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헤겔의 인륜이론 정초에 대한 연구

나뭇잎숨결 2023. 2. 18. 10:51

 

헤겔의 인륜이론 정초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서양철학전공
임   재   진


목  차


1장. 머리말 1
   1-1. 주제의 해명 1
   1-2. 논의의 범위 3
   1-3. 주제의 탐구 역사 5

2장. 인륜이론의 기초 8
   2-1. 인륜이론의 이념 8
   2-2. 의지의 자유 14
   2-3. 법의 개념 19
   2-4. 인륜의 개념 21

3장. 인륜이론으로서의 자연법 24
   3-1. 주체성과 종교 비판 24
   3-2. 전통적 인륜이론으로서의 자연법 이론 34
   3-3. 자연법에 대한 헤겔의 인륜이론적 재구성 59

4장. 예나 시대 인륜이론 67
   4-1. {인륜의 체계}의 인륜이론 69
   4-2. {예나정신철학}의 인륜이론 82

5장. 인륜이론의 체계적 완성 105
   5-1. 가족의 인륜적 의의 106
   5-2. 시민사회-인륜의 새로운 요소 113
   5-3. 완성된 인륜으로서의 국가 128

6장. 맺음말 142

참고문헌 146

Zusammenfassung 151


1장. 머리말

1-1. 주제의 해명

헤겔의 사회이론은 자유를 본질로 하는 이성적 의지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당대에 보편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주관적 객관적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는 근대 초 부르주아적 질서가 법적으로 정비된 것을 의지의 외적인 정비로 간주하고, 18세기 들어 확립된 반성적인 근대 도덕에서 의지의 내면화된 정비를 보면서, 이런 과정을 비판적으로 극복한 양자의 참된 통일이야말로 의지의 완전한 실현 혹은 인간의 사회적 삶의 이념적 완성이라고 한다.
그의 철학 전반에 걸쳐 주장되고 있는 것인 사유와 존재, 내면적인 것과 외면적인 것의 변증법적 일치에 따르면, 사상의 발전은 항상 역사적 현실의 발전과 평행을 유지해 왔다. 그가 자신의 사회이론에서 펼쳐 보이고 있는 의지의 객관적 실현태들은 철학적 사유의 시각에서 볼 때 반성적 사유의 발전의 외적 형식이었다. 그에게는 칸트식의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의 구분은 부당하다. 철학은 시대 현실의 관념적 사상적 거울이다. 그의 철학의 전저작들이 순수하게 이론적인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직간접으로 객관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 이를 분명하게 확증해 준다. 그의 여러 저작들 중에서도 이러한 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 {정신현상학}, {법철학}, {엔찌클로패디}, {역사철학 강의} 등이고 그 중에서도 {법철학}은 제목 그대로 사회이론 혹은 사회철학이다.
이런 그의 입장은 실천철학에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였다. '인륜'(Sittlichkeit) 개념이 그것이다. 물론 이 개념은 멀리는 도덕적 의무의 보편성에 대한 정초를 시도했던 소크라테스에서, 가까이는 칸트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몰주체적 관습이나 형식적인 도덕적 사유의 한계로부터 해방시켜 새롭게 사회이론의 중요 요소로 전개시킨 것은 헤겔이었다. 그러면 이 개념은 헤겔에서 어떤 독특한 의미를 갖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개념의 사용과 관련된 헤겔 철학의 고유한 특징은 무엇인가?
인륜을 그 핵심으로 하는 헤겔의 사회이론은 바로 근대에 대한 개념적 인식 그 자체였다. 그 개념은 인간의 삶에 대한 논리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의 산물이다. 헤겔은 인간의 삶을 외적인 객관세계 속에서 주체적 의식을 가진 인간의 행위의 결과로 이해한다. 객관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이라는 이러한 양면적 요소는 그에게서는 다양한 개념적 틀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두 요소를 결코 편중됨이 없이 항상 변증법적 균형 속에서 고려한다. 그 결과는 추상적이고 일면적이지 않으며 총체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법철학}에서의 일반적인 변증법적 이해를 따라 말한다면 인륜은 이전 단계인 추상법과 도덕의 통일로 규정되겠지만, 헤겔 철학의 방법적 개념으로서의 '통일'의 개념이 규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듯이 이 인륜 개념도 실제로는 그의 사회이론 전모를 살핀 다음에야 그 참된 규정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잠정적으로 우리는 이 개념을 '지성적 의지를 가진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더불어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속에서 행위를 통해 형성한 사회적 삶의 제형식'이라 규정해 두기로 한다. 그러나 헤겔이 이 용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라는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힘에 의해 인간의 욕망과 그 충족이 유례없이 높아졌고 사상적으로 자유주의적 물결에 의해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평가가 한껏 고조되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그러한 주체성이 불러 일으킨 원자론적 분열 현상 또한 두드러진 것이 당대였다. 높아진 개별적 주체의 요구와 사회적 안정성이 일정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이 시대를 헤겔은 "비인륜(Unsittlichkeit)"의 시대라 부르고, 그 근본적 동력인 주체성을 근대의 원리로 간주한다. 역사에서 반성적 의식이 시대정신의 전범위에 걸쳐 각인된 것은 근대가 처음이었다. 헤겔의 사회철학이 근대의 산물임은 그가 주체성을 인륜에 대한 이해의 관건으로 간주했다는 데서 드러나는 것이다.
헤겔의 사회철학은 근대의 인륜과 주체성을 두 관점에서 바라본다. 첫째는 인륜이 과연 근대 개인들의 자각된 주체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둘째는 주체성의 근대적 발전의 필연성을 근대사회의 인륜적 완성으로 끌어들일 전략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실천철학은 인륜과 주체성에 대한 비판적 탐구인 셈이다. 그것은 당대의 개인들의 인식적 의지적 활동 형식에 대한 비판이자, 공동체적 삶의 상황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근대 이전에는 주체적 자기확인 즉 자율에의 요구가 싹트지 못했다. 물론 소크라테스에서 이런 인식과 실천 상의 자율이 최초로 엿보이기는 하나 그것은 시대의 원리로까지 성장하지 못했다. 근대 인식론 및 과학과 근대의 정치 경제적 환경은 이 근대 원리의 자각을 위한 촉진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일단 전통 질서에 대한 부정성으로 작용하였다. 사상과 사회질서의 새로운 구축을 위한 시대의 몸부림 속에서 이 주체성 범주를 헤겔은 어떻게 규정지으며, 이를 통한 그의 새로운 인륜 기획은 어떤 구체적 내용들을 담으면서 전개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주제다. 앞의 물음과 관련하여 나는 주체성 개념에 대한 헤겔의 입론을 다음과 같이 개괄해 두고자 한다.
1. 헤겔은 근대의 분열 현상을 낳은 정신적 실체를 주체성으로 파악한다.
2. 그러나 헤겔에게 주체성은 그 부정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이념의 고차적 발전에 필연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3. 초기에서부터 후기에까지 이어진 그의 인륜이론의 발전은 바로 이런 주체성과의 대결로 규정될 수 있다.
이 논문은 바로 이러한 기본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 작업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2장에서는 분열로 드러난 근대의 정신적 실체를 파악하고, 3장에서는 동일한 시대정신에 의해 규정된 동시대의 사회이론인 자연법 이론들을 검토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인륜이론의 전개 발전에 어떻게 규정적 역할을 하는지를 4장과 5장에서 추적하고자 한다.

1-2. 논의의 범위

실천철학적 텍스트에 대한 탐구는 일반적으로 관찰자의 시각을 중심에 두거나, 텍스트를 중심에 두는 접근법을 취한다. 첫째는 실천적 탐구의 기본 목표에 부합하는 방법이다. 즉 탐구자가 자신의 문제 상황에서 시작하여 이를 조명하거나 비판, 혹은 정당화하기 위해 이전 이론에서 그 단초를 찾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이전 상황에서 나온 이론의 개념들이 탐구자의 현재와 연속성을 지닐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또한 자칫 원저자의 주장을 현재의 관심을 위해 도구적으로 왜곡시킬 우려도 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사상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할 경우 두번째 텍스트 중심적 접근의 방법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접근의 대표적인 형태는 문헌학적 발생사적 접근일 것이다. 이 글은 이 두 접근법의 어느 것도 명확하게 표방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정치철학의 시대적 적합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상당한 정도로 발생사적 접근을 수용하였다. 즉 헤겔의 정치철학의 사적 배경, 그 형성과정, 당대 상황에의 적합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그의 이론이 바로 근대의 자기인식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물론 헤겔의 정치철학에 대한 나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그의 철학의 현대적 적합성 내지 유의미성에 있기는 하되, 그러나 여기서는 그에 우선하여 그의 철학이 그 자신의 말대로 과연 황혼녘의 자기 시대를 마무리하는 부엉이인지, 그리고 단순히 관념론의 형식적 추상성을 벗어나 실로 살아 숨쉬는 당대의 현실적 생을 그에 합당한 개념 구도로써 정리해 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헤겔의 정치철학의 이론적 타당성은 당대에 비추어 결정되어야지 2세기가 지난 시대의 관찰자의 성급한 견강부회에 따라 판단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헤겔의 사회 이론이 싹튼 당대의 변화 과정과 이론의 정비 과정, 이 모두를 상관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더우기 헤겔 철학은 실재와 사유의 일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 비록 이 일치에 대한 관념론적 설명과 유물론적 설명 모두가 가능한 가운데 헤겔은 전자를 택하기는 했지만 - 인식적 근대로서의 헤겔 철학이 역사적 근대와 상응하는지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것이 탐구된 연후에야 헤겔의 이론과 개념 구도가 우리의 현대에 의미있는 지침이 될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헤겔 이론의 현대적 적용 가능성은 첫째 그의 이론 범주의 근대적 정당성이, 둘째로 당대와 오늘날의 시대적 연속성이 입증될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문제는 우리의 글에서도 대답이 가능하리라 보지만, 두번째는 별도의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지금 한창 논의 중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헤겔의 정치철학은 그의 초기 베른 시대의 종교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프랑크푸르트 시대의 {독일헌법론}(1797년 시작-1802년 완성)을 거쳐, 1801년 이후 예나 시대에 극히 활발하게 꽃피었다. 이 논문도 바로 이 예나 시대의 저작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친다. 이 시기는 체계적인 완성 보다는, 근대 현실에 대한 그의 생생한 비판 의식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때였다. 이 당시 헤겔의 시대 비판적 사유의 산물은 {자연법논문}(1802), {인륜의 체계}(1803), {예나정신철학1, 2}(1803-6)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고, 이의 학적 체계의 형식을 갖춘 완성이 예나 말기의 {정신현상학}(1807)이다. 이후 1817년에는 그의 전체 철학 체계를 하나로 압축한 {엔찌클로패디}가 간행되었고 4년이 지난 1821년에 간행된 {법철학}은 훨씬 구체적으로 정신의 객관적인 자기실현을, 특히 그 법적 형식에 있어서의 실현을 다루고 있다.
특히 {자연법논문}은 이전의 자연법 이론과 그것이 반영하는 17, 8세기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는 나중의 {법철학}에서 그가 추상법과 도덕, 당대의 인륜적 현실을 비판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에 비해 {인륜의 체계}와 {예나정신철학1, 2}는 근대의 사회 현실의 구조적 측면과 주체성을 개념화하는 데에 몰두한다. 예나 시대의 사회이론은 전체의 체계적 구성이라는 부담을 덜 받았던 만큼 오히려 생생한 근대 현실 인식을 담고 있다. 우리는 시대의 변천에 따른 헤겔 사유의 그러한 발전 과정이 당시 프러시아 국가의 성격 변화나 경제적 영역의 분화 등과 어떻게 상응하며, 사유와 실재의 일치라는 그의 철학의 근본 테제를 얼마나 확인시켜 주는지를 이런 저작들을 통해 살펴 볼 수 있으리라 본다.

1-3. 주제의 탐구 역사

정치철학이 시대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고, 당대의 시선들의 강한 조명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헤겔의 정치철학도 그가 이전 혹은 당대의 사상들을 비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그의 생시부터 관심과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그의 정치철학에 대한 후대의 관심은 몇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객관정신 이론의 한 형태로서의 그것에 주목하는 체계적 관심,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혹은 보수주의의 이론적 토대로서 수용하려는 이데올로기적 관심, 칸트, 피히테 등의 형식적 윤리학과 비교하여 새로운 윤리학의 모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철학사적 관심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관심들은 각 해석자들에게 혼재되어 있어 특별히 한 철학자가 특정한 한 관심을 대표한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이런 관심들 중에서 헤겔 사후 가장 많은 논란의 터가 된 것은 두 번째였다. 대별한다면 그 한 흐름은 헤겔의 정치철학을 헤겔 자신의 철학의 규정에 따라 근대를 사상으로 포착한 것이라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이 흐름은 헤겔을 철저하게 자유주의자로 본다. 그는 주체성의 자유를 근대의 기본원리로 충실하게 수용했고, 근대 자유주의의 이론사를 최종적으로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두 번째 흐름은 헤겔의 정치철학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거나 우호적이었다. 전체주의자, 국가주의자, 순응주의자, 보수주의자라는 등의 달갑지 않은 칭호가 비판가들의 상투적인 수식구가 되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으로 민족의 통일성을 강조한 그를 적극적으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의 발견과 함께 헤겔의 예나 시대의 정치적 저작이 20세기에 들어 발간되자 그의 정치철학적 사유에 대한 그간의 해석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기존의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도식에 짜 맟추어 그를 해석한 것이 너무 일면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반성이 뒤따랐다. 즉 헤겔은 자유주의자인가 전체주의자인가, 혹은 근대 시민사회나 국가의 옹호론자인가 비판론자인가 등의 단순한 도식적 이해로는 왜곡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간 {법철학}이라는 주 텍스트에만 의거한 헤겔 수용은 바로 이런 단순성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헤겔의 정치철학이 시민사회와 국가만이 아니라 훨씬 포괄적인 인륜의 영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남에 따라 이후의 헤겔 연구도 그 주제가 세분되고 접근방식도 더욱 다양한 개념적 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헤겔학자로 말해질 수 있는 중요한 이들의 헤겔 해석을 시대순으로 간단히 요약해 보자. 헤겔의 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적 해석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행해진 바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하였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이후 헤겔의 생애에 관해서 고전이 되다시피 한 로젠크란쯔의 {헤겔 전기}(1844)이다. 그는 나중의 해석가들에 비해 헤겔의 청년기의 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료들에 담긴 헤겔의 경제학적 관심을 소홀히 취급해 버림으로써 헤겔 연구사에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또 루카치에 의하면 그는 헤겔에서의 공화주의적 경향을 무시하고 헤겔을 제국주의를 옹호한, 반동적 인물로 그리고 있다. 동시대의 하임은 {헤겔과 그 시대}(1857)에서 가장 전형적인 헤겔 비판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프러시아가 독일 통일의 가장 큰 적일 때 헤겔이 프러시아에 동조하였다고 하면서 그를 반동적인 프러시아인으로, 독일 국가주의의 적으로 매도한다. 이는 19세기 중 후반기의 사상적 흐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는 헤겔을 죽은 개 취급하던 신칸트주의가 유행할 때였다. 이런 시기에 신헤겔주의의 이름으로 헤겔을 칸트와 통일시키려 한 불완전하기 짝이 없던 흐름 속에 하임은 놓여 있었다. 그는 순이론적 측면에서 헤겔의 객관주의와 변증법의 비과학성에 반대한다. 그는 헤겔 철학의 거부를 통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확립에 기여하고자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그는 헤겔이 애써 확립해 놓은 새로운 철학을 이전의 칸트 수준으로 되돌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20세기 초엽의 헤겔 연구를 빛낸 대표적인 학자들은 딜타이, 놀, 헤링, 로젠쯔바이크 등이다. 딜타이의 {청년헤겔사}(1906)는 신헤겔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철학적 낭만주의와 제국주의적 반동적 경향을 보이고 비합리주의적 헤겔 해석의 전형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헤겔 철학의 한 중요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정비한 공헌을 했다. 이런 공헌은 신비적 비합리주의적이고 파시즘에 우호적일 수 있는 헤겔상을 마련했던 헤링이나, 헤겔 국가 철학의 선구자인 로젠쯔바이크의 {헤겔과 국가 2 Bd.}(1920)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될 수 있다.
헤겔 정치철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전후에 이루어졌는데, 그 바로 전에 마르쿠제는 {이성과 혁명}(1941)에서 그 간에 발견된 헤겔의 예나 저작들을 참조하여 단순히 헤겔의 국가철학이 아닌 포괄적인 사회이론을 정비하고, 헤겔 철학과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의 연관을 조명하려 시도함으로써, 헤겔 정치철학에 대한 이후의 탐구의 지평 및 방향을 크게 확장하였다.
 1948년의 루카치의 {청년헤겔}을 비롯하여 그 이후로 20세기의 중반은 가히 헤겔 르네상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하고 심도있는 헤겔 연구가 쏟아졌다. 특히 6-70년대에는 헤겔의 정치철학과 관련하여 수많은 해석들이 등장하였다. 아비네리, 일팅, 리델, 리터, 괼러, 카우프만, 페쳐, 호르스트만, 헨리히, 하버마스 등이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새로이 80년대에 들어서는 펠친스키, 테일러 등이 여기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헤겔의 정치철학의 연구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중요 인물들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세기말 역사와 사회의 격변에 대한 사회철학의 관심은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대비, 새로운 이념 및 사회체제의 모색의 시도와 맞물리면서 헤겔의 인륜 이론 전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하버마스와 회슬레는 헤겔 철학에서 그들의 해석학적 혹은 비판적 사회이론의 근본개념을 찾으려 하였고, 후꾸야마와 같은 역사가들은 새로운 역사관의 정초를 위한 모티브를 역시 헤겔 철학에서 구하고 있다. 또 과학과 기술문명의 파괴적 위협이나 생태계와 환경의 문제는 보다 포괄적인 인륜 이론의 필요성을 낳고 있다.
이 논문이 굳이 전통적인 헤겔 해석에서 보이는 양자택일적인 이데올로기적 관심을 뿌리치고 단순히 그의 인륜이론과 주체성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이유도 이런 문제 상황에 있다. 현대의 문제는 헤겔의 인륜 이론이 근대라는 조건 속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헤겔이 철저히 근대를 사상으로 파악한 근대인이었다는, 그리고 그의 인륜이론이 사회철학적 방법론의 보편성을 지닐 수 있다는 확신 위에서만 성립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2장. 인륜이론의 기초

관습(Sitte)이나 제도가 자연과 다른 것은 인간의 의식적 삶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 인간의 손길이 미치는 세계는 항상 주체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상관작용을 보여준다. 한 개인의 의식세계와 행위, 여러 개인들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물론이려니와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도 의식적 사회적 규정성을 지닌다.
실천적 세계는 자연적 필연성에 얽매인 인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행위하는 숱한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세계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사고와 행위의 가능성을 가진 인간을 주체라 부른다. 그러므로 실천적 세계는 주체적 세계이기도 하다. 실천적 영역으로서의 인륜이 현존한다는 것은 주체들이 있기 때문이고, 주체들이 있는 한 인륜은 부단히 형성된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인륜에 대한 탐구는 특정한 시대의 주체 혹은 주체성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탐구를 요구하게 된다.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근대 사회의 사상적 포착으로서의 헤겔의 인륜이론은 그 내면에서 주체성에 대한 그의 입론에 본질적으로 의존한다. 그런데 주체성에 대한 그의 입론은 이론철학적으로는 의식과 자기의식의 이론에 본질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실천철학적으로는 의지이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의 인륜이론의 전개과정을 체계적으로 그 초기에서부터 살피고자 하고 헤겔 철학체계와 인륜이론의 연관성도 가늠하고자 하기 때문에 인륜이론의 이념을 먼저 다루고 다음에 뒤이어 의지에 대한 그의 입장, 법, 인륜 등의 개념을 후기의 {법철학}을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2-1. 인륜이론의 이념

헤겔에서 인륜이론의 이념은 그의 철학 일반의 이념에 기초하고 있거니와 통일성에 대한 인식, 혹은 이성과 현실의 동일성에 대한 인식 등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의지나 법, 인륜 등에 대한 그의 논의도 전개된다. 여기서는 인륜이론의 기초에 대한 논의를 그의 철학의 일반적인 이념에서부터 시작하되, 학의 논리적 요구와 근대정신의 역사적 형성이라는 두 측면에서 접근해 보기로 한다. 먼저 헤겔의 철학 규정으로부터 이끌어 내질 수 있는 전자의 측면에서 인륜이론의 이념을 살펴 보기로 한다.
헤겔은 인륜이념에 대한 철학적 규정을 이성과 현실의 동일성에 대한 인식으로 표현했는데, 그는 어떻게 이에 대한 인식에 이르렀는가?
헤겔에서 '학'이란 진리에 관한 인식의 체계이다. 진리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 헤겔은 '진리는 절대자'라는 한 마디로써 이 두 물음에 대답한다. 절대자는 전체로서만 그 완결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한 절대자는 넓은 의미에서의 이 세계 전체에 산재해 있다. 그 절대자는 살아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생'이며, 자기인식을 갖는 점에서는 '정신'이다. 그런 절대자는 스스로 움직이는 과정마다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인식하는데, 그 한 예가 '법'이고 '법의 철학'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의 진리가 있고 여러 학이 있을 수 있다.
헤겔은 '학'이 절대자의 여러 형식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임을 인륜이론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법, 인륜, 국가에 관한 진리는 또한 공공의 규율이나 공공도덕 및 종교를 통하여 공표되거나 알려진 그러한 진리 못지 않게 오래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진리란 사유하는 정신이 그것을 다만 앞에서와 같은 극히 손쉬운 방법을 통하여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이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가운데 이미 즉자적으로 그 자체가 이성적인 내용으로부터 또한 이성적인 형식마저 얻어내는 일 이외에 또 그 무엇을 필요로 하겠는가?"(Rph, S. 13-4) 그런데 여기서 '개념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과 '정신'을 그 본성으로 하는 절대자의 여러 형식들은 자신을 여러 계기들로 현상시키면서 그 단계에 따른 인식을 낳는다. 그러나 그 발전이 완결되지 않은 이상 그 인식도 불완전하다. 발전이 점차 심화, 확대됨과 더불어 인식도 더욱 구체성을 띠어간다. '법'의 영역에서 이러한 구체적인 현실이 바로 '인륜'이고, 이의 최고 발전 형태가 '국가'이다. 그러므로 법의 철학에서 진리에 대한 궁극적인 '개념적' 인식이란 결국은, 인륜이 국가에서야 비로소 그 완결된 단계에 이른다는 인식 바로 그것이다. 특히 주체적 자각을 갖춘 삶의 제도적 혹은 실체적 안정성의 요구가 바로 국가를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는 인식이 헤겔 당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루어진 것은 다름아닌 인륜이론의 최종적 완성으로서의 {법철학}의 역사성을 입증한 것이었다.
근대 현실이 무르익어 19세기 초에 인륜의 구체적 완성이 프러시아를 통해 드러났을 때에야 시대 현실에 대한 개념적 인식으로서의 {법철학}도 완성되었다. 이성의 현실성이 국가이고 이성의 인식이 학인 것이다. 헤겔은 이를 {법철학}이 "국가학을 내용으로 삼고 있는 한 오직 이것은 국가를 그 자체로서 이성적인 것으로서 파악하고 또 서술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Rph, S. 26)고 표현한다. {법철학}은 국가가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가 하는 당위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로서의 이 국가가 어떻게 인식되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일 뿐이다. 그에게 철학은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고, 현실 그 자체는 곧 이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개념적 파악은 "현실에 대한 철학의 위치"(Rph, S. 24)를 이전 철학에서 흔히 발생했던 오해로부터 분명하게 구분지어준다. 헤겔에 의하면 "철학은 이성적인 것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오직 이것은 현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파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 뿐 ...... 어떤 피안적인 것을 정립하는 것은 아니다."(Rph, S. 24)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소피스트의 주관주의나 근대철학의 주관주의를 넘어섰을 때에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이성의 내적 외적 형태가 필연적으로 동일하다는 자기확인이 모든 참된 철학적 인식, 즉 개념적 인식의 근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상세하게 말한 바를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한 구절로 함축해버린다.

"이성적인 것, 그것은 곧 현실적이며; 또한 현실적인 것, 그것은 이성적이다."(Rph, S. 24)

사실 {법철학}의 서문은 이 한 구절의 내용에 대한 전후의 설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존재하는 것, 바로 그것을 인식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과제이다"(Rph, S. 26)라든가, "개인이 그 시대의 아들이듯......철학도 역시 사상으로 파악된 그의 시대일 수 밖에 없다"(같은 곳), "이성을 현재라는 십자가에 드리워진 장미로 인식하는 것"(같은 곳), "현실과의 유화이자 화해"(Rph, S. 27), "형식과 내용의 통일"(같은 곳) 등의 표현들도 모두 앞에서 인용한 '이성과 현실의 동일성'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문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단순히 이러한 동일성을 표명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거기서는 어느 시대에나 가능한 현실의 인식과 자기인식의 동일성에 대한 확인이 실제로는 "현실이 무르익을 때에 비로소 관념적인 것은 실재적인 것에 맞서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또한 전자는 후자의 실재적인 세계를 그의 실체 속에서 파악하는 가운데 이를 하나의 지적인 왕국의 형태로서 구축하게 되는"(Rph, S. 28)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고대 사상은 고대 세계를 기반으로 태어났고 근대 부르주아 초기 사상은 근대 산업사회 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실재와 관념세계의 동일성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상이 현실을 지적인 왕국의 형태로서 구축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이 성숙했을 때에 이 동일성에 대한 정신의 인식은 나온다. 헤겔은 그의 사유의 성격을 은연 중에 보여주는 이러한 모티브를,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의 형성과정을 완성하여 스스로를 마무리하고 난 다음에라야 비로소 시간 속에서 현상화된다 ......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Rph, Vorrede, S. 28)고 표현한다.

이제 두번째로 근대정신의 역사적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인륜의 이념에 접근해 보기로 하자. 헤겔의 사변철학은 새로운 지평에서 고대적 사유와 근대적 사유를 종합한 체계로 규정될 수 있다. 그의 철학은 가장 일반적으로 말하여 근대적인 것과 고대적인 것의 통합 시도라는 점에서, 대립이라 일컬어질 수 있는 여러 요소들, 즉 계몽주의와 전통, 주체성과 실체성, 자유와 자연 등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 중심을 이룬다. 그는 특히 그의 정치철학적 저작들을 통해서 근대 주체성의 한계, 당대의 시대의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헤겔 당시에도 이미 계몽주의적 인식의 이상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자율적 이성이 자립적이되 결국은 분열된 세계만을 배태하게 된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서구 사유를 지배해 온 기하학적 인식 이상에 대한 매료를 이제는 예술과 낭만주의적 열정에 대한 매료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초기 낭만주의적 성향은 잠재적인 시대 의식을 표현한다. 헤겔은 당대의 철학에서 이미 계몽주의의 이성을 넘어선 이성 개념을 모색하고, 추상적이고 분석적인 사유 대신에 체계적이고 통일을 향한 관점을 모색하면서 이를 그의 근대 비판의 맥락과 결합시킨다. 탈현대를 이성의 자기 비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헤겔은 이미 그것을 그의 철학적 사유의 초기에 성취한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근대의 정신과 대결했던 방식 및 내용 등은 상당히 복잡하다. 그는 고전 시대 이래의 전통적인 제도들과 대결했는가 하면 근대 특유의 주체성과도 대결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옹호 내지 거부로 그의 태도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그가 예나 시대의 정치철학적 저작에서부터 후기의 법철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치철학적 사유를 전개시켜 간 흐름을 두고 그것의 성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도 했던 것은, 제도적 실체성과 자각적 주체성에 대한 그의 태도 표명이 외적으로 항상 동일하지만은 않았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이유로서 특히 그는 고전적 실체성이나 근대적 주체성을 이어받은 그대로 절대화시키지 않고, 양자를 비판적으로 극복 통일시키려 하였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헤겔의 초기 철학적 사유는 당대의 기독교 및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 비판의 작업을 이론적으로 흡수하면서 그는 무엇보다 칸트 철학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칸트 철학은 이성에 대한 이론적 정초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자유의 정초에 있어서 헤겔적 지양의 중요한 지반을 이룬다. 크로너가 언급한 것처럼 중세 스콜라적 종합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고전적 주체성은 종교 개혁 이후 다시 종교적으로는 개신교를 통해, 철학적으로는 칸트를 통해 근대적으로 부활했다. 칸트는 헤겔에게 근대성 그 자체였다.
그리스 시대 이래 '좋은 삶'(das gute Leben)에 대한 물음은 철학의 가장 의미있는 물음이었지만, '선'(das Gute)이 이성의 순수한 자기 규정 속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는 철학적 표상은 더 이상 그리스적이지만은 않게 되었고 근대적으로 확장되어, 칸트에서 그 최고의 이론적 표현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성의 자기 규정으로서의 자유에 대한 이런 칸트적인 정의는 근대 실천철학의 핵심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해결되지 않은 딜렘마를 드러내기도 했다.
자유는 근대 실천 철학에 있어서는 자연이나 경험적인 것에 대한 절대적인 대립으로만 이해되었다. 그러나 근대인들이 분투해 얻은 이성적 의지의 자율성은 이로써 확보되었지만 궁극적으로 구체적 삶의 형식들의 결집체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당대의 분열된 세계상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발의 유인을 제공했던 이런 딜렘마는 근대 자기의식의 가장 내면에까지 다다른 하나의 철학적 문제의 첨예화된 정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헤겔을 비롯한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자기규정적 자율적 이성과 ...... 역사 속에서의 인간의 삶의 형식들의 실정적 연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중요한" 과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이성과 역사 현실, 이 화해시키기 어려운 두 요소의 대립은 근대 철학자로서의 헤겔로 하여금 또 한 번 변증법이라는 사변적 이론을 가꾸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근대가 대립성이 첨예하게 드러난 만큼 이의 인식과 극복은 결국 위의 대립성의 문제로 귀착한다. 헤겔에게는 한편으로 이성의 순수 자율성이, 다른 한편으로 이성의 역사적 실현이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철학사에서 근대 주체성 윤리학과 고대적인 실천철학과의 분리로 드러났고, 바로 이것이 헤겔에 의해 그의 실천철학의 중심문제로 놓여지게 된다.
일팅이나 리델에 따르면 헤겔은 예나 시대 초기의 {자연법논문}, {인륜의 체계} 등에서는 고대의 실체적 인륜에 의거하여 근대 자연법을 비판하지만, 1805/6년의 {예나정신철학2}에서는 반대로 자연법에서 출발하여 고전정치학의 관점을 비판한다. 다시 말해서 예나 초기에 "헤겔은 원칙적으로 부정성과 실체적 인륜의 개념을 옹호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법 이론과 그것의 목적론적 자연 개념을 수용하지만", 1805/6년에 이르러서는 "부정성이 단순한 무화로 물러서는 인륜의 개념을 옹호하고 있고 인륜의 기준으로서의 자연을 거부하며, 처음에 상대적 인륜의 신분에 한정했던 경제를 신분의 제한으로부터 해방시켜 정신의 운동과정의 요소로 삼고 있다".
그는 인간다운 삶의 고전적 형식이 근대에 들어 바뀌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고, 이로 인해 반인륜의 결과가 초래되고 있음도 알고 있었다. 근대 산업사회는 그 동안 철학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경제적 삶의 문제를 삶의 가장 중심부에 놓게 하였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적 삶은 위축되어 버림으로써 양자는 여전히 분리된 채로 유지되었다. 윤리학은 윤리학대로 칸트에서처럼 추상적인 의지 규정의 학으로 모양만 바뀌었을 뿐 전반적으로 그 자립성에 만족하고 있었다. 결국 근대의 삶의 상황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분열 그 자체였다. 이로써 헤겔은 철학의 과제를 철저하게 통일의 회복에 두게 된다. 그리고 그는 세계 그 자체를 정신으로 보기 때문에 그에게 철학의 이념은 정신의 통일성을 향한 체계였다.
이 점은 근대의 사상적 원천과 관련하여 중요한 두 요소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크로너는 헤겔의 철학이 서양의 가장 중요한 두 사상의 근대적 종합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 시대 이후로 서양 사상은 희랍적 요소와 기독교적 요소가 상호 대립 내지 조화를 이루면서 형성되어 왔다. 양자의 최초의 가장 커다란 종합이 중세의 아퀴나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아퀴나스의 철학 안에서 이루어진 양자의 종합은 기독교 안에서의, 바로 이 기독교에 대한 고대의 뒤늦은 승리였다. 그의 철학 안에서는 사상, 개념, 학문, 제도 등의 객관성이 영혼의 주관성이나 내면성보다 강조되었고 양심보다는 지식이, 감성이나 의지보다는 이성이나 인식이 승리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아퀴나스에 의한 그리이스 철학과 기독교의 화해는 근대의 분석적 사고 앞에 더 이상 기독교뿐만 아니라 근대 이성의 욕구도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이런 불만의 두 역사적 표현이었다. 르네상스에서는 고대 정신이, 종교개혁 안에서는 기독교 정신이 각기 스콜라적인 종합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고유한 힘을 회복하려 했다. 그렇지만 이 두 힘은 다른 한 편을 무시한 채 자신만으로 근대 정신이 될 수는 없었다. 그리이스 정신이 기독교를 무시한 채 순수하게 근대를 지배할 수도 없었고 종교개혁 또한 원래의 기독교 공동체를 그대로 복원시킬 수도 없었다.
양자의 새로운 종합의 과제가 새로운 종파로서의 개신교에게 떠맡겨졌다. 이미 카톨릭이 양자의 화해를 보여주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그리이스 사상의 우위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주체적 자각이 뚜렷해진 근대인의 의식수준을 만족시켜 줄 수 없었고 따라서 개신교는 그 종합의 새로운 방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철학적 응답이 칸트 철학이었다. 그의 비판철학은 개신교적인 기독교의 정신으로부터 나온 철학이었다. 그의 철학은 객관적 제도보다 개별적 자아를, 교회보다 개별 영혼을, 학문보다 양심을, 교리보다 신앙을 우위에 둔다.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실천이성 내지 실천철학이 이론이성 내지 이론철학에 대해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는 근대의 과학적 이성을 수용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도덕과 종교 영역에서의 실천적 이성에게 더 높은 통일의 역할을 기대한다. 실천영역에서의 자각적 주체성이 그의 철학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주체성'의 철학자로 불릴 수 있다.
피히테도 실천이성 우위의 철학 체계를 구상함으로써 그 근본 정신에서는 칸트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적 기독교에 뿌리박은 반헬레니즘적인 칸트, 피히테의 철학이 자아 혹은 주체성에만 한정된 종합을 제시한 데에 반대하여, 셸링은 자연적이고 낭만적인 요소를 중시함으로써 주객 동일성 내지 무한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헤겔이 본 피히테와 셸링의 차이의 한 부분을 이루기도 한다.
이들에게서 나타난 미흡했던 화해의 시도는 헤겔에게 그의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과제로 주어졌다. 중세에 아퀴나스가 했던 종합을 헤겔은 근대에 수행한다. 그러나 전자가 그리이스 정신이라는 개념적 도구를 이용했다면, 헤겔은 칸트가 이룩해 놓은 지반 위에서 거기에 고대적 전통을 끌어들이려 한다.
이런 헤겔의 종합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는 칸트에서부터 견지되어 온 실천이성의 우위를 받아들이면서, 대립자들 중의 어느 한 편의 일방적 우위가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참다운 통일을 모색한다. 우위라는 표현을 다시 쓴다면 그의 철학은 대립된 각 계기들에 대한 종합의 우위를 목표로 한 것이고, 종합이 아닌 지양으로 표현되는 양자긍정의 종합을 시도한 것이다.
이제 지금까지 논의한 인륜이론의 이념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데에 필요한 기본범주들을 의지, 법, 인륜 등으로 나누어 설명해 보기로 한다. 그런데 논의에 앞서 한 가지 밝혀 두어야 할 것은 헤겔에서 의지 혹은 의지의 자유가 설명되기 위해서는 법의 개념이 요구되고 법의 개념 또한 의지의 자유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지 개념과 법의 개념이 그 총체적 해명을 위해 서로를 전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헤겔의 논의방식이 관념론적임을 감안하여 의지 개념에 대한 그의 해명부터 시작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그것이 근대정신의 기초로서의 주체성에 실천적 의미를 부여함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2-2. 의지의 자유

근대 인륜의 결정적 요소로서의 주체성은 무엇보다도 자유의지에 원천을 두고 있다. 헤겔에 의하면 의지는 관습과 제도들을 통해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정신의 한 발전단계, 즉 실천적 정신, 다시 말해 스스로를 내용의 규정자로 인식하는 지성이다. 그러므로 의지는 처음부터 도덕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영역에서도 실현되는 것으로서, 이 때문에 헤겔은 법과 제도들을 의지를 통해 설명할 수 있었다. 의지가 객관적인 연관 속에서 규정되지 않는다면 의지의 특수한 규정성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의지가 자유의지를 의미하는 순간부터 헤겔의 의지의 문제는 바로 자유의 실현의 문제로 무게중심이 옮겨진다.

맨처음 의지를 체계 서술의 한 중요 주제로 다룬 것은 {예나정신철학 2}에서였다. 그 저작은 자기의식에 기반한 실천적 지성을 의지라 한다. 이에 따르면 의지는 이론적 지성의 무내용성을 대상과의 재결합인 노동을 통해서 극복하고자 한다. 이 과정을 {예나정신철학 2}는 충동, 노동, 인정투쟁 등의 이론을 통해서 해명하였다. 그런데 의지는 왜 자유인가? 헤겔에 의하면 인간의 실천인 노동은 자유로운 지성이 자신의 무내용성을 채우려는 데서 비롯된다. 지성은 보편성인 목적을 행위를 통해 실현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실천적 지성이 자기의식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의지는 결코 자유로운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사고를 이어받아 {법철학}은 의지와 사유의 연관에 대해, "사유와 의지의 구별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태도와 실천적 태도 사이의 구별을 의미할 뿐, 결코 이것이 두 개의 능력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의지는 사유의 한 가지 특수한 양식일 뿐이라"(Rph,   4)고 함으로써, {예나정신철학 2}에서의 '실천적 지성으로서의 의지'라는 말을 확인하고 있다.
헤겔은 "중력이 물체의 근본규정이듯이 자유는 의지의 근본규정이라"(Rph,   4. Zusatz) 한다. 그는 이미 의지의 자유가 예나 시대에 충분히 논의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인지, {법철학}에서는 단순히 의지의 자유를 언명하기만 할 뿐 명료하게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의지의 자유의 근거는 의지가 사유를 지반으로 한다는 점 외에는 새로운 면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의 자유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 대해 헤겔은 종래의 취급 방법에서 보인 경험적 성격을 벗어나려 한다. 경험심리학적 방식과 같은 종래의 취급 방법은 "일상적 의식의 갖가지 감각이나 현상에서부터 곧바로 의지는 자유롭다고 하는 식의 이른바 증명이 도출되었다고 한다."(Rph,   4) 그러나 헤겔에 따르면 자유란 의식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어서 단지 믿기만 하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의지의 자유에 대한 학적인 인식은 "의지는 자유롭다는 것, 그리고 무엇이 의지이며 자유인가에 대한 연역"(같은 곳)이어야 한다. {법철학}이 실천철학인 한, 그것의 전체 내용의 전개는 바로 이러한 의지의 자유에 대한 연역에 다름 아닐 것이다.

헤겔 의지이론의 초점은 이전의 룻소나 칸트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개별적인 의지가 그 부정적인 모습을 떨치고 보편적인 의지 혹은 일반의지로 고양되는가 하는 데에 있다. 이것을 우리는 의지의 변증법이라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이를 통해 자유의 현존재가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헤겔은 한 개인의 사유 및 의지가 대상적 사물이나 다른 개인과 특정한 관계를 맺게 되는 방식을 여기서 탐구하고 있다. 먼저 의지 일반의 가장 형식적인 제규정들이 논리적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가 하는 것부터 살펴보자.
헤겔은 의지를 규정하는 논리적 구조, 혹은 의지의 세 형식적 규정들을,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의 모델에 따라 보편성, 특수성, 개별성으로 나눈다. 이러한 3부 구조는 자아가 자신을 실현시키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필연적 과정이다. 그러나 이 논리적 구조가 중요한 더 큰 이유는 이것이 그의 {법철학} 전반을 규정하는 기본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추상법-도덕-인륜으로 짜여진 거시적 구조는 물론이고 인륜 내에서의 가족-시민사회-국가의 3분법적 구조 또한 의지규정의 논리적 구조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1) 보편성에서의 의지는 "순수한 무규정성 혹은 자아의 자기 내적 반성이라는 요소를 포함하는 까닭에 그 속에서는 일체의 제한, ...... 내용은 모두가 해소, 소멸되어 버린다. 따라서 이것은 절대적 추상이나 보편성의 무제한적 무한성, 즉 자기 자신의 순수사유인 것이 된다."(Rph,   5) 그러나 모든 내용적 규정들을 도외시하게 되는 이런 보편성은 결국 "부정적인 자유 혹은 오성의 자유"(같은 곳)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종교적 광신이나 정치적 열광주의처럼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 부정하는 데서 자신의 현존을 확보하려 한다. 일체의 제도를 평등이라는 추상적 자기의식에 위배되는 것으로 본 나머지, 이전의 모든 제도를 무로 돌린 채 빠리꼼뮨에서 자유의 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혁명 정부의 공포정치는 이러한 추상적 보편성의 전형적인 발로라 할 것이다. 이 점은 헤겔이 예나 시대의 저작이나 {정신현상학}에서 계몽주의를 비판하면서 지적했던 바이기도 하다.
2) 그러나 자아는 무내용적 보편성의 공허함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자아는 이제 "스스로를 하나의 규정된 것으로 정립함으로써 현존재성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곧 자아의 유한성 내지 특수화를 이루는 절대적 계기이다."(Rph,   6) 자아는 단순히 의욕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인가를 의욕한다. "추상적 보편성만을 의욕하는 의지는 아무 것도 의욕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따라서 아무런 의지일 수도 없다."(Rph,   6 Zusatz) "그런데 의지가 그 무엇인가를 의욕한다는 것은 곧 제한이나 부정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특수화란 흔히 유한성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같은 곳)
의지의 특수화 내지 특수성에 대한 헤겔의 언급은 의지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특수화를 칸트나 피히테가 간과한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헤겔이 보편성의 자기부정을 주장한 것에 따르면, 칸트와 피히테는 자아를 규정할 때, 자아와 자아로부터 배제된 것 간의 필연적 연관을 자아에 본질적이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림으로서 그들은 무한성과 유한성, 자유와 자연, 형식과 내용 등의 추상적 대립이나 이원론을 낳고 말았다.
3) 그러나 의지는 이 두 규정의 통일, "보편성으로 복귀한 특수성", 즉 개별성이기도 하다. 이 때 자아는 자신을 부정성이자 제한되고 규정된 것으로 정립하면서도 동시에 자기동일성 내지 보편성에 머물러 있다. 이를 헤겔은 "자아의 자기규정", "부정성의 자기관계"(Rph,   7) 등으로 표현한다. 의지의 이 세번째 규정에서 자유의 구체적 개념이 가능해진다. 이것을 헤겔은 사랑이나 우정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이런 경우에 "우리는 자기만을 고집하는 일면성에 머물 수는 없으며 오히려 기꺼이 어떤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자신을 제한하면서도 바로 이 제한 속에서 오직 자기를 자기 자신으로 인식한다는 것"(Rph,   7 Zusatz)이다.
그런데 개별성 내지 규정성으로의 이행에서 우리가 살펴보지 않으면 안될 것은 의지의 '형식'과 '내용'의 구분이다.(cf. Rph,   8-24) 의지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한 형식적이다. "의지의 규정성이 주관적인 것과 외면적인 직접적 실존으로서의 객관적인 것과의 형식적인 대립을 뜻하는 한 이렇게 규정된 의지는 ...... 형식적 의지이다."(Rph,   8) 그러나 이 때 의지는 의지의 경험적 본성에 기인하는 주관적 목적을 그 내용으로 삼는다. 이처럼 의지가 보편적 형식이면서도 동시에 자연적으로 규정된 내용만을 지닐 때 헤겔은 이를 "즉자적으로만 자유로운 의지"(Rph,   10)라 부른다. 아이는 가능적으로 이성을 소유한다는 점에서는 인간이라 할 수 있으나 아직 자연적 본성에 따라서만 행위할 뿐이고 스스로의 형성과정도 아직 거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인간이라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아이는 즉자적으로만 인간이고 개념상으로만 자유로울 뿐이다. 즉자적으로만 자유로운 의지도 이와 같다.
이제 의지는 외계로 나아가면서 그것과의 접촉에서 형성되는 특정한 내용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의지가 절대적일 수 있는 것은 이 특정한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의지 자신이 지니는 외면적일 뿐인 선택의 가능성 때문이다. 이런 자유가 자의(Willk r)이다. "자의에는 모든 것을 捨象하는 자유로운 반성과 함께 또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주어진 내용 및 소재에 대한 의존성이라고 하는 두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 결국 자의란 우연성이 곧 의지로서 존재하는 그런 우연인 셈이다."(Rph,   15) 헤겔은 그것을 "모순으로서의 의지"(같은 곳)라고도 한다. 일찌기 칸트철학을 비롯한 반성철학에서 말하는 자유는 헤겔이 볼 때 자의라는 형식적 자기활동성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자의의 형식은 단순한 선택의 가능성을 뜻할 뿐이고, 자의의 내용도 나의 것, 혹은 나의 의지의 본성을 통하여 규정된 것이 아니라 우연성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다. 앞질러서 얘기한다면 자의 아닌 참다운 자유는 결국 인륜에서만 가능하다는 귀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의지는 어떻게 즉자성을 벗어나 대자성을 갖게 되는가? 앞에서 우리는 의지가 형식상으로는 스스로를 보편성으로 규정하면서도 내용상으로는 자연적인 충동, 경향, 욕구들에 의해 규정되는 한, 자기모순적이며 즉자적일 뿐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의지는 이제 자기제한을 통해 성립한 현실을 바로 자신의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자신이 산출한 현존재에도 동일한 무한성을 용인해 줌으로써 그런 모순으로부터 벗어난다. 다시 말해서 보편성으로서의 의지가 내용과 대상, 목적들의 연관 속에서 그 보편성을 인식할 때 - 이것이 자기복귀이다 - 그 의지는 더 이상 즉자적일 뿐인 의지인 것이 아니고 대자적이기도 한 의지가 되는 것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요소들의 근거를 자신 안에 지니는 이러한 변증법적 총체성이 앞에서 말한 '개별성'이다. 의지가 "단순한 가능성이나 능력(M glichkeit, potentia)이 아니고 현실적인 무한자(infinitum actu)라는"(Rph,   22) 헤겔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의지의 세 규정들의 발전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의지의 세 규정들의 논리적 분화에서 우리는, 절대적 보편성의 의지를 통해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자 했던 인간이, 자신을 제한하는 온갖 실제의 역사 사회 현실 안에서 행위할 수 밖에 없고 자유도 그 안에서만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됨을 알 수 있다. 의지규정의 3부구조적 발전은 칸트식의 도덕에서는 불가능하다. 의지의 자유를 논하되 그것은 어디까니나 인간의 의지에 관한 논의여야 함을, 그리고 참다운 자유는 현실적인 인륜구조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헤겔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지내적인 발전은 {법철학}에서 법의 구체적 전개를 낳았다. 여기서 우리는 {법철학}의 전체 내용을 구분짓는 것이기도 한 의지의 발전 단계를 조망해 봄으로써 그의 실천철학 전반에 대한 개관을 얻을 수 있고 인륜이론의 체계적 이해를 위한 실마리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분에 대한 헤겔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즉자대자적으로 자유로운 의지의 이념이 발전하는 단계적인 순서를 보면 의지란
A. 첫째로 직접적이다. 따라서 의지의 개념은 추상적 - 즉 인격 - 이며 그의 현존재는 직접적 외면적인 물건이다. 이것이 추상적 내지 형식적인 법의 영역을 이룬다.
B. 둘째로 의지는 외적인 현존재로부터 자체 내로 반성, 복귀한 의지이므로 이것은 곧 보편자에 대하여 주관적인 개별성으로 규정된 그러한 의지이다. ...... 여기서 이념은 스스로 양분되거나 또는 특수적인 실존으로 있는 가운데 이제 주관적 의지의 법은 세계의 법과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이념의 법과의 상관관계 속에 놓여지는 셈이다. 이것이 도덕의 영역이다.
C. 세째로 의지는 이들 추상적인 두 계기의 통일 및 진리이며, 또한 사유된 선의 이념이 자체 내로 반성된 의지와 외면적인 세계 속에서 실현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실체로서의 자유는 주관적 의지로서 존재하는 것 못지 않게 또한 현실성과 필연성으로서도 실존한다. 결국 이것은 이념이 스스로 즉자대자적으로 보편적인 실존으로 나타나는 것, 즉 인륜이다.
그런데 또 인륜적 실체는 동시에
a) 자연적 정신 - 즉 가족,
b) 그의 분열과 현상 - 시민사회,
c) 그리고 국가인바, 이것은 곧 특수적 의지의 자유로운 독립성을 간직하면서 또한 못지 않게 보편적이며 객관적인 자유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현실적이고도 유기적인 α) 한 민족의 정신은 β) 특수적인 여러 민족정신의 상관관계를 거쳐 나감으로써 γ) 마침내 세계사 속에서 보편적 세계정신으로 현실화되며 또 현현되기에 이르는바, 이 보편적 세계정신의 법이야말로 최고의 법이다."(Rph,   33)

이 구분의 원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도덕성과 인륜성의 구별이다. 헤겔은 여기서 칸트철학의 실천적 원리가 인륜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고까지 명백히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 두 개념이 어원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닌 것임에도 개념 자체의 내적인 구별에 따라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사변철학의 논리가 의지발전에 대한 철학적 구분을 낳고 있는 것이다.

2-3. 법의 개념

헤겔은 법을 "자유의지의 현존재"(Rph,   29)라 정의한다. 그는 법이 자유의 제한이 아니라 자유의 현존재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법의 지반은 도대체가 정신적인 것이며 또한 그의 좀 더 엄밀한 위치와 출발점은 의지이면서도 더욱이 자유로운 의지이다. 결국 자유야말로 법의 실체 및 규정을 이루는가 하면 또한 법의 체계는 실현된 자유의 왕국이며 더 나아가 정신 자체로부터 산출된 제 2의 자연으로서의 정신의 세계이다."(Rph,   4)

그런데 법과 자유의지의 연관을 표명한 위의 인용이나, "법의 이념은 자유"(Rph,   1 Zusatz)라는 {법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헤겔과 이전 철학자들과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다. 법 자체에 대한 규정을 내리기 앞서서 법과 자유의지의 순환관계부터 언급하기로 하자.

"(법의 이념은 자유라는)이 명제로써 헤겔은 칸트와 사회계약론의 룻소를 따르지만, 또한 홉즈와 로크의 전통으로부터는 벗어난다. 칸트와 룻소는 법이 자유를 목적으로 한다고 본 데 비하여, 홉즈와 로크는 법이 자유의 필수적 조건이긴 하되 자유의 목적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조정과 소유권의 확보 및 경쟁의 제한에 의해 규정된다고 한다. 이 차이의 결과는 크다. 로크적 전통에 따르면 법이 무엇인가에 합의하기 위해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어떤 합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헤겔에 따르면 어떤 것을 법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나 법에 앞서 자유가 무엇인가를 규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슈타인포르트는 법과 자유 양자간의 규정상의 순환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의 이념은 자유이다. 그 이념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현존과 개념의 통일, 몸과 영혼의 통일이 이념이다. 그 통일을 참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그 개념에 있어서도 그 현존에 있어서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헤겔에서 법은 자유의 현존으로, 자유는 법의 이념으로 말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법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이념인 자유를 알아야 하고, 자유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현존인 법을 알아야 한다. 이는 순환 아닌가? 나아가 '현존'이라는 말은 법을 실정법으로 이해하기 쉽게 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헤겔은 법을 실정적인 법관계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는 셈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 경우 자유는 실정적 법관계나 국가의 합법성 혹은 적법성의 기준이 될 수 없을 것이고, 반대로 실정적인 법체계가 곧 자유의 증명이 되고 말 것이다. 헤겔 해석 상의 이런 문제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헤겔에서 법의 이념에는 그 이념의 현존 뿐만 아니라 그 개념도 속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쉬웠다. 즉 현존없는 이념이 단순한 개념에 불과하듯, 개념을 통해 정립된 현실이 아닌 현존은 모두가 외적 우연성에 불과하다는, 다시 말해 양자의 통일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쉬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문제는 순환이라 하기보다는 분석적 사유의 한계라 해야 할 것이다.

Recht는 보통 '법'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권리'의 의미도 갖고 있다. 한 단어가 이렇게 외적으로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헤겔을 비롯한 근대 정치철학자의 사상에는 '권리'와 '법'이 아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헤겔 이전의 대표적인 근대 정치사상인 사회계약론이나 자연법은 개인의 권리(Recht)로부터 법을 연역하고 있다. 즉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위시한 제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가 법으로 정비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에서는 권리와 법은 동일한 논리 및 생성의 역사를 지닌다.
헤겔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법이 단순히 외적으로 개인들에게 가해지는 강제가 아님을 주장한다. 그는 의지의 자유와 의식적 행위가 일정한 제도 속에서 안정성을 얻을 때 그것이 곧 법을 형성하는 것이라 본다. 의지의 개념의 제도적 실현이 바로 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의 독특한 법 개념 외에도 단순한 강제도, 형식적인 도덕도, 경제적 정치적 현실도 모두 '법'의 개념 속에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그의 '법' 개념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이 개념 발전의 낮은 단계에서의 의미인지, 고차적인 단계에서의 의미인지를 분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와 같이 법이 단순한 강제가 아닌 한, 그것은 자의(Willk r)에 대해서만 제한일 뿐 이성적 의지인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결코 제한이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헤겔과 칸트는 아무런 차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칸트와 다른 헤겔 특유의 '법' 관념은 무엇인가? 그는 넓은 의미에서의 '법' 아래에 추상법, 도덕, 인륜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서 유래하는 제도적 윤리학을 새로이 정비하고자 하는데, 이런 작업을 그는 주체성의 도덕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당대의 세계와의 관련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수행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 윤리학을 근대의 사회와 국가에서, 그리고 자유의 원리에 기초한 제도들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에 관한 이론으로 정비한다." 즉 그는 자유의지의 실현을 제도적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논구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적 윤리학이 바로 인륜이론이다.

2-4. 인륜의 개념

우리는 헤겔에서 정신 혹은 자유의지의 객관화인 법이 그 단계와 의미영역에 따라 넓게도 좁게도 이해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외적으로만 보아도 {법철학}과 {엔찌클로패디}에서 법은 객관정신의 영역 전체를 지시할 때가 있는가 하면 그것의 한 부분으로서 추상법만을 지시할 때도 있다. 인륜의 개념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 의미가 명확히 확정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인륜이론이 가장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정비된 {법철학}에서 인륜 개념은 물론 명확하게 추상법과 도덕에 뒤이은 단계를 지시하는 영역으로 칭해지고 있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인륜이 법 개념과 同列的이라는 언급도 없다. 그러나 이런 구별이 인륜으로부터 추상법과 도덕이 배제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헤겔의 인륜 개념은 제도화된 법적 요소와 도덕적 자기의식 양자를 포함하여 지양한다. 구체적 세부사항에 있어서는 아니나, 인륜에 대한 총체적 이해는 - 특히 자유의 이념적 발전의 이해와 관련해서는 - 법의 영역 전반 나아가 세계사의 영역에 대한 이해까지 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은 이전의 사회이론이었던 자연법 비론도 법의 이론이자 세부적으로는 인륜이론일 수 밖에 없다고 보아, 헤겔의 인륜이론의 정초에 한 중요 요소로서 끌어들일 것이다. 이는 이 글이 헤겔의 실천철학의 해석에서 인륜 개념을 {법철학}에서의 인륜 장에 국한하지 않고 넓게 해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법철학} 이전의 저작에서도 인륜 개념의 정의로 볼 수 있는 것이 등장하고 있다. "인륜은 보편적인 것이며 민족의 순수정신"(NR, S. 467)이라든가, "인륜은 개인들의 자립적 현실성 안에 있는 것으로서 그 개인들의 본질이 절대적인 정신적 통일을 이룬 상태"(PdG, S. 194)라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륜 개념들이나 이하에서 상론될 {법철학}에서의 인륜 개념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것이 가족이나 시민사회, 국가 등을 특별히 지칭하지 않고 자유의지의 실현이라는 일반적 구조 속에서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륜에 대한 이런 정의는 헤겔의 인륜이 법이나 도덕 등과 함께 정신의 실현 단계에 따른 구분인 한, 꼭 가족, 시민사회, 국가에 한정된 개념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그의 초기 종교비판이나 자연법 비판까지도 아우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인륜이론의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법철학}에서 제시되고 있는 인륜 개념에 대한 개략적인 정의를 언급해 보자. 거기서의 인륜의 개념은 3부 '인륜'에서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이를 몇 가지로 요약해 보자.
a. 인륜의 이념 : 인륜이란 "자유의 이념", "살아있는 선"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인륜은 "자유의 개념이 현존세계로 되면서 동시에 그것이 자기의식의 본성에 다다른 것"이다.(Rph,   142) 헤겔의 인륜은 주관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것이다. 이전의 추상적 선 대신 들어선 "객관적 인륜은 무한한 형식으로서의 주관성에 의하여 이룩된 구체적 실체", 혹은 "주관성에 의하여 충만된 객관적인 것"(Rph,   144)을 의미한다.
인륜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자연의 사물은 다만 외면적이고 개별화된 양식으로만 이성적 본성을 나타냄으로써 그것을 우연성의 형태 아래에 은폐시킬 뿐이지만, 인륜적 실체는 개인의 현실적인 자기의식 안에서 스스로를 인식함으로써 그러한 지의 대상이 된다.
b. 의무로서의 인륜 : 의무는 일단은 제한이다. 그러나 인륜이론에서의 의무는 자연적 충동이나 자의에 대해서만 제한일 뿐이다. 오히려 개인은 의무를 통하여 자연의존성이나 무규정적 주관성으로부터 해방되고, 실체적 자유로의 해방을 성취한다.(cf. Rph,   149) 그러므로 국가 안의 제관계는 자유의 이념을 필연적이고 현실적이게 함으로써 개인에게 적극적인 자유 획득의 길을 안내한다.
c. 주체성과 실체성의 통일로서의 인륜 : 인륜적인 것이 여러 개인의 현실적 삶과 동일성을 이룰 때 그것은 "개인의 보편적 행동양식을 뜻하는 습속(Sitte)"(Rph,   151)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제 2의 자연으로서의 인륜적 습관(Gewohnheit)이며 ....... 생동하게 현존하는 정신이다."(같은 곳)
이리하여 인륜적 실체성(Die sittliche Substanzialit t)은 자신의 권리와 타당성을 지니게 되고 개별자의 아집이나 고유의 양심은 사라져 버린다. 주체와 실체 사이의 구별도 단순히 형식상의 구별에 지나지 않게 된다.(cf. Rph,   152)
d. 주체적 확신의 진리로서의 인륜 : 스스로의 자유에 대한 개인의 확신은 인륜적 객관성 속에서 진리에 이른다. 룻소가 구상했던 것처럼 현세와 격리된 곳에서의 자연적 교육이란 허사일 수 밖에 없다. "개인은 좋은 국가의 시민이 되는 데서 비로소 자기의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Rph,   153 Zusatz)

헤겔의 인륜은 다양한 대립들의 통일로서 현실성을 갖게 된다. 그것은 일반의지와 특수의지의 통일,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혹은 실체적인 것의 통일, 권리와 의무의 통일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크게 두 가지로 표현된다. 특수성과 보편성의 통일, 주체성과 실체성의 통일이 그것이다. 이 양자의 괸계는 꼭 서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하에서 인륜의 본성을 밝히는 데에 여러 모로 중요한 범주적 역할을 한다. 인륜의 제형태들은 이 범주들의 통일의 특정한 단계를 시대 속에서 구현한다. 그리고 이 두 범주의 통일은 국가에서처럼 각각의 완전한 발현 속에 통일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가족이나 시민사회에서처럼 양자의 미분화 내지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우세에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헤겔은 위의 범주들 중 특히 후자의 범주군과 관련하여 인륜적인 것을 다루는 방식이 두 가지만 있다고 한다.(cf. Rph,   156) 실체론적 관점과 원자론적 관점이 그것이다. 고대적 사유방식이 전자를 주된 것으로 하고 있다면 근대적 사유는 후자에서 그 특징을 보여준다. 근대 자연법론이나 사회계약론, 혹은 칸트, 피히테의 도덕철학은 모두 개인에서 출발하는 공통된 흐름 위에 있다. 그러나 개별성을 기초로 하는 원자론적 관점에는 정신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정신이란 본래 개별과 보편과의 통일로서만 존립할 수 있음에도 후자의 관점은 정신을 그 현실성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 추상성에 있어서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륜은 바로 현실적 정신의 형태에 따라 구별되어 탐구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구별 혹은 구분은 정신 자신의 운동에서 비롯된다. 즉 자기인식적이며 현실적이기도 한 정신이 자신을 객관화하는 운동에 따라서 인륜 이론도 전개된다는 것이다. 헤겔은 인륜의 구체적인 제형태를 가족, 시민사회, 국가 등의 세 단계로 나누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5장에서 다시 주체성의 역사적 각성과 연관지어 보다 상세하게 살펴 보기로 한다.
3장. 인륜이론으로서의 자연법

3-1. 주체성과 종교 비판

역사적으로 인간의 의식 내지 자기의식의 발전과 더불어 주체성도 더욱 첨예하게 노정되었고 현실에의 강한 침투력을 지니게 되었다. 고대 이후엔 종교를 통해, 근대엔 산업사회 내지 시민사회를 통해 주체성은 그 부정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역사의 발전은 주체성의 부정적 전개에 별다른 제동을 걸지 못하였다. 다만 그 다양한 표출을 확인하였을 뿐이다. 헤겔의 근대인식은 바로 이 주체성의 부정적 기능에 기인하는 현실의 반인륜적 모습에 초점을 맟추고 있다. 그는 근대 인륜의 분열 현상을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역사적 필연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그는 주체성이 시대 속에 스며들 수 있었던 구조를 탐구한다. 다시 말해 주체성의 적극적인 이론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것을 역사적 필연으로 수용하면서도 넘어서려는 것, 이것이 그의 사회철학의 핵심 과제였다.
헤겔의 근대 인식의 근간을 이루는 종교와 자연법 비판은 주체성에 대한 그의 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의 초기 현실적 관심을 반영하는 예나 실천철학도 내용상으로 자연법이나 인륜, 의식 등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는 근대 주체성 개념에 대한 이해나 해명 없이는 정초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의 근대 인륜의 인식과 이의 이론화에 필수적이었던 주체성에 대한 그의 이론적 관심에 대해서는 초기에서부터 예나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저작들이 중점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종교 비판, 자연법 비판, 인륜 이론의 정립, 실천적 의식 이론의 정립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 먼저 이 절에서는 종교 비판을 통한 주체성 개념의 정비가 어떻게 그의 인륜이론으로 이어지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사상의 역사적 발전과 주체성의 확대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가 확인해 보자.
헤겔에 따르면 근대 세계의 성립은 새로운 시대 조건과 맞물린 주체성의 발현에 의해 이루어졌다. 근대 세계에 대한 헤겔의 양면적인 이해는 그의 주체성 개념에 대한 양면적 이해와 평행 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많은 근대의 철학자들에게 근대의 근본적인 원리가 주체성으로 표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오직 근대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당대의 여러 철학자들 이외에도 이미 고대 철학 시기에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 간의 논쟁에서 그것은 진리 내지 사회 규정의 한 중요 요소로 등장하고 있었다. 진리는 개별적 주관을 넘어선 보편적인 것이며 그것을 발견하고 획득하는 능력이 인간 이성에게 있음을 주장한 소크라테스나, 인간 개체의 감각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상대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한 소피스트들에게 주체성은 비록 성격 규정은 다르나 그들 주장의 중요한 토대가 되어 있다. "사유의 주체성은 보다 확고하고 날카롭게 소크라테스에서 의식되었다...... 그는 정신의 자기 안에서의 중요한 전향점이었다." 헤겔에 의하면 "무한한 주체성, 자기의식의 자유는 바로 소크라테스에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서의 주체란 "정지해 있는 것, 확고한 것.......실체.....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스스로를 절대적으로 보존하는 것, 진리, 선" 등의 개념에 가리워져서 다소 추상적이고 소극적으로 논의되고 실천적 맥락에서도 선이나 덕의 인식문제로 축소되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반해 소피스트들에게서 주체성은 근대 이상으로 적극적인 의미를 띤다. 감각 주체를 기초로 한 인식론의 정초는 말할 것도 없고, 실천적 맥락에서도 근대 계약론자들의 주장을 앞서 제시할 만큼 개인의 자연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대에 주체성은 그것이 단순히 개별적 개인의 인식과 의지로 해명되느냐 아니면 보편자 내지 실체성과의 관련에서 논의되느냐 하는 것에 따라 논의의 흐름을 달리했고 그 양자가 이후의 문제 형성의 주요한 두 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고대적 주체성은 기독교와 더불어 이보다 복잡하고도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리이스 정신과 기독교 정신은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립과 공존을 해오다 칸트에 이르러 개신교적인 내적 반성적 주체성의 우위로 마감지어졌다. 이제 근대 인륜을 비판하려는 헤겔이 그 초기적 전략으로서 왜 근대 계몽주의와 기독교 정신의 추상성을 폭로하려 했는지 살펴보자.

3-1-1. 종교 비판의 정치적 의미

 근대적 사유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계몽주의는 헤겔이 볼 때 "인식과 현실을 이성 원리로부터 절대적으로 새롭게 정초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고대에 비해 근대가 뛰어남을 본, 당대의 보다 심화된 자기의식의 한 현상형식에 불과했다." 계몽주의는 기독교와 결합된 기존의 사회질서를 비판하고 산업 사회의 새로운 현실에 부응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를 자처했고 또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전통과 조직 속의 개인을 해방하려 했던 그것은 삶의 소중한 나머지 또 한 부분까지도 버리고 말았다.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강조 뒤에 근대 사회의 분열을 초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기 헤겔의 종교 비판은 단순히 종교 비판에만 그친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그의 종교 비판에는 두 가지의 과제가 동시에 함의되어 있다. 근대를 사상적으로 수용함과 동시에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획을 그는 세운 것이다.
헤겔은 그의 튀빙엔 및 베른의 학창 시절에 이미 프랑스 계몽주의자들, 즉 몽테스키외, 볼테르, 디드로, 홀바흐, 룻소 등의 저작들에 통달해 있었다. 그는 선진적 사회 발전을 바탕에 둔 유물론 경향의 프랑스 계몽주의를 수용하여 당시 독일의 낙후된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무기를 얻었다. 당시 독일의 지적 상황은 이론적으로는 이성 종교의 사유에만 집착하고 있었고 현실적으로는 소영방 국가의 절대주의에 순응하는, 다시 말해서 프랑스와 영국의 흐름과는 다른 계몽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카치는 청년 헤겔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주 무관심했고, 청년 쉘링처럼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관심의 초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청년 헤겔은 당시의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했듯이 『실천이성비판』에 나타난 칸트의 문제 제기를 사회와 역사에 적용시키려고 했다. 그에게는 칸트의 순수 윤리학적 관심 못지 않게 사회적 역사적 관심도 컸으며, 구체적인 사회 현실과 대결하는 실천적 관심이 보다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칸트는 외적이고 질료적인 내용이 완전히 사상된 순수 실천이성을 정초하는 일을 과제로 삼았지만, 헤겔은 오히려 이성의 역사 속에서의 구체적 실현 과정을 탐구하고 현실이 이성의 실현임을 입증하는 것을 철학의 과제로 본다. 또 당시 그에게는 보편적 도덕법칙을 수립할 수 있는 추상적인 주체는 관심 밖이었고, 집합적이고(kollektiv) 역사적인 주체 즉 근대 시민이 관심 대상이었다.
이러한 그의 실천적 문제 의식의 철학적 표출은 베른 시대에는 특히 종교 비판으로 정식화되었다. 중요한 것은 청년 헤겔의 역사적인 문제 연관 속에서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는 있지만 이를 다루는 그의 입장은 결코 신학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종교의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을 문제로 다루었고 사회의 유형과 종교적 신앙의 유형 간의 관계, 종교적 제도의 정치적 배경" 등을 다룬 것이다. 어쨌든 왜 헤겔의 초기 철학적 문제 의식이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은 이 글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재미있는 대답을 엥겔스가 주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당시에 다루기 위험한 영역이었기 때문에 중심 투쟁은 종교로 향해졌다. 특히 1840년 이후로 이러한 종교 투쟁은 간접적으로 정치 투쟁이기도 했다." 서구의 초기 계몽주의가 봉건 질서를 지탱해 온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저항으로 싹텄던 것과 마찬가지로 헤겔도 종교 비판의 맥락을 출발점으로 하여 근대를 철학화한다. 그러나 그는 종교 비판의 길 위에 있었음에도 같은 길 위에 있었던 계몽주의자들도 비판 대상으로 한다. 그에 비례하여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 또한 다중적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서구의 역사는 기독교의 변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고대 도시국가의 몰락은, 비록 직접적이긴 했지만 당시에 존재했던 공동체적 통일성이 붕괴된 과정과 흐름을 같이한다. 즉 고대 사회의 해체는 당시 싹터 오르던 주체성의 자각에 기인한다. 그런데 그리이스 이후 로마 사회는 바로 이러한 사적 주체성을 바탕으로 성립하였고 이의 사상적 조력자가 기독교였다. 초기 기독교의 변질 과정은 바로 주체성의 부정적 변화 과정이기도 했다. 헤겔은 계몽주의의 일반적인 연장선 상에서 기독교가 사적 개인들, 부르주아의 종교, 다시 말해서 인간적 자유를 상실한 종교, 수 천년 동안 지속된 전제와 노예 상태의 종교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종교적인 것, 즉 전제와 노예 상태의 종교가 다시 고대적 이상에 따른 자유의 종교로 되돌려질 수 있는 그러한 사회적 조건들을 탐구한다.
헤겔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종교와 결합하게 된 배경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겠다. 첫째 사회 제도 내지 국가 속에서 인간의 자유와 도덕성을 확인하려 했던 그는 시민들에게 외적인 도덕 즉 합법성만을 강요한 당대의 국가에 대해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둘째 헌정 체제는 시민들의 내적인 도덕과 결합될 때에야 인간들에게 자유 의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후자와 관련하여 그는 시민들의 공동체적 유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내적인 도덕의 원천을 바로 인륜적 종교의 회복에서 찾는다. 이런 관심을 가졌던 헤겔에게 당대의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그가 우선 종교 비판과 아울러 종교와 정치와의 재결합을 모색하게 된 것은 관념론자로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인륜적 종교의 회복을 위한 그의 비판적 준비 작업이 기독교의 '실정성'(Positivit t)에 대한 탐구였다.

3-1-2. 실정성 비판과 계몽주의

특히 베른 시대의 헤겔에게 중요한 문제가 기독교의 실정성이었다. 당시의 헤겔이 볼 때에 실정적 기독교는 전제와 억압의 기초였지만, 이에 반해 고대의 종교는 자유와 인간의 가치를 살아 숨쉬게 하는 종교였다. '실정적'이란 어떤 성격을 말하며, 기독교는 어떻게 실정적이 되어갔는가? 나중의 물음은 다음에서 상론하기로 하고 첫 물음부터 다루어 보자.
이와 관련된 그의 두 저작이 {기독교의 실정성}과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이다. 앞의 저작은 베른 시대에, 뒤의 것은 프랑크푸르트 시대에 쓰여졌다. 베른 시대에 그는 칸트적인 자유와 실정성의 대립을 기초로 다양한 종교체계 즉 구약의 유태교와 신약의 기독교, 모세와 예수 등을 구별하는 시각을 얻었지만, 프랑크푸르트 시기에 와서는 실정성의 문제를 기초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해명한다. 여기서 얻은 통찰이 뒤에 헤겔의 근대 국가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시 말해 그는 재산권과 그 보장에 토대를 둔 근대 국가의 기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격을, 고대 공화정의 덕 및 기독교적 사랑의 관점에서 비판하려 한 것이다.
종교에 대한 헤겔의 역사적 관점은, 종교가 인간의 합리적 능력에서 발생했다는 전형적인 계몽주의적 종교관에 입각해 있다. 종교는 도덕성을 최고 목적으로 하여 행위하는 인간의 성향 중 가장 뚜렷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삶의 계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어떤 종교도......역사적 실재인 사회문화적 현상의 총체성과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사회의 일반적인 구조 및 습속에서의 변화는 종교적 신앙의 형식에 변화를 일으킨다. 반면 종교에서의 변화는 시대정신의 일반적 상황에서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처럼 종교는 광범위한 역사적 총체성의 한 측면으로 나타난다. 헤르더를 따라 헤겔은 이 총체성을 민족정신이라 부른다."
이러한 헤겔에서 종교의 '실정성'이란 "일련의 규칙과 규제를 제정하는 종교적 체제" 혹은 "주체적 자립성과 자유에 대립되어 있는 죽어 있는 객관성"을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적 확신과 자유로운 도덕적 선택에 따라서가 아니라 기존의 종교 제도가 개인에게 부과한 율법적인 규칙에 따라서만 행위할 때, 그는 그것과의 참다운 통일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실정성은 주체의 도덕적 자율의 폐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헤겔에게 한 모델이었던 고대 도시국가 내에서의 개인은 단순한 도덕적 주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덕적 자율을 지닌 개별자이면서도 자신의 의지가 전체 시민의 집합적 의지와 통일되어 있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주체였다. 도시국가와 그 민주주의의 붕괴는 기독교의 실정화 과정과 흐름을 같이했고, 이후의 로마 시대의 사적 개인의 출현 및 자유의 상실과 억압 및 전제정치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기독교의 실정화 과정은 인륜적 주체성의 왜곡된 발전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실정성이 계몽주의 비판과 관련하여 논의될 때는 다소 사정이 복잡해진다. 왜냐 하면 종교 비판의 길 위에서 계몽주의와 합류해 있을 법함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계몽주의 또한 비판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자 비판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기독교의 실정성은 주체성의 부재 내지 상실에서, 계몽주의의 잘못은 주체성의 과잉 내지 추상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신앙과 지식』은 당대의 실정종교(신앙)에 대한 계몽주의(지식)의 투쟁이 이미 이성의 승리로 마감되었다고 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승리자인 이성이 겪은 운명은, 야만 민족의 승리의 힘이 예속된 약자에 대해 외적 지배에서는 우위성을 지니지만 정신에 있어서는 피정복자에게 패하여 쓰러졌던 바로 그 운명과 같다고 헤겔은 말한다. 계몽주의가 신앙과의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정확히 보면 이성은 애당초 그 싸움의 대상을 잘못 택한 것이고 승리도 제대로 된 승리가 아니었다.
헤겔에 의하면 계몽주의가 이 싸움을 통해 이성의 참된 모습을 견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계몽주의가 실정성을 기각함으로써 이성의 내용이기도 해야 할 종교의 절대적 내용을 거부했다는 데서 드러난다. 계몽주의는 종교의 모든 구체화를 이성의 추상적 보편적 개념의 이름으로 실정적이며 미신적인 것이라 선언, 폐기해 버림으로써 단지 부정적일 뿐인 절차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계몽주의는 그 비판의 대상을 내동댕이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원리를 즉 인간 이성의 비판적 힘 내지 주체성의 원리를 밝혀 놓은 기여를 하였다. 또 그것은 종교적 의식이 피안과 차안의 분열을 초래한 것에 저항함으로써 새롭게 인간과 세계의 화해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의 무한한 내용을 거부했기 때문에, 도달된 화해는 유한한 경험적 세계에만 한정된 화해였다. 부정적으로 볼 때 계몽주의는 종교에 대해 그리고 결국은 이성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부당하게 부정적으로 다루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은 로크를 비롯한 영국 계몽주의자들의 원리를 "유한성의 실재론"으로, 독일 계몽주의자들의 원리는 "유한성의 관념론"으로 부르기도 한다.
헤겔에 따르면 영국 계몽주의에선 무한성이 아직은 그 최고의 추상 속에 정립되어 있지 않고 행복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유한성의 절대화라는 원리 또한 완전하지 못하다. 이 무한성은 그것에 마주해 있는 경험적으로 다양한 실재의 개념적 형식일 뿐이다. 독일의 반성철학적 계몽주의자들은 이 무한성과 경험적 다양성이라는 두 측면을 추상물로 서로 대립시킴으로써 - 즉 경험적 다양성과 개념(통일성)이 서로에 대해 각각 절대적 실재성이자 절대적 부정성으로 규정됨으로써 - 극단에 위치시킨다. 결국 영국 계몽주의를 통해 근대 주체성 원리는 경험과학에 환원되는 그런 제한된 방식으로 주장되었다고 한다면, 독일의 반성철학은 무한한 개념 내지 사유로서 주체성이 지닌 보편성을 그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낸 셈이다.
계몽주의와 반성철학의 공통된 원리에 대한 분석은 근본적으로 시대의 진단을 내포한다. 유한성의 '실재론'과 '관념론'은 헤겔에게,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다만 내면성으로서만 현존했다가 근세의 과정에서 펼쳐지게 된 주체성 원리의 실현형식들이다. 이 세 철학과 함께 계몽주의의 기획인 '교양'(Bildung)은 마감된다. 그 철학들은 그 모든 형식들을 동원하여 '비판'을 수행했고 역사의 과정에 교양의 확대를 맡겼다. 그것들이 그 시대의 정신에 상응한다는 사실에서 헤겔은 그것들의 의미와 타당성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표현한 원리의 시대 관련성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부당하게 절대화시키고 따라서 다시 철학에 장애를 만들고 만다. 그 원리의 전체와의 관련을 부인하고 그 자체로 그것을 절대화한 것을 헤겔은 『자연법논문』에서 실정적 절차의 결함으로 파악한다. 유한과 무한의 대립에 머문다거나 유한성 내지 경험적인 것 혹은 개별성을 절대화하여 항상 무한한 것에 대해 다만 대립관계에만 머무는 것은 인륜적 전체의 공속성을 놓치는 실정성의 한 형식이다. 이처럼 유한성의 '실재론'과 '관념론'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일은 헤겔이 {자연법논문}에서 자연법의 두 취급방식을 다룬 것에 대해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즉 '경험적' 취급방식은 유한성의 '실재론'에, '선험적' 취급방식은 유한성의 '관념론'에 대응하는 것이다. 헤겔의 자연법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사상을 통한 이런 시대 진단은 『정신현상학』에서의 계몽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배열의 실마리가 되었다. 이 저작에서도 계몽주의는 근대세계의 성립시기에 종교의 실정성에 대한 싸움으로 나타난다. 계몽주의는 종교 스스로가 자신의 변호를 위해 이성의 무기를 사용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그 싸움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그 승리는 종교의 절대적 내용의 부인을 통해 얻어진 것이기에 거기서 도달된 현실과 주체성과의 화해는 다만 모든 인간적 자연적 관계를 '유용성'의 관점 하에 포섭하는 그러한 화해일 뿐이다.
실정성 비판으로부터 헤겔은 계몽주의와 반성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이행한다. 이런 이행의 근거는 앞에서 언급되었다. 초기 저작에서 '실정성'은 공속적 요소들의 고정화를 의미했다. 그래서 그 분리의 근거들과 그 근저의 통일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했다. 유한성의 절대화라는 계몽주의의 원리, 그리고 반성문화의 형식적 절차는 이 때 이런 분리의 역사적 체계적 뿌리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이행은 동시에 그 분리가 발생하는 시대에 대한 비판을 포괄한다. 이런 이론적 변환과정에서, 『자연법논문』에서 서술된 실정성의 이중적 의미는 체계적인 근본문제를 펼쳐 보인 타당한 실마리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 때 중요한 것은 실정성 개념이 아니라, 이 개념으로써 생각된 철학적 의도, 즉 첫째는 시대 비판이요 둘째는 체계적인 통일성 회복인 의도이다. 자연법의 근대적 취급방식에 대한 헤겔의 상세한 논구는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3-1-3. 기독교의 운명

그러면 앞에서의 두번째 물음, 즉 기독교가 어떻게 실정적인 종교로 변화했고 그것이 계몽주의와 어떤 연관을 갖는가를 살펴보자. 헤겔에게 기독교에 앞선 실정적 종교의 대표적인 경우는 유태교에서 발견된다. 왜 유태교는 실정적인 종교인가? 유태교는 모세의 율법이 기초가 된, 배타적이고 고립된 유태 민족의 종교였다. 예수 당시의 유태 사회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사회였고 율법적 명령의 부담에 억눌려 지낸 사회였다. 더구나 유태사회가 로마의 지배 하에 들어감으로써 모세의 율법에 내재되어 있던 근본적인 주체적 자유의 결여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의 출현은 "모세 율법이 유태민족에게 부과한 내적 굴종과 로마 제국의 지배라는 외적 정치적인 멍에에 대한 이중적인 반동이었다."
헤겔은 그러나 유태교를 실정적인 종교라고 비판하면서도 이를 잉태한 로마 지배 하의 유태 사회의 절박한 정신 상태를 간과하지 않았다. 유태교의 메시아주의는 그들의 구세주가 유태 국가를 재건해 줄 것이라는 그들의 희망을 표현한다. 그런데 헤겔에 의하면 만약 유태 사회가 자립적인 정신적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모든 것을 메시아에 의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회가 스스로의 무력함을 깨닫고 더구나 로마에 지배당하게 된 뒤로 그들은 성서와 메시아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자 그들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하여 메시아적 희망 대신에 무기를 잡았다. 그렇지만 역사가 보여준 것처럼 유태 민족은 로마에 패퇴한 이후로 국가로서의 실체를 잃게 되고 기나긴 유랑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 힘없는 메시아적 희망 속에 긴 역사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헤겔의 해석에 의하면 "예수는 유태 민족의 국가를 해방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는 유태교의 굴종적인 성격으로부터 실정적 율법에 이르기까지의 도덕적 요소를 해방시키려 하였다. 예수는 유태 민족의 메시아적 갈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의 정반대를 지향하였다. 즉 예수는 정치 체제에 예속되어 있는 종교를 해방시키려 하였는데, 그것은 이 양자가 결합됨으로써 유태교가 역사적으로 실정적인 종교로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헤겔에 있어서 예수의 참 의미는 종교가 지닌 원래의 도덕적 내용을 회복시키려 한 데에 있다. 예수가 이루려 한 것은 도덕 법칙에 대한 주체의 존중이었다. 예수의 생생한 가르침에 있어서 기독교는 살아있는 종교, 주체성의 원리가 전혀 소외되지 않았던 종교였다.
그러나 로마 제국 하에서 유태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는, 그리이스 도시국가 및 그 종교에서의, 민족의 생과 합일된 자유로움이 없었다. 예수의 원래의 가르침에는, 유태인에게는 생소했던 주체성의 원리가 도덕의 원리로서 살아 있었다. 예수는 율법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덕성의 종교로 시작한 기독교가 또 하나의 실정 종교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보다 로마 제국의 역사적 조건 때문이었다. 제국의 지배 하에서 고대의 자유로운 공화주의적 정신은 사라져 버렸고 국가 권력은 소수의 시민들의 수중에 떨어졌으며, 시민들은 자신의 개별성을 넘어선 어떤 것도 인식하지 못한 사적 개인으로 전락해 갔다. 로마의 상비군 제도가 이전의 의용군을 대신한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공동체성이 사라진 곳에는 위축된 사적 개인만이 남게 되고 개별적 삶의 추구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로마 황제의 전제는 인간의 정신을 이 지상에서 몰아내고 천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기독교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포교를 위한 여러 책략들을 사용했다. 기적, 십자가에 못박힌 사실 및 부활의 극화, 예수의 인간성을 신성화한 것, 사제단의 제도화 등이 그것이다. 더구나 사유재산 및 신분제가 정착되어 있던 로마에서 초기 기독교가 기존 질서 속의 종교로 정착되는 데에 평등 원리는 오히려 장애 요소로 생각되었다. 기존 질서에의 순응 과정에서 기독교는 자발적 공동체의 형식으로부터 실정적인 정치 조직으로 변모되어 갔다.
그러나 기독교의 실정화 과정에는 이와 같은 외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종교적 교리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교리가 제도화되고 어느 정도 율법화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상이기도 했다. 기독교는 일개 종파에서 거대한 제국의 국교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 실정성은 더욱 강화되어 갔다. 단지 개인의 행위만을 지배했던 유태교에 비해 이제 기독교는 개인의 사적 공적인 삶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이를 초래한 정치와 교회의 결합은 이제 다시 분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족종교적 통일을 주장했던 헤겔은 여기서 우리에게 혼란을 일으킨다.
헤겔은 고대 그리이스에서 보여진 통일적 삶의 모습을 갈망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것이 그대로 근대라는 역사 현실 속에서 부활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실정성을 피하기 위해 정치와 교회는 분리되어야 하지만 바로 이 요구는 내적 통합의 결여를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독교에 의해 심화되고 전파되기도 한 주체성의 원리는 통일적 인륜의 회복을 위해 새로운 역사 조건 속에서 새로운 형식을 요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적 운명을 논한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은 그런 근대적 종합의 해답을 결국 만족스럽게 내리지 못했다. "교회와 국가, 신앙과 삶, 경건함과 덕, 정신적 행위와 세속적 행위 등이 결코 하나로 용해될 수 없었다는 것이 이것들의 운명이었다."

3-1-4. 인륜적 종교의 기획

종교는 공동체의 집합적인 이성적 삶의 산물로서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로운 주관적 의지 및 상상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는 민족종교 혹은 민중종교로 현실화한다. 헤겔은 그러한 종교가 만족시켜야 할 요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그러한 종교의 가르침은 보편적 이성에 근거해야 한다.
2) 그러한 종교에 있어서는 상상, 심혼 및 감성 등이 공허하게 사라져서는 안된다.
3) 그러한 종교는 공적인 국가 행위를 포함한 삶의 모든 욕구가 그것에 연결되는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헤겔이 모범으로 삼는 종교의 모습은 합리성에 바탕을 둔 주체적이고 공적인 종교였다. 이런 종교는 갖가지 계율 외에 민족정신의 고양과 정화라는 숨은 목표도 중요한 요소로 갖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성격이 종교 비판의 사회철학적 의의를 가능하게 한다.
헤겔이 청년기에 생각한 사회철학적 이념은 무엇이었을까?  민족 내지 공동체의 한 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자발성, 자유가 그것이었다. 객관적 현실이 그 자유를 실현하고 있어야 하고 개인은 스스로의 자유를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헤겔은 바로 이러한 삶의 형식을 역사 속에서 확인하고자 한다. 즉 그의 철학은 시종일관 자유의 역사적 변증법이었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유의 상실과 회복에 대한 헤겔의 탐구가 청년기에는 종교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치철학적 관심에서 전제정치의 속박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고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선 실정성을 문제삼고 동시에 이것과 결합되어 있는 실정적 종교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당시에 중요했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한 청년기의 탐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고대의 종교가 비실정적이고 물신화되지 않은 종교일 수 있었던 이유는 고대 폴리스 시민들의 자유 - 비록 보편적으로 확대되지도 않았고 뚜렷한 역사적 자의식으로 승화되지도 않았지만 - 가 공적으로 보장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사적이지 않았고 공동체적이었다.
그럼에도 루카치는 청년 헤겔에게 고대는 순전히 유토피아적 이상이었고, 낙후된 독일의 실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순전히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로 말미암아 독일의 현실 인식과 관련해서 "헤겔의 베른 시대는 그의 혁명적 열광의 정점이었을 뿐만 아니라......이러한 추상성의 정점이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는 현실과 이상과의 차이가 이데올로기적 추상성 때문에 부각되지 못했고 헤겔 특유의 역사의식 또한 뚜렷하지 못하다. 이에 비해 그의 기독교 비판에서는 고대에 대한 열광과 현재의 불행 간의 차이가 헤겔의 역사의식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고 고대에서부터의 인륜의 몰락에 대한 물음이 종교 비판의 한 가운데에 놓일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볼 때 헤겔 초기의 사회철학적 사유의 발전이 『독일 헌법론』 등의 정치적 저작보다도 오히려 기독교에 관한 여러 종교적 저작들에서 더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역설적이라기보다도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3-2. 전통적 인륜이론으로서의 자연법 이론

인간의 구체적인 사회적 삶과 관련된 철학적 물음은 실천철학으로 일컬어져 왔거니와 이런 탐구는 또 달리 여러가지 칭호들로 불리워져 왔다. 그 중에서도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가지 가장 오랜 생명력을 지녀온 것을 들라 하면 무엇보다도 '자연법'(Naturrecht)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9세기 후반부터는 '자연법'이나 그와 여러 맥락에서 대립된 것으로 이해된 '법실증주의'라는 표현들이 의도적으로 피해지고는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자연법은 서구 실천철학의 핵심에 놓여 있었다.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이해의 변화, 실천철학 자체의 정체성 규정, 현존 제도들의 정당화 의도 등과 관련하여 자연법은 그 칭호와 방법만 달리 했을 뿐 항상 논의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헤겔은 그의 사회에 대한 관심이 가장 치열했던 예나 시절에 이미 자연법을 다룬 {자연법논문}을 출간하였고, 후기에 이르러 자신의 사회철학의 완성이라 할 {법철학}을 출간하여 여기에 '자연법과 국가학 개요'라는 부제를 단 것을 보면, 자연법은 그의 철학적 사유 전 과정을 지배한 주제였음이 분명하다. 이는 자연법이란 표현이 그 동안의 사회철학적 사유의 발전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었고, 또 그 시대 현실 및 사유의 극복 지양 과정에서 항상 관건이 되었음을 분명히 입증한다. 더우기 역사에서의 자연법의 발전, 변화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항상 그 시대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는데, '주체의 특수성의 권리'(cf. Rph,   154, 184)를 근대의 특징으로 규정한 헤겔의 입장에서 인륜 및 주체성에 대한 탐구는 필연적으로 그 이전까지의 자연법적 사유의 전개과정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셈이다. 그는 자연법과의 대결을 통해서 자신의 근대적 사회철학의 기본 관념을 완성하였고 특히 주체성의 문제 규명에 중요한 모티브를 얻게 된다. 이 글에서 우리는 고대에서부터 헤겔에 이르는 실천철학의 사유에서 자연법은 어떻게 규정되었고 어떤 문제들에 의해 지양 발전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가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만 고대의 목적론적 자연법과 근대의 이성적 자연법을 자신의 포괄적인 체계 속에 통합시키고 이런 이론적 작업을 통해 근대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3-2-1. 자연 개념의 다의성

자연 개념은 정신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다의적이었던 개념들 중의 하나다. 그것은 고대에서부터 복잡한 연관을 지니면서 사용되어 왔다. 플라톤에서 자연은 참된 존재를 나타내며, 본질의 표현이 된다. 그에게서는 자연, 존재, 진리는 서로 일치한다. 물리적 자연 필연성과 우연적인 원인들이 있는가 하면, 영혼을 통해 의식된 자연도 있다. 참된 세계 이해는 이 양자의 종합에 의존한다. 자연적 세계의 법칙은 인간의 자연 본성과 일치한다. 자연은 여기서 아름다운 사물들의 질서로서의 우주에 고유한 '보편적인 존재론적 가치'를 갖는다. 한 편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자연은 개별 사물에서의 형상(Form)의 실현, 형상을 향한 질료의 노력을 의미한다. 자연은 물질들의 형상 원리가 되었고 동시에 그 목적 원인이 되었다. 모든 외적인 운동의 내적 원천으로서의 자연은 궁극적으로 형상과 질료를 결합한다. 기술자가 그의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자연은 그것의 목적을 - 무의식적으로 - 창조한다. 질료의 극복에 합목적성이 있다. 자연은 그 때 그 때 가능성에 따라 최선의 것을 창조한다. 인간은 자연의 창조에서 다시 그 자신을 발견한다.
고대의 자연은 한 마디로 통일성이었다. 그것은 자연 자체 내의 통일성이었고, 인간의 눈에도 하나의 통일성이었다. 자연관은 그들의 미분화된 삶과 의식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주체성의 자각을 동반한 기독교와 실증적인 자연관찰의 발전은 이러한 자연관에 분열을 초래했다. 근대 자연 개념의 특징은, 자연이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이론에 비추어 물어졌다는 데에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에서 드러난 것처럼 자연 자체 혹은 전체에 대해 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간의 이론의 틀에 따라 잘리어진 부분만이 항상 탐구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 고유의 법칙들이 분석되고 그것들은 자립적인 자연 법칙성으로서 이해되고 인정되었다. 자연은 인간 및 그의 문제설정의 상대자에 다름 아니었다.
풍부한 자연철학적 함축을 가진 형태가 데카르트에서 나타난다. 현상들의 세계는 두 개의 자연으로 즉 연장실재와 사유실재로 나뉜다. 연장 세계는 남김없이 그 메카니즘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단순한 기계로 현상한다. 이제야 비로소 자연 개념의 자립성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계시의 진리 외에 자연도 독자적인 진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로 자연 개념은 점차 과학적 정치적 의식 속으로 확산되고 더욱 다의적인 개념이 되어갔지만 다시 자연의 독자성보다는 인간 의식과의 연관성이 문제되기도 했다. 라이프니쯔의 자연 개념에서는 현상하는 객관은 그것을 관찰하는 주관과 더 이상 분리될 수 없었다. 그는 자연을 역학적으로 기술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자연 법칙을 옹호하기 위해 역학의 원리들 자체를 더 깊이 정초한 것은 그의 커다란 시도였다.
계몽주의의 사유에서 '자연'이라는 상징은 자연에 대한 18세기 말의 수많은 체계들이 의존하게 된 절대적 의미를 지니게 되지만, 못지 않게 의미폭의 변화도 심하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홀바흐(P.T. d'Holbach)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의 작품이며 자연 속에 존재하고 그 법칙들에 예속되어 있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의 부분이고 그 일반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에 반해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정신적 존재이며 물리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은 서로 관련을 맺는다고 본 보네(K. Bonnet)나, 자연에서 정신적 이념을 본 할러(A. v. Haller), 슈탈(G.E. Stahl) 등은 경험론적 입장에서 벗어난 한 흐름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계몽주의의 부동하는 자연 관념에 비해 분명한 자연 개념이 룻소에게서 나타난다. 그에게서 자연은 세계와 인간의 원초적 상태로서 모든 도덕적 가치의 원리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게 그의 자연으로부터 소박한 목가적 생활을 끌어내려 했지만, 근본적으로 룻소의 자연 세계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 있다. 즉 우리는 자연인과 그들이 받아들인 법을 알 길이 없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도 어렵다. 기껏해야 자기보존과 타인에 대한 동정이라는 이성 이전의 두 원리를 짐작하고 그것들이 자연법의 모태가 되었으리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자연은 여러 이율배반적인 도덕적 태도들과 정치적 질서관념들이 펼쳐지는 무대였을 뿐이다.
근대 자연 개념의 변화에서 칸트는 그 정상을 장식한다. 우리가 자연에서 경험하는 모든 감성적 현상들은 이미 우리 자신의 직관 형식들을 통하여 정돈된다. 자연의 초감성적 근거는 인식될 수 없다. 인간은 항상 수학적 물리학적 법칙들에 필연적으로 종속되는 단 하나의 자연 체계만을 발견할 뿐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해 자유의 영역이 대립해 있다. 칸트에게 자연은 보편적 법칙들에 따라 규정되는 사물들의 현존이다. 또 그것은 우리의 감관 즉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의 총괄 개념이다.
그의 철학의 발전에 따른 약간의 차이를 무시한다면, 셸링은 훨씬 더 포괄적인 자연 개념을 통해 사변적으로 완전한 자연철학에 이른다. 자연과 정신은 공통된 것을 가지며 나아가 결국은 동일하다. 자연은 정신의 법칙을 실현하며 정신도 자연 안에서만 스스로를 실현시킨다. 자연은 가시적이게 된 정신이고 정신은 볼 수 없는 자연이다. 그에게서는 자연에 대해 철학한다는 것은 자연을 창조한다는 것과 같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이 생성 속에 놓여질 수 있게 하는 원리가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철학의 과제는 자연에서의 역동적인 제단계들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로써 자연은 다시 생성과정 및 그 결과에서 관찰될 수 있는 모든 존재의 총괄이 되었다. 자연과 정신이 동일한 역동적 과정 속에 놓이게 됨에 따라 존재자는 의식되고 정신은 자연과 동일하게 된다.
이런 관념론적인 자연 개념으로부터 헤겔은 다음의 결론을 끌어낸다. 즉 자연은 그 타재성 속에서의 정신이며, 자기외화 상태 속의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모든 현상들은 순수 사유의 변증법적 과정 속에서 설명될 수 있게 된다. 이념이 스스로를 공간 속에서 펼쳐보이는 것처럼, 역사도 정신이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펼쳐 보이는 것 그것일 따름이다. 철학의 과제는 자연의 통일성을 인식하고, 자연의 철학을 넘어서서 감성적 세계에 대한 개념실재적인 구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자연은 이제야 비로소 자연의 근거를 산출하는 내적인 이념에서의 통일적으로 완결된 단계들의 체계가 되었다. 자연과학은 선험적으로 입증된 철학의 전단계에 다름 아니다.
셸링의 절대적인 주객 동일성에서 출발하여 헤겔은 자연을 더 이상 피히테처럼 자아에 단적으로 대립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아와 자연의 합일을 요구한다. 양자가 분리되어 있는 한 인륜적인 것은 어떤 참된 실재성도 갖지 못한다.
이것은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력을 구별하면서 말한, 이성과 자연의 통일이나 이를 단초로 하는 역사철학의 전개와 유사하다. 칸트는 "지성의 보편적인 초월적 법칙들 아래에 있는" 규정적 판단력은 이미 주어져 있는 보편 아래에 자연 속의 특수를 포섭할 뿐이지만, 반성적 판단력은 "자연 속의 특수로부터 보편으로 올라가야 하는 임무를 갖는 것으로서 이를 위해.......경험으로부터 끌어낼 수 없는 하나의 원리를 필요로 한다." 이에 따르면 자연은 마치 판단력이 부여한 합목적적 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간주된다. 반성적 판단력은 마치 자연이 그 자체로부터 우리의 사고 체계의 요구에 부응해 있는 것처럼 자연을 평가하며, 이로써 이성과 자연의 통일에 관한 체계를 인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반성적 판단력은 기계적 자연의 비목적적인 연관관계를 넘어서 자연 속에서 합목적성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 속에 내재된 목적들 중 궁극적인 것이 인간이라고 한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통해 행복을 성취하고 소질을 개발하는데, 이성적 존재자로서 그는 자연 속에서 그의 목적에 부합한 것을 생산해 내며 이를 통해 교양되어 간다. 역사란 이런 인간의 교양, 도야의 과정 바로 그것일 따름이다.
이처럼 자아와 자연의 통일에 관한 칸트의 형이상학 체계는 자아와는 엄연히 다른 자연의 영역이 이성의 판단력에 의해 마치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즉 이성과 통일된 것처럼 본다는 점에서 실천적 내지 미학적 관점 위에 성립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셸링식으로 주객의 절대적 동일성에 관한 사실적 체계는 아닌 것이다.
이에 비해 헤겔의 "인륜적 자연"(sittliche Natur) 개념은 목적론을 매개로 한, 기계적 자연과 이성의 통일이라는 의미는 탈색된 채 의지 실현의 사회적 의미가 강화되어 있다. 즉 주관적 의지가 추상성에 머물지 않고 자연 세계, 특히 사회적 삶의 세계 속에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개념은 사용된다. 이것은 자유의 구체적 실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인륜의 또 다른 표현 형식이다. 이 인륜적 자연을 헤겔은 법으로 구성한다. 인륜적인 것은 그 개념이 현실성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 개념이 인륜이론의 한 중요 범주인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헤겔의 인륜적 자연은 물리적 자연을 통일 속에 함의한다. 그리하여 인륜은 더 이상 단순히 주체의 자유의 산물임을 넘어서 주체에 앞서서 주어지는 것으로까지 이해되고, 자연상태도 이미 인륜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게 된다. 자연을 인륜적 자연으로 생각한 데서 근대 자연법에 대한 헤겔의 비판은 출발한다. 그의 자연 개념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첫째는 그것이 스피노자가 말한 '신, 다시 말하여, 자연'의 의미에서의 총체성을 의미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폴리스가 본성상 개인보다 앞선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의 본질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스피노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헤겔의 자연법 비판의 형이상학적인 준거점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헤겔은 인륜적 총체성을 구체적으로 민족이라 파악하는데 이는 그가 고대적 전통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물론 인륜적 자연 혹은 민족이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전체성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추상적일 수는 없다. 인륜적인 것은 개별자의 혼 속에서 살아 숨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근대처럼 개별적 주체성이 첨예하게 부각된 상황에서 어떻게 민족이라는 보편적 인륜이 가능하겠는가? 다시 말해서 인륜이 어떻게 그 추상성을 벗어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탐구는 고대적 전통의 근대적 적합성에 대한 이론적 모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편자이고 민족의 순수정신이어야 할 인륜이 근대적인 개별자 그 자체에서만 표현된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즉 그 경우에 인륜은 보편적 정신의 현실성이 아닌 단순한 가능성에 지나지 않게 된다. 칸트, 피히테에서의 도덕이 그러했다. 그런 한 헤겔에서는 도덕에는 부정적이고 불완전한 것의 영역만이 주어졌고 인륜에 비로소 참으로 적극적인 것의 영역이 주어졌다. 헤겔에서 자연법은 한 민족의 현실적인 인륜적 전체로서의 인륜적 자연의 표현이었다. 그는 바로 이전 자연법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통해서 이러한 진정한 인륜을 확보한다.
그러나 앞 장에서 보았듯이 자연법이란 개념은 단순히 자연과 법의 두 개념의 통일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칸트에서 보듯이 자연과 자유는 대립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법은 자유에서만 성립한다. 그렇다면 자연법이란 개념은 이율배반적인 개념이 아닌가? 사실 근대 이전의 자연법은 자연과 법(혹은 자유)의 양립가능성에서 성립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근대 계몽주의는 자연을 대상화하기 시작했고 자연의 부정, 지배에서 자유를 확립한다. 이것의 최종적 완성이 칸트, 피히테의 철학이었다. 홉즈나 칸트, 피히테는 그러므로 자연과 법을 분리시켜 자연법을 추상적 도덕 내지 윤리학과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실정법과 대립해 있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헤겔은 이것을 실천철학의 분열로 본다. 자유는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이념세계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 거기서는 아예 실현될 수 조차 없다. 자유는 자연세계와 결합하여야 한다. "자연법이나 철학적 법이 실정법과 상이하다는 사실을 곡해하여 마치 이 양자가 서로 대립되고 모순된 것인 양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 잘못이다."(Rph,   3) "법의 이념과 법의 개념 및 그것의 실현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적 법학"(Rph,   1)은 궁극적으로 자유의 실현을 다루게 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도덕과 실정법의 분리란 지양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에게 자연법은 그러므로 자유가 제도적 인륜 속에 스며들어 생명력을 갖게 된, 말하자면 "실현된 자유의 왕국으로서의 법의 체계"(Rph,   4)인 것이다.

3-2-2. 자연법의 제형태와 헤겔의 비판

자연법에 관한 이론적 탐구를 최초로 제기한 이들은 소피스트들이었다. 소피스트들이 자연법 전통의 형성과 관련하여 기여한 중요한 요소는 '자연'과 '법'의 구별이라 할 수 있다. 법 혹은 노모스(nomos)는 자연과 달리 상대적인 세계이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주체적 행위 이전부터 주어진 자연적 대상이 아니다. 각 나라마다 법과 관습이 다른 것은 법의 영역에 보편적 객관성이 없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자연에 관한 어떤 개념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들에게서 '자연' 개념의 다의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도대체 그들에게 자연 그리고 자연법은 무엇이었는가?
법은 인위적으로만 타당성을 가진다. 그러면 객관적인 보편타당성의 의미에서 자연적으로 타당성을 가진 것은 없는가? 소피스트들 중에도 안티폰과 같은 이는 인간은 단순히 인간의 규약만을 지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한다. 법률의 침해로 인해 입게 되는 화는 단순히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또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란 칼리클레스나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자연의 이치라고 주장된다. 프로타고라스에 의하면 인간은 고립 속에 살 수 없기 때문에 함께 모여야 하며 사회적 삶은 법적인 기초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 결코 전복되어서는 안될 인간들 사이의 질서와 정의에 의한 통치는 바로 이런 필연성에 의거한 것이었다. 실정법적인 질서들은 더 이상 자연에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 필연성에 의존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자연질서가 필연적인 한 실정법적인 질서도 구속력을 지닌다. 인간의 자연적인 생의 질서 안에 실정법의 기초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서의 자연 개념이 인간의 행위로부터 독립해 있는 물리적 자연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법의 정초라는 맥락에서의 자연은 경험적으로 관찰가능한 인간의 성향, 욕구 등과 같은 가변적인 사실성을 의미했다. 소피스트들마다 자연과 자연법의 의미는 일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대개 그 개념들을 물리적 자연이 아닌 인간학적인 맥락에서 사용하는 유사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법의 타당성도 형이상학적인 근거에서 이루지지 않았다.

플라톤은 자연법 이론의 정초에서 아리스토텔레스만큼 기여를 하지 못했지만, 고대 특유의 자연 개념으로써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자연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법의 기초나 본질에 대한 그의 입장을 어디에서도 '자연법 이론'이라 칭한 적이 없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자연법'이란 표현이 소피스트의 자연법 이론에 의해 먼저 부과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플라톤 자신이 본래 자연이 아니라 이데아라는 초험적 존재를 그의 정의 이론의 기초로 삼았다는 데 연유할 것이다."
그는 법적 질서의 구속력을 인간의 목적 합리적 행위의 조건들로부터 정초하려 한다. 인간은 욕망의 효과적인 충족을 위해 서로 의지하게 되고, 외부의 적으로부터의 보호 및 경제적 확장을 위해 공동체를 영위하며, 내적인 평화를 위해 정치적 지배를 제도화한다. 법적인 질서는 정치공동체 내에서의 인간 상호간의 매개된 욕망충족에 기여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질서의 기초가 인간의 자연 즉 본성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그에게서는 법에 대한 목적론적 정초 외에 규범적인 정초 방식도 엿보인다. 그가 폴리스의 법적 질서를 절대적인 구속력을 지닌 것으로 보았고, 이를 당시의 민중들이 신들에게서 부여받았다고 생각한 구속력과 결합시킨 것이 그것이다. 이런 두 측면은 나중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의 목적 합리적 행위(poiesis)와 규범 지향적 활동(praxis)의 차이가 그에게서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 플라톤의 입론은 소피스트들의 그것과 양면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법적 규범의 구속력에 관한 한 플라톤과 소피스트들의 차이는 없지만, 그 법적 규범의 유래나 변화에 관해서는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에게서 법과 자연은 인위적이고 상대적인 타당성이 아니라 절대적인 타당성을 지닌다. 또 그것들은 현상적인 차원에서 통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형이상학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에게 자연법은 불변적인 형이상학적 질서를 의미했다. 위에서 말한 인간의 자연 즉 본성이란 것도 현상적 수준이 아닌 이데아적 수준에서의 언급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플라톤적인 자연법 이론의 모든 요소들에 공통된 바는, 자연적 내지 이념적인 법질서와 가치질서가 불변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따라서 인간에 의한 창조적 변형이 차단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법의 창조라는 관념은 그에게는 모순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폴리스의 법적 질서는 절대적 구속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고, 이것이 실정법의 구속력을 이성적으로 정초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개념 및 자연법 이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플라톤의 유산인 자연과 이데아 간의 대립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에게서 자연은 개별 사물에서의 형상(Form)의 실현, 형상을 향한 질료의 노력을 의미한다. 자연은 물질들의 형상 원리가 되었고 동시에 그 목적 원인이 되었다. 이 목적론적이라 할 자연 개념은 그의 이론철학 뿐만 아니라 실천철학의 내용까지 규정한다. 그의 형이상학은 자연 즉 존재자를 질료(hyle)와 형상(eidos)의 결합으로 설명하고, 그것의 발전을 4원인에 의해 설명한다. 자연은 그 변화 운동의 원리를 자신 안에 지니고 있으며, 그 목적(telos)인 본질의 실현을 향해 발전해 나간다. 그런데 자연의 목적 혹은 본질은 그것의 완전한 실현 이전에는 사물에 가능성(dynamis)으로서만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자연은 그 목적의 실현에 이르기 전에도 하나의 현실적 자연(energeia)으로 존재하며 최종적으로 목적의 완전한 실현상태인 완전성(entelecheia)에 이른다. 모든 존재자의 생성과정은 그 목적으로 향한 목적론적 운동이라 할 수 있으며, 이 목적이 존재자의 참된 '자연'(physis)을 이룬다. 그에게서 자연은 목적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그는 그 운동을 통해 그 목적에 이를 수 있는 존재자를 일컬어 자연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그의 형이상학이 자연 세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실천 영역에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자연학이 자연의 자연다움 즉 그 본성을 다룬다면, 실천철학으로서의 윤리학과 정치학은 인간의 인간다움 혹은 인간의 자연을 다룬다. 그에게서 인간의 인간다움은 '이성적 존재이자 사회적인 존재'에서 찾아진다. 이런 인간의 존재방식을 가장 잘 충족시켜 주는 것이 정치공동체로서의 폴리스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에 가능성으로서 주어져 있다. 정치공동체는 인간의 자연 안에 놓여 있는 특유의 가능성들의 실현이다. 목적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 개념은 일차적으로는 의도적인 인간 행위의 목표보다는 합목적적인 자연 질서를 지향한다. 인간의 행위는 바로 그런 자연 질서 안에서 의미있게 자리한다. 자연적 세계 질서가 분명하게 목적론적 자연법의 기초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법은 그의 실천철학에서 뚜렷한 주제로 부각되어 있지는 않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의 정의에 관한 부분 중 7장에 간단히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정치적 정의에는 본성적인(자연적인) 것도 있고 인위적인(법률적인) 것도 있다. 본성적인 것이란 어디서나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들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생각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요, 인위적인 것이란, 본래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었던 것이나 일단 정해진 다음에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통과된 모든 법률 및 여러 가지 법령의 조항 같은 것이 이런 인위적인 정의이다.......본성적인 것과 본성에 의거하지 않는 것과의 구별은 어디까지나 존재한다. 달리 있을 수도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성질의 것이 본성에 의한 것이고, 어떤 성질의 것이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인위적이고 계약에 의한 것인가.......하는 것은 자못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연법이 물리적 법칙처럼 모든 곳에서 동일하지는 않은 처지에서, 자연적 질서가 법률에 대해 구속력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자연법이란 말이 의미있다고 할 수 있는가? 더구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현실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철학자에게 있어서는 이는 중요한 난문에 속한다. 그래서 그는 위의 인용문에 뒤이어 오른손잡이도 훈련에 의해 누구나 두 손을 잘 놀릴 수 있게 된다고 함으로써, 자연법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의 차이가 좁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실천철학은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옳은 것(자연적 정의 혹은 자연법)에 대한 이해에 이르게 해주고, 나아가 목적 혹은 본질로서의 이상과 실제 현실 사이를, 인간과 폴리스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즉 인간이 그 '자연에 부합하도록'(naturgem  ) 해주는 것이 실천철학의 일이다. 여기서 인간 주체의 역할이란 기껏 이미 존재하는 목적의 발견과 그것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에 머문다. 국가나 사회 혹은 폴리스는 개인보다 항상 앞서 존재했고 개인의 행위의 지침이 된다. 이러한 자연적 법질서는 인간의 자의로부터 벗어난 혹은 벗어나야 할 체계로 파악되었다. 이로써 자연법의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한 흐름, 고대적 목적론적 자연법의 전통이 형성된다.

근대는 인간이 따라야 할 '자연' 대신에 '주체' 혹은 '역사' 개념이 법철학적 사유의 중심에 들어선 시기이다. 이에 따라 자연법의 의미나 실천철학 내의 위치도 달라진다. 자연과학적 시각에서 볼 때 자연이 고유하게 지니는 목적이나 규범성의 근거는 없으며 자연은 그저 법칙에 따라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체계일 뿐이다. 더구나 그 법칙이란 것도 칸트가 보기에는 인간의 지성이 자연에 구성적으로 부여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요해진 것은 그 규칙 내지 법칙을 인식하여 지배할 수 있는 인간 주체, 그리고 그 주체가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만들어가는 사회적 관계와 역사이다. 법도 자연보다는 인간 주체의 의지와 관련되어 논의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연법이 인간의 사회적 삶을 규정하는 법의 문제에 관여하기보다는 홉즈나 칸트에서 보듯이 도덕법의 수준으로 축소되어 간 이면에는 자연법의 사회적 규정력의 축소가 수반되어 있다. 즉 자연법은 헤겔적인 의미에서의 인륜에 대한 직접적인 상관성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17세기 초반 법률가들과 철학자들이 논의의 중심 무대에 등장하면서 자연법 이론의 무게 중심도 곧 옮겨졌다.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근대적 삶에 필요한 실정적 법체계의 구축이 중심이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법의 기초들을 확실히 하고 신학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일이 중심이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근대 자연법 이론의 초기는 자연법이 법으로서의 성격을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실정화 내지 실정법화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행기에도 자연법 자체의 관념이나 그 목적론적 전제들은 처음엔 변치 않은 채로였다. 비로소 홉즈가 스코투스에 의해 시작된 자연법의 새로운 정초를 결정적으로 확대시키게 된다. 그는 신학적이고 목적론적인 전제들을 괄호치고 주권적 국가 권력이 갖는 규범정립적 결정들의 의미를 강조한다. 왕정복고 시대의 자연법론의 붕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자연법 논의는 이 새로운 단초가 척도가 되었다.
헤겔은 {자연법논문}에서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주로 근대 철학에 대한 비판을 앞세우고 있다. 그것은 그 부제를 포함한 제목이 암시하듯 첫째로 근대의 자연법 관념에 대한 비판, 들째로 헤겔 자신의 자연법 관념에 대한 간략한 서술, 세째로 그것과 실정법학과의 관계에 대한 서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헤겔에 의하면 "자연법의 학은 역학, 물리학처럼 오랜 동안 본질적인 철학적 학으로 여겨져 왔고 철학의 본질적 부분으로 여겨져 왔다."(NR, S. 434) 자연법의 학이 참다운 학이 되기 위해서는 절대자를 그 내용으로 해야 하며, 따라서 직관과 그 상이 논리적인 것과 통일되고 또 순수 이념적인 것 안에 수용되는 그런 학이어야 한다.
그는 자연법에 대한 근대적 취급방식을 두 유형으로 구분한다. 홉즈로 대표되는 경험적인 방식과 칸트, 피히테로 대표되는 형식적인 방식이 그것들이다. 이 양자는 취급방식에서는 구분되지만 그럼에도 공통된 근본 관념을 지니고 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이들 근대 자연법 이론가들은 근원적이고 자연적인 자유는 '타자와의 공동성'에 있거나, 혹은 '법적 상태를 통한 모든 이의 자유와의 통일가능성'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헤겔에 의하면 그 이전의 방식에서처럼 개인의 권리에 기초를 둔 "원자론의 체계", 반성적 오성이 국가와 인륜을 지배하고 "개념과 자연이 하나의 동일한 인격 속에 통합되지" 못하는 비이성적 지배관계는 올바른 실천철학을 낳지 못한다. 룻소나 칸트의 일반의지 혹은 공동의지라는 것도 고정된 추상물일 뿐이다. 이전 이론가들은 단순히 법만이 지배하는 국가를 최종적인 대상으로 삼았을 뿐, 개인의 이성에 의해 의무가 법칙으로 인정되는 인륜의 세계는 대상으로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인륜의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이 이전의 자연법 이론에서는 통일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저작에서 헤겔이 자연법을 두 유형으로 나누어 비판한 요지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홉즈와 칸트, 피히테 등의 법이론에 대해 개관해 보기로 한다.

3-2-3. 홉즈의 경험적 자연법

홉즈는 이전까지의 자연법 논의가 인간의 의지와 독립해 있는 심급들에 의거해 왔음을 깨닫고 이로부터 벗어난다. 즉 이전의 이론은 자연의 질서나 창조질서 내지 신의 의지, 인간의 본성 속에서 찾아진 경향들이나 규범 등 이런 것들에 의지해 왔지만, 홉즈는 그 대신에 개인의 의지와 통찰을 새로운 기초로 삼게 되는 것이다. 홉즈의 국가론은 '국가물리학'(Staatsphysik)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뉴우튼이 갈릴레이 낙하법칙에 따라 행성들의 운동을 원심적 운동충동과 구심적 인력 이 양자의 결과로 설명한 것처럼 홉즈는 국가를 인간의 두 근본적인 힘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낳는 구심적 권력성향과, 이 상태에 대한 원심적 공포 이 양자로부터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이 공포 속에서 인간은 목적과 수단에 대한 계산을 바탕으로 모두가 자연상태로부터 빠져나와 국가적 강제권력 하에 예속될 때에만 자기 안전을 기할 수 있다는 통찰에 이를 수 있다.
사실 법이 필요한 불완전한 인간사회의 상황이나 인간의 이성적 통찰의 능력에 대한 언급은 홉즈라 해서 다른 이에 비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를 특별히 근대 이성적 자연법의 본래적 정초자, 나아가 근대 실천철학의 정초자로 여기게 한 것은 그가 비로소 평등하고 존엄하며 자율적인 인간의 이념과 그런 인간의 의지를 법의 기초로 삼았고 나아가 의지와 이성적 통찰을 통합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이전의 모든 자연법 이론에 날카롭게 반대하고, 인간은 처음엔 어떤 의무에 의해서도 제한되어서는 안되며 주관적인 자유권리의 담지자라는 원칙을 세운다. "자연의 권리(jus naturale)는 각 인간이 자신의 본성 즉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의지하는 대로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이다. 따라서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판단과 이성 안에서 이에 이르는 가장 적합한 수단들이라 생각하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이로써 데카르트가 이론 철학에 대해 '코기토, 에르고 숨'이란 원칙을 부여한 것과 유사하게, 홉즈는 모든 구속성을 결국 행위하는 개인의 의지로 환원함으로써 근대 실천철학의 확고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법의 상태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각자가 평화와 자신의 보호를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도 동등하게 인정해야 하며 자신의 권리를 유예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 요구된다. 모든 사람의 동등한 권리의 원칙, 법적 질서를 가진 관계들이 책임있게 행위하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서야 한다는 요구, 이런 것으로부터 황금률로서의 자연법은 도출된다. 다른 사람도 준수할 의무가 있는 구체적인 법적 요구들은, 다른 사람과 법적 질서의 관계 속에 살아갈 원칙적인 준비가 이루어지는 계약적 상황에서 성립한다. 여기서야 비로소 허용된 행위를 허용되지 않은 행위와 구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약정(covenant)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을 깨뜨리는 것은 부정의하다. 그리고 不正義에 대한 定義는 약정의 불이행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부정의한 것이 아닌 것은 모두 다 정의롭다." 그러므로 구속성에 대한 자연법적 재구성은 항상 법적 영역들을 서로 구획지어주는 그런 계약들로 귀착되어야 한다.
그런데 계약적 협정이 이행되는가 않는가에 대한 결정이 항상 관련 당사자들에게 맡겨져 있는 한, 권리와 의무 상호간의 구획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적 질서 관계의 수립에는, "논쟁 중의 각자가 그들의 권리를 중재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 요구된다. 이는 홉즈에게 원칙적인 의미를 갖는데, 그것은 주장된 사실에 관해서나 그것의 당위명제에의 포섭에 관해서나 어떤 법적 논란도 완전히 명료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그가 믿었기 때문이다. 중재자 혹은 판관의 과제는 그러므로 무엇이 옳은지 확언하는 데에 있지 않고 "정의로운 것을 定義하는 행위"에 있는 것이다.
판관은 관련 당사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그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이것이 자연법의 명령이다. 이로써 자연법의 도덕적 기초가 성립한다. 다른 법적 질서 집단과의 평화로운 공존의 준비가 없이는, 상호신뢰 및 진실성이 없이는 법적 영역들을 구획지으려는 어떤 시도도 좌초할 것이다. 홉즈는 이런 확신을 토대로 자연법과 도덕을 간단히 동일시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자연법에 대한 학만이 참된 유일한 도덕철학이다." 홉즈 자신의 표현은 이와 같지만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오히려 주어와 술어가 바뀌어 새겨지는 것이 그의 문맥에 맞는다. 즉 '자연법에 대한 학은 도덕철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자연법의 규범들은 확실히 도덕적 구속성만을 갖는다.
홉즈에서의 자연법의 타당성에 대한 이런 제한의 첫 근거는 그 형식적 성격에 있다. 자연법적 규범들은, 그것 없이는 법적 질서 관계들이 성립할 수 없는 보편적 조건들만을 제시한다. 구체적인 법적 질서는, 자연법이 공란으로 남겨둔 여백을 계약의 형태를 가진 입법행위가 채워 넣음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진다. 이는 자연상태에서의 私法적 계약을 통해서 그리고 특히 국가계약을 기초로 한 실정법적 규범화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왜냐 하면 자연상태에서의 법적 영역들의 私法적 구획들은 모든 비관련자들에게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남아 있지만, 국가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법적 질서를 창조하고 보장하기 때문이다. 국가적 입법의 과제는 그러므로 자연법의 빈 정식을 실질적 규범들로 구체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연법의 타당성의 제약에 대한 다른 훨씬 중요한 근거를 홉즈는 공식적 제재(Sanktion)의 부재에서 보고 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공식적 제재가 없다면 자연상태에서의 私法적 계약들은 다만 조건적으로만 타당할 것이다. 국가가 비로소 자연법의 타당성을 위한 적용조건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홉즈는 자연법의 구속력의 근거를 분명하게 규정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그것에 의존하는 실정법의 근거 또한 극히 불충분하게 규정하고 말았다. 그는 구속성이라는 規範的 개념을 권력이라는 記述的 개념으로 환원하려 시도하지만 이는 스코투스와 오캄 이래 행해져온 규범적 명제와 기술적 명제 간의 긴장을 주의깊게 구별해야 함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물리적 강제와 규범적 구속성 간의 구별이라는 그 자신 고유의 중요한 노력까지 좌초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군주의 최고 위치, 국가계약을 통한 군주의 상위성, 면책권, 이들의 논리적 선후관계 등 이런 것들에 관심을 경주하다 보니 그는 이내 자연법 자체에 대해서는 더욱 소극적이 되어갔다.
홉즈는 자연법의 무력함과 관련하여 그것의 도덕적 구속성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를 어디에서도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저항할 수 없는 국가권력의 수립을 위해 그는 모든 권력은 그것의 작용력을 위해 도덕적 기초를 전제해야 한다는 그의 깊은 통찰을 다시 포기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홉즈는 그의 자연법론의 기초와 귀결들을 불명료하게 남겨 두었다. 이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빈번히 갈릴레이의 신과학의 모델에 잘못 인도되어서, 그리고 잘못되게도 법이론과 사회공학 사이의 경계를 섞어버림으로써 그러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법의 기초를 더 이상 미리 주어진 자연질서 내지 창조질서가 아니라 책임있게 행위하고 법적인 질서를 설립할 준비가 되어있는 인격들의 의지에서 찾음으로써, 플라톤적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법 이론의 전통과 세기적 전환이라 할 대담한 결별을 시도하였다. 이외에도 그는 자연법적 규범화의 경계를 법적 질서 일반의 조건들로부터 도출함으로써, 동시에 자유로운 법 창조의 의미에서의 실정법적 규범화를 위한 그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작용영역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이런 그의 기본사상을 {리바이어던} 서문에서, 인간의 '技術'을 신의 창조력에 유사한 능력으로 파악하고, 국가를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로 파악함으로써, 극히 거창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는 그의 본래의 의도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정초를 하나의 기계적 장치의 구성과 같은 것으로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계약에 의한 국가의 기원을 자유롭고 창조적인 행위로 이해한 것은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윤리학, 자연법, 정치철학 등에 대한 그의 정초는, 법적 질서의 조건에 대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근본적인 방식으로 물음으로써, 그 시대의 새로운 역사적 경험과 요구들에 부응하였다. 그렇기에 이후의 모든 자연법 이론은 그 기초를 본질적으로 홉즈로부터 이어받고 있으며, 그와의 비판적 대결에서 무엇보다도 그의 근본관념을 보다 만족스런 체계로 만들어 내려 시도하게 된 것이다.
홉즈의 경험주의적 자연법이 지닌 이러한 일반적인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그것을 어떻게 비판하는가?
자연법의 경험적 취급방식은 이론적 경험론의 실천철학적 적용형식이다. 리델은 "17세기의 경험적 취급방식은 실천이성의 본질인 통일성의 형식을 경험들로부터 분리시켜서, 이것을 순수의지의 개념 자체 안에다 고정시키며, 이 개념을 수많은 경험적 관계들에 대립시킨다" 한다. 뒤집어 말하면 경험주의는 탐구된 대상의 복잡한 연관들 중 몇 가지만을 추상하여 그 대상의 본질인 것처럼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법의 경험적 취급방식은 경험적으로 법적 상태나 국가에 돌려지는 모든 것을 추상함으로써 자연 상태라는 자신의 개념을 마련한다. 그러나 이러한 취급방식에는, 법적 상태에 속한 것으로서 추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이런 취급방식은 법적 상태의 구성에 필요할 전제들을 남겨두는 이외에 달리 고려할 일이란 없게 될 것이다.
다른 자연법 이론가들처럼 홉즈도 시민사회에서의 인간의 관계를 자연상태에 비추어 관찰한다. 사회적 상태에 대한 룻소의 경멸적인 언급은 이어받지 않지만, 헤겔도 자연법 이론에서 기술된 인간들 서로간의 관계는 사회적 상태의 요소로서만 가능할 수 있다고 추론한다. 자연법 이론가들 스스로가, 소위 자연상태라는 개념이 스스로 지양되리라, 허구이리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 상태를 지배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자기 파괴성은 헤겔의 생각에 따르면, 이런 추상이 어떤 존립도 갖지 못하며, 단순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상태의 사상은 자기모순적이며 스스로를 지양한다는 것이다.(cf. NR, S. 424-5)
그러나 자연법 이론가들은 이러한 그 이론의 개념적 사상적 자기 파괴성을 깨닫지 못했고, 나아가 무한한 자연적 자유나 법적 상태라는 그들의 표상이 부적절한 추상물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헤겔에 의하면 자연상태니 법적 상태니 개인들의 법적 상태에의 예속관계니 하는 것들은 유기적 인륜의 분열된 계기들인 것이다.(NR, S. 427) 법적 상태란 자연적 자유의 제한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인륜적 자연에 다름 아니며 절대적 자유의 상실도......인륜적 자연의 포기도...... 아니다."(같은 곳)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도 법적 상태처럼 절대적 인륜의 실현과정에서 정립된 한 요소인 것이다. "인륜의 절대적 이념은 자연상태와 법적 상태를 단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내포한다."(같은 곳) 그것들은 그 자체로는 실재적이지 않으며, 인륜관계를 통해서 제약되어 있다.
헤겔은 인륜의 절대적 이념이 '개인의 무'나 '사회적 강제권력 하에의 예속'을 확정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으로는 인륜의 절대적 이념이 개별성 그 자체를 무화시킨다고도 주장한다. 이런 역설적으로 들리는 그의 해명에서 우리는 그가 자연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중적인 논쟁을 펼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로 헤겔은, 법적 상태를 개인의 자기유지의 이성적 수단으로 보는, 자연법의 개인주의적 연역기초에 대해, 거기선 개별성이 단적으로 정립된 것(etwas schlechthin Gesetztes)으로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둘째로 헤겔은 이런 연역 기초에서 나오는 귀결, 즉 '사회적 강제권력 아래로의 절대적 예속'이나 '개인 혹은 주체의 무'에 대해 비판한다.(같은 곳)
인륜적 자유의 적절한 개념을 유지하기 위해 헤겔은 원자론적 관점이 포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륜의 참된 이념에서는 개별성 그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헤겔이 의도한 개인과 인륜의 통일은 개별성이 소멸되어야 하리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법적 상태나 개인의 자유는 이런 관계 속에서는 지양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헤겔이 논박하고 있는 바는, 이런 관점이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버리는 경우이다. 이런 관점은 절대적 인륜의 하위 요소로서만 이성적 관점이 되며 자유의 이념들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3-2-4. 칸트의 형식주의적 자연법

칸트 철학 일반이 그러하듯 자연법에 대한 그의 접근도 철저하게 형식주의적이었다. 그는 법 혹은 자연법을 경험적으로 탐구하지 않고 선험적 원리로부터 정초하려 한다. 그리고 그의 실천철학 일반의 성립 근거가 의지의 자율에서 구해졌듯이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시원근거'에 대한 탐구도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권리에서 구해진다. 그러나 이는 근대 자연법론자들 일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칸트를 독특한 자연법 이론가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법의 고대적 전통이 법학(혹은 정치학)과 윤리학(혹은 도덕)의 통일에서 이루어졌고, 홉즈를 비롯한 근대의 전통이 양자의 분리에서 자연법을 실정법과 대비시켜 윤리학에 흡수시키려 했다면, 칸트도 이런 근대적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는 그의 법이론이 {도덕형이상학}에서 다루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경험적 방법에 의해 자연법을 정초했던 다른 근대인들과는 달리 자연법을 순수한 형식적 원리에 의거한 도덕형이상학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이는 그에게서의 법의 보편적 원리가 "보편적 법칙에 따라 다른 모든 이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거나, 혹은 그 준칙에 있어서 각자의 자의의 자유가 보편적 법칙에 따라 다른 모든 이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는 행위는 옳다"로 표현되고 있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질료적인 요소나 인간학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더우기 이를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령과 비교해 볼 때, 법이론과 윤리학의 정초방식 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두 경우 모두에서 어떤 행위나 준칙은 그것이 보편화 가능할 때, 즉 그것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책임있게 행위하는 인격들의 공존을 규범적 질서 속에서 규제할 수 있을 때에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의 문맥에서 보면, 규범 영역에만 한정된 형식화된 칸트의 법이론은 현실과의 연관성을 상실하였고 현실 또한 독자적인 실정법적 입법의 터전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이로써 존재와 당위의 일치나, 존재로부터 당위를 정초했던 고전적 법이론의 방법은 완전히 후퇴하게 된다. 결국은 실천에 관한 보편적 사회이론을 자처했던 전통적인 자연법 이론은 칸트에 이르러 완전히 붕괴됨과 동시에 전혀 새로운 지반 위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제 칸트의 자연법의 형식성이 어떻게 그의 도덕이론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칸트는 {도덕형이상학}에서, 정언명령이라는 의무의 형식적 원리가 중심이 되는 보편적 의무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의 법이론과 도덕이론은 모두 이에 따라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도덕이론과 법이론을 구분지어주는 것은 의무의 상이성이 아니라 입법의 상이성이다. 입법은 주관적 규정근거에 따라 달라진다. 의무 자체를 동기삼은 행위는 도덕적이다. 그러나 다른 동기를 의무의 이념으로 용인하는 행위는 법적이다.
실천이성의 통일성은 윤리학뿐만 아니라 법이론도 그 최상의 원칙인 도덕법으로부터 정초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모든 도덕법의 출발점, 즉 법과 의무 모두의 출발점이 되는 우리의 고유한 자유를 오직 도덕적 명령을 통해서만 안다. 법과 윤리의 이런 공통성으로부터 칸트는 앞에서의 두 종류의 순수한 실천적 이성법이 결국은 내적인 동기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 따라서 행위에서의 외적인 입법에 상응하기 위한 도덕적 근거들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법적 의무가 도덕적 의무에 의존한다거나 법의 구속성이 도덕적 구속성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거나 하는 주장을 경계한다. 도덕 때문에 법적 법률들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법은 그것이 옳은 것을 명령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법률을 강제 때문에 따르는가 통찰에 의해 따르는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이것은 도덕법에서는 행위의 가치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법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처럼 법의 구속성을 도덕적 구속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줌으로써 칸트는 독일에서의 자유주의적 법이론 및 정치이론의 정초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법과 도덕을 도덕법 안에 공통되게 정초한다 해서 곧 법이 도덕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의 개념에서 볼 때, 법에 부합하는 행위(rechtgem  iges Handeln)는 의무에 부합하는(pflichtgem  ) 행위이기는 하되 도덕적 행위와는 달리 의무로부터 나온 행위(Handeln aus Pflicht)는 아니다. 책임과 법률에 따른 구속성의 제기자와 법률의 제기자가 동일하지 않다면 그 법률은 실정적 우연적이며 자의적이다. 그런 단순히 외적일 뿐인 구속적 법률들의 총체를 칸트는 '법이론'의 이름으로 다룬다. 그 중에서도 실정법 이론은 그러한 입법의 실제를 다루는 것이고, 적용영역 없는 단순한 법학은 '자연법의 체계적 지식'이라 불리는데, 이로써 법이론의 영역은 선험적 원리들에 의존하는 자연법과 입법가의 의지로부터 나온 것인 실정법으로 나뉜다. 여기에 내포된 법 개념에 대해 칸트는 세 규정근거들을 들고, 그것들로부터 법의 보편적 원리를 추론한다. 1) 법관계들은 인격들 간의 실천적이되 단순히 외적인 구속관계들이다. 2) 법관계들은 한 사람의 자의를 다른 이의 자의에 관련짓는다. 3) 법관계들은 자의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고, 양쪽 자의들의 관계들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이로써 앞에서 말한 법의 보편적 원리 혹은 법 개념에 대한 칸트식의 정의가 제시된다. 법 개념은 행위의 합법성을 요구하지만, 법원리 자체가 행위의 준칙이 되어야 할 것은 요구하지 않는다. 법원리는 가능한 준칙들의 외적인 틀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법이론은 단지 외적 자유의 형식적 조건에만, 즉 법에만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법을 행위의 외적인 합법성 위에 정초함으로써, 법은 이미 시민사회 이전에도 그리고 그것과 독립하여 자연상태에서도 존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강제할 수 있는 단순한 권능으로서의 법개념은 시민상태에서의 공적인 법률을 통해 이런 권능이 보장될 것을 요구한다. 칸트가 자연법을 자연적 법 내지 私法과, 시민적 법 내지 공법으로 분류한 것은 이런 권능이 보장되어 있는가의 구별에 따른 것이다. 법을 보장하는 제도로서의 국가라는 이념은 법의 이념에 근거해야 한다. 즉 모든 법을 보장하는 의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강제법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결합시켜 주는 따라서 집합적-보편적이면서 권력을 가진 의지만이 할 수 있다. 자연상태의 시민상태로의 이행은 룻소식의 사회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민상태의 기반 위에서 자연법에는 실정법이 대립한다. 자연적 법이 외적 입법 없이도 선험적으로 이성을 통해서 인식될 수 있는 반면, 실정법은 그렇지 못하다. 실정법은 외적인 입법 없이는 아무 것도 결합하지 못한다. 모든 외적 입법이 단지 실정법만을 내포하는 그런 유형의 것이라 전제할 때에도, 적어도 입법자의 권위를 정초해 주는 자연적 법률은 요구된다. 따라서 적어도 이미 자연상태에서 타당한 사법과 헌법, 이것들은 칸트에서는 직접적으로 자연법에 근거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법에 관한 칸트의 입장을 살펴볼 때, 홉즈가 자연법을 도덕과 동일시함으로써 자연 개념을 인간의 의지에로 근접시켰던 흐름 위에서 칸트도 벗어나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는 의지를 이전의 경험론자들처럼 경험적 영역에서 정초하지 않고 선험적으로 정초할 뿐이다. 그리하여 칸트는 자연법의 의미에서 법이 근거하는 자연은 경험적 대상일 수 없다고 한다. 그의 의미에서의 실천적 법칙에는 선험적 근거에서 나온 객관적인 필연성이 부여되어야 하는데, 이는 경험적 자연으로부터는 나오지 않는다. 자연법의 도출을 가능케 하는 자연은 그 실천적 사용에서의 순수이성일 수 밖에 없다. 도덕처럼 자연법도 선험적인 원리들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자연법이나 도덕은 모두 실천이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들은 똑같이, 자연이 아니라 의지의 자유를 대상으로 하는 '선험적 인식의 체계'로서의 '도덕형이상학'에 속한다.
이로써 비록 자연 개념이 사용되고는 있지만 '자연'법은 순수한 실천이성의 자기입법의 원리에 관한 영역이 되었고 '법'적 내용들은 정치학 내지 인간학에게 양도되어 버렸다. 다시 말해 보편적 실천철학으로서의 자연법은 홉즈 이래 더 이상 '법'에 관한 이론이기보다는 윤리학에 속한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칸트를 근대 법철학자로 만든 것은 그가 도덕적 및 법적 근본규범의 구속성을 바로 의지의 자율성의 이념으로부터서만 정초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근본규범이 무제약적 구속성을 지닌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그는 결과에 있어서는 홉즈나 룻소와 유사하게, 완전한 의미에서의 법이 국가적 질서라는 지반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함으로써 모호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우호적으로 해석하건대 이는 칸트 또한 의지의 실현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정치체제에 관한 칸트의 주장을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이것은 자연법 논의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나중에 헤겔의 국가체제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이 곳에서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칸트에서 전국가적 상태에서의 권리와 의무의 구별은 항상 해당 관련자들에게만 구속력을 지닌 것이었다. 일방적인 의지는 다른 이에게 아무런 구속력도 부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 평등, 자립성이 국가 안에서 확보되어야 한다는 칸트의 원칙적 주장은 국가체제에 관하여 공화주의적 국가체제로 기울어지게 하였다. 그는 로크가 옹호한 자유주의적 국가를 거부하고, 룻소식의 공화주의적인 국가를 택한다. 그에 의하면 "원초적 계약의 이념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고 그리고 한 국민의 모든 법률상의 입법이 근거지어지는 유일한 체제는 공화제이다. 이 체제는 첫째 (인간으로서) 한 사회 구성원의 자유의 원리에 의해, 그리고 둘째 (시민으로서) 모두가 단 하나의 공통된 입법에 의존하는 의존의 원리에 의해, 그리고 세째 (국민으로서) 평등의 원칙에 의해 확립된다. 그러므로 공화적 체제는 법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형태의 시민적 헌법의 원초적인 토대를 이룬다." 이런 점은 칸트가 룻소처럼 일반의지를 법률과 국가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룻소의 {사회계약론}에 의하면 공화정치는 일반의지 혹은 법률에 의해 다스려지는 정치를 말한다. 칸트나 룻소 모두 민주정치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민주정치는 고대 폴리스처럼 매우 작은 국가, 소박한 풍습, 평등한 지위와 재산 등을 겸비해야만 다수의 통치로서 정당화될 수 있지만,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민주정치와 이런 전제들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은 공화제를 선호한 것이다. 물론 공화정치와 민주정치가 서로 논리적으로 합당하게 비교될 수 있는 동렬의 개념은 아니다. 전자는 법률에 따라 통치되는가의 여부에 따라, 후자는 주권자의 수에 따라 구별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 적잖은 철학자들이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바는 개인은 국가 안에서만 단순한 도덕적 주체로서의 시민를 넘어 국민 혹은 공민의 지위를 가지며 이를 위해 칸트나 룻소는 공화제적 국가체제를 최선의 것으로 옹호했다는 점이다.

3-2-5. 피히테의 법이론

법이론에 관한 한 피히테도 칸트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고 있다. 피히테는 칸트의 {도덕형이상학}보다 앞서 나온 {지식학 원리에 따른 자연법 기초}에서 법과 도덕을 분리시키면서 법에 대한 철학적 정초를 시도한다. 그에 의하면 법과 도덕은 근원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완전히 대립되어 있어서 이를 위한 어떤 인위적인 준비작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식학의 원리가 자아의 필연적 활동의 표현이자 자기의식의 조건이듯, 법의 개념도 그것 없이는 자기의식이 불가능할 자아의 필연적 활동으로 이해된다. 법 개념의 연역은 이러한 활동이 자기의식의 조건임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전지식학의 기초}에서 피히테는 지식학의 세 근본원리를 자아의 세 정립활동에서 구하고 있는데, 여기서 나타난 논리와 방법이 법 개념의 정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법의 세계는 이성적 인간들 상호간의 사회적 법적 관계로 이루어진다. 이성적 존재가 이성적 존재로서의 자기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을 여러 이성적 존재들 중의 하나로 여겨야 한다. 자신 외에 다른 이성적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필연성은 두 조건에서 나온다. 1) "유한한 이성적 존재는 자신에게 자유로운 작용성(Wirksamkeit)을 부여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정립할 수 없다." 2) "감성계에서 유한한 이성적 존재는 자유로운 작용성을 다른 존재에게도 부여하지 않고서는, 즉 자신 밖의 다른 이성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스스로에게 자유로운 작용성을 부여할 수 없다." 이 작용성은 유한한 존재의 활동, 다시 말해서 대상을 통해서만 가능한 활동이다. 그런데 대상의 정립은 자유로운 작용을 전제하며, 이 작용은 그것이 향할 대상을 전제한다. 피히테는 이 두 조건으로부터 법의 개념의 연역을 위한 세번째 정리(Lehrsatz)를 도출한다. 즉 "유한한 이성적 존재가 자기 밖의 다른 이성적 존재를 전제하기 위해서는, 그는 스스로를 다른 존재들과의 법적 관계라는 특정한 관계 속에 정립해야 한다."
이를 지식학에서는 자아가 스스로를 자신이 정립한 대상을 통해 제약하는 구조로 설명하였다. 이제 실천철학에서는 이를 '인정' 개념으로써 설명한다. 피히테의 '인정'은 "법개념을 성립시키는 의식의 활동"이다. 주체의 자기의식은 주체 스스로가 자유로운 작용을 통해 타자를 인정하고 그 타자에 의해 인정받음으로써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될 때 이루어진다. 다른 이성적 존재의 실존이 자아의 자기의식의 조건임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법 개념은 이런 사상으로부터 도출된다. 자신의 자유에 대한 다른 외적 자유의 영향은 강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자유의 제한을 통한 다른 이의 자유의 인정이다. 이로써 "법 개념은 이성적 존재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이 된다. 피히테에 의하면 이성적 존재들 사이의 관계란 "지성과 자유를 통한 상호작용의 관계"인 까닭에, 자아는 타자가 그의 자유를 자아의 자유의 개념을 통해 제한하여 자아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이 보여질 때에만, 그 타자를 자유로운 존재로서 인식할 수 있다. 그런 인정은 상호적이다. 모든 이성적인 존재는 그의 자유를 타자의 가능한 자유의 개념을 통해서 제한한다.
이로써 법의 개념은 도덕법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의식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도출되었다. 도덕과 법은 두 완전히 상이한 부문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법의 영역에서는 선의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의지를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경우에도 법은 강제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법 개념은 감각세계에서의 자유의 표현에만 관계할 뿐, 마음의 내면적인 것에 머물러 있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상호 인정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법적 공동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자연법에 대한 보다 상세한 규정들은 나온다. 피히테는 외적 조건들과 내적 조건들을 구별한다. 모든 자아가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은 외적 조건에 속하며, 각자가 타자를 자유로운 인격으로 대우할려고 한다는 것은 내적 조건에 속한다. 법적 공동체는 이런 의지에 의존하며 우연적인 조건에 의존하게 된다. 자아는 타자가 나를 법에 부합하게 대우할려고 할 때에만 타자를 법에 부합하게 대우할 수 있다. 서로 간에 상호 인정이 없을 경우 법적 공동체는 사라진다. 법적 공동체는 자기의식의 필수적 조건이다. 그러나 법률은 법적 공동체가 존립하지 않을 때에도 타당해야 한다. 이것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그는, 법률은 그것이 타당한 영역과 그것이 타당하지 않은 영역을 동시에 기술한다고 전제한다. 내가 다른 이를 법률에 부합하게 대우하면 나는 그가 나를 똑같이 대우할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가 이를 하지 않으면 그는 법적 공동체로부터 빠져 나가는 것이고 나는 그의 자유를 더 이상 법에 부합하게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자유를 침해하여 그에게 강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피히테는 {지식학 원리에 따른 자연법 기초}의 1부 안에 있는 '법 개념의 체계적 적용과 법이론'에서 근원법을 연역하고 강제법을 논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각자는 자신의 자유와 자유로운 행위의 범위를 다른 이의 자유의 개념에 의해 제한해야 하는데, 이것이 모든 법적 판단의 원칙이다." '근원법'(Urrecht)이란 자유로운 인격이 갖는 절대적인 법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불신이나 진실하지 못함은 상호간에 자유나  근원법 혹은 근원적 권리의 침해를 맛보게 하고 반법적인(rechtswidrig) 행위를 초래한다. 그렇지만 "반법적 행위가 결국은 그 목적의 반대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강제적인 장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의지는 오로지 적법한 것만을 의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장치에 의해서 신뢰가 회복되고 선한 의지가 법의 외적 실현에 불가결한 것이 된다. 그런 장치에 의해 악한 의지나 탐욕에 찬 의지는 그 반법적인 탐욕 때문에 애초의 그 목적과는 반대된 결과에 이르게 된다. 피히테에 있어서의 강제법(Zwangsgesetz)이란 바로 이런 장치를 말한다.
법이론은 근원법을 연역하고, 강제법의 적용 가능성의 조건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강제법은 자유의 반법적인 사용에 적용된다. 자유의 법적인 행사, 법의 평등 등을 위한 조건은 자유 행사의 상호적 제한이다. 법적 상태의 안전성은 그러나 도덕 없이도 보장되어야 한다. 피히테는 법적 상태를 순법적인 방식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강제법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피히테는 이 문제를 국가의 연역으로 대답한다. 법의 침해에서 침해자는 그 자신의 권리의 똑같은 침해를 겪게 된다. 강제법은 그 관철을 위해 개인들에 대한 강제적 힘을 요구한다. 이 힘은 개인의 의지에 의존할 수 없고, 하나의 공통된 의지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 각자가 모든 이의 권리의 보장을 의지한다는 것, 이것은 공통된 의지에서만 가능하다. 이 의지는 국민 계약 (Staatsb rgervertrag) 에서 실현된다.
국가가 비로소 강제법의 적용을 가능케 한다. 구속력을 지닌 법적 의무들은 외적 강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가를 통해서야 비로소 법적 관계들은 가능하다. 자연상태에서는 법은 없다. 실정법 하에서가 아니라면 인간들 사이의 어떤 법적 관계도 없다. 적어도 '법'이란 개념을 쓴다면 자연법이란 없는 것이다. 근원적 권리도 허구다. 이상적 가능성을 갖긴 하되, 어떤 실질적 의미도 없다. 그렇다고 피히테가 실정법을 위해 자연법 개념을 포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국가법적 규정들을 자연법의 부분들로 재평가한다. 국민계약, 입법, 국가권력 등은 자기의식의 필연적 조건으로서의 법 개념의 가능성의 조건들이다. 그러므로 자연법은 국가 안에서만 가능하다. 국가 밖에서는 어떤 법도 없다. 국가 자체가 인간의 자연상태가 되며, 그 법률들은 실현된 자연법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피히테도 홉즈, 칸트와 함께 자연법으로부터 사회적 삶을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규정하는 기능을 빼앗아 버린다. 그리고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오성 개념의 연역'이란 표현을 쓴 것처럼, 그도 그의 자연법 이론에서 법의 개념, 법 개념의 적용 가능성, 근원적 권리, 결혼 등을 '연역'한다. 이것은 자연법이 형식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제 자연법은 적어도 헤겔 이전의 근대에서는 도덕 그 자체와 거의 동일시되었고 규범적 수준으로 추상화된 것이다.

그러면 자연법에 대한 칸트와 피히테의 형식주의적 취급방식에 대해 헤겔은 어떻게 비판하는가? 자연법에 대한 형식주의적 취급 방식은 앞에서의 경험주의적 취급 방식보다 자유와 자연, 자아와 자연, 개념과 감성의 대립을 극단화한다. "헤겔이 볼 때 17세기 자연법의 특징적인 체계 기초였던 자연의 배제(Privation der Natur)는 칸트, 피히테적 철학에서 완성되었다." 헤겔이 분열을 극복한 독특한 개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인륜적 자연'은 이러한 개념에 의한 자연의 파괴를 지양하고 법과 자연의 근원적 연관을 다시 회복하려 한다. 그러므로 "참으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을 그 이름에 걸맞게 구성하고, 인륜적 자연이 어떻게 그 법에 이르는가를 구성하는 것"이 자연법의 과제로 여겨지게 된다.
헤겔은 보다 구체적으로 개념과 감성의 대립을 감성의 이성에의 예속의 두 형식으로 설명한다. 주체가 자신의 자율성 때문에 스스로 의무를 위해 행위해야 하는 경우와, 아니면 법률 아래의 외적인 강제에 의해 행위할 수 밖에 없는 경우의 두 가지가 그것이다. 형식적 취급 방식들은 이로부터 합법성과 도덕을 구분하였고 두 가지 서로 상이할 수 밖에 없는 학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러나 헤겔은 이 두 학들의 원리들이 서로 독립해서는 가능하지 않으며 - 왜냐 하면 주관적 이성이 사회적 현실과 독립해서 일정한 내용을 지닌 의무 명령을 부여할 수도 없고, 또한 주체들에게 행위의 인륜성을 부여할 수 없는 전반적인 법적 강제 체계로서의 법적 상태라는 것도 가능치 않기 때문이다 - 나아가 칸트, 피히테의 도덕철학과 법철학을 통해서는 참된 자유가 아닌 지배 관계만이 정초될 뿐이라고 논박한다. 다음의 인용문은 자연법에 대한 두 취급방식 상의 차이와 이에 대한 헤겔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해준다.

".......이로써 자연법의 학적 취급의 두 참되지 못한 방식들 간의 독특한 구별이 확정되었지만 - 이에 따르면 한 편의 원리는 경험적 직관과 보편자의 관계 내지 혼합이며, 다른 편의 원리는 절대적 대립과 절대적 보편성이다 -, 그럼에도 경험적 직관과 개념이라는 양자의 구성요소는 동일하다는 것이 스스로 드러나며, 그리고 순수 부정성으로부터 하나의 내용으로 이행해 가는 것과 같은 형식주의는 다만 관계들이나 상대적 동일성들에 이를 뿐임이 밝혀진다."(NR, S. 420-1)

우리는 자연법의 형식적 취급방식이 지니는 결함에 대한 헤겔의 비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은 첫째로 칸트, 피히테로 대표되는 형식주의가 도덕법의 무내용성을 노출하며, 둘째로 그것은 감성적 경향들과 의무, 명령을 대립시킨 데에 머물고 만다고 비판한다. 세째로 그는 참된 인륜은 주관적 인륜이 객관적 인륜을 통해 규정된 것이라는 대안적 인식을 내세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겔은 법이란 관습, 습속, 경향 등을 통해 특수의지를 규정하여 보편의지와 일치시킬 때에만 국가 안에서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즉 형식주의에서는 개별의지와 보편의지의 일치의 필연성이 통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형식주의의 윤리이론은 근대적 개인의 존재와 인륜이론적 우위성에 집착한 나머지, 개인의 실천적 삶의 기반으로서의 정치 사회적 관계들이 인륜적일 때만 도덕도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하였고, 그것의 법이론은 주체 또한 윤리적일 때만 적법성도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하였다는 것이다.

3-3. 자연법에 대한 헤겔의 인륜이론적 재구성

헤겔철학의 가장 포괄적인 개념인 정신은 여러 형태로 자신을 외화한다. 논리적 이념, 주관정신, 객관정신 등이 있는가 하면 물리적 자연도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철학도 논리학, 정신철학, 자연철학 등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헤겔의 '인륜적 자연'의 개념에 주목했듯이 자연법 이론 내지 실천철학에서의 자연 개념은 정신철학의 범위 안에서만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터전을 갖는다. 그런 까닭에 자연법 이론과 관련하여 헤겔의 자연이 궁극적으로 인륜적 자연, 민족을 의미하고 법은 자유의 역사적 실현 궤적을 의미한다면, 이에 따라 그에게 자연법은 한 민족의 자유를 향한 발전에서 나타나는 의식적 제도적 산물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은 {법철학}에서 자연법의 학을 '철학적 법학'과 동일시하고 실정적 법에 관한 탐구와 구분한다. 그의 자연법이 철학적 법학인 한, 그것은 법의 이념과 개념, 그것의 실현을 대상으로 하는 법철학과도 동일하다. 그런데 현실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은 실천철학, 역사철학, 법철학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나지만 이것들은 결국 자연법의 학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논의에서 밝혀진 것처럼 이전 자연법 이론가들은 자연법이란 이름 아래서 각기 다른 내용을 전개시켰거니와 그 주제와 방식 목표 등도 달랐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헤겔의 비판은 자연법의 개념에 대한 이들 간의 의미차이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자연법에 대한 헤겔의 비판은 이들이 자연법으로써 포괄적인 실천철학을 구상했으면서도 그런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에 핵심이 있다. 즉 그들에 있어서 실천철학의 주제나 대상은 전체적인 것이었으되 실제의 탐구 결과는 불완전함에 머물고 말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의 비판은 그들의 실천철학 전반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이전 자연법 이론에 대한 예나 초기의 비판적 검토는 이제 헤겔 자신의 인륜이론 구성으로 이어진다. 근대 자연법의 두 취급방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헤겔이 과제로 얻은 것은 근대의 주체적 개인의 존재를 실천철학에서 어떻게 수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나 시기에 헤겔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문제이자 그의 전체 철학체계의 구체적 전개에 관건이 된 문제였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 주체성 문제와의 대결을 통해 헤겔이 어떻게 인륜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는지 하는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시키고자 한다.

3-3-1. {자연법논문}에서의 주체성과 자연법

근대 자연법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존재를 최초이자 최고의 것으로 정립한다. 즉 주관의 근대적 절대화를 이론화한다. 특히 17세기의 자연법은 개인을 자연상태에서는 절대적 자유로, 법적 상태에서는 주관의 절대적 예속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로써 절대적 인륜의 요소인 개인은 다만 자연상태 속의 존재, 혹은 법적 상태 속의 특수한 존재로만  규정될 뿐이었다.
그러나 법적 상태에서 주체가 외적 권력 하에 예속됨으로써 개별성이 지양되리라는 것은 다만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개별성은 실제로 예속적 합일 속에서도 항상 재생산된다. 거기서 인륜적 자연은 자연법에서 사회나 국가라는 이름으로 표상되는 무형식적이고 외적인 통일로 남아 있다. 사회나 국가라는 공허한 이름은 헤겔의 인륜의 절대적 이념과 다르다. 인륜의 절대적 이념 안에서 개인은 그 자체로는 무이며, 절대적 인륜적 권위와 단적으로 하나가 된다. 양자는 참으로 생동하지만, 결코 예속적이지는 않은 합일을 이룬다.
{자연법논문}에서 헤겔은 개인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인륜의 절대적 이념 안에서 개인은 용해되어 버린다고 보는 것이다. 헤겔이 주장하는 바 '인륜적 전체와의 생생한 합일'에서 자연법적 국가이론의 단초는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즉 개인은 무에 불과하다. 헤겔에게 칸트, 피히테에서의 자유, 순수의지, 인권 등의 개념들은 순수한 부정태들일 뿐이다. '예속적 합일'의 관계는 강제의 체계로 여겨지며, 이의 보편성이란 것도 추상적이고 형식적일 뿐이어서 개별성과 보편성의 생생한 합일을 결국은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관념론적 철학은 법과 의무의 본질을 사유하고 의욕하는 주체의 본질과 동일한 것으로 정립한 위대한 점을 지니지만, 그러나 이 동일성 원리의 타당성이 행위의 주관적 도덕성에만 한정되고 다른 한 편으로 그것이 합법성에서는 양자의 절대적 분리 속에서 깨져버림으로써 관념론적 철학은 그런 동일성 원리에 충실하지 못했다. 결국 그 철학 안에서 법과 도덕, 자유와 강제는 대립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도덕은 개별성이 지닌 부정적인 것을 좀 더 순수한 형태로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헤겔의 절대적 인륜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도덕은 자신의 원리 안에 부정적인 것을 고정하는 데에 그친다.
근대 주체성의 반성적 도덕이나 개인의 덕은 헤겔에게는 부정적 인륜일 뿐이다. 여기에 도덕과 헤겔적 자연법 즉 인륜과의 형식적 차이가 있다. 칸트, 피히테는 이 차이를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헤겔에게 자연법은 '인륜적 자연'을 법으로 구성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학을 의미했다. 헤겔은 도덕의 내용이 완전히 자연법 안에 있다고 함으로써 이 차이를 형식적인 것으로만 여긴다. 헤겔은 도덕을 "보편자의 단순한 가능성으로서의 개별자의 인륜"이라는 부정적인 것의 영역으로 본 반면, 자연법은 인륜적 자연이라는 긍정적인 것의 영역으로 본다. 그리하여 한 민족의 입장을 이루는 인륜적 자연을 구성하는 것이 그가 설정한 자연법의 과제였다.

3-3-2. 예나 다른 저작에서의 주체성과 자연법

그러나 헤겔 사유의 발전에서 이런 자연법 개념 및 그와 연관된 방법적인 입장은 {자연법논문} 출간 이후 곧 변형되어 버렸고, 예나 말기에는 완전히 포기되었다. 이는 지금까지의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피노자 지향적이었던 자연법 개념의 포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개인이나 개별성은 예나 초기에는 그저 무에 불과한 부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그것은 인륜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될 필연적인 부정 요소로 수용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헤겔의 예나 형이상학에 대한 킴멀, 뒤징, 바움 등의 해석에 따르면 예나 초기의 헤겔은 유한자의 단순한 부정으로서의 부정성 개념을 옹호하고 있고, 사변적 수준에 이르지 못하여 단순히 부정적일 뿐이었던 변증법을 견지하고 있으며, 절대적 동일성이 존재론적으로 스피노자적인 실체로서 생각될 뿐인 그런 형이상학을 옹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법논문} 출간 이후의 변화는 바로 이러한 초기의 단순한 부정성이 규정적 부정성으로 변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숙한 헤겔 사유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은 개별성, 유한자, 부정성까지도 절대적 인륜 속에 그 필연적 계기들로 끌어들인다. 짧은 예나 시대이지만 그 안에서도 {자연법논문} 출간을 전후한 사유의 변화는 헤겔 사유의 발전에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이다.
근대 자연법이 사회, 국가의 연역의 토대로 삼았던 개인의 존재는 {인륜의 체계}에서는 '부정적인 것, 혹은 자유, 혹은 범죄'라는 제목 아래에 나타난다. 여기서의 주제들은 절도, 강탈, 살인, 전쟁, 복수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는 개인의 부정적 존재로부터 인륜의 절대적 존재로 이행하는 과정을 입증하기 위한 요소들로 수용되고 있다. 부정적인 것을 통해서 개인의 존재는, '개념 속에 받아 들여진 절대적 개체성', '부정적으로 절대적인 무한성, 순수한 자유'가 된다. 그러한 개인의 개념은 절대자 자체의 부정적 절대적인 요소로써 절대적 인륜 안에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근대에는 생사를 건 인정 투쟁에서 순수 자유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유 시민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부정적 활동에는 긍정적인 것, 즉 그것이 한 민족에 속한다는 사실이 그 조건으로서 선행한다.
{예나정신철학 1}이나 {인륜의 체계}, {자연법논문} 등에서는 모두 개별성으로부터 보편성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족의 성원으로서의 개인은 보편적 인륜의 생생한 실체를 본질로 삼는 인륜적 존재다...... 그 생생한 다양성 속에서 존재하는 인륜의 존재가 민족의 관습(Sitte)이다."(PG1, S. 314-5) 이것은 방법상으로나 체계적 내용적 측면에서나 전적으로 고대의 폴리스 인륜의 입장과 동일하다.
부정적 활동은 이제 더 이상 인륜적 전체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의 활동이 아니라, 상호 인정을 위한 개개인의 싸움이다. 이제야 부정적인 것(das Negative)은 개별성과 보편성의 매개 기능이라는, 헤겔 법사상의 가장 중요한 기초 중의 하나를 담당하게 된다. 예컨대 인정투쟁은 가족이라는 자연적 인륜과 민족이라는 절대적 인륜 사이를 매개함으로써 개인이 개별성을 벗어나 보편성으로 고양되는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근대 자연법과 관련하여 {예나정신철학 2}는 그것을 새롭게 평가하는 틀을 제시한다. 즉 주체성의 단순한 극복 혹은 폐기가 아니라, 주체성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를 전제한 체계적인 인륜 탐색이 시작되는 것이다. 셸링식의 방법 내지 용어들은 사라지고, 자아의 철학이 시도된다. 인륜을 자아의 논리적 구조와 역사적 발전의 범주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헤겔의 범주들은 긍정적/부정적, 인륜적 자연/그 법, 직관/개념의 대립 등이 아니다. 그는 자아를 그 근원으로 삼는 '지성'과 '의지'를 주요 범주로 하고 있다. 이는 헤겔이 예나 후반에 새롭게 피히테의 직접적 영향 속에 그와 대결하고 있고 그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헤겔은 자연법 이론에서 '인정'을 어떻게 주제화하는가? 자연상태에선 상호 간에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존재가 전제되었다. 자연법은 개인들이 이 속에서 어떻게 권리와 의무를 갖는지, 그들의 행동의 필연성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개념적으로 자립적인 자기의식의 필연성은 어떤 것인지 하는 문제들에 대답해야 한다. 홉즈, 칸트, 피히테는 개인에게는 그 본성상 아무 권리도 의무도 부여되지 않으며, 이것들의 현실성을 위해 법적 상태 즉 국가가 요구된다고 한다. 이런 논의를 이어받아, 헤겔은 상호 자유로운 자기의식의 개념을 정립한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그것은 개념일 뿐이어서 스스로를 실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스스로를 실현시키는 개념을 그는 다름 아닌 인정의 운동으로 간주한다. 이 인정 운동은 {예나정신철학 2}에 와서는 인륜의 절대적 실체로 곧장 이행하지 않고 직접적 인륜인 법으로 이행한다. 여기서는 인정받으면서 인정하는 인격들 서로 간의 연관이 법으로 이해되고 있다. 자아는 인정에서 개인이기를 멈추고 법적이게 된다. 자연적인 것은 다만 존재할 뿐인 것으로서 정신적인 것이 아니지만, 자연상태를 벗어난 인간은 바로 인정 자체인 것이다.(PG2, S. 215)
인륜관의 이런 변화는 지금까지의 헤겔의 자연법 개념의 기초들의 전회를 의미한다. 인정 운동이 발원하는 개념은 개인의 순수 자유라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적극적인 것의 요소인 법이 바로 개념의 운동, 인정의 운동을 낳기 때문이다. "법이란 인격들 상호간의 연관, 인격들이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보편적 요소, 인격들의 공허한 자유의 규정 내지 제한 등으로 설명된다."(같은 곳)
이제 헤겔은 자연법의 자연 개념과 대결할 때에 자연법에 대한 관념론적 후기 단계의 영향을 받은 한 기준에 의거하고 있다. 즉 '보편적 법능력'(die universelle Rechtsf higkeit) 혹은 '법적 능력을 가진 인격'(eine rechtsf hige Person)이 그것이다. 이것은 순수 개념으로서의 인격과 인간의 자아가 동일함(die 'Person' als der reine Begiff = Ich des Menschen)을 뜻한다. 법은 순수 인격, 순수 인정을 내포한다. 헤겔은 인간을 자연상태 속에서가 아니라 그 개념에서 고찰한다.(cf. PG2, S. 214-5)
{자연법논문}이 이전의 자연법을 비판하면서 주관적 인륜을 객관적 인륜으로써 규정하려 했고 {인륜의 체계}가 자연적 인륜과 절대적 인륜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두 권의 예나 정신철학은 의식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곧 이어지는 {정신현상학}의 터를 닦았다. 그 중에서도 {예나정신철학 1}은 인정 운동을 의식의 토대로 간주했고, 1805/6년의 {예나정신철학 2}는 자아의 자발성(지성과 의지)을 의식의 토대로 삼고 있다. 후자에 따르면 자아는 개념이고, 개념인 자아는 그 자체 운동이다. 이 운동의 적극적인 형식이 인정이다.
인정 운동의 개념은 법을 산출하는데, 이 운동은 개별성의 측면에선 인식하는 의지, 보편자인 의지를 그 결과로 갖는다. 그것은 룻소의 일반의지와도 같다. 그리고 그것의 직접적인 현실은 법적 능력을 갖는 인격이다. 인륜적인 것의 직접태로서의 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개념 속에 받아들임으로써, 근대 자연법의 출발점인 개인의 요소는 정당화되었다. 이로써 헤겔은 긍극적으로 룻소, 칸트, 피히테의 자연법 입장으로 회귀한다.
자아를 개념으로 봄으로써 개인의 존재를 정당화한 것은 헤겔이 예나 말기에 얻었던 통찰의 결과이다. 그것을 {정신현상학}은 '진리는 실체로서뿐만 아니라 주체로서도 파악되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유명한 명제로 표현한다. 그리하여 자기정립의 운동이자 타자화와 자신과의 매개이기도 한 주체가 자연법의 진리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이제 자연법은 헤겔이 처음에 그리이스 폴리스의 실체적 인륜과 동일시했던 '인륜적 자연'과 그 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륜적 실체를 관통하여 운동하는 법의 '개념'을 대상으로 삼게 된다.

3-3-3. 자연법 비판을 통한 법의 철학적 정초
 
자기정립적 개념의 운동에 대한 통찰로써 비로소 헤겔은 우리에게 윤리학자로서 나타난다. 예나 말기에 와서 그는 이전과는 달리 근대 자연법의 관점에서 고전정치학도 비판한다. 이는 1805년에 최초로 분명히 나타난다. 룻소의 일반의지 이론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관련지어 해석한다든가, 고대적인 보편자와 개별자의 직접적 통일에 대해 근대 자연법의 분리 사상 즉 개별성의 절대적 자기정립을 대비시킨다든가 하는 것은 그런 흐름에 속한다.
그는 당대의 자연법을 실체의 실천적 본질인 법에 대한 상투적인 추상이라 비판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플라톤적인 폴리스 이념의 한계, 즉 개별성이나 개별적 의식, 인격 등이 배제된 것을 지적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 원리에 대해 대립된 것은 개인의 의식적인 자유의지의 원리이다. 개별성이라는 부정적 요소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인륜은 절대적일 수가 없다. {예나정신철학}은 바로 근대적 요소에 대한 이러한 적극적인 평가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인륜에 대한 그의 시각의 전환점일 수 밖에 없다.
이처럼 헤겔은 당대 자연법에 대한 특정한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고전적 자연법을 새롭게 비판하고 있거니와, 그는 그 비판의 기준을 룻소에게서 가져온다.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홉즈는 최초로 국가공동체나 국가권력의 본성을, 우리 자신 안에 놓여 있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으로서 인정하는 원리들로 소급시키려 시도했다. 바로 그에 의해 전통적인 자연법 칭호에 애매성이 생긴다. 그에 의하면 자연이란 표현은 이중적인 애매성을 갖는데, 하나는 인간의 자연으로서 인간의 정신성, 이성성을 의미하는가 하면, 또 한 편으로 인간이 그의 자연성에 따라 행동하는 자연상태를 이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이런 애매성은 홉즈의 전통과의 혁명적 결별을 심화시킨 룻소, 칸트, 피히테에서 증가되어 간다. 룻소는 인간의 자연인 정신성, 이성성을 그의 자유로 파악한다. 인간은 자유로우며, 일반의지의 기초 위에 세워진 국가는 이런 자유의 실현이다. 그러나 룻소의 애매성은 그가 일반의지를 개별자의 의지로부터, 그의 자연적 자유 경향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본 데서 나온다. 그는 홉즈에 못지 않게 자연과 자유의 구별을 확실히 하지 못한 것이다. 이로써 룻소의 일반의지의 개념에서 생각된, '단적인 절대자로서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의해 다시 폐기되어 버린다.
여기서부터 칸트 철학에로의 이행이 이루어진다. 헤겔이 볼 때 칸트철학은 자연법 개념에서의 애매성에 종지부를 준비했다. 즉 칸트 철학은 자연의 입법을 자유의 입법으로부터, 경험적 의지를 자유롭고 순수한 의지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시킨 것이다.
인간의 '개념'은 선험철학적 관점에서 자신에 대한 이해에 이른다. '자기의식의 단순한 통일성', '자아'는 기존의 모든 자연질서로부터 벗어난, 깨뜨릴 수 없는, 모든 사유 규정의 절대 독립적인 자유이자 원천이다. '정신적인 것의 의식'이 자연법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자연법 이론은 사회 성향이나 소유권의 보장 욕구 등과 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의식과 동일한 확신의 원리를 국가를 위한 사상의 원리로 발견한다. 1805/6년 이래 헤겔 법 사상의 지평을 이루는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은 추상적이고 내용없는 정식이 아니다. 이 운동의 내용은 룻소, 칸트, 피히테 이래 모든 법의 원리로 고양된, '의지의 절대적 자유'이다.
헤겔은 당대의 자연과 법의 연관의 애매성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엔찌클로패디}에 의하면, "지금까지 철학적 법론에 통용되던 자연법이란 표현은, 법이 직접적 자연을 통해 심어진 것인지 사상의 본성 즉 개념을 통해 규정된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양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법은 직접적 자연에 의해 심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사태의 본성 즉 개념을 통해 규정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개념'은 '자연'의 의미를 완전히 자신 안에 흡수한다. 그것은 법을 뜻하며 자연 규정의 반대인 자기 규정을 뜻한다. 이제 개념의 추상적 자기운동은 모든 자연적 규정들로부터 벗어난 '인격'의 자기 규정과 동일시된다. 자유가 법의 유일한 원리가 된 것이다.
{법철학}이 추상법에서 시작하여 가족, 시민사회, 국가에 이르기까지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자유는 인간의 사회적 역사적 현실의 제요소들로 표현된다. 물론 여기서는 자연적 관계들도 도처에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국가 안의 삶이 개인에게 자연의 법칙은 될 수 없으며, 국가의 필연성이란 것도 자유가 갖는 법칙에 의존한다. 자유와 필연성의 통일은 자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에 의해 생긴다. 자연적 사물들은 있는 그대로 머물러 있고 자기입법할 만큼 외적 법칙으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한다. 그러나 정신은 자연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 자신의 자연, 자신의 법칙을 산츨한다. 따라서 자연은 법의 생이 아니다. 피히테에서처럼 헤겔에서도 자연법은 다만 관습적인 것일 뿐이며, 법의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자연'이란 본질, 개념을 의미하기도 하고, 무의식적 자연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겔은 자연법에 대한 본래의 이름을 '철학적 법론'이라 불렀으리라. {자연법논문}이 '인륜적 자연'의 법을 구성함으로써 극복하려 했던, '자유의 철학'의 기반은 헤겔 법사상의 이후의 전개에서도 되살아난다.
헤겔은 '자연의 법칙은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고 따르기만 하면 법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전통적 생각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인간의 역사적 현존재가 배태한 유일한 법은 자연이 아닌 개념 자신에 의해 주어진 자유법칙 뿐이다. 헤겔이 볼 때 개념의 자기입법은 인간의 '보편적인 법능력'이라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룻소, 칸트, 피히테의 관념론적 자연법이 최초로 파악했던 것으로서, 현존하는 법을 그것에 대한 지와 하나가 되게 변화시켰다.
자유는 자연의 형식이 아닌, 개념의 형식 안에서 사유되어야 한다. 개념은 자유를 자신 및 자연과 매개시킨다. {법철학}에서 헤겔은 분명히 자연법과 법철학을 구분한다. {법철학} 강의의 2중적 제목(법철학 개요, 혹은 자연법과 국가학 강요)은 이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제목은 매우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 저작의 前史를 구성했던 요소들을 확인하고 있다. 부제인 '자연법과 국가학 강요'는 그의 법사상의 출발점인, 고전 정치학 및 근대 자연법과의 대결을 시사한다. 그 대결 과정에서 그는 양자의 한계 및 그 극복의 조건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의 결과가 {법철학}이라는 제목으로 나타났다. 그 제목은 전체에 앞서서 자연법과 국가학을 자신 안에서 통일한다. 헤겔이 도입한 '철학적 법'이라는 칭호, 그 칭호가 나타내는 사태인 자유의 '개념'은 역사적으로는 관념론적 자연법에서 유래하며, 그 점에서 헤겔은 {법철학}에서 스스로를 관념론적 자연법의 후예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4장. 예나 시대 인륜이론

헤겔 사회이론의 발전은 1801년 예나로 옮기기 이전 이미 신학적 저작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사회에 대한 탐구와 기독교의 실정성 비판 등을 통하여 그는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삶의 근본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근대 사회를 분석 비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회이론의 대부분의 단초들은 그의 삶에서 스스로에게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역동적이었다고 할 예나에서 마련되고 원숙해져 갔다. {인륜의 체계}, {예나정신철학 1, 2}를 통해 마련된 예나 시대의 사회이론은 그 이전의 비판철학 시기의 '절대자 철학'으로부터 '정신철학'으로 이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의 체계적인 완성은 {엔찌클로패디}에서 이루어지고 특히 사회이론에 한정된 보다 밀도있는 탐구가 1821년 {법철학}을 통해 완성된다. 이 장에서는 그 동안의 헤겔 해석에서의 여러 논란에 중요한 준거점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예나 시대의 몇 권의 저작을 통해 인륜이론의 정초과정을 간단히 검토해 보기로 한다.

흔히 헤겔의 정치철학 하면 1821년의 법철학, 1817년의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의회, 1831년의 영국선거법 개정안 등을 떠올리곤 했었다. 법철학에서 헤겔은 그의 정치적 관념을 정신 철학 내의 철학 체계의 한 부분으로 전개시켰고, 짧은 정치적 논문들에선 그 때 그 때의 정치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다. 그의 정치철학의 궁극적인 관념이 어떤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어온 속에서 새롭게 그의 초기 저작들이 간행됨에 따라 이를 참조한 다양한 다른 해석들이 나오게 되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들은 1801 -1806년 사이의 예나 시대의 저작들이다. 이들 속에서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간행 이전의 그의 정치적 관념을 철학 체계의 형식으로 정식화하고 그의 전체 철학 체계 속에 편입시키려 하였다. 그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자연법논문}, {인륜의 체계}, {예나정신철학 1, 2} 등이다.
첫째 권을 제외하고 헤겔이 스스로 출간하지 않았던 이 저작들에서의 그의 본래적 관심은 무엇이었는가? 이런 저작들은 그의 정치적 사유에서 완성된 성과들은 아니다. 그것들은 나중에 완성될 그의 철학 체계를 포착하고 발전시키고 정당화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 저작들은 헤겔이 내용적으로나 방법적으로 어떤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였는가,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는가, 어떻게 그가 그것들을 체계적인 변증법적 발전 속에서 해소시켰는가 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20세기 초 청년기 신학 저작의 간행이 지금까지의 헤겔 상을 변화시키고 다시금 그것에 현실성을 부여해준 것처럼, 헤겔의 예나 체계 기획들은 그의 정치철학에 대해 확대된 현실성과 더 강한 파괴력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들의 가장 흥미있는 관념들과 그 전개는 바로 헤겔 정치철학의 근대성을 이루는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나중의 {법철학}보다 더 강열하게, 사회경제적 영역을 철학적으로 포착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나중에는 배후로 밀려들어 가버리기는 했지만, 여기서 그는 그의 정치적 관념들의 철학적 체계론을 바로 그 출발점에서, 자연의 가공 및 소유에 대한 인정투쟁과 같은 것을 통해 기저지우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또한 {법철학}에서의 유명한 사회와 국가의 분리가 어떻게 앞선 예나 시대의 체계 기획에서 비로소 점차적으로 도입되게 되었는가도 보여준다.
1805/6년의 {예나정신철학 2}와 1821년 {법철학}이 15년의 차이를 두고는 있지만 거기서의 철학적 관념들과 정치적 진술들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특히 사회와 국가의 규정에서 그렇다. 그런데 {예나정신철학}의 진술들은 이처럼 나중의 {법철학}의 주장들의 보완과 강조를 위해 참조될 수 있지만, {인륜의 체계}와 {자연법논문}은 그렇지 않다. 즉 헤겔이 {예나정신철학}에서 이미 의지의 전개를 노리고 있고, 근대 주체성과 개인성의 원리에 대해 그의 적극적인 정치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데 반해서, {인륜의 체계}는 사회경제학적 규정들과 초개인적인 고대적 폴리스 인륜의 이상화를 뒤섞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의 정치적인 체계 사유에서의 본래적인 발전은 초기 정치적 체계와 {법철학}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나 시대 자체 내에 있는 것이다. 즉 1802/3년의 {인륜의 체계}와 1805/6년의 {예나정신철학 2} 사이에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정치적 진술을 변증법적으로 전개시키는 방법도 이 두 초기의 체계 기획 사이에서는 다르다. {인륜의 체계}에서는 적어도 외적으로는 직관과 개념의 상호 포섭의 범형이 나타나지만, {예나정신철학}에서는 정신의 자기운동으로서의 내용의 운동을 제시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정신철학의 부분에서 {인륜의 체계}와 {예나정신철학 2}는 그의 정치적 체계의 최초의 두 완성된 이해를 담고 있다. 이에 비해 {자연법논문}과 1803/4년의 {예나정신철학 1}은 이런 의미에서 아직 체계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특히 영국 경험론자들과 독일 관념론의 자연법 관념을 비판적으로 논하는 {자연법논문}은 {인륜의 체계}에 대한 중요한 내용적 보충을 담고 있으며, 자신의 체계적 단초들도 담고 있다.
{인륜의 체계}에서부터 {예나정신철학}에 이르는 기간 동안 헤겔은 상이한 정초형식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인륜이론을 기획한다. 이 기획에서의 중심적 사상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개인은 전체에 의존한다는 것이고, 들째는 인륜적 전체 즉 인간의 인륜적 삶은 모든 개인의 의식적 행위를 통해 그리고 원자론적 개인성의 포기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근대 자연법의 주관주의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논박도 이해될 수 있다. 거기서는 인륜이 인륜적 전체가 아니라 개별적 개인으로부터 이해되었다고 논박되었다. 헤겔에 의하면 인륜은 반대로 단순한 개인 속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질서의 관계 속에서만 존립할 수 있으며, 개인적 인륜은 '객관적으로 인륜적인' 관계의 산물로서만 가능하다. 인륜은 자연과 정신을 규정하는 이성의 현상형식들이자 사회 정치적 제도들 속에서 현실화되는 자의식적인 행위의 산물인 것이다.

4-1. {인륜의 체계}의 인륜이론

먼저 1802-3년의 {인륜의 체계}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일단 각 개념들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먼저 이 저작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해 보자.
인간 실천의 제 형식들을 서로 관련짓고 체계적인 연관 속에 놓으려는 그의 최초의 시도인 {인륜의 체계}에서, 헤겔은 인간 행위의 모든 현상형식들을 직관과 개념의 상호포섭의 체계(ein System wechselseitiger Subsumption von Anschauung und Begriff)로 배열하려 한다. {인륜의 체계}를 -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제 1장을 - 관통하는 두 개념이 직관과 개념임을 헤겔은 이 책의 맨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적 인륜의 이념을 인식하기 위하여, 직관이 개념에 완전히 적합하게 정립되어야 즉 부합해야 한다. 왜냐 하면 이념이란 그 자체 양자의 동일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SdS, S. 15) 그러나 개념과 직관은 서로 부합하는 동일성 안에 놓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하나가 보편성의 형식을, 다른 하나는 특수성의 형식을 띠게 되는 차이도 갖는다.
또 직관과 개념이 관계맺어지는 포섭관계는 논리적 관계라기보다는 상위의 것이 하위에 있는 것을 지배하는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포섭하는 쪽은 보편성의 형식을 지니고, 포섭되는 쪽은 특수성의 형식을 지닌다. 양자의 동일성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특수성의 형식 속에 정립되었던 것이 이제 보편성의 형식 안에 정립되어야 하고, 보편성의 형식 속에 정립되었던 것이 이제 특수성의 형식 안에 정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헤겔은 "참으로 보편적인 것은 직관이며, 참으로 특수한 것은 절대적 개념이다. 따라서 각각은 한번은 특수성의 형식 아래에, 다른 한번은 보편성의 형식 아래에 정립되어야 하며, 한번은 직관이 개념 아래에, 다른 한번은 개념이 직관 아래에 포섭되어야 한다"고 말한다.(SdS, S. 15) 그리고 이 두 포섭관계에 무차별성의 세번째 관계가 덧붙여져서, 이 책의 제 1장인 '관계에 따른 절대적 인륜'은 인륜의 제형태들이 이들 중의 하나로 설명되는 체제로 편성되어 있다. 이런 관계들이 현실적이 되는 형식들을 헤겔은 勢位(Potenz)라 부른다. 이것은 자연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실재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 등 두 대립된 요소들의 관계의 한 형식이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인륜의 체계}는 절대적 인륜이 이 세 포섭관계의 형식들의 전개에 맞추어 각각 하위로 분화(Untergliederung)되면서 현실화되는 세위들의 체계를 이룬다. 그리고 '직관'과 '개념'이라는 용어들도 각 단계들에서 상이한 의미를 지닌다.
직관이 개념 아래에 포섭되는 경우, 직관은 무의식적이고 완전히 무차별적인 통일성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개념은 이 포섭관계에서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의 차이를 정립하는데, 이는 이로써 지칭되는 현상이 반성적 행위를 통해 정립된 의식적인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개념은 형식적 보편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참다운 관계는 헤겔에 따르면 직관 아래에 개념을 포섭하는 관계이다. 여기서 개념은 절대적 개념 혹은 절대적 운동이며, 직관은 경험적 직관이 아니고 지적 직관, 즉 총체성에 대한 표상이다. 헤겔이 이 책의 서론에서 말하는 '절대적 민족'이 바로 이러한 인륜의 총체성에 대한 직관에 해당한다. 이런 직관이야말로 참으로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관계는 하나의 관계들에 지나지 않는다. 두 관계가 모두 인륜의 발전에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인륜은, 특수자와 보편자의 직접적 통일로부터, 그 차이의 단계를 지나, 특수자까지 그 실현요소로 내포하는 참된 통일로 발전해간다. 인륜적인 것은 "즉자대자적인 그 본질에 있어서, 차이의 자기복귀이자 재구성이며, 동일성은 차이로부터 나타나고 그 본질상 부정적이다."(SdS, S. 18)
'직관'이니 '개념'이니 '포섭'이니 '세위'니 하는 설명을 필요로 하는 개념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사용되고 있어서 다소 이해하기가 당혹스러운 대목이긴 해도, 우리는 여기서 인륜을 논하는 헤겔의 입론이, 후기 {법철학}에서의 실체성과 주체성의 혹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상호 매개 관계를 고려하면, 왜 구체적인 인륜형식들을 이렇듯 추상적인 개념들로부터 설명해 내려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최초의 체계 기획에서부터 이미 인륜은 직접적 통일이 아니고 반성된 통일이며, 차이의 존재에 의해 매개된 통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이미 인륜을 철학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개념틀을 마련한 것이고, 근대 인륜의 고대적 인륜과의 차이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려 한 것이다.
바로 앞에서 우리는 {인륜의 체계}가 직관과 개념의 상호 포섭 체계로 설명되고 있다고 했지만, 그러나 이것은 {인륜의 체계}의 첫번째 부분에만 해당된다. 이 '관계에 따른 절대적 인륜'은 직관이 개념 아래 포섭되는 관계에 의해 규정되며, '자연'으로 현상한다. 여기서 개념은 형식적 보편자에 불과하고, 직관도 인륜의 참된 직관 즉 절대적 총체성으로서의 민족에 대한 표상이 아닌 경험적 직관에 불과하다. 그런 직관의 대상은 단순한 다양성, 단순한 개별성, 혹은 개별적 인간이다. 그러므로 자연은 그것이 직관의 개념 아래의 포섭에 다름 아닐 경우, 단순한 다양성을 의미하거나 혹은 개념을 통해 단순히 형식적으로만 통일된 단순한 개별성으로 이해될 뿐이다.

4-1-1. 자연적 인륜

{인륜의 체계} 1장은 자연 및 다른 개인들과의 개별적이고 사적인 관계가 다루어진다. 여기서 주체는 고립되고 자신에게만 한정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럼에도 무의식적인 가운데 보편적인 연관을 맺게 된다. 여기서 헤겔은 인륜을 '충동'(Trieb)으로 규정한다.(SdS, S. 17) 충동은 절대적 통일성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개별자에 관계하며, 이 개별자에서 만족을 누리지만 동시에 이를 넘어서기도 한다. 인륜적인 것은 단순히 내면적인 것이어서 자연적 소질 즉 감정이나 충동이거나, 그 자체 인륜적인 것일 수 있는 단순한 가능성에 머물러 있거나 한다. 후자의 형식적 인륜의 형식들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경제적 의존관계나 법적 관계들이다. 이렇게 볼 때 이런 형식들에서 인륜은 주관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절대적 동일성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 불완전한 인륜의 형식을 헤겔은 세위(Potenz)라 일컫거니와 1장 아래서 두 가지의 세위가 전개된다. 첫째가 단순히 '내적인 것' 혹은 자연이다.(SdS, S. 18-31) 그것은 개념이 직관 아래 포섭된 형태다. 여기서 헤겔은 개개의 주체들이 자연과의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단순한 자연의존성을 극복해가는 - 아직은 무의식적으로 - 과정을 관찰한다.

"첫째의 세위는 직관으로서의 자연적 인륜이다. 그것은 직관의 완전한 무차별성이자 개념이 직관 아래 포섭됨이다. 따라서 그것은 본래의 자연이다. 그러나 인륜적인 것은 즉자대자적인 그 본질에 있어서 차이의 자기복귀이며 재구성이다. 동일성이란 차이로부터 나타나며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다......완전히 개별자에 빠져 있는 것으로서의 이런 직관이 감정(Gef hl)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실천적 세위라 부르고자 한다."(SdS, S. 18)

이 세위의 첫째 단계에서 헤겔은 감정, 욕망, 향유, 노동 등을 다룬다. 이것들은 주체의 자연과의 직접적인 대결 방식이다. 여기서의 인륜이 차이의 자기복귀라면, 욕망은 분리의 감정이고 향유는 그 극복의 감정이다. 그러나 주체는 그의 단순한 자연적 욕망에 제한되어 있고 주객의 분리도 대상의 폐기를 통해서만 지양되기 때문에, 인륜은 결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인륜이 갖추어야 할 차이 내지 차별성의 요소는 무차별적 동일성 안에서는 사라져버리므로 유지되지 못한다. 그러한 차이는 주체의 자기대상화의 산물로서 지양될 때에야 유지될 수 있다.
그 산물은 두번째의 세위인 '직관의 개념 아래의 포섭', 혹은 '차이의 형식을 띤 감정'에서야 나타난다. 노동은 여기서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욕망을 충족시키지는 않고, 대상도 직접 소모되기보다는 노동의 결과인 생산물로서 보존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노동이 대상을 규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상 또한 노동의 형식을 규정한다는 점이다. 전자의 측면에서의 노동은 순전히 기계적이고, 순수한 원인성(reine Kausalit t)(SdS, S. 22)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의 산물도 노동의 대상화로서의 점유다. 그러나 두번째의 관점에서 볼 때 자연적 대상은 노동을 통해 유용한 대상으로 변화된다. 노동도 추상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에 향해 있는 실재적이고 살아있는 활동이 된다.(같은 곳)
이 부분에서 헤겔은 인간의 서로에 대한 활동도 분석한다. 즉 인간들의 상호주관적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여기서 들고 있는 상호주관적 관계의 형식은 노동분업이 아니고, 사랑, 부모의 자식에 대한 관계, 인간들의 보편적인 상호작용과 성숙이다. 자연적 인륜의 이러한 세위들은 불완전한 통일 혹은 상대적 동일성들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이성은 나타나거니와, 이는 아이(Kind), 도구(Werkzeug), 말(Rede) 등 헤겔이 '중간 매체' 혹은 '매개자'라 일컬은 것들을 통해 드러난다.
이 중간 매체들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정신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매개한다. 이를 아이의 예를 들어 간략하게 설명해보자.(cf. SdS, S. 26-29) 아이는 완전한 지성적 존재는 아니지만 개인으로서 실재하는 절대적 감정이다. 즉 아이는 자연과 지성적 존재 사이의 중간 존재인 셈이다. 아이들은 배고픔을 느끼지만 인식하지는 못하며 노동도 할 수 없는 생을 영위한다. 그래서 헤겔이 보기에 아이는 이성의 형식적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욕망의 덩어리인 셈이다. 그러나 아이는 성장해 가면서 욕망과 노동의 순환에 대한 의식을 얻게 되고 인간의 자기실현을 도모한다. 그는 식량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하며 도구를 사용한다. 도구는 자연과 인간을 매개함으로써 인간에게 이성적 자기표현의 수단을 제공한다. 그러나 정신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언어행위를 통해 자신을 정신적으로 표현한다. 말은 아이들의 표정, 몸짓, 눈짓 등과 같은 무의식적인 언어에서부터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음성언어에 이르기까지 인간들 간의 상호소통의 매체가 된다. 이처럼 이 세 가지의 매개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직관과 개념, 혹은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이라는 두 극단을 매개하면서 이 단계의 인륜 형식을 자연적 세위로 규정하는 것이다.

자연적 인륜의 두번째에 해당하는 것이 '형식적인 것 혹은 관계 속에서의 무한성, 이념성'으로서, 여기서는 '경제적 상호의존성 및 법을 통한 사회화'가 다루어지고 있다.(cf. SdS, S. 31 이하) 자연으로 현상하는 인륜이긴 해도 여기서는 단순히 자연적일 뿐인 관계가 아니라 이념적인(ideell) 관계들이 나타난다. 주체들도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들에 의해 규정된다. 즉 여기서의 주제는 노동분업, 교환과 계약, 화폐 등의 경제적인 것들이다. 이런 관계들 속에서 노동은 직접적인 욕망과 거리를 두게 되며, 실천적 지성(praktische Intelligenz)이 성숙함으로써 추상법 내지 형식적 법에 따른 인륜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헤겔은 경제적 범주들 속에서 나타나는 '인정' 혹은 형식적 법의 보장이 절대적인 인륜 목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상호인정이나, 그것에 기반하는 소유, 법, 인격 등의 법개념들은 개인들이 행위의 내용으로 삼는 참으로 이념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이런 보편성은 형식적인 것으로서 개인들의 개별성을 지양하지 못하고 고정지어 버린다. 참된 인륜은 단순한 개별성의 지양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4-1-2. 부정적인 것으로서의 자유

지금까지 우리는 {인륜의 체계}의 제 1장인 '자연으로서의 인륜' 혹은 자연적 인륜을 살펴보았거니와, 거기서는 개별성(Einzelheit)이 그 원리가 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간취할 수 있다. 1장에서 등장하는 각 세위들은 특수한 것을 표현하고 있고, 그런 한 절대적인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지양되지 않으면 안된다. 즉 거기서 나타나는 요소들은 참된 실재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cf. SdS, S. 45)
{인륜의 체계} 제 2장은 개별성을 지양하는, "모든 규정성을 절대적 보편성으로 수용"(SdS, S. 45)하는, 두 형식을 구별하면서 시작한다. 대립을 지양하는, 절대적이고 긍정적인 형식과 단순히 부정적일 뿐인 형식이 그것이다.(SdS, S. 46) 전자를 헤겔은 참으로 부정적인(rein negative) 형식, 변증법적 형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에서야 자연적 규정성과 이념성은 통일된다.
두번째의 단순한 부정성의 지양 형식을 헤겔은 '부정적 지양'이라 한다. 이것은 "개별성의 이념적 규정성을 그대로 고수하며...... 대립도 지양하지 못하고, 실재적 형식을 관념적 형식으로 변화시켜 버린다."(SdS, S. 46)
이 구분은 비판적 저작기에서의 단순하고 추상적인 무한성과 참된 무한성의 구분을 연상케 한다. 참된 부정성만이 모든 규정들을 절대적 보편성 내지 절대적 인륜으로 지양시킬 수 있으며, 개별성이나 개별적일 뿐인 주체성과 같은 참되지 못한 요소들을 인륜적 전체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는 가운데 그것들에 실재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것이다.
1장에서 모든 실재적인 것은 개별성을 원리로 하는 형식 아래에 포섭되었고 즉자적으로만 규정되었을 뿐 대자적으로는 규정되지 못했다. 이제 {인륜의 체계}의 제 2장은 추상적 보편성를 원리로 하는 가운데 위에서의 단순한 부정성의 형식에 의해 규정된다. 여기서의 제규정들은 주관적이고 대자적이 된다. 1장의 '자연으로서의 인륜'에서 인정이나 소유처럼 객관적인 것으로 정립된 이념적 보편적 규정성이 2장에서는 부정된다. 객관적인 것으로 된 보편적인 것의 이러한 부정을 헤겔은 범죄(Verbrechen)라 부른다. 그것은 인륜의 단순히 자연적일 뿐인 모든 형식들을 부정할 수 있는 주체성의 부정적 자유이다. 그래서 그는 이를 "순수한 자유"라고도 부른다. 2장의 제목이 "부정적인 것, 혹은 자유, 혹은 범죄"로 표현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인륜의 체계} 2장에서 나타나는바 보편성을 훼손하는 모든 형식들은 스스로의 부정성에 대한 반작용을 겪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헤겔은 범죄와 보복적 정의(die r chende Gerechtigkeit)의 필연적 연관을 주장한다. 즉 '범죄는 부정적 생동성, 스스로를 직관으로 구성해가는 개념으로서, 보편적이고 객관적이고 이념적인 것을 포섭하며, 반대로 보복적 정의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서, 스스로를 직관으로 구성해가는 바로 그 부정을 포섭하는 것이다.'(SdS, S. 48-9)
이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2장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개별성의 부정 그리고 부정의 부정이라는 형식이다. 이는 법적 제도 이전의 현상들이다. 가령 소유의 침해는 피해자가 도둑을 사적으로 예속시킴으로써 부정된다. 살인은 피해자 가족의 다른 이에 의한 피의 보복을 통해 부정된다. 헤겔은 이를 투쟁과 전쟁으로 발전시킨다. 물론 이 때의 전쟁은 국가적 조직을 가진 민족들 사이의 전쟁이라기보다는, 가족들 혹은 좀더 큰 종족집단들 사이의 전쟁일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전쟁에서는 침해와 그 부정이 양쪽에서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불법인 경우는 없으며 양쪽 모두가 정의를 갖기 때문에 투쟁과 전쟁은 이성적인 것이기도 하다.

1장에서 헤겔은 욕망의 체계, 법, 가족 등의 세 자연적 인륜 형식을 발전시켰는데, 이 각각에 상응하여 2장에서는 세 부정 형식 즉 약탈, 소유권 침해, 가족 분쟁을 말한다. 2장에서 다루어진 절대적 자유 혹은 부정성을 헤겔은 이미 1장에서 소유 개념을 도입할 무렵에 보편자에 대한 개별성의 저항으로, 소유의 불인정으로 해석한 바 있다.(cf. SdS, S. 34) 개별성 내지 특수성의 부정으로 이루어진 2장의 서술과정은 다음의 여러 방식으로 주체성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
1) 그 과정은 절대적 주체성의 파괴성을 보여준다. 주체는 '실천적 세위'에서 객관화된 보편자를 부정할 수 있는 절대적 자유를 갖는다.
2) 마찬가지로 최초의 부정에 대한 부정은 단순히 주관적일 뿐인 부정이다. 보복적 정의에서 범죄자는 그가 이전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규정을 침해했던 것과 똑 같이 침해당하며, 그리하여 보편자가 형식적으로 다시 복원된다.
3) 마지막으로 이전에 단순히 객관적이고 규정된 것이었던 것이 주관적이고 이념적인 것, 대자존재가 되며, 사상으로 고양된다.
이리하여 2장은 1장의 결함을 극복한다. 인륜은 더 이상 단순히 내면적인 것, 무의식적인 감정, 단순히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보복적 정의로서 의식적으로 의욕된다. 그러나 이러한 세위는 헤겔이 3장의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객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인륜의 이 두 측면을 통합하는 것이 3장의 주제가 된다.

4-1-3. 인륜

지금까지 {인륜의 체계} 1장과 2장의 세위에서는 특수성 전체가 그 두 측면에 따라 즉 특수성 자체에 따라서 그리고 추상적 통일로서의 보편성에 따라서 다루어졌다. '인륜'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3장은, 특수성을 원리로 삼았던 1장의 '자연으로서의 인륜'이나 2장의 추상적 부정성과는 구별되며, 특수성의 실질적인 지양을 다룬다. 3장의 전반부를 통해 헤겔이 강조하고 있는 바는 특수한 의지와 보편적 의지의 의식적인 통일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1)인륜적 관계의 이념성, 2)특수한 의식과 절대적 의식의 동일성, 3)모든 사람을 하나의 보편적 권력 아래에 예속시킴으로써 정치적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 등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제 이 셋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1) 헤겔은 인륜을 비경험적이고 이념적인 관계로 규정한다. 그것만이 자연관계나 자연적 규정이 갖는 특수성과 상대적 동일성을 지양하여 지성의 절대적 동일성이 될 수 있다. 인륜은 결코 자연이라는 기준에 따른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지성이고 정신이다. "자연의 절대적 동일성은 절대적 개념의 통일로 흡수되어야 하며 이런 통일의 형식 안에 현존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무한한 개념만이 개인의 본질과 단적으로 하나가 되며 개인은 개념적 형식 속에서 참다운 지성으로 현존하게 된다."(SdS, S. 60) 개인은 인륜 속에서 자연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정신을 통해 규정된다. 나아가 개인은 인륜 속에서야 "영원한 방식으로"(SdS, S. 61) 즉 경험적이고 우연한 방식이 아닌 즉자대자존재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존재방식은 계약당사자들이나 가족성원들 간의 자연적이고 경험적인 의지 통일 형식과는 분명히 다르다.
2) 헤겔은 인륜을 자기관계로 규정한다. 주체는 절대적 의식과 경험적 의식을 구분하지만 이 구별은 곧 지양되어 버린다. 왜냐 하면 인륜에서 개별적 의식은 특수한 의식과 절대적 의식을 하나의 의식 속에 통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살아있는 개인은 절대적 개념과 동일하며, 그의 경험적 의식은 절대적 의식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인륜에서 특수성으로서의 개인은 단적으로 보편자와 동일하다. 개인과 인륜, 특수와 보편의 이런 관계는 이미 의식된 관계다.
경험적 의식이 그의 이성적 의식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이러한 객관적 현실적인 인륜이 '정신'이다. 그렇기에 인륜에서 절대적 자연은 정신의 형태로 현존한다. 이런 헤겔의 사고는 그가 절대자를 실체로서만 생각했다는 견해나, 인륜이 주체의 절대적 실체로의 침몰에 의해서만 구성된다는 견해를 무효화시킨다.
그런데 앞에서 우리는 인륜이 자연적 관계들이 지니는 특수성이나 상대적 동일성을 완전히 벗어나 절대적 동일성이 된다는 헤겔의 설명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주장만을 놓고 보면 여기서의 논의 흐름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지양되어야 할 특수성이란 게 1장에서의 절대적 개별성이고 상대적 동일성이란 게 개별성과 형식적 보편성의 대립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면, 외관상의 상치는 곧 사라진다. 여기서 다시 경험적 의식이 절대적 의식 안에서 자기 고유의 의식을 직관함으로써 절대적 의식과 하나가 된다는 헤겔의 주장을 고려해 보자. 이렇게 되면 헤겔이 인륜을 고대의 폴리스 인륜에 의지하여 발전시켰다는 주장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그에게 폴리스 인륜은 인륜 개념 정초의 시초에서의 한 요소였을 뿐이다.
또 의지라는 극히 근대적인 개념이 {자연법논문}과 {인륜의 체계}에서 아주 드물게만 사용되었지만, 헤겔은 인륜을 근대의 전통 즉 경험적이고 특수한 의지와 이념적인 일반의지를 구별한 칸트와 룻소의 전통 안에서 발전시켰다. 즉 인륜은 모든 사람의 이성적인 의욕의 결과인 그런 관계로서 전개된 것이다.
3) 마지막으로 헤겔과 근대 자연법과의 관계는, 현실화된 인륜으로서의 민족은 하나의 실재적인 의지에 모든 사람이 예속됨으로써만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나타난다. 민족에서 다수의 개인들은 연관을 맺는다. 모든 사람이 보편자 아래 포섭되는 인륜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모든 개인이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서의 일반의지에 귀속됨으로써만 그들은 민족이 된다. 만약 이러한 귀속이 없다면 그들은 그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다수에 불과할 것이다.
헤겔의 이런 사상은 홉즈에서 유래한다. 홉즈는 '정부와 사회'를 다룬 전집 2권의 '지배론' 6장 '도시에서 최고권력을 갖는 의회 혹은 한 사람의 권리에 관하여'에서, 다수의 사람들의 집합이 그저 다수 대중에 불과한지 아니면 하나의 인격체로 통일되어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의지와 특수한 판단을 갖는다. 그리고 각자가 특수한 계약에 의하여 이것은 내것, 저것은 그 사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의 권리와 정당함을 가질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한 개인이 아닌 전체가 이것은 바로 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우리는 다수 대중에게서는 그 자신의 것이라고 할 만한 어떤 행위도 발견할 수 없다. 즉 다수 대중은 하나의 통일된 인격체가 아니다. 하나의 의지가 모든 이의 의지로 여겨질 때에야 그들은 민족, 국가(이 때만 해도 도시 혹은 사회가 국가와 동의어로 쓰여졌다.)라고 불릴 수 있었다.
이처럼 헤겔은 홉즈와 마찬가지로 통일적 의지, 즉 자신의 의지를 모든 개인에게 대해 절대적으로 주장할 수 있고 모든 사회적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의지가 국가를 가능케 한다는 것, 그리고 민족은 하나의 주권적 권력 자체에 의해 조직될 때에야 비로소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륜의 체계}에서의 헤겔 인륜 개념의 세 요소를 살펴보았거니와 이것들은 헤겔이 근대 자연법 전통에 연루해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법 전통은 인륜이 결코 자연적 관계가 아니라 의식과 의지를 그 원리로 삼는 이성적 관계임을 표방해 왔다. 그러한 인륜은 특수한 의지와 보편적 의지의 구별에 의거하면서, 보편의지 혹은 일반의지를 모든 개인의 그 자체 이성적인 의지로, 민족이나 국가를 이루기 위해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증하는 의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헤겔이 근대 자연법의 전통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해도, 인륜의 인간적 요소로서 극히 중요한 계층(Stand)을 다루고 있는 방식과 내용에서는 여전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 위에 서 있음도 분명하다. 이를 {인륜의 체계} 3장의 중요 부분과 관련지어 간단히 살펴보자.

{인륜의 체계} 3장의 1절은 '국헌(Staatsverfassung)'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고 1. 체계로서의 인륜, 2. 통치 등의 두 하위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 그는 계층을 다룬다. 경제적 법적 공동체나 정치 공동체는 모두 계층을 통해서 실현된다고 그는 믿는다. 이러한 인륜의 실현에 중심역할을 하는 것이 계층이다. 나중에 {법철학}에서는 이 계층이 시민사회에 관한 부분에서 주로 논의되지만, 예나 시대에서는 계층이 직접적으로 국가와 관련되어 논의된다. 국가나 민족은 그것이 이성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한, 계층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평생의 확신이었다.
인륜은 그 개념들이 단순한 관념적 요소들에 그치지 않고 객관적 형태를 지니는 한에서만 현실적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적 인륜적 제규정들은 단순한 추상물이 아니라 실재의 제도들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헤겔의 유기체적 국가 개념은 인륜이 특수한 기능을 갖는 여러 상이한 부분들로 조직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계층이론에는, 덕과 도덕의 내용이 주관적 이성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끌어내질 수는 없고 사회적 정치적 조직에서 현실화되어 있는 인륜으로부터서만 끌어내질 수 있다는 헤겔의 생각이 깔려 있다. 인륜은 객관적일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것으로서 주관적 의식 속에 들어 설 때에 실현되며 '생동하는 정신'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 인륜이 주관을 규정하지 않고서는 인륜은 객관적으로 무규정적인 것으로 남게 되고 인륜적인 것 안에 아무런 필연성도 없게 될 것이다.
헤겔은 여기서 인륜을 절대적 인륜과 상대적 인륜으로 구분하면서 이를 계층과 관련짓는다. 그는 절대적 인륜을 '절대적 진리', '절대적 비이기심'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인륜이 비이기적 계층, 보편계층을 통해 실현되는 측면을 말한 것이다. 이 첫번째 계층은 자신의 욕망이나 벌이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들의 욕망은 다른 계층의 세금으로 충족된다. 그들의 과제는 조직의 보편적 관심사인 통치와 전쟁의 수행에 있다. 그들은 조직 전체의 유지, 다른 계층의 안전 및 소유의 보호에 관심을 둔다. 궁극적으로 그 계층은 민족을 하나의 통일체로 실현시키는 것을 과제로 삼는 것이다.
또 상대적 인륜은 소위 벌이를 위한 노동을 하는 계층에 의해 실현된다. 보편적 계층이 정치적 삶을 목표로 하는 데 비해 이 계층은 경제적 삶, 다시 말해 욕망의 체계에 관련된 삶을 목표로 한다. 이 계층은 정직 내지 성실성(Rechtschaffenheit)을 덕목으로 삼으며 노동과 소유를 매개로 통일적 관계를 맺지만, 이들이 형성하는 통일성이란 추상적이고 무내용적인 힘에 지나지 않고 그 내용 또한 우연성과 자의에 의해 지배될 뿐이다. 헤겔은 근대의 경제적 삶의 현장에서는 상대적 인륜만 실현되지 절대적 인륜은 실현되기 힘들다고 본다. 결국 계층을 통한 인륜의 실현을 도모하는 헤겔은 첫째 계층에 대한 '신뢰'(Zutrauen)를 그의 입론의 기초로 삼고 있는 셈이다.

이제 2절 '통치'에 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헤겔은 계층이 주제가 되어 있는 앞의 1절을 '정지해 있는 것으로서의 인륜의 체계'라 불렀다. 그리고 2절의 서두에서 그는 유기적인 것과 비유기적인 것의 구별을 이 두 절의 구분과 대응시킨다. 국가 기관들의 활동을 다루는 2절에서, 그가 통치 혹은 헌정체제를 보편자가 살아 움직이는 정치적 제도들의 체계로 보는 것이 이를 설명해 준다. 그가 통치에 부여하는 과제는 시장의 맹목적 운동이 야기시키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조정하는 일이었다. 당시의 자유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국가는 경제를 그 고유의 법칙성에 맡겨야 했지만, 헤겔은 이에 명시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먼저 헤겔은 국가 권력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가 권력으로 표현되는 절대적 보편자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차이를 지양하고 동시에 생산한다. 절대적 운동 혹은 인륜적 생의 과정이라 할 이런 활동은 모든 세위들에 파고 들어가 이들을 비로소 정립하고 형성하는 운동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회화 형식도 스스로 안에서 근거를 마련하는 체계일 수 없으며 국가 권력을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편자의 운동으로 표현된 이러한 사회의 재조직 활동은 보편자가 개인들의 손 안에 놓여 있을 때에야, 경험적 개인들의 의지를 통해서 드러날 때에야 실현될 수 있다는 것도 여기서 중요하다.
이처럼 보편자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 정치적 제도들의 체계가 통치인 바, 헤겔은 이를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 하위 부분들로 나누었다. 그는 통치를 1.절대적 통치, 2.보편적 통치, 3.자유로운 통치의 셋으로 나눈다.
첫째의 절대적 통치는 최고의 중심권력의 기능을 맡는다. 즉 전체를 유지 보호하며 국헌을 유지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여기에는 계층들 간의 관계가 조화롭게 유지되도록 한다든가, 입법을 하고 규정을 마련한다든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에 최종 심급의 역할을 한다든가 하는 일이 속한다. 절대적 통치는 이들 기능들 중의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
여기서 헤겔은 절대적 통치 외에 두번째로 보편적 통치를 끌어들인다. 절대적 통치의 중심 권력이 모든 하위의 개별적 부문의 일에까지 관여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정치조직의 분권적 분업적 체제 하에서만 자유는 실현되며 전체 유기체의 하위의 각 부분들이 그 나름의 규정에 때라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절대적 통치와는 달리 보편적 통치의 활동은 예를 들어 계층적 조직이나 공동체적 조직이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을 담당한다. {법철학}에서의 직업단체가 떠맡는 일이 그런 유형에 속할 것이다.
헤겔은 이 보편적 통치를 욕망, 정의, 훈육 등의 세 체계로 나누고 있는데, 첫째의 욕망의 체계는 {법철학}에서처럼 욕망, 소유, 부의 불평등, 계층 등의 문제를 다루고, 둘째의 정의의 체계는 司法, 형벌 등의 문제를, 세째의 훈육의 체계는 아이의 양육 및 교육 등의 문제를 간단히 다루고 있다. 즉 이런 문제들에 대해 보편적 통치는 관여하는 것이다. 이후의 저작과 비교해 볼 때, 이 보편적 통치라는 부분의 주제들은 나중의 {예나정신철학 2}에서의 '강제적 법률', {법철학}에서의 '시민사회'에서 다루어진 것과 성격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미완성이라 생각된 {인륜의 체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자유로운 통치'이다. 이 곳은 제목에 이어 한 쪽 정도 분량의 본문만 이어지고 난 후 끝맺어지고 있다. 여기서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의 논의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자유로운 통치의 가능한 유형과 그 타락 형식들 - 민주정치, 귀족정치, 군주정치의 셋과, 이것들의 부자유한 형태로서 중우정치, 과두정치, 전제정치를 말한다 - 에 대한 간략한 언급으로 그 저작을 마친다.
이로써 우리는 최초의 정치적 체계인 저작을 간단히 살펴 보았거니와, 헤겔이 독특한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인륜'이란 개념이 그 어느 오성적 개념처럼 간단히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님이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그것은 넓게는 자연적 존재이자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처음에 개체로서 자신의 물질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가운데 결국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의식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전 과정을 일컫는 개념인가 하면, 좁게는 인간의 의식적 반성적 삶이 제도로서 응축된 산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헤겔은 이런 일반적이고 평면적인 인륜 개념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인륜은 정태적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고 발전해가는 역사의 복잡한 결과이다. 인륜이 사회철학의 의미있는 주제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고대적 인륜 혹은 근대적 인륜이기 때문이다. {인륜의 체계}는 바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로서의 철학이 시대의 인식을 완성하는 데에 요구되는 헤겔 최초의 체계적인 개념적 틀이었다.

4-2. {예나정신철학}의 인륜이론

{인륜의 체계}에서의 결과는 이후의 발전에서 볼 때 방법론적이고 내용적인 두 가지 점에서 불만족스럽다. 헤겔이 대립들을 동적인 것으로 파악하여 사회적 정치적 실천의 통일성을 입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결과는 내용 자체에는 외적인, 기존 규정들 하의 포섭이라는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현상들이 그 발전의 필연성을 담고 있는 그 고유의 변증법에서 입증된 것이 아니었고, 배열원리와 최초의 근본규정에 따라 논리적 체계적으로 미리 주어진 순서에 따라 조합하는 식으로 정돈되었을 뿐이다. 예나 시대에 벌써 헤겔은 '체계' 관념에 지나치게 매달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순수한 선험적인 인륜체계를 세우기 위해 기존의 사회구조들을 무시한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직접적으로 그것들을 배열한 것도 아니었으며, 문제가 된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정초하려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근대에 보여진 인륜의 파괴적이고 대항하는 힘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구심력이 입증되어야 했다. 사람들은 인륜적 삶을 분열시킨 대립들이 지양될 수 있는 제도들을 정초해야 했고, 갈등해결의 여지를 마련하면서도 행위하는 개인들의 자기 파괴성은 막아 주었던 그런 계몽적 행위모델을 정초해야 했다. 불완전한 반성이 주는 외적 강제 없이, 통일의 과정 즉 분열과 통일의 변증법이 내재하는 원리가 드러나야 했고 인륜적 실재성을 지닌 요소가 발견되어야 했다. 인간의 삶에서의 이 요소를 헤겔은, 개별성과 보편성 간의 제규정들의 틀 안에서 스스로를 자기로서의 타자에게, 스스로를 타자로서의 자기에게 관련지우는 '자기의식'에서 발견하였다.
헤겔의 예나 사회이론은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 사회적 삶의 통일성에 대해 묻는다. 그것은 부정적이고 과정적인 통일성으로서, 주관적인 요소나 객관적인 요소 어느 한 편의 일방적인 지배로 실현될 수는 없다. 제도들이 주관적 자유를 질식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면, 정치적 공동체는 생명력 없는 기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행위주체가 규범 법률 제도들을 위반하려 한다면, 그리고 주관적 자의가 주어진 제관계들로부터 고립되어 버린다면, 공동체는 프랑스 혁명의 과정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무정부상태와 혼돈에 빠질 것이다. 이런 딜렘마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 헤겔의 예나 시대 철학의 성격을 결정하였다.
{인륜의 체계}가 {자연법논문}에서 형성된 과제인 국가철학과 윤리학의 결합을 논리적 배열을 통해, 직관과 개념의 상호포섭을 통해 해결하려 한 반면, {예나정신철학 2}는 {예나정신철학 1}의 준비작업을 이어서, 사회적 자기의식의 형성과정을 기술한다. 즉 인간들의 이론적 실천적 의식형성 과정을 기술하며, 개인이 스스로를 보편성의 요소로 인식하고 그리하여 스스로를 통해 정신의 생생한 통일성에 대한 자기감정에 이르는 과정을 기술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노동과 상호작용(사랑, 투쟁, 인정, 교환, 범죄 등)에서, 시민사회의 제도들에서, 법 법률 특히 국가 예술 종교 학에서 개별의지들은 보편의지로 종합되며 하나된 민족으로서의 자기에 대한 의식에 이른다. 그러나 이 단계들에서 각 영역은 그 고유의 필연성과 법칙성을 따르며, 그 요소들의 특수한 배치상황에 의해 움직이며, 각 특수한 활동들과 힘들에 의해 지배되며, 최종심급에 있어서 기본적인 객관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된다. 예나 사회이론에서는 사회적 현실이 사회적 개인들의 측으로부터 해명되고 필연적 결과이자 필요한 전제로서 즉 개인들의 자연전유와 사회적 교제의 매개로서 근거지워지는데, 이리하여 개별성과 보편성은 서로를 매개하여 객관적으로 이성적인 통일로 나아간다.
{인륜의 체계} 이후 1803/4년과 1805/6년의 {예나정신철학}에서 헤겔이 인륜의 모든 형식들을 주체성 이론으로부터 전개시키려 한 시도는 방법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즉 {예나정신철학} 두 편은 {인륜의 체계}와 유사하게 자연 대상에 대한 주체의 직접적 관련에서 시작하지만, 이전의 저작과는 달리 대상이나 다른 주체들에 대한 주체의 더 복잡한 관련형식들, 그리고 그런 관련의 체계들을 스스로 산출된 관계들로 혹은 자기관련으로 발전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나정신철학}에서 다룬 자료들은 {인륜의 체계}에서의 그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제 {예나정신철학}에서 어떻게 주체성과의 관련 속에서 인륜이론이 정비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4-2-1. {예나정신철학 1}의 인륜이론

1803/4년의 {예나정신철학 1}은 시간상으로 앞서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예나정신철학 2}의 보론 정도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후자가 포괄적이고 완성된 정신이론을 전개한 것에 비해 전자는 의식이론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여기서는 정신이론으로의 이행의 초기였기 때문에 오는 불완전함 정도로 이해하기로 한다.
전체적인 구조에서 보듯이 {예나정신철학 1}은 정신의 형식적 실존인 '의식' 혹은 '경험적 의식'으로부터 정신의 실재적 실존인 '민족정신'으로의 발전을 탐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방법적으로 정신철학을 더 이상 상이한 통일형식들의 연속 내지는 대립된 개념들 간의 포섭관계로가 아니라 의식의 과정으로 전개시키려 한다.
그는 의식을 관계로 본다. 그리고 그는 그 관계의 구조를 "단순한 것과 무한성의 통일"(PG1, S. 266),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의 통일로 규정한다. 즉 이런 관계는 단순한 개념의 단계에 있다. 의식은 우선 즉자성이고 타자에의 관계이지만, 스스로에게 대상이 됨으로써 대자적이게 된다. 이런 자기관계가 가능한 것은 의식 내의 것이 의식 자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를 통해 헤겔은 민족의 자기조직을 처음부터 하나의 과정으로 전개시킨다.
이 점은 그의 사유발전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띤다. 의식이론을 통한 이론과 실천의 통합이 여기서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은 여러 세위(Potenz)들, 즉 기호, 기억, 언어 등의 첫째 세위와, 도구로서의 둘째 세위, 소유와 가족이라는 세째 세위 등을 통해 객관정신으로 발전해가는데, 이런 전개방식은 의식이론의 사회적 인륜적 관련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인륜의 체계}에서 헤겔은 자연대상이나 다른 주체에 대한 개별적 주체의 관련을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것을 비판한 데서 시작하여, 그런 시각을 곧 바로 직접 부정하고 그것에 대해, 개인이 절대적 의식이나 민족정신에 완전히 의존한다는 주장을 대비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자의 우위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에만 의거하고 있었다. {예나정신철학 1}에서야 비로소 헤겔은 개별적 의식과 절대적 의식 간의 복잡한 상호제약관계를 체계의 기초로 삼게 된다. 즉 체계의 구성에 주체성의 이론이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헤겔에게 실체란 그 부분들을 통해 자신을 산출하고 인식하며, 그의 의미에서 주체이기도 한 것으로서, 그는 {예나정신철학 1}에서 바로 이러한 실체의 형이상학을, 그 관념에 필수적인 의식구조를 분명히 함으로써, 논리적으로 그리고 방법적으로 적합하게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의식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두 단계로 서술한다. 그는 현실적인 정신의 여러 단계들을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통일로 생각한 반면, 단순한 개념의 단계에서의 정신을 경험적 주체와 객체의 대립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대립항들은 언어, 도구, 소유, 가족 등의 중간매체(Mitte)에 의해 서로 연관되고 매개된다. 이 단계에서는 개인이나 개별적 대상은 상호 연관의 우연적인 요소들에 지나지 않지만, 중간매체들은 지와 경험을 사회화시키는 매체로서 참된 현실성을 지니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중간매체들도 민족정신이라는 전체적인 구조물에서 보면 개별적 계기들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정신에 이르는 의식의 이런 발전의 이론적 탐색에서 핵심이 되는 바는, 이론적 의식에서도 실천적 의식에서도 자연에 대한 주체의 개인적 관련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위의 중간매체를 통해 매개된 주체와 자연 간의 관련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러한 중간매체들은 그 자체 사회화된 개인들 전체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개인적 관련이란 것도 자연에 대한 사회화된 개인들 전체의 관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쉽게 말한다면 주관적 의식도 객관적인 사회적 조직형식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하지, 주관적인 능력이나 경향들로부터 이해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나정신철학 1}에서의 헤겔의 의식이론은 이전의 이론철학적 관점을 넘어선 포괄적 사회이론을 모색한 단초가 들어 있다. 그러나 {예나정신철학 1}의 결정적인 한계는 {예나정신철학 2}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쉽게 드러나듯이 자기의식적 반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은 주체가 절대적 의식을 그의 활동을 통해서만 산출하는 것이 아니고, 자각적으로 스스로를 절대적 의식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해야 함을 입증할 논거를 갖지 못했다. 달리 말해서 {예나정신철학 1}에서는 정신의 영역 속에 있는 것이 그 자신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또한 개개 주체에 의해 그의 산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헤겔이 이 최초의 기획의 결함을 깨달은 것은 1805/6년에 그가 '타자관계에서의 의식적 자기관계'라는 테제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4-2-2. {예나정신철학 2}의 인륜이론

{예나정신철학 2}는 미완성의 강의용 원고이긴 하지만 최초로 완전한 정신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1장인 '그 개념에서의 정신'은 주관적 정신을 다룬다. 거기서는 대상세계에 대한 주체의 개별적 관계가 이론적 정신의 면에서는 '지성'으로, 실천적 정신의 면에서는 '의지'로 전개되고 있다. 2장인 현실적 정신은 개별의지의 일반의지에의 종속을 다루고, 3장인 헌정체제는 개별의지와 일반의지의 동일성을 다룬다.
1803/4년 이래 출발점은 '행위를 통한 타자관련에서 그 본질을 갖는 인간 의식'이었다. 의식은 이런 관련을 통해 스스로를 활동적인 것으로, 다른 것을 변화시키는 근거로서 인식하며, 자기의식이 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론적 의식'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실천적 의식' 혹은 '의지'로 실현된다. '지성'과 '의지' 두 형식은 총체성이자, 그 자체 인간 삶의 전체가 된다. 정신의 모든 현상들은 그 속에서 - 감각적 인식, 언어, 기억 등에서 - 서술될 수 있다.

a. 자기의식 이론의 전개

1) 이론적 의식으로서의 지성

하나의 포괄적인 지성이론은 {예나정신철학 2}에서야 발전되었다. {인륜의 체계}에서는 지성은 다른 존재자와 비교되는 실천적 세위로서도 나타났다. 그리고 {예나정신철학 1}에서 헤겔은 이론적 이성을 '정신의 실존의 최초형식', '의식 일반'으로 관찰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탐구의 기초가 된 것은 {예나정신철학 2}의 정신철학이었다. 왜냐 하면 그것은 前현상학적 기획의 최고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지성의 작용을 인간 특유의 常數로 여긴다. 인간은 사유를 통해 동물과 구별된다. 동물은 사유능력의 결여로 말미암아 다만 개체로서만, 그 유의 한 사례로서만 실존하지만, 인간은 사유한다는 사실 때문에 보편적 존재로서 다른 동류의 존재와의 유대 속에 살며, 짧게 말해서 유적 존재로서 살아가게 된다.
정신철학은 존재자에 대한 직접적 지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이론적 정신철학은 존재자가 정신에 대해 더 이상 직접적으로 현전하지 않고 보편자로서 현전하게 되는 과정을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정신은 표상 내용을 두 대립된 방향으로 정비한다. 첫째는 사물이 자아 내지 자기로 되는 과정이고, 둘째는 자아 내지 자기가 사물로 되는 과정이다.(cf. PG2, S. 195-6)
헤겔은 첫번째의 과정을 감각적 직접성이 지양되어가는 단계들로, 점차 자의식적이 되어가는 단계들로 해석한다. 그것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cf. PG2, S. 186-8)
a) 먼저 정신은 직관된 것을 자신의 저장물, 자신의 밤 안에서(in seinem Schatze, in seiner Nacht) 상(Bild)으로서 보존하는데, 이 때 그 상은 대상으로서 표상 앞으로 끌어내지지 않은 채 무의식적인 것으로 있다. 여기서 이미 직관된 것은 그 대상과 분리되어 있다.
b) 정신은 대상을 계속하여 새롭게 지각하는데, 이것이 대상의 재인식이다. 거기서 나는 이 대상에 대한 의식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의식도 갖는다. 즉 나는 나를 인지, 회상(wiedererinnern)하는 것이다. 이로써 대상은 그 자신이 직접 지녔던 의미를 잃게 되고, '자아나 자기와 다른 것'이라는 의미를 얻게 된다. 그것은 기호, 사물이다. 이것들은 그 직접적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현실적 사물은 자아에 의해 얻게 된 의미의 기호가 된다.
c) 이리하여 대상은 對我存在(F rmichsein)가 되며, 그것의 지칭(Bezeichnung)이 이루어진다.

한 편 두번째 과정의 운동은 명명(Namengeben)에서 시작한다. 기호에서 외적 사물은 자아로부터 의미를 얻었다. 그러나 의미는 그 자체 대상적이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명명을 통해 그렇게 된다. 개개의 이름은 아직은 감각적 표상에서 그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아는 대상적이게 되고 사물이 된다. 이름들의 질서 속에서 자아는 그 자체 대상이 되고, 활동하는 자아도 대상처럼 이런 질서 안에서 지양되어 버린다.
'지성' 절은 보편자가 개별자에 대해 어떤 연관을 맺는가 하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끝난다. 이제 자아는 개별자를 내포하는 보편자를 그의 대상으로 삼는다. 자아가 개별자와 보편자를 서로 관련짓고 구별하는 상이한 형식들을 헤겔은 여러 방주들에서 오성, 판단, 추론 등으로 표현한다.(cf. PG2, S. 196-7)
오성은 직관 안에 직접 존재하는 것과 추상화된 것들인 개념, 범주를 서로 대립시킨다. 그리고 판단에서 개별자와 보편자는 차별없이 병렬되어 있어서 나만이 그것들을 서로 결합시킨다. 보편자는 개별자와의 관련 속에서만 존립하며, 개별자는 부정적인 것으로서만 존립한다. 그러나 이런 상호관련 속에서 그들은 대립되어(하나는 개별자, 하나는 보편자로서) 있으며 제 3자에서만 서로 동등하고 대립된 것일 수 있다. 극단을 결합하고 구별하는 이 3자가 추론이자 다른 용어로 이성이다. 이성은 양 극단을 내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들 각각의 본질이라 할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이기도 하다. 보편자란, 이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정립된, 개별자의 본질적인 제규정들이다. 이처럼 지성으로서의 이성은 개별자를 자신에게 등치하거나 대립시키는 보편자 자신의 운동인가 하면, 다른 한 편으로 두 극단을 서로 관련짓는 자아 자신이기도 한 것이다.

2) 실천적 정신으로서의 의지

'지성' 절은 자아가 보편자로서의 사물에 관계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때 사물은 더 이상 직접 감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지성은 의지로 이행해야 하는가? 그것은 자아의 자기대상화에서의 결함 때문이다. 지성으로서의 자아는 자신을 대상으로 삼되, 내용까지 산출하지는 못했다. 지성은 이러한 무내용성을 의식하고 그런 결함을 의식적 행위를 통해 메우려 하게 되는데, 이런 실천적 지성으로서의 의지가 보여주는 노력 혹은 자아 안의 긴장이 충동(Trieb)이다. 헤겔에서의 충동은 다음에서 알 수 있듯이, 보편성인 목적과 개별성인 활동하는 자아의 통일, 행위의 근거와 형식의 통일로 규정되고 있다.

"의욕하는 자(das Wollende)는 자신을 대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즉 자신을 대상으로 정립하려고 한다. 그는 자유롭다. 그러나 이런 자유는 공허하고 형식적이며 악한(schlecht) 것이다. 그것은 자신 안에 닫혀 있으며 혹은 자기 안에서의 추론(Schlu  in sich selbst)이다 ; α) 그것은 보편자, 즉 목적이다. β) 그것은 개별자, 자기, 활동, 현실성이다. γ) 그것은 이 양자의 중심, 충동이다. 충동은 보편자나 목적을 내용으로 갖는가 하면, 활동하는 자기이기도 한, 양면적인 것이다. 전자는 (충동의) 근거이고 후자는 형식이다. α) 충동의 특정한 내용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여기서는 아직 제시될 수 없다. 왜냐 하면 충동은 아직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 아무런 대상도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는 처음에는 의지의 개념만이 정립되어 있다. 자아가 어떤 충동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의 세계의 내용으로부터서야 비로소 나오는 것이다."(PG2, S. 202)

그러므로 의식은 의지로서, 그 내용이 자아에 의해 규정되는 대상에 스스로를 관련시킨다. 이것이 자기의식이다. 이것은 이로써 본질적으로 실천적 의식이 되며 이론적 의식의 전제가 된다. 실천적 의식에서야 비로소 자기의식은 타자에 관한 자기관계의 의미를 의식하게 된다. 헤겔에서 "지성의 자기실현으로서의 의지라는 관념론적 전제는 자기의식 이론으로의 전환의 귀결이다."
의지가 지성의 무내용성을 채워가는 그 타자는 무엇일까? 의지는 스스로를 대상화함으로써 자신을 사물로 만든다(zum Ding machen). 자아는 자신을 물화하며 외계에 자신의 흔적을 각인한다. 그는 자신의 상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며 자연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이성은 이렇게 해서 충동이 되며 그 노동(Arbeit)을 통해 자기인식의 대상을 자신으로부터 창조한다. 나아가 헤겔에 있어서 의지는 자신을 외계에 관계지우고 자신을 사물화하여 여러 형태로 외화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노동은 의식의 상을 외계에 실현시키려는 통일의 힘, 보편성과 개별성을 통일시키는 힘이다. 그리하여 헤겔은 노동을 논리학에서의 '추론'과 같이 일종의 통일적 힘으로 보게 된다.
이와 같이 헤겔의 노동이론은 그의 일반적인 의지이론의 틀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 {예나정신철학 2}에서의 헤겔 노동이론은 자기인식을 위해 대자적으로 활동하는 지성에서 출발한다. 지성은 대상들을 변형하고 가공함으로써 활동적으로 대자적이게(t tig f r sich) 된다. 지성은 이런 변형을 자신의 성과로 깨달으며 자신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자기의 행위로 인식한다. 이처럼 '대자적으로 활동적인 지성'이 의지이다. 의지는 한편으로는 보편자인 목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자인 활동적 자기이기도 하다. 이 양자의 중심을 헤겔은 충동으로 부른다.
충동이 목적을 향한 것일 때 노동이 된다. 그러므로 노동이란 이런 충동의 충족, 목적의 실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 충족은 충동의 충족이지 욕구(Begierde)의 충족이 아니다. 후자는 동물적이다."(PG2, S. 203) 동물적 욕구의 대상은 외면적일 뿐이다. 헤겔은 충동의 충족만을 '자아의 작품'(Werk des Ich)이라 부른다. 그것은 욕구의 대상처럼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가 그의 행위로 인식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헤겔은 노동을 "이 세계에서의 자기의 물화(das diesseitige sich zum Dinge machen)"(PG2, S. 205)로 표현한다.
자아와 그가 실현시키려는 보편자로서의 목적은 사물성, 물질적 재료를 통해 매개된다. 그러므로 그 재료는 추론의 중간매체인 셈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유의지의 자기실현을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했다. 원래 지성은 물질적 자료들을 추상하여 자신을 오직 활동 그 자체에만 관련지움으로써 실천적이 되었다. 지성에게 중요한 바는 다만 자기관계성 그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활동을 통해 자기인식을 하려는 지성에게는 개별자로서의 활동적 자기와 보편자로서의 목적, 양자만이 아니라 이들의 매개체인 충동이 중요하게 된다.
그래서 헤겔은 충동으로부터 발전과정을 추론들의 繼起로 구성하는데,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정에서는 모든 계기들은 여전히 자아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 자아는 무내용적, 무타자적이다. 자아는 아직 그의 활동 외에 아무 외적인 대상도 갖고 있지 않다.
둘째 과정에서는 충동 그자체에 외적 대상이 다른 하나의 극단으로 들어선다.
세째 과정에서는, 개별성(Individualit t)과 특수성이 두 극단을 이루는데, 거기에 '사물성'이 보편자, 중간자로 끼어든다. 이 사물성은 나중에 도구와 동일시되고, 욕구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설명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인정투쟁은 자기의식의 발전과정의 한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인간의 자기인식의 사회성은 필연적으로 타자의 존재 및 나와의 동등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한다. 그런데 예나 정신철학에서는 노동이 직접적으로 상호주관성을 구성하고 있다. 즉 인정에 전제되는 상호주관성이 노동을 통해서 비로소 마련된다는 것이다. 헤겔은 상호작용을 노동의 한 특수한 형식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 개념의 의미확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노동은 이제 욕망충족과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노동대상과 상호작용 상대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자기인식과 관련해서도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노동의 논의를 상호작용에 한정하지 않고 보다 구체적으로 가족, 시민사회 등에까지 확장하고 있다. 물론 헤겔은 예나 시대 저작에 '상호작용'이나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노동이론이나 국가이론을 보면 이미 이런 개념들이 함축하는 바가 논의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어떻든 그는 의지이론을 '자연상태', '인정' 등에 관한 논의에까지 확장하고서 {예나정신철학 2}의 첫장인 '그 개념에 따른 정신'을 맺고 있다. 이러한 논의과정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예나정신철학 2}에서의 인정투쟁은 소유요구에 대한 배타적인 인정투쟁으로 이해되고 있다. 여기서 헤겔은 분명히 자연법 이론 특히 홉즈의 그것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이 관계는 통상 자연상태라 불려 왔다. 이 상태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인 것은, 그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뿐이다. 왜냐 하면 이 상태에서 개인들은 아무런 권리도 의무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상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서 이를 홉즈와 자연법에 반대된 방향으로 변모시킨다. 헤겔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선, 각 판정자가 자기중심적일 수 밖에 없고 법사상이 자연상태엔 낮선 것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런 법도 없다. 법이란 자연적이지 않은 정신적인 것이다. 인간은 자연존재로서는 아무 법도 갖지 않는다. 법이란 다수의 사람들이 인정관계에 들어섬으로써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의 법에 관한 물음이란 자기모순적이다.
그러나 헤겔 자신은 이런 통찰로부터 필연적인 귀결을 끌어내지 않는다. 그는 인정투쟁을 일종의 자연상태로부터 발전시킨다. 즉 근원적인 점유의 모순으로부터 발전시킨다. 사물에 대한 인간의 권리와, 특정한 사물에 관한 개인의 점유권을 근거로 다른 제 3자를 배제할 수 있는 권리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대립된 투쟁이 나오는 것이다. 자연상태에선 각자는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어떤 것을 점유하고 있는 이는 다른 모든 이를 그로부터 배제한다. 그에게 다른 의식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는 타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달리 말해서 어떤 이가 사물에 관한 그의 권리를 지각하고 어떤 특정한 것을 점유할 때 그는 똑같은 권리를 가진 다른 이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의 실존을 무시한다. 그러나 이미 점유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져갈 경우 그 다른 사람은 최초의 불평등을 지양하지 못하고 그 자신의 편에서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게 된다. 그 다른 사람은 먼저의 사람을 사물로부터서만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대자존재도 침해하는 것이 된다. 그는 먼저의 사람이 이미 소유했던 것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법적 관계라는 것에 비추어 볼 때 그는 먼저의 사람의 인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헤겔은 당사자들 간의 작용, 반작용을 항상 새로운 불평등의 성립으로 생각한다. 이는 대자존재의 상호인정을 통해서만 지양될 수 있다. 나중의 {정신현상학}에서는 이것이 자세하게 생사를 건 투쟁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헤겔은 이러한 투쟁에는 더 이상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을 순수자기로서 상호 서술하는 것, 즉 그 대자존재의 인정을 위해 그의 개별적인 현존재와 그의 구체적인 점유를 포기하려는 마음이 중요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가 일반적으로는 '인륜', 그러나 직접적으로는 '법'이다. 개별자, 주체는 인격이며 그의 의지는 보편적 의지이다. 이로써 '그 개념에 있어서의 정신'의 단계는 마감되며, '현실적 정신'에 이른다. 즉 자유의지는 법제화됨으로써 사회 정치 제도 안에서 구체적 현실성을 얻게 된다.

b. 현실적 정신

'현실적 정신' 장의 서두는 방법상으로 극히 중요한 사고에서 시작하고 있다. 즉 추상성으로부터 구체적 현실성으로의 발전도식을 분명하게 정식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은 지성으로서도 의지로서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것은 지성인 의지로서 현실적이다........추상적 지성이 의지에서 지양되듯, 이제 추상적 의지는 보편적 의지에서 지양되어야 한다."(PG2, S. 222-3) 이전의 단계들인 지성과 의지는 분석의 추상적일 뿐인 단계들이다. 이것들은 다른 형식으로 이행해야 할 결함있는 단계들이다.
이러한 '현실적 정신' 장은 두 절로 나뉜다. a) 인정,  b) 강제적 법률(das Gewalt habende Gesetz)의 두 절이다. 첫째 절은 {법철학}의 '추상법' 절과 포괄적으로 일치하는데, a. 직접적 인정, b. 계약,  c. 범죄와 형벌 등의 세 소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의 '인정'이라는 제목들은 Anerkennung이 아니고 Anerkanntsein의 번역이다. 헤겔이 앞의 표현 대신 뒤의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주체의 단순한 작용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하나의 현실로서의 인정받고 있는 인격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임의적일 뿐이고 사적인 주체가 아니라 법적으로 제도화된 개인들의 위치가 그의 표현에서는 드러나 있는 것이다.

1) 사회화의 추상적 형식들(인정)

'인정' 절 아래서 헤겔은 {인륜의 체계}에서처럼  노동분업적 생산과 교환을 다룬다. 욕망의 충족은 만인을 위한, 만인의 향유를 위한 만인의 생산의 체계에서 일어난다. 이 체계에서 각자는 추상적으로 보편적인 욕망을 위한 추상적 노동만을 수행한다. 구체적 노동은 분업화된 개개의 노동과정들로 분할된다. 그 노동과 구체적 욕망과의 매개는 교환(Tausch)을 통해서 일어난다. 헤겔은 교환과 가치를 이제 그의 인정이론의 틀 안에서 해석한다. 즉 교환을 통한 점유는 다만 다른 사람의 동의에 의해서만, 그리고 생산물의 가치에 대한 공통된 의견이 형성된 이후에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환하는 자들은 상호 그들의 의지를 현존하는 의지로서 인정하게 된다. 자연상태에서와는 달리 일방적인 강압은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소유는 노동을 통해서나 교환을 통해서 일어난다.
교환에서 헤겔은 공통적(gemeinsam) 의지와 교환대상의 실제 양도에서의 그 실현, 양자를 구별한다. "개개인의 의지는 공통적 의지이다...... 그의 의지는 나의 의지이기도 한 그의 의지의 외화로서의, 그의 현실이다. 이러한 인식이 계약에 표현되어 있다."(PG2, S. 228) 계약은 그 자체로는 교환과 동일하지만, 대상적 교환이 이미 일어나지 않았다면 관념적 교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의지의 표명은 물건의 교환 자체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계약은 현실적인 양도에서의 경험적인 시간 차이와는 무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약은 공통적 의지의 그 자체적 타당성과, 경험적인 개별적 의지를 통한 그 실현 사이의 궤리의 가능성을 내포할 수도 있다. 개별적 의지는 공통적 의지로 여겨질지 모르나 양자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바로 가능성에 그쳤던 이런 차이를 현실화시키는 데서 계약의 위반은 나온다.
'인정투쟁'에서처럼, 헤겔은 계약의 파기로부터 '범죄와 형벌'을 더욱 새로운 불평등의 성립으로 발전시킨다. 침해받은 사람은 파기자의 개별적 특수한 의지에 대해 공통적 의지를 강요하려 할 것이다. 즉 특수한 의지는 그 자체 일반의지에 대립된 것이기 때문에 존중되지 않아야 하며, 일반의지가 인정되는 한, 인격 즉 인정된 일반의지가 아니라 특수한 의지를 향해서 행사되는 강제는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요받은 사람은 일반의지가 특수한 의지에서 그 현존을 가지며 양자는 분리될 수 없다는, 그래서 그의 특수성이 아니라 그의 자아 내지 인격이 강요받는다는 관점을 주장하려 할 것이다. 계약의 침해에서 나오는 두 당사자 간의 이러한 대립은 어떻게 해소되는가?
이미 인정투쟁에서처럼 헤겔은 '범죄와 형벌'도 더욱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 반작용의 귀결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이런 불평등의 지양은 곧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다. 강제된 사람이 복수한다면, 그는 인격으로서 다른 인격에 대립해 있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고 보편자로서의 그 다른 인격의 존재, 그리고 인격으로서의 그 사람의 안전을 침해할 것이다. 이로써 그는 자의식적인 의지로서의 그에게 복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반의지로서의 그에게 복수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강제를 통해서 일반의지가 다시 회복되며, 특수한 의지는 지양된다. 강제된 사람은 일반의지에 대해 그의 특수의지를 주장하는 것이기 대문에 범죄를 범하는 것이다. 범죄를 통해서 일반의지가 특수의지에 대해 다시 환기된다. 일반의지를 통한 개별의지의 지양이 형벌이다. "형벌은 이러한 전도이다. 그것은 일반의지의 복원이다. 그것의 본질은 어떤 계약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에 대한 위협도 범죄자의 교화도 아니다. 그 본질은 개념이자 이러한 이행이고, 손상된 일반적 인정의 顚倒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로서의 복수(Rache als Gerechtigkeit)이다."(PG2, S. 235)
이러한 헤겔의 고려는 인정투쟁에서처럼, 무법적 상태에서는 일반의지는 관철되지 않는다는 것 을 보여준다. 개인을 통한 일반의지의 실행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불법을 낳는다는 것이다. 주관적 判決은 관련 상대방의 인격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불법을 낳는다. 이에 반하여 법적 상태에서의 복수는, 자신의 의지를 일반의지로 주장하는 개인의 복수에서와는 달리, 일반의지에 의한 형벌로서 여겨진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해 볼 때 헤겔은 법의 임의성이나 사적인 성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반의지에 의한 추상적 제재체계가 마련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법의 추상적 형식들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2) '강제적 법률'에서의 추상적 형식들

헤겔의 후기적 사유단계인 {법철학}에서는 인륜의 근대적 성격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는 것으로서 '시민사회'가 중요한 테마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헤겔적인 의미에서 참된 인륜으로서의 국가가 달성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주체적 자각의 한 극을 나타낸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시민사회'로 표현되는 근대사회의 성격과 원리를 헤겔은 예나 시대에 이미 깨닫고 있었다. {예나정신철학 2}에서 등장하는 '강제적 법률'이 바로 그것이다.
헤겔은 앞 절에 이어 '강제적 법률'이라 부른 새롭고 더 구체적인 단계를 끌어낸다. 형법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다루어진 모든 규정들이 이 단계에 종속된다. '강제적 법률'은 여기서 '헌정체제'(Constitution)라 불린 절대적으로 인륜적인 단계 이전의 직접적인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헤겔은 개인의 지양과 그의 목적의 실현을 다루되, 앞 장에서와는 달리 그것을 개인 대 다른 개인의 추상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다룬다. 동시에 헤겔은 이 장에서 특히 개별자와 보편자의 대립을 표현하는데, 왜냐하면 강제적 법률은 아직 관습도 아니고 아직 생동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여 그것은 아직 모든 개인들의 의식적이고 의욕적인 행위를 통해 현실적인 것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헤겔은 이 장에서 개인이 국가의 법적 강제권력과 경제적 법칙 아래에 포섭되고 예속되는 상황을 다룬다. 서두에서 헤겔은 분명하게 개인은 사회적 힘에 의해 유지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것에 절대적으로 예속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강제적 법률'의 요소들로 헤겔이 들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겠다.
1) 개인의 실존의 실체는 완전히 다른 사람과의 공동성(Gemeinschaft mit den andern)에 의거한다. 그러나 이 공동성은 동시에 일반적 생존만을 보장해 줄 뿐이고, 각 개인은 오히려 일반자에 희생되어버린다.
2) 개인은 그의 인격과 소유의 안전을 향유하지만, 이 안전을 보장하는 힘은 그의 삶과 그의 생존수단에 대해 개입한다.
3) 그런가 하면 마지막으로 '강제적 법률'은 인격을 보편성으로 형성하는 기능도 갖는다.(PG2, S. 236-7)
이 셋은 내용적으로 볼 때 {인륜의 체계}에서의 보편적 통치의 세 체계에 상응한다. 그러나 목차를 소개한 앞의 각주에서 보았듯이 3부는 이 셋의 요소들에 일치하여 나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세 요소들은 이후에 다루어진 제도들에서 나타나는 포괄적인 원리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원리들이 어떻게 '강제적 법률'의 장에서 펼쳐지는지 살펴보자.
헤겔은 여기서 개별자의 직접적인 현존을 지양하는 가족이라는 최초의 공동체에 대해 국가라는 보다 고차적인 공동체를 대립시킨다. 물론 여기서의 국가는 헤겔이 필요와 오성국가라고 부른 국가, 내용상으로 시민사회와 다름없는 그러한 국가이다. 국가를 다루는 부분은 다시 한번 세 하위부분들로 나뉜다. 1. 경제와 경제정책, 2. 민법, 3. 형법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조망해 볼 때 헤겔은 '강제적 법률' 절에서 국가의 개입으로부터 벗어난, 자기규제적인 시민사회를 다루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여기서 국가가 다루어지는 관점과 국가가 절대적 인륜의 단계에서 다루어지는 관점 사이에는 체계적인 차이가 있다. 왜냐 하면 여기서의 국가에서는 법률이 아직은 생동한 것이 아니고 관습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헤겔은 국가는 개인이 그의 목적을 실현하는 모든 영역을 구성하며 국가가 그 목적들의 실체라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국가는 이런 모든 영역들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며, 모든 개인들의 생과 소유에 대해서도 힘을 갖는다는 것이다.(cf. PG2, S. 242)
이 절을 통해 헤겔이 근대사회를 인식하는 내용적 특성은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소유는 만인의 의지를 통해서만 보장받으며, 개인은 노동, 생계활동, 교환 등의 영역에서 경제적 운동의 우연들에 의존한다. 나아가 그러한 우연성들의 복합작용의 필연적 법칙적 결과로서, 전 인구가 그들의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배제되어 버리고 부의 축적이 점점 더 큰 집중을 초래하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빈부의 불평등은, 불평등이 증오와 폭동을 낳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다시 이 영역이 국가적 활동에 예속되는 것을 필연적이게 한다. 그러나 이는 인격으로 하여금 시민사회를 넘어서 보편성으로 고양되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단순한 경찰행정(Polizei)을 넘어선 국가의 활동을 역사적 필연으로 낳게 된다.
'강제적 법률' 장에서 헤겔은 국가로부터 자립적인 영역을 발전시키고 있다. '강제적 법률'로서의 법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이 사적으로 법이라 생각한 그런 법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국가 안에서 힘과 현실성을 갖게 되었다. "국가는 법의 현존이자 법의 위력인 것이다."(cf. PG2, S. 249)
이 장에서 헤겔은 마지막으로 절대적 위력과 개인의 생에 대한 법률의 강제성에 근거한 국가의 형벌권(Strafgewalt)도 다룬다.(cf. PG2, S. 249-253) 형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능은, 보편자가 개인의 실체이며 그의 소유와 생을 침해하는 폭력으로부터 그를 보호한다는 것, 그리고 개인은 이 목적을 위해 그의 권리라 생각한 바를 포기했고 무조건 법률적 강제력 아래에 굴복했다는 데에 토대를 둔다.

c. 사회계약론 비판

'강제적 법률'에서 정립된 제도들을 국가는 인륜공동체로 구성한다. 이 제도들은 국가에 의해 국가 자신의 실현형식들로 정립되며 국가 안에서만 참된 현실성을 갖는다. 추상적 법형식(추상법), 강제적 법룰(시민사회), 이성적 헌법에 의해 조직된 국가(국가) 등, 이것들은 점차적으로 이성적 의지의 구체화 형식들이다. 추상법은 물론이고 '강제적 법률'의 추상적 요소로 기술된 요소들도 국헌체제 혹은 헌정체제를 갖춘 민족에서야 참으로 현존한다. 민족 안에서 이전의 요소들은 지양되며, 인간은 경제주체로서, 그리고 민법 형법상으로 책임을 지는 인격으로서 현존재를 갖는다.
국가의 중요성에 대한 헤겔의 인식은 그의 사유의 발전과 함께 점점 강해져 갔다. 경제와 법이 국가를 근거로 가지며 그렇기에 국가의 자기실현의 수단으로 정립된다는 사상도 {예나정신철학 1}에 비해 더 약화되기 보다는 반대로 더욱 강하게 정식화되었다.

"모든 현존, 소유, 생 위에 있는 이러한 힘,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사상, 법, 선, 악 등의 위에 있는 힘이 공동체, 생동하는 민족이다. 법률은 생동하는 것이며, 완전하고 생생한 자기의식적인 생이다. 그것은 모든 현실의 실체인 일반적 의지이며, 스스로를 모든 생동하는 것 및 개념의 모든 규정, 다시 말해 모든 본질에 대한 보편적 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PG2, S. 249-251)

이제 {예나정신철학 2}의 마지막 장인 '헌정체제'의 내용들을 살펴보자.
'헌정체제' 장에서는 의지 개념과 관련하여 상당히 길게 사회계약론자들에 대한 비판이 등장한다. 먼저 헤겔은 국가 내지 정신의 일반적 개념을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자립성에서의 개념 혹은 보편성"(PG2, S. 254)으로 규정한다. 개인들의 자유와 자립성은 그들이 일반의지를 그들의 이성적인 의지와 동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 보증된다. "그들은 일반의지를 그들의 특수한 의지로 여기며, ...... 또한 그것을 그들의 대상적 본질로, 그 자체 그들의 본질인 그들의 순수한 위력으로 생각한다."(PG2, S. 254) 그런 의미에서 일반의지는 "나의 의지와 일치할 뿐더러, 나의 현실적인 자기"(PG2, S. 256)이기도 하다. 나아가 자유와 자립성은, 각자는 그의 개인적인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그의 특수한 의지를 표현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외화 안에 보증되어 있다. 특수한 이해는 일반적 이해 안에서 완전히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보존되는 것이다.
이전의 칸트처럼 헤겔도 또한 룻소가 발전시킨, 특수한 의지와 일반의지의 차이를 더욱 첨예화시켜서, 일반의지가 경험적 의지의 전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특수한 의지를 완전히 일반의지 아래에 예속시킴으로써만 일반의지로서 현실적이게 된다고 한다. 나아가 일반의지가 작용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개인에 의해 인격화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헤겔은 홉즈 외에 칸트도 따르고 있다. {도덕형이상학} 51절에서 칸트는 통일된 민족의지는 순수한 이념이지만, "최고의 국가권력을 표상하고 이 이념에 민족의지에 대한 작용력을 부여해주는 물리적 인격이 결여되어 있는 한에서는 사고의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칸트는 헤겔과 원칙적으로 동일하게 일반의지를 주권적 국가권력의 작용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는 이념으로 고양시키지만, 오직 그런 목적에서만 일반의지를 해석함으로써 헤겔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헤겔은 칸트와는 달리 개인들이 일반의지를 그들의 의지로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 하면 그는 개인들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자의식적으로 그들의 의지를 외화시킴으로써만 일반의지는 작용할 수 있고 생동하는 의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일반의지를 자기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다만 죽은 문자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이다.
일반의지는 개인들이 그들의 의지를 자의식적으로 외화할 때에만 작용할 수 있다는 헤겔의 확신은, 일반의지가 논리적으로 특수한 의지의 외화에 선행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일반의지는 그것이 개별의지로 하여금 특수의지의 외화를 통해 스스로를 일반의지로 고양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합일(Vereinigung)을 통해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공동체는 이미 일반의지를 전제하지 그것을 최초로 창조하지는 못한다. 그 때문에 정치공동체는 개별의지가 일반의지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일반의지가 특수의지들로부터서야 비로소 구성될 수 있다는 가상은 사기다. 일반의지는 최초의 것이자 본질이다.
예나 초기와 후기 사이엔 개별성의 정당화에 대한 평가에 관한 한 아무런 변화도 없다. {자연법논문}에서 객관적 인륜의 주관적 인륜에 대한 우선성을 정초했던 것과 동일한 논의로써, 그리고 전체가 본성상 부분에 앞선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의 명시적인 언급을 이어받아, 헤겔은 여기서는 보편의지가 특수의지의 결과물로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견해를 거부한다. 헤겔은 개인성이나 개별성 일반의 폐기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인륜적 개별의지의 내용적 규정이 현실적 인륜에 의존하고 있음을 정초하는 일, 그리고 일반의지의 주관적 의지에 대한 논리적 우선성과 체계적 우위성을 정초하는 일이었다.
이로부터 지금까지의 사회계약론 비판보다 더 신랄한 새로운 비판이 그에게서 나온다.

"국가단체인 공동체가 각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근원적 계약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참되고 자유로운 국가의 원리로서 명백하게 공동체의 모든 활동을 규정하는 것으로 보통 생각되곤 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수의 대중들은 ...... 처음에는, 공동체가 아직은 현존하지 않는다거나 혁명이 지금까지의 헌정체제를 해체시켜 버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들은 각자가 자신의 적극적 의지를 일반의지 안에서 인식하려 하는 현실적 개인으로서 등장한다. ...... 그러나 그들의 적극적인 개별성은 아직은 외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편자에 대하여 우연성에 지나지 않고, ...... 모두가 동일한 것을 의욕하는 필연성도 아니고, 소수가 다수에 따라야 하는 구속성도 아니다."(PG2, S. 257)

여기서 헤겔은 먼저 계약론자에 대해 다수 개인들의 경험적 통일이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생각을 비판한다. 그가 이런 생각을 비판하는 것은, 개별의지가 일반의지와 직접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과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결코 직접 동일한 것이 아니다. 경험적으로 특수한 의지와 일반의지가 대립되어 있을 경우 특수 의지와 일반의지의 일치의 문제는 특수의지들의 경험적 통일에 의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 일반의지 자체는 만인의 전체 의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일반의지는 비경험적인 이념적 의지로서 개별의지보다 체계적으로 상위에 있다. 그런가 하면 위의 인용문에서 헤겔은 암암리에 계약론자로서의 칸트를 비판하면서, 개인에 의한 일반의지의 자기화가 개별의지와 일반의지의 통일의 전제임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사회계약론자에 대한 비판은 확실히 개개 자연법론자들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의 조건 하에 있는 정치공동체가 모든 당사자들의 경험적 통일과 계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대한 비판은 분명히 무엇보다도 룻소에 대한 비판이다. 헤겔은 생애 내내 룻소의 사회계약론을, 국가는 개별의지의 경험적 일치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의 예로서 간주했고, {예나정신철학 2}의 중심개념인 외화 개념도 룻소를 겨냥한 것이었다. 사회계약에 의한 것이건 일반의지의 표현에 의한 것이건 모든 개인의 경험적 일치가 자유로운 사회화의 조건이라는 것이 룻소의 견해라는 것이다. 홉즈와는 달리 룻소는 자유의 양도불가능성(Unver u erlichkeit)과 의지의 대표불가능성 (Unrepr sentierbarkeit)을 주장했고, 그 때문에 만인의 일치는 계약체결이라는 단 한번의 작용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입법의 계속적인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룻소에 의하면 일반의지는 모든 시민의 정치적 의지이며, 자연상태 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의지가 역사 속에서 만들어 가는, 즉 모든 개별적 의지의 결과인 것이다.
룻소는 자유의 소멸불가능성과 위임불가성을 기반삼아, 이성적 일반의지와 모든 시민의 실제의 경험적 의욕의 동일성을 법원리로 고수하였다. 룻소는 개별의지와 일반의지의 일치가 공통목적의 추구를 그 실질적인 기초로서 전제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모든 개인의 특수이해와 사회적 전체이해가 수렴하는 실질적 조건들을 제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경험적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리하여 그는 실질적 불평등과 부자유의 지양, 노동분업이나 상품교환, 화폐순환, 경쟁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의존의 지양, 혹은 적극적으로는 점차 동일해져가는 소유관계 및 평등한 실질적 복지를 보장하는 소유질서 등의 경제적 해결책을 통해서 일반의지의 실현을 도모하였다.
헤겔은 이러한 룻소의 경제적 생각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는 별로 말한 바가 없다. 그러나 헤겔이 위의 해결책을 궁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가 그 해결책을 비실재적인 것으로 여겨서였다기보다는 그 해결책이 자신의 자유 개념에 모순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의지 개념에 대한 양자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헤겔에 의하면 근대의 경제적 삶의 현장은 그 부정적인 현상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에게 사적인 자유의 확대를 가져다 주었고 보편성으로 교양될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 그 때문에 시민사회 영역 혹은 '강제적 법률'의 영역에서의 구별, 차이, 우연성은 근대 주체성과 개인성의 본질적인 요소들 중의 하나가 되고, 근대 주체성을 더 고차적으로 발전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이처럼 헤겔에서는 부정성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인륜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전체로서의 보편자가 자신의 전개에 부정적인 요소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룻소의 사고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일반의지를 먼저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경제적인 제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경험적이고 임의적인 조처만을 제시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자유의 절대적 확립에 제한적인 역할만을 할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헤겔은 그의 경제적 탐구를 통해, 기술적 진보와 생산력의 발전은 경쟁의 예에서 보듯이 이런 차이에 의존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개별의지와 일반의지의 일치는 헤겔에 따르면 그 직접적인 동일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근본적인 구별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개별의지는 스스로 일반의지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고 그 전체적인 외화를 통해서만 일반의지와 일치하게 된다. 결국 헤겔은 경제적인 데서 유래하는 사회적 불평등이 시민사회 차원이 아닌, 국가의 수준에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해소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된 헤겔의 사회계약론 비판의 근본주장은 칸트에게서도 발견된다. 칸트는 {도덕형이상학}  47에서 "민족이 스스로를 한 국가로 조직하는 행위가 근원적 계약(der urspr ngliche Kontrakt)인바, 국가의 적법성 혹은 정당성의 유일한 기준으로서의 그러한 행위의 이념만이 본래 그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룻소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근원적 계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서 보듯이 칸트도 헤겔처럼 단순한 개인의 의지로부터 그 정당성을 얻는 사회계약을 비판한다.
릴리에 따르면 칸트는 룻소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계약 개념을 자유나 의지의 개념처럼 이념적이고 가설적인 것으로 본 점에서는 종래의 계약론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에게 사회계약은 국가와 법의 정당성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는 이성의 이념이다. 그것은 실질적인 합의나, 복종의 실질적인 약속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회계약은 시민사회의 기원을 설명하는 원리가 아니고, 그것이 어떠해야 하는가의 당위를 설명하는 원리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역사적 합의를 통해 실제로 국가를 성립시키는 원리가 아니라, 입법과 행정 공법적 정의 등의 이념을 제공해 주는 원리이다. 그래서 릴리는 그의 입장을 "가설적 계약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글의 문맥에서 중요한 바는 칸트의 정치철학이 그의 도덕철학 일반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유일하게 무제한적으로 선한 것은 선의지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보편화될 수 있는 준칙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이다. 선의지에 대한 이러한 정의에서 등장하는 요소들, 즉 의지 개념, 보편성의 이념, 목적으로서의 인격 등은 그의 도덕철학에 그치지 않고 정치철학에도 직접적인 상관성을 지닌다. "도덕은 우리가 그것에 따라야만 하는 무조건적인 명령적 법칙의 총체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이미 실천적인 것이다." 선의지만이 무제한적으로 선한 것이라면, 그러한 선한 것들 중의 하나인 정치는 도덕에 도구적인 것이 될 것이다. "모든 정치는 도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된다." 참된 정치란 도덕에 대해 먼저 존경을 표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서는 "실천적 법의 이론으로서의 정치학과 이론적인 법의 이론으로서의 윤리학 간에는 어떠한 갈등도 있을 수 없다."
칸트에서는 도덕법칙이 이념적 형식적 타당성을 가져야 했던 것처럼, 사회계약도 이성의 이념으로서 타당하다. 그도 룻소처럼 사회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의지가 개별적 의지가 아니라 일반의지여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칸트에서 도덕과 정치의 동일성 내지 차이 문제, 근원적 계약을 낳는 의지가 도대체 어떤 의지인가의 문제 등은 나중에 헤겔의 비판의 표적이 되고 만다.
칸트는 특수한 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의 대립이 경험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헤겔은 일반의지가 비경험적 이념적 성격을 가지지만, 그것은 통일된 모든 개인의 경험적 의지와 필연적으로 대립하기 때문에, 일반의지는 사실적으로뿐만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모든 특수한 의지가 보편적인 사회적 의지로 통일된 것으로는 생각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는 칸트와 헤겔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의 도덕법이나 계약의 정당성의 정초가 이성적 '개인'의 의지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계약을 私法적 제도가 국가법으로 부당하게 전이된 것으로 간주한다. 私法적 도구로서의 계약의 본질은, 모든 개별적 의지가 계약목적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약은 계약자들의 일반적인 목적을 내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념에 있어서도 일반의지가 특수의지로부터 도출된다거나 특수의지가 일반의지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반대로 일반의지가 일차적인 것이며, 특수의지들은 그 특수성을 소멸시킴으로써 일반의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비판 외에도 헤겔은 칸트의 도덕이론이 추상적이고 내용이 없다는 너무나 진부해 보이는 비판에 입각하여, 그의 정치이론이나 계약 관념도 비판한다. 정치학은 도덕의 공허한 형식주의의 단순한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관주의를 넘어 실천철학은 객관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편성과 객관성을 모두 확보할 실천적 방안은 어떻게 마련될 수 있는가? 헤겔에서 그것은 결국 그의 인륜이론의 전체적인 전개로서 대답되고 있다.

다음으로 헤겔은 개별자와 일반의지의 두 통일형식들을 구체적인 통치형식과 관련하여 다루고 있다. 그것은 (직접)민주주의와 군주제이다. {예나정신철학 2}의 바로 이 부분에서 유명한 부르주아와 시뚜아엥의 구별이 등장한다. 민주주의에서는 개별적인 것을 목적으로 갖는 개인들과 보편자 혹은 통치를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개인'은 동일한 것이다. 각 개인은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가 그 자신과 가족을 위해 배려하고 노동하며 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일을 하는데, 그러면서 그는 또한 보편자를 위해 일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전자의 측면에서 그는 부르주아, 후자의 측면에서 그는 시뚜아엥이라 불린다."(PG2, S. 261)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이스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이런 두 측면의 통일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개별적 의지와 그것들의 총합이 지배한다. 아테네의 몰락도 결국은 개별적 의지의 점차적인 타락과 참된 일반의지의 결여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고대적 민주주의에 대한 근대 군주제의 본질적 차이는, 민주주의와 군주제라는 외형상의 제도적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군주제에서는 일반의지가 개별의지들의 경험적 일치로부터 결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자연적 개인에 의해 대표되는 이념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이런 군주제, 나아가 입헌군주제라는 헌정체제의 형식에서 헤겔은 "최근 시대의 더 고차적인 원리"(PG2, S. 263), 즉 주체성과 차이성 내지 분열이라는 원리를 포착한다. {법철학}에서 헤겔은 군주를 이전의 전제군주 혹은 폭군의 의미에서의 군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군주는 실제의 정치세계를 각 주권자의 일반의지의 표현인 헌법에 맡긴채 스스로는 시민의 주권 내지 주체성의 상징으로만 존재한다. 단순히 헌법에 의해 지배되는 것만으로는 근대 시민의 주체성의 자기충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헌법이라는 실체적 제도에 의해 통치되면서도 자신의 주체성이 확보되고 있다는 귀속감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헤겔은 근대세계에서는 개별적 주체성이 절대화되고 각자가 현존하는 보편자로부터 분리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반의지가 하나의 자연적 인격 즉 군주의 의지에서 그의 현존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입헌적 군주를 통해 주체성과 실체성의 공존적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나정신철학 2}의 마지막 장에서도 헤겔은 이전의 {인륜의 체계}처럼 그의 독특한 의도가 담긴 계층이론을 전개시키고 있고, 세계 평화와 전쟁의 문제에까지 관련된 통치이론도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나 완결되지 못한 수고의 형태로 된 이 저작에서 이 문제들은 깔끔하게 체계적으로 정돈되어 있지도 않고, 또 나중의 {법철학}에서 보다 명료하게 해명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더 이상의 상론은 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예나정신철학 2}로 마감되는 예나시대의 헤겔의 정치사상의 중요한 의미만을 다음에서 종합적으로 논의하기로 한다.

4-2-3. 예나 인륜이론의 근대성

헤겔은 예나 비판적 저작, 체계적 저작들에서 인륜 개념을 중심에 두는 실천철학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인륜은 '차이' 혹은 '차별성'의 영역을 자신의 조건이자 요소로 전제하지만, 이런 '차이'가 근대를 규정짓는 결정적 요소인 한, 근대 인륜은 아직 절대적 인륜의 현실이라고 할 수 없다. 인륜이 그 자신의 요소로서 '차이'를 전제한다는 것은 헤겔의 한결같은 확신이었다. 그것은 예나 정치철학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그는 인륜을 역사철학적 인간학적 형식을 빌어 고찰하였다. 인륜은 자연에 대한 개별적인 획득 관계 및 다른 사적 생산자들과의 관련, 그 관련의 일반화 등에서부터, 교환과 법에 의해 매개된 사적 생산자들 간의 연관에 이르기까지 분화 발전해왔다. 이와 같은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자연 획득으로부터 절대적 인륜의 현실로의 발전을 헤겔은 동시에 자연의존성으로부터의 해방 과정, 욕망 충족의 일반화 과정, 혹은 주체가 생산물들에서, 사적 생산자들 간의 관계 체계에서, 인륜 조직들에서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헤겔에 따르면 이런 과정은 주체를 인륜의 이성적이고 정신적인 본질을 통해 규정하는 것으로서, 자기규정과 자유의 과정이다. 왜냐 하면 자유란 이성적으로 볼 때 단순한 자의가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통한 자기규정으로서만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인륜적 국가 안에서만 가능하며, 국가를 통해 정립되고 구성되지만, 그러나 또한 동시에 인륜적 국가 안에서의 자유로운 자의의 실현은, 그 국가의 자기실현을 위한 필연적인 요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예나 시대 헤겔의 정치철학적 기획이 함축하고 있는 요소들은 아직 자유의 절대적인 인륜적 현실성은 아니다. 주관적인 욕망충족과 자연 획득, 물리적 욕망과 관련된 상호의존의 체계, 법적 강제 등이 거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이 절대적 인륜의 현실성에 이르는 필연적인 것들인 한, 국가는 이러한 요소들의 근저에 있는 자의의 자유와 인격, 소유의 안전을 보호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헤겔이 예나에서 근대 자연법을 비판했던 관점은 반개인주의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비록 그가 고대 인륜을 동경했고 형이상학적으로는 스피노자의 실체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 주체성의 역사적 필연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가 자연법적 선행자들을 비판했던 요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비판의 요점은 예나에서부터 베를린 시대에까지 결코 후퇴하지 않았다.
* 그들은 법과 법적 국가가 근원적 자유를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를 통해 제한한다고 본다. 그러나 헤겔에 따르면 자의의 자유는 오히려 인륜적 이념의 실현요소다. 그리고 상충하는 개인들의 적대관계는 사회계약이라는 일회적 작용에 의해 극복되지 않으며 인륜 내에서 계속 재생산된다.
* 그들은 국가에서, 자유와 인격, 소유를 보호하고 평화로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의 수단만을 보지 아무런 절대적인 인륜적 목적도 보지 않는다. 그런 한 그들에게 국가는 시민사회적인 하나의 기구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린다.
* 그들은 국가가 그 시민들의 충성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혹은 그 법률들의 정신이 살아있지 못하고 인륜적 심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외적 강제만으로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 자연법의 개인주의적 연역 기초는 포기되어야 한다. 인륜은 전체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인륜이론은 단순한 개인이라고 생각된 것도 국가 안에서만 존립가능하며, 그리고 절대적 대자성 혹은 단순한 개별성의 포기 하에서만 개인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욕망의 체계로 불리기도 한 차별성의 단계는 그 자기파괴적 경향 때문에 극복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체계에서는 욕망의 충족도 우연적이고 소유의 방식과 범위도 우연적이다. 빈부의 양극화도 여기서는 불가피하다. 이로써 이 체계는 필연적으로 그의 원리들 중의 하나인 인격성, 즉 노동에서의 자기 대상화를 통해 자유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게 된다. 이런 비인륜적 관계 속에서는 자율적이어야 할 인격도 의존적이게 될 수 밖에 없다. 욕망의 체계는 그 자체로는 더 이상 존립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절대적 인륜의 현실성이자 목적 그 자체인 국가에 의해 끊임없이 규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 위에 있는 사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를 근대적이기보다 고대적인 사상가로 보는 것은 성급한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헤겔은 예나 초기에 철저히 고대적 전통에 의존하여 주체성에 의한 근대 인륜의 분열을 비판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면 이런 생각이 너무 단순한 생각임이 곧 드러난다. 그는 여러 면에서 고대지향적이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철저히 근대 철학자였다. 이를 보여주는 몇 가지 점을 들어보자.
먼저 예나 시대에 헤겔은 고대적 인륜과는 달리, 개별자와 인륜적 전체와의 직접적 통일이 아니라, 차별성의 영역에 의해 매개되는 통일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또한 참된 인륜에서는 절대적 대자존재가 포기되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가 반근대적인가? '포기'라는 말은 이미 그것이 의식화되어 있음을 전제한다. 고대 자연법은 근대 인륜의 토대가 된 개별성과 주체성의 관념을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절대화된 주체성의 포기에 대한 요구가 반근대적인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그에게 국가는 형식적인 법적 국가를 의미했다는 것도 그의 근대성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모든 힘들이 하나의 중심권력 안에서 통일되고 국가 내의 다른 모든 권력은 국가로부터 위임된 것일 때만 자신의 과제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가 국가 내의 조직들의 분화와, 이것들의 국가에 의한 통일적 규제를 동시에 요구한 것은 그가 근대현실 안의 철학자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의지는 경험적 의지가 아니라 이념이며, 그 이념이 하나의 자연적 인격이나 법률적 인격에 의해 대표됨으로써 경험적으로 현존하게 된다고 헤겔은 보는데, 이 또한 근대 자연법 전통의 노선 위에 있는 사상이다. 따라서 이런 몇 가지 점을 고려해 볼 때 예나 시대에 헤겔 정치사상이 처음에는 고대적이었던 인륜 개념을 바탕으로 했다가 나중에 근대적인 인륜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라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5장. 인륜이론의 체계적 완성

초기의 사유에서부터 시작된 현실에 대한 헤겔의 철학적 관심은 격동의 예나 시대를 거치면서 그 생동한 활력을 얻었고, {엔찌클로패디}에서는 객관정신에 관한 학으로 정형화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820년에 완성된 {법철학}에서 비로소 그것은 시대에 관한 정신의 자기인식인 '학'으로 완결되었다. 이 저작은 근대 정신의 본질인 주체성이 국가의 주권으로 실체화 안정화된 가운데 국가라는 인륜이 보다 분명하게 인륜이론의 정점에 놓이게 된, 말하자면 주체성과 인륜의 연관에 대한 탐색의 최종적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체계'를 강조하는 시각에서 보면 {법철학}은 커다란 학의 내용 중의 단 한 부분을 차지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전체에 대한 인식과 부분에 대한 인식 간의 유기적 연관을 중시하는 시각에서 보면, 여러 주저들로 정비된 그의 부분 주제들은 커다란 학의 한 부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기에는 학의 전 내용이 담겨있지 않을 수 없다. {법철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현실이나 사회현실을 다룬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도 갖가지 가지로 뻗어나가면서 인식론적이고 논리학적이며 때론 역사철학적인 문맥까지 산출하는, 그 자체 하나의 전반적인 철학적 저작이기도 하다. 특히 헤겔에서 정신에 관한 제규정은 정신의 각 형태들에 대해서 총체적인 접근만을 타당한 것으로 허용한다. '법'도 하나의 정신의 형식인 한, 정신에 관한 인식론적, 논리적, 실천철학적 제규정을 그 근저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법철학}은 내용으로만 본다면 사회 정치 현실을 다루지만, 궁극적으로 당시까지의 그의 사유의 성과를 종합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그의 역사철학을 향한 길을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다른 주저들이 그러했듯이, {법철학}도 상당히 긴 서문과 서론을 앞세우고 있다. 거기서 그는 법철학의 학으로서의 성격을 입증하고, 법철학 혹은 철학적 법학의 기본 개념들에 대한 총론적 해명을 다룬다. 뒤이은 본문은 크게 3부의 체제를 보여준다. 1부는 '추상법'이다. 그것은 사적 소유 및 경제활동의 자유가 보장된 근대에서 시민의 순수한 私法에 도달한 자연법을 다룬다. 2부는 '도덕'으로서, 18세기 말 독일의 관념론적 철학 혁명이 가져다 준 주체의 형식적 자유를 토대로 한 윤리학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법'의 형식들은 인간의 삶과 의식의 통일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 뿐더러 실천적으로 인간의 자유의 궁극적 완성도 아니다. 사실 2부까지의 탐구는 내용으로 보면 헤겔 이전까지의 실천철학을 장식한 주제들이고 헤겔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 비판을 위해서 이미 헤겔은 이 두 형식들을 넘어선 새로운 기준을 드러내고 있다. 그 새로운 기준 개념을 헤겔은 3부에서 '인륜'이라는 주제로 다룬다. 칸트가 이성과 경험을 동시에 수용하면서 이들을 지양했던 것처럼 헤겔도 추상법과 도덕을 바로 이 인륜 개념으로써 지양한다. {법철학} 전반의 구조에 관심을 둔다면, 앞의 추상법과 도덕도 상세히 다루어야겠지만, 근대 현실에 관한 철학으로서의 헤겔철학에 관심을 두는 우리에게는 3부의 '인륜'만을 다루는 것으로서도 충분할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인륜은 세 발전 단계로 나뉜다.

A. 직접적 내지 자연적인 인륜적 정신-----가족
이 실체성은 그의 통일을 상실하여 분열을 초래하면서 상대적인 입장으로 이행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B. 시민사회, 즉 독립적 개별자로서의 성원이 결합된, 따라서 하나의 형식적 보편성으로 결합된 상태를 이룬다. 더 나아가서 이 결합체는 개별적 구성원의 욕구에 의해서, 그리고 인격 및 소유의 보호수단으로서의 법률체제에 의해서, 그리고 또 이들의 특수이익과 공동이익을 위한 외면적 질서에 따라서 생겨난다. 여기서 이 외면적 국가는
C. 실체적 보편자의 목적과 현실태로, 다시 말해서 국가체제, 국헌(Staatsverfassung)으로 환원되거나 통합되기에 이른다.(Rph,   157)

이것은 역사적 발전에 따른 구분은 아니다. 그는 자유 이념의 실현을 가족-시민사회-국가의 논리적 순서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이는 마치 가족이 최초의 인륜이었고 다음이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가 최종적 인륜인 것처럼 이해하도록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본다면 가족과 국가는 고대 이전부터 성립한 것임이 분명한 반면 시민사회는 근대의 산물이다. 논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일치를 주장하는 그의 기본입장을 고려할 때 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근대 사회이론의 성립 이전까지는 인간의 사회적 삶의 형식이 가족과 국가라는 이분적 구조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므로 헤겔적인 3분법을 2분법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여기서의 그의 입론에 불일치는 없다. 헤겔은 근대가 바로 국가를 단일한 인륜으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가 보기에 근대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참된 인륜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기껏 그의 의미에서의 시민사회적 인륜이었을 뿐이다. 그는 참된 인륜으로서의 국가가 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당대에서 비로소 발견한다. 이렇게 볼 때 그가 인륜의 발전단계를 가족-시민사회-국가로 구조화한 것은 실제 역사와 그렇게 어긋난 서술은 아닌 것이다. 이제 이 인륜형식들에 대한 그의 서술에서 주체성과 실체성이 어떻게 통일을 이루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5-1. 가족의 인륜적 의의

헤겔은 가족을 "정신의 직접적 실체성"이라 규정한다. 인륜이 주체성과 실체성의 통일로 현실화된다고 할 때 가족이라는 인륜의 통일 원리는 자기감정인 사랑이다. "사랑은 나와 타자의 통일에 대한 자각을 통해서만 획득하게 되지만, 그러나 그것은 역시 감정인 까닭에 자연적인 것의 형식을 지닌 인륜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가에서는 감정이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Rph,   158 Zusatz) 헤겔은 가족의 발전을 1) 혼인, 2)가족의 재산, 3) 자녀교육과 가족의 해체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가족에 대한 헤겔의 입장을 주요 사항만을 들어 요약해 보기로 한다. 이것은 가족의 전통적인 의미가 흔들리기 시작한 당시의 산업사회에서 삶의 통일적 기반으로서의 가족의 의미를 되살리려는 헤겔의 의도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5-1-1. 혼인.

헤겔은 혼인을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정신적인 관계, 따라서 본질적으로 하나의 인륜적 관계라 한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인륜적 관계라 함은 개인이 가족을 통해서 자유롭고 정신적인 존재로 완성되어 간다는 의미에서이다. 헤겔이 혼인을 규정하고 있는 내용을 우리는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혼인은 직접적인 인륜의 관계로서 자연적 생명성의 계기를 내포하지만, ...... 자기의식에서 볼 때는 그 안에서 한낱 외면적인 통일이 정신적 통일로 즉 자기의식적인 사랑으로 전화된다."(Rph,   161)
이를 간과한 여러 입장을 헤겔은 몇 가지로 들어 비판한다. 첫째로 혼인을 육체적인, 자연적인 측면에서만 관찰하는 태도이다. 둘째로 혼인을 시민적 계약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이다. 심지어 칸트도 이런 흔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헤겔에 따르면 이 경우 혼인은 두 사람의 자의에 의한 계약이 되어 상대방을 인격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이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세째로 혼인을 단순히 사랑과 동일시하는 입장이다. 헤겔에 의하면 사랑이란 감정이기 때문에 우연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혼인이란 "법적 효력이 있는 인륜적 사랑"(Rph,   161 Zusatz)이어서 일시적이고 변덕스럽거나 주관적일 뿐인 것은 섞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2) "혼인은 열정과 특수한 자의의 우연성을 넘어선 그 자체 해체불가능한 것이다."(Rph,   163)
여기서 근대와 관련하여 한 가지 의미있는 바는 근대세계를 지배하는 주체성의 원리에 따라 혼인의 출발점도 특수한 두 개인적 인격 사이에 싹튼 사랑이 점차 자리잡아간다는 점이다. 그러나 헤겔에 의하면 당대의 희곡이나 예술작품에서와 같이 열정적 사랑은 그 우연성 때문에 특정 개인에게는 중요할지 모르나 인륜으로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헤겔은 단순한 자유행위로서의 혼인보다는, 제도로서의 혼인 혹은 사회적 행위로서의 혼인만이 인륜적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한다.(cf. Rph,   163-4) 혼인은 결코 계약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롭고 독자적인 인격에서 출발하면서도 그러한 인격이 이루는 계약적 성격을 지양한다.
또 헤겔은 혼인을 불륜, 내연관계와 구별하고 있다. 후자는 자연적 충동을 만족시키려 할 뿐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문제 등에서 수치심을 떨치지 못한다.
이혼에 대해서도 헤겔은 "혼인은 감정적 계기를 갖고 있으므로 절대적이 아니고 동요할 수 있으며 해소될 수 있다"(Rph,   163 Zusatz)고 말한다. 그래서 입법은 이혼에 의한 이러한 인륜의 침해를 최대한 저지하여야 한다.
사랑은 혼인에 의해 실체적인 것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회적 인정을 얻을 수 있는 일정한 의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외면적인 것이거나 단순한 시민적 율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3) 남여의 성적 차이는 자연적 규정 못지 않게 지적이고 윤리적인 규정 상의 차이를 낳는다.(cf. Rph,   165)
그러나 헤겔은 남여관계의 문제에서 그의 시대적 한계를 나타내는 한 예라 할, 문제될 법한 주장을 여기서 펼치고 있다. 즉 "여자로서는 한낱 감정적 헌신으로 인하여 자신의 명예마저도 내던지곤 하지만, 가정 이외에 또 다른 자기의 인륜적 활동영역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Rph,   164 Zusatz)는 것이다. 여기서 남여의 성적 차이에 대한 그의 견해를 잠시 살펴보자. 남성은 자각적 존재로서의 인격적 독립성과 자유로운 보편성을 인지하고 의욕한다. 그러나 여성은 실체적인 것을 구체적인 개별성과 감정의 형식을 통하여 인지하고 의욕한다. 남성이 강력하고 활동적인 데 비해 여성은 수동적이고 주관적이다. 남성은 주관적 인륜성을 가정 안에서 마련하고 외부세계에서 자신의 자립적 일체성을 쟁취하지만, 여성은 이 가정 내에서 자기의 실체적 규정을 간직하고 가정의 공경(Piet t)을 통하여 인륜적 심성을 간직한다. 단적으로 헤겔은 남성을 동물에, 여성은 식물에 비유한다. 그런데 그의 전 체계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이 두 성의 차이가 보편성과 주관적 특수성의 차이에 비유된다는 점이다.

4) "혼인은 본질적으로 일부일처제이다."(Rph,   167)
일부일처제로서의 혼인은 공동체의 인륜적 기초를 다지는 절대적 원리이자, 국가성립을 위한 행위의 한 요소가 된다.

5) "혼인은 자연적으로 동일한, 서로를 잘 아는 친숙한 이웃 사이에서는 ...... 맺어져서는 안된다."(Rph,   168)
그는 혈족관계 하의 혼인을 금지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먼저 수치심을 든다. 그리고 동종교배가 열등한 종자를 낳는다는 것, 생식력이나 정신력이 큰 대립을 안을수록 더 큰 힘을 얻는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된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인륜 상의 이유는 혈족 사이란 이미 서로를 숙지하는 친숙한 관계인데, 이미 결합되어 있는 그 관계가 새삼 혼인을 위해 다시 결합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신뢰와 숙지란 혼인을 통해 비로소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다.(cf. Rph,   168)

이상과 같이 우리는 헤겔의 혼인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쉽게 눈에 띠는 바는 그가 혼인을 궁극적으로는 개인들의 공동체적 결합을 위한, 인륜적 기초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 혼인은 인륜의 성립의 기초이자, 인륜을 지탱하는 본질적 요소이고, 나아가서는 인간 개인의 정신적 존재로서의 완성을 위한 터전이다. 그러나 오늘날이 그러하듯 헤겔 당대에도 혼인과 관련한 반인륜적인 상황이 상당히 전개되고 있었음을 그의 서술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설명은 역사적 記述的 기능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 뒷면에서 그는 혼인이 인륜의 기초여야 한다는 규범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5-1-2. 가족의 재산

가족은 재산를 통해 현존한다. 헤겔의 입론에서 우리는 두 가지만을 확인해 보자. 첫째로 헤겔에 의하면, "가족의 재산은 공동소유인 까닭에 가족 성원 중의 그 누구도 어떤 특수한 소유를 가질 수는 없지만 그러나 각자마다가 공유물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갖는다."(Rph,   171) 이 점은 당시 피히테나 프로이센 주법에서 가족성원 전체가 아닌 부부에게 재산 상의 우선권을 부여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가 씨족에 대해 가족의 우위를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그가 근친상간을 거부한 것이나, 자유로운 정신적 결합과 혈연적 결합을 구별한 것 등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는 전통적인 가족에 대해서, 혼인을 통해 구성된 가족을 대비시킨다. 그러므로 그가 주장하는 근대적 가족은 오늘날의 핵가족을 연상케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미 절정에 오른 근대 산업사회가 혈연공동체보다는 경제공동체를 요구했음을 그의 가족 이론은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5-1-3. 자녀의 교육과 가족의 해체

이제 헤겔에 있어서 가족의 세번째 계기인 자녀의 문제를 검토해 보자. 앞에서의 혼인의 통일성에서는 아직 두 개의 주체가 분화되어 있다. "혼인의 통일성은 자녀에게서 바로 통일 그 자체로서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실존을 이루거니와 또한 이들 두 주체가 자녀에게서 그들의 사랑으로서, 그리고 그들의 실체적인 현존재로서 사랑하는 그러한 대상이 된다."(Rph,   173) 부부 사이의 사랑은 아직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 간의 사랑의 감정은 대상성을 지닐 때에야 비로소 실체적이 된다. 재산도 부부의 결합의 현존재가 되지만 그것은 외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녀야말로 부부 사이의 정신적 결합의 실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녀는 재산에 이어, 혼인이라는 인륜적 계기를 객관화시키는 제 2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모든 인륜적 관계에는 일정한 의무와 권리가 따른다. 자녀와 부모도 서로에 대해 의무와 권리를 갖는다. 의무와 권리는 상대적인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 봉사를 요구할 권리와 그들의 자의를 통제할 권리를 갖지만, 동시에 그들을 부양하고 교육할 의무를 진다. 여기서 헤겔이 양자의 관계에서 중시하고 있는 것은 교육의 문제이다.
교육은 인간을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상태에서부터 정신적인 교양의 단계로 고양시키는 것을 본질로 한다. 헤겔은 어린 자녀를 단순히 다독거리는 것으로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극기와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도대체 그는 어린 아이를 어떤 수준에서 바라보는가?
피히테는 아이는 법적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권리도 갖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잠재적인 정신적 존재로서의 아이와 현실적인 정신적 존재로서의 아이 사이의 연속성을 거의 무시하고 있다. 같은 생명체라도 정신적 가능성을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는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헤겔은 "자식이란 본래 즉자적으로 자유로운 존재"(Rph,   175)라 한다. 어린 자식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헤겔은 크게 두 가지 의미에서 관찰한다.(같은 곳 참조) 첫째로 교육은 아이에게 사랑과 신뢰와 복종이 깃든 직접적 인륜의 감정을 불어넣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둘째로 교육은 아이로 하여금 직접적인 상태를 벗어나서 자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으로 고양되도록 하고, 나아가서 가족이라는 자연적 삶의 공간을 벗어날 수 있도록 키우는 기능을 한다. 이 두 가지는 헤겔이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극히 현실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이상주의자도 아니었고 순응주의자도 아니었다. 이 점은 그의 인륜이론, 나아가 그의 실천철학 전반을 규정짓는 학적 타당성의 결정적인 논거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결합체는 그 성원들 간의 항구적 결합이 아니다. 헤겔은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를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본다. 첫째는 "가족의 인륜적 해체"(Rph,   177)로서 이것은 아이가 성년이 되어 하나의 정신적 인격으로 자립했을 때 일어난다. 물론 이혼도 가족을 해체로 이끌지만 이것은 인륜적이기보다는 우연적이다.
둘째로 헤겔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를 "가족의 자연적 해체"(Rph,   178)라 부른다. 이 때는 재산상의 상속문제가 나타난다. 헤겔이 고려하는 첫째 경우는 죽음으로 인하여 재산이 주인없는 재화가 되었을 때인데, 이 때는 보통 죽은 자와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던 친족이 재산을 점유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가족관계의 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착상이 상속의 근거로 둔갑하는 결과를 낳는다. 두번째 고려는 유언에 의한 상속이다. 개인의 자의가 자유롭게 발산되는 결과로, 죽은 자는 자신의 임의적 목적에 따라, 혹은 가족이 아닌 다른 이에게 상속의 법적 효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륜적 관계를 자의적으로 훼손할 수 있고 허영심, 복수심의 발로가 될 수도 있다. "유언에는 그 어떤 역겨운 것 또는 불쾌한 것이 결부되어 있다"(Rph,   180 Zusatz)고 그가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헤겔은 "고인의 한낱 직접적인 자의가 유언 작성의 권리를 위한 원리가 될 수는 없거니와 특히 그의 자의가 가족의 실체적 권리에 위배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Rph,   180)고 한다.
헤겔 자신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러저러한 그의 주장을 고려해 보면 유언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수 있다. 즉 그는 로마법 체제 하에서 장자 아닌 다른 아들들과 여자는 상속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관례를 비판했으리라는 것이다. 또한 그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상속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문제될 법한 그들 간의 상속 비율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법철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인 것이다. 그의 주장에서 의미있는 것은 다만, 가족은 그 구성원들 모두의 결합에 의한 인륜적 공동체라는 것, 따라서 구성원 모두가 상속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로마법의 영향 하에서 자식과 아내는 유언장의 지정없이는 아무런 상속도 받을 수 없었다. "로마법의 잔혹성과 비윤리성"(Rph,   180)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러나 점차 성숙되어가는 합리성의 감정에 힘입어서 사법의 운영면에서 가령 '상속재산'이란 표현 대신 '유산의 점유'라는 표현을 쓴다든가, 딸을 아들로 개명한다든가 하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했고, 이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제도의 면에서는 이런 돌발적 해악을 막기 위해 무법적인 입법을 감행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로마의 법률이 오히려 도덕적 퇴폐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기도 했음을 반증한다.(같은 곳 참조) 그리고 아들 특히 장자 위주의 상속이 지니는 불평등은 가족의 인륜적 중요성에 대한 자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헤겔은 가족이 재산의 자유와 상속권의 평등의 터전이 되어야 함을, 그리고 그 어떤 자의도 용납될 수 없는 곳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가와의 비교를 제외하면 가족은 그 자체로서 신성하기까지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가족의 인륜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헤겔 {법철학}의 백미는 역시 '인륜' 장 중의 시민사회, 국가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이는 그 부분이 그 어느 부분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주체성의 근대적 흔적을 간직하고 있고, 이의 수용 및 돌파를 위한 치열한 면모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개별적 개인은 인륜적 이념으로서의 가족의 통일 속에 구속되어 있었다. 그러던 개인들이 이제 근대 사회에 들어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적 실재로 방면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개인들이 근대적 조건 하에서 이룩한 것이 "구별 혹은 차별성의 단계"(Rph,   181)로서의 시민사회이다. 인륜도 주체성과 실체성의 균형적 통일로 유지되어 왔지만, 근대는 주체성의 급격한 부각에 의해 삶의 균형이 깨지고 반인륜의 시대가 되었다. 가족 이외에 인간의 공적 삶의 형식이 되어왔던 국가도 그 안에서 결코 공적이라 할 수 없는 사회적 삶의 형식의 대두를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이 강하게 표출되는 그러한 사회적 삶의 형식을 헤겔은 시민사회(die b rgerliche Gesellschaft)라 이름한다. 물론 이 개념은 그 이전부터, 심지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칸트, 피히테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어 왔지만 이처럼 반인륜의 의미로 사용한 것은 헤겔이 처음이었다.
발전의 논리에서 보면 시민사회는 가족이라는 직접적 인륜을 부정하고서 나타난 부정적 인륜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기존의 보편성을 더욱 고차적으로 확대 심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19세기에 접어든 시대에 국가는 새롭게 자각된 주체성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주체성과 실체성의 고차적인 통일이 근대국가의 본질로 된 것이다. 헤겔이 정치이론의 발전에 독특하게 기여한 바가 있다면 국가와 시민사회를 그 본질적 논리에서 구별한 점일 것이다.
이하에서 우리는 시민사회와 국가를 중심으로 한 헤겔 정치이론의 중요 내용과 문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제를 바라보는 기본틀은 두 개의 범주군이다. 즉 실체성과 주체성,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두 범주군이 그것이다. 그러면 그것들은 어떻게 그의 사회이론의 구성을 떠받들고 있는가?

5-2. 시민사회-인륜의 새로운 요소

5-2-1. 주체성의 발전

{법철학}은 서론에서 의지의 사변적 규정으로서 보편성-특수성-개별성의 변증법을 제시한 바 있다.(cf. Rph,   5-7) 그런데 헤겔은 '인륜' 장에서도 보편성과 특수성의 변증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론에서의 그것과는 달리 자아 자신을 벗어나 이미 구체적 형태로 현상하는 자유의 객관적 발전을 규정한다. 달리 말하여 주체성의 현실적 전개는 의지 규정을 사회 역사적 차원으로 옮겨 또 다른 의미에서의 보편-특수의 변증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보편과 특수의 변증법적 발전은 근대사회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인간의 사회적 삶에서 개인의 의식과 실천적 활동을 규정하는 가장 커다란 갈등의 매듭은 개체와 사회의 관계일 것이다. 보편과 특수의 변증법은 개체와 사회의 관계가 문제되는 곳이면 항상 각기 특수한 형태로 관철된다. 인륜의 형태 중 가족과 국가가 보편성이 특수성보다 우위에 있는 형태라 한다면 시민사회는 처음부터 특수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그것은 가족의 보편성이 해체되고 분열되는 데서 시작하여 결국은 국가에 의해 다시 그 보편성이 회복되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 즉 시민사회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충돌이 가장 두드러지게 펼쳐지면서 인륜의 근대적 성격이 마련되는 곳이다. 시민사회론의 이해에서 보편과 특수의 변증법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학자들이 본 근대는 개인의 자유로운 해방이 만개한 시대였다. 근대사회는 이런 해방을 새로운 경제적 질서를 바탕으로 한 사적 자율성의 원리에서 확립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원리를 공동체의 보편적 통합의 요구 속에 끌어들여야 하는 과제도 동시에 안게 되었다. 이런 보편성은 이전의 사회에서도 나타나긴 하나 그것은 헤겔식의 표현을 따른다면 매개되지 않은 직접적 보편성에 불과했고 그 때문에 인간의 참다운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근대의 철학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해방된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사회이론 속에 보편성과 함께 자리매김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통일을 가능케 하는 원천에 대한 탐구이기도 했다. 여기서 자연법을 바탕으로 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자들과 헤겔의 정치철학은 길을 달리한다. 전자에 있어서 사회의 올바른 구조나 참다운 자유는 개인에서 시작하여 개인에서 완성되었고, 개인주의가 인간의 진화에 있어서 궁극적인 것이라는 존재론적 가정이 세워졌다. 그리고 보편성도 특수한 개별의지들의 자발적인 총화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특수성의 독자적인 발전의 결과로서 나중에야 산출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자연법에서 볼 때 사회의 발전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변증법적 발전이라기보다는 특수성의 일방적인 자기산출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근대국가의 제도에 관한 자연법이론은 일종의 "연역적 이론"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에 의하면 보편성과 특수성의 요소는 사회적 삶의 초기형태에서부터 공존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인륜적 실체가 스스로의 권리와 타당성을 지니는 것은 "개별자의 아집이나 자기만의 고유한 양심"(Rph,   152)이 사라지고 그 성원들이 보편자를 자신을 움직이는 목적이자 자신의 존립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보편성은 인륜의 어떤 형태에서든 실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특수성을 매개로 해서 참으로 구체적인 자유로 현상한다. 그러나 헤겔의 체계에 있어서 이 양자의 변증법을 이끄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성이다. 하나의 단적인 예로서 Rph,   256에서 "국가가 (가족과 시민사회의) 두 계기의 진정한 근거"이며 "현실계에선 국가일반이 오히려 최초의 것"이라는 언급에서 보듯, 이념의 발전에서 근거이자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 발전의 출발점이기까지 한 것은 특수성이나 개별성이 아니라 보편성인 것이다.  헤겔 {법철학}에서 관철되고 있는 보편과 특수의 변증법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5-2-2. 시민사회의 변증법적인 발전

헤겔은 {법철학}에 와서야 시민사회 개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당시 유럽의 사회정치체제 내부에서 일어난 근본적 변화를 개념적으로 규명해 낼 수 있었다. 그 이전의 정치철학의 전통에서는 개인과 가족의 바깥에 있는 사회는 그 자체 단순히 정치적인 사회였고 국가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헤겔은 "절대국가 안에서 사인화된 근대시민의 위치 ...... 즉 부르주아로서의 시민의 여전히 사회적일 뿐인 위치"를 특별히 "시민적"(b rgerlich)이라 하여, 정치적 법적 의미로부터 해방시킨다. 그러나 헤겔은 근대 시민사회가 정치적 국가로부터 분열 독립함으로써 상실한 고대국가적 의미요소를 항상 동경해 마지 않았고, 그것을 나중에 보다 고양된 근대 국가적 보편성을 통해 회복하려 한다. 그러므로 실제 역사와 관련된 그의 이론적 관심은 고대의 가족과 국가로부터 근대의 시민사회로 그리고 다시 근대국가로 이어져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제 이론구성은 가족-시민사회-국가로 단순화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보다 늦게 출현한 시민사회가 마치 국가의 전단계인 양 오해될 소지도 있다. 그러나 헤겔체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역사와 논리구성의 외견상의 상치는 이념의 발전논리에 대한 그의 변증법적 이해를 고려하면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근대 시민사회가 어떻게 그 분열적 힘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보편성의 실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되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인륜의 체계에서 시민사회는 가족의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인 보편성이 국가 속의 참다운 보편성에로 고양되는데 그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보편성의 발전에 부정적 필연성의 요소로 끼어드는 것이 특수성이다. "이 특수성이야말로 인륜적인 것의 외적 현상방식으로서, 인륜적 실체 속에는 개인이 자신의 특수성을 지닐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Rph,   154) 시민사회는 바로 이 특수성이 지배하는 곳이다. 개인은 인륜적 실체를 통하여 자유의 실현을 의식하게 되는데, 바로 근대에서 시민사회의 특수성의 매개를 통해 비로소 자유의 보편적 실현과 인식을 위한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많은 해석은 헤겔이 오직 시민사회의 바로 이와 같은 특수성만을 강조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헤겔은 시민사회가 오직 특수성만을 그 요소로 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륜의 발전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특수성의 계기가 시민사회 속에서 비로소 나타났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시민사회는 결코 이기심이 난무하는 경제적 시장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복합적이고 양면적인 구성물"인 것이다.
이 복합성을 낳는 원리는 무엇인가? 시민사회를 지배하는 변증법적 대립의 원리적 요소는 특수성과 보편성이다. 시민사회의 제1의 원리는 "온갖 욕망의 덩어리이자 자연필연성과 자의의 혼합체인, 스스로가 특수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구체적 인격(Person)"(Rph,   182)이다. 그러나 이 특수한 인격은 다른 특수자와 관계맺음으로써 "보편성의 형식"을 띤 매개관계 속에 놓이게 되는데, 이런 "보편성의 형식"(Rph,   182)이 시민사회의 제2의 원리가 된다.
이 두 원리가 공존하는 시민사회는 크게 보아 세가지 특징을 지닌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첫째로 그것은 "전면적인 상호의존의 체계 (ein System allseitiger Abh ngigkeit)"(Rph,   183)로서, 각자가 상호의존 속에 이기적 목적을 추구하는 외적인 국가, 혹은 필요와 궁핍이 규정적 역할을 하고 오성적 사고를 넘어서지 못한 국가로 규정된다. 둘째로 그것은, "특수성에 대해서는 모든 방면으로 자기를 전개시키며 마음껏 펼쳐나갈 수 있는 권리를, 그리고 보편성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특수성의 근거와 필연적 형식이며 또한 이 특수성과 그의 궁극 목적을 지배하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인륜의 양극적 분열의 체계(das System der in ihre Extreme verlorenen Sittlichkeit)"(Rph,   184)로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세째로 시민사회는 아직 자유가 아닌 필연의 형식에서이긴 하나 특수성이 어느덧 보편성으로 이행해가는 단계이기도 하다.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근대적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의 목적으로 삼는 사인 (Privatperson)이다. 그러나 특수성을 바탕으로 하는 이 사인은 그 목적의 추구과정에서 보편성의 매개를 필요로 하며 그것을 수단으로 하지 않으면 않된다. 근대 인간을 보는 헤겔은 자연법론의 그것처럼 인간을 본래 자연상태 속의 순박한 존재나 또 공리주의의 그것처럼 욕망과 향락만을 추구하는 존재로는 보지 않는다. 그에 있어서 정신이 그의 현실성을 마련해가는 근대의 개인과 사회는 자기분열과 욕망의 외적 필연성을 수용 극복해가면서 자신의 객관적 현존재를 획득해 간다. 이것이 교양(Bildung)이고 "더 높은 해방을 향한 노동"(Rph,   187)이다. 근대사회에서 형성된 노동의 형태야말로 인륜의 직접성 자연성을 지양하고 "정신의 보편적 형태로 고양된 무한히 주체적인 인륜의 실체성을 향한 절대적 관문"(Rph,   187)인 것이다.
시민사회가 이처럼 자신의 특수성을 연마해가는 과정을 헤겔은 세 가지 계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욕망의 체계(das system der Bed rfnisse)와 司法(die Rechtspflege) 그리고 경찰행정(die Polizei)과 직업단체(die Korporation)가 그것이다.

5-2-3. 욕망의 체계

"인간의 ...... 욕망을 경제학과 역사의 원동력으로 삼는 일은 18세기에선 진부한 일이 되어 버렸다." 특히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정치경제학을 통한 체계적 이론의 구상 속에서 욕망과 노동의 문제를 시민사회의 포괄적 발전과 관련하여 다루었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의 많은 주제가 헤겔의 시민사회론에서 등장하지만 헤겔의 입장은 정치경제학의 어떤 체계와도 동일시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정치경제학의 입장은 일반적으로 시민사회를 발전의 가능성이 배제된 폐쇄적 체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입장은 욕망과 노동을 통한 인간의 자기상승이나 시민사회의 국가적 보편성으로의 발전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겔은 경제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철학적 수준으로까지 상승된 욕망과 노동의 근본관계를 전제함으로써 시민사회를 정신의 객관적 발전의 한 특정한 단계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욕망의 체계라 했을 때 이것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가? 헤겔의 철학에서 하나의 체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출발점과 이것의 변증법적 전개를 위한 내적 모순이 있어야 한다. 헤겔에 있어서 욕망은 단순히 욕망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체계 즉 욕망의 체계를 성립시킨다. 이에 따라 헤겔은 욕망이 근대사회를 이루는 출발점이자 그 발전의 내적 모티브들을 모두 함축하게 되는 하나의 소체계를 구상한다.
욕망의 체계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질서와 우연성의 공존"이라 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삶에는 활동하는 개인과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질서가 있다. 즉 개인은 그의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면서 그의 의식적인 의도 속에는 포함되지 않은 질서를 창조하게 된다. 시민사회 속에서 나의 욕망과 그 충족활동은 타인들의 그것과 관련된다. 욕망 그 자체는 사적이고 우연적 자의적이나 욕망의 체계는 이미 보편자의 발현무대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와 보편의 "양극으로 분열된 체계"(Rph,   184)로서의 시민사회에서는 이념은 보편자가 다만 부분적으로만 실현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상대적 총체성이면서 또 외적 현상의 배후에 있는 내적 필연성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Rph,   184)
그러면 욕망의 체계는 어떤 변증법적 발전을 하는가? 이를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자. 욕망은 무엇보다도 우선 "주관적 욕망"(Rph,   189)이며 특수성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 특수성은, 첫째로 한 인간의 욕망이 다른 사람의 욕망과 관계맺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둘째로는 동물의 욕망과 그 충족수단처럼 어느 정도 제한성을 지니면서도 또한 그의 욕망 및 수단의 다양화와 세분화를 통해 그 제한성을 넘어서게 된다는 점에서, 어느덧 보편성의 체계 속에 놓이게 된다. 헤겔에 의하면 이것은 나와 타인이 상품생산자로서 서로서로를 인정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 상호인정적 보편성이야말로 "그 개별화되고 추상화된 욕망과 그 만족의 수단방법으로 하여금 어느덧 구체적이며 또 사회적인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Rph,   192)
욕망은 이제 그 주관적이고 특수한 성격을 벗어나 구체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화된 욕망에서는 욕망의 직접적 자연적 요소 뿐만 아니라 정신적 보편적 요소도 나타나게 되는데 이 후자의 요소가 우위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자연적 욕망의 자연필연성은 억제되고 인간은 자의가 아닌 사회적 보편성에 관계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욕망의 사회성 속에서 헤겔은 해방의 요소를 발견한다.
그러나 "특수성이 욕망의 근저에 놓여 있는 이상 이러한 해방은 형식적이다."(Rph,   195) 또 "욕망과 그 수단 향유를 무한정하게 다양화하고 특수화하려는"(Rph,   195) 경향은 끝내 사치와 상호의존과 경제적 궁핍을 초래하게 된다. 욕망은 한편으로는 그것의 다양화 추상화를 통해 자유실현의 계기가 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의존과 궁핍을 낳음으로써 시민사회의 내적 모순의 요소로 등장하는 것이다.
한편 욕망의 체계의 두번째 요소인 노동은 {법철학}에서는 욕망체계  중의 한 요소로서만, 그리고 욕망의 다음 위치에서 해명되고 있다. 여기서 헤겔이 관심을 갖는 바는 노동이 욕망충족의 단순한 수단임에 그치지 않고 자유에의 교양을 향한 한 구실을 한다는 점이다. 근대사회에서 욕망이 다양화 추상화되는 것에 상응하여 노동도 추상화된다. "노동에서의 보편적이며 객관적인 요소란 ...... 노동분업을 낳게 하는 추상화작용으로 나타난다."(Rph,   198) 노동분업은 노동을 더욱 단순화시키고 생산량의 증대를 가져온다. 그런데 여기서 헤겔이 보다 강조하고 있는 바는 욕망의 경우에서처럼 노동분업을 통한 "인간 상호간의 상호의존성과 교호관계"(Rph,   198)의 심화현상이다.  
이 현상을 헤겔은 "주관적 이기심이 모든 타인의 욕망충족에 기여하게 되는 ...... 변증법적 운동"(Rph,   199)으로 이해하는데, 이러한 전면적 상호의존성 속에서 산출된 생산물을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재산das (Verm gen)"(Rph,   199)이라 한다. 쉽게 표현하여 이것은 사회 전체의 생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회의 보편적인 재산이 각 개인에게 분유 분점될 때, 각 개인은 그의 기본재산이나 기능의 차이 때문에, 또 타고난 육체적 정신적 성향이나 소질의 차이와 같은 요소들 때문에 사회적 재산을 불평등하게 분유할 수 밖에 없다. 헤겔은 시민사회 속의 이러한 불평등을 당연하면서도 필연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이제 욕망의 체계의 두번째 주제를 살펴보자. 욕망과 노동은 그 세분화 추상화 과정을 거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상호간의 보편적 연관성을 낳기도 한다. 즉 시민사회에선 "욕망과 그 수단, 노동, 그리고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식과 이론적 실천적 교양의 특수한 체계들"(Rph,   201)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계층 또는 신분(der Stand)이다. 이것은 욕망의 체계 속의 비본질적인 특수성을 추상하고 난 다음, "활동의 추상적 보편적 개념에 따라 ...... 규정된 류(die Gattung)"로서, 욕망의 체계의 관계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물질적 의존성을 매개하여 상호의존이라는 인륜적 관계로 만든다. 근대사회에서 개인은 계층에 속함으로써만 보편자가 되며 인격이 된다.
헤겔의 {법철학}에 있어 이 계층은 "개념에 따라 실체적 내지 직접적 계층과 반성적 내지 형식적 계층, 그리고 보편적 계층으로 규정된다."(Rph,   202) 처음의 실체적 계층은 농민과 귀족으로 이루어지며, 보수주의적 의식이 지배한다. 이들은 "토지의 자연적 산물을 자신의 재산으로 하기 때문에 ...... 반성적인 사려나 독자적 의지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생계양식을 취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가족관계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직접적 인륜의 실체적 심정을 간직한다."(Rph,   203) 두번째 반성적 계층은 개인주의적 의식이 지배하는 상공인 계층이다. 이 계층은 "자연산물의 가공형성을 그 업으로 하고 그의 생계수단을 위해서는 자기의 노동, 반성작용 및 오성능력과 함께 또한 본질적으로 타인의 수요와 노동의 매개에 의거한다."(Rph,   204) 그 중에서도 수공업계층은 개인의 수요에 매우 구체적으로 부응하는 노동을 하고, 공업계층은 이에 비해 "좀 더 추상적인 집단적 노동"을 행하며, 상업계층은 "보편적인 교환수단으로서의 화폐를 통하여 개별화된 수단을 상호교환하는 일을 한다."(Rph,   204) 상공인 계층은 철저하게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동력이자 산물로서  "인간의 창조적인 힘과 개인주의, 법, 질서의 정신을 대변한다."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계층은 보편적 계층 즉 관료계층이다. 이 계층은 "욕구충족을 위한 직접적 노동은 면제받으며", "사회상태의 보편적 이익를 그 업무로 한다."(Rph,   205) 그것은 시민사회의 자기중심주의와 국가의 보편성 간의 결정적 연결점이다. 두번째 계층의 추상성을 떨치지 못했던 보편성은 이 계층에 와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것이 된다.
헤겔은 이러한 계층분화의 원인에서 그 근대적 성격을 엿보고 있다. 그가 볼 때 근대에서는 개인이 어떤 계층에 속하느냐 하는 것은 소질이나 혈통 환경 등 외적인 요소보다는 각 개인 자신의 "주관적인 의향과 특수한 자의"(Rph,   206)에 달려있다. 헤겔은 직업선택은 물론이고 삶을 영위하는 원리를 근대 특유의 내적인 주체성의 원리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주체성에 근거를 둔 계층이 어떻게 사회통합적 보편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난점이 따른다. 또 헤겔은 계층을 통해 사회의 보편적 결속의 계기를 마련코자 했으나,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근대사회의 계급은 오히려 적대적인 성격을 노정하지 않았는가 하는 역사적 현실의 벽에도 부딪혔다. 이런 약점들  때문에 19세기에 헤겔 {법철학}의 영향사는 매우 짧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이런 약점이 절대화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의 계층이론의 난점은 그가 근대 주체성의 원리를 극복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계층 자체가 그것만으로써는 완전한 보편성의 담지자가 되지 못한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층에 의한 유적 보편성의 확립은 헤겔에게는 아직 불완전한 것일 뿐이다.

5-2-4. 司法

시민사회의 두번째 계기는 사법이다. 그것은 시민사회 속의 상호의존관계나 거기서 성립한 각자의 소유권 내지 인격에 대한 보편적인 상호인정의 장치를 다룬다. 특히 시민사회는 노동을 통해 개인이 획득한 소유권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보호받도록 해야 하는데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이 제정법 (das Gesetz)과 재판(das Gericht)의 문제이다.
{법철학} 1장의 추상법과는 달리, 법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현실적인 힘을 행사하고 보편타당한 것으로 알려질 때 객관적 현실성을 지닌다. 이러한 법의 객관적 현존재가 제정법, 혹은 실정법이다. 헤겔에 의하면 법은 "제정법이 됨으로써 비로소 보편성의 형식을 갖출 뿐만 아니라, 그의 참다운 규정까지도 획득한다."(Rph,   211) 즉 제정법에 있어서야 법의 "내용이 명확한 보편성 속에서 인식된다."(Rph,   211) 이는 법이 단순한 강제일 수는 없고 모든 개인에 의해 인식되고 의지적으로 수용될 수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으로서, 주체성이 제정법의 필연적 요소가 되었음을 뜻한다.
헤겔은 이 점을 관습법과의 대비를 통해 밝히고 있다. 관습법은 제정법처럼 그 자체 사상으로서 존재하고 알려지는 것이긴 하나, "주관적이며 우연적인 방법으로 깨우쳐지는 것이어서 대자적으로 불명확하고 사상의 보편성도 불분명할 뿐더러 이 법에 대한 지식이 ...... 다만 소수인에 의한 우연적 소유에 지나지 않는다."(Rph,   211) 이렇게 볼 때 법이 그 형식이나 내용 모두에 있어서 명확한 규정성과 보편성을 지니지 못하는 한, 근대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소유권의 보호와 이를 통한 자유의 보편적 실현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정법은 그것이 개별사례에 적용될 때에는, "개념에 의해서는 규정되지 않은 양적인 것의 영역에 개입하는"(Rph,   214) 까닭에 우연성을 내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감옥형이라는 형벌의 양을 1년으로 할 것인가  300일로 할 것인가는 이성적 개념적 규정이 불가능한 경우인 것이다. 따라서 제정법의 보편적 적용가능성에 있어서, 이와 같은 우연성은 필연적 요소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제정법은 단순히 제정법으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일반에게 보다 광범위하게 주지되어 있어야 한다. 헤겔은 이것을 사법의 두번째 항목인 "제정법의 현존재"에서 논하고 있는데, 이러한 법의 주지성과 관련하여 세 가지를 논하고 있다.
첫째로 법전은 그것이 공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성을 요구하기도 하나 또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는 새로운 법률적 규정을 필요로 한다. 헤겔은 이러한 "이율배반성"을 "확고부동한 보편적 원칙을 특수화하는 데서 생겨나는"(Rph,   216) 불가피함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완성된 법전에 대한 독일적 병폐라고나 할 요구나, 어떤 법전을 불완전한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태도는 다같이 법의 본성을 모르는 데서 나오는 소치인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私法의 형식성 요구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소유와 관련하여 어떤 것을 나의 것으로 인정하게 해줄, 가령 경계를 나타내는 경계석이나 저당등기부나 소유명세서와 같은 어떤 형식적 지표가 필요하다. 사법은 법이나 권리인 것을 "안정성과 확실성 및 객관성"(Rph,   217)을 갖춘 형식을 통해서 여실하게 정립한다.
마지막으로는 제정법의 공공성과 관련하여 형법이 논의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 소유나 인격에 대한 범죄적 침해는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침해인 것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으로 다른 구성원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는 형벌을 통한 본보기로서 중형이 내려지는가 하면 안정된 사회에서 범죄의 처벌에 좀 더 관용이 베풀어지기도 하는 것도 법의 공공성 때문이다.        
사법의 마지막 부분은 법정 혹은 재판이다. 법의 행사는 사적인 이해관계에 좌우되어서는 안되고 보편적인 것으로서 그 효력을 발휘해야만 하는데, 어떤 사건을 놓고서 이처럼 보편적인 입장에서 법을 인식 실현하는 것이 "공권력 즉 재판"(Rph,   219)이다. 이는 예나 시대 때부터 그가 지녀온 생각이었다. 재판이 법의 참다운 실현을 비로소 보장한다는 그의 생각은 "사법과 소송은 법의 수행이다. ...... 소송이 법률 그 자체 보다도 훨씬 본질적이다"(PG2, S. 248)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헤겔에 있어서 재판은 "왕이나 정부 쪽에서 베풀어진 한낱 마음내키는 대로의 호의나 은혜"가 아니며, "부당한 강제력의 행사나 자유의 억압 및 전제"(Rph,   219)도 아니다. 그것은 공권력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재판에 의해 "주관적 우연적 보복은 법의 자기자신과의 진정한 유화인 형벌로"(Rph,   220) 전환된다. 이는 근대에 들어 이미 사회질서의 유지수단이 인격 대 인격이라는 특수적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고 보편적이고 공정한 법적 절차를 통해서만 가능케 되었음을 의미한다.
헤겔은 여기서 사법과 재판을 통해 각 개인의 자유가 확보되는 데 요구되는 몇가지 중요한 절차를 논의한다.
첫째로 그는 소송의 행위는 수단이어야 할 그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때로는 "해악과 불법이 행해지는 도구가 될 수도 있으므로 ...... 권리를 재판의 절차나 그것의 남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 법적 재판의 절차 이전에 간단한 중재재판(Billigkeitsgericht)의 제도를"(Rph,   223)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로는 앞의 제정법에서 요구되었던 사법의 공개성이 여기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는 사법의 항목에서 "주체적 의식의 권리 (das Recht des subjektiven Bewu tseins)" 혹은 "주체적 자기의식의 권리"를 여러 차례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사법절차나 제도의 공포 및 실현의 과정에서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법에 정통한 법률가가 아니더라도 개개인이 모두 법에 대한 인식을 요구할 수 있으며 법적 절차의 정당성에 대해 스스로 확신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근대사상의 주체성의 원리가 법적 제도의 영역에서 구체화된 것으로서 근대의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시민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당연한 요구이다. 나아가 이것이야말로 근대적 보편성이 단순한 형식성의 차원을 넘어서 즉자대자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데 불가결한 요소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사법의 공개성도 바로 이러한 "주체적 의식의 권리"에서 나오는 요구이다.
이러한 권리와 관련하여 헤겔이 이야기하고 있는 세번째 내용은 배심재판(Geschworenengericht)이다. 헤겔에 의하면 재판의 업무에서는 사건을 그 직접적 개별성에 따라 실체적으로 규정하는 사실의 확인작업과, 사건을 법률 아래로 포섭하는 일이 구별된다. 이 중에서 후자의 업무는 재판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재판관은 사건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포섭되어 ...... 그것이 인정된 사실로, 그리고 보편적 의미를 부여받은 것으로 고양되어 있을 때에야"(Rph,   226) 판결의 업무룰 시작한다. 그리고 소송당사자의 자기의식의 권리는 법률이 공포되어 있고, 재판관이 사건을 그 법률 아래 포섭하는 공개적인 과정 속에서 충족된다.
그러나 재판의 첫번째 업무인 사실의 확인은 "교양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Rph,   227) 개개의 행위나 사건에 있어서는 "행위자의 견해나 의도와 같은 주관적 계기가 본질적인 의미를 가지며", 이 때 사건의 인식이나 성격 결정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관적 확신이나 양심"(Rph,   227)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확신이 재판정에서 과연 어떠한 형식을 띠고 나타나야 할 것인가"(Rph,   227)이다. 이의 가장 대표적인 형식이 자백인데, 이것은 범인 쪽의 자기의식의 권리가 충족되는 장점은 있으나, 만약 범인이 범죄사실을 부인할 때는 난점에 봉착한다. 그러나 이 때라고 하더라도 재판관의 주관적 신념이 곧바로 타당한 것으로 되어서는 안된다. 헤겔은 여기서 "유죄 무죄의 판결은 범인의 마음 속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이어야 한다"(Rph,   227)고 요구하면서 이를 위해 배심재판의 도입을 주장한다.
배심재판에 있어서 사건당사자는 사건의 주관적인 내용에 관하여, 특수성 및 계층 등등의 면에서 자신과 동등하다고 판단되는 배심원이 내린 결정을 신뢰한다. 헤겔에 의하면 사건당사자의 자유확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판에 대한 신뢰, 즉 자기의식의 권리의 충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재재판제도, 사법의 공개성, 배심재판제도 등과 관련된 헤겔의 요구는 근대의 사법이 단순히 추상적 형식적 보편성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며, 각 개인의 특수성과 주체성 등을 포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민사회의 두번째 요소인 사법을 살펴보았거니와, 이념의 자기상실과 분열로부터 시작된 시민사회는 이 사법을 통해서 각 개인의 주관적 특수성과 추상법의 의미에서의 즉자적 보편자와의 통일로 복귀한다. 그런데 시민사회의 법은 내가 소유하는 것의 보호에만 관계하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개인에게 가장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 복지(das Wohl)에는 외면적일 뿐이다. 이제 법으로서의 보편자가 나의 복지, 특수성의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즉 복지의 보편적 실현이 과제로 등장한다. 헤겔에 의하면 앞에서의 통일이 "특수성의 전범위로 확대되어 실현되는 가운데 우선 상대적 합일을 이룬 것이 경찰행정이고, ...... 제한되어 있긴 하면서도 구체적 총체성을 이룬 것이 직업단체이다."(Rph,   229)
특수성으로서의 각 개인의 가장 큰 관심은 생계나 복지이다. 그러나 이 복지가 시민사회 속의 욕망의 체계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많은 제약들을 안고 있다. 소유나 인격의 침해가 있기도 한다. 시민사회의 두번째 요소인 사법은 이와 같은 침해의 조정과 보상에 그칠 뿐 보편성과 복지의 확대와 같은 적극적 기능은 하지 못한다. 시민사회에서 "특수성 속에 깃들어 있는 현실적 권리는 각기 저마다의 목적을 가로막는 우연성이 지양되고 또 인격과 소유의 완벽한 보장이 구현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개별자의 생계와 복지의 확보를, 즉 특수적인 복지가 권리로서 취급되고 또 실현될 것을 요구한다."(Rph,   230) 이리하여 시민사회는 "욕망의 체계와 사법체계 속에 상존하는 우연성에 대해 미리 배려하면서 ...... 특수적 이익을 공동이익으로 관리하는"(Rph,   188) 경찰행정과 직업단체의 대두를 보게 된다. 

5-2-5. 경찰행정

헤겔이 볼 때 고대 도시국가에 있어서는 국가와 사회의 분열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치의 보편적 이념이 사적 개인들의 관심과 심한 대립을 빚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사회는 이미 사인으로서의 시민들이 사법적으로 질서를 이루고 있는 이익체계로 변했고, 국가는 이를 통제하기 위해 여러 법적 관료적 체제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시민사회 내에서의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복지를 위한 여러 정책을 수행하는 국가의 공적 활동, 즉 "자기분화된 사회에 대한 국가의 행정 일반"을 헤겔은 경찰행정이라 부른다. 폴리짜이의 이런 의미는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될 수 없기는 해도,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경찰 개념의 범위를 훨씬 뛰어 넘는다. 헤겔은 이 한계 속의 경찰행정의 활동을 질서유지의 측면과 경제정책, 사회정책의 측면에서 살피고 있다.
사법적 침해에 의한 범죄가 아니더라도, 시민사회 내에선 사적 행위들이 우연적 요소들 때문에 타인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경찰행정은 이런 경우에 일정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세분된 규정이나 고려는 그 어떤 절대적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습속이나 그밖의 헌법의 정신, 그리고 그때마다의 상황이나 순간의 위험성 등"(Rph,   234)에 따를 수 밖에 없어서, 결과적으로 경찰행정은 질서유지 활동에 부수되는 어떤 불미스러운 면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된다.
한편 경찰행정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경제활동을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감독 관리하는 일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요충족의 수단을 마련하고 교환하고 관리하는 일반적 업무나 공익시설의 감독 관리와 같은 일, 생산자와 소비자를 매개 조정하고 상품을 검사하는 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사회정책과 관련하여 경찰행정은, 과거 실체적 전체로서의 가족에 의해 생계나 부양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이제는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시민사회의 아들"(Rph,   238)이 되어버린 개인들을 보호하고 그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 즉 경찰행정은 이 개인들의 교육에 대하여 그 부모를 대신하여 감독하고 간섭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 안에서는 "낭비에 의하여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계의 안전을 파괴하는 사람들"(Rph,   240)이 생겨나는데, 경찰행정은 이들에 대하여 후견자 노릇을 해야 하고, 우연적이고 신체적인 사정들 때문에 생겨난 빈민들을 구제해야 한다. 물론 빈민의 구제는 주관적 심성과 사랑에 바탕을 둔 도덕성 혹은 시혜나 기부와 같은 자선사업에 의해서도 행해질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것이어서 가능하면 공적인 구제책에 비해 줄어들수록 좋다. 이 점은 사회현실에 관한 헤겔의 관심이 이미 단순한 윤리학이나 주관적 도덕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헤겔은 빈곤의 문제가 시민사회에게 그 가장 커다란 내적 모순을 안겨주리라 생각한다. 노동의 사회인 시민사회는 그 성원 각자에게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서 자립성과 인정을 얻도록 요구하지만, 그 성원 모두가 그것을 얻지는 못한다. 인구의 팽창을 한 계기로 하여 산업의 진보와 부의 축적을 증대시켰던 시민사회는 이 때문에 바로 그 계기가 낳은 실업의 문제에서 이율배반에 부딪히게 된다. 즉 일자리를 만들지 않은 채 도움을 주는 복지정책은 그 성원의 자긍심은 물론이고 노동을 통한 인정획득이라는 시민사회 고유의 원리까지도 손상시킬 것이고, 또 노동의 기회를 창출하는 조치 또한 과잉생산과 구매력의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무역과 식민지화에서 그 돌파구를 모색해 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cf. Rph,   247-248) 결국 시민사회는 "자유의 현존재의 상실"과 사회로부터 배제된 소외집단의 출현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빈곤은 경제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법적 문화적 도덕적 의미로까지 확대되어 소외의식을 동반한 "천민(der P bel)"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이렇듯 시민사회의 경찰행정에 의한 경제적 사회정책적 배려는 결국에는 "우연성의 영역과 외적 질서"(Rph,   231)에 머무를 수 밖에 없고, 또 그 구성원이 지닌 특수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헤겔은 주장한다.

5-2-6. 직업단체

경찰행정은 시민사회 구성원의 외부에서 그들의 특수한 목적이나 이익을 보편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성립한 외적인 기구이다. 그것은 특수이익과 보편적 조직 간의 이 통일성을 특수성의 전 범위에까지 확장시켰다. 그러나 경찰행정에선 개인들의 이익이 국가의 보호 하에 놓여있는 만큼 이와 같은 통일성은 상대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직업단체는 시민사회 구성원 내부에서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된 내재적 산물이다. 그것은 시민사회의 노동제도 속에서 고립화되어가는 개인들, 특히 본질적으로 특수성이 강한 상공인 계층에서, 그들 특수성이 동질적으로 지니는 보편성을 목적으로 하여, 일종의 협동조합의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헤겔은 이것을 "시민사회 속으로 복귀한 내재적인 것으로서의 인륜적인 것"(Rph,   249)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직업단체는 국가의 기구는 아닌 까닭에 "공권력의 감독을 받으면서 ...... 그 독자적 이익을 추구하고 ...... 한정된 일정한 수의 성원을 받아들이며 ...... 또 그 소속원을 위한 제2의 가족역할을 떠맡는다."(Rph,   252) 이 제2의 가족으로서의 직업단체의 역할에서 헤겔은 상당히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즉 가족은 직업단체를 통하여 그 능력에 따른 생계보장과 고정재산을 확보할 수 있고, 개인들은 직업단체에 대한 계층적 귀속감에서 긍지를 얻을 수도 있다. "천민발생의 한 요인이었던 상공인 계층의 사치와 낭비벽은"(Rph,   253), 직업단체에 속하지 못함으로써 계층적 긍지가 결여되어 있고 계층고유의 일반적 생활양식도 갖지 못한 일부 성원들이, 자기인정을 위해 무한히 과시욕 탐욕만을 추구한 데서 빚어진 모습일 뿐이다.
또 직업단체 내에서는 그 소속원끼리의 공동체적 동류의식이 형성되므로, 빈곤과 관련된 구제의 행위나 수혜에 있어서, 우연적 요소나 수혜자의 자존심 하락 같은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이처럼 내재적 인륜으로서의 직업단체는 시민사회 성원의 정체성 확인과 그들의 윤리적 심성의 도야에 있어서도 경찰행정이 하지 못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직업단체는 가족에 이어 국가의 두번째 인륜적 기초가 되고 있고, "직업단체에의 소속감이 주는 긍지"(Rph,   255)는 가족에서의 혼인의 신성함과 더불어 시민사회를 존립시키는 핵심적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단체는 "더욱 고차적인 국가의 감독을 따르지 않는다면, 화석화되고 황폐화됨으로써, 하등 보잘것 없는 결사체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Rph,   255) 왜냐하면 시민사회 속에서의 직업단체의 목적은 여전히 제한된 유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개인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확대시키는 데 있어 시민사회가 갖는 근본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함을 직업단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읽고 있는 것이다.

5-2-7. 헤겔 시민사회론의 의의

오늘의 시민사회는 그 의미도 많이 확대되었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그 동안 사회변화의 많은 경험을 축적하였다. 이 축적된 경험에서 오는 자기 적응력은, 여전한 경제적 이기의 강한 토대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존립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국가에 의해 지양되리라는 헤겔의 주장도, 실제의 역사에 의해 적절히 반박되었다. 즉 시민사회는 확대된 국가기능 앞에서도 영합게임처럼 그 기능이 축소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특히 민주주의의 발전과,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에 의해서만 해결가능한 사회적 문제들 앞에서 시민사회의 중요성과 그것에게 부과된 요구는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도 시민사회에 관한 이론의 역사적 흐름과 상호비교를 다룬 글들이 더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시민사회론은 현대사회에까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특수한 여러 요소들을 가장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시민사회론은 그의 정치철학에서 가장 획기적이고 뛰어난 부분으로서 내적으로는 철저히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분석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분석을 당대의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수용함과 동시에 이를 넘어서 자유의 이념의 발전이라는 철학적 지평 위에서 수행하는데, 여기서 그는 시민사회를 그의 철학 특유의 역사변증법 안에 포섭하여 사회발전의 총체성 속의 필연적인 한 국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헤겔의 시민사회론에 대한 우리의 일차적인 관심은 근대 인륜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시민사회의 여러 기구들에서 부르주아적 주체성은 어떻게 드러나고 제어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헤겔은 이것을 특수성의 보편성으로의 발전이라는 범주적 상승을 담은 제도들의 성립으로 설명하였다.

헤겔은 근대에 새로이 등장한 부르주아적 신질서를 표현하기 위해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것은 개인의 해방과 사회와 국가의 분열로 대변되는 특수성의 무대이다. 이 근대적 특수성이 근대사회의 발전에 있어서나 그 이론구성의 내용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근대 시민사회는 이념적 보편성은 여전히 가능성으로만 남은 채 특수성의 자기발전이 펼쳐지는 곳이다. 즉 그 특수성은 욕망과 노동과 사유재산에서, 사법적 제도에서, 그리고 경찰행정과 직업단체 등 시민사회 전반에서 기본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 속의 제반 요소들은 특수성만을 지닌다면 결코 존립할 수 없다. 그 특수성은 상대적일지라도 일정한 형태로 보편성과 통일을 이루어야 하고 또 그것에 의해 제어되지 않으면 안된다. 시민사회는 그 각 계기마다에서 그러한 보편성을 스스로 산출한다. 그러나 헤겔은 궁극적으로는 그 보편성을 시민사회의 외부에서 구한다. 그는 그것을 근대에 들어 경제적 사회로서의 시민사회와 구별되어야 할 국가에서, 즉 보편주의적 원리에 기초한 정치사회로서의 국가에서 찾는다. 그에 있어서는 오직 이성적 국가만이 근대 시민사회의 자기해체적 모순을 해소하고, 인간의 이성적 삶을 가능케 한다.
그의 시민사회론에 대해서는 몇 가지 난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근대사회에 관한 과학적 이론에 근접해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가 많다. 그것은 아마도 그 이론이 구체적으로 주어진 근대의 객관적 현실을 분석한 결과이기 때문이리라. 적어도 시민사회론에 있어서만큼은 사변적 논리구조를 앞세워 실제의 현실을 구성해내는 방법은 많이 절제되고 있다. 일팅은 헤겔이 시민사회의 한 규정인 "완전한 상호의존의 체계"를 흔히 생각되듯 자유의 개념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아니고 인간의 욕망충족을 위한 인간학적 역사적 조건들로부터 전개시켰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헤겔은 자유 개념의 발전을 재구성함에 있어서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실재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겔 자신도 {법철학} 서문에서 이념 자체는 역사현실의 발전과 걸음을 같이 하나,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 형성과정을 완성하여 스스로를 마무리하고 난 다음에라야 비로소 시간 속에서 현상화된다"(Rph, S. 28)고, 또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Rph, S. 28)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그의 시민사회론에 가장 부합되는 언급이 아닌가 생각된다.

5-3. 완성된 인륜으로서의 국가

5-3-1. 시민사회와 국가의 구분

앞 장에서처럼 헤겔은 시민사회 내의 긍정적 요소 못지 않게 부정적 요소 또한 인식하고 있었지만 국가론으로 향한 보편화 전략에서 이 후자의 요소를 의식적으로 무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정치철학의 과제는 사회의 혁명적 해체가 아니라 분열되어 있는 근대를 다시 통합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가 시민사회의 극복할 수 없는 반인륜적 요소 앞에서도 혁명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국가라는 대안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헤겔적 구분은 근대가 '국가 또는 시민사회' (civitas sive societas civilis sive res publica)라는 전통적인 동일성 정식으로써는 더 이상 정확히 인식될 수 없음을 반영한다. 전통적인 사회는 '국가' 혹은 '시민사회'의 어느 개념으로 지칭되든 동일한 대상을 지시하였고 그런 한에서 두 개념은 구분되어야 할 아무런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헤겔은 근대를 분열의 시대로 인식한다. 여기서 헤겔은 분열된 현실에 대해 개념의 분화로써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많은 근대인들이 이 두 개념을 구분하려 했지만 이론적으로 보다 명확하고 체계적인 구별을 한 이는 헤겔이었다.
일반적으로 헤겔의 정치철학은 현실적인 것 속의 이성적 요소를 발견하고 이성적인 이념의 현실적 전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이해되고 있다. 그런 한 그의 인륜이론은 시민사회보다는 국가로의 편향성을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엄밀히 살펴볼 때 그의 국가개념은 당대의 현실해석 수준의 개념이 아닌 일종의 미래기획적인 개념이었다. 또 당대에 그가 접했던 국가의 모습도 단일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념으로서의 국가가 이야기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 실재로서의 국가가 이야기되는 곳도 있다. 한 예로 헤겔이 1815년경 수호하는 듯이 보이는 국가는 그 이전 1802년의 예나시대에 비판대상에 불과했던 체제였다. 그의 정치철학의 발전과정에서 사회 정치적 질서가 완전히 바뀐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그를 국가주의자로 칭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국가를 통한 시민사회의 극복을 주장하는 그는 시민사회 우선주의자는 더욱 아니다. 근대현실의 복합성이나 그의 이론구성의 복잡한 요소들을 감안한다면 그의 정치철학은 단순화시켜 이해할 대상이 결코 아닌 것이다.
헤겔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근대사회의 정치적 모습이 과연 바람직한 형식을 갖춘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삶의 형태가 '시민사회 내지 국가'로 불리워지던 인식적 미분화는, 그런 동일성 정식이 통용되던 사회와는 너무나 다르게 변해버린 근대의 상황에서 사회의 이성적 실현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모호하게 만들고 말았다. 헤겔에 의하면 인간의 정치적 삶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라면 시민사회 내지 국가로 묘사되곤 했던 근대의 독일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었고 극복되어야 할 '국가'였다.
그 이전의 철학자들이 생각했듯, 국가가 "소유 및 개인적 자유의 안전 및 보호를 사명으로 하고, 개별자 자신의 이익이 모든 개별자가 추구해야 할 궁극목적이 된다면"(Rph,   258)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규정일 뿐이다. 국가의 본질적인 면모는 그 실체성과 보편타당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헤겔의 반대자들은 그의 국가개념을 들어 그를 전체주의적, 혹은 권위주의적, 보수주의적이라고 비판해 왔고 국가주의자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헤겔은 그의 국가개념을 현실적으로 대변할 만한 어떤 기존의 국가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실질적인 근대국가 이론보다도 자유의식의 현상학이 우위에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국가의 이념을 다루었을 뿐이다. 독일이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고 한 그의 말은 바로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한 예로 당대의 프로이센은 "기계적, 위계적, 권위주의적 정치구조의 축소판"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1815년 경 이후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뷔르템베르크 왕국에서 행정적 사법적 개혁이 진행된 당대의 독일에 대해서는 국가가 인륜적 이념에 접근해가고 있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그는 현존하는 어떤 국가도 국가의 이념과 동일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존의 국가를 극복되어야 할 국가인 시민사회로 이해하기까지 한다.
시민사회와 구별된 헤겔의 국가의 이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형식으로 현상한다. 첫째는 직접적 현실성인 헌법 혹은 국내법으로서의 개별적 국가이고, 둘째로는 국가들 간의 상관관계로서 나타나는 국제법, 세째로는 세계사의 과정 속에서 유로서 나타나는 보편적 이념이다. 이러한 세 형식 중 그의 서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국내법에 관한 부분이다. 여기서는 한 국가가 국가로서 존립하기 위한 내부체제적 요소들과 전쟁과 군대의 문제를 다루는 대외주권의 요소가 다루어지고 있다. 전자는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을 헤겔 자신의 입헌군주제의 방향으로 재해석한 논의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인륜의 완성으로서의 국가에 관한 우리의 논의는 주로 이 부분을 참조하게 될 것이다. 이하에서는 국가의 인륜적 우위성은 어떤 규정으로부터 나오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시민사회와 국가 양자를 매개시키려는 헤겔의 방안, 입헌군주제 등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5-3-2. 국가의 인륜적 우위성

{법철학}에서 헤겔의 국가는 "구체적 자유의 실현"(Rph,   260), "그의 보편성에로 고양된 특수적 자기의식 안에 실체적 의지가 간직하고 있는 이 의지 자체의 현실태로서, 즉자대자적으로 이성적인 것", "세계 내에서의 신의 발자취", "자신을 의지로서 실현시키는 이성의 힘"(Rph,   258), "스스로를 현실적인 형태와 세계의 조직으로 전개시키는 현재화된 정신으로서의 신적 의지"(Rph,   270) 등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런 제규정들은 다른 인륜 형식들에 비해 국가가 갖는 규정들인가 하면 그 인륜적 우위성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여러가지 상이한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그 규정들은 인륜적 요소들 간의 대립성이 궁극적으로 통일되었음을 나타낸다. 그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먼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국가는 인륜적 완성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개인은 국가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 속에서 그 특수적 이익이 완전히 발양되고 보편적 이익으로 인정받는다. 즉 인륜적 이념의 발전에서 볼 때 근대 국가는 주체성을 원리로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국가의 본질은 보편적인 것이 특수성의 완전한 자유 내지는 개인의 행복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 따라서 가족과 시민사회의 이익이 국가로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또한 목적의 보편성은 ....... 특수성의 독자적인 지와 의욕이 없이는 진척될 수 없다는 데 있다. ......... 이렇듯 두 계기가 저마다의 힘을 지님으로써만 국가는 하나의 계통을 지닌 참으로 유기적인 국가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Rph,   260)
물론 이전의 사회계약론에서도 국가는 개인적 관심과 이익의 대변자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개별자들 간의 이념이 결여된 사적이고 자의적인 결합체에 불과하였음은 이미 지적하였다. 그에 의하면 완전한 인륜으로서의 국가는 근대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주체적 자유 내지 주체적 권리가 결여되었거나 아니면 소유개인주의에 토대를 둔 이기적 개인들의 집합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국가는 개인에 대하여 외적인 힘이자 내재적 목적이 되기 때문에 국가 안에서의 개인의 의무와 권리는 절대적 동일성으로 규정된다. 즉 "국가가 의무로서 요구하는 것은 곧 직접적으로 개인의 권리이기도 한 것이다."(Rph,   261)
2) 또한 국가는 헌법을 통하여 개인에 대해 "실체적 인격으로서의 현실성"(Rph,   264)을 지닐 수 있게 한다. 즉 국가는 개인을 통해 정치적 지조라는 주관적 실체성을 확보하는가 하면 헌법을 통해 객관적 실체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cf. Rph,   267) 국가가 개인의 주체적 요소를 받아들이되 우연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제도를 통한 확고한 기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3) 헤겔은 {법철학}에서 이례적이라 할 만큼 긴 하나의 절에서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cf. Rph,   270) 그에 따르면 양자는 엄연히 차이성을 갖는 것으로서 구분되어야 하며 다른 한 편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야 한다. 종교는 감정, 표상 및 신앙의 형식으로 표현된 절대자에의 관계이다. 특히 자유의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내면성의 권리에 기초한다. 그러나 주체적 자기의식의 권리에만 몰두해 있어서 자기의 주체성을 진리의 인식으로, 객관적인 법과 의무에 대한 자각으로 고양시키려 하지 않는 편협함은 종교와 국가의 유기적 연관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잘못이다.
이에 비해 국가는 스스로를 현실적인 형태와 세계의 조직으로 전개시키는 현재화된 정신으로서의 신적 의지이다. "정신이란 자유롭고 이성적인 것으로서 즉자적으로 인륜적인 것이며 또한 참다운 이념은 현실적인 합리성을 뜻하는 가운데 바로 이 현실적 합리성이란 다름아닌 국가로서 존재한다."(Rph,   270)
종교가 진실한 것인 한 그것은 오히려 국가를 인정하고 확인해 줌으로써 종교도 또한 그 자체로서 스스로의 지위와 외양을 갖춘다. 즉 종교적 교의의 영역이 양심 속에 있으며 자기의식의 주체적 자유의 권리 속에 있되, 여기서 국가가 신의 왕국으로 통하는 입구나 유한한 것의 왕국 정도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가는 종교를 억압하는 기구가 아니라, 오히려 교단으로 하여금 그 종교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국가는 자신에 대한 직접적 의무마저도 종교적인 이유에서 인정하지 않는 그러한 교단조차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헤겔에서 이런 부분은 시민사회에 맡겨져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가 하면 교회도 국가의 권리에 부당하게 월권해서는 안된다. 헤겔은 교회의 내면적 주체적 신념과 국가의 지적 측면 이 양자가 구분되어야 하면서도 바로 이 점이 통일의 지점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왜냐 하면 국가가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여 내면성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교회도 국가만이 가질 수 있는 외적 형벌을 부과하여 포악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종교가 특수적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면에 걸쳐 관여하려 할 경우 그것은 광신 바로 그것이 될 테고 일체의 법률은 파기되면서 주관적 감정이 입법자가 되고 말 것이다. 종교의 터전 위에서는 모든 것이 주체성의 형식을 지니는 데 반하여 국가는 스스로를 실현시키면서 자기의 제규정에 확고한 현존재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종교에 대한 자신의 인륜적 우위성을 확보한다.

5-3-3. 시민사회와 국가의 매개

우리는 앞에서 근대사회의 통일성이 확보되는 데 시민사회가 어떤 긍정적 기능과 한계를 갖고 있는가를 살펴 보았는데, 이제 보편적 통일성을 향한 인륜적 이념이 어떻게 시민사회와 국가의 매개관계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살펴 보기로 한다.
{법철학}에서의 헤겔의 사회 통합 전략은 근대의 시대현실 만큼이나 복합적이다. 가족과 시민사회에 의한 사회통합의 측면이 있는가 하면, 국가의 통합기능이라 해서 항상 완전하고 보편적이지만도 않기 때문이다. 또 그는 시민사회를 극복해야 될 것이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이성적 실현의 매개체로 본다. 그러므로 단순히 현대의 사회전략과 관련하여 시민사회냐 국가냐의 양자택일적 전략이란 그에게 무의미하다. 그에게는 근대의 자각된 주체성을 수용할 수 있는 인륜으로서의 국가가 문제였다. 우리는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회통합의 구조를 통해, 헤겔이 단순히 국가주의자도 반국가주의자도 아님을, 그리고 국가주의적 전략도 결국 시민사회의 매개를 통하지 않고는 추상적일 수 밖에 없음을 보이고자 한다. 먼저 시민사회적 통합의 한계부터 논해보기로 하자.

a. 사회통합의 제유형

코헨은 헤겔의 시민사회 개념이 근대 사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변명을 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양면적 이해를 요구한다고 한다. 가장 급진적으로 반인륜으로 그려지고 있는 욕망의 체계만 하더라도 소외의 세계이자 일종의 통합형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해서 그의 해석에 따르면 우리가 시민사회를 단지 소외의 세계로만 이해할 경우 사회통합은 오직 가족과 국가 수준에서만 고려되어 시민사회론에 대해서는 처방적 비판적인 차원만이 부각되고 비판의 관점은 낭만적 공동체주의나 혹은 여러 공화적 내지 민족주의적 형식으로 정당화되는 국가주의의 형식을 띠게 될 것이지만, 시민사회가 만약 사회통합의 형식으로만 해석된다면 이론의 記述的 순응주의적 경향을 가진 요소들이 부각되어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부정적 측면들은 간과될 것이다.
시민사회가 시장경제의 내적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는 한 그것은 참다운 체계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서 헤겔은 시장경제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체계 밖에 '사회적 통합'이 일어나야 한다고 한다. 이 때에야 비로소 체계적 통합이 안정적으로 실현된다. 나아가 코헨은 헤겔에서는 이전 철학자들과는 달리 이런 사회적 통합의 수준이 주권의 행사, 국가의 영역, 가족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시민사회와 국가까지를 망라한 중첩된 통합구조를 제시한다. 통합모델이 이러한 중첩적 구조를 지니는 것으로 보는 한, 헤겔의 {법철학}의 외형에서 보이는 시민사회 대 국가의 구조만으로 인륜 이념의 보편적 실현을 간단히 설명한다는 것은 분명히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즉 코헨의 설명에 따르면 통합의 논리는 시민사회 대 국가의 분리와 일치하지 않는다. 시민사회는 단순히 분열의 계기이고 국가는 오로지 보편성의 담지자라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적 대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코헨은 시민사회에도 국가에도 모두 국가주의적 통합의 요소와 연대주의적 통합의 요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이 국가와 시민사회의 구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헤겔을 단순히 국가주의자로 여기는 한 이런 관점은 오히려 장애가 되겠지만 그의 {법철학}을 근대사회의 통합을 위한 시도로 이해하는 한 이는 적절한 관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코헨은 시민사회 속의 사법-경찰행정-직업단체의 요소와 국가 속의 관료행정부-국회-여론의 요소를 한데 섞어 사회적 통합의 두 가지 논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사회에 대한 국가간섭의 논리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편적 계층, 경찰행정, 군주, 행정부의 시리즈이고, 둘째는 유대와 동일성이 자율적으로 발생되는 논리를 따르는 것으로 계층, 직업단체, 신분의회, 여론(die  ffentliche Meinung)의 시리즈이다. 전자를 "국가를 통한 통합의 전략"이라 한다면, 후자는 "시민사회를 통한 전략"이라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자.
전자의 기본적 사고에서 시민사회는 욕망의 체계의 병리적 역기능적 귀결들을 배태할 수 밖에 없는 반인륜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헤겔은 국가관료제를 매우 중요한 방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보편적 계층이자 "중간계층"(Rph,   297)인 근대적 공직자 계층을 통해 각 계층들 간의 적대감은 해소되며, 전통적 관료계층의 자기이해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성격도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직자에 대한 논의는 시민사회 장의 욕망의 체계와 국가 장의 통치에 관한 부분에서 다루어지고 있고, 따라서 관료계층은 "하나의 사회계층이면서 하나의 국가제도"로 여겨지고 있는 셈인데 여기에 그의 논의의 부적합성이 노출된다. 즉 공직자라는 보편적 계층은 사회적 노동분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 구성되며, 또 신분의회보다는 행정부에서 제도적 위치를 갖는다는 점에서 다른 계층과 다른데, 헤겔은 이런 차이를 거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료계층을 시민사회의 한 계층으로 제시한 것은, 그가 옹호하는 "국가간섭의 실제 수준을 위장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역기능적이고 심지어 권위주의적이기까지 하는 간섭의 책임을 국가로부터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의 주관적 변덕으로 돌려놓는 길도 되는 것이다."
한편 첫째 시리즈는 그의 경찰행정론에서 더욱 발전되고 있다. 그의 경찰행정 개념은 범죄나 불법행위의 예방과 공공질서 유지 이상의 기능을 한다. 그것은 가격통제, 주요 산업부문의 규제 등의 형태로 경제에 관여하며, 교육 자선사업 공공사업 식민지 개척 등의 형태로 된 공공복지의 일도 담당한다. 그러나 헤겔은 경찰행정의 근대적 역할을 욕망의 체계와 사법영역에서의 맹목적 필연성을 인륜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서 찾고 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절대주의적 통치가 지배하게 된 상황을 반영한다. 즉 그것은 "탈정치화된 사회와 정치적 국가와의, 행정을 매개로 한 결합"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헨은 경찰행정이 욕망의 체계의 동력 속에 놓여있는 두 다른 현상, 즉 개인들의 주관적 변덕과 부주의함이 빚어내는 원심적 역기능의 현상과, 그리고 전세계적 경쟁과 노동분업 위에서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근본원인들은 제거하지 못한 채 보상의 차원에 머문다고 한다. 시민사회에서 나타나는 빈곤문제와 같은 것도 관련 개인이나 가족, 공동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다. 결국 헤겔은 시민사회의 역기능과 관련하여 수평적 사회적 상호작용 및 유대에 의한 해결보다는, 국가간섭주의 내지 수직적 유대에 의한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다.
두번째의 시리즈에서 시민사회가 제 2의 가족, 보편적 가족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두번째 흐름의 기본적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헤겔에서는 가족의 통합역할이 시민사회에서는 부정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직업단체가 시민사회의 연대주의적 통합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의 직업단체 개념은 학회, 교회, 지방의회에까지 열려 있었지만, 주로 경제영역과 관련된 개념이었다. 그에게서 직업단체는 시민의 부르주아로서의 모습과 공민(citoyen)으로서의 모습을 매개시키는 사회화와 교육의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그것은 고대에서와는 다른 공적 자유의 터전이었다. 여기서 헤겔의 관심은 룻소처럼, 개인적 특수관심들을 어떻게 일반적 관심으로 이끌 수 있는가 하는 데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근대의 대규모 국가나 역동적 욕망체계를 갖춘 시민사회의 실재가 사라진다거나 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들이 정치영역에서 곧바로 일반자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러한 일반성이 획득되기 위해서는 법률적으로 사적인 영역 안에 공공정신의 요소를 통합하는 일련의 단계가 필요했다. 룻소와 그의 자연법 철학의 선구자들, 그리고 그의 혁명적 공화주의의 후계자들은 헤겔적 의미에서의 직업단체와 같은 것에 대해 의미를 주지 않으려 했지만, 헤겔은 그것이 특수성을 제한된 정도의 보편성으로 대체시키고 재사회화를 실제로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다. 그는 정치적 이율배반이라 할 수 있는 두 가지 목표를 이를 통해 동시에 달성하려 한다. 직업단체를 통해 그는 첫째로 원자화된 개인의 무력함을 떨치고 국가관료제의 잠재적 임의성을 통제할 수 있는 매개체를 얻으려 했고, 둘째로 국가중심적 애국심으로 이어질 사회화의 모델도 얻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직업단체는 그 성원의 직접적 참여라는 목적으로 보면 충분히 작고 분명한 제 2의 가족이어서 그 구성원과 관련해서 일반적이지만, 인구 전체로 보면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거기에 통합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특수이해를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직업단체는 규제가 보편적이고 외적 강제에만 의존하는 경찰행정와는 달리 자율적인 내적 동기형성에 이를 수 있다. 시민사회 속에서 추상적 보편성과 실질적 특수성으로 분리된 채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는 이 두 요소는 국가 안에서 통일되고 이 때야 비로소 직업단체는 국가의 제 2의 인륜적 뿌리로서 그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b. 의회와 여론

앞에서 우리는 직업단체의 존재야말로 원자화된 시민사회에서 조직화나 공동체가 가능한 유일한 실질적 근거라고 말했지만, 궁극적으로 구성원의 권리가 실정법으로 보장되는 것은 국가의 활동을 전제한다. 여기서 직업단체는 신분의회를 통해 국가적 통합으로 매개된다. 비록 헤겔에서 신분의회 내지 국회가 "주관적인 형식적 자유의 계기라고 할 공공의식이 그 속에 실존토록 하게 하는"(Rph,   301) 사명을 지니고, 계층적 국회로서 개별자나 사적 입장 및 특수이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그것은 국가로 하여금 이 국회를 통하여 국민의 주관적 의식에 접근할"(Rph,   301) 수 있도록 한다. 국회는 정부와 국민 혹은 군주와 국민 사이를 매개한다. "국회와 정부를 대립적인 것으로만 보는 시각은 ...... 너무나 위험한 편견이다."(Rph,   302)
국회가 시민사회 속의 직업단체적 요구를 반영하는 한, 私人계층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서 헤겔은 협동조합, 지방자치단체 및 직업단체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제 1원 즉 하원 이외에 장자상속에 기반한 귀족 대표들로 이루어지는 상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에게 양원제는 "즉흥적인 투표의 우연성, 다수결에 의한 결정에 수반되기 쉬운 우연성을 제거"(Rph,   313)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그는 국회토의의 공개성을 요구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개인이나 대중이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구제의 수단이며 동시에 그들을 위한 하나의, 그것도 더욱이 최대의 교화수단 중의 하나이다."(Rph,   315) 공개적 논의절차의 보장은 국회의 대표자들이 정당하게 입법할 수 있는 전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적으로는 여론과 연관되어 있다.
헤겔에게 여론은 "개개인 스스로가 보편적 문제에 관한 그들 자신의 판단, 의견 및 충언을 내놓으며 이를 표명한다고 하는 형식적 내지 주관적인 자유"(Rph,   316)를 말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그는 그것의 자기모순적인 실상을 중요한 테마로 다루고 있다. 즉 그것은 한 편으로 "자체 내에 정의의 영원한 실체적 원리"(Rph,   317)를 포함한다는 점에서는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여론은 주관적 자유의 원리가 중요성과 의의를 갖게 된 근대에서, 국회에서의 공개적인 토론이 가능하고 진리가 "관습이나 습속에 의해서가 아니라 통찰과 근거에 의해서"(Rph,   316) 힘을 얻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여론은 "그것을 형성하는 구체적인 의식이나 표현의 면"(Rph,   318)에서 볼 때 자신에 대한 자각능력이 없고 지식인이나 정치엘리트에 의한 조작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는 경멸되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학의 입장이나 시대의 위인은 여론으로부터 독립해 있으면서 그것을 이끌고 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회, 공개성의 요구 그리고 여론 등의 국가주의적 요소들은 그에게 있어서 독특한 근대 공화제 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헤겔은 근대 자유주의의 부정적 자유와 고대 공화제적 사유의 긍정적 자유를 통합하려 한 것이다. 일팅에 따르면 헤겔은 공적 자유의 형성을 정치사회라는 단일의 사회적 수준에 한정하지 않고 사적 개인들의 공적 권리들, 법적 과정의 공공성, 직업단체의 공적 삶, 여론과 공적인 입법적 고려 사이의 상호작용 등을 포함한 모든 수준들이 각기 역할을 지니는 근대적 공화제 이론을 만들었다. 공화제에서 각 주체는 국가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질서감각에 의해 국가에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5-3-4. 입헌군주제

지금까지 우리는 헤겔 {법철학}의 국가 장의 여러 논의들 중 시민사회와의 관련성이 가장 두드러진 입법권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이로써 우리는 헤겔이 국가 이념의 단순한 추상적 전개에 매달리지 않고, 근대의 특수성의 요소와의 매개를 통해 국가가 실질적으로도 근대의 분열을 화해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가짐을 보여주려 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헤겔이 정치적 삶의 궁극적인 체계적 통일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와 국가의 다원주의적 통합은 아직 그의 이론의 종착지는 아니다. 그의 국가이념의 최고형태는 입헌군주제(die konstitutionelle Monarchie)에서 실현된다. 특히 "이성이 인륜적 세계의 실체적 본질임을 보여주는 것이 국가개념에 대한 철학적 증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할 때, 입헌군주제는 이러한 논증의 핵심에 위치한다.
근대 이전 인간의 이성이나 의지가 아직도 계시, 관습, 자연의 권위에 속박되어 있던 시기에 군주제는 신의 우주지배의 지상적 실현이라고 정당화되기도 했다. 헤겔은 세습군주제를 칸트적인 주체성 혁명에 근거하여 정당화하려 했고 그것을 종말론과 결부시킨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헤겔의 입헌군주제는 그의 정치철학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그에 못지 않게 가장 쉬운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의 정치사상에 대한 이후의 많은 해석가들이 일팅을 제외하고는 그의 군주론에 인색한 관심을 보인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입헌군주제에 관한 그의 이론적 내용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입법 행정 사법이라는 통상적인 삼권분립과는 달리, 국가권력을 입법권 통치권 군주권으로 구분하는데 그의 입헌군주제는 이 세 권력이 군주권에서 개체적 통일로 총괄되는 체제다. 이를 다시 그는 군주권의 세 계기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헌법과 법률의 보편성, 특수자의 보편자에 대한 관계로서의 자문(Beratung), 그리고 자기규정으로서의 최종적 결정의 계기가 그것이다.(Rph,   275 참조) 이 세번째의 계기에서 헤겔의 "군주제를 바라보는 특이하고도 극히 독창적인" 시각이 드러나는데, 근대국가는 "자유로운 주체성의 원리를 자체 내에서 감내해야 하며"(Rph,   273), 그 객관적 제도 안에 의지의 자기결정이라는 주체성의 표현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군주의 권력이 정통성이나 신권에서 유래한다고 보았던 복고주의 이론가들의 견해를 거부한다. "군주의 이념은 신이나....효용이나.....실정법 상의 고찰에 의해서 포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Rph,   281) "결국 잘 정돈된 조직된 국가에서는 오로지 법률에만 객관적 측면, 요소가 부과되는 가운데 군주로서는 다만 여기에 주관적인 '나는 의지한다, 동의한다' 라는 한마디를 덧붙이기만 하면 된다."(Rph,   280) 군주는 근대인의 객관적 현실이나 법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자기규정적 의지의 상징으로만 존재한다. 실질적으로 지배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은 각 개인들이지만 이들의 총체적 통일을 보장하고 정치적 제 관계를 정당화하는 것은 군주인 것이다.
그러나 군주와 주체성의 원리와의 결합에서 나오는 귀결과 관련하여 아비네리는 헤겔 군주론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그는 헤겔이 "군주정치의 정통적 형식은 유지하면서 군주를 자기결정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군주 자신으로부터 실질적 권력을 박탈하고", 이로써 낡은 절대주의적 군주관념이나 복고주의의 정통주의 이론을 논박할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 달리 말해서 시민사회적 통합의 한계는 국가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 국가주의 내지 독재로 빠지지 않기 위한 자기제어 장치도 필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입헌군주제 개념은 특수성의 영역과의 연관 속에서 제정된 법률에, 군주의 '나는 의지한다'로 상징되는, 국민 각 개인의 주관적인 자기규정적 확신이 매개된 이념의 내적 필연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군주는 주권의 상징이다. 주권은 "자기확신적인 주체성", 혹은 "무조건적인 의지의 자기확신 속에 담겨 있는 궁극적 결정인"(Rph,   279), "일체의 특수성이나 규정성이 하나의 지양된 보편성을 이루는 그러한 개별성"(Rph,   278)으로서, 국가만이 그 참다운 주체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근대에 들어 국민주권의 개념이 등장하여 국민의 의미와 관련하여 섣부른 사상적 혼미를 초래하였다. 곧 군주권과 국민주권을 서로 대립된 개념들로만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민이면서 자기의 군주가 없고 또한 바로 이 군주와 필연적이며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전체의 분절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국민이란 곧 아무런 형식도 갖추지 못한 군중이다."(Rph,   279) 국민이 "어디까지나 자체 내에서 발전된 참으로 유기적인 총체로서 이해될 때 바로 이러한 국민의 경우에 주권은 전체의 인격으로서 존재하는가 하면, 또한 이 인격이 스스로의 개념에 합치되는 현실 속에 나타날 때 그것은 곧 군주라는 인격으로서 존재한다."(Rph,   279) 주권은 한 사람의 인격 즉 군주로서만 현실적인 것이 되며 국민은 군주를 통해서만 주권을 갖는 것이다.
그의 주권 개념은 당시의 정치철학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근대 민주주의는 의지의 도덕적 최상성에 대한 믿음에 의존한다. 이것은 개인의 보편적 주체성이자 자유 혹은 자율로서, 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차이가 없는 평등을 표현하기도 한다. 고래로 이러한 주체적 자율과 외적 규범 사이엔 항상 긴장이 있어 왔다. 근대 민주주의는 적어도 그 근본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와 법치의 양립 가능성을 일반의지에서 찾았다. 다른 말로 해서 일반의지로서의 각 개인의 의식적인 의지가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통속적인 국민주권에 대한 헤겔의 비판은 사회계약론자들에 대한 그의 비판과 맥을 같이 한다. 계약을 통해 탄생한 국가 또는 정부는 일개 당파가 되어버리는 현상을 피할 수 없으며, 국민들 또한 제멋대로의 군중 이상이 될 수 없다. 이는 최악의 경우 무정부주의 내지 절대군주를 낳게 된다.
프랑스혁명의 이론가로 알려진 헤겔은 혁명의 원리들에 대해 그리고 룻소에 대해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유가 권리의 본질이며, 공동선을 자연법적 이기성으로부터 해방시킨 원리를 의지에서 발견한 점에 있어서는 긍정적이지만, 그런 식의 의지란 결코 공동선을 지지할 수도 없고 정의와 국가의 견고한 기초를 제공할 수도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부정적이다. 그래서 그는 혁명이 무정부 상태를 초래한 것을 두고 룻소적 원리의 내적 귀결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국민주권 개념은 군주로 상징되는 국가의 주체적 결정력이나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을 법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배와 화해시킬 수 없었다. 헤겔은 이러한 이중적 화해를 입헌군주제는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는 역사적인 근대국가를 이러한 군주제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그에게 완전한 입헌군주제는 "이성의 상형문자"(Rph,   279 Zusatz)로서 완전히 발아하기 전의 싹에 머물러 있었다. 다시 말해 입헌군주제는 프랑스 계몽주의와 프로이센 신교제국의 성립의 결합에서 맹아의 형태로 발견되었고 프로이센이 프랑스 혁명의 원리들을 수용한 후에 발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헤겔에서는 "실체적 이념이 무한한 형식을 획득하게 된 근대세계의 업적"(Rph,   273)으로서의 입헌군주제가 세계사의 목적이며 법의 이념이 지상에 완전히 실현된 제도로 인식되었지만, 이는 그의 철학의 체계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갔을 때 드러나는 일반적 난점, 즉 이념의 사변적 전개와 역사적 실재와의 일치가 쉽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난점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법철학}을 단순히 자유의식의 현상학으로만 해석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그의 국가 안에는 여러 현실적 제도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의 이론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그의 논의의 논리적 전개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도 되고 있다. 

5-3-5. 주체성과 실체성의 통일

우리는 앞 절에서 헤겔이 그의 {법철학}을 통해 왜 당대의 시민사회를 근대의 역사적 산물이라 하였고 또 인륜의 상실로 규정하고 있는가, 분열된 사회라는 시민사회는 어떤 구조적 요소들로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사회통합적 기능을 가지며 그 한계는 무엇인가 하는 것 등을 살펴보았고, 이 절에 와서는 근대 국가의 당위적 형식은 어떤 것이며 왜 그것이 참다운 인륜으로 칭해지는가 하는 것도 살펴보았다. 이 때 우리의 관심은 헤겔이 근대의 참된 인륜성, 즉 시대적 통일성을 이념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시민사회와 국가를 매개시켰는가 하는 데 있었다. 그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통합전략에서 나타나고 있는 근대성 원리의 양면성에 주목하였다. 이는 그의 정치철학이 근대의 원리로서의 주체성의 원리와 화해하지 않으면 안되었음을 의미한다. 헤겔에게 주체성 원리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헤겔 철학 전반을 걸쳐 근대의 원리는 '주체성'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는 『정신현상학』에서 "진리는 실체로서뿐만 아니라 이에 못지 않게 주체로서도 파악되어야 한다"는 명제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주체성이나 개념이 실체의 고유한 완성이자 진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헤겔은 이러한 주체성 원리가 특히 근대에는 '절대자를 주체로 사유해야 한다는 존재론적 요청'과 '주체적 자유의 권리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요청'으로 귀결된다고 본다.
그러나 헤겔은 이 원리를 단순히 그의 철학에 직접적으로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항상 전통적인 그 무엇에 대한 반정립으로서 제시된다. {법철학}에서 그것은 도덕 대 인륜, 주체성 대 실체성, 시민사회 대 국가 등과 같은 대립의 구도 속에서 등장한다. 이런 구도 속에서 그 원리는 근대정신의 보다 고차적인 진리형식을 나타내는가 하면 동시에 일면화나 단순한 주관주의적 특수성으로의 몰락의 경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원리는 정치적으로 보면 근대의 시민사회를 생성시킨 긍정적 요소이자 동시에 시민사회의 제반 문제와 한계들을 불러 일으킨 원천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그 원리에서 근대의 해방적 잠재력과 퇴행적 경향을 동시에 본다.
근대는 실체적 보편성을 확립하려는 어떤 시도이든 반드시 새로운 주체성이 야기하는 도전을 새롭게 지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그 주체성은 실체성과 통합될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꼭 부정적 요소는 아니었다. 그런 한 그의 {법철학}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의 의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에 못지 않게 매개의 논리도 탐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서 이러한 매개의 논리를 사회통합의 전략으로 해석하여 다루어 왔고, 자기한정적 시민사회 개념만이 자기한정적 국가 개념과의 변증법적 종합을 기할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하였다. 그는 그의 철학 속에 깃들어 있는 양면성에서 볼 때 어느 한편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옹호한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헤겔의 국가론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특징을 무시할 수 없다. 즉 우리가 그것의 근대성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면 욕망의 체계나 근대 관료제와 같은 요소를 강조해야 하겠지만, 앞의 코헨의 재구성에서 보았듯 헤겔의 사회통합 전략은 오히려 비근대적 요소들, 즉 중세의 소규모 결사체를 연상시키는 직업단체나 신분제 국가의 잔재인 신분의회 등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는 근대의 분열을 화해시킬 수 있는 계기가 이미 주어져 있어서 의지 개념이나 주관적 자유 개념과 같은 근대성의 요소들은 보편성의 궁극적인 정립자라기 보다는 그것의 발전적 확대를 위한 반정립의 성격에 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보수주의적,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적 철학자였다는 것은 근거없는 비판이 아니다.
나아가 일반적으로 헤겔의 국가론은 또 다른 여러 관점에서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즉 실제로 근대사회의 존립을 가능케 하고 그 내적 모순을 해소할 보편적 국가가 나타났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부정적인 대답을 내렸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두 가지 이유가 대표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첫째는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으로서, 시민사회와 국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국가 또한 시민사회의 경제적 기초와 모순을 반영 재생산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와 반대로 자유주의자들의 일반적 주장으로서 부르주아 사회의 발전과 함께 근대 시민사회도 보편성의 자기산출과 자기조절능력을 확대해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들은 결국 그의 국가론이 그의 사변적 이론구성의 고안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으로 귀착된다.

6장. 맺음말

헤겔이 그의 실천철학을 어떻게 정초했는가 하는 것은 그의 철학의 범위 폭만큼이나 다양한 길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나는 이 논문에서 자유의 사상을 부르짖었던 헤겔이 근대의 조건 속에서 이 자유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정당화했는가 하는 것을, 그의 주체성 개념의 형성과 인륜이론의 정초 과정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 그의 정치철학적 사유의 발전을 추적해 보았다. 이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헤겔의 실천철학을 당시까지의 정치사상 및 시대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과 그 속의 긍정적 요소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정리했음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은 헤겔이 이념과 실제의 간격을 간과했거나 개인의 자유가 인륜적 제도들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글에서 해명하였듯이 헤겔은 처음부터 자유와 전통적 제도들과의 충돌을 시대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경제적 정치적인 다양한 제도들 속에서 해결하려 하였다. 이 충돌은 헤겔에게 고대적 전통과 근대적 요소의 대립으로 나타났거니와, 헤겔은 이 차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면서 새로운 통일의 길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헤겔은 그의 철학의 완성기에 이르러 근대세계에 대한 강한 확신과 근대 인륜의 포괄적인 통일의 힘을 철학의 이름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헤겔은 칸트에 의해 분리된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을 '체계'의 철학으로써 다시 통일시키려 한다. 이는 의식과 의지의 통일로, 혹은 사유와 실제의 통일로 구조화되었고 궁극적으로 정신철학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런데 인륜의 철학은 자유를 향한 정신의 자기실현을 기술한 것이다. 그의 역사철학에 의하면 역사는 자유의 확대 과정이다. 그리고 그의 정치철학은 이 때의 자유를 주체성의 확대 내지 심화의 결과로 본다. 인륜은 객관적 제도적인 요소로 현실화되지만, 그 발전의 방향과 내용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주체성의 매개이다.
그의 주체성 개념은 우리가 {예나정신철학}에서 확인한 것처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와 같이 단순히 이론철학적으로 인식과 진리의 준거점 즉 지성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실천철학에서는 지성과 의지의 통일 혹은 실천적 지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헤겔에게 의식과 자기의식에 기초한 의지야말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예나에서부터 베를린 시기에 이르는 그의 사유의 발전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인륜적 제도들이 인간의 실천적 지성의 산물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인륜에 대해 점점 강화되어가는 주체성의 삼투력을 인정하면서도 아울러 이의 파괴적 결과를 피하려는 인간학적 노력을 실체성의 이름으로 부각시키려는 헤겔의 입장도 올바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헤겔이 요구했던 변증법적 사유의 시각으로 그의 이론을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바 헤겔의 인륜이론의 형성 및 발전을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하면서 논의를 맺기로 한다.
1. 헤겔의 실천철학의 형성 및 발전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은 기독교, 자연법, 도덕철학, 의지이론, 국가철학 등이다. 이것들은 헤겔에서 각각 때론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수용되었다.
2. 헤겔이 그의 인륜이론을 전개시키면서 그것에 근대의 결정 인자로서의 주체성을 끌어들이는 최초의 맥락은 베른 시대의 종교비판이었다. 그에 따르면 주체성이 사회의 분열의 원인이 된다는 인식은 근대에만 해당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고대사회의 분열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그런데 헤겔은 고대사회의 해체가 당시의 공동체적 통일성의 붕괴, 주체성의 자각에 기인했다는 인식을 특별히 종교적 원인으로 연결시킨다. 즉 위의 두 원인은 기독교가 불러일으킨 사적 주체성에 의해 촉진되었다는 것이다. 초기의 민족종교 혹은 민중종교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나중에 사적 종교로서의 모습을 드러낸 기독교는 민족의 통일성을 확보할 인륜의 요청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다른 한편 헤겔은 기독교의 이후의 발전에서 나타난 실정성도 강하게 비판한다. 이는 유태교의 율법성을 극복하고서 등장했던 기독교가 다시 실정화됨으로써 민족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생과 유리되어 그 통일적 힘을 상실한 것에 대한 비판을 말한다. 이것은 형식주의가 통일의 힘을 가질 수 없음을 말한 그의 이후의 논의의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종교비판은 다른 면에서 헤겔 사유의 또 하나의 새로운 요소의 발굴로 이어진다. 그것은 종교비판의 무기가 된 주체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이어진 것이다. 즉 그것은 근대에 대한 사상적 인정을 의미한다. 헤겔은 주체성에 대한 고려를 통해서 종교와 정치의 재결합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3. 헤겔의 실천철학 중에서도 법의 철학은 특히 이전의 철학자들의 법철학이라 할 자연법과의 비판적 대결에서 형성되었다. 그 비판의 두 초점은 다음과 같다.
 a. 법의 철학이 각 시대의 주체성과 매개될 수 있는가 : 이와 관련해서 헤겔은 그리이스 폴리스와 로마 시대의 자연법을 비판한다. 당시는 반성 이전의 실체적 통일이 지배한 인륜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한 자유의 실현으로서의 법은 소수를 위한 법에 불과했다. 그런가 하면 이는 실정법만을 절대화시키는 법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주체성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객관적 제도들은 단지 외적일 뿐인, 강압적 폭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단초는 나중의 완성된 법철학에서의 민주적 공화제나 입헌주의를 옹호하는 논거가 된다.
 b. 법의 철학이 인륜의 철학일 수 있는가 : 둘째로 여기서는 근대의 개인주의적 자연법이 비판된다. 근대는 원자론적으로 분해된 주체성을 보편성으로 통일시켜 실체적 안정성을 부여할 법 혹은 인륜이 마련되지 못했다. 계급적 갈등이나 국가 간의 갈등이 노정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론적으로 인륜의 철학은 형식주의에 머물고 만다. 보편성은 외적 현실에서 자리하지 못하고 기껏 주관 안에서만 확보될 수 있었다. 이는 근대에 완전히 발아하지 못한 주체성의 법철학적 반영이라 할 수 있다.
4. 자연법 비판 이후 헤겔은 본격적으로 인륜의 체계적 철학을 구상한다. 이 때 그의 인륜 개념에는 자연규정성보다는 사회적 규정성이 더 중요하게 고려된다. 인간의 사회적 삶의 형식 중에서도 경제적 공동체로서의 모습과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모습이 부각된다. 특히 자유의 완전한 실현으로서의 절대적 인륜에 이르기 전의 여러 불완전한 인륜형식들이 탐구된다. 욕망, 노동, 범죄, 신분, 통치 등이 이 시기의 인륜적 구상의 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곧 이어 {예나정신철학}에서는 인륜이론에 '의식이론', '의지이론' 등이 결합되면서 본격적으로 주체성이 결정적인 요소로 등장, 관념론적인 인륜이론의 길을 예비한다.
이처럼 헤겔 사유의 초기인 예나 시대의 철학은 구체적 자유의 실현으로서의 인륜을 향한 정치철학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인륜은 자기규정, 자연 의존성의 해방의 상징이 되고 있고 신분, 시민사회, 자유의지 및 자기의식이 그 주요한 개념으로 전개되고 있다.
5. 본문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예나 이후의 인륜의 철학은 이러한 구체적 개념들에 이념의 발전논리를 덧씌우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신현상학}, {논리학}, {엔찌클로패디} 등이 그런 작업들이다. 이러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작업으로부터 다시 보다 구체적인 역사 현실로 복귀한 인륜의 철학이 {법철학}이다.
6. 헤겔의 {법철학}은 그의 실천철학의 최종 완성이면서 동시에 이후 시대에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저작이었다. 그것은 영국 경험론자와 룻소, 칸트, 피히테 등의 자연법과 계약론적 사회이론, 그리고 독일관념론의 도덕철학 등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을 바탕에 깔고, 이들을 하나의 이론 속에 지양한 통일적 정치철학이었다. 그 비판의 주요한 핵심은 이것들의 형식성에 있었다. 형식주의는 왜 잘못된 방향인가. 헤겔은 이의 귀결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역사적 현실로부터의 유리에서 빚어진 주체성의 절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구성원 개개인의 주체성이 도외시된 채 무차별적인 적용을 강제하는 외적일 뿐인 인륜적 제도들이다. 양자 모두 추상적 보편성을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무엇을 추상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다르다. 결국 헤겔의 {법철학}은 정치이론에 주체성과, 위의 양자에서 추상되었던 실체성과 역사성을 다시 불어넣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7. {법철학}에서 헤겔은 추상법과 도덕을 주체성의 결여 혹은 과잉으로 규정짓고, 인륜을 주체성에 의해 매개된 자유의 객관적 실현으로 규정한다. 특히 그는 근대 자본주의와 더불어 등장한 새로운 인륜의 형식을 국가로부터 시민사회의 분화라는 주장을 통해 규명하고 있는데, 이는 그 내용에 있어서 시민사회 비판을 넘어 당대까지의 계약론자들의 국가관에 대한 비판이었다. {법철학}에서의 헤겔의 과제는 주체성의 과잉으로 인한 시민사회의 인륜적 불균형성을 발전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제어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시민사회 내의 요소와 국가 안의 요소 양자를 통해 헤겔의 사회통합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었다.
8. 우리는 정치현실의 내적인 주관적 요소와 외적인 객관적 요소를 인륜이론으로 완성하려는 헤겔의 노력을 그의 사상의 발전에 따라 추적했는데, 그러나 그의 입장은 그 발전의 각 국면마다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예나 시대만 하더라도 주체성보다 실체성을 훨씬 더 강조한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우호적으로 해석하건대 이는 각 시기마다의 역사적 상황의 차이에 따른 것이었다. 나아가 시민사회나 국가에 대한 태도 또한 그를 보수적 국가주의자로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맥락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반된 해석의 가능성을 던져주는 그의 언급들에도 불구하고 논자는 이 글을 통하여 헤겔이 철저하게 근대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당대의 인륜에서 '자각적 자기의식의 현실적 실체화' 내지 '현실 자체의 역사적인 자기이해'를 적어도 이념적 수준에서는 확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논자는 헤겔의 정치이론이 과연 근대를 정당하게 이론화하고 있으며, '시대의 사상적 포착'이었는가 하는 데에도 중요한 관심을 두었다. 물론 실천철학은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현재의 가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중요한 부분으로 여길 수도 있으나, 우리는 이 글에서 특정한 해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 전제도 앞세우지 않았다. 이는 헤겔이라는 텍스트가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안고 있는 한, 무엇보다도 그의 철학이 근대의 산물임을 입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그의 철학이 당대 상황에 대한 정직한 반영임이 입증되지 못한 채로 후대 이론의 정당화 근거로서 이용된다면 이는 지반없는 유령에 호소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 철학에 대한 이후의 비판 내지 옹호도 달라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관찰자의 시각차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냉정한 해석의 작업이 제대로 수행되었을 때에만 헤겔의 현대적 수용 내지 현대적 관점에서의 비판도 정당하게 수행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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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tz, R. Die gesellschaftstheoretoschen Pr missen der Hegels Rechtsphilosophie, Centaurus -Verlagsgesellschaft, Pfaffenweiler 1991
Taylor, C. Hegel and modern society, Cambridge Uni. Press, Cambridge 1979
Tugendhat, E. Ethik und Politik, Suhrkamp 1992

Hegel - Studien
D sing, K. Politische Ethik bei Plato und Hegel (in : Hegel-Studien Bd. 19, 1984)
Lu de Vos Die Log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 Eine Vermutung (in : Hegel-Studien Bd. 16, 1981)

Hegel - Studien, Beiheft
Kimmerle, H., Das Problem der Abgeschlossenheit des Denkens. Hegels "System der Philosophie" in den Jahren 1800-1804, Bonn 1970 (Bd. 8)
D sing, K. Das Problem der Subjektivit t in Hegels Logik, Bonn 1976 (Bd. 15)

Hegel - Jahrbuch
1975 Nersesjanz, W. S.,  "Hegelsche Dialektik des Rechts"
1984/5 Siebert, R. J.,  "Hegel on the Dialectic of Civil Society : Alternative Futures"
--------- Rohbeck, J.,  "Hegels `System der Bed rfnisse' und das Problem ihrer Entwicklung"
--------- Griffioen, S.,  "The System of Needs as a System"
1986 Arndt. A. & Lef bre, W., "System und System-Kritik. Zur Logik der b rgerlichen Gesellschaft bei Hegel und Marx"
--------- Ottmann, H.,  "B rgerliche Gesellschaft und Staat bei Hegel.  berlegungen zur Logik ihrer Vermittlung"
1987 Avineri, S.,  "The Pradox of Civil Society in the Structure of Hegel's Views on Sittlichkeit"
1988 Kimmerle, H.,  "Das Verh ltnis von Macht und Gewalt im Denken Hegels"
---------- E. Angehrn,  "Die Ambivalenz der Moderne, Staat und Gesellschaft in Hegels Rechtsphilosophie"
1993/4 Csik s, E., "Die Begr ndung des Rechts durch die Kritik des Subjektivismus"
---------- Wahsner, R., "Die Erkenntnis und die Wirklichkeit der Vernunft. Wissenschaft und Staat im Hegelschem System"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Brudner, A. Constitutional Monarchy as the devine Regime : Hegel`s Theory of the just State (Vol. 2 No. 1, 1981)
K. Kierans, The Concept of Ethical Life in Hegel's Philosophy of Right (Vol. 13 No. 3, 1992)

기타 논문
Ilting, K-H. The Structur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 (in : Pelczynski, Z. A. ed. Hegel's Political Philosophy)-----박 성수 역, {헤겔}, 고대출판부 1990

박 은정,  {자연법사상}, 민음사 1987
임 홍빈,  {기술문명과 철학}, 문예출판사 1995
아리스토텔레스, 최 명관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서광사 1984
룻소, 최 현 역,  {사회계약론}, {인간불평등 기원론}, 집문당 1989

Zusammenfassung

1. Hegel's Begriff der Sittlichkeit ist als der zur vorhandenen Welt und zur Natur des Selbstbewu tseins gewordene Begriff der Freiheit bestimmt. Er gibt neue Bedeutung dem Begriff, der vom Begriff der Moralit t bis 18. Jahrhundert nicht klar unterschieden ist. Er zeigt damit die Identit t von Vernunft und Wirklichkeit  ber den Subjektivismus der Philosophie der Neuzeit  berhaupt. Durch seine praktische Philosophie will er sich  ber die Grenze erheben, die in subjektivit tslosen Sitte und moralphilosophisch formalem Denken gezeigt wird.
Wie seine andere Werke, Hegel's Schriften von die Sittlichkeit sind das Produkt der Auseinandersetzung mit seiner Zeit. Vor allem die Schriften in Jena und Philosophie des Rechts in Berlin entwerfen die Theorie der wahren Sittlichkeit durch die Kritik der Neuzeit. Aber die Entwicklung von Hegel's Denken erf hrt mannigfaltige Variationen. Meine Arbeit stellt folgende vier Fragen und will pr fen, wie seine Theorie der Sittlichkeit begr ndet geworden ist.

2. Erste Interesse dieser Arbeit besteht darin, wie Hegel das geistige Fundament der Neuzeit als die Grundlage seiner Theorie auffa t. Die neuzeitliche Philosophie zeigt seit Deskartes die Kehrung zur Bewu tseinsphilosophie. Es hat die theoretische, zugleich praktische Seite. Diese neuzeitliche Interesse wird als die philosophische Erkenntnis von der Subjektivit t ausgedr ckt, die mit der damaligen Entwicklung der sozial- konomischen Wirklichkeit korrespondiert. Einerseits der neuzeitliche Gedanken, der die Subjektivit t f r seinen Grund h lt, andererseits das System der Bed rfnisse, das eben in der b rgerlichen  konomie reift, sind nicht andersgeartet. Die Neuzeit ist f r Hegel zwar die Zeit, darin der Mensch zum Zentrum und zur Kriterium der Wahrheit wird, doch auch die Zeit, darin die Autonomie und Selbst ndigkeit des Subjekts zur Extreme der Abstraktheit getrieben wird. Au erdem das soziale Leben auch war wegen der partikularen Bed rfnissen der Einzelnen zerrissen. Diese von dem Recht der Partikularit t des Subjekts bewirkte Situation der Neuzeit nennt Hegel den Verlust der Sittlichkeit.
Hegel kritisiert damit die Philosophen am Anfang und Mitte der Neuzeit, da  sie allgemein die Subjektivit t au er die Geschichte setzen und abstrahieren. Nach Hegel wird es bei ihnen  bersehen, da  die objektive Wirklichkeit die Ent u erung des vern nftigen Subjektivit t ist, da  der Widerspruch der vorhandenen Gesellschaft aufgefa t werden mu , nicht nach dem auf Vergangenheit zur ckgehende Kriterium, sondern nach dem vern nftigen Ziel der noch nicht verwirklichten Entwicklung der Geschichte. Hegel kennt wohl, da  die neuzeitliche Subjektivit t, trotz des ihren negativen Charakter, als die geschichtliche Notwendigkeit aufgenommen werden mu . Wenn die Subjektivit t auch die Negativit t enth llt, ist sie f r die sittliche Einheit unentbehrlich und mu  insofern zur h herer Sittlichkeit aufgehoben werden. Wenn auch die Sittlichkeit in Hegel sich als das Objektive verwirklicht, ist das ihre Entwicklungsrichtung und ihren Inhaltscharakter Entscheidende die Vermittlung durch die Subjektivit t. Die Subjektivit t kann sich von der Objektivit t nicht trennen und mu  sich immer in sozialen Formen ent u ern. Eben darin ist sie auch die Intersubjektivit t. Hegel's soziale Theorie versucht von Anfang diese Entwicklung der Vernunft zur Vereinigung von Subjektivit t und Objektivit t zu systematisieren.

3. Hegel begr ndet seine Theorie der Sittlichkeit durch die Auseinandersetzung mit fr heren theoretischen Standpunkten. Dazu geh ren besonders die moderne Moralphilosophie und die als damalige Sozialtheorie angesehene Naturrechtstheorie. Was ist die Punkt von Hegel's Kritik und Aufnahme bez glich auf sie, ist zweite Frage meiner Arbeit. Mit dem Begriff der Subjektivit t zu sagen, kann die fr heren Theorie f r Hegel wegen des Mangel oder  berflu  der Subjektivit t keine wahre Sittlichkeit begr nden. Anders als freundschaftlich zu den antiken Philosophen, verh lt Hegel sich kritisch zu den modernen Philosophen. Dieses kritische Verhalten bedeutet auch den Vergleich zwischen den antiken und modernen Charakter der Philosophie. Hegel kritisiert die antike Sittlichkeit wegen des Mangel des Erkenntnis  ber die Subjektivit t, aber ist freundlich  ber ihre substanziale Stabilit t. Dagegen verh lt er sich sehr kritisch zu der modernen Sittlichkeit wegen ihrer substanzialen Unstabilit t, ungeachtet ihrer selbstbewu ten Subjektivit t.
Hegel kritisiert die Naturrechtstheorie im Naturrechts-Aufsatz, die die gr ndliche Sozialtheorie der modernen Philosophen ist. Die empirische und formelle Behandlungsarten des Naturrechts behaupten beides gemeinsam, da  die urspr ngliche und nat rliche Freiheit in der 'Gemeinsamkeit mit anderen' oder 'der Vereinbarkeit mit der Freiheir aller durch Rechtszustand' besteht. Aber das System der Atomistik auf dem Recht des Einzelnen kann keine wahre Sittlichkeit m glich machen. Und der Begriff des Naturzustand in der empirischen Behandlungsart ist auch selbstwidersprechend und fiktiv. Die absolute Idee der Sittlichkeit enth lt die Identit t des Naturzustand und des Rechtszustand. Die Idee enth lt nicht 'Nichts des Einzelnen' oder 'die Unterw rfung unter die soziale Gewalt'. N mlich Hegel fordert, da  der atomistische Standpunkt aufgegeben werden mu , um den zutreffenden Begriff der Sittlichkeit zu behalten. Aber es mag nicht als Aufgeben der Einzelnheit mi verstanden werden. Hegel kritisiert, da  die soziale Gewalt oder Einzelnheit, n mlich Momente der Sittlichkeit, als das Absolute an sich festgesetzt wird.
Wie in reflexiven Moralphilosophie, die formelle Behandlungsart des Naturrechts radikalisiert die Entgegensetzung von Freiheit und Natur und ferner schlie t die Natur aus der wissenschaftlichen Diskussion aus. Sie zeichnet die Inhaltlosigkeit der Moralgesetz und setzt die sinnlichen Neigungen und die Pflicht entgegen. Darum die Theorie des Naturrechts geht keinen Schritt aus der abstrakten Moralphilosophie vorw rts. Das Recht bestimmt die partikularen Wille durch nat rliche Momente wie Sitte, vereinigt sie mit dem allgemeinen Wille. Aber die formelle Behandlungsart kann nicht die Notwendigkeit solcher Vereinigung sichern, die Legalit t und die Moral verbinden. Mit dem neuen Begriff der 'sittlichen Natur' will Hegel die Ausschlie ung der Natur durch den Begriff aufheben und ihren urspr nglichen Zusammenhang wiederherstellen.
Auf diese Weise ist Hegel's Kritik der fr heren Sozialtheorie bestimmt von seinem Verhalten bez glich auf den Begriff der Subjektivit t. Er nimmt die abstrakte Autonomie der Subjektivit t als das Fundament der Moderne und erhebt sie zu einem Moment der h heren Sittlichkeit dadurch, da  er sie mit sittlichen Einheit in der alten Zeit verbindet und die empirischen Momente mehr positiv aufnimmt.

4. Die vierte Interesse dieser Arbeit ist darin, welche Kategorien Hegel entsprechend der Entwicklung seiner Erkenntnis aufs neue heranzieht und wie seine Theorie in Ordnung gebracht wird. Ich bin aufmerksam auf zwei Gruppe der Kategorien. Die Erste ist Allgemeinheit -Partikularit t -Einzelnheit, n mlich die logischen Kategorien f r die absolute Verwirklichung der Idee. Diese sind eigentlich die Kategorien, die die dialektische Bewegung des Begriffs ausdr cken. Aber sie bestimmen die Entwicklung des Wille in der Einleitung der Philosophie des Rechts. Die Zweite ist die die 'realphilosophische' Entwicklung bestimmende Kategorien, n mlich Subjektivit t und Substanzialit t. Mit diesen Kategorien pr ft Hegel die Entwicklung von der antiken Sittlichkeit, die die einseitige  berlegenheit der Substanzialit t zeigt, zur neuzeitlichen Sittlichkeit, und konzipiert die wahre Vermittlung beider Form der Sittlichkeit als die endg ltige Verwirklichung des Geistes. Das Wichtige ist hier, da  Hegel keine einseitige  berlegenheit einer spezialen Kategorie behauptet. Solche  berlegenheit ist sinnlich nur auf dem Standpunk der Kritik oder  Beobachtung der bestimmten Wirklichkeit.
Hegel behauptet konsequent, da  die Partikularit t zwar unentbehlich f r die allgemeine Verwirklichung der Idee ist, aber die Grundform der Entwicklung sich an die Wiederkehr zur Allgemeinheit richtet. Was bedeutet dies? Dies bedeutet, da  die Allgemeinheit und die Partikularit t die h chsten Kategorien f r die Theorie der Sittlichkeit sind, da  sowohl die Subjektivit t als auch die Substanzialit t kein Moment der absoluten Sittlichkeit werden k nnen, sofern sie selbst in Hegel's realphilosophischen Theorie der Sittlichkeit durch die Partikularit t zu der Allgemeinheit nicht zur ckkehren.

5. Die letzte Interesse bezieht sich mit dem Argument  ber die b rgerliche Gesellschaft und den Staat, das best das Wesen der modernen Sittlichkeit ausdr cken w rde. Was sind Hegel's Erkenntnis der Moderne und seine normative, kritische Alternative gegen seine Zeit? Vor Hegel waren die b rgerliche Gesellschaft und der Staat nicht unterschieden, also war das richtige Verstehen von dem Charakter der modernen Gesellschaft unvollst ndig. Hegel unterscheidet die b rgerliche Gesellschaft deutlich von dem Staat, erz hlt zwei Prinzipien der b rgerlichen Gesellschaft. Erste Prinzip ist 'die konkrete Person, welche sich als besondere Zweck ist, als ein Ganzes von Bed rfnissen und eine Vermischung von Naturnotwendigkeit und Willk r'. Zweite Prinzip ist 'die Form der Allgemeinheit, darin die besondere Person wesentlich in Beziehung auf andere solche Besonderheit steht'. Koexistenz beider Prinzipien macht die b rgerliche Gesellschaft ein System allseitiger Abh ngigkeit, und bestimmt sie als das System der in ihre Extreme verlorenen Sittlichkeit, aber auch sie als eine Stufe, darin die Partikularit t zur Allgemeinheit  bergeht, wenn auch in Form der Notwendigkeit, noch nicht der Freiheit. Die Formen der konkreten Sittlichkeit, die diese Unvollst ndigkeit widerspiegeln, sind das System der Bed rfnisse, die Rechtspflege, die Polizei, die Korporation usf.. Sie verst rken stufenweise die Allgemeinheit und die substanzialen Stabilit t, aber erheben nicht vollst ndig das Recht der Partikularit t des Subjekts zur der wahren Sittlichkeit.
Hegel h lt den Staat bei den Kontraktivisten nur f r die b rgerliche Gesellschaft, der tats chlich blo  die Funktion des Schutz des Eigentumsrechts ausf hrt, damit er den wahren sittlichen Sinn des Staats wiederherstellen kann. Nach ihm wird der Staat die Verwirklichung der konkreten Freiheit, 'die Wirklichkeit des substantiellen Willens, die er in dem zu seiner Allgemeinheit erhobenen besonderen Selbstbewu tsein hat', 'der Gang Gottes in der Welt' usf. genannt. Hegel's Theorie deutet an, da  der moderne Staat kein blo er abstrakter Erhalter der Allgemeinheit und Substantialit t sein mag, in erster Linie f r die Partikularit t des Subjekts sorgen soll. Wenn der freie Wille als der Grundbegriff des modernen Liberalismus f r notwendig in Hegelschen Staat gehalten wurde, ist es nicht richtig, da  Hegel im Name des Staatist oder Konservatist kritisiert wird.

6. Die Spezialit t der Hegel' Philosophie besteht in seiner Forderung nach der Einheit. Seine Theorie der Sittlichkeit kritisiert einerseits theoretisch fr here Philosophie darin, die verschiedenen Momente des gesellschaftlichen Lebens einseitig zu abstrahieren, sucht andererseits praktisch solche Momente auf der neuen Dimension zu vereinigen. Sie bedeutet die Begr ndung des Rechts im weitesten Sinn, das vor allem als die Einheit der entgegengesetzten Kategorien oder als das objektive Produkt des freien Wille verstanden wird. Diese Bestimmung des Rechts ist g nzlich modern, wenn wir den Charakter solcher Momenten durchschauen. Also er soll die Unsittlichkeit, die in dem Begr nden des Rechts auf der Freiheit des privaten Einzelnen entstehen kann,  berwinden und zugleich die Subjektivit t als der notwendige Vermittler aufnehmen.
Durch diese Arbeit k nnen wir nochmal best tigen, da  die Formen der Sittlichkeit das Produkt des menschlichen praktischen Intelligenz sind, ferner folgende Position Hegels richtig absch tzen, da  nicht nur die Anerkennung der st rker wirkenden Durchdringung der Subjektivit t zur Sittlichkeit, sondern das substantielle Vermeidenwollen ihrer destruktiven Folge scharf hervorgetreten werden m ssen. Die Wirklichkeit des wahr sittlichen Rechts setzt das Erheben der Subjektivit t voraus. Aber die Entwicklung der Subjektivit t in Hegel vollzieht sich nicht in Dimension der blo en Logik des Subjekt-Objekt, sondern intersubjektiv durch verschiedene substantielle Formen der staatlichen Sittlichkeit.

 

Schl sselw rte :
Sittlichkeit, Recht, Subjektivit t/Substanzialit t, Naturrecht, Partikularit t/Allgemeinheit, b rgerliche Gesellschaft

Student Nummer : 87113 - 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