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Paradigm of Pascha
에제 34,11-16; 로마 5.5-11; 루카 15,3-7
예수 성심 대축일; 2022.6.24.;
- 이기우 사도 요한 신부
1. 예수 성심은 부활 신앙의 출발점
오늘,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냅니다. 이것이 예수 부활 대축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승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 성체와 성혈 대축일로 이어진 일곱 대축일 시리즈의 대단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례를 제정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리실 당신의 몸을 빵에 일치시키시고는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하고 말씀하셨고, 당신의 몸에서 흘리실 당신의 피를 포도주에 일치시키시고는 “받아마셔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릴 내 피다.” 하고 말씀하셨으며, 이 두 마디의 말씀 끝에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같은 말씀을 전하는 예수 성심 대축일이 부활 대축일의 마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축일 시리즈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가 예수 성심을 닮아서 그분의 일을 기억하고 희생을 각오하여 계승하면 부활 신앙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결론이 예수 성심이요, 예수 성심을 닮는 일이 우리 부활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바, 예수 성심에 대한 기억은 공생활 동안 행하신 수없이 많은 일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면서도 그 초점은 그 일들에 담긴 그분의 마음을 기억하라는 데 있었습니다. 마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을 닮지 못하면, 일에 대한 기억과 행함은 반쪽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마음도, 일도 기억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미사만 봉헌하면 그분의 파스카 과업은 잊혀지고 말 것이 자명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네 교회 현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수 성심을 닮고자 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일들은 모두 파스카 과업을 위한 일들이었습니다.
2. 파스카는 곧 부활 신앙으로 실현된다
예수님께서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던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도 개혁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요시아 임금이 다윗 임금을 본받아,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이루는 놀라운 업적을 기억시키고자 모세가 제정한 파스카 축제를 민족 최대의 명절로 복원시킨 마음을 이어 받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방에서 공생활의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던 까닭도 십자가 죽음에 앞서 파스카 축제를 새롭게 개혁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 몰래, 예루살렘에 살던 토박이 지지자를 시켜서 방을 마련해 놓으셨고 만찬 준비까지 시켜놓으셨습니다. 그가 ‘물동이를 지고 가던 아무개’(마르 14,13; 루카 22,10)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는 죽은 라자로를 그가 묻힌 베타니아 동굴 무덤에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당신께서도 되살아나리라는 것과 또한 파스카 만찬의 정신으로 파스카 과업을 계승하는 이들 또한 부활하리라는 것도 암시하셨습니다. 그분에게 파스카는 곧 부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 놓으신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일에 맞추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당신께서 하신 일들을 계승하라고 당부하시고 이 자리에서 성찬례를 제정하셨습니다.
3.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승하여 행하라고 당부하신 유언에 담긴 첫째 의미는 성령께서 당신을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음을 상기시킨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건 사십 주야 단식을 사탄의 유혹 속에서 무사히 마치시고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오셔서 회당에 모인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당신의 소명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셨습니다. 당신의 공생활 활동이 예언자들의 정통 노선에 따라 이루어질 것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천명하신 말씀이 메시아로서 예수님 생애의 큰 방향이 되었고 제자들과 교회의 파스카 과업의 가이드 라인이 되었습니다. 즉,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파스카 과업의 초점이며 이는 어디까지나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이루어 질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주셨고 이로써 제자들은 그저 듣기만 하던 학생의 처지에서 그분처럼 행할 수 있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4.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 전하라
예수님께서 계승하여 행하라고 당부하신 유언의 둘째 의미는 성령께서 이끄신 그 말씀대로 실제로 가난한 이들을 찾아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음을 상기시키시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대놓고 무시하고 억압하며 착취하던 그 가난한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기쁨과 웃음과 행복을 나누어주셨고, 위로와 치유와 안식을 선사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던 그 정성으로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새 하늘을 여시어 새 땅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은 그분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명성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분을 모함하고 시기하며 급기야 죽일 음모까지 꾸미며 적대시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항하여 열두 제자를 불러 모아 장차 교회를 이룰 주춧돌을 마련하시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이 파스카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고 아둔한 모습으로 자주 야단을 맞았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몰이해 자체가 예수님을 힘들게 했지만, 그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기다려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5. 치유와 위로의 체험을 주어라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언의 셋째 의미는 대부분 고통을 달고 살던 가난한 이들에게 치유와 위로를 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는커녕 지옥과도 같은 고통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즉, 육체적인 질병이나 장애 또는 정신적인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기도 했고, 무시당한 나머지 극심한 소외감으로 억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을 치유해 주시기도 하고 위로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치유와 위로의 복음선포 과정에서 숱한 기적들이 일어났고 지옥과도 같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해방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눈먼 이가 보기도 하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기도 했으며, 앉은뱅이가 걷기도 하였습니다. 나병이나 중풍을 앓던 이들이 깨끗하게 낫기도 했습니다. 또 자식 때문에 슬퍼하던 어버이들을 보고 함께 슬퍼하시던 그분은 죽을 지경으로 위독하거나 심지어 이미 죽은 아들딸들을 다시 살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치유와 위로의 체험을 받은 이들이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라는 믿음을 생생하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기꺼이 새로운 하느님 백성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들이 사도들과 함께 새로운 아나빔으로서 교회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천사들을 시켜서, 제자들로 하여금 갈릴래아로 가라고 분부하셨던 것입니다. 그곳은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6. 악에 대한 저항으로 해방의 체험을 주어라
유언의 넷째 의미는 영적인 활동까지 이어받으라는 근본적인 요구였습니다. 공생활 동안 예수님의 복음선포 활동을 반대하고 방해하려 한 세력들은 사두가이나 바리사이 같은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자들의 배후에서도 사탄이 조종하고 있었거니와,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유다 광야에서 그분을 유혹하다가 실패했던 바로 그 사탄이 이미 마귀나, 악령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고 그렇게 마귀 또는 악령에 들린 이들을 그분은 많이 만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분은 마귀를 피하지 않으시고 정면으로 맞서셨으며 쫓아내셨습니다. 그리하여 마귀에 들렸던 많은 이들이 해방되어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이런 구마의 복음선포는 역대 어느 예언자들도 하지 못하던 기적이었는데, 적반하장 격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마귀의 편에 서서 그분이 마귀들렸다고 모함을 해 댔습니다. 하지만 마귀에 맞서시던 예수님을 본 제자들과 군중은 예수님을 믿었으며, 특히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어주신 덕분에 마귀들렸다가 마귀로부터 해방된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넷째 유언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께만 고유한 영적인 활동에 대한 말씀으로서, 마귀들이 저지르는 악에 단호히 맞설 것과 마귀들린 이들을 만나면 마귀를 쫓아내서 그 사람을 영적으로 해방시켜 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영적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마귀와 대적할 것을 신신당부하셨던 것입니다.
7. 체험으로 믿게 된 이들을 기쁘게 받아들여라
다섯째,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방을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과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인 마을에까지 그들을 파견하시어 당신이 하시던 복음선포 활동을 사람들 안에서 하게 되자, 함께 하시던 성령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터득했습니다. 한 번은 열두 명, 또 다른 한 번은 일흔 두 명을 파견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물론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이나 권세를 부리던 사두가이들은 스승도 무시했던 판에 그 제자들이 선포한 복음을 받아들일 리가 없이 거부했지만, 도처에서 이 복음을 받아들인 토박이 지지자들이 생겨났고 예수님께서는 귀환한 제자들의 이러한 보고를 받으시고 매우 이례적으로 성령에 가득차서 기뻐하셨습니다. 땅에 묻혀 있던 보물을 발견한 농부의 심정이나, 잃었던 은전을 되찾은 여인의 심정으로 기뻐하셨고, 이 기쁨을 제자들도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날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체험일지라도 그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난 이들을 기쁘게 맞이해 주면, 그들이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복음화시킬 것입니다.
8. 예수 성심으로 파스카 과업을 계승하라
이러한 다섯 가지 파스카 과업의 특징 안에 예수 성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마음을 알아보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한 이들이 제자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이루었고, 이 교회가 파스카 과업의 소명을 받은 메시아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성심을 맑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 교회가 교회답게 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예수 성심은 파스카 과업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1888년 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가 예수성심에 한국교회를 봉헌한 바 있다. 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예수성심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기도 하다.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 프란치스코 교황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60주년을 맞이하여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 - 프란치스코 교황 2019.8.4.> 중에서
❤️ 감사
“기쁨으로 자기 삶을 봉헌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기쁨은, 닫혀 있고 매몰찬 마음이 아니라 날마다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열린 마음이 되려고 여러 해에 걸쳐 노력하며 갈고 닦은 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신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풍미가 더해지는 좋은 포도주와 같습니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마음. 그리스도의 성심을 따라 사제가 된다는 것은, 그분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지니게 되기까지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는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자질이고 목자의 존재 방식이어야 합니다.
❤️ 자비
“우리는 자비의 계단들을 통하여, 나약함과 죄를 비롯하여 인간이 놓일 수 있는 상황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드높은 하느님의 완전하심에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온기를 주고, 어둠 속에서 그들과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하고 칠흑 같은 밤을 함께 지내면서도, 우리의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에 사로잡힌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십니다(사도 10,38 참조).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나약함을 지니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모든 당신 자녀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 주시고 당신 자녀를 용서의 기쁨으로 부르시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성심을 드러내 보여 주시고자, 인간의 나약함과 죄의 심연 속으로 내려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하느님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자비의 희년 폐막 미사 강론에서 “자비의 참다운 문은 그리스도의 성심입니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 동화된 사제는 무엇보다도 자비와 화해의 봉사자입니다. 사제는 주님께서 나의 개인적 공로와 무관하게 나를 눈여겨보시고 부르신 그 기억을 마음에 새기며, 날마다 자신의 모든 삶과 행동 안에 깃든 하느님 자비의 손길을 체험합니다.
우리에게는 특히 화해의 성사 안에서 형제들을 환영하고 그들에게 귀 기울이며 그들과 동행할 줄 아는 자비로운 사제들이 필요합니다.
❤️ 연민
“언제나 진심으로 죄인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 주고 착한 사마리아인의 온정과 연민을 보여 주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고통받는 형제자매에게 실제로 가까이 다가가 곁에 있어 주는 친밀함, 이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자기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멀리하지 않고 직접 다가가 어루만지는 사제야말로 참으로 좋은 본보기입니다. 이는 자기 양 떼와 하나 되는 영적인 맛을 들인 목자의 마음을 반영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특히 질병으로, 소외감으로, 그리고 온갖 물질적 정신적 가난으로 겪게 되는 괴로움과 고통을 마주하실 때마다 ‘내장까지 떨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연민으로 가득 차 형제들의 상처 입은 몸 앞에 멈추시어 상처를 낫게 해 주시고 치유해 주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생생히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봉사자인 사제들에게도 이와 같은 연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은 가까이 있어 주고, 사람들의 고통과 괴로움에 참으로 온전히 동참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희망의 불꽃을 되살리는 관계를 맺고, 특히 성사의 은총을 통하여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 깨어 있음
“현실에, 교회에, 또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실망했을 때, 우리는 달콤한 슬픔에 젖어 들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동방의 교부들은 이를 권태라고 불렀습니다...
슬픔은 불만과 적의를 품게 하여 변화와 회개를 위한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 버립니다...
형제 여러분, 이 달콤한 슬픔이 우리 삶이나 우리 공동체를 엄습할 기미가 있을 때,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확고한 마음가짐으로 성령께서 ‘무기력한 우리를 일깨워 주시고 우리가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도록’ 다 함께 간청합시다.
‘우리의 타성에 젖은 행동 방식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온 마음을 열도록 합시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이 현실이 부활하신 주님의 살아 있으며 힘 있는 말씀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는 마음의 중요성을 여러 번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성령의 은총에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총은 일상의 일들과 현재의 불확실함 속에서도 우리가 주님의 현존을 알아차리게 해 줍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사랑을 실천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영적 투쟁을 통해서도 깨어 있는 마음이 유지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이 영적 투쟁에 직면하시어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셨고, 당신의 지상 생애를 마치시기 전에도 겟세마니에서 잠든 당신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사제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희망의 피로감’을 주의해야 합니다.
또는 습관적으로 마지못해 심지어 타성에 젖어 사목 활동과 기도를 소홀히 하게 이끄는 마음의 메마름입니다.
이와 달리, 마음을 열고 주님 말씀과 하느님 백성의 외침에 ‘깨어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 용기
“용기 있는 마음을 지켜 나가려면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이 두 가지 유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우리가 예수님과 이루는 유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가거나 예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때에, 우리 노력은 서서히 그러나 틀림없이 빛이 바래고 우리의 등잔에는 삶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이 바닥나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영적 동반을 등한시하지 말라고 권고하고자 합니다. 전적인 신뢰와 열린 자세로 자신의 여정에 대하여 함께 대화하고 성찰하는 형제, 의논하고 식별하는 형제를 두십시오...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또 다른 유대는 우리와 우리의 양 떼가 이루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증진하고 심화시켜 가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양 떼, 여러분의 사제단, 여러분의 공동체와 떨어져 있지 마십시오.
폐쇄적이고 엘리트주의적 집단에 갇혀 있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이는 결국 영혼을 질식시키는 독이 됩니다. 용기 있는 교역자는 언제나 밖으로 나가는 교역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가지 유대에서 출발하여 당신 사명을 수행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이루는 유대와 예수님께서 백성과 맺는 유대입니다.
...무엇을 잡수실 시간조차 없는 고단한 직무에도,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시어 하느님 아버지와 사랑의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자 하신 그 확고한 뜻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 사제는, 자기 삶을 봉헌한 주님과 자신이 섬기도록 부름받은 백성 사이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사제가 주님 안에서 내적 생명의 빛을 꺼트리지 않고,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로 기도하며, 열린 자세로 영적 동반을 받아들이는 한, 사제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목자의 사랑을 베풀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제 생활의 좋은 결실을 위해서는 인간적 심리적 영적으로 하느님과 이루는 친밀한 관계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친밀감의 결여는 다름 아닌 영성 생활의 메마름이고, 이에 따라 주님과 이루는 깊고 내밀하고 생생한 그 우정이 식어 버리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이러한 우정은 사제가 개인적으로나 사목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이루는 바탕입니다.
사제가 더 이상 충실히 기도하지 않고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가져다주는 요소들을 간과할 때, 위험한 ‘결여’만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결여는 공허함, 좌절감과 불만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 고독, 욕구,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 어려움도 겪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우정에서 출발하여 자기 삶을 이끌어 갈 때에, 사제는 독신 생활과 사도적 사명을 정신적으로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영성적으로도 풍요로운 결실을 이룰 수 있습니다.
[출처] 사제성화의 날/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대축일|작성자 김 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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