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帛書)

[성모 승천 대축일]2022년 8월 15일 월요일

나뭇잎숨결 2022. 8. 11. 14:16
 
 
 
서울 가톨릭사진가회 김문숙 작가의 ‘하늘로 오르시네’.
서울 목동성당 성모상과 하늘의 구름을 ‘이중 노출’ 촬영 기법으로 완성한 작품.(서울대교구 가톨릭사진가회 제공)

 

“하늘로 오르시네, 하늘로 오르시네, 성모 마리아 환히 웃으며 하늘로 오르시네~”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드리고 성당 마당에 나오니 성모님께서 환히 빛나고 계십니다.
하늘로 오를 듯이 겸손히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시선을 하늘에 두고 계십니다.
“성인 성녀들이 마중 나오고 아들 예수님 양팔 벌려 어머니 맞으시네~”
미사 중 들었던 성가가 계속 입에서 맴돕니다.
그런 모습을 생각하며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오르시는 모습을 묵상합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저희와 함께 기도해 주시니 기쁨 넘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 김문숙 작가(요세피나, 서울대교구 가톨릭사진가회)

 

 

 

 

 

 

 

 

 

[강론1] “내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며,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루카1, 47-48)

 

 

-프란치스코 교황

 

 

“성모님은 급진적 변화, 가치의 전복을 선언하셨다”

교종, 성모 승천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 마니피캇 해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성 베드로광장 발코니에서 광장에 모인 신자들과 순례자들 1만여 명을 향한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우리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 각자의 손을 잡고 계시며, 우리가 그녀의 믿음직스럽고 신실한 '혁진적인' 모범을 따를 때 기뻐하신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 모두의 손을 잡고 함께하시며 기뻐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 전례 복음은 성모님과 사촌 엘리사벳 사이의 대화를 우리에게 제공하면서 신자들이 삶의 매 순간마다 마리아의 적극적인 역할과 현존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그녀의 모범에서 배우도록 격려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과의 친밀함을 느낄 수 있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힘을 주시는지 자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온유와 겸손'으로 큰일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가?”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에 마리아는 희망을 노래하면서 우리 안에 희망을 다시 불태우게 합니다. 따지고 보면 성모님은 온몸과 영혼을 다해 승리하여 천국의 결승선을 통과한 최초의 피조물입니다. 그녀는 우리도 죄에 굴복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느님을 찬양하고 다른 사람들을 관대하게 섬기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우리의 손을 잡고 영광에 함께하시며 천국을 생각하며 기뻐하도록 초대하십니다. 마리아가 사촌언니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을 만났을 때 엘리사벳은 '당신은 여인들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기 또한 복 되십니다'라고 말했고, 이러한 '믿음과 기쁨과 기이함으로 가득 찬' 찬사는 지금 우리가 매일 바치는 성모송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주 아름답고 친숙한 이 기도를 낭송할 때마다 우리는 엘리사벳이 했던 것처럼 마리아가 예수님을 우리에게 데려오기 때문에 우리는 마리아께 인사하고 그녀를 축복합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마니피캇'(Magnificat)을 주심으로써 응답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역사 전반에 걸친 하느님의 일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 올리셨으며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 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은 그대로 있는 반면 부자는 계속 번영하는’ 현 세상에 비추어 볼 때 성모님이 과장하신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마니피캇은 현재의 시간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즉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역사적 전환점을 시작하셨고 사물의 새로운 질서를 확실히 세우셨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작고 겸손한' 마리아가 자신의 노래로 급진적 변화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것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즉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은 천국으로 인도되는 반면, 세상의 부유한 권력자들은 빈손으로 남을 운명입니다.

다시 말해 성모님은 급진적인 변화, 가치의 전복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리아의 예언입니다. 마리아는 권력, 성공, 돈이 아닌 봉사, 겸손, 사랑이 우세하다는 것을 이미 이해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예언적 말씀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줍니다. 영광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는 ‘진정한 힘은 섬김이고 통치하는 것은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비로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마리아께서 선언하신 이 예언적인 반전(反轉)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는 '사랑하는 것이 통치하는 것이고 섬기는 것이 권력'이라고 믿는가?’ ‘내 삶의 목적은 천국인가’ 아니면 ‘세상의 물질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면서 비관주의에 사로잡혀 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오직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기도드립니다.

 

“성모 성지를 방문하고 우크라이나도 기억합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성모 승천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 말미에 신자들에게 마리아를 공경하기 위해 성모 성지를 방문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기원하자고 호소했다. 말씀 내용.

오늘은 성모님께 봉헌하는 대축일입니다. 천상의 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하기 위해 성모 성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성모 성지 방문을 촉구합니다. 교종을 포함한 로마 주교들과 많은 로마 시민과 순례자들은 전통적으로 성모 마리아 대성당 ‘로마 백성의 구원’(Salus Populi Romani) 성화 앞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베네딕토 15세 교종에 의해 세워진 ‘평화의 여왕 마리아’ 성모상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세계에 평화를 주실 수 있도록 성모님의 전구를 계속 청합시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 대축일은 여러분이 집에 있든 밖에 있든 모든 사람, 특히 외롭고 아픈 사람을 위한 행복한 잔치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 휴가 중인 분들, 쉴 틈이 없는 분들, 외롭고 아픈 분들 모두에게 행복한 가정의 축일을 기원합니다. 그들을 잊지 맙시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커뮤니티에 없어서는 안 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대축일에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시면서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

 

 

 

 

 

 

 

 

[메시지2]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1,45)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올리셔서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신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또한 분단국인 우리나라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 통일을 이루어 온 겨레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이며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승천의 신비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실하게 산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가 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온 생애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 깊이 새기며 실천한 참된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협력자가 되셨습니다. 교회가 성모 마리아께 ‘교회의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로 특별한 존경을 드리는 것은 무엇보다 그분의 크신 신앙으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우리 모든 신앙인에게도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인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되찾은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해방 후 6.25전쟁으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가난과 고통의 시절을 지내면서도 그 세대 모든 분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했습니다. 빠른 발전은 많은 장점도 있었지만 동시에 사회의 부작용도 함께 겪어야 했습니다. 좋은 전통적인 관습은 점차 사라지고 극심한 물질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며 생명경시 풍조 팽배와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디지털 환경의 발전으로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 전 세계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서로 간에 예전에는 생각도 못 한 지대한 영향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국가 간에 전쟁이 계속되어 하나의 지구촌이 된 세계 공동체가 함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양국 국민들에게는 물론이려니와, 전 세계의 경제와 생활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전쟁은 이유를 불문하고 가장 큰 악행으로 평화를 깨뜨리고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죄악과 폭력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또한 두 해가 넘게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현상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경제적 어려움과 지속적인 고통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교회는 성모님을 모범 삼아, 험하고 힘든 세상에 사랑의 다리를 놓아야 하며, 교회 자신이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교황님’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가‘폰티펙스’(Pontifex)인데, 이 표현은 ‘다리’(Pons)와 ‘만들다’(facere)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그 어원이 ‘다리를 놓는 사람’이란 뜻을 지니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으며 세 가지 점을 함께 새기고 싶습니다.

 

첫째, 교회는 지루한 팬데믹 현상으로 느슨해진 신자들의 믿음의 삶에,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신앙의 다리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성모님은 이 순간에도 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님께 전구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초심으로 돌아가 초대교회에서 그 방법과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초대교회가 복음을 살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는지를 잘 묵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둘째,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실제적인 나눔과 도움을 주고받도록 하는 사랑의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국가와 각종 단체, 개인들을 도와, 나눔이 필요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연결시키는 사랑과 나눔의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연결시키고 만나게 할 때, 더욱 깊은 상호 이해와 통교가 가능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랑의 나눔은 모든 인간이 하나로 일치하는 인류 가족이 되길 바라셨던 예수님의 뜻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은, 세상이 아무리 죄악과 증오와 폭력으로 물들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빛나는, 그래서 더욱 소중한 사랑의 나눔입니다. 

 

셋째, 교회는 사회의 갈라진 마음을 치유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통합의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의 구성원은 각자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존중은 연대성의 가치를 깊이 알게 해서,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이며, 동시에 연결될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의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함께 존중하고 공존해야 하며,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서로 도움이 필요한 우리 모두가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겸손함을 지닐 때, 나와 다른 상대방을 더욱 존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신자들 모두 험하고 고통스러운 이 세상에 ‘신앙의 다리, 사랑의 다리, 통합의 다리’가 되어 세계와 국가,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을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게 기도합시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진리와 지혜의 길로 인도하시며 도와주실 것입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성모승천’

 

 

[기고3] [성모 승천 대축일 특별 기고] 신화를 넘어 신앙으로: 성모 승천 교의의 배경과 의미

 

 

- 한민택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렀음에 대한 고백이며 희망의 표징

성경·성전 근거로 성모님 생애 탐구
지상 생애 마지막에 올림 받으심은
하느님 백성의 믿음에 대한 격려

구원사 안에서 협조자 역할에 주목
시련과 의구심 이겨낸 믿음의 끝이
구원이라는 확신 갖도록 일깨워

가톨릭신문사 발행일2022-08-14 [제3306호, 8면]

 

                                                               
“원죄 없이 잉태되신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지상 생활을 마치신 다음 영혼과 육신으로 천상 영광에 들어올림을 받으셨다.”(비오 12세 교황, 교황령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심(몽소승천)을 선언하는 성모 승천 교의뿐 아니라 평생 동정, 원죄 없으신 잉태 등 성모님에 관한 교의는 오늘 많은 사람에게 신화적으로 들리거나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다른 한편 과도하고 그릇된 성모 신심은 교회 안에 많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오늘날 성모 승천 교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원가톨릭대 교수 한민택(바오로) 신부의 기고를 통해 성모 승천 교의 선포의 배경과 그 의미를 알아본다.



성모 승천 교의의 특수성

교의는 대체로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단 등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 답하는 형식으로 형성되어 왔다. 초세기 공의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그릇된 주장을 펴는 이단에 맞서 가톨릭교회의 정통 신앙 교의를 수립하였다. (예: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그런데 1854년 선포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의와 1950년 성모 승천 교의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대한 찬미의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 교의의 이해를 위해서는 이단과의 논쟁이 아닌 교회 내·외적 상황과 선포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성모 승천 교의가 선포되기까지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성경과 교부들의 확실한 증언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 전승 안에 성모 승천에 관한 언급이 없던 것은 아니다. 성경과 성전을 근거로 성모 승천에 관한 여러 전승이 존재했으며, 신학자들도 열띤 토론을 행했으며 전승을 바탕으로 다양한 신학 사상을 개진하였다. 성모 승천 교의 선포에 큰 계기가 된 것은 1854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의 선포였다. 그 후 성모 승천 교의 선언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열렬한 청원과 지지가 있었으며, 비오 12세 교황은 당시 주교와 신학자, 신자들 동의를 물어 자문을 구했다. 이를 토대로 1950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교의의 의의

성모 승천 교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직접적 증언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도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교의가 성경과 성전에 근거를 둔 교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성경과 성전을 바탕으로 성모님의 생애 마지막에 관하여 탐구한 하느님 백성의 영적 여정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모 승천 교의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곧 성모님께서 하늘로 오름을 받으심은 그분께서 걸으신 믿음의 여정이 그 마지막 목표인 구원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하늘에 올라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시고 지복직관을 누리심은 지상에서 주님의 어머니로서 사신 믿음의 삶의 당연한 귀결이다. 성모 승천은 성모님의 믿음이 그 목적지에 이르렀음에 대한 고백이며, 하느님 은총의 권능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생애 첫 순간부터 끝까지 성모님의 온 삶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삶이었다.

또한 성모 승천은 하느님 백성의 믿음에 대한 격려이기도 하다.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의 마지막에 하늘로 올림을 받으심은 지금 지상 여정 중에 있는 교회의 운명이 어떠할 것인지 보여주는 표징이다. 성모님 안에서 교회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인 구원에 도달하고 있음에 대한 보증이기도 하다. 나아가 우리 각자 믿음의 끝이 구원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신화를 넘어 신앙으로

성모 승천에 대한 믿음은 신화와 같은 이야기에 대한 신봉이 아니라, 성모님께서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신 믿음에서 영감을 얻는다. 관건은 역사 안에서 이루시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며 그분께 대한 믿음, 신뢰요 의탁이다. 성모님이야말로 믿음의 어머니시며, 이것이 그분께서 구원의 역사 안에서 가지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성모 승천 교의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하늘’이 아닌 ‘땅’을 바라보도록 한다. 곧 하늘에 올림을 받으시기까지 성모님께서 사신 지상 생애에 주목하도록 한다. 신약성경은 성모님께서 걸으신 믿음의 길을 아름답게 그려주고 있다. 모호함, 의구심, 시련 속에서 인내하고 말씀에 의탁하며 당신 아드님의 길을 따라 걸었고, 제자들의 여정에 끝까지 함께하셨다. 또한 그분의 삶은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루카 1,48ㄴ-50)

자비로운 하느님을 온 삶으로 믿은 성모님은 하늘에 오르시어 오늘의 인류와 교회를 위해 자비로운 하느님께 전구하고 계시다.



희망의 증언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인이 간직하는 희망에 관한 증언이기도 하다. 성모 승천 교의는 믿음의 끝이 구원이라는 것, 그리고 그 구원은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상기시킨다. 교회는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순간부터 승천에 이르기까지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이심을 고백한다. 성모 승천은 성모님께서 누리시는 그 구원이 이미 역사 안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교회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널리 전파하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재촉하고 있다.

성모 승천을 통해 성모님께서 희망의 증인으로 드러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의 믿음이 시련과 모호함을 이겨낸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역사가 모호하고 시련이 끊이지 않더라도, 은총을 통한 믿음이 구원하며, 우리가 끝까지 견디어내고 항구하게 주님께 의탁할 때 결국 우리가 그 구원에 이르리라는 것을 일깨우고 계시다.



구원의 기쁨

오늘의 한국교회는 신흥종교와 신영성 운동의 도전, 코로나19 감염증의 지속적 위협,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많은 신자가 신앙의 갈등을 겪으며 교회를 떠나고 있다. 신앙에서 구원에 대한 체험과 확신을 얻지 못하고, 믿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때에 성모 신심의 쇄신은 매우 큰 영적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엘리사벳을 방문하며 부른 마리아의 노래는 오늘날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우리에게 신앙의 새로운 열정과 믿음의 기쁨을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한민택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