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통제와 억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예속”이라 할 것이며 운명의 권리(우연성) 아래에 있는 이 예속의 원인을 증명하려 한다. 먼저 완전성과 불완전성에 대해, 작품의 제작자가 그의 의도에 의해 완성되었는지에 따라 완전과 불완전이라는 말의 최초로 의미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편 관념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완전으로, 제작자의 견해에 따라 완성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유형의 개념과 덜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불완전하다고 여긴다.
사물의 참다운 인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편견에 의해서 습관적으로 자연물을 완전하다든가 불완전하다고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완전과 불완전은 실제로 오직 사유의 양태일 뿐이다. 마치 동일한 종(鍾)이나 유(類)에 속하는 개체를 비교함으로써 습관적으로 형성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실재성과 완전성은 동일한 것이다.
선(善)은 인간 본성의 전형에 점차고 접근하는 수단이 되는 것, 악(惡)은방해가 되는 것이다. 전형에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접근하는 경우 인간을 더 완전하다거나 더 불완전하다고의 경우이다. 완전성을 실재성으로, 각각의 사물이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작용하는 한, 완전성은 그 사물의 본질이다.
정의
1. 우리들에게 유익하다고 확실히 아는 것이 선(bonum)
2. 선한 어떤 것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을 악(malum)
3. 개체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정립하거나 필연적으로 배제하는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는 한 그 개체는 우연적이다.
4. 원인, 원인이 개체를 산출하도록 결정되어 있는지의 여부를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한 가능적이다.
5. 인간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반대되는 정서로 이해한다. 이는 본성상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반대된다.
6. 3부의 정리18의 주석 1과2
7.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하게끔 하는 목적을 충동으로 이해한다.
8. 덕과 능력은 동일하다.
정리1. 참다운 것의 참다운 현재에서는 그릇된 관념을 소유하지 않는다. 증명-부당한 관념은 오류라고 일컬어지는 어떤 적극적인 것도 소유하니 않는 것과 같다. 사물(태양)이 자극받는 한도에서 그 사물(태양)의 크기를 파악한다. 이 때의 파악(표상)은 참다운 것이 참다운 한에서 참다운 것의 현재에 의하여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존재를 배제하는 더 강한 다른 표상이 나타남으로써 소멸된다.
정리2. 자신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없는 자연의 일부인 한에서 작용을 받는다. 정리3. 인간이 존재를 지속시키는 힘은 제한되어 있으며, 또한 외적 원인의 힘에 의하여 무한히 압도당한다. 정리4.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은 불가능하며, 자신이 타당한원이이 될 만한 변화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인간은 항상 열정에 필연적으로 예속하며, 자연의 공통된 질서를 따르고 그것에 복정하며, 사물의 본성이 요구하는 만큼 그것에 적응한다.
정리5. 각각의 열정의 힘과 그 증가 그리고 그 존재의 존속은 우리들의 능력과 비교되는 외적 원인의 힘에 의하여 한정된다. 정리6. 열정이나 정서의 힘은 인간의 능력을 능가(초과)할 수 있기에 인간에게 달라붙어 있다.
정리6. 어떤 열정이나 정서의; 힘은 인간의 여타의 작용이나 능력을 능가할 수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정서는 끈질기게 인간에게 달라 붙는다.
정리7. 억제되어야 할 정서는 보다 더 강한 정서에 의지하지 않고는 억제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 -정신은 이전보다 강하며 이전과 반대되는 변용의 관념에 자극받는다. 정서가 정신에 연관되는 한 그러하다.
정리8. 선과 악의 인식은 우리들이 그것을 의식하는 한에서 기쁨이나 슬픔의 정서일 뿐이다.
정리9~13은 사물의 상상(표상)을 시간의 개념에 대입하며 그 정서적 격차를 가능성의 논리에 의거하여 동일하게 전개 시키기 있다. 정리9. 정서의 원인이 현재 우리들 앞에 있는 것으로 표상될 경우 우리들 앞에 없는 것으로 표상될 경우보다 한층 더 강하다.
정리10. 빨리 다가오리라고 표상되는 미래의 사물에 대해서 현재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고 표상될 때보다 한층 더 강하게 자극받고, 멀리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표상되는 사물의 상기에 의해서 이미 멀리 사라졌다고 표상될 때보다 한층 더 강하게 자극받는다. 시간성의 표상, 혹은 시간의 직접적 체험이 각자의 인식에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 객관적 절대치로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정리11. 사물에 대한 필연적 정서는 가능적·우연적 정서보다 더 강하다. 같은 방식으로 정리12.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가능한 것의 정서는 동일 조건 하에서는 우연적인 것에 대한 정서보다 강하다.
정리13.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연적인 것이 다른 사정이 같을 경우 과거의 정서보다 약하다.
정리8(선/악 기쁨/슬픔)에서 이어지며 정리18에까지 이른다. 정리14. 선과 악의 참다운 인식은 그것이 참인 경우 어떠한 정서도 억제할 수 없고, 정서로 간주되는 한에서 정서를 억제할 수 있다.
정리15. 선과 악의 참다운 인식에서 생기는 욕망은 우리들이 사로잡히는 정서에서 생기는 다른 많은 욕막에 의하여 붕괴되거나 억압당할 수 있다.
정리16. 선과 악의 인식이 미래에 연관되는 경우, 여기에서 형성되는 욕망은 현재의 쾌적한 욕망에 의하여 한층 더 쉽게 억제되거나 붕괴될 수 있다.
정리17. 선과 악의 참다운 인식이 우연적인 것에 관계되는 한 그 욕망은 현재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욕망으로 한층 더 쉽게 억제될 수 있다. 나는 더 좋은 것을 보고 그것을 타당하다고 여기지만 더 나쁜 것을 따른다(Video meliora proboque, deteriora sequor). 지식을 늘리는 자는 고통을 늘린다(Qui auget scientiam, auget dolorem).
정리18.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다른 사정이 같을 경우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보다 강하다.
정리19. 각자는 자기가 선이나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자신의 본성 법칙에서 필연적으로 욕구하거나 혹은 피한다.
정리20.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할수록 노력하고 달성하면 할수록 더욱더 유덕하다. 반대로 등한시하는 경우엔 무력하다.
정리21.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똑같이 욕구하지 않고서는 행복하게 존재하고 선하게 행동하며 선하게 생활하기를 욕구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존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 창조적 욕구는 없을 뿐인가?
정리22. 어떤 덕도 자기를 보존하려는 노력보다 앞서서 생각될 수 없다. 현재의 자신의 본연에 의문을 품고 원래의 자신을 찾기 위한 현재의 자기에 대한 방치 혹은 파멸, 이것이 구도자의 길이든 예술의 영역이든, 현재의 자기보존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나?
정리35. 인간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는 한 본성상 언제나 필연적으로 일치한다.
정리36. 덕을 따르는 사람들의 최고의 선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며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선과 덕에 대한 것은 신의 인식임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영원하고 무한한 신의 본질에 관한 적합한 인식을 가지는 것은 인간 정신의 본질에 속한다.
정리37. 덕을 따르는 사람들 각자는 자기를 위하여 욕구하는 선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욕구할 것이며, 신에 대한 인식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이 욕구할 것이다.
'사유(思惟)'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니체철학에서 인식/해석과 존재 (0) | 2020.02.18 |
---|---|
니체의 Übermensch에 있어서 Über와 Mensch의 의미 (0) | 2020.02.18 |
스피노자와 세 가지『윤리학』 (0) | 2020.02.17 |
스피노자와 “마주침의 유물론” (0) | 2020.02.17 |
노마디즘1/이진경 (0) | 2020.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