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 윤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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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십일박 십이일 간의 실크로드 여행을 마치고,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서울로 돌
아가기 위해 상해 국제공항 대기실에 앉아 있다. 흐린 창을 통해 비가 내리고 있는 상해시
가 먼 빛으로 바라다 보인다. 서울에서 오던 날도 이곳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쩐지 달라져 있는 것 같다. 불쑥 가까운 사람의 달라진 모습을 보는
것도 두렵지만, 그러한 자신을 목격하는 일은 더더욱 두려운 일이다. 나는 십이일 전 서울에
서의 내가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돌아가고 나면 그동안 사막에 있던 내가 곧 잊혀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보딩 시간은 열한시 사십분. 앞으로 한 시간 남아 있다. 나는 오 분 간격으로 벌써 여섯번
째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일행은 면세점에 가 있는 모양이고 그녀는 아까부터 창가
에 서서 활주로를 응시하고 있다.
2
내가 <사막>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국민학교 일학년 때이다. 아폴로 십일호가 달에
착륙한, 그리하여 사람들이 흔히 우주시대의 원년으로 이름하는 1969년이었다. 그러고 보니
까 나는 <사막>이란 말이 내 귀에 들어와 박힌 날짜까지도 알고 있는 셈이다. 기막힌 일이
다. 그 우주선이 달에 내린 시각은 그 해 칠월 이십일일 오전 열한시 오십육분 이십초라고
백과사전에 기록돼 있다. 물론 미국시간을 기준으로 삼았을 게다. 아무튼 아폴로 십일호가
달에 내리는 장면은 텔레비전 위성중계를 통해 우리 나라에서도 방영됐다. 마을에 있는 텔
레비전이라곤 교장선생 댁에 있는 것 하나 뿐이었다. 그날 교장집 마당에 가득 몰려와 있던
마을사람들의 뒷모습이 노랗게 바랜 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바야흐로 우주의 시대가 열리는 그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지 못했다. 뒷전
에서 고개를 내두르며 용을 쓰고 있었지만 암만해도 뼈굵은 어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텔
레비전 앞까지 도달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주위가 죽음처럼 조용해
졌고 나는 우주선이 마침내 달의 표면에 천천히 내려앉고 있음을 깨달았다. 제기랄 ! 나는
낙담한 채 벌집처럼 생긴 사람들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다가, 잊었던 듯, 고개를 홱 돌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쏘아보았다. 지금 아폴로 십일호가 거미처럼 내려앉고 있는 달을.
얼마 후 나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나는 텔레비전
을 보려고 방안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던 누군가가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내뱉는 소리를 분
명히 들었다.
「아무것도 없어. 그냥 어두운 사막일 뿐야. 월계수나 토끼 따위는 없다구.」
사막.
그때부터 달이 내게는 곧 사막과 같은 것으로 생각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기엔 보
다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사막에 대해서도 또한 아는 게 전혀 없었던 것
이다. 한데도 다음날 학교에 가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떠벌리고 있었다.
「그건 사막처럼 생겼어. 달에는 볼 게 아무것도 없다구.」
아이들은 더이상 내게 뭘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말했으므로.
나는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 달에 대해 곧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사막>이란 말은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들어 이따금씩 나를 쿡쿡 찔러대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주위에 있는
사람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묻곤 했다.
「사막이 어떻게 생겼어요?」
내 물음에 속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개는 석연찮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물음에 최초로 그럴듯한 대답을 해준 이는
중학교 이학년 때 만난 내 옆자리의 친구녀석이었다.
그건 달처럼 생긴 거야. 아폴로 십일호가 내렸던 그 달 말이야.
아뿔사, 녀석은 그 때 아폴로 십일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보았던 게 틀림없었다. 그러
나 나는 녀석도 사막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곧 눈치챘다. 녀석은 끝내 그
사실을 시인하려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며칠이 지나 녀석은 어디서 찾아봤는지 내게 사막
에 대해 줄줄이 늘어놓으며 자꾸만 엉겨붙었다.
「사막은 바다와의 거리 때문에 생기는 거야. 즉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사막
은 발생한다는 얘기지.」
뭐, 발생한다고?
나는 고개를 모로 비틀고 픽 웃어버렸다. 어쨌거나 송갑영이란 그 친구와 나는 그렇게 <
운명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곧 사막에 관한 한 <박사>가 되었다. 친구와 나는
수업이 끝나면 플라타너스가 진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스탠드에 앉아 해가 기울면서 운동
장이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야구 명문이었던 우리학교는 도(道)에서 가
장 큰 운동장을 가지고 있었다. 전국체전 때도 육상경기가 펼쳐지던 곳이었다. 아무튼 어스
름이 깔리는 보랏빛의 저녁 운동장은 미국 뉴멕시코 주 남쪽 툴러로사 분지 안에 있는 석고
사막 화이트샌즈의 석양 무렵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사진으로 본 것이긴 했지만.
「나중에 크면 꼭 가볼테야. 세계 유일의 석고사막. 거기에는 삼 억 대의 화물용 기차에
싣고도 남는 모래가 쌓여 있대. 」
내가 고적한 목소리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친구도 뒤따라 거기에 응답하곤 했다.
「나는 영구 빙설사막에 가보고 싶어. 남극과 그린란드에 있는 거 말야.」
우리는 약속했다. 나중에 둘이서 함께 사막에 가보기로. 그러나 사막이 의미하는 것이 무
엇인지 그때 나이의 우리가 알았을 리 없다. 고작해야 이국 취향에서 말미암은 사춘기적 동
경 따위에 불과했으리라. 허나 그때 친구와 내 마음속에 적어도 멍석 크기만한 사막이 존재
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부인하기는 힘들다. 지구의 일 할이 사막이듯 우리 존재의 일 할
을 이루는 것이 또한 사막이라는 것을.
내가 사막의 의미를 처음 깨닫게 된 것은 중학교 삼학년 일학기 때였다. 송갑영이란 그
친구가 느닷없이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된 것이다. 유복한 가정의 무녀독남으로 성장해 오던
그는 하루아침에 부친의 파산으로 세상의 어두운 곳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가족도
모르는 곳으로 자취를 감춰버렸고 태어나 지금까지 살던 집은 경매에 붙여져 곧 사채업자에
게 넘어갔다. 심지어는 집달리들이 들이닥쳐 밥그릇과 수저에까지 빨간 딱지를 붙여버렸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그가 플라타너스 아래로 나를 불렀다.
「나 내일 서울로 이사 가.」
그렇게 됐구나, 하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때까지 나는 서울이란 데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므로 뭐라 더 대꾸할 말도 없었다. 그저 친구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만이 서글플 따
름이었다. 다음날 육교시가 끝나고 그가 가방과 교모를 들고 교단 위로 올라가 급우들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작별의 말을 했다.
나는 교실 문밖까지 따라나가 그를 배웅했다. 역광을 받고 이층 복도 끝으로 가물가물 사
라지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파란 감자처럼 가슴에 박혀 있다. 육교시 수업 종이 울렸지만
나는 교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가 사라진 복도를 따라 부신 역광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그는 화이트샌즈를 외롭게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
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그의 이름을 가만히 외쳐보았다. 그러나 그는 교문을 다 나설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사막은 가령 이런식으로 <발생>한다. 너와 나 사이에 팽팽하게 지속되고 있던 긴장의 끈
이 한순간에 끊어지고 그리하여 아득한 거리로 우리가 밀려나면서 그 사이에 황량한 모래벌
판이 가로놓이게 된다.
그 후 우리는 때때로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성장해
간다는 사실이 왠지 서먹하고 두려운 일로 생각되곤 했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어항 속의
물고기가 두 배 세 배로 커진 것을 보았을 때처럼 말이다.
그 친구와 해후한 것은 그로부터 이 년여 만인 고등학교 이학년 때의 늦가을이다. 내가
서울에 가게 된 것은 경희대학교에서 열리는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서였
다. 서울이 초행인 나를 마중하러 그가 나왔고 우리는 용산역에서 만났다. 중고등학생까지
삭발이었던 머리 모양이 당시 문교부의 방침에 따라 이 센티미터의 스포츠형으로 막 바뀔
때였는데 그의 머리카락은 좋이 사 센티미터는 될 성싶었다. 게다가 턱에 몇 개 안되는 수
염이 뾰족뾰족 비져나와 있었다. 그가 불량학생처럼 보이는 게 나는 싫었다. 몸에서도 담배
냄새가 나고 있었다.
뭐, 네가 시를 쓴다고? 라며 그는 웃었다. 일요일 오후였다. 그가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길래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순화동에 있는 지금의 구
중앙일보사 건물로 나를 데려가 엘리베이터를 태워주었다. 이내 헛구역질을 하며 노란 얼굴
이 된 나를 내려다보며 그가 흐흐하고 웃었다. 중앙일보사에서 나와 우리는 시청 쪽으로 입
을 다물고 걸어갔다. 우리는 덕수궁 옆에서 가락국수를 사먹고 그가 가져온 야시카 카메라
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한 통을 다 찍고 뒷뚜껑을 열어보니 필름이
들어 있지 않았다. 실수였겠지만 다시 사진을 찍기에는 날이 너무 어두워져 있었고 그는 스
트로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또한 그럴만한 기분도 아니었다. 풀죽은 얼굴로 나는 그를
따라 얼마 전에 지어진 세종문화회관 구경을 갔다.
사위가 금방 캄캄해지며 낯선 서울에서의 밤이 묘한 서글픔으로 가슴에 젖어들고 있었다.
서울 이모집에 전화를 걸어 거기서 잘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어른처럼 변해버린 그와 더
이상 시간을 함께하기가 두려웠던 탓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밤
열시가 넘도록 가설 도시 같은 서울 거리를 맥없이 쏘다니다가 신당동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버스 안에서 그는 작년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내게 알려주었다. 작년에
내가 받은 편지에는 그런 말이 씌어 있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의 집은 시장 거리를 통과해 가야만 했다. 그 어둡고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골목을 한참 걸어 들어가다가 그는 생선을 파는 웬 좌판대 앞에서 발을 멈췄다.
「인사해, 우리 어머님이셔.」
친구의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쓴 얼굴로 반갑게 나를 맞았다. 좌판 옆에는 숯불이 빨갛
게 타고 있었다.
「일찍들 오지 않구, 어딜 그렇게 쏘다니다 오는 게야. 강아지 새끼들.」
어머니는 생선비린내가 묻은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주름살을 지으며 웃었다.
「그래, 잘 왔다. 추운데 어서들 들어가봐. 에미도 곧 따라가마.」
부엌을 통해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는 단칸방은 겨우 세 평 남짓했다. 게다가 어
떻게 <빨간 딱지>를 모면했는지 모르지만 밀수품처럼 보관하고 있는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방의 반쯤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생선소쿠리를 들고 곧 도착했다. 희미한 백열등 아
래 앉아 우리는 갈치국과 총각김치로 저녁밥을 먹었다. 이윽고 자정이 되자 피곤한 어머니
가 먼저 잠에 곯아떨어졌다. 나는 변소에 가고 싶은 것을 쓸데없이 참으며 벽에 기대앉아
있었고 친구는 피아노 의자에 올라앉아 있었다. 새로 한시까지 친구와 나는 별말도 없이 그
렇게 서먹하게 앉아 바람소리에나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한 어느 때던가. 나는 친구가
잠옷 바람인 채 안경을 꺼내 쓰고 피아노 뚜껑을 여는 소리를 들었다. 중학교 때 그는 전교
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몇 안되는 학생 중의 하나였다. 쇼팽의 녹턴 팔번에서 십번까지,
하고 이윽고 그는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피아노소리에도 어머니는 깨지 않았다.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에게는 그 소리가 자장곡이
었으므로. 약 십 분이 될까 말까한 그 시간 동안에 나는 피아노소리를 들으며 홀연 눈앞에
나타난 사막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방은 세 평 안에서 끝없이 넓어지고 있었다. 보랏빛도
이미 물러가고 어둠에 뒤덮여 다만 침묵하고 있는 사막이 그 방에 광활하게 들어차고 있었
다. 그리고 녹턴 십번의 마지막 그 사 분이 끝나갈 때, 나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떨군 채 입
을 앙다물고 있었다. 그 서툰 피아노소리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가 왕겨가
타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이봐, 옛날에 우리가 운동장을 바라보며 나눴던 얘기 생각나?」
나는 이내 대답을 못하고 있다가 잠시 후 목에 힘을 주어 대꾸했다.
「그럼, 생각나고 말고. 방금 나는 그곳의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던걸.」
「응시? 음...... 그렇군.」
그가 쓸쓸히 웃는 소리가 내 귓전에 와 달라붙었다. 우리는 어머니 옆에서 서로를 껴안은
자세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나는 깨닫고 있었다. 이것이 이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는 것을. 왜, 라고 하는 물음에 대답은 없다. 그러한 깨달음은 지극히 내밀한 순간에
불쑥 찾아왔다가는 또 그렇게 사라지곤 하니 말이다.
그러고 나서 내가 사막을 잊었던가? 그것은 아닐 터이다. 그때부터 일 할이었던 사막은
이 할, 삼 할로 늘어나면서 내 좁은 가슴이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
는 서서히 사막을 잊어갔다. 아니, 어쩌면 잃어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3
그로부터 무려 십육 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누구
나 알 만한 재벌그룹 산하의 증권회사에 취직했고 모교 총장비서실에 근무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해서 일남일녀를 둔 가장이 돼 있었다. 때로 가정이나 직장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
니었으나 그것은 남들도 나와 똑같이 겪고 있는 것들이어서 특별히 애로사항이랄 수는 없었
으며 따지고 보면 나는 남들에 비해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애
를 둘 낳고 나서도 허리가 이십오 인치인 아내, 중형 세단이라고까지는 할 수는 없지만 배
기량이 이천시시 급인 감색 자가용, 과천에 있는 내 소유의 서른두 평 아파트, 제 어미를 닮
아 총명하고 결벽증이 심한 아이들, 노후 대책이 튼튼한데다 모두 환갑이 넘었음에도 불구
하고 아직도 사십대처럼 건강한 양가 부모들, 다섯 장의 VIP급 은행신용카드, 사우나탕과
헬스클럽, 눈치가 빠르고 수완이 대단한데다 대개는 아내가 모르게 단지 즐기기 위해 숨겨
놓은 대졸 출신의 여자가 있는 친구들, 덩달아 그들 사이에 끼어 팁 없이도 술을 먹는 천박
한 재미가 한 달에 두세 번, 기타 피에르 발만과 샤넬, 복수 여권과 샘소나이트가 데려다주
는 연간 일 회의 해외여행, 가장 접근하기 쉬운 문화의 증거품으로서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마크 레빈슨과 와피데일 그리고 CD가 오백여 장...... 이런 것들.
그러다 올 일월 중순에 나는 다시 사막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우연이란 복면을 쓰고 슬쩍 내 옆구리를 찌르며 다가왔다. 눈이 내리고 있는 일월
중순의 어느 화요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수위실로부터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웬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는 얘기였다. 이름을 물어보니 모르는 여자였다. 그렇지 않아도 여자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나는 결백한 편에 속했다. 누구처럼 주기적으로 숨겨두고 만나는 여
자가 내게는 없었으며 더구나 회사까지 나를 찾아올 여자란 있을 까닭이 없었다. 그것은 내
가 특별히 모범적인 남편이어서가 아니라 거기에 따른 대가가 매번 번거롭게 생각돼 기회가
있어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아무튼 별 생각없이 나는 구내식당 옆에 있는 휴게
실로 나갔다. 커피 자판기 앞에 밤색 털모자와 검은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앉아 있다가 엉
거주춤 일어서더니 나를 보고 고개를 까닥했다. 그러나 역시 모르는 여자였다. 의자 옆에는
직사각형의 커다란 가방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여자는 정중하게,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훈련을 받은 듯한 빈틈없는 태도로 내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정숙희라고 제 이름을 소개하고 내 아내의 친구 소개로 나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내의 친구의 친구라는 말이었다. 그러냐는 눈빛으로 내가 시큰둥하게 쳐
다보자 그녀는 좀 당황한 낯빛이었다. 안 그래도 나는 차가운 편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었다. 사실은, 이라고 말하며 그녀는 의자 옆에 놓여 있던 가방을 열더니 거기서 또 작
은 직사각형의 비닐가방을 꺼냈다.
「들어보셨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미디아트>라는 데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그녀가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쉽게 말해 물건을 팔기 위해 온 것이
다. 경비실에서는 잡상인 출입을 막고 있으니까 개인적인 일로 방문한 것처럼 위장해 통과
했다는 말이었다. 잡상인이라면 나도 딱 질색이어서 곧 일어나려다가 나는 암만해도 <아내
의 친구의 친구>라는 대목이 걸려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얼마간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그녀는 전에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친구와 함께 아내를 만난
적이 있으며 그날 저녁 셋이서 식사를 함께 했다는 말을 빠르게 덧붙였다. 그 말속에는 그
때는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그쯤에서 나는 체념하기로
했다. 박대해서 보내면 나중에 아내가 난처해질 경우가 생기리라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
었다.
그녀가 가져온 것은 미국 베스트론사가 만들어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학습용 홈 비디오
세트로 모두 여섯 권이었다. 말하자면 그걸 국내 업체인 <미디아트>에서 수입 판매하고 있
는 셈이었다. 설명을 들어보나마나 팸플릿 목록만 봐도 내용은 뻔한 것이었다. 「열대 강우
림 : 생물의보고」「아프리카 밤의 사자들」「호랑이 왕국」「예루살렘 : 성스러운 성벽 내
부」「살아 있는 사막 나미브」「살아 있는 수수께끼 이집트」. 이제 네 살이고 여섯 살인
아이들이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었으나 굳이 나쁘달 것도 없어 나는 구입 신청서에 사인을
하고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십팔만원을 지불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녀에게 의례적으로
점심을 함께 하자는 말을 건넸고 그녀는 어째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로 나를 따라 사내 식
당으로 들어왔다. 밥을 먹는 내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 묵묵히 수저질만 했다. 왜 그
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수치심 때문인 듯했다. 집으로 아내를 찾아가지 않고 직접 나를
찾아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일 터였다. 그것은 대개의 임산부들이 산부인과에 진찰을
받으러 갈 때 여의사가 있는 병원은 되레 피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터이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 나는 아내에게 당신 친구의 친구가 찾아왔었다는 말은 하지 않고 애
들에게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사왔다고 말하며 비디오 세트를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 아내
도 그래요? 라는 말로 무심히 받아넘기곤 그걸 굳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욕실에 들
어가 샤워를 하고 나와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 열한시쯤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침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정까지 천천히 섹스를 하고 몸이 혼곤해진 상태에서 나는
아내가 욕실에서 샤워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새벽 세시에 나는 내 몸 위로 모래가 쏟아져내리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질식할
것만 같은 꿈이었다. 불그스레한 수면등 속에 우두커니 앉아 나는 어째서 그런 꿈을 꾸었을
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욕실에서 물방울이 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어서였을까.
아니, 그렇다면 소나기가 내리는 꿈을 꾸었어야 했을 텐데. 도로자리에 누워 아내의 가슴을
더듬어 보았으나 달아난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이번에는 아예 천장에 모
래가 슥슥 쓸려다니는게 눈에 보이기까지 했다. 어디선가 뜨거운 바람이 몰려가는 소리가
우우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조금은 두려운 생각이 들어 나는 슬그머니 침대에서 내려와 커
튼을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가로등이 지키고 있는 밖은 정물처럼 조용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 주방에서 물을 마신 다음 벌써 새벽 세시 삼십분인 벽시계를 멍하
니 올려다보고 있다가 다시 침실로 들어갈 양으로 거실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갔다. 그때
청자 항아리가 검푸른 빛을 발하고 있는 장식장 위의 비디오 세트가 눈에 걸려들었다. 최면
에 걸린 사람처럼 나는 장식장 앞으로 어기적어기적 다가갔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손을 뻗
어 비디오 케이스를 열고 「살아 있는 사막 나미브」를 꺼내든 다음 플레이어에 집어넣었
다.
나는 컴컴한 거실 한구석 소파에 앉아 화면에 나타난 사막을 화난 짐승처럼 노려보고 있
었다. 바람이 몰려가는 사막은 쉼없이 쭈글거리고 있었고 어쩐지 매우 끈적끈적해 보였고
한참을 보고 있자니 커다란 가마솥에다 황금을 넣고 누군가 함부로 휘젓고 있는 것 같았다.
사막은 끈적끈적해, 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무려 십수 년 전에 헤어진 송갑영이란 친구를 문
득 떠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막이 다시금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다라기 보다는 내 마음
속에서 그것이 다시 <발생>했다고 함이 옳겠다.
우연찮게 <살아 있는 사막>을 목격한 얼마 후, 나는 실크로드를 답사하러 가는 대학 선
배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모 신문사 문화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늦공부까지 시작해 대학
원에서 불교미술사를 전공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실크로드에는 학술적 가치가 풍부한 불교
미술품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고 그는 재작년에 이미 그곳을 한번 다녀온 터였다. 이번에
는 재작년 여행 때 일정상 가 볼 수 없었던 쿠차의 키질 석굴을 본격적으로 답사할 예정이
란 거였다. 선배가 내게 전화를 걸어 온 까닭은 시간이 있으면 함께 가지 않겠냐는 말이었
다. 떠나는 날은 이월 이십일로 열흘 후였다. 그는 큰 기대를 걸고 내게 전화를 건 것은 아
닌 듯했다. 알고보니 같이 가기로 한 사람 중에 누군가 빠지게 돼 급하게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어차피 중국 여행사에는 빠지는 사람의 몫까지 지불을 해야 할 형
편이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한테까지 전화를 했을 까 싶었지만 그 소리를 듣자 나는 갑
자기 물속에서 튀어나온 손에 멱살이라도 잡힌 기분이었다. 이것 저것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나는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들듯이 말했다. 내 말투가 얼마나 간곡했던지 되레
그가 당황한 눈치였다. 전화를 끊으며 나는 무슨 다짐이라도 받듯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
었다.
「어쨌든 사막도 가겠네요?」
「사막? 물론 그렇지. 고비탄과 타클라마칸사막을 거쳐가야 해. 하지만 정말 같이 갈 수
있겠어?」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나는 어째서 내가 그런 말을 했는가를 몰라 짐짓 주위를 돌아보며
허둥거리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란 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걸어 취소한다고 할까 하다가 나는 왠지 그러지를
못하고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십 일박 십이 일의 긴 일정이었다. 십이 일 동안 회사를 비우는 것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
아보면 되겠지만 아내를 설득하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게 뻔했다. 그러나 다시금 사막이란 말
에 붙들리고부터 나는 늪에 빠진 사람처럼 거기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이튿날 오전에
나는 선배가 근무하는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 나말고 한 사람 더 같이 갈 수 있어요?」
「..... 그거야 그럴 수 있겠지만 왜, 꼭 그래야 되나?」
당장에 선배는 일이 복잡하게 돼 간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꼭 같이 가야만 할 사람이 있어요.」
「그럼 이틀 안에 결정해서 연락줘. 비자 문제도 그렇고 중국 여행사에도 미리 콜을 줘야
하니까.」
출발 예정일은 불과 구 일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그에 필요한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충동적인 결정을 하고 나서 달겨드는 묘한 불안을 껴안은 채 나는
정보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대학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송갑영이란 친구의 신원조회와 거처
확인을 부탁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방법이었으나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회사에다 휴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오후에 전무이사와 면담한 다음 의외로 간단
하게 허락을 받아냈다. 집안일이라고 돌려 말하고 출장 형식을 빌린 임시휴가를 받아낸 것
이다. 지난 칠 년 동안의 근무성적이 참작됐다는 판단이었지만 여름휴가와 월차를 반납하고
십이일분의 급여가 제외된다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아내를 이해시키는 데는 생각보
다 몹시 까다로운 절차와 노력이 필요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얘기를 아내에게 꺼낸다
는 일 자체가 하나의 도발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에, 딴에는 분위기를 잡는다고 아
끼던 발렌타인까지 따라놓고 건성으로 집안 얘기를 나누다 슬그머니 여행 얘기를 꺼내자 아
내는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가만히 내 눈동자를 들여다 보았다. 원래 흥분을 잘하는 스타
일은 아니지만 아내의 태도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다만 그 다음 내 입에서 나올 말
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평생 갈 수 없으리란 사실을 어제 문득 깨달았어. 어쩌면 평생토록
말이야.」
「하지만 어째서 그게 곧 지금이어야 하는 거죠? 왜 여름휴가 때까지도 기다릴 수가 없다
는 거죠?
「아주 어려서부터 줄곧 가고 싶어 했어. 물론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고
있었지만 말이야.」
「아마도 그건 아닐 거예요. 우린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었잖아요. 그런데 그동안에는 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 거죠?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잖아요. 물론 당신 혼자 갈 수도 있었고
말예요.」
아내는 이 돌연한 여행 계획에 반대하는 이유를 조리있게 설명했다. 이미 휴가 신청서를
제출해 결재가 났다는 말에도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평소에 나는 아내의 이런 빈틈없는
면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무말도 못하고 술잔만 비우고 있자 그녀가 타이르듯이, 그러나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무척 조심하는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여보, 때로 말할 수 없는 진실이란 게 있다는 걸 저도 알아요. 그게 아무리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말예요. 하지만 그때마다 자기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상대는 어떻겠어요. 만약
에 그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해 봐요. 그때 가서는 진실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는 것쯤 당신도 잘 알잖아요. 미안하지만 저 당신의 그 생각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남들
이 다 이해하는 일도 아내라는 여자는 종종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있었어. 내가 그토록 그곳에 가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서로가 서로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아내와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이 지나서 아내가 목쉰 소리로 내게 말했다.
「당신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믿으니까 이
런 것도 묻는 거예요.」
「그래......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 하지만 왠지 설명하기 힘든 일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야.」
「그래요. 제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어떤 종류의 것이냐 하는 거예요. 가령 혼자 가는 여행
이라면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 전에 해봤어요.」
「일행이 있다고 아까 내가 말했었지.」
「그걸 묻는 게 아니란 걸 알잖아요.」
「그렇군.....」
나는 아내가 염려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 것 같았다. 여자들은 오히려 남자보다 바
로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더욱 관심이 많은 듯하다. 나는 아내에게 오래 전에 헤어진 친구
가 있는데, 라는 식으로 말하려다 내 대답이 어쩐지 길어진다고 생각돼 간단하게 대꾸했다.
이런 때는 어쨌든 간단하게 말해야 좋은 법이다.
「혼자야. 돌아올 때도 물론 혼자일 테고.」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오래오래 말이 없었다. 나는 내가 아내에게 어쩐지 잘못을 저
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여행 계획을 취소할 수 있으리
란 말을 하지는 못했다. 새벽 두시쯤이 되었을 때 아내가 옆으로 돌아누우며 내 가슴에 손
을 올려놓았다.
「다녀오세요. 하지만 이래도 된다는 생각은 앞으로 버려요. 당신답지 않아요. 아무리 견
고해 보이는 것이라도 한번 흠집이 나게 되면 결국엔 부서지게 마련이예요. 그건 저도 마찬
가지구요. 사실은 그게 두려운 거예요.」
다음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나는 정보기관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따지
고 보면 놀랄 일이 아닌데도 나는 그의 전화를 받고 짐짓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것
이상의 정보가 단 하루 만에 완벽하게 입수돼 있었다. 나는 내가 일껏 빠져나왔던 기나긴
터널 속으로 다시 붙잡혀 온 사람처럼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십육 년 전의 시간이 순식
간에 현실 속으로 침입해 들어온 것이다. 여행을 다녀봐서 알지만 돌아오고나면 떠나기 전
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남기고 간 것은 남기고 간 그대로 놓여
있는 게 보통이다. 친구의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그와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하
나 달라진 것이 있었다. 내가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그 친구가 달라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로 하여금 기묘한 느낌을 블러일으키는 단어가 총탄처럼 가슴에 와 박혀들었다.
시인.
그렇다, 그는 시인이 돼 있었다. 그것도 벌써 십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통
해 들려나오는 <시인>이란 말에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이 떨려왔다. 당시 정황으로 보자면
내가 시인이 돼 있는 게 보다 자연스러울 터였다. 주소를 받아 적다보니 그는 아직도 신당
동에 살고 있었고 전화를 끊을 때쯤에서 나는 불길한 소식 하나를 접해야 했다. 그는 간경
화로 을지병원에 사 개월째 입원 가료 중이었다.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창가로 다가가 매연에 부옇게 덮여 있는 서울 시내를 망연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팀장 격인 신문사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동행은 없을 것이라고 알리려다 나
는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을지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시인, 시인, 시인, 하
고 되뇌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병원에 도착해서 창구에서 그가 입원해 있는 병실을 확인
한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것을 코앞에서 보고 있다가 나는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때까지 망설이고 있다 그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전화를 걸었다. 혼자 쓰는 병실이 아닌 듯 다른 누군가가 전화를 받아
그와 연결이 되는 순간가지 나는 좀 흥분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불과 몇 초 사이였지만 나
는 내가 이렇게 불쑥 찾아온 것이 정말 잘한 일인가라는 확신을 못한 채 그저 다음 순간에
모든 걸 맡겨두고 있었다. 이미 전화를 바꾼 것이 분명한데도 그가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중학생이었을 때의 말투를 흉내내어 그의 이름
을 속삭이듯 불러보았다. 부스에 매달린 전화번호부의 비닐표지에 내 모습이 혼령처럼 어른
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문득>이 아니고는 전화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어쨌든 늘 <문득>이었을 테니
까.」
그는 여전히 돌처럼 입을 닫고 있었다. 왠지 느낌으로, 내가 아래층에 와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고 한번 찾아가고 싶어. 물론 네가 괜찮다면 말이지.」
그때 수화기에서 감꽃같은 그의 목소리가 낮게 새어나왔다.
「문득 말이지?」
이번에는 내 목이 콱 막혀버렸다. 나는 수화기를 가슴에 대고 손수건을 찾는 척 양복 주
머니를 뒤적거렸다. 삼백원이 남은 공중전화 카드에서 사십원이 빠져나가며 260이라는 숫자
가 나타났다. 나는 그게 시간이, 목숨이 내려앉는 표시로 받아들여졌다. 조급한 마음이 되어
나는 송수화기를 얼른 귀에 갖다대며 말했다.
「나 곧 사막으로 떠나.」
「사막 말이야.」
그가 입엣말로 사막, 하고 되받는 소리를 나는 엿듣고 있었다. 나는 방금 그에게 했던 말
을 후회하고 있었다. 변명조로 나는 덧붙였다.
「실은 함께 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어.」
그가 쓸쓸히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 또 260이 220으로 내려가 있었다.
「그전에 널 봤으면 했던 거지.」
「그런데 지금은 왜 같이 가자는 말은 안하는 거지?」
그가 다시 야릇하게 웃는 듯하더니, 뒤에서 누가 급히 잡아끈 듯 돌연 웃음소리가 사라졌
다. 그렇다고 전화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머뭇거리다 나는 220인 상태에서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가 그의 병실이 있는 사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속에
서 나는 전에 없이 극심한 현기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십육 년 전 서울에 와서 처음 엘리베
이터를 탔을 때처럼.
나는 노크도 하지 않고 슬며시 입원실의 문을 열어보았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네 명
의 환자가 함께 쓰고 있었다. 환자 가족들이 한결같이 파리한 얼굴로 병상을 지키고 있어
입원실은 무슨 냉동창고처럼 보였다. 물론 어느 병원을 가도 으레 보게 되는 풍경이기는 했
다. 내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나는 밖에서 친구의 모습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몇몇 사
람들이 그런 나를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비릿한 냄새에 취해 속이 메슥거리는 걸 억지
로 참으며 나는 햇빛이 내려앉고 있는 창가로 눈을 돌렸다.
그는 등을 돌린 자세로 침대 위에 구부정하게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보았던
것은 그의 삐딱한 뒷모습뿐이었지만 직감적으로 나는 그가 시인 송갑영이란 것을 알고 있었
다. 어깨를 길게 늘어뜨린 채 흐린 창문 아래로 급히 떨어져 내리고 있는 오후의 서글픈 햇
빛을 응시하고 있는 저 사람이 말이다. 이대로 돌아서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혀 황황한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 사이 그리고 내 눈과 그의 눈이 그가 바라보고 있는
유리창 안에서 마주쳤다. 그는 제 앞에 있는 유리를 통해 등뒤에 와 있는 나를 아까부터 쳐
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완강하게 뒤를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 기나긴 응시의 떨림 속에 서 있다가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병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다 말고 혹시나 싶어, 딴에는 용기를 내어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는 여전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서 그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가 왜 끝내
나를 돌아보지 않았는지도 나는 모른다.
4
이월 이십일 아침 일곱시에 나는 김포공항 국제선 제2청사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아내의
말마따나 <혼자>서 말이다. 상해행 비행기가 뜨는 시각은 아홉시 이십분이었으나 출국에
필요한 일 때문에 나는 새벽에 집을 나왔다. 팀장인 선배가 출국수속을 마치고 커피숍으로
돌아와 일행 중에 서로 초면인 사람들을 소개했다. 일행은 나를 포함해 모두 다섯 명이었다.
강남에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는 삼십대 후반의 사진작가가 먼저 도착해 있었고 환갑이 넘어
보이는 중후한 외모의 노신사가 곧 뒤따라 올라왔다. 외국 주재 상사의 지사장으로 있다가
퇴직하고 지금은 골동품상을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선배를 도와 출국수속을 마치고
함께 올라온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일행 중 나이가 가장 어려 보였다. 홍대 서양학과를 졸
업하고 지금은 자칭 개점휴업중이라는 스물일곱 살의 화가였다. 분위기를 보니 전에 서로들
만난 적이 있는 모양으로 나만 초면인 셈이었다.
모두 정중하게 나를 대했으나 그 정중함 때문이라도 나는 마음이 편칠 않았다. 자격지심
이었을까. 나를 빼놓고는 모두가 문화 계통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이 어쩐지 서먹
하게 느껴졌다. 사회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저들은 암만해도 나와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한 편이다. 겉으로는 안 그렇지만 쉽게 마음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것도 저네들의
자격지심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터놓고 가까워지기가 어려운 것만큼은 사실이다. 요
컨대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예의로 자신을 무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곁다리로 낀
처지에 그걸 따질 형편도 아니었다. 어차피 서울로 돌아오고 나면 방금 인사를 나누기 전처
럼 도로 생면부지인 관계로 돌아갈 게 뻔하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혼자>인 편이 나을는지
도 모른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고 와서 보딩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시사저널』을 읽으며 줄곧 입
을 다물고 있었다. 나를 소외시키는 것은 아닌가, 라는 그들의 의식적인 배려의 태도가 좀
거슬리긴 했으나 비행기가 이륙한 다음부터는 그럴 일도 없었다. 일부러야 그럴 리 없었겠
지만 나는 따로 미국인 옆에 앉아 있게 좌석이 배치돼 있었다. 상해에 도착하기까지의 두
시간 동안 나는 거짓말처럼 아무 생각없이 푹 잠을 잤다. 아마도 새벽에 아내가 예의 출장
을 보낼 때처럼 의연하게(?) 나를 배웅한 탓이었을 게다. 잠들기 전에 일정표를 보니 사막
은 며칠 후에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을지병원에 누워 있는 친구조차 까맣게 잊
고 있었다.
상해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간 열두시 삼십분, 한국시간으로는 열한시 삼십분이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시계바늘을 열두시 삼십분에다 맞췄다. 상해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
다. 전에 계열사 업무 관계로 한번 와본 곳이므로 생경한 느낌은 덜했지만 비가 내려서 그
런지 을씨년스런 기분이 들었다. 어수선하게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와 우리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중국국영여행사(CITS) 소속의 구 인승 승합차에 올라탔다. 최종 목적지인 우
루무치까지 우리와 동행할 조선족 여자 가이드가 나와 마이크를 잡고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상해시를 소개하는 사이 버스는 번잡한 시내 중심부를 느릿하게 가로질러갔다. 산이 없는
대신 강우량이 많고 겨울에도 눈을 보기가 힘든 도시...... 별로 귀담아 들을 얘기도 아니어서
나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적산가옥들과 코카콜라 상표가 찍혀 있는 파라솔 아래서 노란 비
옷을 입고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과 전차와 버스 안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내다보고
있는 때낀 사람들과 조악한 극장간판과 양쪽 전용도로를 타고 피난을 가듯 달리고 있는 자
전거의 꼬불한 대열 같은 것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후 버스는 역시 조선족이 경영하는 <한강식당>이란 곳에 도착했다. 칙칙한 가랑비
속에서 석회냄새가 나는 듯해 나는 자꾸만 사위를 돌아보며 코를 킁킁거렸다. 불고기백반으
로 점심을 먹었으나 아무래도 맛깔스럽지가 않아 나는 곧 수저를 내려놓고 맥주를 한 병 비
웠다. 식당을 나와서 일행은 시간때우기식의 상해 관광을 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
국 임시정부 건물과 홍구공원을 돌아보고 나서 시내 외곽에 있는 옥불사를 둘러본 다음 일
행은 다시 식당으로 몰려갔다. 서안으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저녁을 먹어둬야 한다는 얘기
였다. 기름범벅인 중국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깨작거리고 있다가 나는 또 맥주 한 병으로
배를 채웠다. 초조하기만 한 유예의 시간을 그렇게 흘려 보내며 나는 불상처럼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도 그런 나에게 이미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굳이 말을 붙이려고
도 하지 않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벌써부터 초
조해 할 이유는 없었지만 인천직할시를 떠올리게 하는 상해시만큼은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
었다. 도대체가 서울을 떠나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나머지 일행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여행자의 얼굴에서 엿보이게 마련인 야릇한 흥분이나 미묘한 떨림 따위는 전혀 찾
아볼 수가 없었다.
좀 지루한 지연 끝에, 바다와 면해 있는 상해에서 서안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자 곧 날
이 어둬졌다. 그나마 상해에서 일박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어쨌든 서안이라면 바로 저
장대한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곳이 아닌가. 일단 그곳으로 들어서야만 사막도 만날 수 있을
거였다. 다만 우연이었을까. 서안행 중 국민항기 안에서도 나는 외따로였다. 처음엔 내 옆자
리에 극작가가 앉아 있었는데 한 십여 분이 지나자 그는 주뼛주뼛 골동품상을 하는 노인 옆
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상 같은 나보다 그래도 말을 할 줄 아는 노인네가 더 편하게 생각됐
으리라. 여류 화가는 서울에서부터 선배 옆에만 붙어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시선을 끄는 얼
굴인데 그게 무엇 때문인가라는 것은 꼬집어 말하기가 힘든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줄곧 이어폰을 귀에다 꽂고 있었다. 아직 이십대라는 증거겠지.
서안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두 시간 삼십 분. 낮에 잠을 자둔 터라 나는 창을 통해 캄캄한
어둠만 묵묵히 내려보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일껏 떠올려보려 했으나 벌써 슈퍼마켓
진열대의 잘 포장된 과일처럼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처럼 가족을 잊은 나머지 일행
은 대개 잠이 들어 있었다. 하늘 높이에서 잠든 사람들을 싣고 비행기는 내처 서쪽으로 날
아갔다.
그렇듯 대륙의 공중에 떠서 홀로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사이, 자칫 지루했을지도 모르는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대지에 왕겨불 같은 빛이 명멸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저기가 서안이로
군, 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안전벨트를 찾아 허리에 졸라맸다. 그러나 비행기는 왕겨불을 뒤
로 버리고 앞으로 곧장 날아갔다. 그럼 저곳은 어디란 말인가. 약 십오 분 후에 비행기는 캄
캄한 대지의 한가운데에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여기가 어디지? 라고 두리번거리는
사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팀장에게 물었다.
「여기가 바로 서안 공항예요.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죠.」
아까 보았던 그 왕겨불이 바로 서안이었다. 이번에도 현지 여행사에서 나온 승합차를 타
고 고속도로를 약 한 시간이나 달려 일행은 서안시 중심부에 있는 호텔에 들었다. 늦은 시
각이었으므로 커피숍에서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방 배정을 받아 곧장 방으로 올라갔
다. 여류화가와 가이드가 짝이 되고 나는 골동품상과 같은 방을 쓰기로 돼 있었다. 혹여 상
대가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싶어 내가 먼저 그런 뜻의 말을 건네자 그는 의외로 소탈하고
편하게 나를 대해 주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여행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낯선 사람과 어울
리는 법을 잘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말이 없는 편이었다.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그런 친화력을 가진 그 노신사 앞에서 나는 얼마간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위스키
몇 잔을 나눠 마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 일정표를 다시 꺼내보니 내일 서안을 둘러본 다음에
오후 비행기를 타고 난주로 가게 돼 있었다. 그 다음 도착지는 주천이었다. 어쨌든 내 목적
지까지 가려면 일단 난주를 벗어나야만 할 터이었다.
서안에서의 일정도 나에게는 지루하고 진부하기가 짝이 없었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뻔
히 알면서도 나는 누가 봐도 초조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나도 잘 이해하기 힘든 초조함이
었다. 무엇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돌아보면 서울을
떠난 지 불과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나와 하룻밤을 보낸 노신사가 석연찮은 눈길로
자꾸만 그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진시황릉과 양귀비가 살았던 화청지, 그리고 병
마용까지 돌아보는 동안 나는 내내 뒷전에만 처져 있었다. 같이 온 일행도 뭐 그리 새로운
것을 만난 얼굴들은 아니었다. 관광인지 답사인지 나로서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그들 또
한 경복궁에 온 것처럼 싱거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겠지만 의례적으로
사진을 푹푹 찍어대고 그것도 귀찮은 사람은 아예 사진집을 사버렸다. 그러고는 속는 줄 뻔
히 알면서도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기념품을 비싼 값에 두어 개씩 사들고는 좌판에 죽 둘
러앉아 국수와 만두를 시켜놓고 반도 먹지 않은 채 나와버렸다. 대개는 다시 올 리 없는, 세
계 팔대 기적 중의 하나라는 병마용 앞에서 말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게 얼마간은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좀더 지나서였다.
병마용에서 나와 햇살이 건조하게 풀어진 대지를 가로질러 일행은 광주 비행장 크기의 서
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난주행 네시 이십분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뜨고 나서야
나는 서안이 실크로드의 첫 관문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즉 한 무제가 말[馬]을 구하기 위
해 서역으로 사람을 보낸 것에서 이 길이 비롯됐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아무튼 서안은 중국
십삼대의 왕조가 번성한 곳으로 일명 무덤의 도시며, 영화 「붉은 수수밭」「국두」로 우리
에게도 잘 알려진 장예모가 책임감독으로 있는 <서안 영화촬영소>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나는 아까부터 뚱한 얼굴로 흘려듣고 있었다.
난주에 내리자 비로소 묘한 긴장감이 서서히 온몸을 싸안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선 비행기 안에서 내다본 장대한 구름바다와 그 바다가 끝나기가 무섭게 눈에 쳐들어온
모래산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풀 한 포기 없는 황막한 모래산들이 난주에 내릴 때
까지 장장 이십여 분이나 계속됐다. 모래산에는 동굴처럼 생긴 구멍들이 수없이 뚫려 있었
다. 난주에 내리지 않았더라면 그 모래산은 황하를 타고 올라가 고비사막으로 이어졌을 것
이었다. 사막 근처에 왔다, 라고 웅얼거리며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행도 몸
을 들썩이며 민첩하게 카메라를 꺼내들고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모래산을 찍으려고 부산
을 떨었다.
한 시간쯤 후에 일행은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모래산들 사이를 달려 난주 시내로 진입했
다. 칙칙한 진흙빛깔의 벽돌집 앞에 짐승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나와 서서 꿈을 꾸는 듯한
얼굴로 우리가 타고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이라곤 하지만 그야말로 진흙빛말
고는 다른 색은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석회수가 말라붙어 있는 개울바닥에서 꿈틀거
리고 있는 양떼도 흙빛인 몸뚱이를 하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서안에서 걸어서 한 달이 걸
린다는 난주. 난주에 오자 서울에서의 일들이 마치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생각됐다. 난
주를 떠나면 서울로 전화하는 일이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호텔에 들자마자 일행은 프런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지 못하고 있었다. 사
건을 저지르고 도주하는 자가 가족에게조차 연락을 할 수 없는 그런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내지는 곧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걸까. 문득 처마들이 날카롭게
비져나와 있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있다란 느낌에 몰두하며 나는 식사를 마치고 호텔 문앞에
서 어둠과 오래 맞서 있었다.
그날 저녁 일행은 중국에 들어와서 최초의 단체모임을 가졌다. 불과 다섯 명밖에 되지 않
는데 술자리 한번 변변히 갖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아홉시쯤 로비 옆에 있는 스탠드바
겸 레스토랑에서 맥주로 시작한 자리는 그럭저럭 차분한 분위기였다. 나와 여류화가는 주로
듣는 편이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나름대로 들어둘 만한 얘깃거리를 갖고 있어 그닥 지루한
편은 아니었다. 그들은 문화대혁명에서 시작해 이곳에 와서 듣고 보게 된 중국의 현재와 등
소평 사후의 주변국가 상황에 대한 소견을 피력한 다음 술이 좀 들어간 다음부터는 어쩔 수
없이 사적인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무얼 하려는지 팀장인 선배는 중간중간에 그들의 말을
수첩에 받아적고 있었다. 그리고 열한시가 되어 술들이 달아오르자 밖으로 나가서 한잔하자,
라는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비행기와 호텔만 이용하고 다녀서 피부에 와닿는 것
이 없다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 이면엔 좀 색다른 경험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거부감이 들 정도로 노골적인 언사나 표현을 삼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면 다행이었다. 일행은 안 가겠다고 하는 여류화가까지 다소 억지스럽게 대동하고 난주 관
광을 위해 불러놓은 중국인 현지 가이드를 앞세워 호텔밖으로 나갔다.
가이드에게 속은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의 꼬임에 넘어간 것인지 일행이 도착한 곳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단란주점쯤이 되었을 가무청이라는 이름의 묘한 술집이었다. 쉽게 말해
여자가 끼어 앉는 그런 곳이었다. 룸살롱이라기에는 시설이 형편없고 문을 열자마자 당장에
퀴퀴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어둑한 실내 한구석에 눈만 반짝거리는 여자들이 둘러앉아 있다
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게 보였다. 돌아나오고자 해도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여자들
이 우우 달려들어 도르래가 달린 룸으로 일행을 끌다시피 데리고 들어가자 이미 술병과 과
일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당했구나 싶어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새
어디로 갔는지 여류화가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벌써 적당히 체념한 듯했다. 기본만 먹고
나가자는 뜻으로 눈짓을 보내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맥주를 몇 컵 들이켜며 말이 통할
리 없는 한족, 만주족, 회족 여자들과 필담을 나누다가 곧 진력이 나서 슬그머니 자리를 빠
져나왔다. 대개는 직장에 근무하면서 호출기를 달고 불려다니는 여자들이었다. 중국도 이런
식으로 멍이 들어가는구나 시은 게 뒷맛이 여간 개운치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술집 철계단 중간에 웬 시커먼 그림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게 눈에 들
어왔다.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려는 참에 상대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여류화가가 그때까지
가지 않고 거기에 서 있었다. 혼자 가기가 무서워서요, 라며 그녀는 슬그머니 몸을 돌려 먼
저 계단을 내려갔다. 나도 그녀의 뒤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밤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하
늘엔 반달이 노랗게 떠 있었다. 그녀와 나는 마침 도로를 지나고 있는 황포차(인력거)에 올
라탔다.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그녀의 안색이 무척 창백해 보였던 것이다.
술집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에서 토하고 나왔다는 얘기였다.
「여자가 있는 술집여서가 아녜요. 그런 꼴은 학교 다닐 때부터 많이 봐왔으니까요. 사실
은 냄새 때문에 그래요. 내륙 깊숙히 들어올수록 이상하게 냄새가 고약해져요. 생리할 때의
여자 냄새가 나요.」
생리할 때의 여자 냄새, 알레르기성 비염 증세가 있는 나는 냄새에 대해 그리 민감한 편
이 못 돼서 그녀가 한 말의 뜻을 잘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한단 말인가. 태연스럽게 얘기해 당황할 건덕지도 없었으나 아무튼 서울에서부터 난주까지
동행하면서 처음으로 나는 그녀의 존재를 가까이서 깨닫고 있었다. 황포차는 금방 호텔 정
문에 도착했다. 아무 생각없이 로비로 들어와 그럼 쉬세요, 라는 말을 하려고 옆을 돌아보는
데 때맞춰 그녀도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만 해도 그녀의 눈은 아무 뜻도 없어 보였다. 그
런데 내 눈에 와박힌 그녀의 눈은 좀처럼 물러서려는 기색이 없었다. 당돌한 여자였다. 나는
당황하여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쩔 수 없어 내가 먼저 눈길을 피하는데 그녀가 한잔하고 올
라갈래요? 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네왔다. 솔직히 말해 그럴 마음이 없었으나 나는 거절할
구실을 찾지 못해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술을 마시던 스탠드바에 앉아 칵테일을
홀짝거리면서 그녀는 또 귀에 거슬리는 말을 내뱉었다.
「사실은 생리가 오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술이 당겨요. 이해할 수 있겠어요?」
내가 그런 걸 이해할 까닭이 없었다. 또한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나도 과로로 인
해 한 달에 한 번꼴로 코피를 흘리지만 그걸 이해할 사람은 적어도 이 중국 내륙에선 아무
도 없는 것이다.
「근데 여기엔 뭐 하러 왔어요?」
내가 마티니 잔만 빙글빙글 돌리고 있자 그녀가 단도직입적인 투로 물어왔다. 증권회사와
실크로드가 잘 연결이 안된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내게서 뭔가를 엿보았던 것일까. 대답을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굳이 할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적당한 말로
얼버무렸다. 생각해 보면 아내에게도 요령껏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건 나중에 알아질 것 같군요. 그나마 알아지면 다행이겠지만 말이죠.」
「역시 그랬군요.」
「뭐가 말입니까?」
「아녜요, 그냥 해본 말예요.」
「......」
「......선생님은 소금포대를 잔뜪 실은 당나귀처럼 보여요. 뭘 버릴려고 오셨다면 일찍 포
기하는 편이 나아요. 여행이란 건 짐이 적을수록 좋은 거예요. 프로들의 짐보따리가 간편해
보이는 것도 다 그 때문일 테구요.」
왜 하필 소금을 잔뜩 실은 당나귀인가.
「지치면 개울에 들어갔다 나와 빈수레를 끌고가든지 그러겠죠.」
나는 남의 말하듯 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내일부터는 사막이에요. 그렇다고 오아시스까지 짜게 오염시킬 작정예요?」
그녀의 말이 조금씩 귀에 거슬려 노란 딱지를 보이려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아랫배를
싸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생리통인 모양이었다. 생리는 몰라도 생리통이 가져다 주는
고통은 그로 인해 수술까지 받은 아내를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그만 일어나자고 말했다. 자정이 훨씬 지나 있었고 나머지 일행은 아직도 로비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내 가방 어디에 두통약이 있을 겁니다. 가져다 드리죠.」
그러자 그녀가 두통약요? 하더니 웃기 시작했다. 사리돈 어쩌구 하려다 나는 점점 꼴만
우스워지는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앞서 걸어갔다.
「아무튼 무뚝뚝하신 줄만 알았더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네요. 덕분에 오늘 즐거웠어요.」
사리돈을 가져다 주느라고 방에 들른 나를 보고 그녀는 뭐가 우스운지 아직도 배싯거리고
있었다.
「아직 제 이름도 모르고 계시죠?」
모르고 있었지만 나는 대답을 않고 내 방으로 돌아와 곧바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
다. 눈을 감자 아까 그녀가 했던 말이 천장에 떠올랐다. 사막. 내일부터 사막이라고?
나는 소금수레를 끌고 모래 위를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소금수레란 뭘까, 라
는 화두를 붙잡고
여행 삼 일째 되던 날 일행은 도교사원인 백탑공원에 올라 난주시와 황하를 내려다보다가
이슬람교도의 가게에서 과일을 사서 가방에 쑤셔넣고는 난주역에서 열한시 삼십분발 주천행
기차에 올라탔다. 주천까지는 기차로 열여덟 시간을 가야 했으므로 한 칸에 네 명씩 들어가
게 돼 있는 침대차를 이용하기로 예약이 돼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은 어쩔 수 없이 중국인과
같은 칸을 써야 했다. 팀장인 선배와 사진작가가 약속이라도 한 듯 중국인들이 있는 칸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여류화가와 조선족 가이드, 그리고 노신사와 내가 자연스럽게 같은 칸
을 쓰게 됐다.
달뜬 마음으로 침대칸 창가에 자리를 잡자 날이 급하게 흐려지고 있었다. 안에는 이층침
대가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게 돼 있었다. 어차피 남자들이 위에서 자야 했으나 저
녁까지는 아직도 긴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래층 침대에 두 명씩 앉아 눈이 내리는 진흙
의 대지를 흘끗거리며 한동안 잡담을 나눴지만 그런 식으로 열여덟 시간을 갈 수는 없는 노
릇이었다. 가이드가 식당칸에서 맥주를 사오는 도중에 급기야 모래산이 파스텔톤으로 지워
지고 있었다. 술을 먹기는 좀 이르다 싶어 나는 모래산이 끝나고 나타난 황량한 벌판만 뚫
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생각이 나서 문을 열고 반대편 창을 기웃거리자 기련산맥
의 한 줄기가 흐릿하게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기차는 기련산맥과 고비사막의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는 셈이었다. 간간이 술잔이 내게로 건너왔고 나는 사양하는 법 없이 그것을 받아
마셨다.
그렇게 찔끔찔끔 마시기 시작한 술은 저녁이 되어 밖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부터 제법 속도가 붙어 그날 밤 열한시가 됐을 때는 가이드와 노신사가 그만 지쳤는지 먼저 사다리를 밟고 위로 올라가버렸다. 화장실을 다녀오다 옆칸을 들여다보니 종일 포커를 치며 양주를 축내고 있던 팀장과 사진작가도 침대에 비스듬히 쓰러져 있었다. 내륙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기차는 만리장성을 오른쪽에 두고 눈보라 속을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었다. 일흔 칸이나 되는 기차 안에, 그 시각에 깨어 있던 사람은 어쩌면 여류화가와 나 그렇게 둘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새벽 두시였다.
「정말 여기엔 뭐 하러 온 거죠? 지금가지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는 변변히
말 한마디 없었어요. 어쨌든 끌려온 것도 아닐 텐데요.」
무슨 말인가 끝에 그녀가 대뜸 어제 했던 말을 또 끄집어냈다.
그래,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당신들이 가고 있는 이 비단길이 아니다. 그곳은 아주 황량
한 곳이다. 당신이 그림에 미쳐있고 기자인 선배가 석굴에, 또 누구는 사진에, 골동품과 차
[茶]에 미쳐 있듯이 나도 무언가에 지금 미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 중에 그런 질문을
받고 일목요연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그럴 수만 있다면 미칠 이유도 없겠지.
그러니 그런 말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옳다. 우리 모두가 얼마쯤은 나라는 빨간 도깨
비에 미쳐 있다는 것을 너도 부인하지는 않겠지. 돌연 감정이 불끈해지며 이런 말들이 입에
서 마구 튀어나오려는 것을 나는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평소 나답지 않게 밤새 술을 마
시고 왜인지도 모르게 마구 쫓기는 심정이 되어 두 눈을 희번덕거리는 사이 신경이 실밥처
럼 닳아져 나도 모르게 화가 난 것일 게다. 그래, 그런 탓일 게다.
「어려서부터 좁고 시끄러운 곳에서만 살았어요. 가령 시장통 같은 데 말이죠. 그래서 줄
곧 광활한 곳을 동경해 왔죠. 세상이 열리고부터 줄곧 침묵하고 있는 장소 말입니다. 그런데
서 피아노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자 나는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녀는 기묘한 표정으로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상으로 보면 굉장히 마신 술인데도 그녀는 눈만 조금 충혈
됐을 뿐 멀쩡한 얼굴이었다.
「그런 침묵하는 장소가 어딘데요?」
「가다보면 어딘가에서 나타나겠죠.」
뒤미처 그녀가 사막, 하고 되받았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서로가 말없는 가운데 술잔이 두
어 번 왔다갔다했다.
「사막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아마 동성연애자거나 허무주의자들일 거예요.」
무슨 뜻으로 그녀가 그런 말을 하는지 몰라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내가 그렇다는 말인가.
「내지는 지독한 자기 근친적 사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거나요.」
자기 근친적 사랑이란 또 뭔가.
「저도 사막을 제법 다녔어요. 사막 끝에서 누가 손을 들어 나를 부른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요. 저는 무모하게도 열심히 달려가요. 그럴수록 상대는 점점이 멀어지지만요.」
저 어둠 속 사막 끝에 누가 서 있기는 한 것인가. 어둠이 내려 지금은 볼래야 볼 수도 없
는 저 어딘가의 사막 끝에.
「하지만 사막의 한가운데에 들어가면 늘 깨닫게 돼요. 역시 사막은 비어 있다는 것을
요.」
「......」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사막의 무도가 시작돼요.」
사막의 무도?
「내가 사라진 지점에서 사막은 풍요롭게 부풀어올라요. 역설적으로 말하면 내가 사막과
같아질 때 말예요.」
하긴...... 그게 나라는 이 치떨리는 환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걸 알고 나서도 왜 사람
들은 사막을 찾아가는 걸까.
「제게도 아직 못 다 버린 짐이 남아 있는 탓일 거예요.」
나는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그렇게. 파
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육번을 듣고 싶은 밤이었다.
그리고 카잘스의 육번 연주가 다 끝나갈 때 그녀가 꿈결처럼 이렇게 읊조렸다.
「사막에 백합꽃들이 피고 있어요. 마침내 무도가 시작되려나 봐요.」
사막에 피고 있는 백합, 백합이 피고 있는 사막.
나는 눈을 지긋이 뜨고, 창 밖 어둠 속에 눈을 주었다.
눈이 내리고 있는 밤의 사막. 무도가 시작되고 있는 사막.
멍멍하게 이런 생각에 젖어 있을 때 그녀가 내 팔을 툭 치며 잔을 내밀었다. 그만 마시고
싶었으나 그녀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놀랍게도 두꺼비가 그려져 있는 진로소주였
다.
「서울서 가져온 거예요.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뚜껑을 따려고 아껴뒀던 거예요.」
어째서 아름다운 순간인지도 모른 채 나는 반가운 생각이 들어 냉큼 잔을 받아들었다. 그
새 새벽 다섯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어차피 삼십 분 후면 기차가 주천역에 도착할 터였다.
그러고 나서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울 때까지 그녀와 나는 수화를 하듯 술잔만 옮겨주고
옮겨받고 있었다. 갑자기 통신이 두절된 것 같은 적막감이 엄습해 들었다. 밀폐된 방에 그녀
와 단둘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었다.
얼마 후 팀장인 선배가 깨어나 내릴 준비를 하라고 소리치는 통에 나는 취한 머리를 내두
르며 선반에서 배낭을 꺼내들었다. 그때서야 걷잡을 수 없는 피로가 온몸으로 쳐들어왔다.
얼굴이 흉하게 변한 것 같아 거울을 보려고 했으나 기차 안에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다.
나중에 서울에 돌아와 나는 누가 찍었는지도 모르는 내 사진 한 장을 보게 된다. 나는 새
벽 다섯시 삼십분의 주천역 앞에 서 있다. 한쪽 어깨에 배낭이 비뚜름하게 걸려 있고 목도
리가 무릎까지 풀려 내려와 있다. 손에는 삼분의 일쯤 내용물이 남은 소주병이 들려 있다.
눈은 공격적으로 충혈돼 있다. 암만 봐도 낯선 내 모습. 어째서 내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
는지 모르겠다. 곧 무슨 일을 저지를 사람같아 보인다. 내 뒤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이
내리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화가가 보인다. 이름이 뭐랬더라?
새벽 여섯시에 호텔에 도착하니 로비에 불이 꺼져 있었다. 난방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부들부들 몸이 떨리었다. 여기서 정오까지 피로를 푼 다음 일행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 관문
인 가욕관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매번 그러했듯이 일행은 방을 배정받고 역시 캄캄하게
불이 꺼져 있는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방문이 열려 있을 거라며 야간근무자는 내
게 열쇠도 내주지 않고 곧장 안으로 사라져버린 다음이었다. 침입이라도 하듯 이층까지 두
리번거리며 올라와 라이터를 켜서 겨우겨우 방 번호를 확인한 다음 두 명씩 짝을 지어 흩어
지는데 뒤에서 누군가 저어, 하고 내 배낭을 잡아끌었다. 돌아보니 얼굴에 목도리를 감은 그
여류화가가 서 있었다.
「그 소주 주세요. 제 거잖아요.」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소주병을 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릴 때 아무
거나 손에 잡히는대로 챙기다 보니 내 손에 들어와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독하군, 이라고 생
각하며 나는 그녀에게 소주병을 내밀었다. 한데 그녀는 그걸 받을 생각도 않고 뻔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두통약 있어요? 라며 또 엉뚱한 말을 했다. 물론 있었지만 짐을
뒤져봐야 했으므로 나는 어깨에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복도에 엉거주춤 앉아 배낭의
단추를 풀다가 나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어둠속의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두통약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은 그때였다.
「아마 다른 빈방도 문이 열려 있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복도 저쪽까지 갔다가 이쪽으로 반사돼 돌아왔다. 나머지 일행은 이미
총에 맞은 것처럼 침대에 쓰러졌을 터였다. 나는 배낭을 들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맥없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배낭을 도로 어깨에 둘러매며 나는 성욕이 일종의 공격 본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내가 뜯겨 나간다고 생각될 때, 그래 내가 사막
처럼 황량해졌다고 믿게 될 때 나도 공격적인 인간으로 변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침착
하게 복도 끝 빈 방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그녀가 꼭 나와의 성관계를 요구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구심이 남아있다. 남
자들은 이런 경우 대개 그런 식으로 단정해 버리고 말지만, 여자들은 보다 미묘한 감정의
측면들을 가지고 있는 성싶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배낭을 집어던지고 옷부터 벗는 나를
그녀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아니라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당황하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두통약이 필요했고 남은 소주를 함께 마시고 싶어했
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도 이윽고 돌아서서 옷을 벗었고 차디찬 침대 속으로 먼저 들어간 것도 그녀
였다. 그녀와의 관계 도중에 나는 불현듯 내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녀가 사실은 누구인지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
이다.
그녀가 욕실에 들어간 사이 나는 일곱시에 노신사가 있는 방으로 돌아와 곧바로 잠이 들
었다.
그날도 나는 사막이라고 부를 만한 곳을 목격하지 못했다. 엊그저께 여류화가가 사막 운
운했던 것도 기껏해야 지도를 보고 한 소리임이 분명했다. 가도가도 눈에 덮여 있는 황무지
일 뿐이었다. 가욕관에 눈이 내린 것을 본 우리는 행운의 여행자들이라고 가이드가 흥분해
서 떠들고 있었으나 사실 별다른 느낌에 없었다. 가욕관에서, 다시금 투르판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 버스로 유원역까지 가는 몇 시간 동안 나는 줄곧 졸고 있었다. 도중에 눈에 뒤덮여
있는 장엄한 천산산맥의 한자락을 보긴 했으나 풍경사진을 보는 것만 같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데 유원역 도착을 두어 시간 앞 둔 지점에서부터 눈의 자취가 사라지면서
검은 땅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버스는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의 중간
지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여류화가가 생리중인 여자의 냄새라고 했던 말을 문득
떠올리고 있었다. 죽음의 땅, 죽음의 냄새. 나는 미열에 들떠 겨드랑이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돈황과 유원으로 갈라지는 지점인 안서를 지나 회색으로 변해 있는 황무지를 달려가고 있
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가이드에게 뭐라 속삭이며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내
내 달리기만 해서 지루하니 십 분 정도만이라도 걸어가보자는 얘기였다. 그 제안은 즉시 받
아들여져 버스가 일 킬로쯤 앞에 먼저 가 있고 일행이 뒤따라가기로 했다.
나는 일행 뒤에 처져 달려온 길을 돌아보며 한동안 허수아비처럼 서 있었다. 황무지의 한
가운데 서서 나는 내가 뭔가를 하나씩 잃어가고 있는 중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
고 담배 꽁초만하게 멀어져 있는 일행을 뒤따라갈 요량으로 발걸음을 서두는데 동공에 웬
사내의 모습이 비쳐들었다.
그는 이백여 미터쯤 떨어져 있는 오른쪽 모래 언덕 위에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로 서 있었
다. 나는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백오밀리 줌으로 그의 모습을 당겨보았다. 그러나
파인더 안에서도 그의 모습은 뚜렷이 잡히지가 않았다. 그는 비쩍 마른 체구에 검은 모자와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는 사람이 살 리 없는 이 황무지의 모래언덕 위에 왜 혼자서 우두커
니 서 있었던 걸까. 떨리는 손으로 셔터를 누르면서 순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을지병
원의 친구를 문득 떠올리고 있었다. 앞을 보니 일행은 오른쪽으로 내려앉은 길로 사라진 다
음이었다. 더이상 거기서 머물 수가 없어 걸음을 재촉하면서 나는 모래언덕 위에 구부정하
게 서 있는 그를 자꾸만 돌아보고 있었다.
저녁 일곱시 오분에 출발한 투르판행 열차에 오르면서부터 그녀는 앓고 있었다. 지난 밤
에 온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던 주천의 호텔에서 목욕을 하고 나서 급기야 몸살이 난 듯했
다. 그날은 노신사가 내가 중국인과 함께 쓰는 침대칸에 있었으므로 그녀를 들여다보기도
힘들었다. 나는 겹겹이 밀려오는 어둠만 성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
던 노신사가 고즈넉한 소리로 내가 들으란 얘기였는지 이런 뜻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사막에 개들이 잔뜩 몰려와 있군요.」
나는 속으로 치를 떨고 있었다. 육십 도가 넘는 중국술 한 병을 음료수처럼 마시고 침대
에 누웠으나 시간일 갈수록 머릿속은 투명했다. 다시금 내게서 구정물 같은 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나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오래도록 방치해 뒀던 창고의 마룻장이 한
장씩 뜯겨나가는 게 눈앞에 보였다. 그렇게 자귀로 못을 빼는 소리를 줄창 들으며 나는 마
룻장 밑에 켜켜이 쌓여 있는 묵은 먼지만 유령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투르판에 도착하기
까지 열세 시간 동안 나는 줄곧 그런 흉흉한 풍경에 시달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옆
칸에서 밤새 쿨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오 개월, 아니 오 년 전쯤에 서울을
떠나온 것 같았다.
투르판에서 지루한 이박을 하는 동안에 일행은 화염산과 교하고성, 그리고 고창고성과 남
방인의 미라가 누워 있는 고분을 답사하고 다녔다. 오후에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건포도와
기타 기념품들을 사고 이틀째 되던 날 저녁에는 위구르족의 민속무용을 관람했다. 그동안에
여류화가는 방에만 누워 있었다. 병이 단단히 든 모양으로 내가 남몰래 찾아가도 본 체 만
체였다. 나는 식당에 혼자 앉아 <누란>이란 상표의 포도주만 마시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
스로 된 뒷 출입문으로 역광이 쏟아져들어와 식당 안이 기묘한 색깔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리고 어느 때던가, 그 찬란한 역광을 등에 지고 웬 여자 하나가 뒷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
다. 마치 물이 흘러들어오듯이.
몸살에서 회복된 그녀는 비틀거리며 내 앞에 와 앉더니,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식탁에
놓여 있던 빵과 포도주를 미친듯이 먹어댔다.
5
여행 일주일째가 돼서야 나는 사막으로 들어갔다. 기나긴 백양나무 길이 끝나는 곳에 타
클라마칸 사막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버스는 타림분지를 끼고 들어가 타클라마칸 사막
의 겨드랑이께를 밟으며 쿠알라를 향해 달려갔다. 일행은 쿠알라에서 하루 머문 뒤 쿠차를
거쳐 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우루쿠치로 가게 돼 있었다. 거기서 상해까지 비행기로 네
시간을 날아가면 이 여행도 끝이 날 터였다. 투르판을 떠나기 전 나는 호텔 프런트에서 을
지병원으로 전화를 걸고자 몇 번이고 시도하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굳이 통화를 할 이유
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투르판으로 오다 목격한 모래언덕의 사내가 생각나서였다. 도로 양
옆으로 전봇대가 줄지어 달려오다 어느 곳에선가부터 뚝 끊어져버렸다.
나는 점점 사막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낙타 한 마리가 공동묘지 근처를 터벅터
벅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마른 풀들이 뗏장처럼 듬성듬성 자라 있는 사막은 그러나 아
직도 모래만 쌓여 있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친구여, 나는 지금 사막에 들어와 있단
말이다.
그녀는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앞에서 밀려들고 있는 회색의
모래만 빨아들일 듯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가 기우뚱거리며 갈색의 바위산을 넘어가자 거기
서부터 마침내 사막인 사막이 드러누워 있었다. 그때부터 버스는 모래 속을 뚫고 더디게 더
디게 전진했다. 모래바람이 차를 덮쳐와 차 안이 어둑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동서남북을 분
간하자고 대드느니 마냥 앞으로 나가는 게 그나마 상책일 듯 싶었다. 버스운전사도 사막 끝
에 서 있는 헛것을 보며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나는 시간이 갈수록 목이 타들어왔
다. 쿠알라까지는 아직도 네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방이 지평선으로 막혀 있는 여기
서 그렇게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 어째 가당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기창을 통해 정수리에
직선으로 떠 있는 해를 슬쩍슬쩍 바라보며 나는 메마른 공기를 훔치듯 들이마시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그러나 어려서부터 내가 꿈꿔 왔던 사막의 황홀, 그 화사하던 추억은 정작 사
막에 와서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았다. 왜일까, 라는 자문도 몇 번 되풀이되자 이내 지쳐버렸
고 의식의 막은 갈수록 엷어져갔다. 나는 빛에 점점 충혈돼 오는 동공에 힘을 잔뜩 주고 해
일처럼 몰려오고 있는 모래, 모래만 질린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사막에 오면 사막
을 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그날 밤 내가 너를 그토록 완강히 끌어안고 있으면서
도 네가 누구인지를 정녕 모르고 있었듯이.
가욕관에서 유원까지 오는 도중에 모래언덕에 서 있던 사내를 다시 본 건 그날 오후 세시
쯤이었을 것이다. 햇빛에 지쳐 과일을 꺼내 물고 있다가 나는 버스가 돌을 밟는 바람에 자
리에서 툭 튀어오르면서 흘끗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예의 사내가 서 있는 모래언덕이
내게로 굽이치며 다가들었다.
모래언덕의 사내는 이제 돌아서 있다. 돌아서 반대편으로 내려가고 있다. 다리가 내려앉고
허리가 내려앉고 가슴과 어깨도 언덕 뒤로 천천히 빠져들고 있다. 검은 모자만 공제선에 손
톱처럼 걸려있다.
버스는 왼쪽으로 홱 커브를 틀며 다시금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달려들어갔다.
쿠알라에 도착해 허름한 여관에서 여장을 풀고 아래층에서 인도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 나
는 아랫도리에서부터 미적지근한 열기가 몸 위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사이를 두지 않고 터져나오는 밭은기침이 하루종일 먹은 먼지 때문일 거라고 쉽게 단정했던
것인데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시간일 갈수록 몸이 뻣뻣해진다 싶어 나는 일찌감치 방으로
올라와 감기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매운 열기가 온몸에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눈귀가 다 멀어버릴 듯한 열이었다. 오는 도중에 길바닥의 회족 식당에서
구역질을 참으면서 먹은 양고기가 화근이었을까. 아무튼 정신이 돌아온 것은 다음날 저녁
버스로 쿠차에 도착해서였다. 긴긴 시간 사막을 지나오는 동안 나는 뒷자리에 널브러져 횟
배 앓는 소리만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몸살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자 내 몸의 무게
가 조금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나는 욕실의 흐린 거울 앞에 넋을 잃고 서서, 다들 어디로 간
거지? 라고 내가 들어도 불분명한 소리로 웅얼거리고 있었다.
을지병원과의 통화는 그날도 이뤄지지 않았다. 천산남로의 중간께에 와서 서울 전화를 재
촉하는 나를 사람들이 원숭이 보듯 했다. 과연 무모한 짓이었을까. 아직 완전히 회복이 안됐
는지 자리에 앉기만 하면 때없이 눈이 감겨왔다. 눈을 감을 때마다 피라미드 모양의 사구가
바람을 타고 내게로 휘휘 덮쳐오고 있었다. 저 천산을 넘어야만 우루무치로 갈 수 있다는
데...... 이런 마음으로 그곳가지 갈 수 있으려나.
6
쿠차에서의 마지막 날 밤 일행은 무슨 돌림병처럼 몸살이 든 사진작가를 호텔에 남겨두고
야시장으로 나갔다. 바람이 불어 날씨는 매우 추웠고 시장까지 가는 거리는 이상한 살기 같
은 게 감돌고 있었다. 집집마다 손에 칼을 든 사람들이 창문 뒤에서 우리를 훔쳐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시장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남대문시장처럼 좌판을 죽 늘어놓고 양구
이 꼬치와 사막에서 먹는 <란>이란 빵과 포도주를 팔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한결같이 방금
교도소에서 출감한 사람들처럼 인상이 험악했다. 술집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똑같은 얼굴로
죄 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냥 돌아설 수가 없어 흰 사발에 포도주를 두어 잔씩 따라 마
시고 되는대로 양고기를 입에 우겨넣은 다음 일행은 란 하나씩을 겨드랑이에 끼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겨우 시장을 벗어났다 싶었는데 바로 뒤에서 누가 내 팔을 나꿔
챘다.
그녀와 나는 사막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 서 있었다. 나머지 일행에게는 어디 약방을 찾아
보겠다고 돌려 말하고 그녀와 나는 호텔 앞을 지나쳐 사막이 있는 쪽으로 말없이 걸어갔다.
곧 마을이 끝나고 약 백여 미터 전방에 바로 사막이 드러누워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
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것 같아서 내가 슬그머니 손을 잡자 가만히 있으리라 믿었던
그녀가 의외로 손을 비틀듯이 하며 손을 빼냈다. 남자가 여자에게 서툴다는 게 결코 자랑할
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뿌리치지 않았던 건 그래도 내 기분을 염려한 때
문이 듯했다.
사막엔 달이 떠 있었다. 사막과 마을의 접경지점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그녀와 나는 발
을 멈추고 달빛에 덮여 있는 타클라마칸을 묵연히 바라보았다. 지금 달에 올라가서 보면 낮
에 보았던 이 황량한 모래의 벌판도 아름답게 보일 터였다. 그녀에게 이러 얘기를 하며 나
는 발바닥으로 사막을 슥슥 문질러보았다.
「여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제게 묻고 있는 거예요?」
내가 하는 말을 무표정하게 듣고 있던 그녀가 반문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단 뜻이에요. 내가 왜 사막에 왔는지, 내가 여기서 보고 있는 게 과연
무엇인지...... 돌아가면 그때는 알아질까요?」
「묻고 있는 거예요?」
「그래요.」
매운 바람이 무릎 근처로 슬슬 불어가고 있었다.
「저는 주천에서 이미 이번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거꾸로 말하면 거기서부터
여행이 시작됐다고 봐도 좋구요.」
주천은 그녀와 내가 암약 같은 새벽을 보낸 곳이었다. 물론 그게 약속일 리는 없었을 테
지만.
「말씀드릴 게 있었어요. 혹시나 그쪽에서 혼란스러워 하실까봐서요. 그래서 따라온 거예
요.」
같이 온 게 아니라 따라온 것이었구나.
「이번에 서울을 떠나올 때 딴에는 힘든 방황을 하고 있었어요. 통속적인 얘기지만 두 가
지한테 멱살이 잡혀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게 사람이라고 해도 좋구요. 내지는 제가 두 가지
의 멱살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구요. 그러나 그건 하필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
렇다고 도망쳐온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한갓진 시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나라도 구하고 보
자는 이기적인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말예요.」
나를 구하는 것이 남을 구하는 일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또한 진실에
속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영리한 사람이다.
「어쨌든 주천에서 저는 비로소 수레에서 놓여났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아마 나라는 집착과 환상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이를테면 자기 근친적 사랑을 두고 하는 말인가.
「어쩌다 보니 교활한 여자가 돼버렸어요.」
그러고 보니 교활했던 것 같다.
「아직도 혼란스러우세요?」
「나를 구할 생각부터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쪽에 그랬다면 나 역시 교활했던 걸 겁니
다.」
사막이 사막 안에서 자꾸만 나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나도 무언가에 의해 탈락돼 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게 뭐라는 것은 아직 모르겠군요. 영영 못 알게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그렇다고 생각만
큼 혼란스럽진 않아요. 뭔가 뜨거웠던 것이 아주 차가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말
입니다.」
「...... 그래도 조금은 뜨거운 것을 남겨둬야 숨을 쉬죠.」
그 말을 듣고 있었을 때 나를 부르는 사막의 소리가 아득히 귓전에 메아리쳐 왔다. 나는
얼음처럼 변해 있는 나를 상상하며 엉겁결에 그녀의 손을 끌고 사막으로 들어가려는 몸짓을
했다. 무슨 생각을 했던가. 얼마간은 억지스런 내 힘에 이끌려 몇 걸음 나를 따라오던 그녀
가 우뚝 그 자리에 붙박여 섰다.
「아녜요, 둘을 버리고 나타난 하나가 그쪽이라는 확신이 없어요. 아직은 제가 투명하지
않단 뜻예요.」
나는 더이상 그녀에게 억지를 부릴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지금 사막으로 발을 내딛으면 돌
아나올 수 없게 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근와 나의 관계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사라져버리는 것 투성이예요. 그냥 놔두고 볼 수밖에 없
는 게 너무도 많아요. 우리 그런 거 함부로 짓밟지 말아요, 네?」
그녀의 목소리가 머리결처럼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먼저 돌아서갔다. 가기 전에 그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네
주며 황하에 갔을 때 산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내가 받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자 그녀가 내
외투 주머니에 그것을 넣어 주었다. 황하라면 난주에서라는 말이었다.
그녀가 돌아간 사막 앞에 서 있다가 나는 달빛을 받고 곧장 앞으로 걸어가 보았다. 그리
고 더이상 갈 수 없다, 라고 느껴졌을 때 나는 모래 위에 가만히 엎드려, 두 팔을 벌리고 아
주 먼 곳에서부터 불어오는 사막의 바람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주 먼곳으로 불어가는.
눈이 쌓인 천산을 넘지 못하고 일행은 쿠차에서 쿠알라 쪽으로 되돌아가 중가에 천산북로
로 기어올라갔다. 사막은 가도가도 앞이 멀고 뒤가 멀었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 나는 지치도
록 사막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루무치에서 가까스로 이뤄진 서울과의 통화에서 나는 친구가 전에 입원해 있던 병실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없다니! 더이상 누굴 붙잡고 뭘 물어볼 수도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아 나는 멍한 상태에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우루무치에서 상해까지 올 동안 그녀가 나를 심상하게 대해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서
안에서 우루무치까지만 해도 그녀와 나는 무려 삼천킬로미터의 실크로드를 함께 달려왔다.
그리고 사막 앞에서 그녀가 내게 준 것은 이끼에 정성스럽게 싸여 있는 무슨 구근이었다.
어디를 가나 여기저기 닭그림이 그려진 우루무치 시내 한중간에서, 그리고 그 다음다음 날
서울로 출발하기 전 상해 공항에서 그녀와 나는 둘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랑스런 여자
였다.
공항으로 오기 직전에야 나는 서울의 아내와 통화했다. 침착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딱딱
하게 굳어 있었다. 변명할 말조차 생각나지 않아 나 또한 딱딱한 말투로 그저 돌아가겠다고
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서 무언가를 읽고 있었을 것이다.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나는 눈을 감고 내가 사막에 가서 본 것이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다
시금 곰곰이 되짚어보고 있었다. 그러나 김포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동안에 나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사막은 단지 사막이었을 뿐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하
던 말 그대로 사막은 그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일 따름이었다. 그렇다, 친구여.
사막은 그냥 사막이었다고 밖에 나는 달리 말할 도리가 없구나.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김포공항을 빠져나가는 동안 얼핏 택시 승강장을 보니 여류화
가가 무심한 얼굴로 내가 타고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록색 선글라스를 낀 아내의 얼
굴도 무표정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삼월로 들어선 서울의 하늘에는 탁한 빛깔의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7
돌아온 그날부터 나는 원인 모를 병을 앓기 시작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월
요일에는 출근을 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일요일 저녁이 되자 숨쉬기조차 불편했다. 귀에 이
명이 생기고 눈을 떠도 사물이 혼탁하게 흐려 보였다. 중국에서 얻어온 풍토병이거나 다만
긴장이 풀어졌기 때문에 찾아오는 무력증 따위가 아니란 걸 알게 된 것은 월요일 아침에 병
원에 실려가서였다. 팔에 링거를 꽂고 헉헉거리면서 나는 검진을 마친 의사가 내 머리맡에
와서 아내와 나누는 얘기를 다 듣고 있었다. 장기를 포함한 내 몸의 중추 기능이 활동을 중
지한 채 거의 영점상태로 떨어져 있다는 얘기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사는 극심한
쇼크상태에 빠진 것으로 나를 진단하고 있었다. 나도 내 귀가 의심스러웠다. 회사에서 정기
적으로 받는 종합검진 말고는 병원출입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내가 단 십이 일 사이에 중환자
실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내 몸은 잠자코 누워 있으라고
내게 윽박지르고 있었다.
며칠 동안 혈관주사를 하루에 세 병씩 꽂아대는 호들갑을 떨고 나서야 겨우 팔다리에 힘
이 들어왔지만 아직도 의식은 공막한 상태 그대로였다. 나는 마치 인큐베이터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아내를 따라 매일 아이들이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그들은 내게 가까이 다
가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마를 찌푸린 채 어쩌지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까지 했
다. 그런 아이들 곁에서 아내와 담당 의사는 무어라 연신 수군대고 있었다.
나는 종일 넋이 나간 사람마냥 하얀 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시간은 내가 따라갈 수 없
는 속도를 내며 지체없이 흘러갔다. 그러한 어느 날엔가 문득 내 병실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그는 병실 문앞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내 뒷모습을 오래 오래 쳐다보고 있었다. 나
는 내 앞의 유리창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뒤를 돌아보았
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도 찾아와 있는 사람이 없었다.
친구의 환영을 본 그날,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복도로 나가 신당동 친구의 집으로 전
화를 걸었다.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나는 내가 사막에 가 있는 동안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침착하고 의연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그 태연한 감춤 뒤에서
그녀의 전생애가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통화를 끝내고 병실로 돌아오자 유리창이
누런 빛으로 흐려 있었다. 황사 바람이었다. 그것은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에서 매년 이
때쯤이면 우리 나라에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사월 중순에야 나는 병원에서 나왔다. 이불 보따리를 들고 아파트로 돌아오자 모든 게 전
과 달라져 있었다. 나를 대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서먹한 태도, 왜 와 있는 지 모르지만 처갓
집 식구가 두엇, 회사에서 걸려오는 야릇한 내용의 전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라는 존재의
이 낯섦...... 사막으로 가기 전의 내 흔적은 거기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 자신도 받아들이
기 힘든 변화였다. 그것을 내가 원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나는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어
쩌다 이렇게 돼버린 거지? 라고 되뇌이며 나는 다시 살아야 하겠지, 라는 말로 자신을 추스
리기에 급급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 앞으로 다가온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저
녁에 아내가 거실 소파에 앉아 나를 불렀다. 사막으로 가기 전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발렌
타인을 꺼내놓고 앉아 있던 자리였다. 단도직입적으로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병원에 있는 동안 이영주란 여자한테서 전화 여러 번 왔었어요. 병원을 알려주
려고도 했지만 왠지 그렇게는 하지 못했어요. 제가 잘못한 건가요?」
나는 이영주란 이름을 얼른 기억해 내지 못했다. 아내는 장식장 서랍에 있던 사진을 꺼내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것은 우루무치와 상해 공항에서 여류화가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
이었다. 그땐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우루무치에서는 그녀의 머리가 내 어깨에 닿아 있고 상
해 공항에서는 내가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싸고 있었다. 그래도 완곡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테지만 나는 왠지 그래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말해도 받아들이는 쪽의 심정은 같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내는 차라리 내가 변명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내의
태도로 보아 틀림없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러면 모든 게 일단락되고 전과 다름없는 생활이
계속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입을 다물고 요지부동으로 앉아 있자 그녀의 얼굴빛이
서서히 달라졌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아내가 여간해서는 그런 얼굴을 내보이는 사람이 아니
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할말이 없기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건 묻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야겠어요. 당신 앞으로 여기서
살 생각이 있기는 한 건가요?」
나는 물끄러미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영주란 이름을 더이상 입에 올리지 않은 것
은 그나마 나한테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한동안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나는 말없이 고
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다음날 아
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게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당분간 떨어
져 있자는 말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처가로 가서 다시 그들을 데리고 와야만 할 터이
었다. 세상살이는 이렇듯 절대로 간단하지가 않을 것이다.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동안에 나는 어느 날 저녀에 걸려 온 이영주의 전화를 받았
다. 그녀는 내게 미안하단 말부터 했다. 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무엇이 나한테 미안하단 말
인가. 아무튼 그녀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 무얼 그리느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한동안 사이를 두고 있다가 정말 모르겠냐고 내게 반문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알게 모르게 묘한 여운을 품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는 모르겠다고 말하고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에 나는 그녀가 다시는 내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으리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모를 일이다.
그때 사막 앞에서 그녀가 먼저 뒤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녀와 나 사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그것은 나 자신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깨끗이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조금 전까지는 내게 뭔가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처가에 가서 공개적
으로 내 실수를 시인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잃
었던 한 부분이 온전히 되찾아지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그것은 아내도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 다음부터는 보다 현실적인 관계로 하루하루가 지탱될 것이다. 지극히 사실적인
아내와 남편의 관계.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 거기서 더이상 용서란 말이 적용될 리 없다.
이영주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그날 밤 나는 자정이 넘게까지 욕조에 들어가 눈을 감고 누
워 있었다. 점점 식어가는 물.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가 캔버스에 그리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가 못내 궁금했다. 아직도 뜨거운 것이 내게 조금 남아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당연히
그걸 내가 알고 있었을 거라는 투로 물어오던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일까.
새벽 두시까지 차가운 물 속에 누워 있다가 나는 벌거벗은 채로 욕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게 무엇인지 생각이 났던 것이다.
8
백합은 세 줄기가 솟아올라 그 중 두 개가 피어 있었다. 그것은 사막에서 돌아와 병원으
로 실려가기 전 내가 이끼에 싸인 채로 화분에 묻어 두었던 구근을 비집고 올라온 것이었
다. 그때 밤의 사막 앞에서 그녀가 내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던, 황하에서 샀다던 바로 그 구
근. 나는 베란다에서 화분을 받쳐들고 달빛이 비쳐들고 있는 거실로 들어왔다. 백합은 희미
한 달빛 속에서도 염염한 빛으로 타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백합 화분 옆에 가만히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유년에 못 다 흘리고 남은 눈물이, 흐
린 날 산 속에 올라가 보게 되는 머나먼 한 줄기 강물처럼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
다. 그러한 잠시 내 눈에 문득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피아노의 환영이 비쳐
들었다.
그렇다, 밤의 사막 한가운데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거기 누군가 앉아서 쇼팽의 녹턴 팔번에서 십번까지를 치고 있다.
아마도 죽은 내 친구겠지?
피아노소리는 사막의 구석구석으로 물주름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그 소리를 따라 사방에서 백합들이 투둑투둑 피어나기 시작한다.
넌 밤늦게 앉아 아직도 캔버스에 백합을 그리고 있는 중이겠지?
낮게 엎드려 있는 나는 등이 가렵구나.
왜냐고?
비로소 내가 사막과 같아져 피아노와 백합을 등에 지고 있기 때문일 테지.
그래, 그런 때문일 테지.
누가 나를 메아리쳐 불러,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니, 내가 거미처럼 사지를 벌
리고 달을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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