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지식 정보사회에서의 철학적 지혜의 역할(김형철)

나뭇잎숨결 2017. 3. 8. 06:17

지식 정보사회에서의 철학적 지혜의 역할

- 김 형 철

0. 철학적 지혜의 정의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인류최고의 학문이 철학이 이제 21세기 지식정보사회를 앞두고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인간이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인터넷을 획득하게 된 이후로 우리는 정보의 빈곤이 아니라 과다한 정보의 풍요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떻게 정보를 구할 것인가"보다는 "어떤 정보가 나에게 필요한 정보인가"를 선별할 줄 아는 능력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정보의 바다에 나가면 이제 널려있는 것이 정보인 상황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보다는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이 당연히 더욱 중요한 능력이 되는 것은 정보의 풍요가 가져다 주는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정보를 쥐고 있는 자가 권력을 쥐고 있다는 말이 문자그대로 실감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보에 의해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과연 철학과 같이 한가롭게 생각할 여유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며, 바람직한가? 과연 철학적 지혜가 설 땅이 있는가?

오늘날 지식경영사회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결국 지식의 축적이 있음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것과 같은 철학적 지혜가 아니라 실용적 결과를 가져다 주는 데 필요한 기술적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이윤추구를 위한 수단인 점에서 동일하게 대하면서 지식경영을 하는 경영인들에게 철학적 지혜는 대단히 사치스럽게 들릴 것이다. 지식이 중요한 이유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면 철학적 지혜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21세기는 제러미 리프킨의 말대로 전문지식인과 자원봉사자의 세상이 된다면, 철학자의 설 땅은 없는 것이 아닌가? 과학자와 전문직업인들이 철학자의 역할을 모두 대신할 것이지 않겠는가?

정보는 배경지식 없이는 해독될 수 없는 암호와 마찬가지다. 정보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축적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즉 지식은 정보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필요조건인 것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바로 이러한 지식을 배양하고 축적하는 능력을 통해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해내는 데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정보를 정확하게 해석해내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의 전부인가? 인간은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여할 줄 아는 유일한 존재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의미를 전달받고 수동적으로 살아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의미를 적극적으로 부여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만큼이나 삶을 살아가는 현명한 지혜도 중요한 것이다. 폭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상호간의 이익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지혜인 것이다. 지혜는 지식과 경험의 조화에서 탄생하는 능력을 일컫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적 지혜의 핵심은 무엇일까?

철학적 지혜의 핵심은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가치와 의미를 추론해내고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제안하는 데 있다. "정보는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우리의 삶에 좋다"는 단순도식을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은 철학적 지혜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에 유해한 정보는 적어도 개인에 의해서 걸러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검열하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이다. 만약에 검열자체가 윤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면, 개인이 자신에게 유익한 정보와 해로운 정보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의무가 사회에 있다. 이것이 바로 철학적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지식경영은 이윤추구에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식경영은 정보를 수집하는 체계를 자동화시켜 놓는 것에서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실수다. 지식경영이 가능하기 위한 두 가지 전제조건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지적 재산권의 적절한 설정이다. 우선 개인간의 신뢰가 축적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지식의 축적이 불가능해진다.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하고 이해하는 노하우know-how를 축적해나가는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개인들 사이에 신뢰가 쌓여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이 그러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 한계와 범위를 분명하게 인정해주는 권리를 부여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인프라가 선행적으로 구축되어있지 않으면, 지식경영 그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즉 효율적 경영은 경영윤리의 정비를 선행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신뢰와 개인의 권리인정은 철학적 지혜의 활용을 통하여 결정할 문제이다.

정보와 지식은 효율성만을 요구할 것 같지만, 그 바탕에는 도덕적 가치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적 지혜는 세 가지 방법론을 통하여 축적되게 된다. 첫째, 철학적 지혜는 메타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개별과학들은 현상에 대한 일차적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에 대하여 인과율의 원칙에 따른 설명을 하는 것이다. 철학적 지혜는 그러한 과학활동 자체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관습에 따라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관습의 발생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없이, 단지 그것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고 또 많은 사람에 의해서 추종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관습에 복종하면서 살고 있다. 철학은 이러한 관습이 갖고 있는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철학적 지혜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어떻게 행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요구되는 행동원칙들의 정당성을 되물어 봄으로써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이 메타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이는 우리의 피상적 이해와 달리 가장 창조적인 인간적 사고에 속하는 고도의 생산적 활동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자의식을 가진다는 것이 그저 단순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은 그냥 의식활동만을 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창조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치를 실천하는 활동만이 아니라 "가치의 가치"를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철학의 근본적 활동이다. 철학적 지혜는 "정보가 정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지식이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지니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철학은 메타적 사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둘째, 철학적 지혜는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현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철학적 사고가 아니다. 철학적 사고는 주어진 현상의 의미를 묻고,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가감 없이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논리적 일관성을 주 생명으로 하면서, 진리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삼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점의 근거를 질문하는 것이 철학이다. 근거물음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은 근거 없는 편견과 독선을 견제하려는 비판정신의 발로이고, 이것이 바로 철학적 지혜의 두 번째 방법론이다.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정보를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그 정보의 유용성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철학적 지혜가 필요하다. what to know와 how to know의 문제는 더 이상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연결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진리접근의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는 철학적 지혜를 필요로 한다. 진정한 지식의 축적은 "정당한 근거를 이성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어떠한 것도 진리로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비판적 자세를 취하는 철학적 지혜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정보사회에서 정보의 유용성과 유해성을 동시에 조명해야 한다는 것은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셋째, 철학적 지혜는 개념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개념은 자신을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개념 자체에 대한 디자인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잘못된 개념정의에서 출발한 분석적 작업이 우리에게 엄청난 혼란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정보사회에서 개념 또는 단어검색을 통하여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이미 인터넷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행위이지만, 정보를 제대로 가공해서 제공하기 위해서는 컨셉트를 정확하게 디자인하는 작업이 선행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철학자들은 메타 사고를 통하여 비판적 방식으로 컨셉트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개별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에서 필요한 컨셉트 디자인만을 하는 반면에, 철학자들은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적용되는 컨셉트 디자인의 의미를 파악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컨셉트 디자인은 삶에 대한 성찰을 전제로 하는 철학적 지혜를 필요로 한다. 몽테뉴가 "철학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죽음과 삶"이라는 컨셉트를 새롭게 디자인한 것이다. 철학자는 컨셉트 디자이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정보가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되는 것은 인간에게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통되어야 할 정보와 유통되어서는 안될 정보를 분류하는 기준의 제시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철학적 지혜는 이러한 정보유통의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정보사회에서 철학적 지혜의 1차적 역할이 삶의 당위적 영역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가치와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다는 지적을 한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가치의 제시는 철학적 지혜가 21세기에 더욱 필요로 하게 될 분야이다. 정보철학과 정보윤리의 중요성은 미국철학자들의 2/3가 자신을 윤리학 전공자라고 생각할 만큼 철학적 지혜가 삶의 현장에서 필요하다는 점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철학적 윤리학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주어진 정답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자체를 발굴해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진지한 자세를 말한다. 이러한 의식적 노력이 없이는 우리 삶의 질적 향상은 불가능한 일이다.



1. 정보사회와 윤리의 기준


인간은 자신의 무력함과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사회구조 속에서 수많은 개인들은 공동체의 선을 증진시키는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다양한 권리를 행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삶은 인류가 사회공동체를 구성하고 살면서부터 시작된 오래된 삶의 존재양식이다. 이 사회 속에서 개인들은 경쟁과 협동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슬기와 지혜를 행사하는 방식을 터득하고 실천한다. 농경사회에서나 산업사회에서나 오늘날 정보사회라고 불리는 첨단사회에서나 인간들은 사회공동의 복리와 개인의 행복과 권리를 조화시키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삶을 영위하고 있다. 정보사회라고 해서 별다른 형태의 가치관과 가치기준이 따로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적용해야할 가치기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윤리의 기준에 대한 일관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가치기준의 적용의 방식과 수단만이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변화되어갈 따름이다.

오늘날 정보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현대과학의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라고 불리는 디지털 브레인의 소형화와 고성능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컴퓨터는 이제 인간활동의 많은 영역을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사무자동화가 이루어지면서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은 몇몇 고집스러운 사람들과 디지털 혁명에 대하여 정당화되기 힘든 기술거부감 또는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에 국한된 현상으로 점점 인식되고 있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병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에도 컴퓨터는 이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백화점의 단말기에서, 대학교의 연구실에서, 기업의 사무실에서, 군사시설에서, 이외에도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인간활동의 영역에서 컴퓨터는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나 국가의 강제적 명령에 의한 것도 아니요, 특별한 세제상의 혜택을 받기 때문도 아니다. 시장경제체제와 같이 경쟁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구조 속에서 모든 개인과 단체는 경쟁의 압력 때문에 효율성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고, 컴퓨터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효율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앞으로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지속될 전망이다.

"다른 컴퓨터와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는 전화선에 연결되지 않은 전화기와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것이 현대 정보사회의 현실이다. 컴퓨터와 컴퓨터를 연결해주는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컴퓨터발전 그 자체와는 또 다른 현상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다. 물리적 공간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지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구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껏 우리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대단히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물리적으로 이웃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생각과 취미를 공유하고 있으면서 전화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지각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좁고 편견에 찬 좁은 지역 내에서의 교류에 만족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통신망을 타고 정보의 바다에 나가서 자신과 유사한 인간관, 세계관, 사회관을 가진 사람들과 만족할만한 만남의 장을 마음껏 즐기고 자신의 공간으로 다시 무사하게 귀환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사회는 많은 기술문명 비평가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고독과 소외만이 존재하는 인간성말살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정보사회에서 우리는 기술을 잘만 활용하면 자신들의 자유와 자율성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정보통신기술 그 자체가 마술처럼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고유한 정신과 목적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홀로 외로운 싸움으로 내팽겨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인생목표와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상공간(virtual space, cyber space)을 제공해주는 것이 정보통신사회의 장점이다.

오늘날 이렇게 첨단의 정보통신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기술발전단계를 살펴보면, 첫째 인간은 좁은 지역에서의 일대일의 통신에 주로 의존하였다. 여기서는 개인간의 신뢰와 스킨쉽이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신체장애자들이 타인과 교류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고, 생존자체가 힘들기도 했었던 시절이다. 둘째, TV와 같은 대중매체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인간들은 개인간 일대일 통신뿐만 아니라 한사람 또는 한 집단에게서부터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술수단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것은 인류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발전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으로 보여지지만 동시에 그 폐해는 정보전달의 일방성에 있었다. 요즘 TV에서는 토론 프로그램을 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전화 등을 통한 입력을 받음으로써 쌍방향 정보교환을 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근본적으로 TV와 같은 대중매체는 단방향 정보통신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셋째, 이제 인류는 앞선 말한 바와 같이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하여 가상공간에서 실시간(real time)으로 타인과 일대일 통신도 가능하고, 그룹대 그룹으로 통신도 가능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동시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는 셈이다.

이러한 정보사회에서 인간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은 현상적으로 과거와 대단히 다른 삶의 양식을 영위하고 있다. 교통의 발달로 직장과 주택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고, 이것은 대중교통에만 의존하던 시절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그러나 승용차의 보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쾌적한 주거환경과 높은 임금을 동시에 즐기고자 하는 세대들은 직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넓은 공간을 활용하면서 출퇴근하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이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재택 근무를 직장출근과 혼합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모든 직원이 항상 동일한 시간에 출퇴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점점 탈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근본가치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음을 우리는 곧 알게 된다.

개인은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정보를 적절하게 소화하여서 자신의 합리적 삶을 영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정보사회에서는 정보 전달의 양이 과거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점 이외에 특별히 인간이 근본적으로 상이한 윤리관과 가치기준을 가져야 할만큼 달라진 것은 없다. 사회윤리의 기준을 개인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사실과 진리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고, 정보를 활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활동목적이 사회전체의 공익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가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개인의 자유, 자율성, 행복, 권리와 다른 한편으로, 사회복지, 공정성, 진리와 같은 공적 가치는 우리 인간들이 항상 지켜나가야 할 덕목임에는 변함이 없다.

2. 정보기술사회와 도덕가치기준


개인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사회전체의 질서와 안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진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당연한 진리이다. 과연 정보사회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청사진은 과연 무엇인가? 정보사회의 미래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평가는 때로는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있다. 긍정적인 평가에 따르면, 1)개인과 기업의 새로운 재산형성, 2)일상생활의 편의성 향상, 3)생산성의 제고, 4)지식과 발견의 확대, 5)인간 잠재력의 실현증대와 생활의 의미 및 목적의식의 심화, 6)가상공동체에 의한 옛날 이웃이 지녔던 가치의 일부 회복, 7)자기표현과 창의성의 부활, 8)세계적인 인식과 상호의존서의 제고, 9)전자방식의 마을회관을 통한 고대 그리스식 광장 민주주의의 복귀, 10) 전자 게시판과 대화형 도구에 의한 관료주의의 감퇴 가능성, 11)소외감이 줄어든 작업환경, 12)지식과 정보에 의존하는 새로운 경제모델, 13)계속적으로 높고 깨끗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창의성이 정보사회에서 실현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부정적 평가에 따르면, 1)지나치게 기술에 의존하는 데서 비롯되는 비인간화, 2)해커와 테러리스트의 공격, 3)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소프트웨어의 결점, 4)단전 및 쥐들로부터 쉽게 파손될 수 있는 취약한 광성유 시스템과 네트워크에 대한 지나친 의존, 5)정부와 대기업들이 가정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독재자로 군림할 수 있는 가능성, 6)지적 재산권을 존중하지 않고 쓸 수 있는 비트를 마음대로 훔쳐간 나머지 새로운 질서로써 야기될 경제적 무질서, 7)영상과 소리의 바이트에 미쳐서 정신 못 차리는 사회의 비이성화와 문맹화, 8)중우정치로 변할 원격 민주주의, 9)정보부자와 빈자 사이에서 세계적으로 발생한 세대간 및 계급간의 싸움 등이 정보사회에서 우려되는 현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보사회가 인류에게 가져다 줄 혜택과 부작용에 대한 미래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의 예측이 반드시 장미빛 일색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명심해야 할 것은 도덕기준으로서의 개인의 자율성, 자유, 공동체의 집합적 복지 등에 대한 거부는 없다는 점이다. 즉 정보사회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규범은 이전 사회와 동일한 것이다. 정보사회가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그 결과가 부정적인 이유는 개인의 존엄성, 자율성, 사회공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 긍정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 가치기준을 놓고 볼 때,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상황에 대한 경험적 예측에 있어서 의견을 달리 하는 것이지 도덕기준에 대한 이견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도덕언어게임에서 그들은 내적인 합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보사회가 효율성을 극대화시켜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데 큰 이의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내해야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인간성이 송두리채 파괴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효율성만을 강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서이 파괴되는 현상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효율성의 극대화가 인간성의 파괴는 필연적으로 유발한다는 인간사회에 대한 비관적 사유는 효율성의 극대화가 인간성의 완전실현으로 반드시 나아가게 된다는 낙관적 사고만큼이나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시장경제체제가 효율적으로 움직이면서 빈부간의 격차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오늘날 현대사회의 효율성의 혜택이 반드시 소수의 정치경제 엘리트에게만 집중되었다는 비판은 분명히 과장된 것이다. 한 예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타인과의 교류에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었던 시각, 청각 장애자들과 지체부자유자들이 정상인들과 동일한 위치에서 교류를 하게 된 것은 분명한 인류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혜택이 모든 장애자들에게 골고루 실현되고 있다거나, 가장 먼저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는 구매력을 가진 자에게 먼저 그 혜택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가격의 인하에 따라 첨단 정보통신의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자는 늘어갈 밖에 없고,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으면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사실은 장애인들도 자신들의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정보통신의 발전을 누구보다도 고대하고 있고, 실제로 그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어떻게 정보통신사회에서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간의 분배정의를 실현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3. 정보의 독점과 공유


정보사회는 문자 그대로 정보의 유통이 대단히 자유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정보가 일부 권력자에게 독점되어 있게 되는 경우에 중우정치가 가능하게 되고, 따라서 정보의 민주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구 소련을 비롯한 국가주도 사회주의체제에서 정보의 철저한 통제가 인간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었는가를 상기해보면 정보의 유통은 자유스럽게 이루어져야하고 대중을 우매하게 만들어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속시키려는 정보독재자들에 의해서 절대로 통제되어서는 않된다. 일반인이 복사기를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창조와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질식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창의성은 타인에게 전달되고 공유됨으로써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정보의 형태로 타인에게 전달되는 것은 그것이 인쇄매체이든 전자매체이든 복사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창의성의 열매는 대량복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값지고 커지게 마련이다. 대량복사가 인쇄매체로만 이루어지던 기술발전단계에서 정보내용이 디지털로 저장되는 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현대의 정보사회는 무한대의 복사를 대단히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제 자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저렴해졌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 정보가 창의성을 기준으로 법적 소유권을 어느 정도로 인정해주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우리는 정보의 독점에 분명히 반대한다. 더군다나 정보의 소유여부가 현대사회에서처럼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정보의 부당한 독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정보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국가의 안위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비밀정보를 제외하고, 특정인의 사생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적 정보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개는 공개를 원칙으로 유통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보의 유통을 제한할 경우에 그 정당성은 정보제공을 막는 사람에 의해서 증명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모든 정보가 무상으로 배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적 재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정보제작자가 창의적 정보를 제작하는 데 소요된 경비와 투자비용을 보상해주는 것이 그 창의적 개인에게 더욱 좋은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동기유발을 할뿐만 아니라, 제 삼자들도 이에 자극을 받아서 더욱 좋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자신과 사회를 발전시키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현대 정보사회에서 발생하는 딜레마중의 하나는 정보가 과거보다 더욱 자유스럽게 유통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그 자체는 유상으로 배급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보유통시장의 특성으로 인하여 정보로부터 소외되는 계층이 나오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나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는 공공적인 채널을 통하여 분배하는 장치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물론 이때 무엇이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최소한 정보의 내용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규정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다소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기준중의 하나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합리적으로 설계하는 데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정보인가라는 점이다. 그 이외에의 정보는 정보제공자의 노력에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제공자가 원한다면 유상으로 제공되는 것이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

"모든 정보는 어떠한 경우에도 무상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급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타인의 정보저장고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그 정보를 훼손하거나 변경시키고 탈취하는 소위 "해커"들은 반드시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정보제한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정보를 소유주의 허락 없이 마구 사용하는 것은 소매치기나 강도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해커는 영웅도 정의의 사자도 아닌 일개 범죄자일 뿐이다. 더군다나 해킹의 목적이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질 경우에 이에 대한 정당한 조치로는 오직 사법적 처벌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정보가 독점되는 경우에 창의성은 말살되기 마련이지만, 동시에 창의적 정보가 무단으로 탈취될 때에도 그 창의성은 죽게 된다. 우리가 이 양자의 적절한 조화를 반드시 이루어낼 때, 건전한 정보문화가 건설될 수 있는 것이다.



4. 정보공개와 보호의 한계


개인의 사생활은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된다. 각 개인은 타인의 비판이나 평가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측면이 있고, 반대로 반드시 타인에게 공개되어야 할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내가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도 좋은가? 혹자는 에이즈가 전염되는 병이라는 이유로 해서 에이즈환자라는 사실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염병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병명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감기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만 하는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모든 병을 소지한 사람이 자신의 병명을 공개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그로 인하여 차별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경험을 하면서도, 개인의 사적 영역에 관한 정보가 당사자의 동의가 없는 한 제한적으로 유통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이 정보가 대량으로 유통되는 것이 가능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적 정보가 본인의 동의 없이 유통되는 것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까지를 감안할 때, 타인의 사적정보를 본인의 허락 없이 유통시키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나의 사적정보를 입수한 테러리스트가 나를 테러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발생한다면, 나의 사적정보를 나의 동의 없이 유출한 사람도 그 테러리스트와의 공범으로 간주할 수 있어야 할지 모른다. 특히 그 정보가 테러의 동기를 유발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 정보가 내가 테러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핵심적인 계기를 마련하는 경우에 그 정보를 무단으로 제공한 자의 비도덕성은 반드시 사법적으로 응징되어야 한다.

공적 정보는 공개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지만, 사적 정보의 경우에는 보호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공적 정보는 그 본질적 속성상 공개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고, 사적 정보는 공개됨으로써 그 개인의 수치스러운 부분이 노출될 수도 있고, 외부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보호되는 것이 원칙이다. 사적정보의 경우에도 보호됨으로써 제 3자에게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불필요하게 강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공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프라이버시에 관한 정보는 그 개인을 외부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외부인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명백한 가능성이 존재할 때는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5. 좋은 정보, 나쁜 정보, 그리고 인터넷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서는 각 개인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삶의 계획을 작성하고 집행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가진 존재로 본다. 이러한 개인의 합리성을 증진시키고 도움을 주는 정보는 좋은 정보이고, 반대로 그것에 훼손을 주고 마비시키는 것은 나쁜 정보이다. 이 정의는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정보가 한 개인의 아니 나아가서 우리의 합리성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지 아니면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를 판단하는 주체에 대한 언급이 없을 경우에, 그것은 불충분한 정의인 것이다. 성인의 자신에게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구분할 줄 아는 인식적 합리성을 가진 존재라고 간주되는 반면에, 미성년자는 그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한 존재로 인정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인에게 허용이 가능한 정보의 범위를 미성년의 그것보다 넓게 잡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성인은 자신에 좋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만약에 그 성인의 판단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전적으로 다를 경우에는 누구의 판단을 따라야 하는가?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문제는 복잡하게 된다. 이러한 것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섹스와 관련된 정보이다. 현재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사이트는 섹스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들이다. 특히 성적 욕구충동이 강하게 일고 있는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여성의 누드사진들과 음란한 그림들을 전송받을 수 있게 해주는 장소들인 것이다. 합리성을 완전하게 갖춘 성인이 춘화를 감상(?)하고 외설을 읽는 것은 비록 젊쟎치 못한 일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도덕적으로 크게 비난받을 만한 일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도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신의 인생설계를 충분하게 합리적으로 할 수 없는 미성년자는 이러한 정보가 자신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판단되어진다. 이러한 경우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섹스와 관련된 정보에 대한 접근허용을 이원화하여서 성인에게만 접근을 가능하게 하고, 미성년자에게는 제한적으로 접근을 허용하는 것이다. 외국의 예를 보면, 섹스숍을 별도로 운영하면서 일정한 나이를 넘어선 사람들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서 미성년자들의 접근을 방지하고 있다. 섹스정보의 유통을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부작용을 낳기 때문에, 사회전체적인 효용의 관점에서 볼 때 엄청난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보가 풍부하게 자유스럽게 유통되는 정보사회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합리성의 소지 여부에 따라 섹스정보에 관한 접근을 차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이 점점 그 실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과거에 미성년자들이 섹스정보에 대하여 접근을 제한하는 테크놀로지가 절대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런대로 강제집행하는 것이 어느정도 가능했던 것에 비해서 이제는 청소년들이 전자매체를 통한 가상현실에서 섹스에 관한 정보를 무제한으로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쇄매체와 비디오를 통한 섹스정보는 비록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미성년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적 접근허용이 왜 인터넷에서 불가능하게 되었는지는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

우리가 흔히 하이텔, 천리안 등으로 부르는 PC통신 정보제공업체와 인터넷은 근본적 성격을 달리한다. PC통신은 중앙집중적인 정보공급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은 누구나 특정한 가상공간의 장소에 만나서 정보를 교환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정보관리자 또는 정보전문가가 PC통신에 등록되는 정보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PC통신에 음난한 정보를 등재하면 삭제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은 PC통신과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인터넷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정보의 완전한 무정부상태이다. 어느 한 웹사이트도 중앙 집중적으로 다른 웹사이트들을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인터넷상에서 자신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는 가상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아직까지 사법경찰이 제대로 활동하고 있지 못하다. 바로 이러한 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들의 구상 속에 들어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정보의 완전한 자유소통이 인터넷의 최대의 장점이다. 그러나 교환 유통되는 정보가 미성년자들에게 해로울 수 있는 경우에 인터넷은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러한 것은 정보사회를 지혜롭고 도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경우이다.



6. 결론


전자매체에 의한 전달되는 정보는, 그 양에 있어서는 몰라도, 개인들이 직접 만나서 전달하는 정보에 비하면 질적으로 열악하기 쉽다. 왜냐하면 인간은 문자, 음성, 그림 등과 같은 것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눈짓, 손짓, 발짓, 얼굴표정 등과 같은 보디 랭귀지를 동시에 사용한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정보매체를 통한 의사소통은 왜곡, 축소, 과장,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다. 게다가 그것이 일방적으로 증폭되어 불특정 다수인에게 당사자의 동의 없이 배포될 때, 그 사람은 당연히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조작의 피해 가능성은 정보매체의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욱 위험한 상태로 가게 된다. 가령 예를 들어서, 화상회의를 할 경우에 우리는 현재의 나의 모습이 아닌 컴퓨터와 카메라에 의해서 전적으로 조작된 사진을 상대방에게 전송하면서 마치 그것이 현재의 나의 모습인 것으로 상대방이 착각하도록 만들면서 회의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기술조작을 통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시도는 이제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정보사회에서는 일대일 대면이 필수적인 사회보다 익명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타인을 비방하거나 모욕을 주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작자가 당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거나, 괴롭힐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피해를 입고 있다고 가정해보면 정보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공할만한 위력에 우리는 새삼 전율을 느낀다.

정보매체가 주는 매력에 탐닉하다보면 현실과 동료인간들과의 접촉이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기 쉬운 것은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바이다.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들은 흔히 대인접촉을 기피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정보는 결국 자신의 삶을 실현하는 도구와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생존을 위하여 정보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다가 정보 그 자체가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면, 인간과 인간의 접촉이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정보사회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은 정보는 권력과 같은 것이어서 마구 남용하게 되면 우리모두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보사회에서의 윤리는 정보의 남용을 방지하고, 타인에게 지나친 양의 정보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현명하게 활용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특히 정보매체의 급속한 발달로 인하여 기본정보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이 증폭된 상황에서는 우리 모두가 정보를 신중하게 다룰 것이 요청된다.

우리는 대체로 많은 정보가 적은 정보보다 항상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정보를 처리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전혀 없을 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일상생활에서 실감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한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중의 하나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해 내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전체의 관점에서는 타인에게 해악을 줄 가능성이 있는 정보의 유통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국가와 사회가 독재적인 방식으로 개인들 간의 정보교환을 재단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모든 사회는 좋은 정보는 많이 유통시키되 나쁜 정보는 제한하는 방책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방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철학적 지혜는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이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한,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정보의 바다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정보에 대한 직접적 간섭을 최소화하면서도 개인으로 하여금 정보수집 및 분석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주고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부단하게 해야 할 일이다. 철학적 지혜는 바로 이러한 작업을 개인에게 제공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