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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켄터버리의 안셀무스의 삼위일체론적 사고에서 본 진리인식문제

나뭇잎숨결 2022. 1. 4. 18:17

진리의 단일성과 다양성에 관한 논고

- 성 켄터버리의 안셀무스의 삼위일체론적 사고에서 본 진리인식문제 -



김 영 철(한양대)



[한글 요약]



성 켄터버리 안셀무스의 진리인식의 문제는 神인식(진리), 즉 인간과 신의 동일성 내지는 일치를 주장하는데 있으며, 아울러 그러한 견해를 그의 진리론 전반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안셀무스의 기본사상은 결국 인간정신에 의해서 신(진리)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며, 또한 오직 인간의 이성(sola ratione)에 의해서 만이 신이 인식 내지는 기억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정신 내에서의 神(진리)에 대한 인식문제는 결국 인간정신 안에 내재하는 최고의 진리인 신을 찾는 것이며, 이것은 곧 자기인식의 문제이며, 인간정신과 신의 일치 내지는 동일성을 찾는 것이다. 안셀무스는 이러한 사상을 플라톤의 근본사상인 참여론과 상기론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적 통일론(삼위일체론), 즉 플로티누스, 마리우스 빅토리누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발전되어진 삼위일체론적인 사고의 바탕에 입각해서 전개하고 있다.

주제분야 : 형이상학, 인식론, 삼위일체론

주 제 어 : 진리, 神인식, 자기인식, 이성, 삼위일체



1.



단일성(통일성) 또는 다양성 내에서의 단일성에 대한 질문은 (신)플라톤주의철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단일성에 대한 논의는 파르메니데스 이래로부터 그리스 철학의 주된 관심분야였으며 또한 그리스 철학의 근본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계와 인간의 근원에 대한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서,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적 노력의 결과로서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피타고라스는 '수'를 그리고 플라톤은 '이데아(선의 이데아)'를 상정했었다. 신플라톤주의자들 또한 이러한 그리스 철학의 전통의 기반에서, 그들과 동일한 질문인 사물과 인간의 원인에 대해서 답변을 찾으려 했다. 그들의 사고의 일반적인 특징은, 인간의 정신은 일자(하나)를 찾으려고 하며, 일자에 의해서 다양한 세계현상과 사물의 본질이 설명되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일자(to hen, unum, 하나)란 자기 스스로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다양성(많음)의 전제로서 이해되어지며, 따라서 많음(다양성)은 일자가 현상에 드러남 내지는 일자의 전개로서 이해되어진다. 이러한 신플라톤주의의 근본사고가 플로티누스의 실체화론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아울러 마리우스 빅토리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적인 견해, 그리고 안셀무스의 삼위일체론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안셀무스는 삼위일체론(trinitas)을 진리(veritas)의 전개 내지는 진리의 드러남으로, 그리고 신적인 본성과 인간본성의 통일(unitas)로 본다. 삼위일체는 다양성내에서의 일치성(단일성, 통일성)과, 역으로 일치성내에서의 다양성을 갖는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이 것은 다양한 현상의 사물들이 일자로부터 나와서, 일자에로 다시 귀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고는 특히 플로티누스의 사상으로 대표되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전통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안셀무스의 사상과 신플라톤주의 철학과의 연관관계로 인해서, 그의 삼위일체론적 사고의 선행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로티누스와 마리우스 빅토리누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일론(일치론) 내지는 삼위일체론을 간단히 언급하면서 서로의 연관관계와 안셀무스의 삼위일체론에서 드러나는 진리인식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플로티누스는 - 일반적으로 실체화론이라고 칭하는 - (절대적) 통일론을 정신(nous)의 기능에 의해서 설명한다. 정신이란 선(bonum)이나 일자(unum)의 모상으로서 그의 통일론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의 통일론(실체화론)은 유출설(emanatio)에 의해서 실행되어 지는데, 유출설은 간단히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일자(to hen)는 가장 높은 단계, 즉 제1실체이며, 그 다음 단계의 실체는 신적인 이성의 세계에 있으며, 신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 정신(nous)이며, 세 번째 실체로서는 영혼(psyche)의 단계가 있으며, 그 밑으로는 육체적인 단계와 마지막 단계로는 규정되지 않은 질료(hyle)들이 있다. 이러한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은 다시 두 가지의 단계로 구분되는데, 즉 일자, 정신, 영혼이 속하게 되는 정신적 세계와 육체적인 것과 질료가 포함되어지는 감각적 세계이다. 이러한 이론은 플로티누스의 기본적 사고에서 기인하는데, 그는 모든 세계는 두 개의 상이하면서도, 서로 관계를 갖는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며, 아울러 그러한 두 세계의 연관관계를 플라톤적인 참여론에 의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플로티누스는 정신적이며 지적인 세계를 감각적으로 감지되는 세계의 원형 내지는 원인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감각적 경험적 세계는 정신적 세계의 드러남(외적모습) 또는 정신적 세계의 모상이라고 생각했다. "감각적 세계에서 가장 완전히 아름다운 것이 있는 것과 같이, 정신적 세계에서도 완전한 선의 계시가 있으며, 이들 모든 세계는, 즉 감각적 존재와 정신적 존재는 끝없이 진리를 추구하지만,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진리에 나아 갈 수 있고, 감각적인 것이 진리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존재에 참여 내지는 모방을 함으로서만 가능하다." 감각적으로 지각 가능한 세계가 원형으로서의 정신적 세계의 모상이라는 생각이 의미하는 것은, 감각적으로 지각 가능한 세계가 정신적 영역을 구성하고 있는 이성적 정신적 구조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천상의 정신이나 이성적 형식과 동일하지 않고, 단지 그 것의 일부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감각적 지각 가능한 세계는 정신으로부터 소산되어지는 이성적 구조에 참여함으로서만, 즉 감각적 세계는 정신적 세계의 이성적 구조 안에서 형성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플로티누스에 있어서의 일자(to hen)는 선, 모든 것, 근원, 원리나 원인 또는 만물의 근원과 다르지가 않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일자에 의해서 그리고 일자로부터 발생되기 때문이다. 정신(nous)은 일자로부터 직접 나오며, 일자, 즉 선은 정신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정신은 일자의 모상이며 항상 일자에로 귀환하려 한다. "일자는 선이다. 그리고 정신은 선하며, 일자로부터 그의 생명을 가진다. 일자는 정신의 직관대상이며 또한 선한 것이다. 그리고 정신은 선의 본질을 직관하는 순간에 그의 직관 대상인 일자를 인식할 수 있다. 이 것은 일자가 정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일자를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정신은 스스로 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의 본성을 받아들임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신은 선한 세계인 선이나 일자와 반대인 감각적 지각 가능한 세계와는 아무런 연관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플로티누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두 개의 상반된 세계의 상호연관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이 문제의 해결점을 영혼(psy- che)에 두고, 영혼의 이중적 성격, 즉 정신적 능력과 감각적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플로티누스에 의하면, 영혼은 정신적 내적 세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감각적 세계에도 존재한다. "영혼은 경계점이며 그 것과 적절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영혼은 두 방향인, 즉 정신적 세계와 감각적 세계에로 나아 갈 수 있다." "영혼이 갖는 모든 것은 아래로는 육체적인 것으로, 위로는 정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혼은 정신적 내적인 세계에서 정신과 연계를 가지며, 그러므로서 일자에로 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영혼은 감각과 연계를 가질 수 있으며, 그러므로서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타락할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영혼은 본질적으로 모든 사물들의 총괄개념인데, 말하자면 정신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들 가운데서는 가장 낮은 것이며, 현상세계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영혼은 두 개의 세계를 연결하는데, 즉 영혼에 의해서 성스러움과 항상 새로운 삶의 생동을 얻게되며, 그러나 또한 영혼에 의해서 기만되며 타락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혼의 이중적 성격은 정신에 의해서 규정되어 진다는 것이다. 영혼은 감각적 세계와 순수정신 사이의 중간에서 작용하는데, 이 것은 영혼이 외부적인 것과 연관을 가질 뿐만 아니라 내적인 것, 즉 위로 향하는 특성 또한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신(nous)은 영혼을 지배하는 것이다. 정신이 없으면, 영혼은 단지 감각적 지각 가능한 세계에만 머물게 되며, 감각과 더불어서는 결코 정신적 내적세계와는 아무런 연관을 가질 수가 없다. 따라서 영혼은 단지 정신의 도움이나 동반작용에 의해서만 높은 정신적 세계에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 것은 결국 영혼이 정신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신은 영혼이 감각적인 세계로 추락하거나 또는 정신적인 세계로 올라가게끔 결정을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명백히 정신이 영혼보다 더 우위의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영혼의 생성과정을 고찰해 보면 보다 더 분명해 지는데, "정신은 성숙한 상태에서 영혼을 낳으며, 정신은 성숙한 상태에서는 생산을 해야만하며, 거대한 힘을 가진 정신이 생산력을 가지지 않는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생산되어진 자는 생산자 보다 더 높은 존재라고는 할 수 없고, 보다 더 낮은 존재이며, 생산자의 모상이며, 아울러 규정되어지지 않고, 그의 생산자로부터 규정되어지며 또한 형상 되어진다." 이 것은 결국 영혼이 정신보다 낮은 존재이며 정신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명백히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영혼에 대한 정신의 우월성에 대한 견해에 근거해서, 플로티누스는 그의 통일론을 영혼 안에서의 정신의 역할을 통해서 계속해서 전개시키는데, 정신은 일자를 제외한 최고의 가능한 통일의 형태이다. 사고함에 의해서 스스로에 귀환하는 정신은 생산과 귀환의 통일이다. 정신은 영혼의 본질을 구성하며 아울러 관념들과 그 것을 통일하는 근거이며 목적이다. 정신은 또한 신적 정신적 본성과 인간적 감각적인 본성을 통일하는 사고이며, 동시에 정신의 자기반성 내지는 자기숙고라고 할 수 있다. 이 것이 의미하는 바는, 정신이 스스로 사고하는 관계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정신은 본래 스스로 - 우리가 앞에서 영혼의 기능에서 고찰한 바 있는 - 두 개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정신이 감각적 인간적인 본성을 통일에로, 즉 신적인 정신적인 본성에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nous)은 플로티누스의 통일론, 달리 표현하면 그의 관계이론(關係理論)의 중심 실체라고 하겠다.





3.



이러한 플로티누스의 통일론 내지는 실체론(일자, 정신, 영혼)을 근거로 해서 마리우스 빅토리누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안셀무스가 그들의 삼위일체론을 형성하게 되는데, 만일 우리가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와 플로티누스의 사상적인 연관관계에 대해서 파악하려고 한다면, 마리우스 빅토리누스의 삼위일체론을 - 비록 그의 사상이 철학적으로 거의 연구되어 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리우스 빅토리누스는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라는 삼위(三位)를 존재(esse), 삶(vivere) 그리고 정신(intelligere)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서, 이러한 삼위의 형태는 유일한 정신적 실체(substantia)에 의해서 삼위의 행위(actus), 즉 존재, 삶 그리고 정신의 행위를 설명하며 또한 통일하려고 한다. 삼위의 행위들은 서로 상호연관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유일한 하나의 행위에 의해서 나머지 두 개의 행위가 구분되어진다. 이 유일한 하나의 정신적인 실체는 자기 스스로 발생하고 그리고 자기 스스로 귀환하는 존재라고 표현되어질 수 있는데, 이 것을 마리우스 빅토리누스는 성부로서의 존재(esse)라고 하며, 아울러 성자로서의 삶(vivere)과 성령으로서의 정신(intelligere)은 성부로서의 존재에 포함되어져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성자와 성령은 성부 안에 이미 존재되어 있었으며, 그들이 스스로의 발생운동과 자기인식운동으로 성부와 구분되기 이전에는, 원천적으로 성부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성부라는 실체의 측면에서는 하나의 실체이며, 따라서 세 개의 본질은 하나의 본질로 통일된다." "모든 것은 성부에 의해서 이끌어진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성부로부터 발생되었기 때문이며, 아울러 성자 또한 그러하다." 따라서 성부는 신적인 존재로서 그리고 통일의 근거로 규정되어지며, 세 개의 실체들은 모두 신적인 존재의 드러남으로서의 존재, 삶 그리고 정신으로 표현되어지는 완전한 신(神)이다. "삼위는 항상 하나이며, 삶과 정신은 존재 안에서 살아있으며, 또한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세 개이며, 아울러 존재에 이미 포함되어져 있다는 측면에서는 항상 하나인 것이고, 여기서 존재가 의미하는 바는, 천상의 존재, 즉 저 세상에 살아있고 생각하는 존재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의 존재에는 이 세상의 삶과 정신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세 개의 개념은 본질상으로 존재 안에서 존재하며, 따라서 세 개의 개념들은 하나이다. 삶이란 존재하는 것과 같은데, 왜냐하면 신에 있어서의 삶이란 우리 인간들에 있어서의 삶, 즉 어디에서 산다는 것과는 달리 어떤 것에 삶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정신 자체는 그의 존재와 같으며, 이 존재는 정신이며, 이 정신 자체는 정신이다. 존재는 그러므로 삶의 존재이며 정신의 존재이며, 말하자면 스스로의 삶이며 정신이다. 결과적으로 삶과 정신은 하나이며 또한 존재와 동일하다." 이 세 가지 개념들의 드러남(explicatio) 또는 신으로서의 존재의 스스로 (자기)드러남이 바로 마리우스 빅토리누스의 삼위일체론이 지니고 있는 내용의 핵심이라고 하겠다.



[Abstract]



Einheit und Vielheit der Wahrheit

- Anselm von Canterburys Wahrheitserkenntnis in

seinem trinitarischen Denken -



Kim, Young-Chul(Hanyang University)



Es geht bei der Wahrheitserkenntnis Anselms von Canterbury um die Suche nach der Gotteserkenntnis, der Identitaet des Menschen und Gottes, die Anselm hauptsaechlich in seiner gesamten Darstellung des Wahrheitsbegriffes ins Auge fasst. Dieser Grundgedanke Anselms bezieht sich auf die Gotteserkenntnis, die aber ausschliesslich durch die Erkenntnis des Menschen selbst bzw. 'sola ratione'(durch die Vernunft allein) vollzogen und bewusst erinnert wird.

Die Hauptfrage nach der Gotteserkenntnis im menschlichen Denken besteht offensichtlich darin, die Suche nach der Einheit des menschlichen Denkens mit der hoechsten Wahrheit, nach Gott zu verbinden. Fuer das Verstaentnis und die Loesung dieser Frage kann in Bezug auf Anselm ein Zusammenhang mit dem Platonischen Grundgedanken der Partizipation- und Anamnesislehre und der Neuplatonischen Einheits- bzw. Trinitaetslehre, die von Plotin, Marius Victorinus und Augustinus entwickelt wurde, hergestellt werden.





Themensbereich : Metaphysik, Erkenntnistheorie, Trinitaetslehre

Thema : Wahrheit, Gotteserkenntnis, Selbsterkenntnis, Vernunft, Trinita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