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나뭇잎숨결 2021. 9. 28. 09:20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 바다 온통 단풍 불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살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붙는 몸으로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 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 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 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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