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철학에서 반성의 전개와 변증법의 형성
강 순전
독문 제목: Die Entwicklung der Reflexion und die Entstehung der Dialektik in der Philosophie Hegels
주제: 존재론, 논리학
주요어: 변증법, 논리학, 형이상학, 반성, 절대적 반성
요약문:
헤겔 철학에서 우리는 변증법(Dialektik)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철학방법론인 사변적 논리학을 이해한다. 그러나 변증법 혹은 변증론이라고 불리는 논리학의 분과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분석론(Analytik)에 대해 종속적인 위치를 점하는 것이었다. 헤겔에게서도 변증법은 처음에는 이 부정적 평가의 전통 하에서 이해되었다.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평가의 변화는 전통과의 단절 및 자신의 고유한 방법론의 수립을 의미한다. 헤겔이 전통에 따라 분류했던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형이상학적, 사변적 논리학으로 통합된다. 이러한 변화는 논리학의 방법인 반성의 발전과 결부되어 있다. 본래 오성의 능력에 속하는 반성이 자신의 제한을 벗어나면서 절대적 반성으로 된다. 절대적으로 된 반성이 이제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서술을 주관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되며, 따라서 양자의 구분은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된다. 형이상학을 통합한 논리학의 사변적 관점은 이같이 반성개념의 발전을 통해 논증될 수 있다. 이것은 헤겔철학의 초기에서부터 『정신현상학』까지의 철학적 모색을 관통하는 문제였다. 우리가 이 시기의 헤겔철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반성' 개념의 발전사가 곧 헤겔 변증법의 형성사라는 사실이다.
1. 들어가는 말
통상적으로 헤겔 철학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로 떠오르는 것은 헤겔 철학이 반성철학의 적극적인 반대자의 입장을 취한다는 점이다. 데까르뜨 이래로 객관을 대상으로서 주관에 맞세우고 주관적인 반성에 의해서 대상을 인식하는 반성철학에 반대해서 헤겔은 주관과 객관이 통일된 절대적인 앎의 영역에서만 참다운 학으로서의 철학의 서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이 헤겔 철학의 가장 두드러진 윤곽을 형성하는 한, 반성철학의 반대자로서의 헤겔의 인상은 적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 철학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와 대강의 서술은 이러한 첫 인상에만 머문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을 뚫고 내면을 들여다 보면 정반대로 보이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반성은 이미 초기부터 헤겔 철학의 중요한 방법론적 원리로서 다루어지고 있고, 반성을 원리적으로 반대하는 시기에조차도 헤겔은 반성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철학자의 길을 결단한 1801년 부터 헤겔은 쉘링과 함께 "절대적 형이상학(absolute Metaphysik)"을 표방하지만, 헤겔은 절대자의 파악을 위해 동시대인들과 같이 지적직관(intellektuelle Anschauung)이라는 신비적인 원리에 의존하지 않고 유한한 인간의 논증적(diskursiv) 인식을 절대적 인식, 절대자 파악의 논리로 고양시키려고 한다. 이것은 방법론상으로는 한갖 분리의 능력일 뿐인 유한한 반성을 동시에 통일의 능력이기도 한 절대적 반성으로 고양하는 문제, 형이상학적으로는 유한자의 무한자로의 이행의 문제, 헤겔 철학의 체계상으로는 유한한 인식을 대표하는 논리학에서 무한한 인식인 형이상학으로의 이행과 그를 통한 양자의 통일의 문제로 나타난다. 이 문제는 예나시대(1801-1807) 전체를, 예나시대와 프랑크푸르트 시대(1797-1800) 사이의 내용상의 연속성을 고려한다면, 초기부터 『정신현상학』(Ph nomenologie des Geistes)까지 이르는 헤겔 철학의 모색기를 관통하는 중심문제이다. 헤겔 철학 내에서 『정신현상학』이 갖는 비중은 그것이 학으로의 도입의 문제라는 형태로 위의 문제를 총결산하는 해답을 제시해 준다는 데 있다.
쉘링을 통해 자신의 철학자로서의 이력을 시작했고 그와 함께 『철학비판잡지』(Kritische Journal der Philosophie)의 공동편집자였던 헤겔은 절대자를 무차별적인 것, 인식 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쉘링과 애초부터 이 문제에 대한 다른 해답을 갖고 있었다. 유한자는 절대자로 고양되어야 하고, 부분은 전체로부터 파악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전체는 부분의 다양한 형식으로 분절화되어 표현되어야 한다. 때문에 헤겔은 항상 부분의 능력, 즉 구별의 원리인 반성에 주목한다. 반성에 대한 쉘링과의 이러한 시각차는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쉘링의 절대자를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에 비유하고 있는 자주 인용되는 쉘링비판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다. 헤겔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절대자는 "신적인 것의 순수한 자기직관일 뿐만 아니라 그 만큼 형식으로서, 발전된 형식의 온전한 풍부함 속에서 파악되어져야만 한다."(WW 3, 24; GW 9, 19) 이 절대자의 형식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반성의 일이다. 철학이 논증적 형식으로 서술되어야 하는 한, 철학적 작업에서 반성은 불가피하다. 반성철학의 반대자 헤겔도 자신의 철학의 서술을 위해 반성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는 반성을 주·객 분리의 인식론적 제한으로부터 떼어내어 객관적 반성으로 방법론화한다. 따라서 유한한 반성의 절대적 반성으로의 전개는 다름아닌 헤겔 변증법의 형성과정이다.
헤겔 철학의 공적이 형이상학에 역사성을 도입한 것이고, 이 점에서 역사철학이라는 특수 분과에만이 아니라 헤겔 철학 전체에 역사철학이라는 명칭이 부여될 수 있다고 한다면, 헤겔 철학에서 결과로서 결정화된 모든 개념은 그것의 형성과정을 들여다 봄으로써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결과는 과정을 포함한 전체라는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본 논문은 '반성' 개념의 전개를 추적해 봄으로써 헤겔 논리학에 대한 효과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2. 한갖된 분열의 원리로서 파악된 반성
청년헤겔 연구의 토대를 쌓은 푀겔러(O. P ggeler)는 헤겔이 쉘링에게 보낸 1800년 11월 2일자 편지를 분석하면서 청년기 헤겔의 철학적 발전을 근세철학의 결과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체계적 사변적 철학으로, 즉 피히테와 쉘링의 의미에서의 학으로 나아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자의 특징이 특히 베른시대(1793-1796)의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예나시대(1801-1807)에 귀속되는 특징이다. 그 사이의 프랑크푸르트시대(1797-1800)에 헤겔은 이미 "한갖된 적용으로부터 훨씬 멀어진다". 대학 졸업 직후 가정교사로 시작한 베른시대에 헤겔은 본질상 자율적인, 즉 스스로 법칙을 부여하는(selbst gesetzgebend) 인간 주관에 대하여 그에게 낯설고, 그 위에 군림하는 기독교의 율법(Gesetz)이 경직된 객관으로서, 억압적 현실로서 대립해 있다는 사실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찾았다. 헤겔은 실천이성과 자유라고 하는 칸트의 실천이성의 원리에 따라 율법성을 비판하고 제거해버림으로써 이 대립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횔덜린(F. H lderlin) 등의 친구들과 공동작업을 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았던 프랑크푸르트시대의 헤겔은 베른시대에 자신이 해결책으로 기대었던 근세철학 자체의 결함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헤겔은 횔덜린의 통일철학(Vereinigungsphilosophie)에 영향을 받아 종교적 실천에 의해 근원적인 통일에 도달하려고 한다. 1795년 1월 말경 헤겔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피히테 철학에 열광하고 있다고 쓴 횔덜린은 같은 해 4월 초에 이미 피히테 철학에 비판적인 「판단과 존재」(Urteil und Sein)라는 단편을 쓴다. 횔덜린은 판단하는 반성작용에 의해 원칙들을 정립하는 피히테를 비판하면서, 판단을 존재의 근원적 분리(Ur-teilung)로서, 존재를 그것에 선행하는 주관과 객관의 통일로서 규정한다. 헤겔은 횔덜린과 같이 반성을 동시대 철학의 방법으로서 규정하고 비판하지만, 통일을 횔덜린처럼 지적 직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실천에서 찾는다.
1797년의 「사랑」(Die Liebe)에 관한 단편 제 1판에서 헤겔은 대립에 대한 철학적 통일 방법인 오성과 이성을 비판하면서 사랑이라고 하는 종교적 감정에서 통일을 찾는다. 헤겔에 따르면 오성은 다양한 것을 그것의 다양성 속에서 그대로 존립케 하기 때문에, 그것의 통일은 그 자체 대립이다. 물론 다양한 것이 지니는 상이성은 서로에 무관심한 동일성들을 표현해 줄 뿐이지만, 현실의 변화라는 실천적 의식으로부터 출발하는 청년헤겔에게 세계는 인간 주관에 대해 무관심한 다양성으로서 현상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통일되어야 할 대립으로서 현상한다. 헤겔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나중에 동일성이 상이성과 대립을 거쳐 모순에 의해 근거 속에서 통일되는 과정으로 방법론화한다. 청년헤겔에게는 철학적 이성 역시 규정된 것에 자신의 규정행위를 단적으로 대립시키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오성의 제한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성과 이성이라는 두 철학적 능력은 대립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들 속에는 유한자만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참다운 통일, 살아있는 통일은 철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것의 감정인 사랑에 의해서만 도달되어질 수 있다. 철학이 우선 주관과 객관을 분리시키고 그 다음에 서로를 관계시키는 고찰방식인 반면에 사랑은 거기서 느끼는 것과 느껴지는 것이 서로 대립될 수 없는 감정이다. 유한자의 극복을 위한 능력으로서 사랑은 본래 종교적인 방식의 통일이다. 그 속에서는 삶이 전체로서 느껴지기 때문에 어떠한 분리도 의식되지 않는다.
이러한 구분을 헤겔은 1798년의 단편 「믿음과 존재」(Glauben und Sein)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헤겔의 문제는 어떻게 유한자의 대립을 벗어나 무한자의 통일에 도달하느냐이다. 헤겔은 유한자에서 무한자로의 이행을 위한 두 가지 능력으로서 증명(Beweisen)과 믿음(Glauben)을 구분한다. 그는 증명을 "의존성을 보여주는 것(die Abh ngigkeit aufzeigen)"이라고 특징짓는다. 대립자들은 의존적인 것들이고 통일은 독립적인 것(das Unabh ngige)이다. 통일은 대립자들에 의존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대립자에, 즉 의존자 일반에 대립되어 있다. 그런 한에서 통일은 그 자체 대립자에 의해 제한되어 있고, 이런 의미에서 또한 의존적이기도 하다. 독립적인 것이 갖는 이러한 의존성은 지양되어져야 하고 제한되지 않은 독립적인 것, 새로운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통일은 다시금 의존성에 떨어지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의존적인 것과의 대립 속에서만 독립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이처럼 무한히 진행한다. 이같이 증명은 통일의 존재, 독립적인 것에 도달하려고 부단히 애쓰지만 항상 의존성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통일의 존재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고, 통일의 존재는 그에게 항상 당위(Sollen)로만 남는다. 『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에서 헤겔은 당위를 이렇게 정의한다: "당위란…제한을 넘어섬이지만, 그 자체 단지 유한하게 넘어섬(endliches Hinausgehen)이다. 따라서 그것은 유한성의 영역에서 자신의 위치와 타당성을 갖는다."(GW 21, 123) 당위는 유한자의 무한자를 향한 노력이지만 유한성을 벗어날 수 없는 노력인 것이다. 여기서 헤겔은 칸트와 피히테의 철학을 암시하고 있다. 칸트에게서 절대적 무제약자는 한갖 규제적 이념으로서 당위에 머문다. 헤겔의 비판은 더욱 직접적으로 피히테의 다음과 같은 표현에 적중한다: "최고의 통일은…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에 의해 산출되어져야만 하지만 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nicht etwas, das ist, sondern etwas, das durch uns hervorgebracht werden soll, aber nicht kann)." "대립자는 절대적 통일이 산출될 때까지 결합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절대적 통일은 그 자체 불가능한 것이다" 칸트와 피히테의 철학은 절대적 통일에 대한 당위에만 머물 뿐 절대적 통일의 존재에 도달하지 못한다.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칸트와 피히테의 철학은 증명하는 사유 자체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다.
반면 헤겔은 믿음을 "통일된 것이 우리의 표상 속에 현전하는 방식"(WW 1, 250)이라고 표기한다. 통일은 믿음의 방식으로 의식 속에 들어온다. 더욱이 믿음은 통일이 인간에게 의식되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러나 사유에 대한 믿음의 우위는 헤겔의 해결이 아직 논리적 방법과 결합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논리는 사유의 형식으로만 서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은 아직 칸트와 피히테 철학에 대한 비판에다가 절대적 통일에 대한 어떠한 철학적 논증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청년헤겔은 단지 무한한 존재, 신 혹은 절대자, 생(生)등으로 불리워지는 절대적 통일을 오성의 능력인 반성에 대립시킨다. 전자는 후자에 선행하고 후자를 가능케 하지만 인식될 수는 없다. 즉 후자의 형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러한 견해는 초기 관념론의 특징을 나타내지만, 헤겔은 횔덜린이나 쉘링과는 달리 무한한 존재가 유한한 인간 의식 속에 현재하게 되는 방식을 지적 직관으로서가 아니라 믿음 속에 표상되어지는 것으로서 간주한다. 이렇게 일종의 의식인 믿음 속에서 통일을 표상하는 것이 나중에 의식 속에서 반성에 의해 통일을 구성하는 것으로 변화하는 데에서 헤겔의 철학적 방법의 발전이 성립한다. 철학적 방법이란 어떻게 절대자가 인간 의식 속에서 분절화되는 유한한 반성의 형식으로 표현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유한자와 무한자의 대립이 아닌 매개와 통일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방법에의 맹아를 최초로 보여준 단편이 바로 「사랑」 제 2판(1798)이다.
헤겔은 여기서 생의 발전과정을 "통일된 것, 분리된 것들, 재통일된 것(das Einige, die Getrennten und das Wiedervereinigte)"으로 도식화한다. 최초의 통일 속에는 대립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무의식적인 것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 가능적 대립을 현실화시키는 것이 반성이다. 세계의 다양성은 통일을 분리시키고 대립자를 산출하는 반성의 기능으로부터 근거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의 재통일 속에도 분리된 것이 아직 남는데, 물론 "더 이상 분리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통일된 것으로서(nicht mehr als getrenntes, sondern als einiges)" 그렇다. 따라서 참다운 통일은 모든 대립을 배제하는 통일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는 통일이다. 이로써 한갖된 분리의 능력인 반성이 헤겔의 사고 속에서 갖는 위상이 은밀히 제고된다. 1798/99년의 단편 「기독교 정신과 그 운명」(Der Geist des Christentums und sein Schicksal)에서 헤겔은 "발전에 의해 분리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WW 1, 318)고 말하면서 대립을 "재통일의 가능성"(WW 1, 345)이라고 표현한다. 무엇보다도 소위 「1800년의 체계단편」(Systemfragment von 1800)의 정식 "결합과 비결합의 결합(Verbindung der Verbindung und der Nichtverbindung)"에서 반성 및 그 규정인 대립이 진정한 통일을 위한 필수적인 구성요소임이 발견된다.
이러한 반성의 은밀한 평가절상과 생의 표현에서 반성의 역할이 갖는 함축에도 불구하고 신학자 청년헤겔의 궁극적인 입장은 철학에 대한 종교의 우위이다. 1800년의 단편에서 헤겔은 명백히 "철학은…종교와 더불어 중지되어야 한다"(WW 1, 422f)라고 쓰고 있다. 오성과 이성을 자신의 방법으로 삼고 있는 철학은 유한성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진정한 무한을 자신의 영역 밖에 정립해야 한다. 따라서 철학에는 자기비판이라는 부정적 역할과 더불어 종교를 위한 안내자(Wegweiser)라는 과제만이 부과된다. 헤겔이 이렇게 철학의 역할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한, 생에 대한 철학적 표현 또한 불충분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생은 그것이 표현되어지는 바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의 바깥에 있는 존재"이다. 거꾸로 말해서 철학적 반성표현은 자신이 표현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밖에 서 있는 것을 나타낸다. 신학자로서 헤겔이 절대적 통일의 원리를 종교적 감정에서 찾는 한, 철학의 방법으로서의 반성은 원칙적으로 분리의 원리일 뿐 종합의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3. "철학함의 도구"로서의 반성
1800년 11월 2일 헤겔은 프랑크푸르트로부터 예나에 있는 친구 쉘링에게 자신의 학문적 수양이 학(Wissenschaft)으로 나아가야 했고, 청년기의 이상이 "반성의 형식, 즉 체계"로 변화되어야 했다고 편지를 쓰면서,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예나의 "문필의 향연(literarischer Saus)"에 빠져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다. 우리가 1800년의 단편에서의 헤겔의 궁극적인 주장에 주목한다면, 신학자에서 철학자로의 이러한 변신은 갑작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역사적·비판적 쉘링전집의 편집자인 크링스(H. Krings)는 헤겔의 청년기의 이상이 철학체계로 변형되는 데 쉘링의 영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반면 새 헤겔전집의 편집자인 뒤징은 이러한 변화를 헤겔 사상의 내재적 발전으로 규명한다. 그는 유한한 정신과 신적인 정신 사이의 본질적 유사성으로부터 이러한 발전의 가능성을 도출하고, 생, 최고의 통일에 대한 개념적 이론적 언급의 진리 요구가 제기된다는 사실 및 생의 서술을 위한 공동 구성요소로서의 반성의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사실 속에서 발전의 필연성을 발견한다. 생 혹은 무한자를 인간이 말할 수 없고, 때문에 단지 믿고 기도해야만 한다면, 이러한 종교적 행위들이 참되거나 옳다는 타당성 주장이 철학적으로 근거지워질 수 없다. 사랑과 같은 종교적 감정은 직접적이고 객관화될 수 없기 때문에 일면적이며, 반성에 의한 객관화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기독교 정신과 그 운명」에서 헤겔은 "사랑 자체는 아직 불완전한 본성이다. 행복한 사랑의 계기들 속에는 객관성을 위한 어떠한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성은…객관성을 다시 생산해낸다." 따라서 진정한 종교 속에는 "반성과 사랑이 통일"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WW 1, 370) 1800년의 단편의 결론부도 "신적인 감정은 반성이 부가됨으로써 완성되어야 한다"(WW 1, 423)는 주장을 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시대에 철학에 대한 종교의 우위라는 근본주장 이면에서 의식되어 은밀히 제고되어 왔던 반성의 역할이 이제 예나시대에서는 전면에 부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시대에 헤겔이 마지막으로 집필했던 1800년의 「기독교 종교의 율법성」(Die Positivit t der christlichen Religion)의 시작부에 대한 개고( berarbeitung)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예나로 가는 길의 이정표에 마주치게 된다: 종교적 탐구가 "개념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종국에는 유한자-무한자 관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고찰로 이행해야 할 것이다."(WW 1, 225)
철학자이기를 결단한 헤겔에게 이제 반성과 그것이 산출한 개념은 헤겔 자신의 "철학함의 도구"로 된다. 프랑크푸르트의 헤겔이 근원적인 통일을 개념적으로 해명하려고 시도하면 할 수록 그 만큼 그는 근원적 통일의 철학적·형이상학적 고찰로 다가갔다. 또 철학적 고찰이 불가피할 수록 반성의 명백한 사용 또한 불가피했다. 이러한 전환의 수용이 철학자의 길을 결심한 헤겔의 심정적 결단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전환은 무한자 혹은 절대자가 철학적으로, 즉 반성을 매개로 하여 파악가능하다는 확신을 함축한다. 절대자는 반성을 도구로 삼는 철학에 의해 인식되어질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한다. 철학은 절대자의 서술을 위한 반성규정들의 연관, 즉 체계로 구축되어야 한다. 이로써 철학은 이제 반성에 의한 절대자의 체계적 서술이 된다. 절대자가 의식에 제한없이 매개되어질 수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 이러한 절대적 형이상학의 가능성은 결국 유한한 반성이 어떻게 무한자를 파악할 수 있도록 조작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헤겔은 반성이 이성적으로 됨으로써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한자-무한자의 관계를 철학 내에서 해명해야 하는 한, 이제 이성 역시 대립에 묶여 있는 유한한 능력으로 파악되어서는 안되며 유한-무한의 대립을 극복하는 적극적 능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헤겔은 이제 절대자에 부적합하다고 비판했던 동시대의 철학적 방법인 반성을 "고립된, 순수한 혹은 한갖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중립적 의미의 반성과 구별한다. 반성은 분리의 능력이라는 자신의 본성에 고착할 때 고립된 반성으로서 제한을 산출하지만, 이성과 결합하면 절대자를 구성하는 철학의 도구로 된다. 반성은 이제 더 이상 그 자체 비난의 말이 아니다. 헤겔은 전에 자신이 쓸모 없다고 다락방에 던져 넣었던 도구들을 다시 끄집어내 하나하나 먼지를 털고 그것들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다. 이것은 물론 단순한 임명식으로 완수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라, 헤겔 자신이 기존의 도구들에서 새로운 조작법을 개발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사랑」 단편이 서술한 생의 원환적 발전과정이 다시 절대자의 도야과정이라는 형태로 형이상학적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절대자는 자신을 도야하고 형성시켜가는데, 이 도야를 통해 절대자의 현상이 절대자로부터 고립되어 자립적인 것으로 고정된다. 이로부터 절대자와 독립적인 것으로 고정화된 그것의 현상 사이에 대립이 생겨난다. 이러한 경직화된 양분(Entzweiung)에 직면하여 철학은 "총체성의 회복에 대한 욕구"(GW 4, 15)를 느낀다. 이 철학의 욕구는 현상을 다시 절대자로 귀환시킴으로써, 그것을 절대자에 의해 제약된 상대적인 것으로 격하시킴으로써만 충족될 수 있다.
헤겔의 진단에 따르면 여기서 자립화된 현상이 다름아닌 반성적 사유에 의해 지배되는 당대의 문명을 구축하는 오성의 건축물이다. 헤겔은 이성을 통해 이러한 오성의 경직성을 용해하여 분열과 대립을 통일로 지양하려는 것이다. 반성은 그 자체 분리와 제한의 능력으로서 대립자들을 서로 고립된 것으로서 제시할 뿐이다. 이성은 반성으로 하여금 이 유한한 대립자들을 고립된 자립성으로서 나란히 존립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각각에 상응하는 대립자들을 보충함으로써 완성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프랑크푸르트시대에는 「믿음과 존재」에서의 헤겔의 사유가 보여주듯이, 반성의 의존자(das Abh ngige)가 이성에 의해 추동되어 통일이라는 독립적인 것(das Unabh ngige)으로 향하지만 무한진행에 빠질 뿐이라고 파악되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신학자가 이성의 활동 속에서 한갖된 무한진행만을 보았다면, 이제 예나의 철학자에게 이성은 무제약성의 이념으로서 칸트에게서처럼 긍정적인 목표규정을 포함한다. 물론 헤겔은 이성의 규제적 기능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체계구성을 위한 적극적 역할을 부여한다. 『피히테와 쉘링 철학체계의 차이』(Differenz des Fichteschen und Schellingschen Systems der Philosophie)에서 헤겔은 이성을 한편으로 오성을 객관적 총체성으로 이끄는 완성의 능력으로서 기술하는가 하면(GW 4, 17 참조), 다른 한편 절대자의 현상형식인 상대적 동일성을 체계로 구성하는 원리로서 기술한다(GW 4, 31 참조). 더 나아가 이성은 절대자 자신의 현상으로까지 규정된다.(GW 4, 10 참조) 이러한 이성의 근본적인 규정은 이성을 총체성의 능력으로, 이성의 전개를 체계의 방법으로 만든다.(GW 4, 31 참조) 그러나 이성만으로는 아무것도 구성할 수 없다. 절대자의 구성을 위해 이성은 항상 오성이나 반성을 필요로 한다. 반성과 이성의 결합이 반성에게 의미하는 것은 반성이 제한의 능력이라는 자신의 본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은 반성에게 분리에만 고착하는 자신의 본성을 포기하고 완성에로, 절대자에로 향할 것을, 즉 절대자에 관계할 것을 요구한다. 반성은 절대자와 관계맺을 때 무한하게, 절대적으로 되어야 한다. 이러한 반성, 이성적 반성만이 절대자를 구성할 수 있다. 반성이 절대자와 관계맺는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반성이 자신의 자립성을 부정하고 자신을 절대자의 정립된 존재(Gesetztsein des Absoluten)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유한자와 무한자의 동일성이 생성되고 절대자가 의식에 구성된다. 헤겔은 이제 지의 총체성(Totalit t des Wissens)을 학의 체계(System der Wissenschaft)라고 칭한다.(GW 4, 30 참조) 철학의 체계가 가능케하는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은 두 가지 관점에서 수행된다. 그것은 인식론적으로는 반성이 자신의 본성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되는 것이며, 존재론적으로는 유한자가 무한자에 자신을 대립시키지 않고 무한자의 계기로서 정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 지의 체계를 구성한다는 것은 유한한 부분지(Teilwissen) 혹은 개별지(einzelnes Wissen)를 지의 유기적 총체성의 부분으로서 파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반성을 이성적으로 조작하는 방법적 절차는 이미 이야기했듯이 유한하고 일면적인 반성규정을 그것에 그것과 대립된 규정을 보충함으로써 완성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반대와의 결합은 모순으로의 귀결을 의미한다. 이성은 반성규정이라는 유한자 속에서 모순을 도출하고, 그럼으로써 유한자의 타당성을 지양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한자는 모순적인 존재이며, 유한자의 "최고법칙"은 "자기부정(Vernichtung)" 혹은 "자기파괴(Selbstzerst rung)"이다.(GW 4, 18) 유한자는 모순에 부딪혀 자신의 독자성, 타당성을 상실하고 무한자로 이행한다. 헤겔은 또한 반성이 표현하는 유한한 인식의 영역을 논리학이라고 표현하면서, "논리적 인식은 자신의 최고법칙으로서 이율배반을 인식해야만 한다"(GW 4, 82)고 말한다. 모순의 인식은 다름 아닌 유한자에서 무한자, 유한한 인식에서 무한한 인식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나시대 초기의 헤겔은 모순 속에서 부정적인 파괴의 능력만을 보기 때문에, 반성의 이성적 조작은 유한한 반성규정의 파괴만을 결과할 뿐 무한한 인식을 초래하지 못한다. 후자의 역할을 위해 헤겔은 선험적 직관을 요청한다. 선험적 직관은 궁극적으로 동시대인들의 지적 직관과 같은 것으로서 프랑크푸르트시대에 의존했던 종교적 해결이 갖는 신비적 요소의 잔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헤겔이 구상한 반성에 의한 절대자의 서술의 방법이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철학적, 즉 반성을 매개로 한 절대자의 인식이라는 새로운 요구에 따라서 볼 때, 반성이라는 매체 속에서 서술될 수 없는 이러한 직관은 다름 아닌 절대자 인식의 방법적 유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성의 능력이 선험적 직관에 의해 제한되는 한 반성 표현은 절대자의 한갖 부정적인 형식으로서 표시된다. 반성을 근본구조로 갖는 의식 속에 절대자는 온전히 표현될 수 없고 항상 일면적으로만, 대립적인 것으로서만 표현된다. 절대자를 구성해야 하는 의식에게 대립적인 것은 불충분한 것으로 파악되어져야 하며, 의식의 반성을 절대자 구성에로 이끄는 이성에 의해 대립적인 것의 불충분성은 그에 상응하는 대립자에 의해 보충되어 모순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반성을 추동하는 이성이 절대자의 현상이라면, 이성이 반성을 통하여 표현하는 모순은 실로 절대자의 원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예나 초기의 헤겔에게 모순은 의식의 유한성에 의해서 야기되는 불가피한 표현방식을 가리킬 뿐이다. 그래서 절대자는 유한한 의식의 구조에 구속되어서 단지 부정적으로만 현상한다. 반성 표현의 목표, 마지막 반성규정인 모순은 절대자의 형식적인 표현이며 그것은 선험적 직관에 의해 보충되어 내용을 얻어야 한다. 헤겔은 아직 반성이 표현하는 절대자의 개념적 서술 속에서 절대적 형식이 아니라 내용과 대립해 있는 일면적인 형식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헤겔은 이 사태를 1801/02년의 「논리학과 형이상학」(Logik und Metaphysik)에서 "부정적 인식"이라는 표현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헤겔은 유한한 인식을 대표하는 논리학과 무한한 인식인 형이상학을 구분하고 반성의 영역인 논리학을 형이상학으로 인도하기 위해 본래 후자에 속하는 이성을 전자 속에서 작용케 한다. 이성은 논리학 속에서 유한자가 지탱할 수 없음을 나타내주는 기준인 모순을 도출하는데, 이 모순은 무한자 혹은 절대자의 논리학 속에서의 부정적 형상이며 논리학 속에서의 이성의 활동은 무한자의 부정적인 현재(negative Pr senz)이다. 절대자의 긍정적인 현재는 형이상학에서만 가능하지만, 아마도 최초의 논리학 구상일 이 강의안에서는 서술되지 않고 있다. 당시의 수강노트도 논리학에서의 대립적 논리규정들의 종합이 실로 불충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형이상학에서의 온전한 종합이 방법적으로 어떻게 서술될 수 있는 지 해명되어지지 않는다. 형이상학의 내용이 강의되지 않은 최초의 논리학 구상에서 형이상학에서의 온전한 종합은 한갖된 프로그램으로만 남는 것이다.
반성에 의한 절대자의 구성의 문제, 유한자에서 무한자로의 고양과 그를 통한 양자의 통일의 문제에서 예나시대 초기의 헤겔이 고안한 방법은 유한한 반성규정을 그것의 반대와 결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헤겔은 통일로부터 분리된 대립자가 자신의 반대자와 결합되어 완성되어야 한다는 의식에만 머물러 있을 뿐, 이 반대와의 결합이 어떻게 방법론적으로 전개되어 완성을 성취할 수 있는 지를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초기 논리학의 수강노트에서도 방법상으로 대립자들의 통일이라는 측면만이 확인되고, 1802년의 논문 「철학에 대한 회의주의의 관계(Verh ltnis des Skeptizismus zur Philosophie)」또한 유한한 반성규정의 일면성을 그에 대립된 규정을 통해 보충함으로써 부정하는 "절대자 인식의 부정적 측면"(GW 4, 207)만을 주제화하고 있다. 체계로서의 학문에로 도입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진정한 회의주의"(같은 곳)는 통상적 회의주의와 구별되어 학적 회의주의(wissenschaftlicher Skeptizismus)라고 불리운다. 뒤징에 따르면 학적 회의주의는 철학에로의 입문의 역할을 하는 논리학처럼 "유한자와 그것의 무실성(Nichtigkeit)을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것은 절대자 인식의 충분한 방법이 아니며, 따라서 나중의 변증법처럼 철학적 체계의 방법이 아니라 부정적 변증법이다. 바움(M. Baum)도 이 회의주의의 부정적 측면은 "철학의 긍정적 측면이 여전히 절대자의 직관에 유보되기 때문에 철학의 한 부분 내지 측면일 뿐, 전체 철학의 절대적 방법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학적 회의주의, 논리학에 상응하는 유한한 반성규정들의 서술을 헤겔은 1802년 가을에 쓰여진 논문 「자연법의 학문적 취급방식에 관하여( ber die wissenschaftliche Behandlungsarten des Naturrechts)」에서 처음으로 "변증법(Dialektik)"이라고 칭한다. 여기서 변증법은 "관계일반은 무 자체이다"(GW 4, 446)라는 사실만을 나타낸다. 예나시대 초기의 헤겔은 변증법을 무한한 인식(형이상학)과 분리된 유한한 인식(논리학)의 체계로 보고, 그 아래에서 유한한 반성규정이 자신의 반대 속에서 소멸하는 부정적 인식만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헤겔이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라는 전통적 구분에 따르는 한 그는 변증법에 대한 부정적 이해의 전통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두 분과가 통합되면서, 즉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의 방법적 서술이 완성되면서 변증법은 헤겔 철학의 온전한 방법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분리의 사실상의 해체는 1804/05년의 논리학에서 이루어진다.
4. 반성의 논리로서의 변증법
1804/05년의 『논리학, 형이상학, 자연철학』(Logik, Metaphysik, Naturphilosophie)에서 헤겔은 논리학을 유한한 인식으로서, 형이상학을 무한한 인식으로서 서술할 것을 계획한다. 그러나 사실상의 서술에 있어서 양자는 서로 구분되어지지 않는다. 이 구별은 우선 목차상의 구분에 있어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는데, 왜냐하면 논리학에 이미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지닌 무한성이라는 범주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헤겔은 여기서 유한한 규정들과 무한성 사이의 구별의 기준을 더 이상 직관과 반성의 차이에서 찾지 않고 반성의 상이한 종류, 즉 "우리의 반성(unsere Reflexion)"(GW 7, 29)과 "절대적 반성(absolute Reflexion)"(GW 7, 33) 사이의 차이에서 찾는다. 유한한 범주들에 있어서는 우리의 반성의 형식이 그 내용과 외적인 관계를 맺는다. 반면 무한성은 이 구별을 해체시키고, 우리의 주관적인 반성을 그 객관적인 내용과 통일시켜서 절대적 반성으로 된다. 무한성은 더 이상 논리적 내용을 그에 낯선 우리의 반성에 의해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규정 자체의 기술이다. 이러한 구분은 주·객 분리의 제한에 사로잡혀 있는 자연적 의식의 운동을 서술하는 『정신현상학』과 그 결과로서 제한으로부터 벗어난 『논리학』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1804/05년의 저작은 프로그램상 우리의 반성과 절대적 반성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현상학』에서 처럼 주관과 객관의 통일을 명시적으로 논증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서술에서 보여지는 이 구분의 파괴는 헤겔의 부주의가 아니라 헤겔의 방법론적인 탐구의 필연적인 귀결을 시사해준다. 우리는 이 과도기적인 작품에서 헤겔 변증법의 형성을 위한 중요한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반성 일반"이라는 용어는 본래 "타자로의 이행"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아직도 헤겔이 프랑크푸르트시대에서처럼 반성의 기본적인 능력을 분리와 그에 따른 타자로의 이행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때문에 반성에 의해 지배되는 유한자 자체는 무한히 타자에로 진행할 수 있다. 무한진행은 유한한 규정들의 반성이 무한한 이행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로의 복귀로서 사유될 때 비로소 지양될 수 있다. 1804/05년의 논리학에서 유한한 반성규정들은 그것들의 본질인 무한성에로 귀환한다. 무한자 쪽에서 볼 때 이 귀환은 무한자가 유한자의 무한진행을 자신에게로 되돌리는 것이다. 유한자를 환수한, 따라서 유한자를 자신 안에 포함하는 무한은 진무한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무한은 자신의 타자로부터 자기 자신에로 귀환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귀환은 유한자 쪽에서는 자기 내로의 반성(Reflexion-in-sich)으로서 나타난다. 무한자에게로 귀환한 유한자는 무한자 속에 있는 유한자라고 할 수 있다. 유한자가 무한자 속에 있다함은 유한자가 무한자의 지배 하에 있음을 의미하며, 때문에 유한자는 끊임 없이 자신을 지양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무한자는 유한자의 피안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한자 자체 안에서 작용하는 원리로서 파악된다. 이전의 사유에서는 논리학과 형이상학, 유한한 인식과 무한한 인식의 영역이 원칙적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후자에 속하는 이성의 기능이 전자 속에서 작용하기는 하지만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은 전자의 타당성을 일괄적으로 부정한 후에 단번에 후자로 이행하는 일회적 사건으로 생각되었다. 이제 무한자가 유한자의 내재적 원리로서 파악됨으로써 무한자는 유한자 속에 있고, 유한자가 무한자의 지배 하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유한자는 무한자 속에 있다. 이같은 상호내재를 통해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이 설명된다. 통일은 유한자 쪽에서는 유한자가 자신을 지양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내로, 자신의 참다운 본질인 무한자로 반성함으로써 성취된다. 여기서는 유한자를 통해 표현되는 분리 뿐만 아니라 유한자의 자기복귀를 통해 표현되는 분리의 통일 또한 확인될 수 있다. 이러한 반성은 더 이상 내용과 형식의 분리 하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분리의 능력과 결합의 능력 모두를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헤겔은 '절대적 반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절대적 반성의 운동은 이미 최초의 유한한 범주들의 전개 방식에서도 발견된다. 유한자는 자기 자신의 타자로 이행하고 이로부터 다시 자기 자신으로 귀환한다. 타자로의 이행에서 분리가, 자기 내로의 복귀에서 이 분리의 통일이 생긴다. 이전의 사유는 분리의 통일에서 유한자의 추상적인 부정만을 보았다. 말하자면 대립을 환수한다는 것은 그것을 절대적으로 절멸시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때문에 유한한 규정이 자신의 반대와 결합되어야 한다는 의식은 절대적인 무만을 결과했지, 이 결합이라는 무로부터 새로운 규정의 산출을 방법적으로 서술하지 못했다. 초기 논리학의 수강노트에서도 유한한 규정들의 단순한 열거만이 확인될 뿐 하나의 유한한 범주에서 다른 유한한 규정으로의 진행이 방법론적으로 조작되고 있지 않다. 이제 1804/05년의 논리학에서 이 자기 내 복귀는 한갖 타자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는 대립의 통일이 아니라, 부정적 통일로서 다시금 자신을 대립으로 전개시킨다. 대립자들의 결합인 부정적 통일은 대립자들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규정성을 지양된 형태로이지만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규정적 부정이다. 그것은 추상적인 무로서의 결과가 아니라 특정한 사태의 부정을 통해 결과한, 따라서 특정한 내용을 지닌 규정적 무이다. 한편 자신을 다시금 대립으로 전개시킨다는 점에서 통일은 또한 자기 자신에 부정적으로 관계하는 것, 자기관계하는 부정성이다. 이 저작에서 헤겔은 명백히 "자기 자신에 관계하는 부정"(GW 7, 6)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헨리히는 헤겔이 이 저작에서 이미 자기관계하는 부정성이라는 온전히 발전된 개념형식에 도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 저작에서 규정적 부정이나 자기관계적 부정성 같은 방법적 원리들이 명시적으로 주제화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부정을 통해 대립을 산출하는 부정성은 자기관계하는 부정이기 때문에 자신의 부정, 대립을 다시 자기 자신에로 환수한다. 분리로부터의 대립의 통일을 헤겔은 타자로부터 자기 자신으로의 귀환이라는 수사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타자로부터 자기 자신으로 복귀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중화를 통해 생겨난 타자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것, 타자가 자기 자신과 같음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타자를 자기 자신으로 발견"한다는 것(GW 7, 173)은 이 타자의 규정이 곧 자기자신의 타자, 자신의 지속적 규정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타자로의 이행은 동시에 자기 내로의 귀환, 자기 내 반성이다. 이로써 통일과 대립, 대립과 통일을 반복하는 유한한 범주들의 진행은 자신을 분리시킬 뿐 아니라 이 분리를 다시 통일시키는 절대적 반성의 활동으로서 나타난다. 전개의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규정들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반성은 이 상이한 규정들의 진행 속에서 관철되는 하나의 동일한 원리이다.
헤겔은 논리학의 마지막 범주인 '인식'(Erkennen)을 통해서 지금까지 논리학을 지배해 온 범주의 운동을 1) "개념자체" 2) "개념의 탈자(Au ersichkommen) 혹은 타자로 됨" 3) "이 타자로 됨의 지양"이라는 삼 단계로 도식화하고 (GW 7, 113), 이 분리하고 통일하는 인식의 원환운동을 "절대적 반성"이라고 표기한다 (GW 7, 120). 헤겔에 따르면 유한한 규정들은 자신의 본질인 '인식'에서 "자체"(das Ansich)(GW 7, 120) 혹은 "자기동등한 자기 내 반성 자체"(GW 7, 123)에 도달하는데, 이것들은 곧 형이상학의 규정들로서 서술된다 (GW 7, 130 참조). 이렇게 볼 때 논리학의 방법적 원리가 다름 아닌 형이상학이다. 헤겔은 논리적 규정을 끊임없이 자신의 반대로 소멸하는 것으로서, 반면 형이상학의 규정을 자기 자신에 머무는 것으로서 구상한다 (GW 7, 127 참조). 또 논리학의 서술을 "변증법적 논의"(GW 7, 111)라고 규정하고, 우리의 반성의 운동인 변증법은 사태 자체의 운동이 아니라 주관적인 운동이라는 의미에서 한갖 형식적일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1804/05년의 헤겔은 변증법을 아직 절대적 방법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종속적인 위상만을 부여한다. 그러나 바움의 지적대로 이러한 변증법의 평가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구별에 따른 서술 대상의 성격이다. 소멸하는 것과 지속적인 것이라는 대상의 특성상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사실상의 서술에 있어서 구별되어지지 않는다. 형이상학의 규정들 또한 타자로 됨과 자기복귀의 운동을 통해 실현되어지는 한, 변증법은 이미 헤겔 철학 일반의 방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헤겔이 전통에 따라 고수했던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구분은 사실상의 서술에 있어서는 목차상의 구분 뿐만 아니라 방법상으로도 견지될 수 없음이 밝혀진다. 더욱이 헤겔이 본래 계획했던 변증법의 지위와는 반대되는 것을 사실상의 서술 속에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논리학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의미에서 논리학에서 떼어내진 것이기 때문이다. (GW 7, 127, 131, 137 참조) 반면 초기 논리학은 형이상학의 절대적 동일성으로부터 추상됨으로써 생겨난다. 여기서 "떼어낸다"는 것은 한갖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이 논리학을 지양된 것으로서 자신 안에 포함한다는 의미 또한 포함하고 있다. 논리학에서 부정되는 것은 변화라는 성질이 귀속되는 대상의 특성이며, 보존되는 것은 다른 서술대상인 형이상학에서도 지속되는 변증법이라는 방법이다.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서술대상의 차이가 그것들의 방법의 연속성을 중단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1804/05년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논리학의 방법의 형이상학에로까지의 확장은 나중에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통일이 사변적 논리학이 된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유한자 무한자의 통일 혹은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구별의 해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절대적 반성이다.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방법상의 통일 하에서는 절대적 반성과 구별하여 논리학에 우리의 반성을 할당하는 것은 단지 명목상의 일일 뿐이며, 절대적 반성이 사실상 양 분야를 관통하는 통일적 방법인 것이다. 절대적 반성은 예나 초기의 헤겔이 절대자를 의식에 구성하려는 과제를 방법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예나 초기에 절대자는 반성의 제한에 얽매여서 의식에 부정적으로만 현상하였고, 이 부정성을 넘어서기 위해 선험적 직관의 긍정적 인식이 요청되었다. 그러나 절대자가 철학적으로, 개념적으로만 파악되어야 한다면 반성은 선험적 직관의 도움없이 홀로 절대자를 파악해야 한다. 헤겔은 이제 1804/05년의 저작 속에서 반성을 절대화함으로써 반성 홀로 절대자를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절대적 반성" 내지 "총체성을 띤…반성"을 "직관"과 동일시한다.(GW 7, 124) 이것은 반성이 이제 절대적인 것으로서 직관으로부터 통일의 능력도 떠맡게 됨을 의미한다. 이로써 직관과 반성의 이분법이 해체되는데, 이것은 헤겔의 방법의 수미일관한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래 지적 직관은 독일관념론자들에 의해 부분들을 그것들의 총체성 속에서 파악하는 것으로서 파악되었다. 그러나 헤겔에게서 직관은 피히테나 쉘링에게서와는 달리 시작원리가 아니라 절대적 반성의 매개에 의해 실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매개과정의 끝에서야 비로소 도달되어질 수 있는 전체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총체성의 인식은 더 이상 직접적인 것이 아니며, 때문에 '직관'이라는 명칭과 어울리지 않는다. 점점 더 철학적 방법의 연구에 몰두해가는 헤겔은 이미 "지적 직관"이라는 말이 포함하는 파악불가능한 의미로부터 멀어진다. 지적 직관이라는 의미에서의 직관은 본래 프랑크푸르트시대의 용어 "느낌"(Gef hl)과 동일한 사상적 맥락에 속하는 것인데, 헤겔은 이미 『차이』저작에서 이 용어를 거부하였다. 헤겔은 이제 대립의 통일을 직관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반성의 측면에서 수행한다. 직관을 통합하는 반성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타자로 양분될 뿐만 아니라, 이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과 다시 동일해진다. 이러한 절대적 반성에 의한 계기들의 남김없는 매거에 의해서 절대자가 반성의 형식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 구성의 계열의 끝에 놓여 있는 것이 형이상학의 마지막 규정인 절대정신이다. 이제 헤겔은 선행하는 모든 규정들을 정신으로서의 절대자의 유한한 계기들로 설명한다. 이러한 파악에서도 우리는 유한자와 무한자,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구별이 무의미함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목적(Telos)인 무한자는 피안, 즉 분리된 영역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때그때의 모든 이행국면 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라는 분류에도 불구하고 1804/05년의 저작은 사실상 유한자와 무한자를 하나의 목적론적(teleologisch) 발전 속에서 통일시키고 있다. 무한자는 원리로서 유한자 속에서 작용하고 유한자를 운동시킨다. 이 유한자 밖의 어느 곳에서도 무한자는 자리할 수 없다. 유한자는 무한자가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왜냐하면 무한자란 자신의 목적론적 원리에 따라서 발전하는 자신의 유한한 계기들의 총체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무한자는 바로 이 발전 자체이다. 이제 절대자가 띠는 원리의 형식은 절대적 동일성에서 절대정신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절대정신의 형이상학 하에서 논리학과 형이상학이 필연적으로 통일될 수 밖에 없는 체계형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현실을 파악하는 개념형식으로서의 자기관계적 부정성을 기초로하여 가능해진다. 1804/05년의 저작에서 자기관계적 부정성은 절대적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주제화되고, 절대적 반성의 전개가 다름아닌 변증법적 방법이다.
5. 맺는 말
헤겔의 사유가 지향했던 것은 유한자들의 분열을 무한자의 통일로 고양하는 것이었다. 청년헤겔은 철학적 방법인 반성에 회의를 갖고 종교적 행위에 의해 절대자에 도달할 것을 시도하였다. 헤겔의 사유의 길은 이러한 절대자의 직접적 파악에서 방법적 인식으로 발전한다. 철학자 헤겔은 절대자를 유한한 인간의 의식의 형식, 즉 반성의 형식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과제 앞에서 오성의 능력인 반성의 제한이라는 장애물에 부딪혀 선험적 직관을 요청한다. 반성을 이성적으로 조작하여 절대자 인식을 위한 철학의 도구로 삼으려는 궁리는 절대적 반성이라는 원리를 고안해낸다. 이제 반성이 직관으로부터 독립하고 본래 오성의 능력인 반성은 선험적 직관이 대표했던 절대적 인식능력으로 된다. 반성이 이와 같이 이성적 혹은 절대적으로 되면서, 절대자의 부정적 형식이라는 반성에 대한 평가는 절대자의 긍정적 계기로 변화된다. 그럼으로써 반성은 절대자의 인식의 도구에서 절대자 자신의 규정으로 된다.
이러한 반성의 변화에 반성이 대변하는 논리학과 선험적 직관에 상응하는 형이상학의 통합의 문제가 수반된다. 반성의 절대화와 더불어 논리학과 형이상학이 통합되는데, 이 통일은 형이상학이 사변적 논리학으로 되는 것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헤겔은 대립의 통일을 형이상학적 직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것으로서의 논리적 반성에 의해 수행한다. 이로써 이전에 유한자의 논리학으로서 서술되었던 논리학이 절대자의 적합한 서술방식으로 되며, 그럼으로써 사변적 논리학으로 된다. 이러한 변화는 부정적 전통 속에서 유한자의 논리로서 파악되었던 변증법이 헤겔 철학 전체의 적극적 방법으로 발전됨을 의미한다. 반성이 자신의 제한성을 벗어나고 절대적 반성으로 되면서 헤겔 철학의 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변논리학으로서의 변증법의 완성은 헤겔이 애초에 철학의 과제로서 설정했던 절대자를 유한한 인간의식에 반성의 형식으로 구성하려는 시도에 대한 해결이다. 그러나 반성이 절대화되면서 절대자의 구성은 반성의 형식으로 서술되면서도 주·객분리의 의식의 제한을 벗어나게 된다. 『정신현상학』은 1804/05년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에서 불완전한 형태로 수행된 사변적 관점으로의 이행을 자연적 의식의 제한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형식으로 논증한다. 이를 통해 도달한 『논리학』의 사변적 관점은 의식의 제한을 벗어나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사유의 지평에서 절대자를 반성의 분절화된 형식으로 서술한다. 물론 반성은 『논리학』의 전개에서 본질논리라고 하는 특정한 단계에 귀속된다. 그러나 헤겔 철학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반성은 개념에 의한 논증적 사유방식을 지칭하는 것이며, 본질논리에서 특수화된 반성의 방법론은 바로 이러한 논증적 서술 일반의 방법론으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헤겔의 방법론적 탐구는 오성적 반성의 이성적, 사변적 조작을 심화하고 체계화하는 데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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