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쉘링의 자유론에서 악과 책임의 문제 - 변신론에 기초한 윤리적 고찰

나뭇잎숨결 2023. 2. 18. 10:50

쉘링의 자유론에서 악과 책임의 문제 - 변신론에 기초한 윤리적 고찰

강 순전(서울대 )

목차
서론
I. 자유와 체계
II. 자연의 창조를 위한 형이상학적 근본구상
III. 인간과 악의 창조
IV. 자유로운 행위와 책임의 문제
V. 악의 실재성과 변신론
맺는 말

서론

쉘링의 『인간의 자유의 본질에 관하여』는 독일 관념론의 관점으로부터의 자유 개념에 대한 해석의 백미(白眉)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하이데거는 이 작품을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함께 독일 관념론의 두 정점으로 보고, 이 100쪽도 못 되는 작은 논문을 총 세 번이나 강의하였다. 쉘링은 이 저작에서 자유 및 선과 악 같은 인간 윤리의 근본 개념들을 신에 의한 인간의 창조의 원리에 기초하여 고찰한다. 창조와 계시의 원리에 의해 인간 윤리의 문제가 고찰되므로 그것은 인간의 악에 대한 신의 관계를 규명하는 변신론의 문제와 결합된다. 쉘링의 이 저작이 갖는 탁월함은 기존의 변신론 논의를 자신의 독창적인 관점으로부터 비판하면서 보다 설득력 있는 견해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쉘링의 논의가 갖는 가장 독창적인 관점은 그가 악의 뿌리를 신의 본성 속에서 찾으며, 악에 선과 동일한 힘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그는 악을 단지 선의 결여로 간주하면서 순수하게 부정적인 것이라는 소극적 존재론적 의미만을 부여하던 전통적 이론과는 달리, 악에 선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한다. 뿐만 아니라 쉘링에게서 악의 가능적 원리는 인격성을 형성하는 질료로서, 그것 없이는 인격으로서의 신도 인간도 존재하지 못하게 되는 인격성의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악의 가능적 원리 없이 어떤 생명도 인격도 성립할 수 없다면, 그것 없이는 자유와 윤리도 불가능하게 된다. 자유란 선에의 능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악에의 능력이기도 해야 한다. 쉘링은 선과 악에의 능력이라는 실재적인 자유 개념을 가지고 전통적 견해들보다 악의 문제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제시한다. 한편 쉘링은 신이 인격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동일하지만 신의 인격성과 윤리성이 인간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현실적 악과 그에 따른 책임을 신이 아닌 인간에게만 귀속시킨다. 인간의 모든 윤리적 행위의 가능 근거가 신의 창조와 계시로부터 유래하지만, 현실적인 악행은 인간 고유의 선택에 의해 실현된다. 쉘링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창조 이전에 인간이 스스로를 결정하는 행위를 관념론적 원리로서 정립하면서, 그것을 현실세계의 구체적 행위들에 선행케 하고 그것들을 규정케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의 악을 인간의 책임으로 돌리기 위한 원리적 구분은 오히려 인간의 현실적 악에 대해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는 모순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 이 글의 분석을 통해 비판적으로 적시될 것이다.

이러한 난점에도 불구하고 쉘링의 『자유』논고는 신의 인격성에 기반하여서, 자유로운 의식적 행위로서의 신의 계시의 윤리적 성격과 악에 대한 신의 정당화의 문제, 계시의 궁극 목적과 그것이 직접적으로 완성되지 않고 처음부터 완전한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 등 변신론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여타의 어떤 신으로부터 윤리의 기초를 설정하는 이론들보다 탁월함을 인정 받고 있다.

I. 자유와 체계

쉘링의 『자유』논고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대한 야코비(Jacobi)와 F. 슐레겔(Schlegel)의 비난에 대해 답하려는 동기에서 쓰여졌다. 이들의 비난은 “자유라는 개념은 체계 일반과 조화될 수 없다”는 체계적인 철학 일반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비판을 전제한다. 이 비판이 의미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가 하나의 통일적 원리에 의해서 세계 전체를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체계적인 철학과 상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쉘링은 하나의 개념은 오히려 전체와의 연관 속에서 올바로 규정되어질 수 있고 또 되어져야 한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쉘링은 자신의 초기의 자연 철학적 체계에 근거하여 자유의 설명을 위한 형이상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슐레겔의 명시적인 비판은 세계를 유일하게 가능한 이성의 체계로 보는 범신론은 불가피하게 숙명론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슐레겔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사물들이 신 속에 내재한다는 범신론적 이론은 신과 사물 혹은 세계 전체의 동일성을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범신론의 실체가 ”신과 사물들을 완전히 동일화시키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피조물과 창조자를 혼동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체계 속에서 인간의 고유한 자유는 사라져버리고 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쉘링에 따르면 ”신 속에 내재함(Immanemz in Gott)과 자유는 결코 상충하는 것이 아니며, 바로 자유로운 것만이 그리고 그것이 자유로운 한에서만 신 속에 있다“(daß gerade nur das Freie, und soweit es frei ist, in Gott ist). 우리는 오히려 ”자유를 가진 인간을 신적인 본질 자체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만 구제해야 한다“(den Menschen mit seiner Freiheit […] in das göttliche Wesen selbst retten). 인간은 신 속에 내재하거나 신적인 본질에 참여함으로써만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라고 하는 본질에 따라서 볼 때 신과 인간은 동등하다. 양자의 이러한 동일성 속에 창조라고 하는 사건(사실)이 들어온다. ”신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으로부터만 파악되는 것이다(das, was in sich ist und allein aus sich selbst begriffen wird). 반면 유한자(인간 - 필자주)는 필연적으로 타자 속에 있는 것이며 이 타자로부터만 파악되어질 수 있다.“ 신이 근거라고 한다면 인간은 결과, 즉 신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형식상 구별된다. 이렇게 쉘링은 범신론적 체계 내에서의 신과 인간의 관계를 신 속에 (인간을 포함한) 사물이 내재함 혹은 ‘차이를 포함하는 동일성’으로 해석하면서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변호한다.

그러나 쉘링은 자신의 철학 체계를 스피노자의 체계가 지니는 기계론으로부터 구별한다. 쉘링에 따르면 스피노자에게서 사물은 한갖 죽은 사물일 뿐이며, 따라서 그의 철학은 생명이 없는 체계에 그칠 뿐이다. 의욕함(Wollen)을 근원존재(Ursein)로 파악하는 역동적인 자연관을 가지고 쉘링은 스피노자적 기계론에 관념론의 원리를 통해 정신을 불어넣는다(vergeistigen). 한편 쉘링은 피히테적인 관념론으로부터도 그것이 주관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이유로 거리를 둔다. 피히테에 근거하는 슐레겔의 “활동, 생명 및 자유만이 참다운 현실적인 것”이라는 주장에 맞서 쉘링은 “자아성이 전부일 뿐 아니라 거꾸로 모든 것이 자아성이기도 하다”(daß nicht allein die Ichheit alles, sondern auch umgekehrt alles Ichheit sei)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쉘링에 따르면 스피노자의 실재적이기만 한 체계가 관념적 역동성에 의해 보충되어져야만 하는 것처럼, 피히테의 체계는 주관의 역동성을 객관까지 확장시킴으로써 한갖된 관념적 체계에 실재성 또한 부여하여야 한다. 쉘링은 그의 관념-실재론적 자연 철학에 의해 실재론과 관념론의 상호침투를 표현한다. 한갖 관념적인 피히테의 체계에 의해 대변되는 한갖 형식적인 자유개념을 쉘링은 “실재적인” 자유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거부한다. 쉘링은 이 실재적인 자유 개념을 자신의 관념-실재론적 자연 철학에 근거하여 선과 악에의 능력(Vermögen zum Guten und Bösen)이라고 파악한다.

II. 자연의 창조를 위한 형이상학적 근본구상

쉘링은 악과 자유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고유한 해답을 서술하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한 전통적으로 시도된 해결책들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 자유를 선과 악의 능력으로서 정의할 때, 이 정의에서 필연적으로 악이 신 개념과 모순을 빚게 되는 듯이 보인다. 왜냐 하면 “현실적인 악이 승인되면 […] 악이 신 자체 속에 섞이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며, 그럼으로써 완전한 존재라는 개념이 온전히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악의 실재성을 부정해야 하는데, 그러나 그럼으로써 동시에 실재적인 자유 개념이 사라진다”. 쉘링은 이러한 딜렘마를 피하려고 시도하는 전통적 설명들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시도들이 악의 실재성을 부정하거나 신을 악의 창시자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쉘링은 또한 데까르뜨 이래로 근세 철학은 “실재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과 접촉하여 정신적인 것을 불순하게 만든다는 생각에서 모든 실재적인 것을 혐오함으로써 악의 근원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멀게 하였다”고 비난한다.

쉘링은 자신의 실재-관념론적인 자연 철학에 근거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는 실재론과 관념론을 혼합하여 몸과 영혼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복권시킨다. 그는 “실존하는 한에서의 본질과 실존의 한갖된 근거인 한에서의 본질 사이의”(zwischen dem Wesen, sofern es existiert, und dem Wesen, sofern es bloß Grund von Existenz ist) 자연 철학으로부터의 구별을 신의 개념에 전이시킨다. 쉘링에 따르면 신도 역시 영혼으로서의 실존뿐만 아니라 육체로서의 실존의 근거도 갖는다. 따라서 근거와 실존은 신을 구성하는 두 가지 원리이다. 그것들은 한 가지(einerlei)가 아니라 서로 구별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제약한다. 따라서 두 원리들은 동근원적이다. 쉘링은 양자의 관계를 충분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빛과 어둠 혹은 암흑 같은 수사학적 표현이나 빛과 중력 같은 물리적 원리들을 사용하여 비유적으로 서술한다. 중력이 빛에 선행한다. 그리하여 빛 혹은 실존이 그 위로 등장한다. 빛의 등장과 함께 중력은 밤으로 된다. 따라서 쉘링에 따르면 “모든 탄생은 어둠으로부터 빛으로의 탄생이다.” 세계 전체라는 의미에서의 자연은 신 안에 있는 근거로부터 생긴다. 근거라는 원리는 항상 빛의 원리의 개시를 위해 이미 현존해야 하며 이 빛과 더불어 창조를 가능케 한다. 이같이 근거가 빛을 기다림을 쉘링은 “자기 자신을 탄생시키려는 동경”(Sehnsucht, sich selbst zu gebähren)이라고 표현한다. 동경의 상태에서 실재로서의 근거는 관념적인 것을 아직 의식적으로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근거는 아직 분절화되지 않은,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실재-관념적인 것이다. 창조시에 빛은 자신과 친화적인 것, 즉 관념적인 것을 어둠으로부터 불러낸다. 달리 말해서 빛은 어둠이라는 무규칙적인 것에게 규칙을, 오성이 결여된 것에게 오성을 부여한다. 그럼으로써 실재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이 구별되고 그와 함께 형식과 질료 사이의 명백한 구별이 수행된다. 이로써 이 원리들의 두 계기들이 규칙에 맞추어서 정돈된다. 질료로서의 근거의 원리가 창조 이전에 우선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면, 창조시에, 즉 형식을 질료에 새겨 넣을 때에는 빛이 근거에 대한 우위를 점한다. 그러나 응축하는 원리로서의 근거의 반작용이 없이는 팽창하는 원리로서의 빛 또한 작용하지 못한다. 상호작용 속에서 두 힘들이 나누어짐으로써 창조가 생겨난다. 나눔(Scheidung)은 동시에 두 원리들의 조화로운 결합을 의미하며, 이 결합은 점점 상승하는 하나의 계열을 형성한다. 따라서 두 근본원리는 모든 현현(Manifestation) 속에 항상 현재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연의 계열이 형성되는 것이다.

III. 인간과 악의 창조

쉘링에게 근거라는 원리는 전통적 사고에서처럼 정지된 질료가 아니라 역동적인 힘, 즉 운동의 원리이다. 규칙으로서의 빛이라는 원리가 일반적 형식(Form)을 부여한다면, 근거라는 원리는 창조된 존재의 구체적 형태(Gestalt)를 부여하고 그 존재의 운동을 가능케 한다. 두 원리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창조에 의해서 생성된 각각의 존재들 속에는 두 대립된 힘들이 공존한다. 존재를 의욕함(Wollen)으로서 파악하는 쉘링의 근본적인 존재관에 따르면, 피조물 속에서 근거로부터 유래하는 어두운 원리는 사적인 의지라는 의미의 “아집”(Eigenwille)이라고 표현되며, 빛이라는 오성은 “보편의지”(Universalwille)라고 표현된다. 따라서 근거와 실존의 원리들로 형성된 피조물은 아집과 보편의지의 조화로운 통일로서 창조된다. 그러나 피조물의 아집은 “한갖된 욕망과 욕구, 즉 눈 먼 의지로서 보편의지인 오성에 대립한다”. 피조물은 항상 조화로운 통일이 파괴될 가능성에 의해 위협받는다. 왜냐 하면 시초의 혼돈(anfängliches Chaos)으로서의 근거는 모든 피조물 속에서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지칠 줄 모르고 뛰쳐나가려는 역동적인 힘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창조는 시초의 혼돈에 오성의 규칙이 부여됨으로써 수행된다. 따라서 피조물들은 제어된 혼돈(das gebändigte Chaos)이다. 이같은 규칙의 형성은 단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자연은 그 속에서 실재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이 점점 상승하면서 나누어지는 하나의 피조물들의 계열이다. 모든 존재자들은 단계적인 나눔에 의해 신 속에 있는 근거로부터 구성된다. 나눔의 계열의 끝에 인간이 서 있으며 그 안에서 “가장 깊은 중심으로부터 빛으로의 고양(Erhebung des allertiefsten Centrie in Licht)이 일어난다. 인간 속에는 온전한 힘을 지닌 암흑의 원리와 동시에 온전한 힘을 지닌 빛이 존재한다. 그에게는 가장 깊은 심연과 가장 높은 하늘, 다시 말해서 두 개의 중심이 들어 있다.“ 쉘링은 실재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의 최고의 연결(das höchste Band von Realem und Idealem)로서의 인간을 원리들의 두 측면으로부터 설명한다. ”자연의 근거로부터 솟아난 원리는 인간 안에 있는 자기성(Selbstheit)이지만 그것은 관념적 원리와 통일되어 정신이 된다.“ 자기성이 정신을 담고 있는 근거라면, 정신은 오성이 근거 속에 담겨짐으로써 실현된 오성이다. 양자의 통일에서 인간의 인격성이 성립한다. 인격으로서의 인간은 정신적 존재일 뿐 아니라 의지 속에서 노력하고, 정열을 가지고 어떤 것을 욕구하는 구체적 개인이다. 응축하는 원리로서의 근거의 원리로부터 볼 때 인간은 이기적이다. 하지만 이 이기성은 근본적으로 인격의 근저를 이룬다. 정신은 이기성과의 결합에 의해서 비로소 인격성을 형성한다. 따라서 인격이란 정신으로 고양된 자기성이다.

그런데 이기성이라는 섬기는 원리(das dienende Prinzip)가 지배적인 원리로 고양되고 인간의 아집이 자신을 보편적인 원리로 되게 하면 악이 발생한다. 쉘링에 따르면 선은 근거와 실존이라는 “원리들의 신적인 질서(말하자면 자연의 중심 속에 있는 의지가 빛을 넘어서 고양되지 않고 근거 속에 있는 토대로서 빛 아래에 머뭄)”를 의미한다면, 악은 이러한 관계의 파괴, 즉 빛에 대한 암흑의 우위이다. 선과 악은 두 원리들의 관계나 결합으로부터 비로소 생성될 수 있다. 빛이라는 원리 자체는 선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근거라는 원리 자체도 아직 악이 아니다. 실재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의 상호침투에 의해 창조된 것만이 선하거나 악하다. 그러나 자연에서의 양자의 연결은 필연적인 것이어서 악에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연에서 원리들은 “확실하고 규정적인 방식으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 그에 반해 창조의 정점에 있는 인간에게서 원리들의 연결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것이다. 오직 인간에게서만 신에게서는 분리 불가능한 두 원리들의 통일이 분리 가능하다. 왜냐 하면 인간은 그 속에서 ‘신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근거’라는 원리가 정신으로 고양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정신으로 고양된 자기성은 신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근거에 의해 신적인 근원의지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다. 이렇게 신에게서 분리 불가능한 원리들의 해체로부터 악의 가능성이 성립한다. 자유가 선과 악에의 능력이라고 정의된다면, 인간만이 자유롭다. 따라서 “인간은 짐승보다 아래 있거나 위에 있을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신 자신의 자유에 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쉘링에 따르면 신은 인격적이며 인간과 같이 두 원리들의 인격적인 연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연결은 그것이 자연에서와 같이 필연적이라는 이유에서는 아니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어떠한 악에의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자유가 선에의 능력일 뿐 아니라 악에의 능력이기도 한 한에서 신은 자유롭다고 말해질 수 없지 않은가? 신은 “동물과는 달리 자신의 고유한 본질의 법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며, 따라서 자신 안에나 밖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으며”, 더욱이 인간과는 달리 오류 불가능하게 행위한다. 그렇다면 신은 특수한 의미에서만 자유롭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쉘링에 따르면 악은 인간의 의지 속에서 “정신적으로 된 자기성이 빛으로부터 분리됨으로써(왜냐 하면 정신은 빛 위에 있기 때문에), 즉 신 속에서는 해체 불가능한 원리들이 해체됨으로써“ 발생한다. 선이 원리들의 신적인 관계나 신적인 질서라고 한다면, 악은 일종의 파괴된 질서 혹은 질서의 착종(Verkehrung der Ordnung)으로서 표현되어질 수 있다. 이같이 보편의지로부터 벗어난 아집을 쉘링은 병(Krankheit)과의 유비 속에서 파악한다. 병은 온전하게 긍정적(적극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병은 질서의 착종이며,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건강한 상태 혹은 선과 동일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악은 병이 그러하듯이 확실히 악으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라 자립적인 긍정성을 갖는 것이다. 악이 단지 창조된 존재의 불완전성, 유한성에서 생겨날 뿐이라는 라이프니쯔의 생각에 반해서 쉘링은 악을 힘이며 결코 불완전하지 않은 것으로서 파악한다. 그 밖에도 라이프니쯔에게서는 왜 바로 인간에게서, 즉 비교적 가장 완전하게 창조된 존재에게서 악이 등장하는 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악이 유한성과 불완전성 속에 놓여 있다면, 오히려 돌멩이가 인간보다 더 악해야 할 것이다. 쉘링에 따르면 유한성 자체가 악이 아니라 단지 자기성으로 고양된 유한성만이 악이다. 긍정적인 것은 항상 하나이며 전체 혹은 통일이다. 악이 긍정적인 것을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는 한 그것은 일종의 잘못된 통일로서, 파괴되거나 착종된 질서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같이 악은 쉘링에게는 원리상 선과 동일한 힘을 지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쉘링에 따르면 유약함 때문에 유덕한 행위를 수행하지 못함은 그 자체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유덕한 행위의 결여이지 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긍정적(적극적)인 악이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쉘링은 악을 선의 결여로 보는 전통적인 설명들에 반대한다. 전통적 설명들 속에는 선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으로부터 그것의 결여인 악이 도출된다.

쉘링에 따르면 인간만이 근거와 빛의 연결로부터 해체되어 적극적으로 악을 행할 수 있다. 자연은 필연적인 연결을 갖는다. 자연 속에는 실로 고정된 연결의 해체인 것처럼 보이는 우연이나 “잘못 생성된 것”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근원적 필연성으로부터 현상하는 것이 아니며 자체 내에서 고유한 힘들에 의해서 다시 보완된다. “악은 자연 속에서 자신의 결과를 통해서만 자신을 알릴 뿐이며 직접적으로 현상하는 악 자체는 자연의 목표, 즉 인간에게서 발생한다.” 따라서 악에의 능력을 갖는 인간만이 자유로우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악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IV. 자유로운 행위와 책임의 문제

『자유』논고의 시작부에서 쉘링은 자연과 정신의 대립을 잘못된 대립으로서 설명한다. 왜냐하면 쉘링에 따르면 자연에서도 예지적인 것(das Intelligible)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근거와 빛, 질료와 오성이라는 원리들로 구성되며, 정신의 왕국은 “자연에서의 최초의 현현(Manifestation)과 같은 단계들을” 반복할 뿐이다. 오히려 “본래적인 대립은 필연성과 자유의 대립이다”. 쉘링은 이제 이러한 시작부의 주장에로 소급해 가서 그것들을 자신의 형이상학적 구상의 배경 앞에서 다룬다. 쉘링은 자유에 대한 통상적인 견해인 우연성 테제도 결정론도 모두 부정한다. 전자는 자유가 “두 개의 모순적인 대립자들 중에서 어떤 특정한 이유도 없이 하나 또는 다른 것을 단지 단적으로 그것이 욕구되기 때문에 의욕하는 완전히 무규정적인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인간 본질의 “근원적인 비결정성”을 전제하며 그와 더불어 “개별 행동들의 완전한 우연성을” 도입한다. 이러한 비결정성과 우연성은 쉘링에게는 한갖 “부적절성”이나 비이성적임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결정론은 “각각의 행위들이 과거의 시점에 놓여 있는, 행위를 할 때 그 자체 더 이상 우리의 힘 안에 놓여 있지 않은 다른 원인들이나 표상들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이유에서 모든 행위의 경험적 필연성을 주장한다”. 이제 쉘링 자신은 “강제나 외적인 규정됨으로서의 우연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내적인, 행위자 자신의 본질로부터 말미암는 필연성인 보다 높은 필연성을“ 주장한다. 결정론을 피하기 위해 쉘링은 칸트처럼 자연 필연성 바깥에 ”인간의 예지적 본질“(das intelligible Wesen des Menschen)을 설정한다. 인간은 자신을 자연의 밖으로 혹은 위로 고양시키는 예지적 본질을 갖는다. 그러나 인간의 예지적 본질은 결코 무규정적 일반자가 아니며 바로 이 인간의 예지적 본질(das intelligible Wesen dieses Menschen)을 규정한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이라는 외적 근거나 강제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갖는다. 왜냐 하면 인간은 그의 오성이 항상 이미 근거라는 원리, 즉 시초의 본성에 의해 침투되어 있으며 이것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지적 본질은 자기 자신에게 고유한 내적 본성에 따라서만 행동한다. 다시 말하면 행동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와서“ 근거와 빛, 본성과 오성의 ”동일성의 법칙에 따라서만, 그리고 절대적 자유이기도 한 절대적 필연성을 가지고 생겨난다. 왜냐 하면 자기 자신의 본질의 법칙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자기 내부의 것이건 외부의 것이건 간에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같이 쉘링은 필연성을 내적 필연성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외적 강제와 구별한다. 내적 필연성은 외적 원인에 의해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야기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절대적이다. 필연성이 내적이고 절대적이라면, 그것은 절대적 자유와 같다. 이렇게 쉘링에게서는 필연성과 자유가 통합된다. 그것들은 ”상이한 측면에 따라서 고찰될 때만 필연성 혹은 자유로 현상하는 하나의 본질, 그 자체 자유이며 형식적으로는 필연성인 하나의 본질이다”.

따라서 자신의 고유한 본질의 법칙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만이 자유롭다. 이러한 본질, 인간의 내적 필연성은 쉘링에 따르면 “자신의 고유한 행위”에 의해서 규정된다. 쉘링은 피히테처럼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를 자기규정의 원리로서 그의 경험적 행동들에 선행시킨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행위에 의해서 자신의 창조시에 이미 자기 자신을 결정한다. 자기 정립 행위로서의 인간의 결정은 시간의 바깥에 있는 것, 즉 영원성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 행위에 의해서 인간의 삶은 시간 속에서 규정되며, 따라서 그의 경험적 행동이 규정된다. 이로써 쉘링은 근거가 시간 밖에, 즉 영원성 속에 있지만 결과는 시간 속에 있게 되는 근거-결과 관계를 설정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쉘링은 행동의 비결정성이나 자의성뿐만 아니라 예정설도 피하려는 의도를 보여 준다. 자유가 행동들의 우연성을 가지고 구제될 수 없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인간 행동들의 근거를 “절대적인, 즉 완전히 무근거한 신의 결정 속에서” 찾는 예정설도 자유의 개념을 포기한다. 반면에 쉘링은 특별한 의미에서의 예정설을 주장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창조시에 시간에 앞서서, 영원 속에서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의지로부터의 자유로운 행위에 의해, 시간 속에서 자신의 행동들을 규정하게 될 자신의 본질을 결정한다. 그러나 쉘링의 이러한 주장도 통상적인 예정설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거의 자유로울 수가 없다. 왜냐 하면 문제가 되는 인간은 시간 속에서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구체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의 자유가 단지 시간 이전의 영역에만 속한다면, 그리고 시간 속에서의 행동들은 항상 이미 예정되어 있다면, 역사 속에서의 인간의 행동들은 자유롭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자유로운 행위는 쉘링에 따르면 시간 속에 있는 인간의 의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전자는 후자에 선행하며 그것을 비로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역사 속에서 부당한 행동을 할 때, 그는 자신이 이전에(자신의 탄생 전에) 자신의 고유한 결정 행위에 의해서 그렇게 하도록 스스로를 규정하였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하지만 시간 속에서 그가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 속에서의 행동은 그에게는 다르게 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낀다. 쉘링은 인간의 모든 개별 행동이 자신의 고유한 행위에 의해서, 즉 자신의 지배 하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책임이 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하나의 행동이 그것에 대한 결단이 의식에 앞 선 것으로서 자신에 앞서서 일어났다면 책임이 물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근거는 시간 밖에 있지만 결과는 시간 안에 있는 근거-결과 관계에서는 역사 속에서의 자유로운 행동은 유의미하게 생각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시간 속에 있는 인간이 책임능력이 있다고 간주할 수 없다.

V. 악의 실재성과 변신론

그런데 신은 왜 인간에게 악을 허락하였나? 악의 가능성이 신의 계시로부터 주어진다면 신은 왜 악을 예견하면서도 계시하였는가? 변신론에 기초한 윤리적 고찰에서 이 물음은 인간의 악의 문제를 규명하는 데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물음이다. 쉘링은 이 문제를 『자유』논고에서 수행하는 탐구 전체의 최고의 물음이라고 간주하면서, 1) 계시는 맹목적이며 무의식적 필연성을 가지고 발생하는가 아니면 자유로운 의식적 행위인가? 만일 후자라면 2) 신은 자기 계시를 원하는 순간 동시에 악도 원했는가? 신은 악에 있어서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 물음으로 분류하여 답변한다. 쉘링의 답변은 인격신의 개념에 기초한다. 신이 단순히 논리적인 추상물일 뿐이라면,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논리적 필연성에 따라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신은 그 안에 토대(Basis)와 실존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절대적 실존이다. 신 역시 탁월하고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정신이며 자연과의 유대에 의해 인격성을 갖는다.

인격신이 갖는 자유 또한 그 두 가지 측면과 연관하여 고찰되어야 한다. 신 안에는 창조를 위한 두 가지 의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탄생시키려는 근거의 의지이며, 다른 하나는 신을 인격적이게 하는 사랑의 의지이다. 전자는 의식적 의지가 아니라, 욕구나 쾌락 같은 생성하는 자연의 아름다운 충동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자의적이어서 중지할 수 없고, 따라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 후자는 단적으로 자유롭고 의식적인 의지이다. 때문에 그로부터 결과하는 계시는 행동이며, 창조는 소여가 아니라 행위이다. 쉘링에 따르면 사랑의 의지로 말미암아 자연의 법칙 또한 단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법칙이 아니라 인격적인 정신으로 파악된다. 왜냐하면 발생하는 모든 것은 신의 인격성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지 추상적 필연성에 따라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시는 두 원리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난다. 신 안에 존재하는 근거의 의지는 계시를 향한 사랑의 의지에 반작용하기 때문에, 계시를 위해서는 사랑의 의지가 근거의 의지보다 더 우세하여야 한다. 계시는 계시에 대한 반작용인 응축의 원리를 뚫고 나오는 팽창(사랑)의 원리에 의해 성립하는 신의 결단이다. 따라서 그것은 윤리적으로 자유로운 의식적 행위이다. 쉘링은 이로써 피조된 세계의 필연성을 윤리적 방식 또는 사랑과 연관된 방식으로 필연적인 것으로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스피노자주의에 정신을 불어넣는다는 그의 프로그램과 관련된다. 쉘링에 따르면 스피노자주의는 그것이 신 안에서 부정될 수 없는 필연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필연성을 비생동적이고 비인격적인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스피노자가 신의 한 측면만을 보았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쉘링은 형이상학적 필연성과 윤리적 필연성을 통일시킨다. 그리하여 쉘링은 신이 본질적으로 사랑과 선이라면 신 안에서 윤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참된 형이상학적 필연성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신적 오성 안에는 하나의 체계가 있지만 신 자체는 체계가 아니라 생명이다. 모든 실존이 현실적으로 되기 위해, 즉 인격적 실존이 되기 위해 근거라는 제약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신적 실존 역시 이러한 제약 없이는 인격적일 수 없다. 신은 이 제약을 지양해버릴 수 없다. 왜냐 하면 제약의 자양은 곧 자기 자신의 지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은 이 제약을 자신의 관할 하에 두어 절대적 인격성이 되지만,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인격성은 완전한 현실태로 고양될 수 없다. 신과 관련한 악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도 이러한 신의 인격성에 대한 고찰로부터 대답되어질 수 있다. 현실적인 악이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하고 계시하는 신은 그 자신이 악을 원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왜냐 하면 세계를 원하는 자는 동시에 악도 원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물음에 대해 쉘링은 창조에의 의지가 빛과 선의 탄생에의 의지라고 대답한다. 신은 무질서에 질서를, 어두움에 빛을 부여하는 행위만을 할뿐이다. 쉘링에게서 악은 라이프니쯔에게서처럼 세계의 가능한 완전성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이 아니다. 악은 전혀 신의 숙고와 체험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악이 한갖 부수적인 것일지라도 자기 계시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신이 예견했을 텐데, 신이 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 또한 같은 점에서 대답될 수 있는 것이다. 신의 자기 계시는 무조건적이고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과 선이 근거를 극복하게 하는 인륜적-필연적 행위이다. 신은 라이프니쯔가 주장하듯이 악을 선의 실현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다. 사랑의 원리가 실현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은 근거일 뿐이다. 쉘링은 이 질문에 함축된 주장은 곧 사랑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기 위해 사랑 자체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즉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것이 오직 대립으로서만 실존하는 것 때문에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간주한다. 이것은 신이 자신의 인격성을 지양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악이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 신 자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질문들이 대답된 뒤에도 악은 언제 끝나는가? 왜 창조의 궁극 의도는 직접적으로 완성되지 않는가? 왜 처음부터 완전한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답도 신은 생명이며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쉘링에 따르면 모든 생명이 생성과 고통에 지배를 받듯이 신도 자발적으로 그것에 종속된다. 모든 대립에 의한 현실화 안에는 필연적인 생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신은 인간적으로 고통 받는 신이며, 성경도 계시의 시기를 구분하면서 신이 모든 것 안에서의 모든 것(Alles in allem)이 되는 시기, 즉 그가 완전히 실현되는 시기를 먼 미래로서 정립한다. 쉘링은 계시의 시기들을 구분하면서 그것들을 관통하는 창조의 궁극 목적을 악이 선으로부터 나누어져서(즉 선과 구별되어 종속적 서열 속에서 조화를 이룸으로써) 영원히 비존재가 되게끔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계시의 끝에서는 신이 모든 것 안에서의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이 그에게 예속되어야 하며, 그의 아들 또한 신에게 예속되어야 한다. 예수에 상응하는 정신 역시 아직 최고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의 것은 사랑이며 사랑은 근거가 있기 전에 그리고 실존하는 것이 있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사랑으로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존과 근거라는 두 원리에 대한 절대적 무차별성을 의미하는 비근거(Ungrund)라고 칭해진다. 계시의 끝은 죽음과 함께 두 원리의 통일이 해체되는 것이다. 악은 더 이상 현실화되지 못하는 가능성으로서 비존재로 환원된다. 악은 더 이상 신의 사랑의 성스러움과 모순될 수 없다. 따라서 계시의 끝은 악의 선으로부터의 추방이며, 악을 완전한 비실재성으로서 설명하는 것이다.

맺는 말

두 가지 문제들, 즉 변신론과 연관된 악의 실재성의 문제 및 체계와 자유의 조화의 문제와 대결하면서 쉘링은 『자유』논고에서 인간 자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쉘링에 따르면 신은 창조시에 악을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로 소급되어야 한다. 쉘링은 자신의 자연 철학적 근본 구상으로부터 신 속에 내적인 이중성, 즉 신 속에 있는 근거와 신의 오성을 설정한다. 신은 본래 오성이 근거에 대해 지배적이어서 근거의 원리가 단지 섬기는 원리로서만 기능하고 오성의 원리가 근거의 힘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을 계시하기를 원하였다. 본래적인 신(오성)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근거로부터 정신으로 고양된 자기성인 인간에게서만 이러한 두 원리들의 신적인 연결을 깨뜨리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인간만이 쉘링에게서 자유를 정의하는 선과 악에의 능력을 갖는다. 게다가 쉘링이 말하는 인간의 자유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결단으로부터 야기되는 행동으로서 정의된다. 쉘링은 자신의 관념론적 사유로부터 자유로운 결정 행위를 그것에 의해 규정되는 개별적인 행동들에 선행시킨다. 여기서 시간이 생겨나기 이전에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결단은 시간 속에서 자신의 본질에 따라 행위하는 인간의 본질을 규정한다. 이로써 쉘링은 인간에게 선이나 악에 대한 선택의 자유뿐만 아니라 책임능력까지 부여하려고 한다. 쉘링은 이렇게 자신의 자연 철학적 체계로부터 자유를 오직 인간에게만 승인되는 선과 악에의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럼으로써 악에 대한 책임은 신에게가 아니라 인간에게 부과된다. 그러나 악에 대한 책임은 인간의 구체적인 역사적 현존재에 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외적 현존재에 속한다. 그런 한에서 지금의 역사적 인간은 책임있게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쉘링은 자신의 체계로부터 한편으로 선과 악의 능력이라는 살아 있는 자유 개념을, 다른 한편으로 책임의 문제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을 제공하고 있다. 쉘링의 이러한 입장은 자신이 『자유』논고를 통해서 개진하는 변신론적 구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쉘링의 『자유』논고의 탐구의 궁극 목적은 한편으로 인격신으로부터의 세계 창조가 악의 가능 근거로서의 근거의 원리를 포함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은 오히려 세계의 생동성과 윤리적 선의 필요조건이며, 다른 한편 현실적 악은 신의 의도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로써 쉘링의 변신론은 인격신과 역동적 세계 해석에 기초하여 항상 선택과 책임의 여지를 열어 놓는 윤리적인 변신론의 특성을 가지고 이전의 추상적 형이상학적 변신론 및 그에 기반한 인간 윤리의 문제에 대한 고찰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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