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진중권,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나뭇잎숨결 2020. 2. 14. 11:54




'SNS의 핵인싸' 진중권이 인문학자로 돌아왔다. 고양이를 안고서.

2년 전 출간돼 화제를 모은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천년의상상)의 일부 내용을 추가하거나 손본 개정판을 출간했다. 당초 한 권이었던 것을 '역사'와 '문학' 두 편으로 나눴고 디자인도 바꿨다.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펴낸 진중권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금지]

'역사' 편은 '모든 집고양이의 어머니'부터 때로는 마녀사냥과 맞물려 불타 죽기도 하고 때로는 문학적, 종교적으로 숭배받기도 하면서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한 발자취를 더듬어 간다.


고양이의 '가축화'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관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저자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마법사가 밤하늘의 별, 들판에서 타오르는 모닥불, 피어오르는 연기 등 소중한 것들을 모아 별처럼 반짝이는 눈과 불길 같은 혀와 잿빛 털을 지닌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페르시아의 전설이 진정한 '고양이의 창세기'라고 한다.

마녀사냥에 고양이가 휩쓸려 들어간 이유에 관해 저자는 주로 여성이 희생된 것과 고양이가 성적으로 문란한 이미지를 가진 것 사이에서 연관성을 짐작한다. 굳이 마녀사냥이 아니더라도 고양이는 사랑 못지않게 미움받는 존재였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는 시내 한가운데서 고양이들을 산 채로 태워죽이는 옛 프랑스 축제의 광경이 묘사된다. 유럽 곳곳에 고양이 살해 풍습이 있었고 벨기에의 이프르라는 곳에서는 지금도 '고양이 축제' 때 도시의 높은 탑에서 고양이 인형을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이 풍습을 이어간다.


그러나 광란의 와중에서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늘 있었고 계몽의 시대를 지나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 고양이가 위안과 기쁨을 주고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부각되는 '가치의 전도'가 완료된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보들레르, 프랑스 귀족이자 미식가 샤토브리앙 등은 이름난 고양이 애호가, 요즘 말로는 '집사'였다. 한국에서도 조선 임금 숙종이나 효종의 딸 숙명공주 등이 고양이를 '반려자'로 여긴 기록이 있고 영조도 길고양이를 죽이는 데에 반대했다.


저자는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라는 철학자 몽테뉴의 말로 모든 '집사들'의 마음을 대변하려 한다.


'고양이의 인문학' 다시 들고나온 진중권 - 2

'문학' 편은 신이 본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역할을 인간이 아니라 고양이에게 부여했다는 고대 중국 신화로 시작한다. 세상을 운영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고양이에게 노한 신은 이 일을 '인간'이라 불리는 동물에게 넘기고, 대신에 고양이에게서 더는 필요없게 된 말하는 능력을 빼앗아갔다는 전설이다.


가장 유명한 고양이 동화로는 아마도 '장화 신은 고양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전해지고 있거니와 저자는 유독 고양이가 장화를 신은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의 생각으로는 고양이가 뭔가 '특별한' 존재로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장화다. 왕이 고양이 말을 들어준 것도, 농부들이 고양이의 지시에 따르는 것도 다 그것이 보통 고양이가 아니라 '의관'을 갖춘 고양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사유는 '모든 고양이는 특별하다'를 거쳐 '그러므로 모든 고양이는 장화를 신을 자격이 있다'로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주인공 플루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 엘리엇의 동시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 등장하는 여러 고양이 등 문학 작품에 나타난 고양이들에 대해 나름의 철학적, 문학적 해석을 내놓는다. '진중권의 입담'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집사의 오버'는 어쩔 수 없다. "진정으로 '집사'가 되려면 그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고양이가 되어야 한다. 고양이가 되려면 외적으로 흉내 내는 것을 넘어 고양이 고유의 속성을, 즉 그 행동의 우아함과 태도의 고고함을 내적으로 닮아야 한다. 고양이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인간중심주의에서 고양이중심주의로 현존재의 태도를 단호히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