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2 / 이 해인
가을의 그윽한 이마 위에 입맞춤하는 햇살
햇살을 받아 익은 연한 햇과일처럼
당신의 나무에서 내가 열리는 날을
잠시 헤아려 보는 가을 아침입니다.
가을처럼 서늘한 당신의 모습이
가을 산천에 어립니다
나도 당신을 닮아
서늘한 눈빛으로 살고 싶습니다
싱싱한 마음으로 사과를 사러 갔었읍니다
사과씨만한 일상의 기쁨들이
가슴 속에 떨어지고 있었읍니다
무심히 지나치는 나의 이웃들과도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싶었읍 니다
기쁠때엔 너무 드러나지 않게
감탄사를 아껴 둡니다
슬 플 때엔 너무 드러나지 않게
눈물을 아껴 둡니다
이 가 을엔 나의 마음 길들이며
모든 걸 참아 냅니다
나에게 도취하여 당신을 잃는 일이 없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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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트, <사과나무 1>
가을은 황금빛 유혹입니다.
모든 형용사가 가을의 들판에 널려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가을 들판에서 햇볓바라기를 합니다.
이제는 자연을 보고 설렐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님'은 모두 님이라는 한용운 선생의 말이 지당합니다.
자연도 님이요, 님도 님이요, 님 아닌 님도 님입니다. 온통 햇살이고, 천지가 님 뿐입니다.
저 청정한 하늘도 님이며, 두둥실 떠가는 흰구름도 님입니다.
자반고등어 한 손 사서 들고 나오다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가시는 어르신의 굽은 등위에 가득 내려 앉던 햇살을 보았습니다.
"내 하루 일당이 오천원이여" , 단풍잎같은 손을 흔드시는 어르신,
의치도 못해 넣은 헛헛한 웃음을 가을 햇살 아래 주워담으시는 어르신,
연민에 굴하지 않은 그분의 한 평생이 너무나 떳떳해서,
등 가득 내려앚은 햇살이 따뜻하고 고마워서
자반 고등어 그 자리에 내려놓고
오체투지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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