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헤겔과 인간 중심적 유기체론

나뭇잎숨결 2023. 2. 18. 10:48

헤겔과 인간 중심적 유기체론

박 병 기

【주제분류】자연철학, 독일관념론
【주 요 어】인간중심주의, 유기체론, 자연, 자연철학, 생태친화적
【요 약 문】
이 논문의 목적은 헤겔의 자연철학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유기체론적이고 목적론적인 자연관이 오늘날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자연관으로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검토하려는 것이다.
헤겔은 자연을 자아 밖에 있는 유한한 것의 원자론적인 집합으로 방치할 수밖에 없는 주관성의 반성 철학과 인간과 자연의 분열을 무차별적인 동일성으로 해소하고자 한 낭만주의 자연철학을 종합 지양함으로써 기계론을 계기로 포함하고 있는 유기체론적 자연 이해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타재라는 형식에서의 이념, 소외된 정신으로 보고 인간적 자유의 확대를 위해 절대정신으로 지양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강한 인간중심주의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헤겔의 자연관을 그대로 생태론적 의미를 갖는 대안적 자연관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기계론을 비판하고 유기체론을 회복하고자 했던, 그리고 자연의 근저에서 생명을 보았던 헤겔의 자연철학을 무의미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심층생태론은 그동안 생태 위기의 심각성을 대중들에게 깨우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혐오주의 혹은 생태파시즘과의 결합 가능성과 동양적 신비주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자연중심적 동양주의는 자연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인간과 자연의 변증법적 관계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 사회에서 발생한 생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자연관을 제공하는 데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욕망의 체계인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포착하면서도 기계론적 자연관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파악한 헤겔의 인간중심적 유기체론이 생태친화적 자연관의 모색에서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1. 시작하는 말
이 논문의 목적은 헤겔의 자연철학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유기체론적이고 목적론적인 자연관이 오늘날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자연관으로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검토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헤겔이 피히테와 셸링의 자연 개념을 비판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자연관을 형성해갔으며 자연철학에서 전개한 자연관은 어떤 것인가를 검토한 다음, 자연 개념과 노동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헤겔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를 분석하여 그의 자연관이 유기체론적이고 목적론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중심주의적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필자는 헤겔의 자연관이 있는 그대로 대안적 자연관으로 제시되기는 어렵지만, 인간 혐오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기계론적이지 않은 생태론적으로 유의미한 자연관을 헤겔의 자연 이해에서 찾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2. 피히테와 셸링의 자연 개념 비판
헤겔은 철학 활동 초기에 칸트․피히테 철학과 셸링 철학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자연철학을 형성해 간다. 그는 칸트․피히테 철학이 자연을 부당하게 취급했다고 비판하고, 이성과 자연의 화해를 말한다. 그 과정에서 헤겔은 낭만주의를 일정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자연과의 조화를 시나 예술, 종교를 통해서 회복하고자 하는 낭만주의도 비판한다. 헤겔이 볼 때 자연과의 조화는 이성의 노력을 방기한 채로가 아니라 이성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믿음과 지식』에 따르면 칸트와 피히테의 철학은 “주관성의 반성 철학”이다. 특히 여기서 비판의 대상은 피히테다. 헤겔에 의하면, 피히테가 데카르트 이래의 주관-객관 도식을 극복하고자 했을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으로 끌어들여진 ‘주관적인 주관-객관’에 불과하다. 거기서는 오히려 주관이 기체가 되고 존재의 제1 원인이 됨으로써, 세계는 거꾸로 주관에 의해서 표상된 ‘대상’으로 구성된다. 말하자면, 자연은 주관의 구성물로서 ‘관념적으로 만들어진 것’, ‘자아의 자연’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자아의 구성물로서의 자연과는 별도로 자아로 해소되지 않는 외적 자연을 남기게 된다. 자아의 자연에 포섭될 수 없는 이 외적 자연은 이제 자체로서 방치된 “객관성의 주검”이자 “원자론적인 죽은 것,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원인이자 결과인, 다소간 유동적이고 고정적이며 영원한 질료”이다. 무한자가 주관 안으로 끌어들여진 결과, 자아 밖에 있는 자연은 유한한 것의 원자론적인 집합이 되고 외적인 인과 관계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피히테의 ‘주관성의 반성 철학’에서는 ‘반성’이 주관의 자기 운동에 머무르고, 외적인 자연은 기계론과 동일한 귀결에 이르게 된다. ‘주관성의 반성 철학’의 특색은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을 분리하는 데 있으며, 유한한 것을 절대적으로 고정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처음에는 이러한 대립을 종교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철학 그 자체가 사유와 비사유의 대립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대립을 야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은 곧 철학으로 돌아온다. 이때 철학은 이상과 현실, 보편과 특수, 무한과 유한의 대립에서 성립하는 칸트의 그것은 아니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개념적 파악이 철학의 과제지만, 존재의 세계는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상호 침투에 있으며 분열하고 분화해 가면서 통일로 회귀하는 운동이다. 이것은 자연 인식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존재의 세계를 분열되어 있으면서도 통일로 회귀하는 운동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인간의 능력은 계몽적인 오성이 아니고 헤겔적인 이성이며, 그 반성의 힘이다. 오성이 분화․분열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고착시킨다면, 이성은 “생성과 산출의 무한한 활동에서, 분열되어 있는 것을 통일하고, 절대적인 분열을 상대적인 것으로, 근원적인 동일성을 조건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되돌린다.” 헤겔은 물론 “분열이야말로 철학적 필요의 원천”이라고 한다. 헤겔에게는 이러한 분화․분열을 매개로 하지 않고 그대로 통일이나 전체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낭만주의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헤겔의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은 두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낭만주의가 개념에 등을 돌리고 감정과 직관의 힘을 통해 열광과 영감에 이르고자 한다는 것이다. 둘째, 특히 낭만주의 자연철학이 형식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주관성과 객관성,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양극으로 이루어진 자기나 전기, 수축과 팽창, 동과 서 등 양극 개념을 자주 사용했는데 헤겔은 낭만주의자가 사용했던 그러한 개념이 도식적이고 형식적으로 대상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양극 개념을 대상에 적용할 때 나타나는 낭만주의자들의 도식적인 방식으로는 분열의 불가피성을 드러낼 수 없다. 헤겔이 보았을 때 모든 것은 분열되어 있으면서도 통일로 회귀하는 운동 속에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 또한 유기적 연관 속에 있다. 헤겔의 자연철학도 이러한 논리가 관통해 있다.
3. 유기체로서의 자연
헤겔은 예나대학에서의 강의를 통해 독자적인 정신철학과 자연철학을 체계화해 간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은 유기체론이자 목적론이다. 예나 체계 초안에서는 전체와 부분 상호 관계를 연관되어 있지 않는 양적 관계로 파악하고 그것들의 상호 작용을 한갓 인과 관계로서 파악하는 통속적인 자연 고찰의 방법을 비판한다. 헤겔이 통속적인 자연 고찰로써 의미하고 있는 것은 근대 계몽의 기계론적 자연관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는 반대로 헤겔은 자연을 생명이라고 한다. 헤겔에게 자연은 전체로서도 생명이며, 또 하나 하나의 부분, 계기들도 생명이다.
헤겔은 『철학백과사전』 「자연철학」에서 목적론의 두 가지 유형을 구별한다. 하나는 인간이 실천적으로 자연에 관계할 경우의 목적론이다. 이 경우 인간은 자기를 목적으로 해서 행동하고 자연을 이용할 뿐이고, 자연은 인간에게 외적인 것에 머무를 뿐이다. 헤겔은 이것을 ‘유한한 목적론적 입장’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보다 심오한 본래적 의미의 목적론은 자연 그 자체 안에 목적이 내재하고 있다고 보고, 자연에 내재해 있는 개념을 보려고 한다. 이러한 목적론은 자연의 본질을 ‘생명’이라고 보는 헤겔의 입장과 연결되어 있다. 헤겔에게 “자연은 자체적으로 살아있는 전체”이다. 자연은 전체로서도 개별체로서도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이다. 개개의 생명체 자체가 보편을 자기 자신 속에 포함한 유Gatttung로 존재하며, 그 때문에 부분과 전체의 관계도 역시 유기적이다.
유기체는 항상 타자와 관계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귀환하고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 때문에 유기체는 언제나 자기 목적으로 존재한다. 말하자면 유기체에서는 목적이 내재하고, 그 모든 활동, 그 모든 과정이 목적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유기체는 타자와 관계하면서 자기 귀환하고 그럼으로써 자기의 목적을 실현해 간다. 구체적으로는 타자로부터 영양을 섭취하면서 자기를 유지하고 목적을 실현해 간다. 그 때문에 유기체는 타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타자와의 관계 그 자체가 내적 본질적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도 이처럼 타자와 관계하면서 자기의 목적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 포섭되고 그것의 한 계기로 있게 된다.
이러한 유기체의 목적은 ‘생명’이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헤겔에게 ‘생명’이야말로 무한성의 표현이다. 생명은 타자와 관계하면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이리하여 유한한 것을 항상 무한한 것으로 포섭해 가는 과정으로 존재한다. 개체의 생명은 세대교체를 통해서 영원한 것과 연결된다. 이처럼 ‘생명’에서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이 상호 포섭되고 통일되어 있으며, 그 때문에 그 하나하나의 부분, 하나하나의 과정에 의미가 부여된다.
그런데 헤겔이 자신의 자연철학에서 이처럼 자연을 단지 유기적 전체로 보여주고자 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예나 체계 초안 Ⅲ』의 자연철학 강의를 역학, 화학, 유기적인 것으로 전개하고 다시 유기적인 것을 광물 유기체, 식물 유기체, 동물 유기체로 전개하듯이 『철학백과사전』 자연철학은 역학, 물리학, 유기체론으로 구분하고 다시 유기체론은 지질학적 유기체, 식물 유기체, 동물 유기체로 구분하여 전개한다. 이러한 전개 과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역학, 물리학, 유기체론의 전개는 정신이 규정을 거듭해 가면서 유기체로서의 자연의 실상에 육박해 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일종의 진화론적 전개 과정에서 그 전의 규정은 자체로서는 부정되고, 다음에 오는 단계의 한 계기로서 포섭된다. 그리고 최후의 단계에서 자연의 유기적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타자와 관계하면서 자기에게로 귀환하고 자기를 재생산해 가는 생명으로서의 유기체는 무엇보다도 동물 유기체에서 그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동물 유기체는 서로 타자와 불가결한 관계에 있고 목적으로 존재한다. 동물 유기체에서는 욕구 충족의 운동조차 단순한 외적 자극에 대한 반작용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것에 반응하면서 자기를 유지해 가는 것으로서 일어나며 이러한 의미에서 목적으로 일어난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자연의 내적 합목적성을 상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전개했던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헤겔은 바로 자연의 근저에서 생명을 보고 생명의 목적론적인 실현 과정을 본다. 더구나 헤겔에게는 그러한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주체의 개별성은 다른 것과의 통일 속에 존재하고 유로 존재한다.
이상과 같이 헤겔은 근대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비판하고 유기체적이고 목적론적인 자연관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낭만주의처럼 분화․분열을 거치지 않은 직관에 의한 회복이 아니다. 유기체적 자연관은 명백히 기계론을 매개로 하면서 그것을 포섭한 것이며, 그것은 역학, 물리학, 유기체론이라는 전개의 논리에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생명의 연쇄에 있어 인간은 어디에 위치하고 자연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을까?

4. 소외된 정신으로서의 자연
헤겔은 자연이 “타재라는 형식에서의 이념”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헤겔 철학 체계 안에서 자연철학의 위치와 그것이 갖는 의미를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헤겔은 『철학백과사전』 일반적 서론에서 철학의 과제는 대상을 사유에서 고찰하고 표상이나 사상을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철학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현실이자 경험이라고 한다. 현실, 즉 경험과의 일치가 그 철학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시금석이라는 것이다. 헤겔에게 철학은 존재하는 것, 즉 현실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 자연철학은 자연 자체의 개념적 파악이며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헤겔은 현실과의 일치를 통해 자각적 이성과 존재하는 이성의 화해를 가져오는 것이 철학의 궁극 목적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헤겔에게 철학의 과제는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다.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극복한다는 것은 객관 세계로부터 그 미지성을 박탈하고 그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며, 객관을 우리의 가장 내적 자기인 개념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상에 대한 남김 없는 개념 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의 논리나 구조를 완전히 나의 것으로 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이성과 자각적 이성의 화해가 의미하는 것도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헤겔이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극복한다고 할 때, 거기에는 단순한 개념 파악을 넘어 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근대 계몽의 사유를 특징짓고 있는 것은 주관과 객관의 분리이며 인간과 자연의 분리이다.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고 객관의 세계를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현상의 세계로 한정함으로써, 또한 객관 자연의 세계를 기계론화함으로써,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이 분리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로 말한다면, 인간은 자연을 소외시키면서 자연으로부터 소외되는 결과에 빠진다. 이것을 자각하고 자연과 인간, 객관과 주관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 낭만주의이다. 낭만주의는 잃어버린 무한한 것, 영원한 것을 찾고자 하는 운동이며 자연과 인간의 화해를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헤겔 역시 그러한 낭만주의 운동을 일정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렇지만 헤겔은 이성의 노력을 다 하지 않고 화해를 아름다운 것, 성스러운 것, 영원한 것, 종교, 사랑 안에서 찾는 낭만주의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헤겔에 있어 자연과 인간,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지양하고 양자의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헤겔에게 그것은 절대자이며 정신이다. 이것이 바로 헤겔 철학의 과제가 절대자에 대한 인식에 있다고 말해지는 까닭이다. 헤겔이 말하는 참된 무한이 성립하는 것은 이 정신이 자기를 실현하는 운동에서이다.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이라는 헤겔의 철학 체계에서 정신의 이러한 자기실현 운동은 동시에 각각의 대상에 대한 서술이다.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이라는 헤겔 철학의 체계는 그러한 의미에서 계시된 진리의 전개이다. 그런데 논리학과 정신철학이 대상의식과 자기의식이 동일하다고 하는 의미에서 정신 본래의 영역을 보여준다면, 자연철학에서 그것은 그 대상이 외적인 자연이기 때문에, 타재라는 형식에서의 이념, 외화된 정신의 형태를 띠지 않을 수 없다. 헤겔에게 자연은 정신은 정신이되 소외된 정신이고, 신은 신이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바카스적인 신이다. 결국 자연은 무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철학은 정신의 자기 귀환을 통해 정신철학이 뛰어넘어야 할 것으로 규정된다.
이와 같이 보았을 때, 헤겔은 역학, 물리학, 유기체론의 전개를 통해 자연의 근저에서 생명을 보고 유기적 연관을 보았지만, 그러한 연관이 정신 운동의 한 계기로서 정신에 포섭됨으로써 거꾸로 자연은 소외되고 방치되는 것이 아닐까? 정신의 자기 극복에 의한 자기실현의 운동이 오히려 동일철학적으로 자기의식의 수준에서 완결되고, 대상 세계는 결과적으로 그것을 위한 계기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정신으로서의 절대자를 통해 자연과 인간,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극복하고 자연을 절대자의 자기현현으로 보고자 했던 헤겔 철학의 근본과 관련된다.
헤겔이 정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한 것을 인간의 자기 이해로서의 사유에서 인간과 자연의 화해 가능성을 찾고 거기에 생태위기의 극복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그에 관한 정당한 이해는 헤겔의 시민사회론를 비롯한 정치철학에서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 우리는 헤겔의 자연 이해의 중요한 다른 층위인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5.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서의 자연
헤겔은 예나 시기 이후 인간의 욕망이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동과 그 결과로서의 재산을 일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매개로 해서 공동체적 결합을 모색한다. 그는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을 수용하여 노동이라는 행위의 보편적인 성격을 적극적으로 규정한다. 첫째로, 노동은 한갓 욕망의 충족을 넘어 하나의 내용을 가져온다. “단순한 활동은 순수한 매개이자 운동이다. 욕망의 단순한 충족은 대상에 대한 순수한 부정이다. 노동은 자체가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며 내용을 가져오는 하나의 형태이다.” 둘째로, 노동은 단순히 개인의 욕망 충족을 넘어 “만인의 만인을 위한, 만인의 향유를 위한 노동”이다. 아담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분업과 교환 시스템을 통해 개인 노동은 서로가 타인의 욕망 충족에 봉사한다. 시민사회에서 노동, 소유, 교환의 체계를 통해 일정한 상호 의존 관계가 성립하고 개별 노동이 보편적 성격을 갖게 된다.
시민사회의 노동을 이와 같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자연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노동은 의식적 활동으로 욕망과 그 충족 사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연을 변화시키면서 자연에 작용할 뿐만 아니라, 다시 말하면 “의식된 자신의 목적에 기여하는 자연의 연관 관계를 산출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노동을 통하여 변화한다.”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노동 수단은 인간이 자신의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노력을 감소시키는 하나의 교지List이지만 이것은 노동 과정을 단지 양적인 면에서 변화시킬 뿐이다. 본래의 교지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기계화되어 자연의 동력이 인간의 목적 설정에 따라 응용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발휘된다. 그러나 헤겔이 보았을 때 맹목적 활동만 하던 자연이 이제 합목적적인 것이 됨으로써 자연에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헤겔은 자연 자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 존재의 개별 목적이 보편적인 목적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헤겔의 관심이 산업의 출현이 불러온 시민사회의 문제였지 자연과 인간의 관계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헤겔이 “너무 빨리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문제없는 것으로 처리해 버렸다”는 슈미트-코바르칙의 지적은 정당하다고 생각된다.
헤겔은 홉스나 로크, 스미스와 달리 소유와 분업의 체계를 그대로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는 시민사회의 소유와 분업이 그대로 존재한다면, 한편으로 노동의 단순화와 기계화를 야기하고, 다른 한편으로 부의 편중과 빈곤의 심화를 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헤겔은 시민사회의 이러한 모순의 지양 가능성을 어디에서 찾는가? 『법철학』에 따르면 시민사회는 가족에서 직접적으로 존재했던 인륜적 통일성이 해체되고, 특수한 개인이 욕망 덩어리로 움직이는 욕망의 체계로 존재한다. 시민사회에서 개인들은 각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을 하고 자산을 축적한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들은 노동의 소산을 타자의 그것과 교환함으로써 시민사회에 일정한 상호 의존의 체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기본적으로 욕망의 체계인 한, 사법 활동을 통한 소유의 보호와 계약 관계의 유지, 복지 행정을 통한 여러 공공사업이나 복지 정책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에서는 한편으로 빈부 차이의 확대와 다른 한편으로 그에 따른 정신적 황폐를 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사회의 이러한 분열과 모순을 극복하고 인륜적 통일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국가이다. 헤겔에게 국가는 인륜적 이념의 현실성, 실체적 의지로서의 인륜적 이념이다. 이러한 국가의 이념은 한편으로는 애국심이라는 정치적 심정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유기 조직, 즉 입법권, 통치권, 군주권이라는 국가 체제 속에서 드러난다.
이와 같이 헤겔은 개인들이 사익의 추구에 힘쓰면서 분업과 교환 체계를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해 가는 시민사회가 국가를 통해 지양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인륜적 통일성이 회복된 국가에서는 자연을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관점까지 극복된 것일까? 헤겔에 있어 국가에서 회복된 인륜적 통일성은 가족이나 고대 폴리스에 존재했던 직접적 통일성이 아니다. 국가에서의 통일성은 개인의 욕망과 주체성을 매개로 한 시민사회를 계기로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헤겔이 시민사회의 분열을 인륜적 국가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을 때도 여전히 인간의 대자연 관계는 주어진 것으로 있다. 헤겔은 자연에 대해 활동하는 인간적 삶의 향상이 시민사회의 분열 속에서는 충분히 달성될 수 없다고 보고 이를 인륜적 결합의 회복을 통해 성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의 해결을 그대로 헤겔에게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겔이 자신의 자연철학에서 유기체적 자연에 도달했음에도 자연을 ‘타재라는 형식에서의 이념’, 외화된 정신으로 보고, 자연철학을 정신철학을 통해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았던 것처럼, 정치철학에서는 자연을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노동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노동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활동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자유가 확대된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헤겔의 강한 인간 중심주의가 나타난다. 헤겔의 정치철학에 나타나는 인간중심주의는 칸트의 인간중심주의와는 다르다. 자연 이용이나 인간의 목적 실현이 도덕적 원리에 비추어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칸트의 인간중심주의적 목적론은 환경친화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고 있지만, 헤겔의 경우 시민사회와 국가에 관한 논의가 도덕성을 지양 극복해 있는 것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자체만으로는 칸트의 경우와 같은 해석의 여지는 완전히 봉쇄되어있다.

6. 맺는 말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헤겔은 자연을 자아 밖에 있는 유한한 것의 원자론적인 집합으로 방치할 수밖에 없는 주관성의 반성 철학과 인간과 자연의 분열을 무차별적인 동일성으로 해소하고자 한 낭만주의 자연철학을 종합 지양함으로써 기계론을 계기로 포함하고 있는 유기체론적 자연 이해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타재라는 형식에서의 이념, 소외된 정신으로 보아 인간적 자유의 확대를 위해 절대정신으로 지양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강한 인간중심주의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헤겔의 자연관을 그대로 생태론적 의미를 갖는 대안적 자연관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기계론을 비판하고 유기체론을 회복하고자 했던, 그리고 자연의 근저에서 생명을 보았던 헤겔의 자연철학을 무의미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심층생태론은 그동안 생태 위기의 심각성을 대중들에게 깨우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혐오주의 혹은 생태파시즘과의 결합 가능성과 동양적 신비주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물론 모든 심층생태론자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까지 극단적인 우익 정파들이 자신들의 파시즘 정책을 생태 이념과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더욱이 문제의 심각성은 생태파시즘이 일부 우익 정파들과 결합하는 것만이 아니라 유력한 생태 운동가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 데 있다.
심층생태론의 생명중심주의는 인간의 고유한 지위와 특질을 자연법으로 축소함으로써 현재의 생태 위기를 불러온 것이 특정한 인간관계라는 사실을 은폐할 위험이 있다. 그 때문에 자연에 대한 존중은 기아에 허덕이는 제3 세계 아이들의 궁핍에 대한 관심을 질식시키며, 지구에 대한 사랑은 침략 당하고 고통당하는 집단들에 대한 동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생태 문제와 위계적 사회구조의 문제, 즉 인간들 간의 관계 문제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문제는 단순히 배려와 보호 차원이 아니라 정의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북친이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사고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라는 사회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점과 관련해서도 생태 윤리에서의 인간중심주의는 한층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주제인 것이다.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는 기술 문명이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를 정당화한 서양 이성의 산물이라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조화로운 순응을 추구한 동양 이성이 생태학적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당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아시아의 ‘중심성’이 오히려 더 큰 고통과 해악을 줄 수 있다”는 북친의 경고에 동의한다. 서로 상이할 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정신적 토양에서 자라난 다양한 견해들을 심층생태론 밑에 혼합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자연중심적 동양주의는 자연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인간과 자연의 변증법적 관계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 사회에서 발생한 생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자연관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귀기우릴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으로 보기보다는 유기적 발전 관계로 파악하는 변증법적 사유가 서양 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 못지않게 풍부한 유기체적 전통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서구의 유기체론적 전통은 동양보다 충격에 더 잘 버틸 수 있다. 왜냐하면 서구의 전통에서 근대 산업 혁명 이후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논쟁들은 철학자들을 동양이 한번도 충분히 대처해보지 못한 중요한 문제들에 관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욕망의 체계인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포착하면서도 기계론적 자연관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파악한 헤겔의 인간중심적 유기체론이 생태친화적 자연관의 모색에서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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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ke in zwangzig Bänden 8 Enzyklopä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Ⅰ Die Wissenschaft der Logik Mit den mündlichen Zusätzen (Frankfurt am Main : Suhrkamp Verlag,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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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Hegel and the Anthropocentric Organicism
Byeongkie Park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examine whether or not Hegel's organic and teleological views on nature that can be found within his philosophy of nature can, even in the present day, maintain their position as alternative views on nature that will enable us to overcome the ecological crisis of today. Hegel combined the philosophies that reflected upon the subjectivity that could not help but neglect nature as an atomic mass of limited things that existed outside of man's ego, with the romantic natural philosophies that tried to dissolve the differences between man and nature through indiscriminate identity to achieve an organic understanding of nature that included the theories of mechanism as a scale. However, despite this kind of understanding, Hegel stresses the importance of man greatly by viewing nature as an idea rising from a different form of existence, or an estranged spirit and thus something that must be sublated by the mind in order to expand humane freedom. Therefore, at least in this sense, it is difficult to accept Hegel's views on nature as alternative ideas that carry ecological meaning sans dispute.
But does this mean that we must view Hegel's philosophy of nature, which criticized mechanism in an effort to recover organicism, and discovered life to be at the roots of nature, as meaningless?
Although the theories of 'deep ecology' were meaningful ventures, that they warned the public of the seriousness of the ecological crisis and raised awareness, these theories could not avoid being criticized in aspects such as that they could possibly fuse with ideas of hatred towards mankind or ecological fascism, and that they diffused Eastern mysticism. Above all Eastern philosophies that center around nature do not correctly understand the position of mankind within nature and pass over the dialectical relationship between mankind and nature, and therefore show limits in providing alternative views on nature that may help solve the ecological crisis that has resulted from the industrial society. All this considered, I carefully suggest that Hegel's ideas of anthropocentric organicism, which apprehend the dynamic characteristics of the system of desire that is the civil society, and still does not fall in to the mechanic views on nature but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nature in dialectic ways, are very much worth examining when looking for ecologically friendly views on nature.

【Key words】 the anthropocentrism, the organicism, the nature, the philosophy of nature, ecologically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