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카스퍼, 새로운 역사 지평 안에서 교회 정체성
- 심상태 신부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 )는 20세기 1960년대 후반기부터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학문적 결실을 줄곧 거둠으로써 세계 곳곳의 유수 교육기관들로부터 신학 발전에 기여한 걸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등 세계 정상급 대 신학자로 국제적 신망을 누리고 있다.(지난해엔 아시아에 있는 교육기관으로는 최초로 수원가톨릭대가 그에게 23번째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오늘날 카스퍼 추기경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요셉 라칭거)와 함께 가톨릭 신학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신학자로 손꼽힌다.
카스퍼의 신학 사상은 19세기 초에 형성된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학맥을 잇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신학도 시절부터 시작해 교수와 주교, 그리고 추기경 신분을 두루 거치는 반세기 동안 이 학파에 속하고 있음을 때로 공언하며 '튀빙겐 신학자'로 불리는 것을 못내 자랑스러워했다.
시대 사상과 열린 자세로 대화하며 신학 입장 정리
카스퍼는 1933년 3월 5일 독일 서남부 뷔르텐베르크주 방겐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교육자 부친과 독실한 신앙의 소유자 모친 밑에서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히틀러 통치 시절에 소년기를 보냈다. 부모 영향으로 매일 미사와 각종 신심 행사, 행렬 등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사제가 되려는 뜻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전쟁 종결 후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뒤 1952년부터 로텐부르크-슈투트가르트교구 소속 신학생 신분으로 튀빙겐대에서 신학 과정을 이수하기 시작해 자유 학기만을 외부 뮌헨대에서 보낸 이외에는 줄곧 튀빙겐대에서 수학했다. 이는 그가 스승들 인도를 받으며 튀빙겐 학파 정신으로 양성되고 '튀빙겐 신학자'로 살게 되는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튀빙겐 학파는 19세기 초 창시자 드라이(J.S. Drey)를 위시하여 히르셔(J.B. Hirscher), 묄러(J. A. Mu"hler), 쿤(J.E. Kuhn), 스타우덴마이어(F.A. Staudenmaier) 등 일단의 신학 교수들이 세속화 과정이 돌이킬 수 없이 확산되고 교회의 세속적 영화가 쇠락하던 격변기를 맞아 교회와 신학의 쇄신을 도모하면서 그리스도교 진리의 정체성을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새롭게 제시하고자 시도, 당대 교계와 신학계에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광범한 반향을 자아냈다.
- 젊은 시절의 발터 카스퍼. 튀빙겐 신학자인 카스퍼 추기경은 오늘날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요셉 라칭거)와 함께 가톨릭 신학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신학자다.
그들은 교회와 학문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당대에 형성되는 시대적 사상 조류와 대화하는 열린 자세로 신앙과 신학의 기본 입장을 새롭게 정립하려고 했다. 또한 후기 계몽주의, 낭만주의, 독일 관념론은 물론 당대에 형성된 개신교 신학사상 등 모든 사조와 주도 인물을 상대로 비판적 학술 토론이나 논쟁을 거치면서 새로운 역사의식 지평 안에서 교회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려고 진력했다.
강생 원리로서 그리스도 사건을 역사 안에 자리매김한 기반 위에서, 그들은 교회 전승(傳承)을 하느님 계시가 그리스도교의 역사 안에서 지속하는 현재가 되도록 생동적으로 움직여나가는 '자기를 전승하는 실재'로 파악했다. 더불어 낭만주의의 유기체(有機體) 사상을 교회 역사적 발전의 해석 도구로 원용해 계시 전체를 역사 안에서 펼쳐지는 유기체의 생동적 체계로 파악하는 가운데, 계시가 오로지 역사를 통해서만 현재를 사는 교회 공동체에 이르게 된다고 파악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는 계시가 교회의 '지속적인 현재에로의 자기전승' 안에서 역사적으로 발생한다고 규정하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원리'는 튀빙겐 학파 신학 전체의 핵심적 통찰로 간주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시대의 개방된 조류 안에서 신학을 수행하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카스퍼는 이 학파의 전통 안에서 외견상 순탄한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재학 중 작성한 연구논문이 수상의 영예를 누리는 등 성공적으로 수학 기간을 보내고 1957년 4월 6일 소속 교구 사제로 수품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1년간 보좌 생활을 하고 1958년부터 3년간 튀빙겐 신학원에서 신학생을 지도한 그는 1961년부터는 3년간 가톨릭 신학부 조교로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기 시작해 1962년 '로마 학파 안에서의 전통 교설'을 주제로 작성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교수 자격 취득을 위해 '쉘링(F.W.J. Schelling)의 후기 철학 안에서 역사 철학과 신학'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쉘링이 초기 자연철학에선 자유의 자연적 전제를 밝혀냈고, 후기철학에선 근세적 자유철학의 한계를 숙고했다고 밝힌다. 이어 그 때문에 이 노선에서 관념론 후기 사상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계보가 파악돼 근세 후기 이래 등장한 제반 사상 조류와 비판적이면서도 건설적인 입장을 정립할 수 있게 됐다는 소견을 개진했다. 논문은 1964년 「역사 안의 절대적인 것. 쉘링의 후기철학 안에서 역사의 철학과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카스퍼는 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난 뒤 31세의 젊은 나이에 뮌스터대 신학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곳에는 한 해 앞서 부임해온 라칭거가 교의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그가 1966년 튀빙겐대로 학교를 옮기자 후임자로 칼 라너가 뮌헨에서 부임해 왔다. 라너는 1969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교의신학 교수로 봉직했다. 또한 라너의 제자이자 친구인 메츠(Johannes Baptist Metz)가 기초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으니, 뮌스터대에는 세계적 명성이 자자하던 신학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던 셈이다.
그런데 라칭거가 1969년 튀빙겐을 떠나 레겐스부르그대학으로 옮긴 뒤, 카스퍼는 그 후임으로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레겐스부르그대에서 1970년부터 1989년 교구장 주교로 임명될 때까지 출중한 신학 활동을 펼치며 세계적 신학자로 급부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카스퍼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결정에 따라 1999년 교구장직에서 물러나,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사무총장 직무를 맡았고 2001년엔 추기경 서임과 함께 평의회 의장직에 임명됐다. 그는 그리스와 러시아 정교회를 위시해 성공회와 개신교 등과의 교회일치를 촉진하고자 활발히 노력해 교회일치에 우호적 풍토 조성에 크게 이바지하는 동시에 유다교와 관계 증진을 위해서도 진력했다. 2010년 은퇴한 그는 계속 로마에 거주하면서 교회 주요 현안과 관련한 자문 요청에 응하고, 세계 각국에서 초청하는 신학 강연이나 학술회의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며 집필 활동도 열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들
- 국내에 소개된 발터 카스퍼 저서들.
카스퍼가 신학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인 1960년대 후반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의 신학적 해석과 실천적 수용을 둘러싸고 가톨릭 신학계 안에서 편차 큰 입장들이 충돌해 갈등을 빚던 시절이었다.
일부 신학자 층은 근세 이래 진행돼온 사회 및 교회 전통으로부터 이탈을 통한 변혁을 도모하는가 하면, 다른 층은 전통적 입장을 변함없이 고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카스퍼는 이러한 혼란기에 튀빙겐 학파의 '역사적 사고'를 자기 신학사상의 핵심 기조로 삼으면서 교회 신앙의 역사적 도정을 파악하고, 이를 오늘을 위한 신앙의 길로 만들고자 주도면밀하게 작업에 매진했다.
카스퍼의 이러한 노고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가 1969년과 1970년에 뮌스터대와 튀빙겐대에서 모든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신앙 입문' 공개강좌 내용은 1972년 같은 이름의 책으로 나왔다(국내에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으로 소개, 1979). 이후 그를 일약 세계적 교의신학자 반열에 올려준 저서 「예수 그리스도」(1974)와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1982)이 출간됐고, 후속작 「가톨릭교회, 본질ㆍ실재ㆍ파견」(2008)은 고위직 수행 관계로 뒤늦게 출간됐다.
이 밖에도 「신학과 방법론」(1967), 「신앙과 역사」(1970), 「신학과 교회」(I, 1984; II, 1999), 「믿는 사람은 떨지 않는다」, 「자애」(2012) 등이 또 다른 주요 저서로 꼽힌다. 이와 함께 독일 '발터 카스퍼 추기경 연구소'를 통해 2007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교회의 전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교회와 그 직무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에로의 도정」 등이 전집으로 속속 나오는 중이다.
* 심상태 몬시뇰(수원교구,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 1971년 사제수품
▲ 1975년 독일 튀빙겐대 졸업, 신학박사(교의신학)
▲ 1976~1991년 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 1991년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설립
▲ 1993~2005년 수원가톨릭대 교수
▲ 2005년 몬시뇰 서임
▲ 주요 논문 및 저서 「교의 해석의 제 문제」 「신학토착화의 기본문제 고찰」 「익명의 그리스도인」 「인간: 신학적 인간학 입문」
[평화신문, 2013년 11월 3일, 심상태 몬시뇰(수원교구,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개별 역사적 사실과 보편적 진리 아우르는 통합적 신학 전개
- 카스퍼의 신학은 한 편에선 자유주의적 또 다른 한 편에선 보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외부 비판에 전혀 동요치 않고 튀빙겐 신학자로서 길을 오롯이 걷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 신학계에는 신앙과 교회의 주요 핵심 사안과 관련해 이전처럼 단일한 입장이 아니라 복수의 입장들이 공존하면서 작지 않은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불리는 신학 노선들 사이에는 신앙과 교회 생활의 주요 진리의 의미를 둘러싸고 확연히 구별되거나 대립하는 입장이 평행선을 긋다시피 양립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학 풍토에서 카스퍼의 신학은 한편에선 '자유주의적' 또 다른 한편에선 '보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외부 비판에 전혀 동요치 않고 '튀빙겐 신학자'로서 입장을 의연한 자세로 일관되게 유지해 오고 있다. "그들(튀빙겐 신학자)에게 보수적이고 진보적인 것은 서로를 배제하는 반대들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 양립불가하지 않고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이에 비해서 극단적 주장들은 항시 더 단순하다. 이와 반대로 극단들을 함께 응집시키고 가급적 함께 생각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이는 '조정하다'를 뜻하는 것이며, 이는 '신학은 생각해야 한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아니다."
카스퍼 신학의 인식원리
카스퍼의 신학은 방법과 내용 면에서 '튀빙겐 신학'의 입장을 오늘날의 역사 상황 안에서 충실히 대변한다. 이 신학의 인식원리와 방법으로부터 신앙의 핵심 진리 및 교회 주요 현안과 관련해 다른 신학자나 노선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입장을 형성하면서,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는 다수 신학자들의 공감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카스퍼 신학의 특성은 튀빙겐 학파의 전통 개념을 '신학적 인식원리'를 적용한 방법을 통해 신앙의 여러 진리를 구명하는 데 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튀빙겐 신학의 전통은 재래 전통 개념과 구별돼 하느님의 자기전승으로서 계시에 관한 모든 진술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는 영원한 하느님 말씀이 이스라엘 역사의 특정 시점과 공간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자기 전달(증여)로서 나자렛 예수로 강생했다는 믿음이다. 이는 바로 신앙 핵심이 그 내용과 현실 그리고 매개와 전체 지평 안에서 역사적임을 가리킨다.
고대에서 시작해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는 교회와 신학 안에서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이 기간에 역사나 역사적 변천 현상은 교회와 신학 안에서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상사적으로 인간학적 전환을 이룩한 근세에 이르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역사가 우주의 포괄적 질서 안에서 한 소인이 아니라 모든 질서 자체가 그것을 즉시 상대화하는 역사 내에서의 한 소인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세계 실재 자체가 심층으로부터의 역사로 파악되기에 이르렀다. 19세기 초 튀빙겐 신학자들이 도모했던 그리스도 신앙과 역사의 만남이 한 세기 훨씬 지나고 나서야 가톨릭 신학계 안에서도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신학자나 노선에 따라 신학과 역사의 만남이 상당히 상이한 방법으로 이뤄졌기에, 현격한 입장 차를 드러내는 여러 신학적 입장들이 형성돼 혼선을 빚은 것이다.
신학계에서 그동안 이뤄진 신학과 역사의 만남으로 종교사와 역사ㆍ비평적 주석학이 태동했다. 이로써 영원불변한 하느님 말씀이 담긴 성경의 역사적 제약성, 타종교로부터의 영향, 당대의 문학형식과 사고형식, 기술형식으로부터의 영향, 그들의 역사적 발전 그리고 그로써 주어진 개별 진술 사이의 긴장 상태가 속속 밝혀지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성서 진술이며 신앙 진리에 관한 역사적 인식은 교회의 많은 교리 체계나 구조형식을 역사적인 것으로 드러내면서 교계나 신학계에서 신앙과 역사의 문제 처리를 둘러싸고 서로 구별되는 입장들이 갈등을 빚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카스퍼는 현대 신학의 이러한 갈등 상황 안에서 튀빙겐 학파의 전통 원리에 따라 작업을 수행해 왔다. 그에게도 전통은 살아있는 전통, 즉 사람들이 생활해 전수함으로써만 전승을 지닐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신앙 인식의 기초가 역사(특정 시간과 장소) 안에서 발생한 나자렛 예수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전승의 계시로 규정된다. 그런데 계시와 계시된 것의 전달로서 전승이 중세 이래 지난 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명제(命題)처럼 생각됐다. 이것은 하느님 계시가 그 원천과 역사적 증거 안에서 명제들의 총합으로 이해됐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풍토 안에서 성경과 성전, 교도권 등의 문헌들이 초역사적 교리의 구성요소로 간주됐다.
하지만 카스퍼는 이러한 재래 전통 개념과 구별되는 튀빙겐 신학의 입장에 따랐다. 그는 전통을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현재화에 이르는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 전달이요, 성령 안에서 이뤄지는 그리스도의 기억"으로 이해한다. 튀빙겐 신학자들이 내내 강조하는 '하느님의 자기전승'으로서 전통은 교회 역사를 거치면서 축적되고 물화(物化)된 소유자산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생활하는 신자들 마음속에 살아 있는 하느님 말씀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자기전승은 교회와 신자를 전통주의로 속박하지 않고, 역사의 개방된 조류 안에서 미래의 길로 자유롭게 가도록 하는 살아 있는 전통이다. 따라서 카스퍼는 신앙 진리를 '추상된 명제로 구성된 교리 체계의 축적(蓄積)'과 간단히 동일시하지 않고 '교회 존재와 동일시되는 생동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카스퍼 신학 방법
카스퍼 신학은 튀빙겐 학파의 전통 개념에서 출발해 신앙과 신학을 조명하는 길을 걷는다. 여기서 교회성은 역사 진행에서 축적된 추상적 교리체계와 일치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주석이 늘 새롭게 이뤄지는 생동적 전통과 소통의 과정으로 들어서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입장은 성경 진술과 결정된 교리 사실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신학적 실증주의나, 이를 무리하게 하나의 체계로 압축하는 교리주의 입장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카스퍼는 역사적 개별 해석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신학적 개별 자료에 내재하는 활력에서부터 실재 일반의 종말론적인 궁극의 의미가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로 모든 것이 통합되는 체계적 연관성을 제시하는 것을 최대 관건으로 여겼다. 말하자면 그는 한편으로는 세계 안에서 발생한 다양한 역사와 개별적 역사적 사실(부분), 또 다른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집중적이며 극적으로 주어져 있는 보편적 진리(전체)를 모두 중시하는 일종의 통합적 신학을 전개한다.
그의 이러한 작업방법은 '시대의 열린 조류 안에서 신학'을 전개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보편적 신앙 진리로서 복음 진리의 의미를 온전히 구명하기 위해 성경과 전승의 개별적 자료에 대한 엄밀한 역사적 연구 작업과 교회와 세계의 열린 조류 안에서 성령을 통해 생동적으로 이뤄지는 계시의 종말론적 자기전승의 의미를 구명하는 작업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을 특정 과거 시점에 머물러 있는 고정된 교리 내용을 담은 보편적 진리 전체로 간주하기보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계시 자체와 인격적으로 관련을 맺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카스퍼는 신앙 진리에 대한 역사적 개별 연구와 체계적 개관을 적절한 관계로 맺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양성교령」의 가르침과도 부합한다고 본다. "교회 학문을 재검토하는 데에 있어서 우선 철학과 신학을 보다 적절히 조화시켜 학생들에게 인간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점차로 명백히 이해시키는 단일 목적에 철학과 신학이 함께 이바지해야 하겠다"(14항).
지난 공의회 이후에 신학계 안에는 신앙 진리에 관한 역사적 개별 연구를 생략하다시피 건너뛰고 기존의 개관 내용의 정당성을 제시하는 작업에만 치우치는 입장들이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앙 전체의 성격은 도외시하고 오로지 개별 진리에 관한 성서적거나 사변적 분석 작업, 세부 천착에 매몰되는 입장들이 목격된다. 카스퍼 신학에서는 특정 진리의 개별 연구 자체가 주된 연구 대상이 아니라 역사적 개별 해석을 유념하면서도 그리스도 신앙 전체를 살피며 앞으로 발생할 종말론적 차원의 실상을 구명하는 입장이 시종 관건이 된다.
그 때문에 그는 개별 논구 대상의 성경적이고 전승적인 근거뿐만 아니라 역사적 차원의 정신사적 발전 근거에도 주목하면서 이를 통해 도전을 받는 신학의 구체적 역사에 자기 자신을 세움으로써 보편적 신앙 진리의 종말론인 궁극적 면모를 제시하려고 진력하는 것이다.
카스퍼는 튀빙겐 신학의 이러한 입장이 인류 사회와 교회 안에서 현실적으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주목하면서 그 신학적 의미를 구명하는 작업을 소홀히 한 채, 재래 신학의 내적 논리 체계 안에서 순수 사변 일변도로 아니면 성경 실증주의적으로 또는 교리주의적으로 보편적 신앙 진리의 의미를 제시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다른 신학 노선과는 분명히 구별된다는 소신을 피력해 왔다.
그는 다른 신학자와 논쟁에서 상대방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개진해 왔다. 그가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와 관계 설정과 관련해 라칭거와 벌인 논쟁을 통해, 또 라칭거의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이나 교황 재위 기간 중에도 평소의 소견을 일관되게 개진한 사실을 통해 신학자로서 그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10일, 심상태 몬시뇰(수원교구, 한국그리스도사상 연구소)]
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와 쇄신 강조
- 지난 3월 독일에서 열린 발터 카스퍼 추기경 80세 생일 기념 행사에서 카스퍼 추기경(가운데)과 함께한 심상태 몬시뇰. 심 몬시뇰은 카스퍼 추기경 제자다.
카스퍼 신학의 중요사상
카스퍼를 포함한 현대의 대표적 신학자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위시한 신앙의 핵심 진리를 고대 그리스 철학 개념인 본성, 본질, 실체와 위격 개념 등을 사용해 의미를 밝힌 형이상학적 신학 경향을 탈피하고, 역사 안에서 만물과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전달하고 마침내 나자렛 예수 안에서 절정에 이르는 하느님의 구원역사(救援役事)의 실상을 구명하는 데 역점을 두는 구세사적 신학을 공통으로 전개한다. 그리고 교회를 불완전한 사회나 종교 집단과 구별되는 교계제도로 구성된 초자연적 완전 사회로 파악하던 개선주의 경향을 벗어나 구세사적 지평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로 형성된 하느님 백성으로서 친교 공동체로, 구원의 성사적 표징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신앙의 주요 진리에 대한 공통된 신학 사상이 형성돼 있지만, 튀빙겐 신학의 인식 원리와 방법에 입각한 카스퍼의 주요 신학사상 안에는 특유의 구별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제약된 지면 관계로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공통된 내용보다는 특성을 드러내는 몇 가지 주요 통찰만을 간략히 소묘하고자 한다.
신앙이해
신앙은 교회 생활에서 흔히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객관적 구원 사실을 진리라고 증거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카스퍼에게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는 외부인 눈에는 숨겨진 역사로서 신앙 속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신앙과 역사의 관계에 관련된 문제들, 예컨대 기적과 예수 부활 등을 이해하는 데에서 성경 본문이나, 교회 가르침을 진리 근거로 제시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이 결정적 주요성을 지닌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구세사는 인간에게 숙명론적으로 발생하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나약성, 일상의 비루함과 현실 세계의 불의와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주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자신을 의탁하는 역사적 신앙 감행을 통해 발생한다. 신앙생활을 위해 구세사의 객관적 성격이 주요하더라도,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을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카스퍼의 입장이다.
하느님과 그리스도 이해
카스퍼의 하느님 신학사상은 그분을 '절대적 자유로서의 사랑'으로 이해한다. 그는 성부로서의 하느님이 절대적 자유의 선물이고 성자는 성부가 지니고 있는 자유의 절대적 인정이며, 성령은 절대적 단일성과 절대적 상위성의 동일원천성이라고 이해한다. 하느님, 성령, 절대적 사랑은 하나의 관계이며 그것이 자유의 선물이고 시간 내지 가능성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랑으로서 자유의 선물이신 하느님이 당신 자신의 타자적인 것 즉 창조를 원하시는 데에서 필요하지 않은, 자유를 지닌 어떤 것이 생겨난다고 본다. 하느님은 창조주와 구속자로서 실제적인 무조건적 자유의 선물이다.
그리고 카스퍼는 그리스도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한 아드님이자 로고스의 성령 역사로 이뤄진 육화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는 상위성을 단일성과 함께 성령적으로 시야에 담을 때에만 적절히 이해된다고 본다. 이어서 그는 예수가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으로서 성자의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친 칼케돈공의회 교의의 의미를 '사랑의 관계'로서 '인격' 개념 설명을 통해 밝힌다. 그는 인격이 구체적으로 '오직 관계 안에서'만 자신을 실현하는 사랑을 본질로 지닌다고 규정하면서 이 내용을 예수에게 적용한다.
그분을 신적 인격으로 특징짓는 정체성은 성부께 대한 그의 사랑의 관계, 곧 성부를 향한 사랑에서 발하는 그의 순명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인간적 순명이 천주 성자의 순명인 한, 순명이 그를 성부로부터 구별할 뿐만 아니라 성부와의 일치도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스퍼는 성자의 위격이 현실적으로 인간 예수로 존재하기에 성자는 인간으로서 특정한 의미에서 인간적 위격이기도 하다고 논증한다. 성자가 자신의 신적 위격성을 이제 인간적 유형 양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 안에서 신적 '누구'의 인간적 '나', 천주 성자가 있다는 것이다.
카스퍼의 그리스도론은 성령과 긴밀한 연계 안에서 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예수 안에서 성령의 충만이 세계 안에서 작용했다고 본다. 그리고 예수가 "하느님 성령의 새로 마련된 현존과 실재의 목표이자 정점"이면서, 또한 "성령 파견을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거를 찾는다. 그 다음 논거로는 예수와 그의 성령을 통해 종말시대가 이끌려졌다는 점을 꼽는다.
교회 이해
카스퍼의 교회론 역시 성령론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는 교회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충실하듯이 '시대의 물음'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열려 있고 은사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연계하면서 일치시킬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분임을 아울러 역설한다.
그는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서 일종의 그리스도 일원론적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성령을 교회 제도에 연계하는 경향이 점증하며 '교계적 교회의 영혼'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고착화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성삼 위격들의 외부로의 공동 역사를 강조하는 아우구스티노적 신학 명제가 강조되는 나머지 신자들의 개별 인격이 독자적 존재가 되도록 자유롭게 하는 성령의 내주(內住)에 대해서 공언하는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로 성자 시대 이후에 성령의 시대에 대해서 언급한 중세 피오레의 요셉 수도원장을 거슬러서 예수 그리스도를 넘어서는 구세사적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규정하는 분위기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카스퍼는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를 강조한다.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화는 죽은 문자의 양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유의 양식 안에서 발생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늘 반복해 그 새로움 안에서 이 새로운 것을 자유에 맡긴다. 성령은 늘 새로운 것의 하느님으로부터 열린 공간이며 새로운 존재의 늘 새로운 힘이다."
카스퍼는 교회를 "성령의 성사"로 지칭하기도 한다. 성령의 성사로서 교회 이해는 성령과 교회의 관계를 폐쇄적으로 파악하는 입장에 비해 본질적으로 개방된 입장을 견지한다. "교회는…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돌입할 때까지 와 있는 실재이다.… 교회는 한 번은 전체 실체를 포괄하게 되고, 교회 밖에서도 어디서나 숨겨진 가운데 돌입하고 있는 하느님 다스림의 선취적인 표징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일치 교령」이, 성령이 구원의 중재를 위해 다른 교회적 공동체를 사용하신다고 말할 때, 그로써 우리의 학교 교의학에서는 전혀 해서는 안 됐어야 할 양식으로 성령이 작용하도록 자신에게 허용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카스퍼는 또한 '성령'과 '성사' 개념의 연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령 작용이 항상 구체적인 가시적 일치로 이끈다고 강조한다. 그는 분열을 극복하려는 교회는 가시적 다양성의 가시적 단일성에로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성령의 성사인 교회 안에서 단일성이 다양성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여기에 보편교회와 지역교회 사이의 관계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안에서 드러난 라칭거와 카스퍼 사이의 입장 차이의 핵심이 있다. 그는 다양성에 앞선 단일성의 존재론적 우선성을 주장하는 라칭거와는 달리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분리불가능성을 지시하면서 '성령의 성사'로서 이해된 교회의 삼위일체적 성격에 따른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상호침투성을 말한다. 즉 많은 지역교회들이 단지 하나인 교회의 한 부분이나 구역에 그치지 않고, 이들 안에서 하나인 교회가 구체적으로 현존한다고 보는 것이다.
카스퍼는 성령의 성사로서의 교회 개념의 장점으로 교회에는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 새로운 것, 계획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제조할 수 없는 것" 등이 속하는 사실을 꼽는다.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새로움 안에서 항상 되풀이해 새롭게 현재화하는 데에서 이뤄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죽이는 문자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의 성령이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현상 유지의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잠금장치가 아니라 지속적 쇄신의 성령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애정
끝으로 카스퍼가 한국교회에 비상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는 지난해 10월 방한, 며칠간 머물면서 자신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같이 '아시아 복음화'가 제3천년기 보편교회의 최대 도전이자 과업이 돼 있는 현 상황에서, 실패한 서구교회를 대체하고 이 과업을 수행할 여건을 제대로 구비한 지역교회로 한국교회를 꼽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구 선교사들에 앞서 50년 동안 복음을 신앙진리로 스스로 수용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지탱하고자 진력한 창설 주역들에 대해 찬탄 어린 경의를 나타냈다. 그는 이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기에 실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큰 신학자이기도 하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17일, 심상태 몬시뇰(수원교구,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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