환자 호스피스, 유족 돌봄 등을 통해 복음전파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5] 연옥은 무엇이고,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
11월은 위령 성월이다. 위령 성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달로, 특별히 연옥 영혼들을 위한 미사 봉헌과 자선 등이 강조된다. 연옥은 무엇이고,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 위령 성월을 맞아 Q&A 형식으로 알아본다. Q. 위령 성월은 무슨 달인가요? A. 세상을 떠난 이들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입니다. 특정한 달에 특정한 신심을 북돋기 위해 교회가 정한 한 달 동안의 특별 신심 기간을 성월(聖月)이라고 하는데, 이 중 위령 성월은 세상을 떠난 부모나 친지의 영혼, 특히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하며 자신의 죽음도 묵상해 보는 달입니다. Q. 왜 11월이 위령 성월인가요? A. 998년 클뤼니 수도원의 오딜로(Odilo) 원장은 수도자들에게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다음날인 11월 2일을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로 지내도록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널리 퍼지면서 11월 한 달간 위령 기도가 많이 봉헌됐고, 이런 이유로 11월이 위령 성월로 정해졌습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은 하느님 나라를 완성한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제의 성격이 강하고, 위령의 날은 연옥 영혼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날이기에 이 양일을 통해 지상 신자들은 삶과 죽음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Q. 위령 성월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A.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와 선행을 강조합니다. 지상 신자들이 기도하고 속죄 행위를 하면 죽은 이들의 빚을 대신 갚아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위령의 날 모든 사제가 모든 연옥 영혼을 위해, 교황의 지향에 따라,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의 지향에 따라 미사를 3대 드릴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또 신자들은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연옥 영혼들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8일 동안만이 아닌 11월 한 달 내내 묘지를 방문하고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전대사는 영원한 벌(영벌)과는 반대로 일시적으로 잠시 받는 벌(잠벌)을 모두 사면하는 일인데요. 이를 받으려면 고해성사와 영성체, 교황의 지향에 따라 바치는 기도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Q. 교회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사도 신경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기 때문입니다. 통공은 교회 공동체 모든 구성원이 공로를 서로 나누고 공유한다는 뜻으로, 지상 순례자로 있는 사람들, 죄의 용서와 정화가 필요한 죽은 이들, 하늘에 있는 복된 분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 결합돼 오직 하나의 교회를 이루며 자신의 선행과 공로를 나누고 기도 안에서 영적 도움을 주고받음을 말합니다. 지상 신자들이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하느님 나라의 성인들도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간구할 수 있다고 믿는 등 교회는 산 이와 죽은 이의 통교가 가능하기에 위령 기도가 가능하고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Q. 기도로 연옥 영혼들이 천국에 가도록 도울 수 있나요? A. 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이들은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연옥’은 종종 어떤 장소로 오인되곤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데, 세상에서 저지른 죄에 대해 벌을 다 치르지 않은 영혼들은 천국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전 이를 정화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54항에 따르면, 하느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합니다. 연옥 영혼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저지른 악한 행동 등에 대해 부끄러움과 뼈아픈 후회를 느끼고 삶을 돌아보게 되지만,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기에 지상 신자들이 단식과 기도, 선행, 무엇보다 미사 성제에서의 성체 성사를 통해 이들에 대한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정화의 고통을 겪은 영혼들은 하느님 시선을 천상의 순수한 기쁨 속에서 마주 보게 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느님을 직접 봄으로써 천국의 행복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고 합니다. Q. 연옥에 관한 교리는 성경에 나와 있나요? A. 성경에 연옥이라는 말이 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연옥 교리를 특히 피렌체공의회 (1438~1445)와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에서 확정했는데, 성경 구절들로 연옥의 존재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5)라는 죽은 이들을 위한 속죄에 관한 구절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 네덜란드 로테르담교구 미헬 레메리 신부는 책 「하느님과 트윗을」에서 “이들이 만약 지옥에 있다면 기도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천국에 있다면 기도는 필요 없었을 것”이라며 “틀림없이 연옥이 존재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미헬 레메리 신부는 “이는 신약 성경에서 더 분명해진다”며 바오로 사도와 베드로 사도는 영혼 구원과 관련해 ‘불 속’(1코린 3,15), ‘불로 받는 단련’(1베드 1,7)을 말했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마태 12,32)이라고 하셨다며 “예수님 말씀에서 어떤 죄는 사후 즉 우리가 연옥이라고 하는 상태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Q. 위령 기도가 지상에 있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나요? A. 물론입니다. 위령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죄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1요한 1,8),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으며, 누구든 얼마든지 연옥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령 기도를 하면 연옥 영혼들이 천국에 갔을 때, 우리의 기도와 희생을 잊지 않고 필요한 은총을 빌어 줄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이에 대해 「생활교리」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사랑으로 서로 돕는 것을 즐겨하시기에, 서로 공(功)을 통할 수 있도록 섭리하시어 우리의 기도와 성인들의 기도를 받아 주시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매년 위령 성월, 지상·천국에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출처: 가톨릭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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