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부석사 / 김명인

나뭇잎숨결 2021. 9. 28. 09:17

부석사 / 김명인

 


한 시절 반짝임 푸른 무량이어서/ 청록 지천만큼이나 탕진 끝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센 머리 허옇게 뒤집어쓴/ 겨울 소백산맥 바라보며/ 외사촌 아우 빈소 자리로 가고 있다/ 눈발이나 희끗거릴 바람의 마력이라면/ 힘껏 던져도 부풀릴 수 없는 바위 꿈/ 매양 처지는 길뿐이겠느냐./ 어떤 필생을 거기 매달았다 해도/ 지금은 헐벗은 가지들, 그 떨림만으로/ 고스란히 눈꽃을 받들고 있다./ 눈구덩이에 처박힌 바퀴 빼내려고/ 질척거리는 발밑 다잡다 보면/ 여기 어디 뜬 돌 위에 지어진 절 이정표가 섰었는데/ 산모퉁이 몇 번 다시 감돌아도/ 겹겹 등성이만 에워쌀 뿐 절은 안 보인다./ 안 그래도 금세 함박눈 차폐되어 가로막는데/ 그 막 안에 또 내가 갇혔다. 부석사/ 뜬 돌 위의 허공이어서/ 나는 절에 기대지 않고 저 눈의 벽에 쓴다./ 잿빛 가사(袈娑) 너풀거리며 내려서는 하늘./ 오래지 않아 이 길도 몇 마장 안쪽에서/ 아예 지워지겠지만 이미 푸석거릴 부석사 뜬 돌./ 거기도 부유(浮遊)의 끝자리는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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