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 김명인
새집들에 둘러싸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내 사는 집이 낡아간다/ 이태 전 태풍에는 기와 몇 장 이 빠지더니/ 작년 겨울 허리 꺾인 안테나/ 아직도 굴뚝에 매달린 채다/ 자주자주 이사해야 한재산 불어난다고/ 낯익히던 이웃들 하나 둘/ 아파트며 빌라로 죄다 떠나갔지만/ 이십 년도 넘게 나는/ 언덕길 막바지 이 집을 버텨왔다/ 지상의 집이란/ 빈부에 젖어 살이 우는 동안만 집인 것을/ 집을 치장하거나 수리하는/ 그 쏠쏠한 재미조차 접어버리고서도/ 먼 여행 중에는 집의 안부가 궁금해져/ 수도 없이 전화를 넣거나 일정을 앞당기곤 했다/ 언젠가는 또 비워주고 떠날/ 허름한 집 한 채/ 아이들 끌고 이 문간 저 문간 기웃대면서/ 안채의 불빛 실루엣에도 축축해지던/ 시퍼런 가장의/ 뻐꾸기 둥지 뒤지던 세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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