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존의 이유 / 조병화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을 //
하지 않기로 하세 //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
악수를 하세 //
.................
'적당히' 먹고, '적당히'자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고, 사람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참 멋진 말이다
나의 모교 K여고에 갈때마다 맹렬한 기세로 건물을 기어올라가고 있는 담쟁이 넝쿨을 렌즈에 담는다.
담쟁이넝쿨에게 건물의 벽은 세상으로 나가는 창이다.
밋밋한 벽돌담보다 담쟁이 넝쿨이 덮인 건물은 얼마나 고색창연한가?
그런점에서 벽과 담쟁이 넝쿨은 공존의 존재인 셈이다.
그러나 조병화님의 시처럼 그 공존은 적당히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담쟁이의 넝쿨은 끝내 벽을 모두 덮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담쟁이는 적당할 수 없다. 그것이 담쟁이니까...
담쟁이의 사랑은 그렇게 끝까지 치닫는 맹목의 눈먼 사랑이다.
상처받지 않으려거든 '적당히' 사랑하라, 그런 충고 나도 엔간히 많이 늘어 놓은 사람이다.
나는 너무나 그 '적당히'를 좋아해서, 사랑때문에 죽고 싶었던 적도
치명적인 사랑의 상처때문에 멍든가슴을 문지른 적도 없으니
그런데 가을이 되면 그게 쬐꼼 그렇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은 오직 노랫말 속에서 상기하고 있으니...
오호 도덕적 인간이여! 장하도다.
D여사의 '적당한' 인생이여!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시(詩)와 詩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0) | 2008.09.25 |
---|---|
위 처사에게 드림(贈衛八處士) / 杜甫 (0) | 2008.09.24 |
가을 편지 5 / 이 해인 (0) | 2008.09.13 |
가을 편지 4 / 이 해인 (0) | 2008.09.12 |
가을 편지 3 / 이 해인 (0) | 2008.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