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마이클 샌델'편은, 방한일정에 맞추어 출판사 서재에서 촬영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탐험 공간
저에게 서재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의 세계입니다. 서재에서는 철학적 사상을 배우고 과거의 기억과 인류의 다양한 경험을 살펴볼 수 있으며, 먼 곳으로의 탐험도 할 수 있으니까요. 서재는 시공을 초월하는 삶의 경험과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보물이에요. 집에 있는 저의 서재에는 책상과 나무로 만든 책장, 그리고 정원이 바라보이는 창문이 있어요. 대부분 철학, 역사 관련 서적들이 꽂혀있는데, 제가 학창시절부터 공부해온 정치 철학 관련 책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 책들 중 일부에는 제가 공부하며 필기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가끔 제 아들이 그 책을 빌려 읽곤 하는데, 그럴 때면 ‘아빠가 학생 때 직접 필기하며 읽었던 아주 가치가 있는 책’ 이라고 말해줍니다.
책은 작가들이 보내는 대화로의 초대장
어려서부터 역사와 전기 같은 비소설 장르의 책을 좋아했어요. 아주 어릴 적에는 야구 팬이어서, 야구 영웅 전기만을 골라서 읽곤 했죠. 지금도 주로 비소설 장르의 책을 읽는 편이고, 그 중 대부분은 철학과 정치 철학 관련된 책들이에요. 왜냐하면 제가 글을 쓰고 가르치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이런 저를 보고, 소설을 주로 읽는 제 아내는 제가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놀리기도 해요. 저의 유일한 독서습관은, 질문을 하며 책을 읽는 것이에요. 특히 철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철학자의 주장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저자에게 질문을 합니다. 이러한 저의 독서 습관은 강의 스타일에도 연결되는데,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정치철학 관련 도서를 볼 때 능동적으로 읽으라고 권해요. 단순히 철학자의 주장을 기억하기 위해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2천년 전의 철학자일지라도 그가 우리 곁에 살아 있다고 가정을 하고 질문을 하며 읽으라고 하죠. 책은 작가와의 대화로 초대하는 일종의 초대장이에요.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다
정치, 역사 경제학에는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철학을 깊이 있게 공부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장학금을 받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수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죠. 옥스퍼드에는 “독서 방학” 이라고 일컬어지는 6주 간의 긴 겨울 방학이 있어요. 저는 옥스퍼드에서 처음 맞는 겨울방학에 세 권의 철학 도서를 들고 스페인 남쪽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갔습니다. 그 때 제가 가지고 갔던 세 권의 철학 도서는 이제껏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쉽지 않은 책이었어요. 그 중 하나는 존 롤즈의 <정의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18세기 독일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서양철학 역사 상 가장 유명한 책 중에 하나였지만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내용이었어요. 세 번째 책은 여성 철학가인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미국으로 이민 온 독일 철학가였는데, 유명한 독일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제자였죠. 저는 비가 쏟아지는 스페인 남쪽에서 친구들과 이 세 권의 철학서를 읽으며 겨울 방학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옥스퍼드에 돌아온 다음 학기에는 그 책들에 대해 교수님들과 함께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정의로운 판단을 위한 노력
살아가면서 윤리적 딜레마에 부딪히게 될 때면, 저는 매우 곰곰이 생각을 합니다. 지인들과 대화를 하거나 토의를 하기도 하죠. 우선적으로 매우 강한 도덕관을 가진 제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녁을 먹으면서, 또는 여행을 하면서 크고 작은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하곤 했어요. 물론 가족 간에 서로 다른 의견들이 나올 때도 있어요. 그래도 제가 개인적으로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정의로운 판단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다면, 그 고민을 가족과 함께 나누면서 가족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토론을 통해 함께 결론을 도출해 내는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에 대한 토론이 필요해
가장 이상적인 경제체제는 민주사회 내에서의 시장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는 생산적 활동을 조직화하고 재화의 흐름을 규제하기 위한 우리가 가진 최고의 시스템이죠. 하지만 현재 우리는 시장 경제에서 시장 사회로 흘러가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시장 사회는 모든 것이 돈으로 매겨지는 사회를 뜻합니다. 이는 돈과 시장가치가 물질적 재화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게 되는 삶의 방식을 의미하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점입니다. 오늘날 정치인의 자리와, 정치적 영향력뿐만 아니라 시민 의식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으로 점점 더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돈으로 사서도 안 되고 살 수도 없는 중요한 가치인데 말이죠. 이처럼 비시장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나 공통의 시민성에 의해 지배 받아야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토론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값진 것은 가족 간의 사랑과 우정입니다. 그 외에도 사회적 삶을 기준으로 볼 때, 사실상 그러면 안되지만 마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 사회 전체가 토론을 통해 풀어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샌델님이 소개해주신 아래의 ‘내 인생의 책’은 원서들로, 번역서를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또한 영문판으로 추천해주신 '추천책 리스트' 도서들은 최대한 번역서로, 번역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영문판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내 인생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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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olitics
- Aristotle,Sinclair, T. A. (TRN),Sinclair, T. A.,Saunders, Trevor J. | Penguin Books
-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책은 모두 정치 철학 관련 서적입니다. 그 중 하나는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집필한 <정치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 사회의 목적은 경제교환을 용이하게 하거나 GDP를 극대화하기 위함이 아닌, 시민이 좋은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익에 대한 고민을 통해 시민의 인성과 미덕을 배양하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창했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정치란 바로 선한 삶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2000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사상은 현시대에서도 교화 역할을 하며 매우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번역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5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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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Groundwork of the Metaphysic of Morals
- Immanuel Kant | Harper Perennial
- 두 번째 책은 임마누엘 칸트가 윤리와 도덕학에 대해 집필한 <도덕 형이상학 정초>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칸트는 도덕성의 최고봉은 공리주의, 즉 기쁨의 극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상위의 개념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는 그것을 “정언적 명령”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는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써가 아닌,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우리에게 말하는 “공리주의를 위해 절대 타협해서는 안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경의” 의 기본적 사상이 되는 것이죠.
(번역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879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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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 of Right
- Hegel, Georg Wilhelm Friedrich,Dyde, S. W. | Dover Pubns
- 세 번째 책은 칸트를 계승한 독일 철학자 헤겔의 <법철학>입니다. 헤겔은 도덕적인 삶을 단순히 추상적인 원리로 설명하는 사상을 비판했어요.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을 묶어서 정리하고자 했는데, 가장 고귀한 도덕적 삶은 보편적인 도덕적 원리와 일치하는 삶이라고 정의했죠.도덕적 삶을 실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보편 타당한 도덕적 원칙을 공동체 의식에 의해 정의하고, 역사가 존재하는 실제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현실화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번역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514717
(소개해드린) 세 권의 정치철학 분야의 명작들은 처음 접했을 때부터 매우 강력한 영향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이분들의 사상을 공부했고, 현재도 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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