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프란치스코 교황
“성령께서 하느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열린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반니 바티스타 레 수석 추기경이 집전한 6월 5일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강론을 통해 성령께서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질투와 뒷담화를 피하고, 악에게서 나오는 피해의식과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세상과 교회가 자리한 “지금 여기”를 사랑하는 법을 성령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이재협 신부
“성령의 학교로 갑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5일 오전 조반니 바티스타 레(Giovanni Battista Re) 수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이 같이 초대했다. 교황은 상처 입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성령을 만나는 자리가 성령의 학교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성령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삶의 우선순위에 놓아주신다며,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결정을 내리고, 교회로서 함께 걷고, 성령께 순종하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도록” 성령을 부르며 기도하자고 권고했다. 추기경단과 미사에 함께한 교황은 성령께서 “이상적인 세상, 이상적인 교회”가 아니라 “환한 곳에서 꾸밈없이 실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있는 그대로의 교회를 사랑하도록 이끄신다”고 강조했다. 반면 악한 영은 “뒷담화, 수군거림, 잡담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시는 분
교황은 이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곧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라는 구절을 묵상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교황은 이 구절에서 “모든 것”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며 “성령을 받은 이에게 이 같은 온전하고 새로운 이해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고 되물었다. 이어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이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 전망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해 주십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거대한 여정에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거저 주어진 선물인 하느님 사랑
교황은 첫 번째로 우리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곧 “영적 삶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고 설명했다. 예수님께서는 이날 복음을 통해 이미 그 출발점을 언급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14,15). 이것이 바로 성령의 논리다. 성령의 논리는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 “사랑이 본질적으로 우리의 계명 준수, 우리의 능력, 우리의 종교심에서 나온다”는 우리의 확고한 생각을 뒤집는다.
“성령께서는 사랑이 우리의 기초가 되지 않으면 나머지 모든 것은 헛된 것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을 부어 주시는 분이 사랑의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시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영적 삶의 ‘원동력’이십니다.”
좌절 속에서 체험하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신뢰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요한14,26)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과 관련해 교황은 “성령은 능동적인 기억”이라며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 사랑을 끊임없이 불러 일으키신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죄를 용서받을 때 성령을 체험한다며, 이러한 영적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와 부족함”을 떠올리는 목소리, “넌 할 수 없어, 넌 부족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성령의 목소리는 이러한 목소리와 완전히 다르다.
“성령께서는 완전히 다른 것을 우리에게 떠올려 주십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유일무이한 존재, 선택된 존재, 언제나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을 때조차도,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신뢰하십니다!”
기억을 치유하시고 우리를 과거와 화해시키시는 분
“나에게는 단순한 위로의 말로 해결될 수 없는 많은 문제, 상처, 걱정거리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에게 교황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위로자이신 성령께서는 치유와 부활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 내면에서 화끈거리게 하는 상처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나 그러한 상황에 대한 기억을 송두리째 잘라내라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성령의 현존을 통해 그러한 기억을 정화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수난 전에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던 바오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는 사도들이 좌절을 겪었을 때에도 같은 방법으로 위로하셨다. 교황은 혼자서는 잘못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위로자이신 성령과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기억을 치유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요? 성령께서는 가장 중요한 것을 목록의 맨 위에 두십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눈길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령께서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용서하며, 과거와 화해하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 위해 악령의 목소리와 성령의 목소리를 식별하기
교황은 출발점에 대한 묵상에 이어 두 번째로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다”고 강조했다. 성령께서는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온갖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에게 최선의 길을 택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교황은 “이를 위해 악령의 목소리와 성령의 목소리를 식별하는 법을 아는 게 중요하다”며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여정 안에서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절대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죠.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바로잡아 주시고, (…) 여러분을 변화시켜 주시고, 여러분의 거짓말과 기만에 맞서 싸우도록 재촉하십니다. 심지어 그것이 힘든 일, 내면의 투쟁과 희생을 필요로 할 때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악령은 이와 반대로 여러분의 생각대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부추깁니다. 악령은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언젠가 여러분의 내면이 공허해지면, 악령은 여러분을 비난하고 나락으로 던져 버립니다.”
“삶의 여정에서 여러분을 바로잡아 주시는 성령께서는 결코 여러분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의 손을 잡아 주시고, 여러분을 위로하시며,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비관적인 생각은 악에게서 나옵니다
교황은 “억울함과 비관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으로 괴로워할 때마다 이런 것들이 결코 성령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억울함, 비관적인 생각, 슬픈 생각들은 결코 성령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부정적인 마음 안에 자리잡은 악으로부터 나옵니다. 악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종종 사용합니다. 곧, 조급함과 피해의식, 자기연민을 통해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 남 탓을 하게 만듭니다. 신경질적이고 의심을 품게 하며, 불평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절대 낙심하지 말고 언제나 새롭게 다시 시작하라고 초대하십니다. (…) 우리가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다른 누군가가 시작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뛰어들 때 가능합니다. 또한 우리가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불평불만이 아니라 희망과 기쁨을 퍼뜨림으로써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절대 다른 이를 질투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성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상적 교회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교회를 사랑하도록 이끄시는 분
교황은 “성령께서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집중하길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과 장소는 그 자체로 은총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령은 우리의 생각을 ‘지금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한다. 곧, 우리의 후회나 향수, 잘못들에 사로잡힌 과거에 머물러 있게 한다. “혹은 두려움, 착각, 잘못된 희망을 부채질하며 미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상적인 세상, 이상적인 교회, 완전무결한 수도회가 아니라, 환한 곳에서 투명하고 꾸밈없이 실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있는 그대로의 교회를 사랑하도록 이끄십니다. 뒷담화, 수군거림, 잡담을 조장하는 악령과는 얼마나 다른 분이신지요!”
교회가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는 성령
교황은 “성령께서는 우리가 한 교회로서 일치를 이루길 바라신다”며 “교회가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다”고 말했다. 이것이 강론 서두에 언급한 성령의 세 가지 가르침 중 마지막 내용이다. 이날 복음은 제자들이 두려운 마음에 “다락방에 숨어 있었으며, 성령께서 내려와 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셨다”(요한 20,19-23 참조)고 전한다. 성령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모든 이에게 문을 열도록 이끌어 주신다.
“어느 시대에나 성령께서는 우리의 계획을 뒤엎으시고, 당신의 새로움에 마음을 열도록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가 자기 자신 안에 갇힌 채로 남아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선포해야 한다는 중대한 필요성을 가르쳐 주십니다. 교회는 울타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양떼가 아니라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길러질 수 있는 초원이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교회는 분리 장벽이 없는 환대의 집이 돼야 합니다.”
오직 사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세속의 영
교황은 세속의 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속의 영은 우리가 오로지 자신의 문제나 사익에만 집중하도록, 오직 우리가 속한 나라나 공동체만을 용감하게 지키게 만듭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활동하지 않으신다. “성령께서는 우리 자신을 잊고 모든 이를 향해 마음을 열라고 초대하십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령께서 교회를 젊어지게 하십니다.” 교회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성령이시다. “교회는 프로그램이나 현대화 노력만으론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조급한 마음의 집착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세상으로 보내시기 위해 오래고도 여전히 새로운 길, 곧 증거의 길, 가난의 길, 선교의 길을 걸어가도록 초대하십니다.”
분열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여도 조화를 이루시는 분
끝으로 교황은 원고에 없지만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아침 장면을 보면 성령께서 “다른 언어와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드시는 것처럼 보인다. 교황은 성령께서 “분열과 무질서”를 창조하시는 분이신 동시에 “조화를 이루시는 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은사를 구분하시지만, 오히려 차이 안에서 조화를 이루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교회의 풍요로움입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초대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강론을 끝맺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성령의 학교에서 정진하도록 합시다. 날마다 성령을 부르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눈길에서 출발하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결정을 내리고, 교회로서 함께 걷고, 성령께 순종하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도록 합시다.”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성령께서 하느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열린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 - 바티칸 뉴스 (vaticannews.va)
교회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이 날에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강림하신 것(사도 2,1-13)을 기념해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낸다.
부활 제7주간이 끝나는 날인 이날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완성하신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로 ‘부활 시기’를 끝내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로 들어간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세 위격 가운데 성부(聖父) 하느님과 주님이신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지 분명하다.
하지만 성령(聖靈)은 친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설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아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 안에서 성령을 따르는 새로운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길 희망하며,
성령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한다. 글은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준양(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신부의 「성령론」(가톨릭대학교출판부)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성령 강림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은 성령 강림 사건을 자세히 증언하고 있다.
성령 강림은 크게 네 가지 사건으로 전개된다.
때와 장소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해 오순절 날 예루살렘의 한 가옥 위층 방이다.
오순절은 유다인들이 이른 봄에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과월절 곧 파스카 축제를 지낸 뒤
50일째 되는 날로 봄보리와 밀 등 햇곡식을 거두어 하느님께 봉헌하는 감사제 날이다.
또 오순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강림한 장소를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교회 전승은 시온 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했던 집의 위층 방이라고 전하고 있다.
주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사도들은 주님 승천 사건 이후 자기들이 묵고 있던 이 집으로 돌아와
위층 방에서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 방에는 120명가량이 성모님과 사도들과 함께 있었다.
이들은 유다 이스가리옷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도로 마티아를 제비뽑기로 선정했다.
성령께서는 오순절 날 이 방에 모인 모든 이에게 불혀 모양으로 강림하셨다.
성령으로 가득 찬 그들은 모두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대로 각기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오순절 축제를 지내기 위해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성령으로 가득 찬 주님의 제자들이 각기 자기 지방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놀라워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성령으로 가득 차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에게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하느님께서 그를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라고 설교한 후,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이름으로 3000여 명에게 세례를 주며 첫 신자 공동체를 설립했다.
사도행전은 이처럼 성령께서 강림한 오순절이 바로 교회 설립일이며, 주님의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는 성령의 사명이 바로 교회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오순절에 성모님과 사도들에게 강림하신 성령은 이제 교회 안에 머무시며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종말까지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이끌어 아버지 하느님께 인도하신다고 고백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747항 참조).
- 산 마르코 성당에 있는 작품 ‘성령 강림’. 베네치아.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1.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본질이 같으신 하느님이시다.
성령은 성부 하느님의 영이시며, 성자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인간 구원 경륜 전체에서 이루어진다.
창조주이신 성부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당신의 숨을 인간에게 불어넣으시어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욥은 “하느님의 영이 저를 만드시고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 제게 생명을 주셨답니다”(욥 33,4)라고 고백한다.
또 시편 저자는 “당신께서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갑니다.
당신의 숨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29-30)라고 찬미한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부활을 통해 인간에게 구원의 생명을 선물하신다.
예수님의 지상 삶에 동반했던 영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영은 같은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생명은 썩어 없어질 육적인 생명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살아 있는 생명이다.
그 생명 안에 사는 이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착함, 신용, 온유, 절제’(갈라 5,22-23)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을 흠숭을 받으신다”고
고백한다.(니케아-콘스탄니토폴리스 신경 참조)
2.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요한 14,16)라고 알려주셨다.
우리말로 ‘진리의 영’으로 옮겨진 성경 본문의 헬라어는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s)이다.
파라클레토스는 진리의 영이라는 뜻뿐 아니라 보호자, 협력자, 인도자, 중재가, 위로자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파라클레토스는 성령께서 하시는 다양한 역할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에게 생명의 힘을 주시는 파라클레토스 성령께서는 내가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
‘보호자’로서 나를 감싸 주시고 위험에서 보호하시며, 또한 내가 어려움에 빠져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나를 도와주시는 ‘협조자’이자 ‘협력자’이시다.
그분께서는 또한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그 방향조차 보이지 않는 순간에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시는 ‘인도자’이자 ‘안내자’이시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해 위기의 순간 봉착했을 때 내가 모든 것을 고백해
말할 수 있는 ‘상담자’이시며, 또한 나를 위해 말씀해주시는 ‘변호자’이시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나를 격려하는 ‘지지자’이고 ‘옹호자’이며 ‘대변자’이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령께서는 내가 슬픔과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좌절해 있을 때
나를 위로해주시면서 나를 위해 탄식하고 대신 기도해주시는 ‘위로자’이시다.(박준양, 「성령론」 292쪽)
3. 성령은 교회의 영혼이시다.
성령께서는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시고 인도하시는 ‘교회의 영혼’이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 참조)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인격과 업적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이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쇄신을 통해 구원을 현실로 이루는 분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고 성령 안에서 새사람이 된 인간이야말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존재이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서 활동하실 뿐 아니라 교회의 경계를 넘어온 우주 안에서 활동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함께하신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 모두를 하느님과 인간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이끌어주는 분이다.
성령이 동반하지 않는 신앙은 빈 껍데기나 마찬가지다.
성령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룩한 독서, 기도, 묵상, 성체조배, 미사와 같은 교회의 모든 신앙 행위를 통해 성령의 은총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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