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역사철학에 있어서 미래문제와 행동철학
조 항 구(경북대)
[한글 요약]
이 글은 헤겔역사철학에 대한 그의 후계자들의 비판을 다루고 결론적으로 그들의 비판의 성과를 검토하고자 한다. 치에스꼬프스키와 헤쓰는 헤겔역사철학이 과거의 철학일 뿐 미래에 대한 인식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헤겔역사철학비판은 두 가지 입장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헤겔역사철학은 정신을 내면성의 영역에만 제한시킨다. 따라서 헤겔은 역사에서 어떤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의 창조행위를 보지 못했다. 두 번째로 헤겔은 주어진 현실에 단지 관조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또 그 현실을 이상화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과거의 철학”이다. 주어진 것으로서의 현실은 과거로부터 유래하고 헤겔은 이 과거만 철학적으로 관조함으로써 결국 과거와 현대만을 알고 있을 뿐 미래는 알지 못한다. 올바른 역사철학의 과제는 미래에 대한 인식을 과거에 대한 인식만큼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인식은 바로 행동철학을 통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점에서 그들의 역사철학은 여전히 헤겔의 기본적인 철학적 입장, 즉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 보면 관념론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선 그들은 헤겔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여전히 정신의 발전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래의 사회주의사회를 역사적인 필연성으로 제시하려고 함으로써 보다 세심한 사회분석이나 자본주의경제의 연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철학적인 탐구를 통해 그의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에 공상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또 그들은 행동의 주체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추상적, 정신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치에스꼬프스키는 행동의 주체로서 ‘역사의 집행자’를 언급하지만 그의 구체적 성격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으며 헤쓰는 포이어바하의 영향하에 처음에는 비역사적, 추상적 ‘인간’개념을, 후에는 “민족”개념을 제시한다. 더구나 미래사회의 실현과 행동의 주체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다.
주제분야 : 역사철학, 정치사회철학
주 제 어 : 행동, 실천, 치에스꼬프스키, 헤쓰, 마르크스
1. 서 론
지난 90년대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후 미국의 헤겔주의자인 후쿠야마는 자유주의로 인류의 역사가 종말된다고 선언했으며 이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야마자신은 헤겔의 역사철학을 토대로 그런 결론을 내렸지만 논쟁자들은 동일한 철학에 의거함에도 불구하고 헤겔이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헤겔이 철학을 미네르바의 올빼미로서 상징적으로 표현한 바와 같이 헤겔역사철학은 과거의 철학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헤겔 철학의 애매 모호함 때문에 파생되는 해석의 다양성은 단편적인 헤겔의 글로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헤겔 논쟁이 발생하면 이의 해결을 위해서 헤겔 철학의 근본적인 방법론에 의거해 논쟁의 해결을 시도해야한다. 헤겔은 그의 법철학에서 다음과 말한다. “단적으로 말해 모든 개인은 그 시대의 아들이다. 어떤 철학이 자신의 현재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한 개인이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을 수 있으며, 로두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철학은 단지 “사상 속에 반영된 그 자신의 고유한 시대”일 뿐이다.
헤겔역사철학이 과거의 철학이라는 견해는 헤겔 자신뿐만 아니라 헤겔 사후 대부분의 헤겔학파에 의해서 인정된 것이다. 특히 청년헤겔학파가 이해한 헤겔역사철학은 분명 과거의 철학이었으며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들은 헤겔역사철학에 의거하면서도 동시에 이것이 오히려 미래에 대한 인식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이 입장을 대표하는 자들로서 우리는 치에스꼬프스키, 모제쓰 헤쓰를 거명할 수 있겠다. 이들의 해석이 현대의 어느 철학자들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이 속해 있었던 시간과 공간이 헤겔과 연관하여 볼 때 더 직접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본고에서 이들의 헤겔역사철학해석을 통해 이 철학이 과거의 철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어떻게 해서 그들이 “행동철학”으로 나아가게 되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시도는 과연 성공적이었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2. 치에스꼬프스키의 헤겔역사철학비판과 행동철학
1) 과거의 철학과 미래의 인식가능성
헤겔 철학이 프로이센국가와 기독교를 세계정신이 구현된 것으로 파악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헤겔 철학은 그의 사후 두 개의 대립된 학파인 노년헤겔학파와 청년헤겔학파로의 분열을 가져왔다. 이 분열의 역사적인 원인은 1834년 관세동맹의 체결이후로 성취된 경제성장으로 여겨진다. 경제적 지위가 상승된 당시 시민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청년헤겔학파가 탄생한 것도 이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헤겔 해석은 항상 양의적으로 진행되었다. 한편으로는 헤겔 철학의 숨겨진 모습, 즉 자유주의적 성향을 고수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헤겔 철학의 드러난 모습, 즉 보수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그들의 주과제였다. 따라서 그들은 이성의 구현체로서의 국가의 역할과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에 대한 헤겔의 견해를 받아들인 반면에 프로이센국가와 당시 기독교의 절대화를 비난했다.
그러나 당시의 엄격한 정치적 감시 하에서 그들의 프로이센국가비판은 우회적으로, 다시 말해서 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적인 기반인 기독교비판을 통해서 이루어 졌으며 그 시초는 <예수의 생애>를 쓴 슈트라우스이다. 슈트라우스는 기독교를 역사발전의 특정한 단계의 산물로서 그리고 신의 단지 부분적인 계시로서 파악함으로써, 헤겔이 기독교종교에 부여한 절대적이고 영원한 가치를 부정하였다. 슈트라우스의 입장을 둘러싼 논쟁은 청년헤겔학파와 노년헤겔학파로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종교비판과 더불어 청년헤겔학파의 프로이센의 복고정책에 대한 비판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헤겔이 이 복고적 프로이센을 세계사의 정점으로 선언했기 때문에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이 바로 프로인센국가의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의 정치비판은 역시 철학적으로 표현되었다. 이 점에서 그들은 헤겔 철학의 결정적인 결함을 바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는 명제에서 발견한다. 그들은 이 구절의 후반부가 프로이센의 열악한 정치현실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헤겔과는 달리 당대를 역사발전이 완성된 시대가 아니라 아직 완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로 생각했다. 이 같은 역사인식을 헤겔학파 내에서 최초로 전개한 자가 바로 폴란드의 백작 아우구스트 폰 치에스꼬프스키이다.
베를린에서 공부했던 치에스꼬프스키는 그의 <역사지서설>(1838) 에서 헤겔의 역사철학으로부터 그의 논의를 시작한다. 역사는 세계정신의 자기의식화이며 절대정신이 자기의 본질로 발전되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헤겔은 그의 체계를 중단시키는데 그는 정신의 자기의식으로서 그의 철학체계가 현재에서 종결되었다고 믿었다. 역사가 이런 식으로 완성되어버리면 미래는 없어져 버린다. 헤겔은 “그의 저작에서 미래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의 총체성은 과거와 미래로부터, 즉 이미 수행된 길과 수행되어져야 할 길로부터 성립된다”(Pr. 7-8). 그러므로 미래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역사철학의 필수적인 과제이다. 역사의 한 부분인 미래의 인식가능성 없이 유기적 이념적 총체성의 인식은 불가능하다. 치에스꼬프스키에 의하면 미래가 인식 불가능하다는 헤겔의 주장은 마치 칸트가 물 자체가 인식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Pr. 9).
치에스꼬프스키에 의하면 역사지의 과제는 과거를 실체적으로 연구하고 이미 발전된 인류의 삶의 모든 내용적인 요소들을 분석함으로써 세계사의 발전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하여 아직 우리가 통과해야 할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Pr. 22). 따라서 과거에서 하나의 특정한 일면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곳에서 우리는 그것에 대립된 특정한 계기를 미래에로 투기한다. 그러나 과거에서 투쟁과 대립이 이미 전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때에는 우리는 그들의 종합을 미래에서 찾는다(Pr. 22-23). 이런 식으로 우리는, 과거의 결점은 미래의 장점이 되며 과거와 미래는 공동적으로 서로간을 제약하면서 세계사를 드러내는 유기체가 된다는 인식에 도달한다(Pr. 23). 역사적 과정이 그의 구체적인 일회성에서 변증법적으로 파악되어져야 한다면, 미래는 반대정립들의 종합으로서 과거와 현대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시대로 된다. 기존의 역사적인 행동들은 수행되어야 할 행동들을 위한 토대를 제공하는 현존하는 재료이다. “과거의 행동들은 우리들의 화석들이다” (Pr. 13).
치에스꼬프스키는 헤겔이 그의 역사철학을 “역사의 유기적이며 이념적인 전체성의 개념”으로 가져가지 못했으며 “역사를 사변적으로 구분하고 완성된 건축양식”으로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Pr. 3). 그러나 치에스꼬프스키 자신은 헤겔의 삼중논리에 의거해 세계사를 세시기로 구분한다. 첫 시기는 정립의 시기로서 기계주의시대, 두 번째 시기는 반정립의 시기로서 화학주의시대, 세 번째 시기는 종합의 시기로서 유기체주의시대이다. 치에스꼬프스키는 헤겔의 세계사에 등장한 동양세계, 그리스-로마세계를 첫째 시기에, 기독교-게르만 세계를 두 번째 시기에, 세 번째 시기는 미래의 시기이다. 그러므로 “세계정신”은 “현재” 제 3의 시대의 입구에 막 들어서 있을 뿐이다(Pr. 24). 유기체주의개념을 근대까지 적용할 수가 있다면, 현존의 자료로부터 결손된 자료, 즉 미래의 자료가 추리될 수가 있다. 한 유기체주의는 각 구성요소가 모든 다른 구성요소에 상응해야만 하는 총체성이며 모든 구성요소가 서로 상대적이면서 동시에 서로 관통해서 기초 지워지는 총체성이다(Pr, 13).
2) 행동철학
미래는 삼중으로, 즉 감각, 사유 그리고 의지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 감각에 의한 것은 예언자들의 일이며, 사유에 의한 것은 헤겔과 같은 역사철학자들의 일이며, 세 번째 의지에 의한 결정은 행동의 전 영역을 포함하며 “역사의 집행자들”을 만들어낸다(Pr. 15-16). 역사철학자들의 일이란 주어진 “사실들 facta”을 “해석”하는 것이지만 역사의 집행자들의 일은 “행동”이다(Pr. 18). 행동이란 단순히 우리가 지각하는 직접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미 반성된 것, 이미 매개된 것, 이미 사고된 것, 이미 정립되어서 수행된 것”이다. 따라서 행동은 수동적으로 소여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소여된 것이다. 사실들은 “무의식적인 前이론적 실천”인 반면에 행동은 “의식적인 따라서 後이론적인 실천”이다(Pr. 18).
이 입장은 행동을 최초의 것, 절대적 제일자, 모든 知에 앞서는 것으로 파악한 피히테와는 다르다. 피히테에 있어서는 선험적 자아에서 사유와 존재가 종합되는 최초의 단서가 보인다. 현실에 이상, 당위가 대립되어 있으며 현대는 보다 더 이상적인 시대를 위한 통과점이다. 이런 관찰로부터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절대적 요구가 발생한다. 이러한 절대적 요구는, 자아와 자아의 무한한 활동의 한계로서 드러나는 사물세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리고 비자아에 의해서 주어지는 한계를 무한자로 고양시키기 위하여 활동하는 자아의 노력으로서 나타난다. 피히테에 있어서 선험적 자아의 이러한 활동을 치에스꼬프스키는 사유와 존재의 종합으로서 보았다. 그러나 이 종합은 우선 의식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따라서 그에게는 보다 낮은 발전 단계의 종합이기에 의식된 계획된 행동에 머물러 있다. 자아와 비자아의 일치에로의 충동은 피히테에게 있어서 무시대적인 것이며 여기에 대해 치에스꼬프스키는 미래의 계획을 대비시킨다. 인간은 더 이상 단순히 선험적 주체, 무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미래를 계획하는 단호한 행동하는 존재이다.
이제 의식을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도구는 절대의지이다. 절대의지가 헤겔에 있어서는 이성의 한 특수한 방식이지만, 치에스꼬프스키에 의해서 이제는 절대정신의 최고의 본질적인 계기가 된다. 사유는 이제 단지 의지의 한 계기에 불과하다(Pr. 120). “이성은 헤겔에 있어서 가장 객관적이고 절대적으로 드러난 이성이지만 언제나 이성으로 머문다. 철학에 대하여 이성은 최고의 존재이지만 그러나 절대정신 그 자체에 대하여는 아니다”(Pr. 114).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은 철학이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도달했지만(Pr. 124) 그의 철학은 정신을 초감각적인 절대적 형식에서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정신은 절대적 내면성이 아니다(Pr. 125). 헤겔에 있어서 실천적인 것은 이론적인 것에 의해서 흡수되어 있으며 이론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어 있지 않지만 참된 실천은 이론에 묶여있지 않는 실천이다. 실천철학은 삶과 사회적 제관계에 가장 구체적으로 영향을 가하는 것이며 진리를 구체적인 활동으로 전개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미래의 철학의 운명이다(Pr. 129). 지금까지 철학적 사유가 그의 최고정점에 도달했고 그의 본질적 과제를 해결했다면 이 사유는 그 진보자체 때문에 스스로 물러설 것이며 “이제부터 철학은 적용되어져야 한다.” 이제 철학의 운명은 그의 “숨겨진 성격”을 “드러난 성격”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Pr. 131).
과거와 현대로부터 미래를 인식함으로써 인간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행위할 수 있으며 사회적 형상을 가진 모습으로 이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이념이 실현될 때 인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념의 실현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은 역사발전에 저항할 수 없지만 그러나 인간은 그의 행동을 통해서 이 발전이 촉진될 수 있게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인간이 지금까지 세계정신의 무의식적인 매개물이었던 반면에 이제 그는 역사의 창조자가 되지만 그러나 동시에 역사진행의 결정성에 맡겨진 하나의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시 절대정신의 도구가 되며 이 점에서 치에스꼬프스키는 여전히 헤겔의 역사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치에스꼬프스키는 현대에서 역사발전의 정점을 본 보수적인 헤겔 체계를 타파하면서 미래의 발전을 또한 추구했지만 헤겔과 마찬가지로 정신이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념론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항상 정신적인 과정을 중요시했다. 즉 그는 이 과정이 인간의 자유롭고, 의식적인 정신적 행동의 의해서 결정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치에스꼬프스키의 역사철학의 특징은 현존하는 사회질서의 급진적 전복을 기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존체제를 행동철학을 통해서 비판함으로써 현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기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치에스꼬프스키는 헤겔 철학을 혁명적인 철학으로 변화시키려고 하지도 않았고 행동철학을 급진적 비판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3. 모제쓰 헤쓰의 행동철학과 미래사회
1) 헤겔역사철학비판
치에스꼬프스키의 행동철학은 독일의 초기사회주의자인 모제쓰 헤쓰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그러나 치에스꼬프스키와는 반대로 헤쓰의 행동철학은 급진적이었다. 헤쓰가 행동철학을 표방하는 <유럽의 삼두정치>는 1839년 오리엔트지방의 지배권을 둘러싼 터키와 그의 복속국이었던 이집트간의 전쟁을 둘러싼 논쟁, 즉 오리엔탈논쟁이었다. 이 전쟁은 유럽의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세나라 즉 프랑스, 영국 그리고 독일의 간섭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는 이집트를, 러시아,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는 터키를 지지했으며 터키가 시리아와 이집트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에 합의한 1841년 초의 조약에 프랑스는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이 정치적 사건은 반동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광범위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전자는 프랑스를 제압하기 위해서 유럽의 반동적인 힘들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골드만은 <유럽의 오두정치>에서 이런 입장을 천명했다. 그에 의하면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유럽을 지도하고 프로이센은 그들의 속국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 청년헤겔학파들은 프랑스혁명의 업무가 완수되기 위해서는 프로이센이 자유주의적인 프랑스와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바꾸었다. 즉 지금까지는 그들이 헤겔의 영향하에서 프로이센을 이성이 실현된 것으로 생각했었다면, 이제는 남부독일의 자유주의자들과 더불어 프랑스혁명에 기초한 프랑스를 국가의 이상으로 고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의 오두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 바로 헤쓰의 <유럽의 삼두정치>이다. 오리엔트갈등에 자극 받아 유럽의 현재와 미래의 발전 특히 독일의 미래의 발전에 대한 그의 입장을 서술한 것이 헤쓰의 저서이다. 그는 이 사건에 자극을 받아 이미 그의 <인류의 신성한 역사>에서 주장했던 프랑스와 독일간의 연대의 필연성을 재차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양국은 인류의 해방을 촉진할 수 있는 각기 독특한 힘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측면에서 물론 선구적이었던 저술은 독일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독일에서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1834)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헤쓰의 견해는 단순히 양국민족간의 이해를 장려하는데 그친 하이네의 견해를 넘어서서 유럽의 제관계를 완전히 전복할 것을 주장하는 직접적으로 정치적 사회적인 주장이었다.
그의 주요관심사는 행동철학을 심화시키고 이것으로부터 사회전복의 역사적인 필연성을 도출하는 것이었으며 그의 출발점은 청년헤겔학파운동까지의 독일철학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독일철학의 공적은 정신과 세계의 통일을 이론적으로 확립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삶은 사유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헤쓰는 헤겔역사철학으로부터 행동철학으로의 이행이 청년헤겔학파의 좌파, 특히 치에스꼬프스키에 의해서 수행되었다고 인정한다. 그는 나머지 청년헤겔학파들의 주관주의성향, 현존하는 것을 단순히 이론적으로 부정하는 것, 철학을 추상적으로 독단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비난한다. 헤쓰는 헤겔 철학에서 이상과 실재가 화해되었고 자연과 정신의 통일, 신과 세계의 통일이 고려되었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철학이 할 수 있는 바의 모든 것을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이 이룩하였다고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철학은 긍정적인 면들이 완성과 동시에 부정적인 면의 완성을 이미 그 자체 속에 내포하고 있다. 정신이 자기 내면에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이미 신과 세계의 분리, 내면성과 외면성의 분리, 이념과 삶의 분리를 극단적으로 촉진시키고 있다. 즉 헤겔의 통일은 오로지 사유 속에서, 즉 내면성에서 수행되었다. 그의 화해는 단지 “이상적” 화해에 불과하다. “빈곤 Pauperismus와 화폐귀족주의의 대립”은 아직 현존하고 있고 극복되지 않았다. 철학은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의 사유, 즉 절대적 사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지 그것에 대한 사유일 뿐이다. 이념은 단지 인식되었을 뿐이며 실현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념은 여전히 사실적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추상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헤겔의 이념은 가장 구체적이라도 여전히 이념으로 머물러 있다(PS. 79).
이런 점에서 헤쓰의 헤겔역사철학비판은 두 가지 입장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헤겔역사철학은 정신을 내면성의 영역에만 제한시킨다. 따라서 헤겔은 역사에서 어떤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의 창조행위를 보지 못했다(PS, 86). 두 번째로 주어진 현실에 단지 관조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또 그 현실을 이상화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과거의 철학”이다(PS, 82). 주어진 것으로서의 현실은 과거로부터 유래하고 헤겔은 이 과거만 철학적으로 관조함으로써 결국 과거와 현대만을 알고 있을 뿐 미래는 알지 못한다. 올바른 역사철학의 과제는 미래에 대한 인식을 과거에 대한 인식만큼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PS, 95). 이제 역사철학은 정신을 내면적 태도로부터 해방시켜 외면적인 것에로 향하게 하는 자유로운 행동을 위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헤겔에 있어서 의식은 역사적 사실에 끌려 다님으로써 그것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이제 의식이 사실들에 앞서야 한다. 의식은 미래에는 규정하는 자이며 미래와 행동을 정립하는 의식은 현실과 유리된 삭막한 철학의 영역을 떠나야 한다. 철학은 긍정적인 것을 획득하기 위해서 자기자신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PS, 89).
여기서 헤쓰는 헤겔 철학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 이미 여기서 획득된 성과를 그의 행동철학의 근거로서 생각하고 있다. 이 점에서 사유와 존재의 통일, 이성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통일에 관한 헤겔 이론은 헤쓰에게 이제 하나의 요청으로 된다. 이제 이성은 실현되어야 하며 현실은 이성으로 고양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론은 미래의 실천의 이론으로 변환되어야 하며 행동에 의해서 실현되어야 하며 정신적 인간은 참된 인간으로 정신적 자유는 실재적 자유로 완성되어야 한다. 이념은 이제 헤겔 철학의 종착점이지만, 행동철학에게는 출발점이다.
헤쓰에 의하면 이념과 실재의 동일성은 도래할 “참된 사회주의”에 의해서 실현되며 이 동일성의 실현여부가 바로 그의 철학비판의 잣대이다. 이런 동일성을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그 철학은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다. 헤겔 철학은 동일성을 사유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실현시킬 수는 없다. 진리는 존재를 사유에 맞추어 형태화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사유로부터 행위에로 변화되어져야 하며 철학에 의해 진리로서 인식된 유기적 인류를 현실에서 산출하여야 한다. “독일철학은 그의 임무를 완수했으며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했다. 이제 우리는 천상과 지상을 잇고 있는 다리를 부숴야만 한다. 진리로 가득 차있지 않는 현실이 나쁜 진리이듯이, 실현되어 있지 않는 진리도 나쁜 진리이다”(PS, 77).
3) 포이어바하의 인간학적 유물론의 수용
헤쓰의 참된 사회주의는 포이어바하의 인간학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포이어바하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기독교를 인간에로 환원시켜 인간의 본질이 기독교 속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류적존재이며 그의 본질은 다른 류구성원들과 조화로운 삶 속에 있다. 인간은 그의 종교에서 그의 류적속성들을 신에 외화시켜 버린다. 이를 통해 그 자신이 창조한 신이 주체가 되어버리며 그는 신의 피조물로 전락한다. 인간이 그의 본질에 상응하는 류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종교의 폐지를 통해 신 속에 외화된 류적속성들을 되찾아야 한다.
포이어바하는 종교와 철학에 대한 욕구는 인간이 자기자신에 머물지 않는 바로 그 때문에 하나의 욕구이며 인간은 그의 類에서 절대자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절대자를 믿거나 혹은 사유해야만 한다. 믿고 사유하는 것이 동일한 존재 즉 인간인 한 철학과 종교는 동일하다. 종교와, 헤겔의 논리학에서 신학의 마지막 형태로서, 이성으로 옮겨진 종교로서 나타나는 관념론적인 철학 두 가지는 인류학에로 해소된다. 즉 신과 절대정신 그리고 브루노 바우어의 “절대적 자기의식”은 역사적으로 성격 지워진 절대자의 시대들로서 번역될 수 있는데 이것들은 인간의 생산물이다. 이 생산물에 인간은 독자적인 생명을 부여한다. 이것들은 주체로서 여겨졌고 심지어 인간은 이것들 때문에 자기가 존립한다고 생각한다.
소외의 개념을 논하면서 포이어바하는 종교와 철학의 본질을 논한다. 인간자신의 완전성에 대한 오성의 의식을 타자의 완성된 본질로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며, 그러나 자기스스로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의 본질은 류적 삶이며 개별자는 오로지 류로부터 이해될 수 있다. 신은 류개념을 개별화시킨 것이며 인간의 본질을 인격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절대자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인간의 자기자신에 대한 태도이며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하나의 다른 본질로서의 자신의 본질에 대한 태도이다. 신적 본질이란 인간적 본질 외 다름 아니다. 인간의 본질이 개별적 인간의 한계로부터 해방되어 개별자와 구별되는 다른 고유한 본질로서 관찰되고 받들어진다. 따라서 신적인 본질의 모든 규정들은 인간적 규정들이다”.
그러나 인간자신의 신격화를 인간자신은 의식하지 못한다. 인간이 그 자신의 본질을 오해하고 소외시키고 그 본질을 神性의 형상에로 투사시키는 이 오류는 개별자 내에서의 분열상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결과된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것은 인간의 필연적 산물이다. 즉 인간은 인간의 속성들을 그 자신의 본질이 소멸되고 마는 그런 그의 나쁜 현실을 위한 위로물과 보충물서의 신적인 본질에 귀속시킨다. “이러한 분열상으로부터 종교가 시작되는데 이 분열상은 인간의 자기자신과의 분열상이다.”
개별자는 자기의 류와 통일되어있다고 느끼지 못하며 그 자신의 류적 능력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개별성과 류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창조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의 류적인 창조력을 인간 밖의 본질의 덕택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신은 오성의 고유한 대상적 본질이며, 인간의 소외된 류적본질이다. “모든 신적인 규정들, 즉 신을 신으로 만드는 모든 규정들은 류적규정들이다. 이 규정들은 개별자 속에 제약되어 있지만 그러나 그의 한계는 류의 본질에서 그리고 류의 실존에서 지양된다.”
종교는 인간의 본질성과 현실성의 분리에, 즉 다른 본질로서의 본질성을 현실적인 개별적 인간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의존한다. 여기서 인간은 자기자신을 그의 현실에 투기한다. 인간이 탓하는 것은 그에게 비신적인 것, 즉 그가 찬양하는 것이며, 그에게는 인간 속에 있는 신적인 것이다. 즉, “종교는 하나의 판단 - 인간이 그의 본질로서 관찰하는 바의 것의 긍정이다.” 개별자의 한도는 그의 류이지만 그의 류는 절대자로 외화된 류이다. 그의 개별성에 있어서의 불충분함을 인간은 자기를 위하여 표현한다. 동시에 그는 피안에서 자기의 요구를 만족시킨다. 즉 이념의 실재성의 차안에 놓여있는 한계를 제거한다. 분리로부터의 도피는 신을 인간의 본질로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절대정신을 유한한 주관적 정신으로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성립한다. “역사의 필연적인 전회는 다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성립된다. 즉 신의 의식은 류의 의식 외 다름 아니며 인간은 그의 개별성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를 고양시킬 수 있지만 그러나 그의 류의 실정적 본질규정들, 즉 법칙들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종교와 관념론적인 철학의 지양에 의해서 인간은 다시 그의 類와 통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최상의 본질은 역시 인간이다. 그의 감각에 의해서 인간은 사물들의 척도이자 창조자이다. 절대자와 그의 영역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인간은 정상적으로 된다. “인간의 본질이 인간의 최상의 본질이라면, 실천적으로 또한 최상의 그리고 제일의 법칙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개인으로서 자기자신에 그리고 류에 ,즉 그의 보편적 본질에 관계된다. 류적인간이 인간의 대상으로 된다는 것이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기준이다. 여기서 타자에 대한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넘어서게 하는 추동하는 힘이다. 감성의 본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을 통해 너와 상호작용에 들어서게 한다. 인식능력은 감성을 가진 다른 나, 즉 너와의 대화로부터 발생한다. 이렇게 인간은 사랑에서 동시에 나와 너이다. “인간에게 그의 류, 그의 본질은 대상이지만, 그의 개별성은 대상이 아닌 것 바로 그것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를 타자의 자리에 정립시킬 수 있다.”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 즉 나와 너의 관계, 즉 사랑은 진실로 종교적인 관계이다. 포이어바하 이전에는 인간이, 인간을 규정하는 자로서 절대자에 대한 관계로부터 이해되었었다면, 이제 너에 대한 사랑은 나를 위해서는 기초적인 것이 된다. 나와 너는 근원적으로 동시에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포이어바하의 “나와 너”는 절대적 관념론의 “나”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의문 없이 전제되어 있다. 사변철학이 행한 전도는 철학의 극복이나 실현이 아니다. 포이어바하에 있어서 모든 사유의 시초는 “신, 절대자가 아니라 절대자의 술어로서의 존재, 이념이 아니라 철학의 시초는 유한자, 규정된 것, 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류개념과의 통일성에서 고려된 포이어바하의 인간개념은 절대자의 개념보다 그의 현실적 토대를 덜 벗어난 것이 아니다. 즉 포이어바하는 하나의 추상적 사고형상물대신에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인간의 사고형상물을 제시했다. 즉 포이어바하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 인간이 실존하고 있는 환경을 무시했다. 그가 종교와 관념론적인 철학에 대항하는 무기는 그 자체가 사회적 환경에서는 아직 현실성을 획득하지 못한 하나의 신학적인 개념이다. 포이어바하에 있어서 인간본질의 소외의 지양은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이론적으로 수행되었다. 소외가 지양되는 장소는 사유이며 인간해방을 위한 근본규정으로서 이론적 인도주의에 만족한다.
헤쓰의 비판에 의하면 “포이어바하는 인간의 최상의 본질이 개별적 인간이 아니라 개인들의 협력이라고 본 것은 옳았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류적행위를 … 본질적으로 사유 속에서 발견한다.” (PS, 294) 실천적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헤쓰는 포이어바하의 이 같은 견해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헤쓰는 종교적 소외의 지양을 정치적, 경제적 소외의 영역으로 확장함으로써, 즉 포이어바하의 휴머니즘을 사회적 삶에 적용함으로써 실천적 휴머니즘이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 속에서 神인 것은 실천적 삶에서는 화폐이다. 종교와 정치는 인간의 예속과 굴종으로부터 한편으로는 정신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실천에서 그들의 실재를 창조한다. “절대주의, 귀족주의, 민주주의이든 간에 모든 정치는 필연적으로 주인과 노예의 대립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는 대립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대립들 덕택에 정치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 종교일반에는 정신적 노예가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왜냐하면 종교 또한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는 신적인 것, 인륜성이 인간에게는 하나의 피안의 것, 외면적인 것에 머물러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목표를 획득하는 것에 의해서 종교 자신의 현존재가 중단되기 때문이다”(PS, 198-199).
우리가 정치를 종교와 비교하여 고찰하거나 이 두 가지를 동일한 문제의 두 측면으로서 지양되어져하는 것으로 고찰한다면, 사유활동성으로서의 인간을 보는 관점으로부터 활동일반으로서 삶으로 관점을 옮기는 진보가 수행되는 셈이다. 인간은 그의 본질상 그의 의식을 발전시키지만, 바로 창조적 행동도 본질적으로 그에게 속한다. 포이어바하의 철학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포이어바하의 비역사적 인류적 인간을 역사적 인간으로 파악할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4. 결론: 마르크스의 역사관과 실천
위에서 전개된 치에스꼬프스키와 헤쓰의 헤겔역사철학비판을 통해 그들이 미래가 인식가능하고 바로 그것 때문에 행동, 실천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목표가 헤겔역사철학에 의하면 미래의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주장은 의미가 있다. 또한 우리는 미래에 대한 인식가능성이 현실에 대한 관조적, 이론적 태도로부터 실천적 태도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즉 그들이 미래의 인식가능성을 행동철학을 통해서 이제 미래의 실현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치에스꼬프스키는 후리에식의 사회주의사회, 헤쓰는 참된 사회주의사회가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점에서 그들의 역사철학은 여전히 헤겔의 기본적인 철학적 입장, 즉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 보면 관념론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선 그들은 헤겔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여전히 정신의 발전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들, 특히 헤쓰는 미래의 사회주의사회를 역사적인 필연성으로 제시하려고 함으로써 독일에서 이론적 사회주의운동의 최초에 속하지만 보다 세심한 사회분석이나 자본주의경제의 연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철학적인 탐구를 통해 그의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에 공상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또 그들의 행동철학이 철학을 행동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 점에서는 주목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그의 철학적인 경향자체가 행동보다는 사상을 중요시하게 하는 역설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행동의 주체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추상적, 정신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치에스꼬프스키는 행동의 주체로서 ‘역사의 집행자’를 언급하지만 그의 구체적 성격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으며 헤쓰는 포이어바하의 영향하에 처음에는 비역사적, 추상적 ‘인간’개념을, 후에는 “민족 Volk”개념을 제시한다. 더구나 미래사회의 실현과 행동의 주체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 같은 이들의 헤겔보다 오히려 더 비역사적인 관점은 그들의 후기의 종교에로의 귀의를 보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그들의 동시대인으로서 마르크스의 역사관과 실천관은 그들의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물론 마르크스를 여기서 상세히 거론하는 것은 헤겔역사철학에 비판을 주제로 하고 있는 본고의 범위를 넘지만 이들의 역사이론의 관념성은 마르크스의 그것과 비교될 때 더욱 더 선명해진다. 즉 사적유물론과 실천의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라는 마르크스 사상의 양축이 그것이다.
헤쓰는 역사가 현대를 뛰어넘어 발전한다는 주장이, 치에스꼬프스키가 경계한 바와처럼 (Pr. 148), 유토피아주의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역사의 합법칙성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헤쓰는 단지 합법칙적인 세계정신의 발전만을 합법칙성으로서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헤겔 식의 관념론으로 되돌아간다. 헤쓰에 의하면 우리가 신의 정신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리고 미래에까지 미치는 발전경향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의식적인 미래를 형성하는 행위가 가능하다고 헤쓰는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행동철학에 미래를 규정하는 것이 허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즉 역사가 합법칙적으로 진행된다면, 즉 그들의 바라는 미래사회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것이라면 이 경우 행동의 주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물론 이것은 마르크스에게도 흔히 제기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만약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여 자본주의경제의 내적 모순 때문에 사회주의혁명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면 그 때 프롤레타리아트가 할 일, 실천이란 무엇인가? 혁명의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과의 관계, 결정론과 자유의지론과의 관계에 대한 논쟁을 마르크스 자신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실천이론의 재구성을 통해 이를 해명해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하의 논의에서 마르크스의 역사관의 난문제가 완전히 해명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헤겔, 치에스꼬프스키 그리고 헤쓰의 역사철학의 관념성을 대비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결론적으로 간략하게 스케치하고자 한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실천개념은 두 가지로, 즉 “물질적 실천”과 “혁명적 실천”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자는 “현존하는 생산력들”을 실현시킨 실천이며 후자는 “혁명적 대중의 형성”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 두 가지가 “총체적 전복의 물질적 요소들”이다. 따라서 인간의 물질적 실천은 역사발전의 능동적인 계기로서 역사발전의 필연성에 배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작용하고 있다. 만약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질적으로 다른 생산양식의 사회를 필연적으로 산출한다면 이 필연적 발전에 인간의 실천은 이미 한 계기로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하여 위의 두 가지 실천이 기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는 변증법적인 상호관계에 놓여 있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하테제>에서 “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활동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면 그때 그것을 “혁명적 실천”이라고 규정한다.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궁극적인 인간해방을 가져 올 조건들을 조직하는 것”이며 바로 이 점에서 혁명적 실천은 객관적, 물질적 실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혁명적 실천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조직활동을 통해 자기자신을 변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주관적 실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은 결정론적인 의미에서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혁명은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으면 발생하지만 이 조건의 창출은 인간자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 인간자신이 이미 변화되고 있다.
'사유(思惟)'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겔의 도덕 개념과 도덕의식의 발전 (0) | 2023.02.18 |
---|---|
헤겔의 사변명제와 실체형이상학 비판 (0) | 2023.02.18 |
헤겔과 인간 중심적 유기체론 (0) | 2023.02.18 |
헤겔의 자기 의식의 변증법 (0) | 2023.02.18 |
헤겔의 칸트 인식론 비판 (0) | 2023.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